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배우 조셉 고든 레빗, 벤 킹슬리, 샬롯 르 본

 평점 9.9

 장르 드라마, 모험

 

 

 좀 더 이 영화를 일찍 소개했어야 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개봉하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싶었지만, 이제서야 리뷰를 쓴다.

 

 일단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의 대표작들을 살펴보자. 어마어마한 거장 감독이신걸 몰라봤다. <콘택트>, <포레스트 컴프>,

 

<백 투더 퓨처> 시리즈, <캐스트 어웨이> 등 어마어마한 그리고 좋은 작품을 남기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토끼, 역시나 좋은 배우이다. 이 영화에서도 억양, 몸짓, 표정 모두 훌륭했다. 최고의 배우다.

 

 감독과 배우, 이정도면 초호화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작품! 작품을 들여다보자.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 실화를 바탕으로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미 있었다. 그 영화는 <맨 온 와이어>. 영화 속 실화란 뉴욕에 쌍둥이 빌딩 사이를 안전장비없이 외줄타기 공연을 한 어떤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신 분들을 공감하시리라 생각한다. 정말이지 아찔했다. 시각적으로 고층빌딩을 잘 표현해냈다. 극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의 그 아찔함. 그것을 영화 속에서 그토록 생생하게 느낄 줄이야...

 

 나는 영화 초중반부에는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싶다는 펠리퍼 페팃(조셉고든레빗)을 응원했었다. 그의 꿈과 열정에 매료되어서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 실제로 영화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뉴욕에 쌍둥이 빌딩을 보고 나니(영화 속에서 펠리퍼 페팃은 프랑스인이어서 뉴욕으로가 처음으로 쌍둥이 빌딩을 마주하게 된다.) 펠리퍼 페팃이 이제그만 포기했으면 싶었다. 나의 내면에서는 '이제 됐어. 충분해. 할만큼 했잖아. 포기해. 두렵지도 않아?!!' 라는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나왔다. 보면서 정말 불안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

 

 영화를 보기전에 나는 이 실화의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궁금했었다. '어떻게 한 인간이 불가능해보이는 일에 도전을 해서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두렵지 않았을까? 무섭지 않았을까?'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이 영화는 그런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줬다.

 

 그는 오만했으며, 천성 예술가였다. 그리고 살짝 미쳐있었다. 그리고 꿈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었고 결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열정과 그 열정을 뛰어넘는 광기, 그것이 그의 불가능해보였던 도전을 성공시켰다.

 

 영화는 보는 중에 주인공이 "Beatiful" 이란 단어를 굉장히 많이 쓴다. 나는 이제서야 그 단어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공연은 그의 예술은 정말 beartitul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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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2-05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놓친게 아직도 한이 되요 ㅠㅠ

고양이라디오 2015-12-05 12:29   좋아요 0 | URL
ㅠㅠ 오로라^^님 아쉽네요.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 정말 실감나더라고요ㅠㅋ
 
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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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참 편하게 읽히면서 좋다. 그동안(그의 책을 읽기 전에) 알랭 드 보통을 조금 현학적이고 오만한 녀석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오해는 사라졌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을 일상의 언어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일상의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상식에 벗어남이 없다. 논리적으로 모순이나 도약도 없고, 그의 사고는 차분하고 명료하다. 읽기에 아주 좋은 작가이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아니면 주의깊게 보지 못했던, 혹은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들이다. 이 책에서 그는 불안의 원인과 그 해결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을 알게된 계기는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독실이님이 '지대북' 코너에서 이 책을 소개해줬었는데, 듣다보니 정말 읽고 싶어졌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우리의 불안의 원인은 우리가 가진 '지위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불안해진다. 어쩌면 진화론적으로 생각해 볼 때도 우리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동물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배척당한다는 것은 곧 생존과 번식에 굉장히 불리한 입장에 처한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지위가 떨어질수록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지위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생존과 번식은 더욱 힘들어지고 더욱 불안해진다.

 현대에 와서 불안은 더욱 팽배해지고 만연해진 것 같다. 불안장애환자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현대인들의 불안의 크기도 과거에 비해 커진 것 같다. 그 원인을 알랭 드 보통은 능력주의와 그리고 불평등으로 본다. 과거에는 모두가 가난했다. 때문에 모두가 평등했다. 물론 계급간의 불평등은 컸지만, 어차피 대부분(70~90%)은 농노나 시민계급이었다. 그때의 농노는 귀족들을 크게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 계급의 격차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아주 많이 분화되었다. 예전에 우리 이웃은 다 우리만큼 가난했고 그 가난은 자신의 능력과 크게 연관이 없었다. 그냥 가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가난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종교는 가난을 우리의 죄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위안을 줬다. 부자는 천국에 가기 힘들다고 안심시켜줬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부와 능력이 연결되었다. 부자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무능력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때문에 그 가능성은 부메랑처럼 날아와서, 나의 가난과 나의 무능력을 연결시킨다. 계급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지위가 올라가는 것은 가능해졌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우리 주변 이웃은 우리처럼 고만고만하게 가난했지만, 지금은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부자들이 눈에 띄고,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도 많아 보인다. 예전에는 저녁에 먹을 게 없으면 옆집에 음식을 꾸러도 가고 옆집 사람이 먹을 게 없으면 고구마나 감자를 대접해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어려워졌다. 내가 저녁에 먹을 것이 없다고 옆집에 가는 행위는 내가 가난하고 또 무능력하다고 광고하러 가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 그 해결책으로 철학, 종교, 예술, 정치, 보혜미아를 이야기한다. (보헤미아라는 개념을 잘 몰랐었는데, 이 책 덕분에 알게되었다.) 그 해결책을 종합하자면,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고 더 나은 가치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다 해진 옷 한 벌에 신발 한 짝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행복했고,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 너무 뻔한 해답이라고 말하실 것 같다. 책을 직접 읽어보시는 것이 좋을 것이리라. 나도 책을 읽은 지 꽤 되어서 자세한 내용들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돈이나 권력에서 발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 아무리 돈과 권력을 가져도 자신보다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 돈과 권력을 언제 잃을지 몰라서 불안해 할 수도 있다. 가치의 척도는 꼭 돈과 권력만이 아니라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알랭 드 보통이 의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이라는 질병, 혹은 증상에 대해서 그 원인을 분석하고 원인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해주는 것은 의사의 행위와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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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 2015-12-04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자인지 소설가인지 경계가 모호한 작가이지만, 읽기 아주 좋은 작가라는 데는 적극 공감합니다. 전 불안도 좋았지만 알랭의 소설 쪽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재미면에서요.

고양이라디오 2015-12-04 17:04   좋아요 0 | URL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좋다는 평을 참 많이 들었는데 어서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ㅎ

서니데이 2015-12-04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의 책은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고양이라디오님, 편안한 금요일 밤 되세요.^^

고양이라디오 2015-12-05 12:43   좋아요 0 | URL
네~ 서니데이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살리미 2015-12-05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쪽에 한표 던집니다^^ 이 책은 못읽어봤지만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작가 뭐야!! 하고 소름끼쳤었어요 ㅎㅎ

고양이라디오 2015-12-05 12:42   좋아요 0 | URL
윽, 오로라^^님까지 추천을 하시고, 얼른 빌려서 읽어봐야겠네요ㅋ
사실 저 책 몇 번 읽으려다 극초반부를 못 넘기고 덮었었는데, 이번에 또다시 도전해봐야겠네요ㅠㅋ
좋은 주말 되세요~^^
 
아인슈타인의 별 같은 말들 - 인터스텔라를 넘나든 지구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이영일 엮음, 김광음 옮김 / 완두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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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먼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게 된 책이다. 금방 볼 수 있는 책이다. 책 내용은 시간여행을 통해서 아인슈타인을 살려내고, 아인슈타인과 함께 우주여행을 하면서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그 시대의 다른 유명인사들도 살려내고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했던 명언들을 다시금 듣는 그런 내용이다.

 

 예전에 아인슈타인에 갑자기 빠져서, <아인슈타인 명언>, <아인슈타인 생각>이란 책을 사서 읽었었는데, 그 책들보다 더 좋았다. 정말로 책 제목 그대로 별 같은 말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 말들을 소개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리뷰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을 당연히 천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 한가지 일에 오랫동안 몰두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심지어 천재성과 근면성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근면성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것들이 그의 천재적인 면모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일에 오랫동안 사심없이 몰두 할 수 있는 사람은 천재다. 그리고 천재성보다 근면성을 택하는 것도 천재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천재성과 근면성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근면성을 선택할 것입니다."

"불행은 행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인간에게 유익합니다."

"당신이 빨리 가려고 하면 할수록, 결과적으로 당신은 더 짧은 시간밖에 누리지 못합니다."

"잡고 있던 낡은 밧줄을 놓아야 새 밧줄을 잡을 수 있습니다."

"노력만이 우리를 자기 자신이라는 속박에서 해방시켜 우리를 가장 위대한 사람들의 일원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진리와 지식의 영역에서 재판관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들의 웃음 속에서 난파되고 말 것입니다."

"배움과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있다."

"책은 많이 읽으면서 생각은 적게 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상에 묻혀 버린다."

"인생의 폭풍우를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맑은 날 저에게는 저 자신이, 위험한 것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사막의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처럼 생각됩니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작은 세계를 창조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지속하는 진정한 존재의 위대함과 비교하면 애처로울 정도로 무의미한데도 자신을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이 판 구멍 속에 처박힌 두더지처럼."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단지,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몰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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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케네스 브래너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토르), 나탈리 포트만(제인 포스터), 톰 히들스턴(로키), 안소니 홉킨스(오딘)

 평점 7.5

 장르 판타지, 액션, 모험, 드라마

 

 

 사실 마블의 토르는 별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어벤져스에서 봤지만, 그렇게 큰 비중도 아니었고, 뚜렷한 인상도 없었다. 망치 휘두르는 근육질에 조금 어리숙한 신? <토르>라는 영화도 그저그런 히어로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된 계기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코믹 판타지소설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는 토르와 오딘이 등장한다. 토르가 주인공 중에 한 명인데, 먼가 엉뚱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라서 소설을 재밌게 보았다. 소설을 보니 무척이나 영상으로 토르를 보고 싶어졌다. 영화 속 토르도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볼만한 영화였다. 특히나 토르의 엉뚱한 행동들을 보는 코믹한 재미가 있었고, 그리고 토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남자인 내가 봐도 그의 근육질 몸은 정말... 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통들어서 본 몸 중에 가장 섹시한 몸이었다. 부러웠다ㅠㅠ. 먼가 적당한 벌크와 일단 큰 키와 균형잡힌 몸매는 만든 것이 아니라 왠지 타고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종차별적 발언같지만 동양인은 따라갈 수 없는 몸매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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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해리스의 <자유의지는 없다>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했는데, 어제는 피곤해서 중간에 마무리했지만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들이 많아서 이렇게 페이퍼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비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진화(의지)와 자유의지를 빗대어 생각해보면, 종은 개체로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300만년 전에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조상이 있었습니다. 그 종을 A라고 합시다. A는 어떤 진화의지를 가지고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좋아, 앞으로 두발로 걷겠어. 두뇌를 발달시킬꺼야, 도구도 사용하고, 언어도 사용해서 인간이 되야지" 라는 의지도 없었을 것이며, 어떠한 선택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A는 인간이 되었죠. 마치 진화에 일정한 의지나 방향이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는 환상입니다. A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것이지요. 환경에 적응해나간 것이지 선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자연선택의 위대함이죠. 

 어쩌면 우리의 자유의지도 진화에 의지가 있다는 것처럼 환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때 그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맞춰서 적응을 하는 것이지요. 그 적응에는 자유의지가 없지만 마치 자유의지가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솔직히 저도 제가 마치 '제논의 역설'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자유의지가 있는데, 잘못된 전제의 논리에 빠져들어서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논의 역설'도 수천년이 지나서야 극한의 개념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죠. 우리는 수학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무한급수 '1/2+1/4+1/8+......=1' 을 통해서요. 어쩌면 자유의지도 무수히 많이 분할해서 생각해보면 발견할 순 없지만, 그것을 모두 더해서 뭉뚱그려 생각해보면 짠하고 자유의지가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도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낀다." 솔직히 이 무슨 모순이며, 역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서, 사실 부자유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조건 악인이라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배경환경을 꼼꼼히 따져봐야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장발장의 사례처럼요. 물론 그렇다고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법에도 정상참작이란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정당방위도 존재하지요. 그리고 강압에 의한 진술이나 자백도 인정되지 않고요.

 

 어떤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의 아주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굶주린 어린아이들이 쥐인가 바퀴벌레를 잡고(먹기위해서)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여기에 과연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을까요? 그 어린아이들이 "쥐나 바퀴벌레가 더러워, 싫어" 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는 마치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쥐나 바퀴벌레를 보면 "더러워, 싫어" 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그런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자유의지를 발휘해서 쥐나 바퀴벌레를 보고 "더러워" 라고 생각할지, 아니면 "우와 먹을 거다." 라고 생각할지 선택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환경이나 시스템의 중요성을 훨씬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이 쥐나 바퀴벌레를 보고 "더럽다." 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그들이 쥐나 바퀴벌레를 보고 "먹을거다." 라고 생각한다고 경멸해서는 안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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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04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얇아서 처음에는 만만하게 보였는데 내용을 읽으니까 어려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요.

고양이라디오 2015-12-04 21:38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고 제가 생각한 바로는 이렇습니다.

무의식->0.3초의 공백->의식

무의식에는 당연히 우리의 자유의지가 발휘될 수 없습니다. 0.3초의 공백도 그렇고요.

우리의 감정, 생각 모두는(의식작용) 결국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자유의지는 없다.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아라는 것도 결국에는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이미 과거에 종속되어 결정된 일정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듭니다.

과거를 돌이켜봤을때 다른 생각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나 생각해보면 더욱 의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