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 살해사건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하던 조선 선비 살해 사건2가 나왔다.  여전히 매혹적인 표지로, 더 매력적인 내용으로.

앞서 1권은, 고려말 조선 초의 등장 인물들의 뜻밖의 이면에 놀라는 내용이 많았다면,

이번 내용은 왜 사극에서 이들을 그토록 많이 다룰 수밖에 없는지, 타당성(?)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 그리고 역사였다.

이름부터 대단한 '성종', 그가 밤의 황제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음, 연산군은 아비를 닮은 게 분명하다.

왕이 될 수 없었던 사람이 왕이 되면 언제나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다.  성종은 분명 왕족의 피를 이었지만, 서열상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극성스러운 모친께서 친히 왕으로 삼아주시니, 그 어머니의 명을 거역하는 게 쉽지 않고, 또 거역할 마음도 별로 없었던 게 그의, 그의 부인 윤씨의, 그리고 아들 연산의 비극이 아닐까.

오늘을 사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 폐비 윤씨는 여러모로 억울한 게 많다.  지아비는 귀가 얇았고, 시엄씨는 자신을 원수 보듯 했고, 아들내미는 너무 어렸다.  그녀가 다소 질투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 질투도 없는 여인이 있겠는가.  다만, 그녀는 눈치가 좀 부족했을 뿐.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었어야지...;;;

그녀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 자국을 냈다는 건 속설일 뿐이라고 이덕일은 설명한다.  오히려 성종한테 맞은 건 그녀였다.(음, 왕의 체통이 무너진다...;;;)

억울하게 죽은 건 불쌍한데, 그녀의 친정 어무이께서 훗날 연산군에게 어미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은 좀 아니다 싶다.  그녀 역시 이용당했을 테지만, 절대로 지혜롭지 못한 처사였던 것 같다.  이미 수백년 전에 벌어진 일을 내가 혀를 차봤자 아무 의미 없는 일이지만.

어린 연산이 어미소와 송아지를 보고 부러워했던 모습이 눈물 겨웠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었고, 관심이었노라는 이덕일의 설명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왕실의 어른들은 왜 그것을 몰랐을까.  아니, 알고도 외면했을까.

연산 역시 눈치 빠른 인간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가 선대로부터 이어진 공신 세력으로부터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선 손잡아야 할 인물은 훈구 세력이 아닌 사람이었다.  고래로부터 입바른 소리 하는 신하를 옆에 잘 두는 성군은 드물었으니, 그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가. 

물론,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훈구파는 사림파에 비해 덜 경직된 사람들이었고, 사림파들처럼 유교 지상주의는 아니었다.  사림파는 '정도'를 추구하지 왕권의 강성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결국, 밥그릇 싸움이었다는 비판을 안 받을 수 없다.  연산의 입장에서 재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조선 속에 숨어 있는 역사의 한뜸 참조)

무오사화를 보면서 사림의 '강직'함에 대해 숙여진해짐을 느꼈다.  그들이 나중에 변질되는 것을 생각하면 속이 편치 않지만, 적어도 그들의 뿌리에선 옳고 그름을 판별할 때에 '의'를 위해서 목숨 따윈 초개처럼 내던지는 근성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유자광 엄청 미웠다.(ㅡㅡ;;)

무오사화가 시작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가엾게도 이제 시작이었다.  앞으로 사화는 세번이나 더 남은 것.

어머니 윤씨의 죽음은 언제고 터질 화약이었다.  잠재되어 드러나지 않을 뿐, 그때가 언제든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올 문제였다.   거기에 대한 보험은 연산이 왕이 되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철저한 사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다 하지 못했으니 피비린내가 진동할 수밖에.

나는 이 부분에서 이덕일의 멘트가 인상적이었는데, 주연은 성종, 연출은 인수대비라는 말이 너무 딱 들어맞아서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여기서 그쳤다면, 연산은 '연산군'이라는 이름으로 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복수였으니까.  그래도 거기서 멈췄다면, 피는 보았을지언정 쫓겨나는 군주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멈출 줄 몰랐다.  아니, 더 망가져버렸다.

이름 짓는 데는 도사였던 연산군은 그야말로 '흥청망청' 놀았다.  그것도 도에 지나치게.

큰어머니를 욕보인 것은, 그가 왕 아니라 하늘 신이라 할지라도 용서받을 없는 중죄.  여기서 반정공신들에게 명분을 주고 말았다.  장녹수도 여기에 한몫 단단히 했다.  한 세상, 그래도 권력을 쥐고 흔들어 보았으니 죽는 순간 후회는 없었을까.  알 수 없는 노릇.

연산군의 치세는 짧게 끝났다.  중종반정은 긴장감 속에서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 중종이 이후 허수아비 임금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다행히 반정3공신이 일찍 죽어주었지만.

이제 강한 왕으로 거듭나고 싶은 그에게 조광조라는 날개가 생겼다.  둘의 비극은, 훈구파를 몰아내는 할 입장은 같았으나 최종 목표는 서로 달랐다는 것. 중종은 왕권 강화가 목표였지만, 조광조는 도의정치가 목표였으니, 거기서 조광조의 몰락은 이미 예고되었다.

그가 잡혔을 때 임금을 향한 절절한 한탄이 가슴 깊이 남는다. "신은 올해 39의 선비로, 이 세상에서 믿은 것은 오직 전하의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망한 거야..ㅠ.ㅠ 사람의 마음을, 그것도 임금의 마음을 믿었니... 라는 애도를 살며시 뿌려주고 싶었다...;;;;

대체로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좋게 들린다.  조선 시대엔 꽤 오랫동안 입에 올릴 수 없는 이름이었지만, 오늘날이야 어디 그렇던가.  그런데 이 조광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신복룡씨의 "한국사 다시 보기"에서 보면, 그는 임금을 지치게 했고 피곤하게 했고, 너무 성급했다고 했다.  제시해 준 단서들을 보니, 나라도 조광조 멀리 하고 싶었을 것 같다..;;;;;;

하여간 중종은 가만 보면 첫 왕비 배신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사람 배신하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드라마 대장금보단 여인천하 때의 중종이 더 실제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에 반정에... 벌써 몇 번씩이나 등장한 공신들에 조선은 썩어갔다.  왕권을 넘나드는 신하의 강대함은 을사사화까지 이어지니, 퇴계 이황이 '퇴계'라는 호를 써가며 정치판을 떠나있고 싶어한 심정을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드라마 여인천하는 역사 왜곡이 아주 심했는데 '정난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덕일 작 "여인열전"을 참고하세용.

사림의 시련은 길고도 가혹했다.  그러나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아무리 강성한 훈구파라고 해도 거스를 수 없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연 도태되었고, 사림은 지방에서부터 그들의 뿌리를 깊게 심었다.  이제 사림의 시대가 도래했고, 경쟁자는 사라졌다.

역사의 아이러니. 사림은 집권하자마자 부패한다.  임진왜란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것.

그러나 아직까진 희망의 이야기를 남기며 책은 마친다.

부록으로 나오는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의 비교는 아주 쉽게 설명되어 있다.  윤리 시간에 설명들은 그 어려운 철학이 아니니 겁먹지 마시라.

사실 이 책이 개정판인지라 앞서 '사화로 보는 조선사' 책 한권의 내용을 책 두권으로 편집한 것이다.

추가 내용이 있지만, 상술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사도 두권 분량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워낙 책 내용이 좋으니 그래도 사 보라고 권유하겠다.  어차피 옛날 책은 절판일 테고^^;;;

역사 속 인물이 얼마나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지 실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보기 바란다.  드라마에 견줄 바가 아닐 테니까.

덧글) 2권 책속 내용 보여주는 부분이 1권 내용과 똑같은 것을 인용했다.  부지런을 떨어 2권 내용으로 교체해 주었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덕일 선생님의 인물사 열전 중 하나다.

송시열이란 인물은 사극에서 많이 접했던 이름이다.  지금이야 고구려 열풍으로 조선시대 사극이 별로 인기를 못 끌고 있는 시점이지만 장희빈 등등이 등장하는 내용이었다면 송시열도 등장했을 것이고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다.

송시열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중국에 공자가 있듯 조선의 '송자'라고 칭송되었던 인물이고 국비로 그의 저서가 간행되었을 만큼 죽어서까지 영향력을 떨쳤으며, 그의 문인들이 이후 조선에서 끼친 영향을 모두 돌아보건대, 조선사에서 그 비중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인물이다.

그렇다면 송시열은 훌륭한 인물인가?  글쎄... 유명한 인물인 것은 맞다고 하겠다. 지금도 그를 칭송하며 덕을 기리는 후손과 문인들이 많건만, 어느 고장에서는 개 이름에 붙여져 욕처럼 불릴 만큼 그 이름에 저주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저자가 송시열에 관한 책을 쓴다고 했을 때 닥쳤던 위험과 압력도 만만치 않다고 한 것을 보면, 가히 죽어서까지 그 위명을 떨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게 있어 송시열은 답답할 정도로 한우물을 판 사람이고 그래서 어찌 보면 조선의 역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가 밟아온 83년 간 인생 여정은 한줄 외길이었고 그래서 그를 비롯한 조선에 슬픈 일이기도 하였다.  그가 죽은 숙종 때를 거슬러 현종, 아니 더 올라가 효종까지 올라가면, 나는 과연 그가 그토록 많은 존경을 받을 만한 인격을 지닌 것인지 의심이 간다.

그의 학문 세계는 깊었다.  그는 게으르지 않았고 지나칠 정도로 근면하고 검소했으며 강직했다.  조선의 선비 정신의 덕목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줄을 잘못 섰다.  그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의 신하로서 사대부를 위한 정치를 했지, 백성을 위한 정치에 힘쓰지 않았다.  심지어 국난의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그가 살았던 시간은 지독할 정도로 당파 싸움이 극심했던 때이고, 그 당파 싸움의 한 중간에는 언제나 그가 서 있었다.  그는 산림이라 자처하며 조정에 나가지 않았지만, 언제나 막후 인물은 그 자신이었고, 조선은 사대부 위에 임금은 없어도 사대부 위에 송시열은 존재하는 나라로 전락해 버렸다.

효종의 갑작스러운 죽음, 현종의 급작스러운 죽음 뒤에도 그의 이름은 꼭 끼어 있었다.  그가 명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사건의 중심 인물이었던 것이다. (조선왕 독살 사건과 같이 읽어보세요~)

그 대단한 인물 송시열이, 만 열셋의 숙종에게 사정 없이 휘둘릴 때는 차라리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그는 제대로 적수를 만난 것이다.  우리가 장희빈과의 로맨스로 익히 알고 있는 숙종은 굉장히 정치적 감각이 발달한 인물로서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서 수렴청정도 없이 정사를 한손에 쥐어버린 인물이다.  숙종은 송시열을 대접하기도 하고 몰아치기도 하면서 요리(..;;;)를 하더니, 끝내 원자 책봉 문제로 송시열의 목숨을 거둬버린다.

송시열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든 셋이나 먹은 노인네가 그 와중에 생에 미련을 가졌을 것 같지는 않다.  성격답게 꼬장꼬장하게 죽어갔으리라.   죽으면서 그의 유언은 두가지였다.  학문의 시작과 끝을 주자로 할 것과, 자신의 관을 덧붙인 널빤지로 하라는 것. (효종의 죽음에 대해서 미안했다는 뜻)

마지막에 양심은 있었던 것일까.  죽어 효종을 만나 뒤늦게라도 사과를 했을까.  하지만 그가 진정 미안해해야 하는 것은 조선이었고, 조선의 백성이었고, 우리의 역사였다.  죽어서도 몰랐을 테지만.

이 책의 말미에는 당시 조선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제대로 압축한 전망이 나온다.  조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고, 그 사회의 변화가 어떻게 이어질 지, 그 이유까지도 제대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인지도 말해주었다. (어찌나 문장이 우수하던지 감탄에 감탄~!!!)

책을 덮으면서 시원함과 동시에 답답함을 느꼈다.  시대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답답함으로 등장했으며, 잘 몰랐던 역사적 진실에 다가선 듯한 느낌에 시원함을 느꼈다.

깊이있게 내용을 다뤘기 때문에 아주 대중적인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읽게 된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감히 자신있게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폼페이 - 최후의 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3
로베르 에티엔 지음, 주명철 옮김 / 시공사 / 1995년 8월
평점 :
품절


시공 디스커버리 도서가 그렇듯이 이 책 역시 문학적 재미를 느낄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기, 학술적 도구로서 유용한 책일 뿐이다.  때문에 짧은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빨리 읽혀지지 않는 따분함은 충분히 감수해야 한다.  지겹다 느껴질 땐, 담고 있는 역사적 진실로 만회를 해야한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접근하기에는 미안해지는 내용이다.
79년 8월 24일, 인간 세계에서 완전히 소멸되어버린 비운의 도시 폼페이가 어떻게 다시 그 흔적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는지의 발굴 과정이며, 그곳 폼페이 유적 발굴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말이다.

축소된 백과사전 같은 분위기로 편집되어 있는데(시공 디스커버리 책들의 특징이다.) 관련된 여러 사진과 도면, 그림 등을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오래 전에 예술의 전당에서던가, 폼페이 최후의 날 전시회가 있었는데, 당시 나는 가보지 못하고 엄마랑 언니가 다녀왔었다.  그때 사온 팜플렛이 아마 어디에 끼어 있을 텐데..;;;;;  그때 언니의 소감.  당시 사람들의 체격이 참 작았다는 것. 그들의 생활이 참 화려했다는 것... 등등이 기억난다.  이 책에도 폼페이인들의 생활상을 짚어볼 수 있는 여러 자료가 등장해서 그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데, 그들이 불시에 당한 참변을 떠올리면 착잡해진다.(물론, 현재 강원도의 물난리보다 가엾지는 않다...;;;)

저자는 오늘날 폼페이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그곳을 오염시켜, 폼페이를 두번이나 죽게 만든다고 안타까워 하였다. 이는 복원이 가능하지 않은 고고학적 대재앙이라는 것이다.

비단 폼페이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귀한 여러 유적지와 유물들도 비슷한 경로로 많이 훼손되는 예를 접하게 된다. 예전에 기전 문화재 소속으로, 유적 발굴 조사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공사 현장에서 유물이 발견될 경우, 공사 기간의 방해와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로 모른 척 유물을 매장시키는 일이 다반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곳이든 옛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 볼 때, 그것이 단순한 관심이나 흥미이든, 학술적 목적이든 적어도 그 가치를 최상으로 살려 우리 뿐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비록 이 땅에서는 한 순간 재로 사라져간 폼페이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위안도 되주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는 없다
이희근 지음 / 사람과사람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희근씨의 이름은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덕일씨와 공동저자였기에 알게 된 경우였는데, 재밌는 것은, 공저이지만, 각각 에피소드는 따로 썼을 터, 누가 어떤 글을 썼을 지가 너무 자명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덕일씨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다른 서로의 글쓰는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재차 확인이 가능했는데, 몇몇 주제가 겹쳤다.  그래서 내가 짐작했던 것은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일단, 제목은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옛날 일본은 없다!로 큰인기를 몰았지만, 표절이라는 시비를 아직도 받고 있는 전모 여인의 책이 떠올라서 그랬을 것이다.  한국사는 없다! 라고 박아 놓으니 어쩐지 부정적인 제목이 좀 거슬렸다. (일본은 없다! 때는 제목은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다....;;;;)

몇몇 주제는 솔깃하기도 했고 오홋! 소리가 절로 나오기도 했는데, 또 절반 정도의 주제는 과연 그럴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저자의 오랜 연구와 공부로 이루어진 저작물이건만, 독자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니, 어쩐지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몇몇 부분에서 반발이 이는 것은, 역사학계에서는 100% 단정짓는 표현은 일종의 금기다.  아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며칠 전 등장한 명성황후 진짜 사진일지 아닐지의 문제 말이다.  과거에 있어왔던 명성황후의 사진은 오래도록 진짜인 척 돌았지만,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진짜로 밝혀진 사진이 없다! 가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처럼 100% 확신하는 목소리로 "틀리 없다!  반드시 ....다!"라는 표현은 좀 거북하다.  피해갈 구멍을 만들어놓는 것도 비겁하지만, 너무 과한 자기 확신 역시 부담스러운 것이다.

아마도 내가 기대를 많이 하고서 읽어서 실망이 컸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다른 책은 또 어떨지 알 수 없지만, 당분간은 읽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이게 역사책인가, 아님 소설책인가, 수필인가.... 이런 생각들로.

그러나 읽다보니 정리가 되었다.  역사를 다루었으니 역사책이 맞고, 저자 안소영씨의 정리로 살을 붙였으니 소설의 기운도 있고, 이덕무 자신의 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니 수필도 되는 셈이다.

이덕무를 비롯한 백탑파의 인물들은 김탁환씨 소설을 통해서 여러차례 이름을 접했고, 또 북학파를 공부할 때 교과서 등을 통해서 자주 본 이름들이다.  그런데도, 그 모든 책에서 나왔던 이름보다도, 이 책을 통해서 등장한 인물들이 가장 현실감이 있었고 무게감도 가장 컸다.  왜일까?  난 그것이 이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만 보는 바보라고 적혀 있는 타이틀은 먹글씨로 쓴 손글씨인데, 어린 아이가 쓴 것마냥 삐뚤삐뚤한 글씨체지만 친근감이 있고, 역시 수묵으로 그린 선비의 그림도 꼬장꼬장한 양반의 모습보다 세상물정 모르지만 늘 한 길을 파는 순백 느낌의 선비를 떠올리게 한다.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풀어주고 경계심마저 해체하여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그것을 마치 일대일로 듣는 것같은 현실감을 주는 것이다.

이 책이 소설적 기법을 사용하여 이덕무와 그의 친구, 스승, 일, 가족을 얘기할 때, 가장 주축이 되는 설정, 그리고 사실은 그가 서자라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에 서자로 살면서 어깨 펴고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괜히 홍길동 유머가 나오겠는가.(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그만큼 일반대중도 알법한 현실이라는 것. 

책만 보는 것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었으며, 또 그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취미이자 사치였다.  그런 그가 논어를 팔아 끼니를 때워야 했을 때, 벗의 가난함을 아파하며 좌씨전을 팔아 술을 대접한 유득공의 재치와 마음씀씀이는 얼마나 아름답던가. 

서럽고 서러운 그들이 끝내 학문을 놓지 않고,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이 그들을 구원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그들은, 그런 그들의 능력을 알아봐 주는 군주를 만나는 복을 타고 났으니.

안타까운 것은 그 점이다.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군주를 만난 것은 그들의 복이지만, 그 군주의 명이 그닥 길지 못했으니.. 그들이 바라고 꿈꾸던 세상을, 그들의 자식들에게 원하던 만큼 돌려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의 군주로 인해 가능했던 일들이란, 그가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에 쌓였던 아성도 무너진다는 의미가 된다.  난 그 점에서 정조의 죽음을 아파하며, 그보다는 자유롭고 능력 위주의 사회인 오늘날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지금이라고 양극화 현상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ㅡ.ㅡ;;;)

이 책이 초등학교용 도서에도 꽂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교보문고에서) 확실히 쉽게 쓰여졌다.  실학파들의 계보라던가, 당시 조선의 상황이라던가, 이들이 쓴 책 등등도 모두 일목요연하게 머리 속에서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초등학생용으로 보기엔, 이 책 안에 담긴 한과 설움을 이해하기 어려울 듯 싶다.  적어도 중학생 이상이 되면 이 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맨 뒤에는 인물과 저서 목록을 가나다 순으로 요약 정리했다.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읽어두면 역시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큰 몫을 해낸 그림 이야기를 빼먹었다.

그림은 강남미씨가 그렸는데,  수묵을 사용한 것보다 특이한 것은, 그림의 크기다.  보통 이런 책의 삽화란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하거나 양페이지를 다 차지하기 일쑨데, 이 책의 삽화는 한 페이지의 1/4크기를 넘지 않는다.  딱 그만큼만 차지하고서도 전체를 다 차지한 것 같은 존재감을 주며, 여백의 미를 발산하여 순백의 책장과 검은 묵의 조화를 황금률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채색된 그림도 나오지만 모두 수묵의 기법을 사용했다.)

1+1으로 나와서 책이 그렇게 안 팔렸나? 조금 우려도 되었는데, 이 좋은 책이 왜 안팔렸을까 이젠 안타까움이 든다.  혹시 주저했다면 당장에 장바구니로 보내기를... 멋과 여운과 실용서적으로서의 장점을 모두 갖추었으니...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