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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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로맹 가리를 먼저 만난 것은 '자기 앞의 생'이었다. 유명세를 알고 있었고 누군가의 극찬에 호기심이 동해 읽었던 터였다. 난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고 그래서 큰 감흥 없이 책을 덮었더랬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기대도 빼고 기름기도 빼고, 그렇게 조금은 관조적인 자세로 읽어나갔다. 천천히, 조금씩! 400쪽이 넘는 이 책은 격한 절정 없이 조용히 산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가파른 절정이 없는 만큼 급한 추락도 없었다. 완만히 올라가서 정상에서 마무리한 느낌? 늦게 타올랐지만 그만큼 오래 가는 감동이 있었다. 로맹 가리의 마지막 작품, 그가 생을 끝내기 얼마 전에 집필한 유작다운 여운이다.

 

작품 속 화자는 '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25세 백인 청년이다. 초등학교를 중퇴했고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그의 유일한 스승은 사전이었다. 서점에 가서 사전을 찾아보고, 적절한 때에 적당한 단어를 떠오릴 수 있는 것에서 소박한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청년이다. 그는 친구들과 교대로 택시를 몰았는데, 어느 날 솔로몬 씨를 승객으로 만나게 된다. 그는 이미 나이가 여든 넷이었는데, '기성복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산가였다. 젊어서 큰 돈을 벌었고, 이제는 노년에 접어든 그는 구조회에서 전화를 받는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솔로몬 씨는 그 업체에 장같은 젊은이가 필요하다며 그를 채용한다. 장은 솔로몬 씨를 태우기도 하고, 그의 심부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꽃을 갖다 주기도 하고 돌봐주기도 하는 일을 시작한다. 솔로몬 씨가 큰 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도 장은 세상 모든 것에 연민을 품었다고 느낄 만큼 봉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사적인 동기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다. 인류의 손을 잡는 게 불가능하니 눈앞에 있는 사람의 손이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136쪽

 

어느 날 밤에는 전철 입구에 서서 행복 승차권을 나눠주는 꿈을 꾸다가 웃으면서 잠에서 깨기도 했다. -373쪽

 

이야기는 장이 솔로몬 씨의 심부름으로 코라 라무네르에게 과일 바구니를 가져다 주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코라는 솔로몬 씨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지만, 솔로몬 씨는 그 전화를 일상적인 구조회에 건 전화로 취급했다. 의도적으로. 코라 라무네르는 오래 전에 은퇴한 샹송 가수였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름을 날렸던 그녀는 이제 예순 다섯의 나이로 젊었을 적 빛나던 무대를 추억하면서 황혼의 자신을 쓸쓸해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와중이었다. 여든 넷의 솔로몬 씨를 생각한다면 코라의 나이는 스무살 정도나 어린 거지만, 그녀 역시 청춘은 아니었기에 이 작품의 주된 화두인 '늙음'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되었다.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 초콜릿도 거부하지만, 클럽에서 마이크를 잡았다가 야유를 받는 할머니였다.

 

사람의 마음은 몸이 늙는 걸 따라가지 못하네. 몸이 늙지, 마음이 늙는 게 아니야.  -118쪽

 

“조용한 건 이제 충분해요, 자노. 난 삼십 년 동안 조용히 지냈는걸요.” -141쪽

 

그녀는 자신이 늙었기 때문에 내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해. 사실은 반대로 그녀가 늙었기 때문에 못 버리는 건데 말이야. -232쪽

 

 

장은 그녀를 돌봐주고 가까이 지내면서 점점 더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에 발을 담근다. 마드무아젤 코라의 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그녀가 안고 있는 고뇌의 크기와 깊이는 누군가의 연민으로 해갈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젊음과 늙음의 갈등보다 더 깊은 화해되지 않는 감정이 코라와 솔로몬 사이에 있었다. 벌써 35년도 더 전의 이야기이다. 솔로몬 씨는 비록 코라에게 아파트를 얻어주고 연금도 받게 해주는 등 경제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을 외면하였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는 제 마음 속의 울림도 무시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의 이런 태도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행복을 갉아먹는 분노라면, 이제는 좀 눌러버릴 필요도 있지 않았을까? 아직도 열정에 가득 찬 솔로몬 왕이라지만!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불행한 사람들이 행복한 이들보다 행복하다. 자신의 불행에만 신경을 쓰면 되니까. 나는 솔로몬 왕을 생각했다. 그는 마드무아젤 코라에게 가혹했다. 용서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용서하지 않는 것 아닌가.  -352쪽

 

여기서 솔로몬 '왕'이라고 지칭한 것은 장과 한 방을 쓰는 미국인 유학생 친구 척의 말을 빌릴 필요가 있다.

 

"그건 권력의지에서 나온 거야. 자선가들에겐 언제나 지배하려는 욕구가 있지. 오랫동안 바지의 왕이었던 그는 이제 자신을 왕으로 여기는 거라고. 솔로몬 왕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성서에 나오는 그 솔로몬 왕 같은 거라고."

 

척이 나간 다음, 나는 사전을 찾아보았다. 솔로몬 왕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는 성전을 건설하고, 전차 군대를 정비하고, 동맹을 확고히 했지만,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無로 돌아갔다. 라루스 소사전에는 그의 지혜가 동양 전체,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전설적이었노라고 나와 있다. 그는 사치스럽고 영화를 누린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그 점이 바로 솔로몬 씨와 닮았다. 솔로몬 씨 역시 몹시 후하게 선심을 쓰지 않는가. -65쪽

 

솔로몬 왕을 닮은 솔로몬 씨.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지혜로웠다고 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작은 인간 솔로몬. 지금 자선업체를 운영하면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지만,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솔로몬 씨이다. 가족이 없는 그는 누군가의 오래된 엽서를 수집하면서 그 안에 담긴 편지 글들을 상상하고 재현해 보며 소일 거리로 삼는다. 저물고 있는 황혼의 나이이지만, 여전히 미래는 궁금한 법! 예언가를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물어보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뿐인가. 여든 다섯이 되는 생일 날에는 더 심한 도전(!)도 시도하였다. 그는 앞으로 50년도 더 갈 튼튼힌 직물의 양복도 맞춰 입으며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마음 속 깊은 외로움과 공허함을 견뎌내질 못한다. 그러니 그가 코라와 다시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코라에 대한 구원일 뿐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구원이기도 하다. 그걸 위해 동분서주한 장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장의 연민에 찬 선의는 서툴렀다. 그는 지나친 동정이 오히려 상대에게 무례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숱하게 경험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책으로 밤거리를 배회하기도 한다. 기름에 오염된 바다에 빠진 갈매기들에게서 거두지 못한 연민이 구조회에 걸려오는 사람들에게로 이어졌고, 종국에 그 연민은 스스로에게 향한다. 누군가의 불행을 듣고, 그 불행 속에서 자신은 보다 나은 입장임을 깨닫는 데에서 오는 자연스런 안도감. 비단 장 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만 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정말 머리가 돌아버릴 테니까요. 캄보디아의 학살 같은 일들을 생각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들에 관심이 없으면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입하기 마련이죠, 마드무아젤 코라. -132쪽

 

두세 건의 불행을 접수했고, 그러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 몫의 불행이 내 안에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덜 불행해졌다.  -319쪽

 

 

작품 속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두 입체적으로 움직인다. 노쇠함 속에서 빛나는 열정을 지닌 솔로몬 씨도, 젊은 날의 영광 속에 젖어 살지만 여전히 자존심을 지키고 제 안의 목소리에 솔직한 코라, 온갖 잘난 척은 다하지만 그래도 입바른 소리는 제대로 하는 척, 그리고 사전 때문에 인연이 닿아서 이제는 함께 살고 있는 서점 직원 알린까지. 물론, 그중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이는 역시 장이다. 서툴렀지만 그 진심만큼은 순수하고 착했던 장은 진지함과 유머를 동시에 가진 휴머니스트였다. 무학의 통찰로 빛나지만, 그래서 더 장중한 울림이 있었다. 그의 철학에는!

 

29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나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질문에 대한 최악의 결과가 바로 대답인 경우가 종종 있다.

74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드무아젤 코라의 이름조차 알까 말까 한 그가 어떻게 그녀가 일류인지 이류인지 삼류인지 안단 말인가. 누군가를 깡그리 잊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입을 닥치고 있어야 한다.

137

“맙소사, 당신이 그 사람을 어떻게 알죠? 아주 오래전,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하던 배우인데.”

“그게 그녀를 잊을 이유가 되진 않죠. 할 수만 있다면, 전 이 세상에 살다간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싶은 걸요. 그런 일 말고도 세상에는 이미 부당한 일이 많다고요.”

“그런 일이라뇨?”

“망각, 누군가를 잊는 거 말이에요.”

157

“무슨 상관이에요, 마드무아젤 코라. 우스꽝스러워질 권리가 없다면 그건 인생이 아닌걸요.”

239

당신이 행복해한다고 해서 삶이 당신을 벌주진 않아.”(알린)

“잘 모르겠어. 알다시피 삶은 눈을 갖고 있고, 행복한 사람은 눈에 띄기 마련이라서 말이야.”

381

나는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어야 할 이유가 생길 때마다 정말 죽을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394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 층계에 앉아서 노래의 나머지 부분을 들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노래하는 것은 언제나 침묵이니까.

 

로맹 가리니까 쓸 수 있는 유머도 한대목 소개한다.

 

159

“드골은 여든 두 살에 프랑스의 왕, 그러니까 대통령이 되었어요. 그리고 마담 시몬느 시뇨레는 지금 당신 나이 정도에 영화 주연을 맡지 않았던가요? <자기 앞의 생>이라는 영화였어요. 그래요, <자기 앞의 생>이었어요. 예순이 다 된 나이에 오스카상까지 받았잖아요. 맞아요, 우리 모두는 자기 앞의 생을 마주하고 있어요. 나도 그렇죠. 겸손하게 말이에요.”

 

이 대목을 만나고 나니 내가 '자기 앞의 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살짝 일었다. 그리고 이 책과 같은 주인공을 내세운 '가면의 생'도 관심 가는 책으로 등극해 버렸다. 더불어 로맹 가리의 뮤즈 진 세버그에 대한 관심까지!

 

종이 사전을 펼쳐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들고 다니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이 벽돌 생김새의 책은,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세상에서 클릭 몇 번으로 만날 수 있는 사이버 속 존재로 대체되었다. 비록 종이 질감을 느끼며 만져본 지는 오래 되었지만, 내 책장에는 여전히 사전이 꽂혀 있다. 차마 버릴 수는 없다. 언제 만날지 알 수는 없어도. 사전에는 그런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의 배경처럼 1979년에는 사전의 아성을 무너뜨릴 존재가 없었겠지만. 장이 작품 속에서 찾아보는 단어들이 참 의미 깊었다. 각각의 단어들을 다시 새겨보며 그 단어가 적재적소에 쓰이는 상황을 상상해 보고, 또 프랑스식 유머에 감탄도 해보았다. 언어유희! 로맹 가리는 과연 천재다.

 

76쪽 불멸의immortel 죽음의 노예가 되지 않는.

191쪽 아름다운 고통, 추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은 불멸이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많은 것들은 불멸에 가까운 지위를 얻기도 한다. 문학도 그 하나일 것이다. 사랑에 대한 여러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던 중에 나온 저 설명도 마음을 울린다. 추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부끄럽지 않다면...

 

1979년에 세계 인구는 40억이었다고 작품 속에 소개된다. 세계 인구는 작년 기준으로 이미 70억을 넘겼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와, 지금 막 읽기를 마친 나와의 간극을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읽으면서 궁금해진 부분도 있다. 유대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었다. 가톨릭 신자들처럼 '다음 번'이라는 것이 없다고.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예수의 재림을 믿지 않으니 부활도 믿지 않는다는 설명일까? 궁금했지만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사실 이부분이다.

 

거기서 알린과 나는 흑인 아이들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흑인은 백인보다 고뇌가 적다. 그들은 덜 문명화되어 있으니까. 익히 알려진 사실 아닌가. 나는 지나치게 문명화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자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삼십 분 동안 크림 타르트를 먹으며 그런 식으로 장난을 쳤다. 나를 점령한 지식의 총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288쪽

 

두 사람 모두 백인이니까 저기서 나온 흑인 아이는 두 사람이 낳은 아기는 아닐 것이다. 이 부분을 로맹 가리는 유머로서 쓴 것일까, 아님 당시 프랑스 사회는 저 정도 말은 곧잘 튀어나오던 분위기였던 것일까?

 

신기했던 부분도 있다. 작품 속에서 장은 알린의 짧은 머리를 아쉬워한다.

 

여자들의 머리는 길면 길수록 좋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짧으면 목이 더 많이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녀의 목이 많이 보이는 건 좋았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법. -194쪽

 

한국 남자만 여자의 긴 머리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이건 좀 충격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장은 지혜로운 사나이!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장과 사귀면서 알린이 스스로 머리를 기르긴 하지만....

 

솔로몬 왕의 고뇌는 인간 모두가 갖는 깊고 어두운 그림자였다. 누구도 늙음을 부정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누구든 사랑의 포로가 되고 집착의 노예가 되고, 분노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망치기도 한다. 그 모두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들이지만 지혜로운 당신이라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사전에 모두 나오지는 않지만, 간혹 사전처럼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정답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사전이 딱딱하다면, 이렇게 문학 작품을 통해서 은유적으로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었다. 내리는 비만큼이나 촉촉하게 감성을 적셔 주었다. 한 잔의 커피가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등록 버튼을 누르고 모처럼 뜨거운 커피를 마시리라. 오랜 여운을 즐길 나만의 음악도 배경으로 깔아주면서...

 

몇 개의 오타가 있었다. 좋은 책이니 금방 다음 쇄를 찍고 바로 수정될 거라 믿는다.

 

145쪽

그녀가 조용히 살아온 삽십 년의 세월을 따라잡기로 문득 작정했기 때문이지>>>>삼십 년의 세월을 따라잡기로 문득 작정했기 때문인지

 

215

돌로 깍은 듯 위엄 있는 얼굴이었다. >>>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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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7-0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좋은 책에 오타, 정말 안타까워요. 책 읽다 오탈자 있으면 괜히 안타깝고 책의 가치가 좀 떨어져보이고
그래요. 노인의 눈에는 빛이!! 헤르만 헤세의 노년의 혜안이 엿보이는 '정원일의 즐거움'도 그렇게 느껴졌거든요.
노년이 되면 눈은 어두워져도 심안은 더 밝아져야할텐데 말에요, 우리도^^ 아니 저도^^

마노아 2012-07-08 12:33   좋아요 0 | URL
요새는 오타의 잔치라고 할 만큼, 오타 없이 한권을 끝까지 읽는 책이 없어 보여요. 그래도 이 책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고 할까요..ㅜ.ㅜ
헤헤,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이 모두 밝은 우리가 되었으면 해요. 저는 라섹한 여자... ㅎㅎㅎ 이제 심안을 밝힐 차례예요.^^

라로 2012-07-0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리뷰 썼는데,,,마노아님의 리뷰를 읽자니 책 내용이 새삼 머리속에 환하네요,,
저것 말고도 저도 오타 찾았는데 몇 개 안 되어 그냥 넘겼는데
우리 마노아님은 친절도 하시지!!^^

마노아 2012-07-08 12:34   좋아요 0 | URL
뤼야켈레벡님 리뷰도 읽으려고 별찜 해놓고 바빠서 놓쳤어요. 언능 가서 읽어야겠어요.
오타를 더 찾았는데 표시를 안 해 놓고 지나쳐서 빠뜨린 게 있어요. 거기서 겹쳤을지도 몰라요. ^^ㅎㅎㅎㅎ
 
사료를 드립니다 - 제8회 윤석중문학상 수상작 미래의 고전 2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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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금이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편의 작은 이야기들이 모두 각각의 재미와 교훈, 감동을 심어주면서 사람과 사람, 관계에 집중하며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다.

 

첫번째 단편 '조폭 모녀'에서는 엄마와 티격태격하며 으르렁거리는 딸이 나온다. 아이의 입장에서 그려낸 엄마의 캐릭터가 아이의 억울한 심사를 잘 담아내었고, 딸과 함께 싸우면서 어려지는 엄마의 성격도 재밌었다. 또 좋아하는 남자 아이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아이의 심리도 무척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재밌게 읽은 책이다.

 

두번째 단편 '건조 주의보'는 사내아이 동생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되찾아오고자 죽어라 공부를 해서 전국에서도 상위권을 다투는 공부 실력의 누나가 집안엔서 왕처럼 구는 모양새, 그런 누나에 치여 찬밥이 되어버린 남동생과, 양쪽에서 눈치 먹고 눈치 주는 부모님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눈이건 피부건, 어디라도 함께 건조해져서 식구들 사이에 끼고 싶은 아이의 외로운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지나고 나면 누나도 남동생도 자신들의 철없음을 언젠가는 깨달을 테지. 그래야 마땅하고...

 

세번째 단편 몰래카메라는 상상력이 기발했다. 이렇게 행운처럼 찾아온 요술 주머니가 생긴다면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내게 찾아온 행운인 순식간에 사라져서 얻게 되는 허탈함이 싫어, 차라리 행운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랄 것인가. 아이가 자신의 선행에 대한 보답을 바라고, 또 놀랍게도 찾아온 보답이 보여준 마술같은 일과, 또 그것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찾아온 허무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누구라도 이런 마음이 들었으리라. 그리고 공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간다. 인간은 시험에 들기 좋은 존재. 스스로 시험거리를 파고 마는 존재니까.

 

네번째 단편 '이상한 숙제'는 앞서 다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작가님의 경험에서 탄생한 이야기이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의 갈등은 해묵은 이야기이다. 모두들 피곤하고, 모두들 편하게 가고 싶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헤아려보기! 가장 기초적으로 배우는 유치원 시절의 덕목 아니던가. 기본에 충실하자. 나부터도...

 

다섯번째 단편이 이 책의 표제작 '사료를 드립니다'이다. 다섯 개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감동 깊게 읽었다. 캐나다로 유학가게 되면서 태어나서 줄곧 함께 지낸 시베리안 허스키 장군이를 다른 집에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혈통 좋은 개이지만, 늙어서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개를 입양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여 사료를 보내준다는 조건으로 장군이를 데려갈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전직 개장수였다는 사실이 주인공을 불안하게 만든다.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가 암으로 위독해지면서 한국에 일시 귀국한 주인공. 할머니보다 장군이 생각이 더 간절하다. 그리하여 장군이 찾아 삼만리가 이어진다. 불안함이 현실로, 우려했던 것들이 확인되는 순간 이야기는 다시금 반전으로 접어든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관계의 일방통행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상대가 행복한 것과 나의 만족 사이의 저울질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만든다.

 

초등학생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이금이 작가님의 신작을 주문했다. 더불어 여름철에 어울리는 텀블러도 함께 올 것이다. 올 여름(5월 초인데 여름이라니!)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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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없는 마을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창비아동문고 267
최양선 지음, 오정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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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절반은 먹고 들어간 소설이었다. 뭔가 미스테리한 느낌도 나고 신비로운 느낌도 나는 제목. 그림도 한몫을 했다. 그래픽 느낌이 가득한데, 작품의 내용을 생각한다면 무척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작품의 배경이 독특하다. 지구 끝에 있는 자작나무 섬! 이곳에는 도시에서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들이는 거대한 고물상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일터가 되어준 고마운 곳이다. 그런 이 섬에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오시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교장 선생님은 섬에 어떤 목적을 갖고 들어오셨고, 섬마을의 학생 보담이는 그런 교장선생님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어한다. 마을엔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하다. 인어공주와 짝을 이루는 바다 마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고, 헤엄을 잘 치는 소라는 고물상의 주인 해모 할머니로부터 이상한 비밀 글자를 배우고 있다. 소라의 단짝 친구 보담이는 한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그리워한다. 아빠는 엄마와 이혼했다고 하시지만, 보담이는 엄마가 실종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보담이의 발달된 촉에는 실종된 사람들과 그들이 집착했던 어떤 물건과의 관계가 잡히고, 이 미스테리한 사건을 헤집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니까 작품은 어느 정도의 판타지와 어느 정도의 미스테리함이 곁들여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맞다. 인간들의 오만의 상징인 바벨탑이 등장하고, 문명에 찌들고 편하고 화려한 것들에 잠식되어간 사람들이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들도 제법 교훈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런 주제의식을 이야기 속에 빨아들여 끌고 가는 힘이 좀 부족하다. 뭐랄까. 좀 산만한 느낌? 그리고 주인공들의 이름은 무척 예쁘지만 무척 겉돈다. 모든 등장인물을 '이름'으로 표현한 것도 그 산만함에 보탬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교장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할머니든, 사장님이든 누구든든든... 이름으로 상대를 표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런 소설 속에서는 독자와 처음 만나는 인물인 까닭에 몰입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자꾸 새로 만나는 기분을 주어서 더 낯설게 보인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지만 반드시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 짓지 않고 적절한 긴장감을 준 것은 반가웠다. 지극히 현대 문명의 이기 속에서 잘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지만, 어린이들도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책 마지막에 지은이의 말을 읽으며 뭉클해졌다. 작가님의 마음속 고물상에 차곡차곡 쌓인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진다. 우리 모두가 연민을 느끼고 함께 안타까워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들이 언젠가 작가님의 마음 속에서 뛰쳐나와 또 다른 이야기로 독자들을 만날 것이다. 더 깊이 무르익을 그 이야기들에 대해 미리 궁금해진다. 따뜻하고, 보다 신나는 이야기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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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6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워 호스
마이클 모퍼고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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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말을 타본 적은 없다. 아주 가까이서 본적도 없다. 그럼에도, 가장 섹시한 동물은 단연코 말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많은 주인공들이 말과 함께 멋진 액션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빠르기도 하거니와 의리도 있다고 여겨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내가 보았던 많은 작품 속 말들은 주인공의 도우미이자 친구였지만 이 작품 속의 말은 독보적인 주인공이다. 이야기의 진행 자체가 말 조이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영화 워 호스는 말 못하는 짐승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힘들어서 조이를 화자로 두지 않았지만 말이 느꼈을 감정들은 무척 잘 전달하였다.

 

영국의 한 가난한 농가에 어린 조이가 팔려온다. 술에 늘 취해있는 아빠보다 그 아들 앨버트와 교감하며 성장한 조이. 농장에서 일말로 제법 호흡을 맞추던 중 1차세계대전이 터졌고, 돈이 궁했던 아빠는 조이를 기병 장교에게 팔아버린다. 그림을 잘 그렸던 니컬스 대위는 조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앨버트를 안심시키기 위해 조이를 그려서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 와중에 니컬스 대위는 사망했고, 프랑스까지 흘러들어가는 와중에 조이는 무수한 사람들과 시련, 그리고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다. 인간이 아닌 조이의 입장에서 서술하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 들려온 말들에 대해서 비교적 담담하게 전하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조이가 징집될 때는 어려서 군대에 갈 수 없었던 앨버트는 전쟁이 끝나던 해에 자원 입대했고, 결국 극적으로 조이와 해후한다. 그리고 나서도 죽음의 위기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무수한 시련들이 닥쳐왔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 이겨내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다.

 

영화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작품의 전개 과정과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진행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고, 말 조이의 입장에서 서술한다는 사실이 특별해서 그게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대개 원작 소설이 더 깊은 맛을 준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는 스필버그가 얼마나 똑똑한 감독인지를 여실히 느꼈다. 솔직히,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았다.^^ 보다 위트 있었고, 감동을 끌어내는 데도 능란했다. 스필버그이니 오죽했겠는가.

 

영화와 소설 모두 작품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조이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그들은 조이의 아름다움에 심취했고, 그 고귀함에 흠뻑 빠져서 조이의 무사 귀환과 앨버트와의 조우를 다 함께 빌어주었다. 언뜻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서 희생된 무수한 군인들처럼, 이 작품 속에는 조이만 빼고 많은 군인들이 죽는다. 하핫, 조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주인공의 운명스러웠다.

 

불과 100년 전 이야기인데, 그 시절의 교통수단, 운송수단, 그리고 집에서 가장 유용하고 필요한 가축으로 말이 등장한다는 게 신기했다. 100년 사이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던지... 물론, 100년이 지나도 전쟁은 여전히 일어나고 욕심사나운 인간들은 많이 있지만...

 

그래서 인간 동료보다 조이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더 털어놓을 수 있었던 등장 인물들의 마음도 잘 이해가 된다.

 

너희는 친구니까 말해 줄게. 나는 연대에서 유일하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야. 미친 건 다른 사람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모르고 있지. 전쟁에 참가해 싸우면서도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몰라. 그게 미친 거 아니니?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를 수 있지? 상대편이 다른 색깔의 군복을 입고,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그들은 나더러 미쳤다고 하지. 너희 둘은 내가 이 어리석은 전쟁에서 만난 생명체 가운데 유일하게 이성적인 동물이야. -130쪽

 

긴 전쟁 기간 동안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조이는 기적처럼 살아서 돌아왔다. 조이는 기적의 상징이고 그래서 희망의 상징이다. 라이언 일병이 어머니 품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했던 것처럼. 어느 정도 예견된 감동이었음에도 그 감동의 깊이에 마음이 찰랑거렸다. 따뜻한 작품이다. 가능하다면 영화도 꼭 보라고 하고 싶다. 하나만 봐야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더 추천한다.^^

 

책은 이렇다 할 오타 없이 잘 마무리가 될 뻔했는데 마지막 쪽에서 하나 발견되었다.

216쪽이다. 메이지와 내가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질투심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질투심 때문-

 

앗, 방금 발견한 건데, 책속에 예스24에서 예매 가능한 '워 호스' 전용 예매권이 발견되었다. 애석하게도 사용기간이 3월1일까지다. 아깝다.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라도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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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2-03-11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가 입양한 고모가 있었어요.
고모집에 말이 있었는데 어릴적에 놀러가면 고모부가 말을 태워 준 적이 있었어요.^^
제주도 가서 말을 타 보고 싶네요.ㅎㅎ
주말 행복하게 잘 보내세요~

마노아 2012-03-11 16:06   좋아요 0 | URL
저도 제주도에 가게 되면 꼭 말을 타보고 싶어요. 저의 로망이에요.^^
후애님도 주말 행복하게 보내셔용~

또치 2012-03-1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책이 나와 있었군요. (영화 덕분에 알게 됐는데...)

마노아님, 제주 오시면 저희가 재워드리는 거 알죵? 말 타는 데도 데려다 드릴게요 히힛~
행복한 새봄 맞으세요!

마노아 2012-03-12 14:07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말을 생각하니 제주도가 떠오르고 또치님도 떠올랐어요.
저 제주도 한번도 못 가봤는데, 가게 되면 꼭꼭 또치팀을 찾겠습니다.
상상으로도 벌써 즐거워요. 또치님께도 행복한 새봄을 기원해요!!

같은하늘 2012-03-13 00:57   좋아요 0 | URL
우와~~ 또치님 제주도에 사시나보네요.^^
전 제작년에 시댁식구들과 제주도 여행가서 모두 함께 말 탔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높더라구요.
좋은 경험이랍니다~~~ 꼭 해보세요~~~

마노아 2012-03-14 01:55   좋아요 0 | URL
제주도가 더더더 보고파지네요. 꼭꼭 다녀오겠습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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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제목도 섬뜩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선 백설공주에 대해서 잘못 각인된 이미지가 있어서 그걸 깨뜨리는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근거도 없는 상상을 했었다. 전혀 아니었다. 그냥 스릴러 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작품의 배경은 알텐하인이라고 하는 독일의 작은 마을이다. 그곳 출신의 청년 토비아스는 살인죄로 10년을 살고 이제 막 석방되었다. 동창인 나디아는 그 10년 사이 유명 배우가 되었지만 긴 시간을 한결같이 기다려주었고, 토비아스와 새 출발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토비아스는 자신 때문에 죄인이 되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살고 계신 아버지를 홀로 둘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일이 빌미가 되어 엄마와 이혼하게 되셨고, 잘 나가던 식당은 문을 닫은지 오래였다. 그리고 죄값을 치루고 나온 토비아스를 마을 사람들은 대놓고 구박하고 따돌리고 심지어 테러도 가했다. 토비아스는 정말 사람을 죽였을까?

 

사건 당시 토비아스가 가장 큰 용의자였던 것은 맞다. 하지만 토비아스는 그날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두 소녀가 사라졌고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들은 토비아스가 범인이라고 말을 했다. 법정에서는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도 않는 토비아스에게 중형을 내렸다. 그리고 1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스무 살의 청년은 이제 서른살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10년을 도둑 맞았지만 그것이 정말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어 답답할 뿐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인근 공항에서 사람의 유골이 발견된다. 유골의 신원을 파악하고, 작은 마을 알텐하인에서 토비아스가 재출연하면서 벌어지는 긴장감은 10년, 정확히는 11년 전에 있었던 끔찍한 살인 사건의 전모에 모두를 끌어당긴다. 덮어버렸던 진실은 결국 제 몸을 드러내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발을 빼지 못하고 다시금 이 일에 휘말린다.

 

작품은 토비아스가 출소되는 날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되는 약 20여 일 간의 이야기를 쭉 풀어놓았다. 이렇다 할 특징조차 없던 작은 마을이었건만, 그 마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은 무수한 사람들을 거미줄처럼 엮으면서 그들의 썩은 양심과 지독한 이기심을 가차 없이 비쳐주었다. 자신의 이기심에, 혹은 제 자식의 안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양심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의 인생이 파멸로 치닫는 것을 방치했던지... 그 끔찍한 이기심에 환멸이 일었다.

 

비단 살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 뿐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잘난 명예를 위해서, 안전한 위치를 잃고 싶지 않아서, 또 누군가는 자신의 불법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 제 힘을 휘두르고 누군가의 희생을 외면한다. 어떤 이는 바람을 피운 배우자 때문에 괴로워했고, 상처입은 제 영혼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지금껏 몰랐던 제 안의 폭력성을 목격한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지만, 이렇게 자신의 바닥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야기라니, 이 책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얽혀 있는 이야기의 전모가 드러나는 것도, 그 과정에서 보여준 각각의 군상들의 모습도 섬뜩하리만치 놀라웠다. 다만 후반에 범인들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난 뒤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조금 급해 보였고, 다소 간의 유머는 있었지만 기대했던 어떤 '감동'은 조금 부족했기에 별점은 하나 깎았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이 시리즈의 첫 타자가 아닌데도 먼저 나온 것은 베스트셀러로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그녀의 다른 책들도 더 지켜보고 싶다. 형사 콤비인 보덴슈타인과 피아가 사건을 어찌 해결하는지 더 보고 싶기 때문이다.

 

덧글) 탈자가 있다. 504쪽 첫줄에 보덴슈타인 다음에 조사가 빠졌다. 보덴슈타인은-으로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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