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세상이 옛날처럼 자신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을 투정하지 않는다. 세상을 원망해 봤자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때를 위하여 내부 역량을 축적하는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출처: 한겨레 ESC,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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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름이요, 너희는 씨앗이며 뿌리와 같으니라. 언제 어느 곳에 가 있더라도 잊지 말아라. 너는 천대받는 백성들의 울본이 화한 마음이요, 그 손발이고, 그 머리며, 그 무기가 되어라." (금강산 운부 대사가 장길산에게)

"부자에게 재물이란 더러운 목숨과도 같은 것이니, 그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께 보시하는 것도 죽이는 일 만큼의 징치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글을 읽고 세상의 도리를 아는 자의 죄는 더욱 용서할 수 없이 큰 듯합니다." (서 선비를 징치하고나서 길산이 김기에게)

장충은 건넌방 문을 열더니 선반 위에 얹혔던 고리짝을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통장고를 어깨에 걸머지고 마당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어디 한바탕 해보아라."
길산은 머뭇거리다가 고리짝을 열고 켸켸묵은 탈박들 중에서 취발이의 탈을 집어들었다. (중략) 아버지가 통장고를 두드리며 불림을 내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노던 달아.."
길산은 저절로 어깨가 으쓱여지고 무릎이 올라감을 느꼈다. 타령장단이 계속되자 길산은 힘차게 깨끼춤을 추며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몇 바튀 돌아가는 사이에 길산의 장딴지와 팔뚝에는 어언 신명이 잡혀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던 춤사위가 저절로 풀려나오기 시작하였다.

작은 배에 큰 짐을 실을 수 없고 너그럽지 못한 자가 머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자가 분수를 모르고 억지로 남의 위에 행세하면 일도 그르치고 스스로의 몸도 망치는 것이다. (길산이 흥복에게)

그들은 초여름부터 길산이 내린 율에 따라 하루에 두 끼의 밥밖에는 먹지 못하였고, 산채에서는 따로이 절량하는 독을 두고 그나마 덜어내는 것이었다. 녹림당이란 생산하는 자가 아니니 뜻이 없으면 백성의 적이라는 것이었다. 흉년에 녹립의 무리가 옳은 행적이 없다면 그는 역병보다도 더욱 무섭게 백성을 해치리라는 것이었다.

이제 두려움은 빈 창자뿐인 백성들뿐만 아니라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 일수록 견디기 힘든 계절이 되어가고 있었다. 길산이네가 다녀간 뒤로 평산에서는 두 부자가 아예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비우고 감영이 있는 해주로 피난하기도 하였다.

아침 저녁으로 우리가 주막에서 음식을 먹을라치면 걸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둘러싸고 한 술만 달라고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으면 밥이 어찌 목구멍으로 넘어가리오. 만약 그들에게 남은 밥을 주면 그들은 형제간, 부부간에도 서로 조금도 사양함이 없었다. 다투어 한술이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다투고 빼앗았다. 이런 형편에서 염치나 인륜 같은 것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예부터 우리들 노비란 당신네 양반들에게는 개 돼지나 우마와 다를 바 없지 않소. 상전편에서는 은의라 하나 우리 쪽에서는 다만 한때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진정한 은의라면 왜 진작에 면천시켜주지 않았습니까. 허리가 부러지도록 평생을 댁내를 위해 일하다가 몸져누운 할아버지를 시구문 밖에 내다 버리라고 했던 것도 당신들이지요. 대감께서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지만, 집안의 강아지에게 한줄기 인정을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댁네는 우리 누이를 삼남 향족에게 팔아버렸지요. 왜 그랬나요. 그때에 내가 어렸으나 누이와 어미가 붙들고 울어서 다 듣고 알았소. 이 집 큰서방님짜리가 ㅇ므행하여 말썽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그때에 누이가 아이를 가져서 값이 후하였다고 댁네들이 지껄이는 소리도 들었소. 나와 내 아우가 자라나며 겪은 온갖 매와 고달픔은 다 잊었으나, 어미가 겪은 수모는 말로 꺼낼 수가 없소. 댁네 양반들은 모두들 음예로 날을 보내며, 부인들은 갖은 포학으로 앙갚음을 하였으니, 내가 어찌 한두 번 댁네를 죽이고자 작심하였겠소. 어미가 손가락을 작두에 잘리고 골방에 돌아와 울 적에,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어둠속에다 대고 맹세하였지요. 언젠가는 댁네 양반들을 이 세상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리겠다고. (노비 복성이 그의 주인 목내선 대감에게)

그렇다. 대저 아조에서 제도를 바꾸려던 이들이 모두들 임금을 죽이고, 밑에서부터 위에 이르기까지 일시에 혁파할 생각을 먹지 못하고, 어떻게 조정에 기어들어가 통이야 팥이야 따져서 천천히 고쳐나간다는 생각을 하거나 고작해야 저희 벼슬아치들끼리 치고 받아 환국하는데 그쳤으니, 일반 백성들에게야 두루 미칠 수가 없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으렷다. 역모가 혁파에까지 이르지 못한 바가 대게 그같은 이유에서였다.
어찌 싸움이 입으로나 글로써만 이루어질 것이겠는가마는, 죽이고 무찌르고 넘어뜨리는 일을 차마 생각지도 못하니 어찌 이겨낼 수가 있으랴. 높은 태산을 오르려는 자가 늘 가던 길, 누구나 걷는 대로를 택하여 오르려다가는 미리 방비하고 막아선 편에게 언제나 밀리게 마련이다. 밀릴 줄을 알면서도 그 길로만 모두들 떼지어 오르려는 것은 아예 태산의 정상에 오르지 않겠다는 뜻이로다.
다른 길, 아무도 뜻하지 아니한 새롭고 험한 길을 만들어 바위를 타넘고 미끄러지는 위험을 무릅써서 올라야 할 것이다. 어느 쪽 길을 택하는 것이 옳았던지는 태산의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일이다. 길을 새롭게 뚫는 자만이 올라갈 의사를 지닌 자이고 당도하게 될 것이다. (석씨와 산지니의 대화 중에 서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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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윤숙자 회장 인터뷰 중 일부 발췌)

- 무엇 때문에 온 국민이 영어에 매달려야 하나. 정말 우리나라 국민들이 영어를 잘 못해서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 우리 현실에서는 입시와 직결될 경우 아무리 취지가 좋은 정책이라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 대학을 쉽게 세울 수 있도록 해 대학 수를 늘렸다. 그런데 지금 명문대 경쟁은 오히려 강화됐다. 자사고가 대폭 늘어나면 중상위권 아이들도 사교육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경쟁 강화는 사교육 강화로 이어진다. 학벌주의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비 절감 정책은 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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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어떨 때 남자를 떠나는가. 그 남자와 내가 꼭 닮은 영혼이라는 실감에 진저리 날 때는 아닐까.

- 화려한 폐허를 딛고 가까스로 버티던 여자는 결단을 내린다. 헌신적인 그 남자를 버리고, 맞선 본 상대와 결혼식을 올려버린 거다. 학교를 졸업하면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여자는 술회한다. 별안간 닥친 헤어짐 앞에서 남자는 울고 여자도 따라 운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 정지용, 한하운의 시를 읊고 독일 가곡 <보리수>를 들려주는 남자와 보내는 시간은, 현실의 것이 아니기에 더욱 아슬아슬한 도취의 순간이다. 여자는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대칭점처럼 꼭 닮은 사람, 상처 없이 해사하던 서로의 맨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 지상에 남은 마지막 사람인 그 남자와 함께 ‘생활’을 꾸려갈 자신이. 여자를 진정 불안케하는 남자는 바람둥이나 난봉꾼이 아니라, 허공에 반 발짝 떠 있는 ‘흔들리는 영혼’이다.

- 오십년 뒤, 여자는 옛날 그 남자네 집을 찾아간다. 그렇지만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대도 여자는 여전히 불안한 남자로부터 도망칠 것이다. 씁쓸한 후회 뒤에 뒷맛처럼 남는 달곰한 추억의 여운. 떠나온 첫사랑의 남자란 여자에게 그런 존재다.

(정이현 한겨레 칼럼「그 남자 집에서의 회한」중에서, 일부 발췌 순서 임의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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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우리 학계의 대표적인 마르크스경제학자인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내년 2월 정년퇴임한다. 1989년 47살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뒤 19년만에 교단을 떠난다. 임용과 마찬가지로 퇴임이라는 그의 거취도 큰 관심의 대상이다.

자본론이 여전히 금서인 시절인 노태우 정권때 그가 서울대에 임용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대학원 재학생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학생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그의 후임을 놓고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경제학자가 후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류경제학자인 상당수 동료 교수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내년 3월 이후 후임자 채용 원칙을 정하기로 한 것은 이런 대립관계의 성격을 반영하는 어정쩡한 타협으로 읽힌다.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그에게 가장 절실한 주제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다. 올해 2학기 그의 학부 강의인 ‘현대마르크스경제학’ 수강생은 100명이다. 이 정도면 다른 강좌에 비해 대형 강의다. 하지만 그는 “너무 적다”고 했다. 분명 수강생 1천명이 대형강의실을 꽉 채웠던 ‘호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렇지만 최근 1~2년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지난해 2학기 같은 강좌 수강생이 41명으로 바닥을 친 이후 46, 63 등 조금씩 수가 늘어나고 있다.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 사정이 굉장히 나빠졌습니다. 실업자가 늘고 양극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으면서 노동계급 탄압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시장주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론적으로 해명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죠. 시장에 맡기면 다 해결된다는 주류경제학으로는 이론적 해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가칭 사회과학대학원의 수강생도 지난 1학기 첫 개강때는 등록생수가 30명이었으나 2학기때는 80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이 대학원은 그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마르크스 강좌 위주의 커리큘럼으로 학교 바깥에서 ‘교육운동’을 벌이고 있는 둥지이다.

그와 제자들이 정년퇴임을 기념해 펴낸 논문집 이름이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김수행·신정완 편, 서울대출판부)이다.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정성진 경상대 교수·강남훈 한신대 교수를 포함해 진보학자 16명이 자본주의 이후 새 사회의 상을 놓고 다양한 층위의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그는 자본주의 이후 세상으로 가는 길을 말하면서 ‘점진적 과정’을 강조했다. “운동하는 세력이 하나씩 쟁취하면서 자심감이 생기고 또 쟁취 과정에서 운영 능력이 커져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0년 민주화 세력의 집권은 분명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한다. “시민운동이나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이런 것들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자 상당수가 노동자를 타락시킨다면서 배척하는 ‘사민주의’ 아이디어도, 그는 적극 수용한다. “독일과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는 정부가 개입해서 민간의 이윤추구를 줄이고 학교와 병원을 공짜로 하는 등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실업과 양극화 해결은 어렵습니다.” 이 과정은 또 민중들이 다가올 새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값진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가 생각한 ‘궁극적 그림’을 이렇게 요약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지면 ‘생산의 사회화’라는 개념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노동과 자본의 사회적 성격이 강해지기 때문에 생산이 사회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생산이 사회화되면 이익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관리하고 나누어 먹고 공유하는 그런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모든 공장을 다 사회화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에 현 단계에서 재벌 기업의 국유화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자본이 발달하면서, 독점·재벌이 생깁니다. 이것을 사회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쉽습니다. (삼성 회장인) 이건희는 회사 주식의 1% 미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벌은 사회의 것으로 봐야 합니다. (재벌 국유화는)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이야기가 됩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이 펴고 있는 ‘재벌활용론’은 재벌의 독점력을 키우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고 했다. “국내 재벌이든 외국자본이든 자본의 기본은 이윤추구입니다. 재벌도 한국에서 이익 보지 못하면 다른나라로 갑니다. 재벌이 외국자본과 경쟁해서 한국경제와 민중을 돕는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모든 국민이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거두어야 합니다. 수출산업 위주의 경제성장으로 실업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선 고용이 필요한 게 아니라 최신 기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없다고 했다. 세금을 더 내야 자살하려는 사람도 살릴 수 있고 사회도 따뜻해지는 데 세금 몇만원 올리겠다고 하면 보수 신문들은 한목소리로 복지비용이라면서 반대한다는 것이다.
“영국은 지금의 우리 소득수준에 비해 훨씬 낮았던 1948년에 병원과 학교를 무료로 했고 완전고용 달성, 복지국가 건설을 뼈대로 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사회적 합의는 고작 자본가의 이윤을 늘려주는 그런 것입니다.”

”사회과학대학원 강의에 전력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마르크스 전집을 우리말로 옮기고 싶습니다. 모두 60권 분량인데 국내에는 6권 정도가 번역되어 있을 뿐입니다.”

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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