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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부하는가 -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물어야 할 질문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나는 늘 멘토를 구한다. 중학교 때는 친구를, 고등학교 때는 학교 선생님을, 대학교 때는 동문 선배들을 멘토로 삼았고, 그들을 보고 배운 덕분에 힘들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으며 원하는 삶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지금 나의 멘토는 일차적으로는 현재 일하고 있는 분야에 계신 분들이고, 이차적으로는 글쓰기, 책 읽기 등 내 관심분야에서 멋지게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다. 그 밖에도 요네하라 마리, 시오노 나나미, 손미나, 정혜윤, 임경선 등 직접 대면한 일은 없지만 혼자서 멘토로 삼고 닮으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있는데, 최근 이 목록에 추가한 분이 김진애 님이다.
여성 최초로 서울 공대에 입학해 건축가로, 국회의원으로 다방면에서 활약한 분이라서 김진애 님에 대해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분의 성함을 들어왔다. 여섯살 때 산본으로 이사를 갔는데, 산본 신도시를 설계하신 분이 김진애 님이라고 부모님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무려 이십여 년이 흘러 ^^) 몇 달 전부터 다산북스 팟캐스트 <책으로 트다>를 듣기 시작하면서 이 분에게 관심이 생겼다. 아니, 이 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보통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으면 지식이 얕고, 지식이 많으면 생각이 고루한 사람이 많은데, 이 분은 세상사 전반에 관심이 많으면서 지식도 풍부하고 생각도 개방적이신 게 아닌가. 전공인 공학과 건축학은 물론, 인문학, 사회과학에도 해박하신 데다가, 소설에 영화, 음악, 심지어는 만화까지도 좋아하시는 것을 알고 대체 얼마나 똑똑하고 부지런하신 건가 싶었다(유시민 전 장관 님 편에서 박경리의 <토지> 전 권을 열 번 이상인가 스무 번 이상인가 읽으셨다고 하셨을 때는 정말 놀랐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데......).
김진애 님을 더 알고 싶어서 가장 최근에 쓰신 책 <왜 공부하는가>를 읽어보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서울공대에 입학하기까지 공부한 방법과 대학교, 유학 시절, 사회에 나온 이후의 공부법, 자녀교육법, 공부에 대한 생각 등이 각각 공부비상구론, 공부생태계론, 공부실천론, 놀이공부론, 훈련공부론, 공부진화론 등 재미난 제목으로 갈무리되어 실려 있다. 이화여중,고를 거쳐 서울공대에 입학한, 한국에서는 나름 엘리트코스를 밟았건만, 젊은 시절 그녀에게 공부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는데, 졸업 후 사회에 나와 개방적이고 똑똑한 미국 유학파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외국에 나가 '진짜 공부'를 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래서 MIT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보낸 7년 동안 그녀는 그야말로 신나게 공부했다. 여자라서, 딸이라서 눈 감고 입 닫은 채 살던 지난 날들을 잊고, 실컷 말하고 공부하고 일했다. 귀국 후에는 그 때 쌓은 내공으로 미친 듯이 일했다. 공기업에서 남이 시키는 일을 해보기도 하고 직접 회사를 차려 일을 찾아 해보기도 했다. 책도 쓰고 국회의원도 했다. 한 사람이 살면서 하나만 하기에도 벅찬 일들을 다 해낼 수 있었던 비결 역시 공부다. 전형적인 새벽형 인간인 그녀는 '3년에 하나씩 공부 주제를 정하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따라 스스로 공부 주제를 찾아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도 뭔가 배울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니 그녀가 얼마나 공부를 좋아하는 지 알겠다.
그런 그녀의 멘토는 누구일까. 책에는 박경리와 한나 아렌트가 소개되어 있다. 건축가인 그녀가 소설가와 정치학자를 존경한다니, 처음엔 의아했다. 하지만 <토지>가 어떤 소설인가. 이 땅에 사는 민중들의 애환을 방대한 서사로 담은 대작이다. 한나 아렌트는 누구인가. 정치 문제를 국가이익이나 권력이 아닌 보통 사람의 심리 차원에서 해석해 정치학의 새 지평을 연 인물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세상이 강요하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온몸으로 문제를 찾고 해답을 구하며 산 그녀들의 삶에 김진애가 매료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게다가 그녀들의 삶을 그저 아는 그치지 않고 건축에, 정책에, 글에 반영하려고 노력한 그녀의 '지행합일' 정신도 훌륭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토지>와 한나 아렌트의 저작들을 읽어봐야지. 그리고 이 멋진 멘토들을 소개해 준 나의 새 멘토 김진애의 저작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