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여정의 힐링 뷰티 - 나를 사랑하는 건강한 아름다움
조여정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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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따뜻해지니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옷차림이 가벼워지니 겨우내 두터운 패딩 점퍼와 코트 안에 숨기고 다녔던 몸 이곳저곳의 군살들이 신경 쓰인다. 날씨가 유난히 좋았던 지난 주말에는 운동할 겸 집에서 40분 거리에 위치한 도서관에 걸어갔다 왔는데, 책도 죄다 뷰티, 다이어트 관련 책들만 빌렸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 동안 피부와 요가 전도사로 유명한 여배우 조여정이 쓴 <조여정의 힐링 뷰티>이다. 여배우, 모델들의 뷰티 시크릿을 담은 책들을 종종 읽는 편인데, 조여정은 특히 20대 부럽지 않은 보송보송한 피부와 요가로 다져진 건강미 넘치는 몸매가 매력적인 여배우라서 30대를 바라보는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줄 것 같았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 그랬다.

 

 

책에는 요가, 도예, 꽃꽂이 등 조여정이 평소 즐겨 하는 취미 생활과 그녀만의 식이요법, 피부 관리, 운동, 휴식 방법이 담겨 있다. 조여정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요가인데, 책에는 기본적인 앉기 자세부터 순환 리프팅, 물구나무 서기 등 고난이도 동작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소개된 동작 수가 많지 않고 방법이 자세하게 나와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조여정이 요가만큼이나 공을 들이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몸에 좋은 채소와 과일 위주의 식사를 하고, 탄수화물 섭취를 자제하며, 물을 많이 마시는 등 정석에 가까운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밀가루, 설탕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는데, 아침에 밀가루로 된 음식을 먹는 게 그 중에서도 최악이란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 식사를 빵으로 대충 때웠던 게 몇 끼인지...... 이제부터는 자제해야겠다. 피부 관리 팁 역시 건강 미녀답게 심플하면서도 알차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이어도 네 가지 이상을 바르지 않고, 네 시간 간격으로 수분 제품을 발라주는 이른바 '4.4 법칙'은 그녀만의 비법. 적게 바르는 대신 자주 덧발라주고, 피부에 가하는 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그녀의 비법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여느 여배우, 모델들의 뷰티 북에서 볼 수 있는 패션, 메이크업 정보는 없지만, 운동과 음식, 명상, 취미 생활 등으로 속부터 채우는 이너 뷰티(inner beauty)를 강조하는 그녀의 비결을 보면서 역시 모태 미녀, 건강 미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만큼 속이 예쁜 여배우 조여정을 앞으로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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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서툴지만 괜찮은 - 불안하지만 설레는 순간
한혜진 외 지음 / 엘도라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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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의식하면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이가 나이이다보니 스물아홉, 서른 같은 말이 들어간 책이 있으면 덮어놓고 읽게 된다. <스물아홉, 서툴지만 괜찮은>이라는 책도 지금 내 나이인 '스물아홉'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고른 책인데 의외로 괜찮았다. 마이크로임팩트에서 기획, 진행한 <원더우먼 30>, <원더우먼 페스티벌>의 강연 내용을 묶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만 봐도 배우 한혜진, 홍석천, 작가 남인숙, 아나운서 윤영미, 언론인 윤경혜,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승원 등 화려하다. 직업, 직군 또한 교육 컨설턴트, 출판인, 언론인부터 배우, 아나운서, 작가, 생활예술가 등 다양한 편. 강연 내용을 긴 글 그대로 싣지 않고 따로 표제를 정해 파트를 나누거나 감각적인 이미지와 함께 편집한 점도 좋았다. 표지만 좀 더 예뻤으면 백 점이었을 듯.

 

 

좋은 구절이 많지만 특히 나는 생활예술가 이미영 님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공대를 나와 IT 기업에 다니며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던 그녀는 '이렇게 그냥 늙어가는 게 아닌가?', '이렇게 돈만 벌다가 죽는 게 아닐까?', '뭔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변화를 택했다. 그 결과 공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학 대학원에 진학해 시민운동을 했으며, 여행을 했고, 현재는 독립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 가슴 떨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에게 미안할 거다'라는 그녀의 말이 어찌나 가슴에 사무치던지. 이제껏 부모님이나 가족, 친척, 학교 선생님들한테 미안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진 애를 썼지만, 정작 내 자신에게 미안한 삶을 사는 데에는 한 점의 죄책감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이 나이 먹도록 열흘 이상 해외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꼭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사본 적도 없고, 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일에 종사해본 적도 없고, 조건이 좋은 사람과 그럭저럭 연애는 해도 영혼까지 뒤흔들 만한 사랑은 해본 적이 없었다. 왜 나는 나한테 미안한 짓을 자꾸 되풀이 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이십 대가 너무나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이십대는 연습이었다. 삼십대에는 잘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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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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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연월일(2012년 6월 13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오래 전에 나온 책이었을 줄이야. 그말인 즉슨 내가 김중혁 작가를 안 지가 어언 2년 가까이 되어간다는 뜻이고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은 지는 2년을 넘었다는 뜻인데, 이토록 오랫동안 어떤 작가를, 어떤 방송을 좋아한 적이 많지 않아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아무튼 뒤늦게 <1F/B1 일층, 지하 일층>을 읽으니 빨책에서 김중혁 작가님이 무려 '작가 김중혁'과 '흑임자 김중혁'으로 '자아분열'을 하셨던(ㅋㅋㅋ) 게 기억이 나서 들었는데 반가웠다. 책을 읽기 전이었던 그 때는 무슨 얘긴지도 모르고 들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그동안 작가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나니)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에 쏙쏙 박혔다. 이래서 빨책을 들을 때는 책을 읽기 전에 한 번 듣고 읽고 나서 한 번 더 들어야 하는 것 같다.  

 

 

데뷔작 <펭귄 뉴스>에서도 그랬고 <악기들의 도서관>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김중혁 작가님의 소설집은 책마다 각각의 컨셉이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1F/B1 일층, 지하 일층>도 마찬가지인데, 이 책은 현대인들 중 다수가 살았고, 살고 있고, 살게 될 공간인 '도시'에서 일어났음직 하거나,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담고 있다. 일곱 편의 작품 모두 특색 있고 신선했지만, 나는 <바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흔히 겪거나 목격하는 러브 스토리처럼 보였던 이 이야기는 점점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고 결국엔 전지구적 재앙을 예상케하는 기상천외한 엔딩으로 끝이 났다.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는 또 어떤가. 사람마다 남은 생애를 알 수 있는 미래라니. 이런 디스토피아를 상상은 해도 글로 표현하는 작가는 적어도 현재 한국엔 많지 않다. 김중혁 작가의 소설집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들의 도서관>에 비해 명랑하고 따뜻한 색채가 옅어진 점은 아쉽지만,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김중혁 월드'가 점점 뚜렷하게 형태를 드러내고 있는 점은 좋았다.

 

 

스스로를 '야구로 치면 8번 타자'라고 지칭하는 작가답게 김중혁 작가는 한국 문단의 주류에 완전히 편승하는 글을 쓰지는 않지만 한국 문학의 또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분임에는 틀림없다(잘 모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동안은 이런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에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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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
메이슨 커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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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널리스트 메이슨 커리가 쓴 <리추얼>은 내가 평소 '애정하며 애청하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내가 산 책' 코너에 일주일 전엔가 소개된 책이다. 동진님이 소개해주시는 책들은 대부분 좋지만 가끔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책들도 있어서 다 찾아 읽지는 못하는데 이 책은 소개를 듣는 순간 호기심이 발동해서 바로 구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만큼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재미를 기대하지 않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의 작업 방식을 알고 싶었다던가, 작가나 예술가의 삶을 흠모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저자 메이슨 커리가 이 책을 기획하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아침형 인간'인 그는 오전에는 작업을 잘 하지만 오후부터는 집중을 못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러던 2007년의 어느 날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작업하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관련된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는 그 결과물들을 혼자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의 습관'이라는 제목의 블로그에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은 <리추얼>이라는 제목의 멋진 책으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렇게 쉽게 책 한 권을 뚝딱 완성하다니!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대부분(이라고 해도 일본 사람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외하고 전부) 서양인인데, 우리나라 작가들을 대상으로 <리추얼> 한국 버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출판사 관계자 혹은 작가님들이 계시다면) 감히 제안드려 본다.

 

 

탄광 일은 중노동이지만 글쓰기는 끔찍한 악몽입니다. ...... 작가라는 직업에는 엄청난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습니다. 지속적인 의심이 어떤 식으로든 사라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의사는 자기 일과 다투지 않지만, 훌륭한 작가는 자기 일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입니다. 대부분의 직업에는 시작과 중간 단계와 끝이 있지만, 글쓰기에는 시작밖에 없습니다. 기질적으로 우리 작가들은 그런 새로움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는 반복이 되풀이되는 일입니다. 실제로 모든 작가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변하지 않는 일을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능력입니다. (필립 로스 인터뷰 중 p.124)

 

 

작가나 예술가들은 보통의 직업인들과 달리 원하는 시간에 자고 일어나며 여가 시간도 마음껏 가지리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전혀 아니었다.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책에 소개된 사백 여 명의 작가, 예술가들 대부분은 일분 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을 만큼 극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며, 하루 중 휴식을 취하는 걸 제외하면 따로 여가 시간을 가지는 일은 드물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작업하는 이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침형 인간들이 많았다는 점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물론, 귄터 그라스, 마크 트웨인, 토마스 만, 토니 모리슨 같은 유명 작가들은 이른 아침부터 오전에 글을 썼다. 

 

 

아침에 쓰든 밤에 쓰든, 규칙적으로 쓰든 마음 내키는 대로 쓰든, 공통점은 글쓰기에 수반되는 기나긴 인고의 과정을 버텨냈다는 것. '모든 작가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변하지 않는 일을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능력'이라는 필립 로스의 말대로 이들 모두는 머릿속을 종이 위에 게워내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는 데 지치지 않았다. 그 원천력은 타고난 천재성도 아니요, 번뜩이는 영감도 아니요, 일정한 일과를 묵묵히 감수해내는 '리추얼(ritual, 의식)'이었다니 믿어지는가? 나의 일상에는 인생을 바꿀 만한 어떤 리추얼이 있는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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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보았다 - 분노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이얼 프레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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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이유는 인간 본성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중, 고등학교 내내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고자 했던 나는 원서 접수 막판에 정치외교학과가 있는 사회과학계열로 전공을 바꿨다. 신방과가 거품이라는 말을 듣고 그럴 바엔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바꾼 것이었지만(국제부 기자나 외국 관련 프로그램 PD가 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관을 따르기 잘했다 싶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신문방송학은커녕 방송 자체에 대한 흥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을 뿐 아니라, 정치학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인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가 등등에 대한 의문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늘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얼 프레스가 쓴 <양심을 보았다>의 첫 장을 읽는 순간 작가와 나의 관심사가 어쩌면 이렇게 일치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42년 독일 유제푸프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을 읽던 저자는 학살 명령을 받은 경찰대원들 중에 명령을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상사가 명령을 내리면 부하는 선택의 여지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고 당시 경찰대원들 역시 그러했으리라고 믿었는데, 생과 사가 오락가락하던 그 순간에 몇몇 대원들은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고 학살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반대로 나머지 대원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 학살에 가담하기를 원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은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다수의 폭력을 거부하고 양심을 택한 네 명의 실제 인물들의 삶을 추적했다.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1938년 나치의 핍박을 피해 독일, 오스트리아부터 탈출한 유대인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경찰관 그뤼닝거다. 경찰관인 그는 상부로부터 이민자들을 받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입국시켰고, 그 대가로 비극적인 여생을 살았다. 그는 특별히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반골정신이 강한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국인 스위스를 끔찍하리 사랑하고 법과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사회에 반기를 들고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은 날 때부터 그렇게 규정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뤼닝거에 이어 등장하는 1990년대 초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간 전쟁 당시 몰래 크로아티아인들을 구한 세르비아인 야초, 이스라엘 군대가 점령한 지역에서 근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대원 아브네르,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유명 금융사의 내부 비리를 고발한 레일라 역시 남들보다 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이들이 남들과 달리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친밀성을 든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심리학자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을 예로 들며 '언제라도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태와 희생자에 대한 친밀성은 반비례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거나 본 사람은 감정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자신과 무관한 사람에 대해서는 선택에 대한 감정적 부담을 덜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이 친밀성을 막는 요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관료제와 책임 소재의 분산,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든다. 다수의 계층으로 이루어진 관료제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산시키며, 결과적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행위를 하게끔 조장한다. 관료제에 대한 충성은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포함되는데, 남과 다른 소리를 내서 남들의 비난을 받는 것, 이로 인해 혼자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결국 양심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해악이다.

 

 

악으로부터 선을 지키기 위해 결집한 공동체가 결국에는 선을 무시하고 악을 조장한다니. 이런 아이러니를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턱밑까지 차오른 '아니오' 대신 '예'를 말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당히 '아니오'를 외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있으리라. 이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든든한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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