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어떤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만나면 읽는 내내 가슴이 뛴다.

그리고 읽을 이야기의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깝다.

애처로워 꼭 안아주고 싶은 소설,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중편소설들을 내는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중 하나다.


주인공 담과 구.

담과 구는 어릴 적 만나 가까이 지낸 사이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인생, 평험한 로맨스.

하지만 구는 부모의 사채 빚을 떠안아야 하는 신세다.

고등학교 때부터 돈을 벌어야 하는, 부모가 실종되자 사채업자들에게 따박따박 버는 돈을 바쳐야 하는 인생.

작가는 그들 속에 들어가 한바탕 살다 온 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조금 과격하지만, 슬픔이 더 압도하는 담과 구의 이야기.


소설 속 서술들은 성기고 거치고 생략이 많다.

작가가 감춘 그들의 일상이 더 궁금한 것은, 작가가 창조한 세계가 현실적이라는 뜻일 테지.

주인공들의 인생이 어느 다른 세계에선가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어서 남겨둔다.

"이전까지는 작가의 말에 꼭 담고 싶었는데 이번 소설에는 그런 문장이 없다.

속에 있던 - 마치 자르지 않은 호밀 빵처럼 커다란 - 덩어리를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해치운 기분이다.

소설에 관해서라면 아무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는다. 텅 비어버렸다."


 

 

 

1981년생으로 젊은 작가 축에 드는 최진영은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등의 장편을 낸 작가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리뷰를 올린 적 있지만 꽤 좋아하는 작품.


전작들과 달리 황정은 작가(특히,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도 얼핏 보이지만,

황정은 소설의 담담함과 절제된 거리감을 소거하고

작가와 주인공이 하나 된 듯 절박한 속도감을 더하면, 최진영만의 스타일이 된다.  

 

오랫 동안 입은 옷이 분명했다. 그런 옷을 갖고 싶었다. 비싼 옷을 집에서 함부로 입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릴 때부터 그런 옷을 입고 살아온 사람처럼, 그런 옷쯤 추리닝으로나 입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남의 옷을 훔친 경험은 그게 전부다. 그런데도 나는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빚이 내게 넘어왔다.
34p

구는 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보다 말이 없어졌고 목소리도 작아졌고 행동도, 뭐랄까, 좁아졌다. 몸만 크고 내면은 짜부라진 것 같았다. 넓고 큰 도화지를 두 손으로 구깃구깃 구겨 아주 작은 공처럼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59p

무슨 일이 제일 힘드냐고 물었다. 구는 편의점 일이 가장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일보다 몸은 덜 쓰는데, 몸을 덜 쓰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고. (중략)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며 몸을 쓰는 일을 할 때는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 좋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걱정이라고 했다.
힘든 일할 때 시간이 빨리 가면 좋잖아.
주저하다가 물었다.
그 속도로 내 삶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67p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73p

두 분이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과 부모님을 이해한다는 말이 같은 뜻은 아니었기에, 아버지와 악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며 아버지 힘드시죠, 라는 눈빛을 건네고 싶진 않았다.
99p

불행해도 행복해도 구를 생각할 텐데,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구를 생각하면서 살기는 싫었다. 구와 같이 살고 싶었다. (중략)
나는 고집스럽게 대꾸했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다시 구를 기다리며 살 자신이 없었다.
만약에 너 때문에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면 너는 술병을 치우는 대신 내 술잔에 술을 따라줘야 해. 우린 그렇게라도 같이 있어야 해.
이건 사랑이 아니야.
구가 말했다.
뭐든 상관없어.
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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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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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옛날 작품들을 찾아 읽고 있다. 생각보다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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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맛
하성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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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작가의 단편들은 가족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 되풀이하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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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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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을 보고 알게 된 작가. 나름 읽을 만한 대목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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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한강 지음 / 창비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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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의 문장들이 고파서. 이렇게 한강의 옛날 책까지 뒤져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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