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킹의 후예 - 제1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영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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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장편소설 <체인지킹의 후예>는 1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재기발랄함은 소설의 스토리 전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보험회사 직원인 남자가 암 환자인 여자와 결혼하는데, 중학생 아이가 딸려온다.

30대 어른 남자가 범접하기 어려운 13세 남자아이의 세계-를 의붓아빠로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변신왕, 체인지킹'이라는 망한 특촬물 TV 프로그램을 매개로.

내용은 정극인데 전개는 블랙코미디랄까. 젊을 적 박민규 작가를 연상시킨다.

웃기다가 슬프다가 좀 찡하다가. 재미있게 읽었다.

 

얼마 전 읽은 <연애의 이면>도 괜찮았고 관심 가는 작가다.

 

비로소 영호는 채연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조명이 꺼진 방 안에서 어둠에 녹아드는 일과 같앗다. 불빛 없는 어둠 속에서 물에 잠기는 것. 혹은 검은 입자가 자욱하게 드리워진 우주 속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것. 지금까지의 영호에게 그런 일은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영호는 두 번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의 영호에겐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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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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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소설 <없는 사람>은 노조 문제를, 노조에 침투하는  일을 하게 된 남자 무오와 그에게 일을 주는 남자 이부를 통해 그린다.
리얼한 세계를 그리지만 사소설 같은 느낌이 강한 건 주인공 무오의 시선이 압도적이어서 그런 듯. 존재감 없는 무오가 자신이 잘못 끼어든 뜨거운 세계에 어리둥절해하는, 그리고 어딘가 변화해가는 과정이, 익숙한 이야기를 익숙하지 않게 그려내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아버지가 없는 세대-라는 것이 요즘 젊은 작가들의 테마인 듯 자주 보이네. 황정은과 최진영 사이의 어떤 느낌도 났는데, 좋은 의미로.
은행나무의 문예지 'Axt'에 '도트'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작품으로, 은행나무 발간.

 

 

박의 죽음을 통해 무오가 배운 것은 인간은 필요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이나 진실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반대로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없는 일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건강했던 박은 갑자기 입사 때부터 체력이 안 좋았던 것으로 합의되었다.
p. 53

지금까지 그 누구와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무오에 대해서 그렇게 궁금해한 사람도 없었고, 충고나 조언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는 매사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몫의 생활을 이끌어가기에도 버거워 보였고, 무오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해서도 매순간 당황스러워했다. (중략) 아무에게도 자기 얘길 할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무오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무오 자신조차도 자신에 대해서 점점 더 모르게 되었다.
p. 136

돈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고 있다."
무오는 그렇게 중얼거려 보았다.
p.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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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이면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1
이영훈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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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소설 <연애의 이면>.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다. 요즘 소설 쪽에서 공격적 행보를 보이는 은행나무 출판사.
이 소설은 흥미로운 로맨스 물이다. 평범한 스펙에 답답한 성격의 여주인공 앞에 마치 할리퀸 로맨스 주인공인가 싶을 정도의 완벽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건 웹소설이 아니니까 반전이 있겠지 하며 빠져들어 읽게 된다. 대중적 코드를 잘 녹여낸 작가의 영민함이 돋보인다.

여주인공 연희만 입제적이고, 엄마, 전 남친, 유나라는 친구 캐릭터는 참 전형적이고 평면적인데 그게 대중적인 코드로 작용하는 점은 있다.

연희 옆에 보영 같은 친구라, 꼭 필요하다. 인생에 그런 사람.

 

보영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자기야,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 하고 하는 게 아냐." 웃음을 거두지 않고 보영이 말했다.
"행복할 것 같은 사람 하고 하는 거야"
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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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0
서유미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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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소설 <틈>. 짧은 분량의 경장편을 내는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다.
결혼한 여자의 마음의 허기를 다루는 소설은 유사 이래  많았다. 틈의 주인공도 그러한 허기를 빵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으로 달래며 비슷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여자들을 만나서 위안을 얻는다.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약간 평이한 느낌. 문장이 좀 설명적이기도 하고.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건, 그가 언젠가부터 자신의 행선지와 동행인을 속였고 마음을 숨기거나 다른 마음을 품은 채 살아왔다는 뜻이다. 이전의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집에 들어와 인사하고 식탁의 맞은편에 앉아 한 그릇 안의 찌개를 떠먹은 뒤 여자의.옆에 누워 잠들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45p

"아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어. 난 애들 대학 가면 무조건 이혼할 거예요."
"우리가 이상한 남자를 만날 걸까. 결혼을 잘 못한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지? 이 나이 먹도록 그걸 모르겠어."(중략)
"남자 다 거기서 거기예요. 아주 괜찮은 놈, 천하의 나쁜 놈만 빼면 그놈이 그놈이야. 다들 치명적인 흠 하나씩은 있다고요. 여자도 그렇지만. 그게 내가 견딜 수 있는 거냐, 없는 거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1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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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의 모든 것 - 2017년 제6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금희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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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 단편이 실려 있어서 구입했으나, 작품들이 좋아서 여러 편 읽게 되었다.
제 26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2017).
수상작은 김금희 작가 '체스의 모든 것'인데 무척 재미있었다.
대학 시절, 여자 둘과 남자 하나. 애매한 사이의 간격과 밀도를 발랄하게 잘 풀어냈다.
 
수상후보작 중에서는 다음 단편들을 읽었다.
권여선 '재' - 정말 좋아하는 작가지만, 이번 단편은 무난했다.
김애란 '건너편' - 무척이나 애달픈 로맨스. 도화와 이수의 이야기인데 현실적이면서도 작가 특유의 세밀한 시선이 살아있다.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 - 소설가가 자기 책이 중고로 팔리는 것을 못견뎌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경쾌한 소품. 이기호 특유의 입담과 구성력.  
최정화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 부부 사이의 의심과 긴장감을 드라마틱하게 잘 풀어낸 인상적인 작품. 연하의 애인을 두는 것이 유행인가.

역대 수상작가 최근작 중에서는
윤대녕 '경옥의 노래' - 아 낡았다는 느낌.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작가의 무난한 소품. 아픈 사랑 이야기인데 별로 와닿지 않음.
정이현 '서랍 속의 집' - 전셋집 이사 전쟁, 맞벌이 스토리. 뻔한 이야기인데 그래도 평타는 되는. 정이현 작가의 단편은 점점 무난해지는 경향이.

어떤 작가의 단편들은 앞의 몇 줄에서 막히고 잘 안 읽힌다. 
그건 취향이 고정되어 버린 내 탓이려니.

 

 

 

 

국화가 입을 열 때마다 선배는 힙하고 쿨한 우울한 청춘에서 어딘가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흔한 20대로 달라졌다. 그만하면 화낼 만도 한데 노아 선배는 이상하게 분노에 휩싸이지도 속을 끓이지도 않았다. 선배는 국화를 참아냈고 그렇게 선배가 참는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마음이 서늘했다.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곳이란 안 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에서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

나는 선배가 국화와 재회했을 때가 아니라 그 재회를 계속 이어가지 못했을 때 우리의 관계도 완전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끝이란 그렇게 당사자 사이의 어떤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들과 제삼자 사이에도 오는 것이었다.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

이수가 공부를 그만둔 가장 큰 계기는 ‘도화‘였다. 이수는 도화가 ‘어디 가자‘ 할 때 죄책감 없이 나서고 싶었고, 친구들이 ‘놀자‘ 할 때 돈 걱정 없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가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거였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해가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도화는 국가가 인증한 시민, 국가가 보증해주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신은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국민이었다. -김애란 ‘건너편‘




방금 전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도화는 목울대에 묵직한 것이 올라오는 걸 알았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쏟아지는 걸 느꼈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한 채 시들어간 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략)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저녁,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처럼.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김애란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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