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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하하하하, 아 씨 ...... 나, 간다!˝ 만지는 손바닥으로 눈을 마구 비비며 일어섰다. 손등으로 눈물이 흘렀다. 가방을 메는 순간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미라야, 우리 만지 바래다주고 오자.˝ ˝오지 마. 니들 보니까 열 받아. 다른 집 자매도 다 니들 같은 거 아니지? 나란히 음식 하고 언니가 숟가락 주면 동생이 젓가락 주고, 콜록대면 등 두드려주고, 그런 거 아니지?˝ ˝응.˝ ˝나오지 마.˝ 만지가 현관문을 열었다. ˝잘 가라......˝ ˝안녕히 가세요.˝ 미란과 미라는 현관에 서서 마중했다. 밖으로 나간 만지가 문을 닫았다. 미란과 미라는 다른 가족들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사람 사는 거 다 같을 거라고 자신들의 비루한 삶을 위안했다. 그리고 오늘 보니 그 생각이 영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위안은 되지 않았다. (p.138)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서 매주 어떤 영화가 개봉되는 지 일일이 관심을 쏟지 않는데,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몇 주 전부터 보도자료나 배우들 인터뷰를 눈에 띄는 대로 챙겨보고 있다. 김희애와 고아성, 김유정 같은 배우들의 팬이라서도 아니요, <완득이>를 좋아해서도 아니다(아직 못봤다). 매주 챙겨듣는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의 제45회 게스트가 <우아한 거짓말>의 원작 소설을 쓴 김려령 작가님과 영화감독 이한 님이셨는데, 김려령 작가님의 말씀 중에 계속 마음에 남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소설을 사서 읽었고, 이번 주말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볼까 한다. 작가님 말씀을 들으면서, 소설을 읽으면서 그랬듯 영화를 보면서도 분명 펑펑 울어버리겠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평범한 여중생 천지의 자살로부터 시작된다. 천지가 죽은 후 마트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중학교 3학년 만지 모녀는 아무말 없이 먼저 간 천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 만지는 착하고 밝기만 했던 동생 천지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천지가 남긴 흔적들을 끈질기게 좇은 끝에 천지의 단짝 친구인 줄로만 알았던 화연의 실상을 알아낸다. 여자 중학교가 배경이라서 자연히 그 시절이 떠올랐고, 나는 천지같은 아이를 내버려둔 적이 없었나, 화연같은 행동을 한 적은 없었나 돌아보았다. 겉보기엔 무난한 학창시절이었고, 천지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화연처럼 대놓고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를 본 적은 없지만, 여자아이들 간의 오묘한 신경전과 선의를 가장한 경쟁이나 다툼은 흔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청소년 소설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작가는 단순히 가해자 화연이 나쁘고 피해자 천지와 그 가족들이 안됐다는 식으로 구별짓지 않았다. 오히려 열네살 여중생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내버려둔 가정과 학교가 겉보기엔 무탈하고 화목했다는 데 주목한다. 가정에서 어머니와 언니는 천지를 그저 착한 딸, 귀여운 동생으로만 여겼지, 그녀의 깊은 속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천지는 대놓고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화연이라는 단 한 명의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을 주변 친구들은 내버려두었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심각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천지는 대놓고 나 힘들다, 죽고싶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여자 중학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힘들면 남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표현하는 화연은 괜찮다. 하지만 천지는? 힘들어도 말 못하고 제 속만 태우는 천지같은 아이를 우리는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저 착하다고, 성실하다고 칭찬하며 입에 재갈을 물린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내 씩씩하기만 했던 언니 만지가 미란과 미라 자매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을 때, 나도 따라 울었다. 천지가 살아있었더라면 미란과 미라처럼 '나란히 음식 하고 언니가 숟가락 주면 동생이 젓가락 주고, 콜록대면 등 두드려주'며 오손도손 살았을 만지. 누구보다 여리고 착했던 동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끝내 지켜주지 못한 언니 만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내가 괜찮으니까 너도 괜찮을 거라고, 나는 힘내고 있으니까 너도 힘내라고 말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충고나 조언, 응원이나 격려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 힘들 때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음이, 그 말을 들어줄 수 있음이 서로를 지키고 버티게 해두는 힘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이들이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이 안타까운 마음이 퍼져 이 세상의 힘든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덜 힘들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