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의 경우에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일본문학이 꽂혀 있는 책장 앞을 서성이다가 그 당시
출간된지도 좀 되었던 작품에 이끌려 선택한 이후로 이제는 신작은 챙겨볼 정도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는 대체적으로 웃음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는 뭔가 깨달음이 느껴지는, 삶의 고찰이 담겨져 있는것 같아서 찾아보게 되는것 같다.
그런 가운데 만난 최신작인 『버라이어티』는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단편 6편과 콩트 1편, 대담 2편, 출간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가장 먼저 나오는 「나는 사장이다!」와 이어서 나오는「매번 고맙습니다」는 단편이지만 연작이다.
소위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가즈히로는 삼십대 후반에 두 아이를 가장으로 자신만의 기획사를 차리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
상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두 종류의 기대(성공에 대한 기대와 실패에 대한
기대)를 등지고 퇴사한다. 자신이 기획한 아이디어가 있었기에 이 한 건만으로도 충분히 1년은 버틸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상태였다.
아내는 아직 어른 두 아이와 남은 대출금에 걱정을 하고 사업의 시작은 너무 무리해서 준비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가즈히로는 전회사가 있는 지역의 신축 건물에 사무실을 얻고 필요한 집기류도 최고급으로
한다.
그런데 함께 퇴사하기로 한 후배가 회사에 남기로 하고 자신이 기획한 아이디어가 예상과는 달리
계약이 이뤄지지 않고 또 합류하기로 한 능력있는 계약직 사원 한명은 이전회사에서 잡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기 사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마음처럼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대기업에만 다녔기에 그 아래에 있는 하청 업체의 사정이나 자금 사정, 영업 등의 문제는
전혀 알지 못했기에 높은 현실에 부딪혀 사장님이 되었다는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함께 일을 하게 된 능구렁이 같은 업체의 사장을
통해 돈을 주고도 배우지 못할 사업 노하우를 조금씩 듣게 되는데...
두 편의 대담집은 오쿠다 히데오와 배우인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서 각자의 작품 활동이나 창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중 가장 유머러스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황당했던 이야기는 「드라이브 인
서머」이다. 아이가 없는 노리오와 히로코는 오본에 운전면허가 없는 노리오를 대신해 벤츠를 모는 히로코의 친정으로 향한다.
극심한 정체를 이루는 가운데 길가에 한 남자가 히치하이킹을 하고 히로코는 그와 상의도 없이 그
남자를 차에 태운다. 그런데 사이토라는 남자는 뻔뻔하기 그지없고 노리오가 보는 있어도 히로코와 희희낙낙하며 그의 신경을 긁는다.
우여곡절 끝에 휴게소에 도착하고 역시나 수 많은 사람들 틈에서 겨우 볼일을 보고 차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나며 혼자 두고 간 할머니가 차에 타고 있다. 할머니는 혼자 국내 여행을 하려다 휴게소에서 차를 놓쳤고 역시나
히로코는 노리오에게 묻지도 않고 할머니늘 태운 것이다.
이미 시끌벅적한 가운데 추돌사고가 발생하고 자신의 차를 추돌한 뒷차의 아이 둘까지 차에 타게
되면서 차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여기에 흉기를 든 남자가 서서히 달리는 차문을 열고 타면서 웃지 못할 상황은 계속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싶을 정도인데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내 히로코다. 벤츠에
얻어 타게 된 사람들 모두 예의라고는 눈꼽만치도 없고 배려도 없다. 그런데 히로코는 사이코가 희롱을 해도 '후후후'하고 웃을 뿐이다. 심지어
신체적인 터치까지 있어도 말이다.
그녀는 단 한번도 노리오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는다. 자신이 운전하니 자기 마음대로라는 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연속에서 결국 노리오가 폭발하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흉기를 들고 있던 살해범을 대신해 살해범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끝이난다. 뭔가 그 상황이 웃기긴 하지만 도무지 염치없고 생각없고 배려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은근히 화를 북돋우는 작품이다.
「크로아티아 VS 일본」는 [쇼트 쇼트 스토리] 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데 3페이지 정도의
이야기로 '크로아티아 VS 일본'의월드컵 시합을 바에서 보는 사람이 처음 일본을 우습게 생각했다가 점차 상황이 자신의 기대와는 다름을 느끼면서
변화는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더부살이 가능」은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빚쟁이로부터 도망쳐 온천지의 한 식당에서 일하며
일명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보이나 어딘가 모르게 의뭉스러운 동료와의 일화를 그리고 있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웃음이 있는 작품도 있고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이야기도 있다. 개인적으로
연작인「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는『마돈나』의 「총무는 마누라」를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동안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 같은 유쾌한 이야기를 만나오다 처음 『소문의 여자』를
만났을 때 느꼈던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와는 또다른 감상을 선보이는데 이 책은 오쿠다 히데오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치 패키지로 묶어 놓은것
같아 요리로 치자면 일품 요리가 아닌 코스요리 같은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