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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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을 읽은 독자라면 <낙원>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모방범> 9년 후를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방범>을 읽고나면 누구나 느꼈을 음산하고 찝찝하기까지 한 기분을 싹 씻어주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모방범>을 읽고 일본 영화 <모방범>까지 챙겨 본 나는 한동안 수십 명의 여자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의 잔상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해 괴로웠는데(나의 최애 아이돌 그룹인 스맙의 나카이가 범인 '피스' 역을 맡았는데 어찌 잊을 수 있으랴 ㅠㅠ), <낙원>을 읽으니 비로소 사건이 일단락된 느낌이 들고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러니 <모방범>을 읽은 분이라면 <낙원>도 읽어보시길!

 


<모방범>과 마찬가지로 <낙원> 역시 르포 라이터 무라하타 시게코를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모방범> 사건이 종결 된 지 9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한 시게코는 르포 라이터 일은 그만두고 홍보대행사에 다니며 평온한 일상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 시게코에게 어느날 한 중년 여성이 찾아온다. 열두 살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는 이 여성은 죽은 아들에게 일종의 사이코메트리 비슷한 영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알아달라고 시게코에게 부탁한다. 르포 라이터 일도 그만두었고 더 이상 수상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시게코는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보여준 아들의 그림 한 장이 시게코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그림 속에는 '피스'와 공범이 납치한 여자들을 살해하고 땅에 묻었던 산장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사이코메트리라는 소재로 문을 열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중년 여성의 아들인 소년이 정말 사이코메트러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소년이 사이코메트리를 이용해서든 우연으로든 어떤 범죄 사건을 목격했고, 소년이 죽은 뒤 그것을 시게코가 알게되어 추적해나가는 과정이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소년이 목격한 범죄 사건이란 십여 년 전 어떤 부모가 문제아인 중학생 딸을 살해하고 집안에 유기한 것인데,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경제적인 형편을 비관하다 향락에 물들고, 그런 여자를 범죄에 악용하는 어른들에 의해 죽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모방범>과 닮았다(<화차>도 마찬가지). 시게코가 이 사건에 끌린 것은 이러한 유사성, 연관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부모가 문제아인 자식을 죽이는 일이 용납될 만한 일일까? <모방범>에서도 가출을 밥먹듯이 하고 비행을 일삼는 딸은 없는 게 낫다며 실종신고조차 하지 않는 부모들이 이상했는데, <낙원>에서는 그런 딸을 부모가 직접 살해하는 장면이 나와 섬뜩했다. 일본인들 특유의 '주변에 폐 끼치면 안된다'는 정신이 이런 식으로 안에서 곪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딸이 문제아면 훈계를 하든 내쫓든 적극적으로 단속하면서 아들이 문제아면 내버려두는 건 뭘까. <모방범>과 <낙원> 모두 결국 문제아 딸들이 피해자, 문제아 아들들이 범죄자, 가해자였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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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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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9년 후, 세상은 낙원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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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월급을 준다 - 답답한 사무실 없이 즐겁게 일하며 돈 버는 법
마리안 캔트웰 지음, 노지양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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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도권을 회사가 아닌 내가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꿈에 한 발 다가가게 해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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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여자 - 소녀가 어른이 되기까지 새로운 개인의 탄생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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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내가 회사를 다니다가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면 오래도록 염원했던 꿈을 이루었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글 쓰는 직업이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글을 쓰게 된 것도 몸이 아파 물리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없어서 부업으로 하던, 차선의 일이었던 글쓰기가 본업이 되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가끔 인터뷰에서는 그럴싸하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꿈에 도전하는 거예요"라고 둘러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이나 회사를 다니는 것이나 각각의 아름다움과 추함이 존재한다. 단지 선택의 문제는 당시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그때 물리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분이다. 내 경우엔 회사를 오래 다녀서 익힌, 일을 대하는 태도 덕분에 칠 년 넘게 프리랜서롤 일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나갈 수 있게끔 기초 체력을 쌓게 해준 귀중한 경력이자 자산이다. (pp.197-8)



작가 임경선을 알게 된 건 지금은 없어진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의 간판 코너 '캣우먼 임경선의 헉소리 상담소' 덕분이다. 그녀는 당시 연애와 진로 등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잠못 이루던 나의 수많은 밤들을 달래주었던 치료사이자 은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 결혼을 했고, 딸이 하나 있고, 하루키를 좋아하고, 루시드 폴의 팬이라는 건 그 때도 알고 있었지만, 암수술을 무려 네 번이나 받았고, 스물한 살 때부터 그 병을 앓았으며, 심각한 공황장애 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있고, 좋아하던 일을 억지로 그만둬야 했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그녀가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헉소리 상담소'에는 가끔 '현재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 '꿈을 이루고 싶다'는 내용의 사연이 왔는데, 그 때마다 저자는 '그냥 직장 다녀라, 하고 싶은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잘라 말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저자나 옆에서 맞장구치는 혈님이나 자기들은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살면서 남들한테는 그러지 말라니 무슨 심보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알겠다. 저자는 처음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고, 건강 악화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차선책으로 시작한 일이 글쓰기였을 뿐이었다. 남들에겐 지긋지긋한 직장 생활이 그녀에겐 울면서 포기한 꿈이었다. 그러니 남들에게 '그만두라'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었으리라. 회사든 꿈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현재에 충실하라는 저자의 메시지가 이제는 더 울림 있게 느껴질 것 같다. 다음 책은 언제 내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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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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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는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 소설가, 번역가, 팟캐스트 진행자, 그리고 이제는 '허핑턴 포스트' 편집인으로 변신한 손미나가 작년에 낸 프랑스 여행기이다. 엄밀히 말하면 여행기라기보다는 체류기 내지는 체재기라고 보는 게 맞는데, 일단은 그녀가 프랑스에 머문 기간이 자그마치 3년이나 되고('여행'이라고 하기엔 길지 않은가), 그 곳에서의 생활 또한 여행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일탈'보다는 '일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집 구하고, 이웃들과 교류하고, 간간히 서울에서 부탁받은 일도 하고, 손님도 치르는 생활은 누가 봐도 여행자의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몇 년 전 짧은 결혼 생활을 마치고 피폐해진 몸과 마음으로 프랑스로 떠난 그녀는 파리에서 제목 그대로 '꽃이 되었다'. 매일 아침 에펠탑을 볼 수 있는 집에 살면서 파리와 프랑스 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했고, 이웃 주민들, 식당의 요리사와 종업원, 미용사, 프랑스어를 같이 배우는 친구들과 쉼 없이 교류하며 우정을 쌓았다. 때로는 말이 안 통해서 고달프고, 외국인에 배타적인 파리 사람들 문화에 질리기도 했지만, 기분이 바닥을 칠 때쯤이면 어김 없이 힘을 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힘이 나는 일이 생겼다. 어떻게 이런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귀는 걸까? (그것도 외국에서!) 저자의 친화력과 프랑스어 실력, 그리고 미모(^^)의 덕도 있겠지만, 남녀노소 누구를 만나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능력이 가장 큰 덕이 아닌가 싶다. 이런 것만 보아도 천상 이야기꾼이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생애 처음으로 소설 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서 바르셀로나 대학원에 진학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션을 하나 완수한 셈인데,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도전할 거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책의 중반 이후부터는 저자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고 준비하는 과정, 본격적으로 쓰는 과정, 탈고하는 과정 등이 이어지는데, 이렇게 해서 태어난 소설이 바로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이다. 이 책을 나는 몇 년 전에 읽고 '작가 수업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 이런 소설을 쓸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그저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많은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하고 습작하며 '다독 다작 다상량(多讀 多作 多商量)'을 실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아무런 준비와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누구에겐 이 책이 단순한 여행기이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손미나를 또 한번 발견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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