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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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 큰 화두를 던졌던 마이클 센델의 최근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로 이미 펴 낸 책들이 우추죽순식으로 출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실제로 미국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덧 우리나라가 사랑하는 미국 교수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정의에 대해서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었던 시대상황과 잘 맞아 떨어져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본다. 누군가에게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정의가 아니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비롯하여 도대체 우리가 정의라고 믿었던 것들이 정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서 우리나라에 제시하는 임팩트는 약하지 않나한는 생각도 들지만 한 편으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언급되고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는 논제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경우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 공통의 정의를 정의하고 있는 실정이니 공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좀 더 성숙해야 다음 논제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기도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당연히 많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정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널리고 널렸다. 가짜를 진짜로 받아들이면 분명히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죽음과 같은 절대적인 명제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돈으로 죽음을 최소한 연기할 수는 있다.

 

한 가족의 부모가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놀이공원에 가서 즐겁게 놀고 왔다면 그건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닐까? 어렵고 힘들게 돈을 모으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내어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하는데 이건 돈과 결부시킬 수 있다. 충분히. 그렇다면 이 행위는 행복을 돈으로 산 것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마이클 샌델이 참으로 대단하게 답이 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는 것이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나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이야기중에는 생각을 해야 하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과 사유를 통해 내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은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새치기, 인센티브,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삶과 죽음의 시장, 명명권이라는 총 다섯개의 주제를 갖고 대답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상황에 대해 당신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나마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는 아주 조금이라도 마이클 샌델의 가치판단이 적용되어 우리가 내리는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이데올로기중에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평정하고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남아있다.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로 명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들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함축적으로 말할 때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점점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무엇인가 잘 못 되었다~~'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새치기라는 단어에 그 누구도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새치기라는 단어가 고급스럽게 포장되고 분명히 새치기인데 새치기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돈으로 새치기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말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게 또 복잡해서 딱 부러지게 흑백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센티브를 허락하거나 요구하면 상식적으로는 누군가를 움직이는 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센티브는 돈과 결부된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돈을 더 주거나 잘 한만큼 추가적으로 지급한다면 생각할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인센티브를 근거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건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상하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최고인데 꼭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돈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 이성을 유혹하는데 돈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감정과 정성이 없는 돈의 유혹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것도 이상하다. 절실하다고 하면 절실한 돈을 받는데도 도덕이 결부된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상대방의 감정과 정성과 상관없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보험과 도박은 한 끗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사망으로 돈을 받는냐는 동일하다. 책에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지 않았지만 - 조기에 보험금을 받는 제도는 있다 - 남은 여생을 근거로 보험금을 사고 파는 합법적인 시장이 존재한다. 이 부분은 가치판단의 결정이 어렵다. 수익으로 접근하면 한 마디로 인간의 생명을 갖고 수익률 싸움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철저히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관점에서는 오로지 수익률로만 판단하게 된다. 읽으면서 모기지를 채권으로 엮어 판 것처럼 사망 보험금도 조금씩 금융화하여 거래되면서 혹시나 금융사태처럼 나중에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끝으로 명명권이라 하여 이름을 사고 파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기업의 광고와 관련이 되어 있다. 기업은 어떻게 하든 자신의 존재이유는 많은 제품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점점 한계상황이 다가오고 있으니 여러가지 기발한 방법을 통해 기업 광고를 한다. 방송에도 나온 것처럼 인간의 몸을 이용하여 광고를 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점점 인격과 자아를 갖고 있는 인간이 흡사 로봇처럼 광고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지만 겉으로 볼 때 민주사회를 살고 있는 평등한 사람이라고 보이는데 갈수록 최소한 평등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의 양반과 사농공상으로 나눠져 있던 것처럼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더 편하고 기회를 먼저 갖게 되고 가난한 사람과의 접촉은 사라지고 있다. 물론 사회지도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하지만 그건 신분사회가 고착회되어 있던 조선시대에도 정치의 한 모습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난 것과 차이가 없다.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에 대해 공정과 부패로 설명을 할 수 있다. 과연, 이것은 공정한 것인가? 부패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고급스럽게 부패한 장면들이고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정해야 한다. 이것도 힘든 것이 똑같이 공정한 기회를 주게 되면 각자가 처한 상황과 지위와 자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니, 공정도 점점 무엇이 제대로 모든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따라야 한다.

 

공정이나 정의나 뜻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비슷하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부패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부패한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부패하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부패는 누가봐도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 보인다. 본인 스스로 떳떳하고 부패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있을 듯 하다. 너도 하고 나도 하는 것들은 어느 순간 부패가 아니라 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얼핏 생각해도 무궁무진하지만 갈수록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고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어지간하면 돈으로 살 수 있게 되고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무전무죄 유전유죄가 아니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잣대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갈수록 힘들어 질뿐만 아니라 어느사이에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돈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세상의 본질을 보게 된다면 올바른 공정과 정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부패를 부패라고 손가락질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워낙 철학이라는 것이 답이 없는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이렇게 고착화되어 간다면 인류 역사를 볼 때는 새로운 힘이 등장하고 정반합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곳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알기 힘들고 느끼게 힘들지만 긴긴 역사라는 시간을 볼 때면 분명히 점점 개선점이 나오고 찾지 못한다면 늘 역사는 반복된다는 깨우침을 다시 한 번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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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사회 - 솔깃해서 위태로운 소문의 심리학
니콜라스 디폰조 지음, 곽윤정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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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를 우리나라 말로 하면 소문이다. 소문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소문은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올바르고도 긍정적인 소문은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만들고 희망을 줄 수 있지만 부정적인 소문은 많은 사람들을 실의에 빠뜨리고 절망에 빠뜨린다.

 

문제는 긍정적인 소문보다는 부정적인 소문이 더 많고 파급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정적인 소문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누군가 ~~카더라하는 이야기에는 아무리 굳은 의지를 갖고 듣지 않으려 하고 보지 않으려 해도 귀가 쫑끗하고 눈이 돌아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밖에 없다. 도저히 의지로만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준다면 누구든지 감옥에 보낼 수 있다"라는 이야기로 나치 시절에 모든 소문과 언론을 장악하여 나치에게 유리하게 만든 괴벨스처럼 소문은 진의여부를 떠나 사람들에게 믿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런 이유는 바로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마~'라는 생각을 한 다음에도 지속적인 노출은 결국에는 '그럴 수 있지'라고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킨다. 이처럼 소문은 진실과 상관없이 인간의 가장 나약하고 사악한 부분을 건드린다.

 

그 보다 더 문제는 바로 소문의 사실에 대해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문을 듣고 "걔가?"라고 넘어가거나 "나도 들었는데"하면서 누군가에게 전파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일까?'하고 진실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 더더욱 소문을 증폭시키고 소문은 어느덧 점점 사실이 되고 있지도 않은 현실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믿게 만든다.

 

우리는 점점 그런 소문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은 인류에게 크나큰 축복을 주었지만 인간들이 서로 신뢰하고 눈에 보이는 면만을 믿지 않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진실이 아니지만 그 정도가 심해져서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만들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는 인간이 불확실한 것을 참지 못하는데 있다. 누군가에게는 A에서 B로 가는 것이 당연하고 평범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러한 여백을 메우기 위해 자신이 갖고 상식 범위에서 간극을 메우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말이 되고 더 설득력을 갖게 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책에서 자판기 효과라는 이야기를 한다. 자판기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할 때 온갖 소문들이 나 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은 담배를 피면서 사무실에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온갖 회사내의 다양한 소문과 진실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담배를 피면서 한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다시 또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며 소문이 힘을 얻고 회사내에서 점점 진실이 되어 버린다.

 

소문, 뒷담화, 도시괴담, 음모른은 다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결국에 인간이 궁금해 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는 같다. 뒷담화같은 경우에는 사람간의 친밀성을 다져주는 긍정도 존재한다고 한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뒷담화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괴담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면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경험중에 공포적인 요소만이 부각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에 떨게 만든다.

 

소문으로 힘들어하는 유명인들이나 회사와 관련되어 다양한 사례가 나오는데 이런 소문을 들었을 때 즉각적이고 획실하게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면 부정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들과 관련된 소문이 나돌 때 해당 당사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당사자는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나서서 오히려 더 키울까봐 조심스러워 그런다고 하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이킨다.

 

대부분 그런 경우에 즉각적으로 소문에 대해 확실하고도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발표하는 것이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더라도 소문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당연히 소문에 대해 사실이 아닐경우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소문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태도는 나중에 겁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연예인과 관련되어 이런 일들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SNS에 올린 글을 기자들이 기사로 만들어 그저 몇몇 사람만이 알고 넘어갈 내용이 모든 사람으르 파급되어 더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글이라는 것이 말과 달리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때문에 벌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든 돈을 벌고자 하는 기자들의 선정성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갈수록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오전에 나온 소문이 그날 저녁 뉴스에 나와 모든 국민이 알 정도로 잘못된 소문은 한 개인이나 단체나 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소문이 많은 사회일수록 투명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무엇인가 명쾌하지 않으니 이 간격을 소문이 대체해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소문을 줄이기 위해서는 - 연예계는 어쩔 수 없겠지만 - 사회가 투명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잘못된 소문에 대해서는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그 사실을 즉시 알려 사람들에게 올바른 사실과 진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소문은 그럴싸한 이야기로 둔갑한 매력적인 욕망과도 같다. 사람들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오늘도 소문을 갈구한다. 솔직한 사회가 욕망을 낮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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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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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헐,,, 내가 '총,균,쇠'를 끝까지 다 읽었다니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방대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 완독을 했다는 사실로 이 책에 대한 더이상의 리뷰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단순히 책을 읽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사진에 있는 '명저'라는 말이 정말로 어울리는 책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해야 되는지 모를 정도로 '총,균,쇠'의 내용은 방대하다. 어설프게 리뷰를 하겠다고 달려들었다가는 삼천포로 빠질 위험도 있고, 자세하게 쓰려고 하면 리포트가 될 수 도 있을 정도다. 내 리뷰 쓰는 스타일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앉아서 책을 다시 들쳐보지 않고 오로지 생각나는 대로 마구 마구 써 내려간다. 가끔 막힐 때는 책 제목만 다시 한 번 보면서 쓰는 스타일인데 이 책에 대해서 지금부터 어떤 생각들이 내 머리속에 들어가고 소화되었는지 써 봐야 알 듯 하다. 

 

책 초반에 나온 잉카제국의 아타우알파가 스페인의 파사우에 너무나 어이없고도 쉽게 잡히는 장면에서는 전율이 일면서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잉카제국이 망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토록 허무하게 몇 명 되지도 않는 인물들에 의해 생포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황당하던지 저절로 책을 읽으며 그 당시의 상황이 상상되면서 '내가 아타우알파였다면' 도대체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에 대해 궁금했다.

 

그런 생생한 묘사후에 그러한 상황에 펼쳐진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읽으면서 어떠한 역사이든 우연이라 보이는 사건이나 필연이라고 보이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 사건이 일어나기 위한 많은 에피소드와 이유들로 이루워졌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역사에 관심을 많고 재미있어 하지만 - 고등학교 시절에 선택으로 남들이 방대하다고 안 하는 세계사를 선택했으니 - 내가 읽고 봤던 세계사들은 한결같이 서구 중심의 세계사라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 대한 자세한 역사를 알지도 못하고 어떠한 이유로 그들이 유럽인들에 의해 정복을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총,균,쇠'에는 그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나온다. 당연히 총이라고 대변되는 무기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비해 월등했기 때문에 무기로 정복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총으로 대변되는 무기보다 더 강력하고도 무시무시한 무기가 바로 인간이였다. 원래 인간이란 무서운 존재이며 충분히 무기로써의 역할을 한다고 할 때의 그 무기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내부에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내재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균'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라리아, 매독, 에이즈, 페스트등의 각종 질병에 인간은 멸종 위기까지 몰릴 때도 있었지만 이런 질병을 이겨낸 인간들의 유전자는 후세에 전달이 되고 그에 맞서 싸워 균들은 새롭게 변종되어 인간에게 다시 침투하고 인간은 다시 피해를 입지만 이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단련이 되었던 것이다.

 

이 '균'들은 인간에게 정복이 되었을지 몰라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다는 무서운 사실이 바로 인간이 무기라고 표현한 이유다. 우리가 열대지방을 갈 때 말레리아 접종을 하고 가야 하는 것처럼 그 지역에서 생기는 균에 대한 저항력을 갖지 못한 인간은 그 균과 접촉했을 때 굴복할 수 밖에 없다. 운좋게도 강력한 항균체를 이미 보유한 사람들은 살아 남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인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균'에 의해서 소리 소문도 없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균'을 갖고 있는 서구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접촉했을 때 유럽인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 당연히 그들의 의도는 원주민들을 물리치거나 굴복시키는 것이였지만 - 균에 노출된 원주민들은 이유도 모르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원주민들까지 질병에 걸린 이유에 대해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죽었다. 정말로, 황당하고 처참하고 암담한 상황이 아니였을까 싶다. 아마도 서구 유럽인들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서부터 이 책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유럽인들의 균에 의해 실제적으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정복을 당했다면 역으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에 의해 유럽인들은 정복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기나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우선, 수렵채집민 생활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정주형으로 변화가 실질적인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일부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인간의 역사는 발전을 거듭했지만 가축화는 시점부터 인간에게는 생각하지 못했던 각종 균이 새롭게 생겼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큰 질병들이 동물에서부터 인간에게 전염되었다는 것이다.

 

동물의 대변을 통해 오염되기도 하고 동물과의 육체적 접촉을 통해 - 인간이란 참,,,, - 전염이 되어 숙주가 된 인간은 균이 살아남기 위해 모든 인간에게 균이 퍼지면서 더이상 퍼지지 못할 정도로 모든 인간을 전염시킨 후에 균에 완벽하게 적응한 새로운 인간이 등장하며 한때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균은 사라지지 않고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인간을 숙주로 삼아 창궐한다.

 

식량을 생산하고 가축을 키우는 환경이 비슷한 위도에 몰려있는 유라시아에서는 발달할 수 있었지만 기후와 환경이 천차만별인 다른 대륙들은 수렵채집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청천지역이 되어 인간이 살기에 역설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기에 유럽인들과의 접촉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에.

 

이러한 이유로 유럽인들도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지역이 있었다. 그들이 적응되고 익숙하지 못한 질병이 있는 지역은 지속적으로 침범을 하지만 그들의 월등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소리없이 자신들을 무력화시키는 질병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우수한 무기를 누가 더 갖고 있었느냐는 싸움이 아니라 질병과 질병의 대결에서 더 많은 질병은 몸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서구유럽인들이 이긴것이다. 이렇게 보면 더 많은 항체를 갖고 있는 우수한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오염이 훨씬 많은 인간이라 할 수도 있다. 여기서 든 생각은 외계인들도 쉽게 우리를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쉽게 인간과 접촉할 수 없지 않을까 말이다.

 

인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여 발전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억울 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같은 경우에는 자신들의 환경에 적응하여 발전을 거듭했을 뿐인데 말이다. 이 대륙들은 동서로 넓게 펼쳐지지 못하고 상하로 이뤄져서 여러가지 제약으로 유러시아대륙이 서로 발전시킨 문물을 상호교환할 수 있었는데 각자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 다른 원주민들과는 접촉이 제한되어 있어 더더욱 발전이 더디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궁금하게 생각되는 것이 똑같이 동서로 펼쳐지고 식량을 생산하고 가축을 키운 유럽과 중국은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긴 것일까? 서로 발전을 거듭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경쟁자 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 졌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다. (책이 얼마나 방대한지 원..)

 

처음에 인간들은 무리를 이루고 그 후에 부족을 만들어 생활한 후에 본격적으로 식량생산과 가축을 기른 후부터 추장 사회를 거쳐 지금의 국가를 이룩하게 된다. 국가들은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하나의 국가로 유지가 되었지만 유럽은 다수의 국가들이 뭉치고 흩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초기에는 강력한 하나의 국가인 중국이 더 큰 발전을 이룩하지만 역사를 볼 때 고여있으면 정체되고 만다.

 

유럽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더 좋은 환경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중국은 단일 국가로 모든 결정이 한 번 내려지면 일사분란하게 처리되지만 잘못된 결정이 내려지면 더이상의 발전이 없다. 유럽에서는 한 국가의 결정이 그 국가에서만 유효하고 다른 국가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결정된다.

 

책에서는 중국에서 거대한 선함을 이끌고 바다로 나갔지만 환관과 관료들의 싸움에 결국에는 한 번 내려진 결정으로 해외진출이 완전히 끝나는 대목에서 보면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세계 역사는 완전히 변해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유럽에서는 콜럼버스가 여러 나라에서 거절을 당했지만 오로지 딱 하나의 국가에서만 허락과 지원을 했어도 이를 통해 지금의 서구열강이 된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설명된다. 행복한 가정은 다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다 제각기다'라는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에서 아마도 처음 시작하는 문구라고 생각하는데 엄청나게 심오하고 너무나 지극히 평범한 진리이다. 우리가 숱하게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우리가 지금까지 본 역사에서도 수없이 목격된다. 지금 성공한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을 볼 때 이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지금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나 뉴질랜드와 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살고 있는 수많은 부족들이 있다. 그들이 부족에서 추장사회와 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 다양하다.

 

새로운 개정판에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혹시 우리나라 출판을 염두에 두고 실었는가 했는데 전혀 상관없이 일본만의 독특한 환경에 관심을 갖고 초판에는 미처 관련자료들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해 개정판에 새롭게 실은 듯 하다. 뭐, 우리나라에서는 좋아 할 만한 결론을 내린다.

 

슬슬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이 힘들다. 이런 식으로 계속 쓸 수도 있겠지만 서서히 한계를 느낀다. 책이 워낙 방대하고 좋은 내용들이 가득해서 쉽게 읽을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좋은 약이 쓰다고 하지만 좋은 약을 달게 만들면 될 것을 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의 사고의 확장을 불러일으켜 준다.

 

단순하게 새로운 사실을 알았고 덕분에 좋은 내용을 읽었다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장착하게 되었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사건과 현상에 대해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피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이면까지도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뷰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책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까는 그 사람이 그 책을 읽을 당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책을 읽을 당시의 지적 수준과 환경이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총,균,쇠'라는 책을 아마도 지금 시점에 읽은 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읽었다면 지금의 이 순간만큼의 지적 충적을 못 이룰 가능성이 크고 나중에 읽게 되었다면 어디선가 읽었다는 느낌으로 그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귀'라는 책도 흥미로운데 이 책 역시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올 해 안으로는 읽지 않을 것 같다. 용량을 초과하는 지식은 들어오지 않고 흘러 넘치기 때문에 천천히 조금씩 쌓아가는 내 스타일 상 이번에 읽은 '총,균,쇠'라는 책을 통해 갖고 된 지적허영을 당분간은 충분히 만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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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지면 달라진다 -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이충호 옮김 / 갤리온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어떠한 분야이든 한가지의 대상이나 여론에 대해 단지 몇 몇 사람만이 관심을 갖고 흥미를 갖고 있다면 특별히 대단한 것이 못되고 약간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흥미를 갖고 하는 취미로 여길 수 도 있다. 그런 취미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극단이 오타쿠라는 표현을 하는데 일본에서 넘어온 말이지만 아마추어로 전문가보다 더 세세하고 자세하게 아는 사람들을 일컫지만 이들의 실력은 전문가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이 전문가들도 - 일부는 부정하지만 - 인정한다.

 

그 이유는 당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쳤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지만 그 노력한느 사람보다 재미있어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 비록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을지라도 - 미쳐서 하는 사람을 능가할 수는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시간을 이곳에 투입하여 끝장을 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정도의 열정내지 흥미를 갖고 어떠한 일을 해 본적이 없지만 그런 사람들의 집중하는 모습에는 존경을 갖게 된다. 걔중에는 존경은 커녕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그 어떤 전문가보다 더 뛰어나고 더 집요하고 더 대단하다.

 

이러한 개개인들이 모이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 전까지 이러한 사람들은 알음알음 자기들끼리 이러 저런 루트를 통해 가끔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각자 연구하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하였는데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간이 절약되고 인터넷의 커뮤니티를 통해 각자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공유가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이들의 참여는 여전히 전문가집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보다 더 뛰어난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에 그들을 얍잡아 보거나 무시한다면 별 것도 아닌 것을 갖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교만을 가진 전문가라고 본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직업과 연결되어 있어 돈이라는 것과 결부되어 있지만 이들의 행동에는 돈이 결부되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행동이라 더욱 뛰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들이 각 개인으로 있을 때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같은 지향점이나 목표나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시간을 절약하고 각자의 지식을 공유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이에 따라 이들을 추종하거나 이들의 관심을 함께 따라가면서 점점 힘이 생겨 사회의 여론마저 변화시키는 경우를 우리는 보게 된다.

 

가깝게는 팬덤이라고 불리우는 아이돌의 팬들로부터 각 회사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여 잘못된 점을 회사에 개진하여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거나 그들이 거부할 때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세상에 알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게 만드는 것까지 점점 이러한 각 개인의 힘은 집단으로 변화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이하게도 책 초반에 우리나라의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소고기 수입반대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몇 년이 지난 후인 지금에 와서는 그 행동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지만 어른들이 무시하는 청소년마저 광장이라는 열린 공간에 나와 각자 자신의 신념 - 그 신념이라는 것에 대한 호불호도 마찬가지로 엇갈리고 있지만 - 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할 때 각자 개인은 힘이 없지만 그러한 힘없는 개인이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갖게 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메타포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보았다.

 

좋은 읽을꺼리와 생각꺼리를 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에는 큰 불만이 없지만 그러한 책이 꼭 좋은 책이 아니라는 아이러니를 이 책은 솔직히 보여준다.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고민하게 만들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사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에 잠기게 만들지만 책은 지겹기도 하고 굳이 필요없는 이야기도 하는 듯 하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책의 부제인 1조 시간을 갖고 있는 새로운 대중의 탄생이라는 개념은 참으로 신선하고 생각할 화두를 던져준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점점 각자 여유시간이라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전히 여가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절대다수는 이러한 여가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보인다. - 있다라고 썼다가 확신할 수 없어 보인다로 변경했다.

 

이러한 절대 다수가 여유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 각자 자신들이 흥미있어 하고 관심있어 하는 분야에 몰두하면서 그들과 비슷한 접점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이들이 한 명, 두 명씩 모이면서 이들의 힘은 눈사람을 만들때와 같이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그들의 힘을 갖게 되고 이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여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매몰되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에 대해서 각자가 판단할 시간과 여유를 갖고 행동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 문제가 될 것이다.

 

갈수록 각 개인이 갖는 힘이 커지고 있다. 단 한명이 보았다고 무시하거나 잘 못 생각하거나 보았다고 치부했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 힘없어 보이는 이 개인들이 각자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생각을 지속적으로 정리하여 올릴 때 어느 순간 그 개인의 주장은 사실이 된다. 과거에 위정자들이 힘없는 개인이라 치부했던 - 겉으로는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떠받혀야 했던 - 이들이 점점 살아있는 사실을 보여주며 위정자들의 말과 다른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단 한명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잘못된 판단이나 왜곡된 시선으로 무마하려 했던 것들이 - 분명히 일부는 진정으로 그런 말들이 맞을 때도 있다 -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주며 그들이 힘을 갖게 된 지금 이 사회에서는 갈수록 투명하지 않으면 힘을 갖게 된 집단의 개인에게 오히려 휘둘리고 거꾸로 무시당하고 믿을 수 없는 인물로 역으로 치부될 수 있다.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거짓말이라도 한 사람이 할 때와 다수의 사람이 할 때는 그 파급효과가 달라진다. 한 개인이 사고가 났을 때는 힘을 갖지 못하지만 다수의 개인이 사고가 났을 때는 정부와 협상까지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아지는 사례가 인터넷의 등장과 SNS로 인해 무리가 되지 않는 개인이 하나의 진정한 인격체로 다시 거듭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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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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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라고하면 어딘지 말초적이고 화려하면서 감각이 번뜩이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인문학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하품이 나는 이미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책 제목이 인문학으로 광고를 한다고 하니 묘하게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나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책의 표지에서 내 눈에 들어온 이미지는 대머리(???) 아저씨가 안경을 끼고 의자에 약간 삐딱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니 강한 느낌이 오면서도 저런 모습의 아저씨가 광고를 만들었다는 말이지하면서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였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이 인문학을 외치면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사회지도층이나 지식층의 약간은 일방적인 의견 메다꽂기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인문학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사람은 의식주가 해결되어야만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조금은 특이한 사람들은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아도 몸만 이 땅에 딛고 있을 뿐이지 마음과 정신은 이 땅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 다음부터 사람들마다 지,덕,체 중에 하나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양한 인간들의 욕구가 분출된다. 이런 욕구중에 가장 으뜸가는 욕망 분출구가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 왠지 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젠체 할 수 있으니 - 사람들에게 이상한 놈이라고 두 개는 상대방에게 향하고 세개는 자신에게 향하는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결국에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궁금증을 알려고 하는 학문이라고 글자 그대로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굳이 인문학이라고 하여 따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조금은 우습다. 또한, 책을 읽어야만 인문학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는 주장도 개인적으로 수긍하기 힘들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공상을 채워주고, 음악(시)을 들으면서 감성을 채워주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나와 다른 존재를 느끼게 된다.

 

이중에 가장 으뜸이 책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른 존재와 매체와 눈,코,입,귀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은 인간이 인간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를 자극하는데 책만큼의 영향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만 읽어서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맞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정말로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책을 읽고서 하는 것인가에 대해 늘 궁금하다. 개인적인 경험은 책만 읽어서도 해결되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그전부터 어렴풋이 갖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되고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내가 쓴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을지라도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다니는 상상과 생각들은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당연히 몰랐다. 이 책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광고를 만든 총 책임자 - 와는 조금 다르기는 한데 아마도 광고를 만드는 총 크레이티브중에 대빵 정도가 아닐까 싶다 -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고라는 것이 대부분 기업의 상품을 직접적으로 얼마나 잘 노출시키고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느냐에서 삼성의 기업 이미지 광고처럼 상품보다는 호감을 갖고 공감을 끌어들여 그 기업을 좋아하게 만들고 상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전달되는 광고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였다.

 

저 광고 괜찮은데 하는 것들은 다양하다. 어떤 광고는 저걸 광고라고 했냐라고 하지만 그렇게 촌스럽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각인을 시키는 - 이를테면 별이 다섯개 - 광고도 있고, 유명 스타를 내세워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여 갖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광고도 있는 등 다양한 광고가 있지만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만든 광고는 애둘러서 이야기하고 묘한 공감을 통해 살짝 보조개가 생기는 미소를 짓게 한다.

 

책에 나온 기업의 광고를 아직도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만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는 솔직히 보조개 없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듯 하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제목처럼 책에는 꽤 많은 책이 소개되고 그 책으로 인해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영감을 얻었고 이를 시대의 흐름과 공감을 이끌어 냈는지에 대해 소개하는데 의외로 그 책이나 작품(미술등)이 그리 많지는 않고 - 많다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단 하나의 작품이 인생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으니 - 아쉽게도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직접 자신이 쓴 글이 아니였다.

 

인터뷰를 한 사람이 자신의 입장에서 박웅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요모조모 뜯어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떨어져서 보고 가끔은 직접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되었다는 주관적인 시선에서 쓴 책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중간 중간 인터뷰를 한 사람의 글이 욱할때도 있었다. 네 생각말고 박웅현의 생각을 알고 싶은데 하고 말이다.

 

최근에 책은 도끼다는 책을 냈는데 그 책을 먼저 볼까하다가 이 책을 먼저 보게 되었는데 그 책은 상당히 많고 다양한 작품에 대해 소개를 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책을 소개하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읽고 느낀 대로 그 작품에 대해 보고 싶은데 이러한 책을 읽게 되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 알게 모르게 나에게 주입한 의식이 스며들어 감염시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니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에 대해 많은 책들이 나오고 소개를 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냥 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하고 미술작품을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이나 우주도 다 인간과 관계된 것이 아닐까싶다. 내가 인간이라 알게 되는 것들이고 모든 것들은 인간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발견한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조금은 노골적으로 인문학으로 광고한다는 제목을 통해 인문학을 중요시 한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창작은 모두 인문학에 대해 - 그런데 책에서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거나 무척 중요하다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 아니, 책을 읽고 여러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하고 사소한 우리 일상에 대하여 놓치지 않고 시대와 공감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토지 전집을 읽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토지, 대망, 장길산, 한강, 변경, 셜록홈즈전집,아가사크리스티전집등등의 책을 읽을 계획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박웅현처럼 잘나고 뛰어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책에서도 박웅현에게 그렇게 책을 읽고 인문학에 대해 접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왜 당신처럼 좋은 광고를 만들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 아님 말고 - 그게 바로 우리가 인간에 대해 신비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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