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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조지 소로스 지음, 황숙혜 옮김, 이상건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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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봐도 책의 두께가 꽤 얇다는 것이 보인다. 책의 두께가 얇은만큼 내용도 같이 얇으면 읽기에 편하겠지만 책의 내용은 두께의 몇 배는 어렵다. 쉽게 읽으려고 덤벼들었다가는 무슨 글을 읽고 있는지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페이지만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된다. 책의 두께만큼 말랑말랑한 내용의 책들이 많은데 비해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몇 년전에 조지 소르스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자서전 자체야 어려울 것 없이 일대기를 읽으면서 이 사람이 이렇게 살면서 이런 영향을 받아 지금의 조지 소르스가 되었구나라며 읽으면 되지만 조지 소르스는 금융 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사람답게 그의 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완전히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였다.

 

이제 겨우 한글을 읽을 정도인 사람에게 뜨금없이 영어 원서를 갖다 놓고 읽으라고 한 경우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로 읽기는 했지만 머리속에 들어오는 내용은 극히 적은 것이 아니라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유일하게 재귀성 이론이라는 것만이 알게된 용어라 어디가서 조지 소르스가 만든 이론이 재귀성 이론이라는 것만 아는체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금융의 연금술사가 대표적으로 재귀성 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지만 읽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조지 소르소는 내가 하고 있고 하려는 투자와는 다른 헷지펀드로 공매도와 선물과 같은 투자를 하기 때문에 굳이 몰라도 큰 상관이 없다는 점이 컸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조지 소르스의 여타 책에 비해 이 책은 두께가 얇아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몇 년 동안 놀지 않았으니 그래도 예전과는 달리 용어라도 좀 익숙해 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도 있었고.

 

그동안 놀지 않고 책을 읽은 보람이 있었는지 최소한 이 책에 나오는 용어들이 눈에 익은 것들이라 책을 읽는데 있어 다행히 예전과 같이 영어 원서를 읽는 것과 같은 참담함은 없었다. 여전히 책에 나오는 의미와 깊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내가 알고 있는 만큼 받아들이고 보이는 만큼 볼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재귀성 이론은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기존 경제학이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로 모든 판단을 합리적으로 내린다고 한다. 대표적인 철학이 바로 계몽중의 철학이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꼭 합리적으로만 행동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기존 경제학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의 평소 행동이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나 스스로도 결코 합리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린다고 믿고 있지만 무척이나 모순적이고 감정에 치우쳐서 주변 모든 것을 감안한 판단이 아니라 임의적으로 나 스스로 오해한 증거와 근거를 갖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결과가 아주 아주 많다.

 

재귀성 이론의 양대 축은 인지적 기능과 조작적 기능이다. 이런 단어가 몇 년 전에는 익숙하지 않아 헤맸지만 이런 단어는 이제 굳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친숙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행동 경제학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로 인간은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내린 최선의 판단이 알고보니 얼마나 바보같은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상황과 현상과 본인이 참여하여 조작하는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블랙스완과 같은 원리로 볼 수 있다. 해서, 블랙스완의 저자인 나심 탈렙이 처음에는 조지 소르스에 대해 우습게 보지만 (그는 금융쪽 사람들에 대해 자신보다 좀 낮게 본다) 조지 소르스를 통해 칼 포퍼를 알게 되고 칼 포퍼의 열린사회라는 개념을 알게 되어 조지 소르스를 다시 보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재귀성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오해'라는 개념이다. 오해를 개념이라는 정의까지 내릴 필요는 없지만 본인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 분명히 진실이나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간들을 알지 못한다. 바로, 그 잘못된 인지를 갖게되니 오해가 생겨 엉뚱한 조작을 하게된다. 바로 이 오해가 생기는 지점을 조지 소르스는 포착하여 큰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오해가 생기는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부단히 흐름을 추적하고 관찰하여 사람들이 오해하는 접점에서 미리 들어가 기다리는 것이다. 단순히 프로그램적인 매수나 매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주체인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을 파악하기 위해 철학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이해하려 하고 - 금융 투자를 위해 철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철학을 공부한 후에 인간세계에 적용을 한 것이다 - 인간의 근본적인 결함을 파악하여 실천한 것이다.

 

프로그램 매매라는 것이 일정한 조건을 컴퓨터에 설정한 후에 기계적으로 사고 파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지만 그 조건을 설정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그 조건을 설정한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105와 98사이에서 기계적으로 매매를 하도록 설정했다면 무엇때문에 103에서 95가 아니라 105와 98사이로 설정한 것이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 헛점을 파고 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단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긴 호흡을 갖고 준비한 후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비슷한 지점에 용기를 갖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말로써 풀어쓰니 참 쉬워보이지만 나 자신도 이렇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내 자신이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스스로 그런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고 말이다. 투자라는 것은 끊임업이 투자대상과 나에 대해 부정과 의문을 갖고 과감한 실행을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또 지식과는 별개이고, 용기와는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책의 전반부는 재귀성 이론을 위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후반부는 금융위기가 생긴 시점부터 이 책의 출판 시점까지의 사실과 자신의 투자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고 향후 전망에도 간단히 언급한다. 후반부보다는 전반부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후반부 내용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며, 이미 몇 년이 지나 과거의 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약육강식이 지배하여 작은 실수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투자세계에서 30~40년 동안 놀라운 결과를 보이는 조지 소르스의 이야기라면 분명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제, 겨우 10년 정도의 투자 경험을 갖고 있거나 투자는 해 본적도 없으면서 그냥 리서치담당자나 에널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대해 함부로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는 업자들 보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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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9 - 현제賢帝의 세기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9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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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절이 지나고 다시 로마에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 번영의 시기라는 것이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으로만 보면 그 시대를 살던 평민들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로마를 다스리는 황제의 의지와 현명함과 노력에 의해 달성되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로마인 이야기 9권부터는 원로원이나 기사계급등과 같은 황제를 제외한 타 계급의 이야기는 크게 다루지 않는다. 그저 황제 이야기를 하기 위한 부속품의 하나 정도로 윤활유 역할을 위한 등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기존에 황제와 대립하고 공존하는 반목하는 세월을 지나는 동안 드디어 본격적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황제 1인 체제가 로마에 정립되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이 점을 인정하고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중간 중간 황제를 위협하는 인물들이 있었지만 그도 역시 황제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욕망에서 나온 행동의 결과일 뿐이다.

 

로마가 지금까지 조금씩 영토를 확장하고 정복 민족들을 다스렸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국가 곳곳에 있었다. 특히, 지금과 달리 정보와 권력이 미치기 힘든 로마로부터 먼 지역에서 더더욱 로마에게 반기를 든 민족은 얼마든지 나오게 마련이고, 이에따라 로마도 정복보다는 수성에 촛점을 맞추고 국가를 다스려 왔는데 뒷 이야기에 어떤 반전이 혹시 있을 지 몰라도 트라야누스 황제시대부터 지금의 로마의 국경과 체제가 확립되고 사람들에게 인정되어 누구나 로마라는 우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무엇보다 더욱 대단한 것은 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알게 모르게 타 민족을 차별하는 - 내 자신도 겉으로 아니라고 하고 노력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색깔이 다른 민족에게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 우리나라 관점에서 볼 때 대단하게 로마민족이 아닌 로마인이라는 이름으로 순수한 로마민족이 아니여도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로마 민족이 아닌 로마인이 황제가 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로마라는 나라가 당시 시대에는 전 세계적인 초 일류 국가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의 미국을 보더라도 앵글로 색슨족이 몇 백년동안 권력을 가졌지만 타 민족이 권력을 갖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나 지금 한 참 초일류 국가로 가고 있다는 중국을 볼 때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서양과 동양의 가치관과 문화관이 달라 획일적인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동시대성이 지배하는 지구라는 단일체 세상에 과연 통할지 모르겠다.

 

트라야누스황제를 뒤이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이르면 그는 황제라기 보다는 와교관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과 같은 교통체계와 시간 단축 장치가 없어 벌어지는 일이지만 몇 년동안 수도인 로마를 떠나 각 속주 지역을 돌아다니며 내치와 외치를 힘 쓴 것을 보면 황제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확실히 권력이라는 것을 탐한다는 것은 욕심도 갖고 있어야 하지만 나라의 운명과 미래를 내다보며 움직여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 같다만.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살면서 했더라도 말년에 엉뚱한 일을 벌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나뻐지면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부정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명의 황제가 전부 그런 일을 당하게 되는데 확실히 마지막에 웃는자가 진정으로 웃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오랜 역사가 지난 후에 두 명의 황제가 전부 훌륭했다는 재평가를 받게되지만 사후 직전에 받은 평가를 보면 인간은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들어진 단순한 존재다.

 

오히려, 이 책에서 세번째로 나오는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같은 경우에는 워낙 태평성대를 이룩하여 특별한 사료가 없다고 저자가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 저자도 달랑 20페이지 정도로 소개하는 것이 전부다. 단 몇 개월 동안 로마를 다스린 황제들보다 적은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다. 엄청난 태평성대를 이룩한 황제라고 하여도 그 사료자체가 거의 없다고 소개하면서 저자도 이렇게 짧게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으니 당사자가 알았다면 조금은 억울하지 않았을까 한다. 차라리 이런 저런 사건이라도 터뜨릴걸 하고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 9에서 나온 세 명의 황제중에 가장 소개가 짧은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이지만 나와 가장 궁합이 맞는 황제가 아니였을까 한다. 이미 모든 것을 이어 받아 공세적인 전략보다는 이미 이룩한 위대한 업적들을 더이상 흔들리지 않고 유지하는데 힘쓰고 여러 속주들을 돌아다니기 보다는 부하들을 통해 믿고 맡기며 다스린 점들이 볼 때 말이다. 사실, 수성이 더 까다롭고 티도 나지 않는 일이지만.

 

이렇게 로마의 화려한 꽃은 지게 된다. 올라가는 일이 있으면 떨어지는 법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그만큼 깊을 수 밖에 없는 이치다. 키우고 가꾸는 것은 어렵지만 망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니 말이다. 역사책이라 위대한 인물이나 권력자들에게만 집중되어 책이 서술되는 것이 좀 아쉽지만 서서히 로마의 이야기는 이제 화려함보다는 과거의 역사를 되살리려는 사람들과 한 인간의 수명처럼 수명을 다한 로마의 몸부림으로 마무리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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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코드 - 재능을 지배하는 세 가지 법칙
대니얼 코일 지음, 윤미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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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마음에 관심을 갖고 읽어 보고 싶었던 책인데 이제서야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다.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면 브라질에서 훌륭한 축구선수가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에 대한 의문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식으로 되어있다. 실제로, 궁금했다. 전 세계 축구리그에서 가장 많은 선수 구성을 보이는 나라가 바로 브라질이다. 브라질 수출의 10%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브라질로 보내는 달러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읽다보니 나오는 이야기가 너무 친숙하고 익숙하고 내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 가득차있었다. 그것도 바로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나온 내용이 다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 놓고 10,000시간의 법칙이라는 같은 용어가 나왔다. 속으로 '이 책이 아웃라이어보다 늦게 나온 책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 친숙한 용어가 되었다고 해도 이러면 짝퉁리아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할텐데'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분명히 이 책의 저자도 아웃라이어를 통해 자신이 소개하는 내용이 먼저 소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혹, 이 책이 먼저 나왔다면 어쩔 수 없고 ^.^;;) 그렇다면 차별성을 갖고 가지 않는다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특별히 얻을 것은 없게 되지 않을까 했다. 이 책보다 '아웃라이어'가 더 큰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이니 말이다.

 

도입부에 소개되는 일화는 책으로 빠져 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동영상을 한 어린아이가 반복되는 연주를 지겹게 보여주는데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연주지만 어느 순간 미묘하게 반복되는 연주에서 그 전과는 다른 느낌과 감정이 흘러나온다. 바로 그 순간에 엄청난 잠재력이 폭발되는 현장이다. 이걸 잠재력으로 표현하지 않고 '미엘린'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한다.

 

지금까지, 여러 책들과 연구를 통해 두뇌의 한계와 무궁한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미엘린'이라는 용어는 최근에 연구되고 있는 분야인 듯 했다. 용어 자체를 처음 듣는 걸 보니 말이다. 이건 '미엘린'이 바로 탤런트코드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인자라는 것이다. '미엘린'이 발달하고 두꺼워져야 자신의 노력하는 분야에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사진을 보여주는데 두꺼운 막을 형성하는 걸 보여준다.

 

이 '미엘린'을 크게 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바로 이 탤런트 코드이다.

 

특정 분류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성공자로 보인다. 특정 집단일 수도 있고 특정 나라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소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아예 '박세리키드'라고 명명되어지고 있는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에 대해서 말이다. 박세리가 우승을 한 이후에 LPGA에 엄청나게 우수한 한국 여성 골퍼들이 나오고 러시아의 안나 쿠바치가 테니스에 등장한 후 러시아에 테니스 선수들이 갑자기 많이 나오는 사례를 보여 준다. 우리나라가 제법 유명하고 논술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 '아웃라이어'에서도 대한민국은 소개가 되어진다. 다른 분야로.

 

이런 미엘린을 강화시키고 소위 성공한 사람이라 불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전반부에서는 말하는 내용은 어찌보면 뻔하다.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에 속하는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익숙하다. 끊임업이 연습하고 연습하면 - 그걸 특정한 시간으로 10,000시간의 법칙이라 부른다 - 결국 성공한다는 것이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려는 학생들에게 언제까지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 기간이 길 수록 - 당연히 1년동안보다는 초등학생까지, 그 보다는 중학생까지 - 피아노를 배우는 속도는 느릴지라도 실력이 더욱 향상되는 아이들은 기간을 길게 잡은 아이들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조급증에 갇혀 성공을 바라보는 게 문제라는 것을 이 책은 우회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서는 '미엘린'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소개한다. 무조건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 맞는 연습을 할 때만 '미엘린'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고, 빠른 속도로 향상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같이 정형화된 분야는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연습을 지속적으로 - 그 연습이 엄청나게 지겹고 뻔하더라도 - 할 때에 비로소 누적되어 핫 스팟을 만나게 되고, 축구와 같이 어느 정도 기초를 다진 후에는 프리스타일과 같이 정형화된 틀을 뛰어넘어 즉흥적인 상황을 누가 더 잘 대처하느냐는 분야는 보다 자유롭게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반복적인 행동과 연습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억울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성공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고 성공하고 싶으면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자신의 자아가 형성되어 있는 성인이라면 그나마 본인의 의지로 어느 정도 통제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청소년기 이전의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 부분이 '아웃라이어'와 가장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일반인 중에서도 자녀를 올바르고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 학부모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에게도 읽어야 할 책이지 않을까 한다. 최근 표현으로는 'must read'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에게 '넌 역시 똑똑해서 시험을 잘 치는구나'와 '열심히 노력했으니 좋구나'라는 표현에서 후자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더욱 된다고 한다. 전자의 아이들은 자신의 똑똑함이 깨져 실망감을 줄까봐 어려운 시험을 회피하지만 후자의 아이들은 노력이라는 자체에 대해 보상을 받기 때문에 더 어려운 과제를 끊임없이 도전하려고 한단다.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조금씩 부수고 전진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 자체가 아니라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한가지씩 해결하는 그 희열을 맛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핵심이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말이다.

 

책의 전반부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조금 색다르게 받아들이는 챕터였다면 후반부는 어떤 식으로 그걸 성취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장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다.

 

자신의 나이가 이미 많아 절망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팁은 미엘린은 40대 이후에는 더이상 생성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끝내면 나이들었으니 포기하라는 내용이냐고 할 수 있지만 비록 더이상 생성되지는 않아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미엘린을 더욱 강화하하고 두껍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치매를 방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면 된다. 10,000시간이면 10년이라고 하니 40세에 시작해도 50대가 되면 어느 분야에서든 - 새롭게 출발하여도 -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절망이 아니라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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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8 - 위기와 극복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8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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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지도자가 세명이나 교체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곧장 생각나는 것이 그 나라는 분명히 후진국일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에게 미안하지만 아프리카에 속한 한 나라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계속되는 쿠데타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국민들의 핍폐한 삶과 거리에는 서로가 서로를 못 믿어 반목하고 총질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는 후진국이 아니라 당시에 초 강대국이자 모든 문명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로마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3명이나 되는 황제가 교체 되었다면 엄청난 사회혼란과 끊임없이 계파간 계층간 치열하 전투가 벌어졌을 것 같지만 지금도 권력싸움은 평범하게 사는 대다수의 민중과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아전투구이듯이 권력층의 지도가 변했을 뿐인 사건이였다.

 

단순히 사건이라 치부할 정도로 실제 로마에서 짧은 기간동안 계속되는 황제의 교체에도 어떠한 사회혼란도 없었고, 어제와 다를바없는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모든 것을 시스템화했고, 법을 성문화시킨 당시 초 일류국가인 로마가 가진 진정한 힘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제국을 완성시킨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엄청난 능력과 미래를 내다 본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인물들이기 때문에 후대에 와서 신격화되었고 그들에 관한 관련 기록이나 사후 연구서들이 엄청난 것이 아닐까 한다. 영웅은 만들어 지는 것인지 스스로 태어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난세라는 시기에 엄청난 영웅들이 탄생하고 평화로운 시기에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이 거의 희박하다는 사실에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인 스스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데 어느 세상에나 예외란 것이 늘 존재하니깐.

 

3명의 황제가 1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동안 단명을 한 이유는 권력이라는 달콤한 향기에 취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한 측면이 크다 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왕이 대부분 세습으로 인해 계승된 것은 정통성의 문제도 있지만 그만큼 그들에게 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트레이닝을 충분히 받고 왕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데 로마라는 국가는 특이하게도 황제라는 지위가 -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종족본능 속성을 유지했지만 - 굳이 친인척이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서도 나왔다는 점이 바로 로마가 초 강대국이 될 수 있는 토대가 아닌가 한다.

 

이는 로마뿐만 아니라 지금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현상이다. 폐쇄성이 아닌 타 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그들을 억압하고 자취하는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지배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동화시키고 동경하게 만들어 실제로 존경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문화를 습득하게 하여 태어난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로마화로 만든 점이 말이다.

 

로마가 갖고 있는 탄탄한 체계로 인해 1년 동안 3명이 교체되는 혼란한 시기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금방 치유되고 새로운 황제가 나타나 올바르게 치세를 하여 로마가 더이상 망가지지 않는다. 황제 자신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인물들로 인해 로마가 자중지란을 벗고 더욱 환골탈태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로마인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읽다보면 로마인만큼 대단한 민족으로는 갈리아(켈트족이라 불리는 지금의 프랑스)인과 게르만족(독일)들이 나오는데 갈리아인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이미 로마화된 민족이지만 게르만족들은 족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로마의 관점에서 야만인이고 늘 로마사화에 함부로 대하기 힘든 종족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도 유럽 사회를 보면 결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약간은 떨어져 있어 오히려 자신을 지킨 영국이 강대국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게르만족들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로는 가장 이성적이고 법을 잘 지키는 나라인 독일의 선조인데 당시에는 가장 야만족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비록, 권력의 욕심에 눈이 멀어 황제가 되는 자들이 많지만 100%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권력자가 행동하는 경우는 드문 듯 하다. 황제 1인 독재라 하여도 견제하는 세력들이 있고, 가장 무서운 민중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현상인 '서커스와 빵'이 지금도 여전히 모든 국가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대다수의 민중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되는 것 같고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 좀 지루하고 반복되는 현상과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각종 제도와 법, 체계등을 읽게 된다. 게다가 주변 나라의 상황과 그 나라의 간단한 역사와 인물들까지 읽게 된다. 몸에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일수록 맛이없는 것처럼 막상 다 읽고 나면 지금의 세상과 비교를 하게 되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물론, 한 1~2초 정도.. ㅋㅋ

 

이제 로마인 이야기 반환점을 돌았다. 그 이야기는 이제부터 로마라는 국가와 사회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점으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시기를 읽게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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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은 백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스을 통해 탈레반이나 빈 라덴에 대해 접하면 긍정적인 이미지 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오고 화면을 통해 늘 삭막하게 초원도 없고 동물도 없어 보이는 곳에 빨간 땅이 보이는 것이 그나마 갖고 있는 이미지의 전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전작인 '연을 날리는 소년'은 책이 아닌 영화로 보게 되었다. 영화의 내용이 재미있었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라 읽게 되었다.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지만 결코 그 두께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책에 몰입하여 읽게 되었다. 그것도 고통스럽게 슬픔을 간직하고 마음이 아파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살을 스쳐 피가 나오는 느낌을 갖고 읽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베스트셀러에 대해 오히려 선입견을 갖고 거부하거나 멀리하려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이 책이라면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이 곳에서 살고 있는 내 삶에 대해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특히, 남자라면 더더욱.

 

두 명의 주인공이 있다. 한 명은 자신의 갖고 있는 걸 순종하고 운명이라고 여기며 받아들이는 마리암이라는 여자와 그보다 20살 정도 어리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라일라라는 여자.

 

마리암이라는 여성이 친 아버지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한 후에 고통 받는 삶이 나오고 끝이 나고 다음에 라일라라는 인물이 나와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고 가족을 모두 잃는 장면으로 끝이 날 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제목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을 했다.

 

소설은 두 여자가 만나게 되기 전 도입부를 그렇게 설정한 것이였다. 두 여자가 같은 공간에서 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니, 슬픔과 고통과 거세 당한 희망이 시작된다. 하루 하루가 고통과 슬픔으로 첨철되어 있어도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 갈 수 있는 힘은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들에게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지켜 보는 고통이다. 그나마, 처음부터 갖지 못하고 - 그것이 자유, 지식, 자산, 자녀등등 그 어떤 것이든지 - 있는 사람에게는 그나마 자신이 있는 현실을 순응하고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볼 수 있는 미디어마저 없다면 더더욱 현실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인가 캥기는 것이 있는 위정자들은 언론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나만 못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다 비슷하다면 비참한 삶이라도 적응하지만 나만 그렇다고 느끼거나 알게 되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나를 짓누르게 되어 어제와는 다른 삶을 걷게 된다. 못사는 국가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체제전복이 일어나는 것은 못 가진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가진자들의 잘못이다.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이 먹고 살기에 지장이 없는 나라가 된 것은 - 여전히 못 먹는 사람은 있어도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것이 - 누구 하나 이견없이 교육의 힘이라고 한다. 교육을 통해 앎의 상태가 확장되고 그 아는 것을 실천하고 실천함에 따라 그에 맞는 환경이 만들어져기 때문이다.

 

두 여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교육을 통한 지식의 힘이였다. 교육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마리암은 체제에 순응하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중학교정도까지의 교육을 받은 라일라는 마리암보다 좀 더 진취적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에 대항한다. 난 절대적으로 교육의 힘이라 믿는다.

 

아무리 개인이 똑똑해도 자신이 보고 배운 것 만큼 세상에 대해 알고 믿고 실천을 하게 된다. 이런 삶 말고도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본 적이 없고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삶을 받아 들이고 그런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대항할 수 있다고 본다.

 

노예 할아버지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자신의 삶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 여기고 다른 삶은 자신에게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살았던 것이다. 나중에 그 분의 인터뷰를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분에게 누군가 지식을 전달한 후 그런 삶이 아닌 다른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보게 되었다.

 

그처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나오는 두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 상관없이 단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끔찍하고 억울한 삶일까?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난 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 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내전으로 인해 행복하고 오붓하게 식사를 하다 폭탄으로 인해 온 가족을 잃어버리거나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교육 받을 기회가 박탈당하고, 치료 받을 시설까지 폐쇄당하고, 혼자서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그 어린 나이에 ( 10살 전후일 수도 있는) 결혼을 해야 하는 곳에서 살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다.

 

끊임없는 내전과 외부의 침략으로 인해 핍폐해지는 나라지만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지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할 운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억압을 포함한 만행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믿음이라는 문제와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또한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기독교와 함께 지구에 있는 양대 종교이고 기독교보다 더 원칙에 충실하고 종교에 대한 믿음이 더 중심이라는 정도의 상식만 갖고 있다. 같은 동양이라는 범주에 속하지만 처절하게 서구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행동이나 문화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다만, 단지 그렇게 그들을 무조건 매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도 그런 행동들을 못 가진자와 비천자들에게 태연하게 저질렀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지만 최소한 대 놓고 겉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제.

 

물론, 단순히 책에 나온 것만 가지고 이슬람이나 아프니간스탄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나 그들을 억압하는 남성들의 사고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성급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다수의 책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전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반영한 서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견일 수 있지만.

 

며칠동안 두 여성의 삶을 같이 공유하고 그들의 궤적으로 쫓아가며 가슴이 망막하고 답답하고 얹잖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프니간스탄이라는 나라의 상황상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종착점을 갈수록 두 여성의 삶에서 희망은 커녕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는 삶에서 그들의 끈이 끊어지는 상황이 오지만 행복을 간직하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감사하지만 책을 들고 있는 손을 통해 들어오는 슬픔이라는 감정은 눈물이라는 행동으로 분출되었다.

 

제발 이런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접게 되었다. 지금이 아닌 미래를 위해 소설속의 인물은 행동하게 된 것이 위안을 주지만 마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여성과 함께한 여정에서 공유하게 된 감정의 끈은 여전히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한 동안 이들의 - 내 머리속에서 재 가공된 인물들이라도 - 여정은 나에게서 빠져 나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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