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섬 공방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5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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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시리즈 중 두번째 이야기인데, 어쩌다 보니 나로선 순서를 바꿔서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다.  기왕이면 시간 순서대로 보았다면 좋았겠지만, 조금 바꿔 읽는다고 문제가 될 내용은 아니다.   

레판토 해전과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 저자는 어떤 책을 어떻게 참고했는 지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 책 로도스 섬 공방전은 활용할 자료가 매우 부족했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가뜩이나 소설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시오노 나나미에게는 참으로 악조건이랄까.  물론, 그렇다고 기죽을, 혹은 뜻을 굽힐 그녀로 보이지는 않지만. ^^

이 책의 참고자료가 부족했던 까닭은 이 전쟁의 주인공인 기사들이 전투 중 사망하면 묘비도 잘 세우지 않고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그렇다고 아예 소설을 쓴 것은 아니지만 그녀 특유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음은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저자는 작품 속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주인공의 입을 빌려 대화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번 작품은 앞서 읽었던 두 개의 작품보다는 상대적으로 '피'가 덜 튄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항복'이라는 형식으로 투르크 앞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로도스 섬의 기사들의 무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색하지 않으니, 마지막 기사 계급이 역사에서 사라지는모습이란 장엄하면서도 슬픈 서사를 보여주어 어딘지 애틋한 기분마저 들게 되었다.  어쩌면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연애편지 쓰듯 그런 기분이었을 지도...;;;;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몰락하는 계급은 언제나 새로 대두되는 계급과 전쟁을 치르고서야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다."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이 책은 몹시 재밌게 읽혔는데, 그 이상의 가치도 지녔으니,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의 변혁기에, 그 시대를 살았던,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생 안에서 투쟁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만족감과 자부심 등이 내 안에 생겼다.  우리가 역사 수업을 받을 때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니, 굳이 찾아서 읽고 공부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났을 역사의 조각들을 내가 들여다본 것 같아서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었다.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알아주어서 그들이 고마워하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 ^^

양장본으로 출간된 이 책은 크기를 줄여 무게를 줄이는 대신, 여백도 많지 않아 쓸데없는 지면 낭비는 보이지 않았다.  디자인도 그럭저럭 합격점.  3부작 시리즈를 책꽂이에 나란히 꽂아놓으면 꽤 '폼'이 날법한 책이었다.  물론,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작품'으로 인정받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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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700년의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대산출판사(대산미디어)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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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가 몇년 간 존속했냐고 묻는다면 대체로 500년이었다고 비교적 어렵지 않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구려 역사가 몇 년이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전세계에서 단일 왕조로 오래 지속되었다는 조선왕조보다도 무려 200년이나 더 지속된, 7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신채호의 접근이 옳다면 거기서 몇 백년 더 추가되겠지만.)

이 책은 친한 지인의 집에 갔다가 억지로 빌려오고 말았었다.  나 사서 읽을 거라고 얘기했는데도 굳이 빌려주더니, 결국 빌려 읽은 책에는 줄 한 개 긋지 못해 간지러워 하다가 다시 사서 읽으며 밑줄 박박 그었었다. (품절 도서인 것을 보니 조만간 재출간 되지 않을까? 고구려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때이니...)

책을 읽으면서는 여러모로 충격에 사로잡혔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 오류가 많다는 것은 들어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조목조목 확인할 수가 있었다.  단군이 세운 고조선이 청동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2,333년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나라에 청동기 시대가 도래한 것은 기원전 10세기라고 하는 이 어마어마한 간극을 교과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사실 그런 것에 의문조차 갖지 못한 스스로에게 더 놀라고 실망스러웠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라고 적어놓았지만, 삼국유사에서도 2,333이라는 숫자는 오류라고 지적한다.  뿐아니라, 부여의 시조 동명왕과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도 섞어서 표기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광개토대왕비라는 일차 사료가 버젓이 있는데, 도저히 시정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다녀온 고구려 고분전시회에서도 "동명성왕"이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그밖에 지금은 많이 시정되고 있는 안악3호분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창작 뮤지컬 안악지애사라는 작품도 만들어졌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배우던 그 시절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수정된 내용들을 간혹 확인하고는 한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이다.  두리뭉실, 은근슬쩍 넘어가고 지나치는 부분들이 많다.  게다가 우리 교과서는 1종 교과서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역사에서 IF란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매번 떠오른다.  (물론 삼국 통일이란 용어 자체도 문제가 많다.) 아직도 시끄러운 동북공정 문제도 그렇고, 툭하면 터지는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미래를 온전히 꿈꿀 수는 없는 노릇이건만, 우리 역사에 대한 접근, 연구, 확인 과정이 너무 미비하고 졸속적이라는데 화가 난다.

고구려는 이미 천오백년 전에 역사의 한자락으로 사라졌지만, 그 고구려는 아직도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찾아내고, 기록하고, 그리고 기억하는 작업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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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9-1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읽은 "고구려의 역사" 때문에 이 책도 도서관에서 빌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답니다

마노아 2006-09-13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루마린님이 읽은 책하고는 정반대의 입장일 것 같아요^^;;; 두루두루 보신다니까 한번 보셔요. 재밌습니다. ^^

marine 2006-09-1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저도 그래서 읽어 보고 싶더라구요 안 그래도 이덕일씨가 "고구려의 역사" 저자인 이종욱 씨의 입장에 반대한다고 쓴 글을 읽었어요 제가 보기엔 근거가 좀 빈약했지만...

마노아 2006-09-1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종욱씨! 이름이 낯설지 않다고 했더니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쓰신 분이군요. 이 책도 그 책도 페이지가 만만치 않네요^^;;;;
 
문화로 읽는 세계사 사계절 1318 교양문고 5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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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었더니 다 읽는데 두 달은 걸린 것 같다..;;; 다행히 주제별 모음이기 때문에 전체 흐름이 끊길 위험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35개의 전체 주제는 고대/중세/근현대로 시간 순서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스레 해당 시기의 역사적 흐름도 같이 간파할 수가 있다.  호감가는 것부터 먼저 읽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처음부터 읽어가는데, 앞부분은 지루한 내용일 거란 나의 예상은 여지 없이 무너졌다.  처음부터 이 책은 즐거운 책이었던 것이다.

각 주제의 말미에는 참고로 한 문헌이나 그밖의 자료에 대한 원전을 실어주는데, 이는 내용의 신빙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또 중간 중간 참고로 할 수 있는 사진과 부연 설명을 같이 담았는데, 눈여겨볼 만한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 책의 제목을 다르게 정한다면, 세계사 속의 문화사, 진실은 바로 이것... 정도가 되지 않을까?  저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이나 선입견 등을 바로 잡아주는 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이란 워낙에 '진실'을 찾는 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절대진리' 혹은 '절대진실'이란 말은 누구라도 함부로 쓸 수 없지만, 그가 제시하는 단서나 근거, 자료 등을 살펴보다 보면, 그의 논리에 자연스레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때로 그게 무서웠다..;;;)

몇몇 주제들은 이미 다른 책에서 이미 접한 것들도 있었지만, 중복되어 보게 된다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특별한 내용이라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했다.  또 워낙 재밌게 서술했기 때문에 지루할 틈도 없었다.

문화사다 보니깐, 그 시기의 의.식.주와 관련된 것들, 생활, 언어, 문자, 무덤, 학교, 전쟁, 종교, 인종 등의 다양한 주제가 나온다.  그리고 문화로 보는 세계사이다 보니, 단순히 그 시대의 '문화'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기의 '역사'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모짜르트를 통해 혁명을 얘기하고 디즈니를 통해서 미국 우월주의를 보는 것 등 말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이 책이 1318교양문고라는 것을 알았다.  학생들을 위한 집필이었다지만, 결코 성인들의 눈높이에 모자라지 않았다.  오히려 청소년들이 보기엔 좀 벅찬 내용이지 싶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검색을 해보았는데 몇몇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좋은 책을 또 만날 수 있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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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9-1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너무 재밌죠?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노아 2006-09-13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재밌었어요^^ 다른 책도 좀 더 찾아보려구요^^
 
콘스탄티노플 함락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20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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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아서는 이 책이 출간된 지 15년이 넘은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확실히 책을 읽어보니 유려한 문체가 로마인 이야기와는 조금 구별되는 것이 오래된 느낌이 나긴 한다.  그렇지만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것이지 작품의 맛깔스런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작가는 로마, 이탈리아 쪽 문명에 대해서 지극한 애정을 품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녀의 애정을 담뿍 느낄 수 있었다.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고대 로마라는 모태에서 잘려난 고통을 서유럽인에게 주었다"라고 적었지만, 내 보기엔 서유럽인들보다 그녀의 아픔으로 보였다. ^^

어느 시대건 아프지 않은 역사가 없고, 인류가 살아온 자취가 피의 역사인 것을 모르지 않는데도, 유독 문명이 충돌한 전쟁의 흔적 뒤의 상흔에 눈길이 간다.  중세와 근세를 구분짓는 이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흘린 동포를 뒤로 한 채 원수와 다시 통상수교를 맺는 베네치아 상인들과 그들의 정부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인간적으로 보였다.  그 쓰라림마저도 사람 사는 모습으로, 우리의 모습으로 보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도 그녀의 장기는 제대로 발휘되었으니, 역사적 진술도 소설처럼, 영상처럼 눈앞에 사르륵 지나가는 힘 말이다.  그래서 많은 부분, 그 역사의 현장에 내가 있는 것 같은 놀랍고 황홀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때로 상상력의 과포장으로 미화된다 여겨지는 부분들이 있지만, 역사적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의 애교라고 나는 믿을란다.(사실 확인할 길도 없다...;;;)

작품의 말미 에필로그에 이 책을 쓰는데 동원한 문헌을 쭈욱 나열하는데, 마치 이렇게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픽션같지?  그럴싸 하지?  하지만 진짜야.  이것 좀 보라구~ 하는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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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해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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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로 이름을 떨친 시오노 나나미는 사실 소설가가 되었어도 크게 성공했을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서와 소설의 경계를 찾는 것이 어렵고 때로 무의미할 때도 있다.  모두가 소설같이 보여지기도 하고 또 모두가 진실로 보여지기도 한다.  물론, 그녀가 소설가가 되었더라면 역사가로서의 그녀의 작품이 너무 아까우니, 그녀는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이 내게는 다행이다.^^

그녀의 작품이 좋은 것은, 역사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결코 딱딱하지가 않고 나름의 기승전결을 잘 구성하여 소설적 재미를 부가한 역사적 진실을 말해준다는 데에 있다.

전쟁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인 레판토 해전은 지중해가 역사의 무대였던 기나긴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전투였으며, 또한 갤리선이 주역을 맡은 마지막 대해전이기도 했다.  동시에 '십자가'를 앞세운 마지막 전투로 이후 서유럽의 어떤  사람도 십자군을 제창하지 않았다.(그런데 부시가 십자군을 말한다ㅡ.ㅡ;;;;)  서유럽이 세계의 주인이 되면서부터 지중해 세계는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작품은 전쟁을 묘사하면서 화가의 붓터치가 지나가듯이 너무 리얼하고 또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어서 마치 이 부분에선 우는 거야! 라고 노골적으로 외치는 영화감독의 의도성 연출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뻔히 알면서도 감독의 마수에 걸리고 마는 관객이 되는 기분을, 책을 읽으면서 느껴야 했다.  (그러니 시오노 나나미는 대단하다^^;;;)

다만, 별점 한 개 빠지게 만든 옥의 티가 있다면,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한 러브 스토리의 삽입은 전체 내용 중에서 뭔가 동떨어진 듯한...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데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픽션일게 분명한 이 끼어들기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한 이야기까지 픽션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모든 역사책을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쓸수도 없고, 또 읽을 수는 없는 거지만, 아직은 이런 식의 독서가 더 즐겁다.  내게는 시오노 나나미의 에세이류가 오히려 더 딱딱하고 낯설며 어렵게 읽혀지니, 앞으로도 그녀와의 만남은 주로 역사책일 것 같다.  그리고 그 편이 더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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