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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의 모든 것 - 2017년 제6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금희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평점 :
권여선 작가 단편이 실려 있어서 구입했으나, 작품들이 좋아서 여러 편 읽게 되었다.
제 26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2017).
수상작은 김금희 작가 '체스의 모든 것'인데 무척 재미있었다.
대학 시절, 여자 둘과 남자 하나. 애매한 사이의 간격과 밀도를 발랄하게 잘 풀어냈다.
수상후보작 중에서는 다음 단편들을 읽었다.
권여선 '재' - 정말 좋아하는 작가지만, 이번 단편은 무난했다.
김애란 '건너편' - 무척이나 애달픈 로맨스. 도화와 이수의 이야기인데 현실적이면서도 작가 특유의 세밀한 시선이 살아있다.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 - 소설가가 자기 책이 중고로 팔리는 것을 못견뎌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경쾌한 소품. 이기호 특유의 입담과 구성력.
최정화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 부부 사이의 의심과 긴장감을 드라마틱하게 잘 풀어낸 인상적인 작품. 연하의 애인을 두는 것이 유행인가.
역대 수상작가 최근작 중에서는
윤대녕 '경옥의 노래' - 아 낡았다는 느낌.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작가의 무난한 소품. 아픈 사랑 이야기인데 별로 와닿지 않음.
정이현 '서랍 속의 집' - 전셋집 이사 전쟁, 맞벌이 스토리. 뻔한 이야기인데 그래도 평타는 되는. 정이현 작가의 단편은 점점 무난해지는 경향이.
어떤 작가의 단편들은 앞의 몇 줄에서 막히고 잘 안 읽힌다.
그건 취향이 고정되어 버린 내 탓이려니.
국화가 입을 열 때마다 선배는 힙하고 쿨한 우울한 청춘에서 어딘가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흔한 20대로 달라졌다. 그만하면 화낼 만도 한데 노아 선배는 이상하게 분노에 휩싸이지도 속을 끓이지도 않았다. 선배는 국화를 참아냈고 그렇게 선배가 참는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마음이 서늘했다.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곳이란 안 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에서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
나는 선배가 국화와 재회했을 때가 아니라 그 재회를 계속 이어가지 못했을 때 우리의 관계도 완전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끝이란 그렇게 당사자 사이의 어떤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들과 제삼자 사이에도 오는 것이었다.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
이수가 공부를 그만둔 가장 큰 계기는 ‘도화‘였다. 이수는 도화가 ‘어디 가자‘ 할 때 죄책감 없이 나서고 싶었고, 친구들이 ‘놀자‘ 할 때 돈 걱정 없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가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거였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해가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도화는 국가가 인증한 시민, 국가가 보증해주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신은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국민이었다. -김애란 ‘건너편‘
방금 전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도화는 목울대에 묵직한 것이 올라오는 걸 알았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쏟아지는 걸 느꼈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한 채 시들어간 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략)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저녁,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처럼.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김애란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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