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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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은 <비행운> 이후 5년만이다. 오래된 연인의 헤어짐을 미세하게 포착한 '건너편'이 가장 좋았는데 2017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에 실려 있어 이미 읽은 게 아쉬웠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이야기를 그린 '입동'과 가망 없는 시간강사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풍경의 쓸모',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야기 '가리는 손'이 흥미로웠다.
김애란 작가는 문장이 정말 매력적이다. 특히 비유를 동원할 때 과하지도 않고 한국어를 이렇게 잘 다루다니 늘 감탄하게 된다.

책을 사면 여름 달력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수박 사진이 시원하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입동. 15p

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그런 순간과 만났을 땐 잘 알아보고, 한곳에 붙박아둬야 한다는 걸 알 정도로...... 나이든 사람 말이다. 실제로 우리 가족에게는 그럴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랬다. 그때마다 우리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라는 노랫말마냥 정확하게 멈췄다. 과거가 될 만반의 자세,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러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뒤 사진기를 보고 웃었다.
-풍경의 쓸모. 150p

일터에서건 집에서건 밥 짓는 건 말 그대로 노동이고 어느 땐 중노동이었다. 아주 단순한 요리라도 그 안에는 장보기와 저장하기, 씻기, 다듬기, 조리하기, 치우기, 버리기 등 모든 과정이 들어가야 했다. 수백 명의 밥을 차리고 녹초가 돼 정작 나 자신은 컵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적지 않았다.
-가리는 손. 198p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가리는 손. 213p

그래, 엄마랑 아빠는......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가리는 손.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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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7-10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애란 작가의 책들은 사두기만 하고
아직까지 한 권도 읽지 않았네요.

여름, 책읽기 좋은 계절에 작가의 책을
읽어야지 싶습니다.

베쯔 2017-07-10 15:52   좋아요 0 | URL
김애란 작가님 글은 다 좋아서요. 뭘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하나 2017-07-10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글 제목이 최고의 찬사처럼 느껴지네요. ^^

베쯔 2017-07-10 22:56   좋아요 0 | URL
네. 저에게 그런 작가님들은 권여선. 천운영. 황정은 정도이려나요.^^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가 혼자 식당을 꾸려가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혼자 사는 초등학생>은 4컷 만화인데도 개그와 애잔함이 잘 묻어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스즈네 식당을 혼자 꾸려가는 린은 해맑아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캐릭터다. 
겨울에 외투가 없어 떨고, 아침을 못 먹어 배가 늘 고프고, 요리도 못해서 생크림생멸치덮밥 같은 요상한 메뉴만 개발한다.

<반지의 얼렁뚱땅 비밀일기> 시리즈를 좋아하는 8살 딸도 재미있게 읽는 걸 보면 가족들이 다 같이 읽을 만한 만화인 듯. 

도쿄 부근의 에노시마는 바다를 끼고 있는 경치가 좋은 마을인데 이 만화를 보다보면 꼭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1권 ‘에노시마의 여름‘, 2권 ‘에노시마의 하늘‘로 완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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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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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작년 가을에 구입하고 좀 오래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잘 안 읽힌다 생각했는데 다시 찬찬히 보니 좋은 단편이 많았다.
다소 상업적이고 발랄했던 초기작의 톤이 이번 단편선에서는 좀더 신랄해지고 깊어졌다고 느꼈다.
속물적인 인생-을 들여다보는 느낌. 미세한 뉘앙스를 담백하게 묘사하는 데 능력이 있는 작가다.
다음 단편들 중에서 '밤의 대관람차'와 '안나'가 특히 좋았다.

 

바다는 푸르고 지평선은 머나멀었다. 오후도 좋지만 요코하마는 밤에 참 아름답습니다. 아, 네. 겨울도 좋지만 봄이 가장 좋고요. 네, 그렇군요. 말하자면 그들은 지금 가장 좋은 요코하마보다 조금 덜 좋은 요코하마에 있는 셈이었다. 도달할 데가 남아 있는 겨울 오후. 봄밤에 또 한번 와보셔야죠. 그녀의 뺨이 붉어졌다.
-밤의 대관람차. 150p

남편과의 첫 만남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경은 춤을 추다 만났다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대부분 네? 하고 되묻고나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마다 경은 자신이 꽤 유니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기분에 휩싸이고는 했다. 유니크하다는 게 무슨 의미냐 묻는다면 물론 쉽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건 독특하다는한국어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안나. 194p

안나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언니 감사합니다. 맛있는 밥도 사주시고 제 얘기도 들어주시고. 또 뵈어요.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원망하기 위해서, 욕망하기 위해서, 털어놓기 위해서.
-안나. 216p

안나 씨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요?
경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안나는 한동안 머뭇거렸다.
음, 좋아 보여요.
좋아 보인다?
네, 대체로 그래요.
그리고 안나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간절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하. 내가 정말? 말도 안 돼.
경은 과장되게 웃었다.
내가 되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몰라. 어때요? 우리 한번 바꿔 살아볼래요?
언니도 참.
-안나.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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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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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신작 <오직 두 사람>은 7년간 여러 지면에 발표한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나이듦에 대해 생각했다. 윤대녕작가도 그렇고 은희경, 김영하까지.
젋은날의 치열함이 노회함과 여유로 바뀌는 순간,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둘째 치고 재미는 줄어드는 느낌이다.
설정이 기발한 건 원래 김영하작가의 장점인데, 그게 그걸로 그치는 느낌도 든다.
좋았던 단편은 '오직 두 사람', '옥수수와 나' 두 편 정도다.
 
오직 두 사람 : 아빠밖에 모르는 여자의 일생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아이를 찾습니다 : 대형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그 아이는 유괴되었는가, 시간은 관계를 파괴한다
인생의 원점 : 가장 영화나 웹툰 문법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너무나 극적이다, 그 남녀들의 운명은.
옥수수와 나 :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뉴욕으로 떠난다, 거기서 갑자기 소설을 막 잘 써내려가게 되다니, 작가들의 로망인가.
슈트 : 입양된 남자와 죽은 아버지, 이태리 슈트. 갑작스러운 조합이고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
최은지와 박인수 : 출판사 편집부가 배경이다. 사장과 여직원, 풍문들.
신의 장난 : 폐쇄공간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 요즘 이런 소재는 순문학에서도 많이 다뤄지는 듯. 단편이라 그런가 플롯이 어설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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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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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을 읽었다.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흥미로운 작품이 많아서, 장편 <없는 사람> 이후 또 한번 만족스러운 경험을 안겨준 작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세한 균열을 보여주는데 특히 '구두', '홍로', '대머리' 등이 인상적이었다.
가사 도우미의 분열을 그린 '구두'는 왓챠에서 본 단편영화, 가사 도우미와 SNS 문제를 결합한 '그녀'와 비슷한 설정.
'홍로'는 계약 관계의 노부부 이야기를 하루 동안의 단막 꽁뜨 느낌으로 잘 그려냈다.
'대머리'는 여자친구의 사촌에게 잘 보이려는 중년 남자의 애달픈 이야기다.
관계의 불안함을 그려내는 작가의 태도가 한발짝 떨어진 관점이고 골계미가 살아 있어 읽기 편했다.

표지 이미지를 잘 뽑아낸 것 같다. 줄무늬가 오돌토돌 입체적으로 만져진다.
제목의 '지'가 뾰족 솟은 것이 균열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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