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홉스 리바이어던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11
손기화 글, 주경훈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홉스, 로크, 루소로 이어지는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 사상의 이론적 단초가 되었다. 만약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없었더라면, 민주주의 혁명은 얼마나 늦춰졌을까?

 

 모두들 '사회계약론'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이다. 홉스는 인간은 원시시대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서로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권력을 누군가에게 이향했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서로 계약을 맺었다. 국가와 법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홉스는 국가를 <구약성서>의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강력한 힘을 가지지만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 계약에 의해 국가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계약에 의해 잘못된 국가는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다. 왕권신수설에서 사회계약론으로 사상이 이동하면서 주권은 그 계약의 주체인 국민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종교를 국가의 하부 구조로 두었다. 교황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때문에 홉스는 왕으로부터도 교황으로부터도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이런 책을 읽을 때 한가지 즐거운 점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홉스와 라이벌 관계였던 데카르트, 그리고 홉스가 찾아뵈었던 갈릴레이의 이야기는 왠지 흥미롭고 재미있다. 마치 '손오공이랑 루피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느낌이랄까?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특정 위인들이 실은 동시대 사람이었고 서로 교류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홉스는 시대를 앞당긴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러한 사상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인간의 기본권과 주권은 이러한 사상가들 덕분에 국민의 손으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도 변할 수 없다. 변화의 첫 단추는 인식의 변환이다.

 

 하지만 홉스의 사상은 아직 왕정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홉스또한 그 시대의 세계관, 사고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의 국가론, 종교론은 혁명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극소수의 천재들만이 가능하고 또한 사상적으로 밑바탕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때와 장소와 인물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홉스의 시기에는 아직 민주주의 사상이 여물지 않았지만, 분명 홉스가 그 씨앗을 뿌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민주주의제도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투표를 통해서 대표자를 뽑는다. 하지만 루소가 말했듯이, 국민은 투표를 할때만 잠시 주권을 행사하고 나머지는 노예상태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투표로 뽑는 것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대통령 뿐이다. 나머지 장관이나 총리, 대법관 등은 임명제이다. 대통령과 왕은 얼마나 다를까? 국회의원은 이 시대의 귀족들은 아닐까? 차라리 투표로 국회의원을 뽑는 것보다 과거제도로 뽑는 것이 더 낫지는 않을까? 민주주의는 분명 왕정, 귀족정 보다 가장 나은 제도임에 분명하지만, 중우정치로 흘러갈 때는 똑같이 그 폐해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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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가 2016-02-14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시대를 앞서간 이론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권과 주권을 국민의 손에 넘겨주게한 사상적 기반이라 보기는 힘들지않나 생각합니다. 토마스 홉스는 강한 국가론 즉 전제군주제를 주장한 인물입니다. 그가 주장한건 기독교의 교부철학에서 벋어나 인간 스스로 통치하는 국가를 만들자는 좋은 취지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틀에서 크게 벋어난 정치이념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의 정치철학은 홉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전체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스탈린의 대학살로 이어졌으며 매카시즘의 사상적 기반을 제시했다고 봅니다. 이 사상은 대한민국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자들, 현재의 박근혜 정부 등에게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국가를 위한 애국심의 발로라고 주장할수있는 사상적 면죄부를 안겨준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7:34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도 홉스의 사회계약론 덕분에 왕권신수설의 절대왕정시대에 비해서는 왕권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홉스의 사상은 다행히 로크나 루소에게 계승되어서 더욱 탄탄한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은 이렇습니다ㅎ 민정식님 말씀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홉스 역시 그 시대의 군주론 이념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인문학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열띤 토론, 논쟁을 하고 왔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을 바꾸는 것도,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오늘은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의상 상대방을 A라고 하죠. A군은 상대주의론자 입니다. 저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 입장은 머라고 불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편적. 합리적 상대주의라고 해보겠습니다. 혹은 절대주의라고 해야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A군의 관점은 이렇습니다. 절대적 진리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보기에는 A군의 관점이 극단적 상대주의라는 것이고, 이런 극단적 상대주의는 제가 판단하기에 너무도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예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은 극명한 대립만을 확인한채 끝났습니다.

 

 예를들어 인신공양 문화가 있습니다. 고대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에서는 인신공양 문화가 있었습니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제물로 바쳤죠.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이것을 잘 보여줬습니다. 과연 이런 문화도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고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와 다른 문화일 뿐이고 여기에 어떠한 가치판단이나 개입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일까요? A는 그렇다고 보고,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떠한 타협점도 없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평행선만을 그을 뿐이죠.

 

 또 다른 예로 이슬람 문화에서는 '명예 살인'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이라크의 한 소녀가 영국인 남자와 친구를 맺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집안의 남자 형제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명예 살인이란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자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여성을 살해하는 풍습을 말합니다. 이것도 문화 상대주의 입장에서 인정해야 하는 걸까요? 그 문화의 사회규범과 시스템이 우리와 다르니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역시 단연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A군은 그렇지 않습니다. A군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인신공양이나 명예살인이라는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또 다른 진리에 의한 폭력이 됩니다. 아즈텍 문화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나 이슬람 문화에서 명예살인을 저지른 남자 형제는 제 생각을 이해를 못하겠죠. 분명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 왜 우리 문화에 대해서 너가 왈가왈부 따지느냐? 너가 진리냐? 어떻게 너가 진리라고 그렇게 확신하냐? 너가 옳다는 생각이 옳듯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라고 이야기하겠죠.

 

 이러한 예들은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A군은 힘과 권력, 시스템을 항상 우위에서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저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설득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이런 극단적 상대주의 논리에 설득당할 수 없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제 논리로 A군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평행선이죠.

 

 제가 최근에 본 뉴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도였나? 아무튼 어디에서 누군가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었고, 이것을 알게 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맞아죽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맞아죽은 사람이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맞아 죽은 사람은 그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그리고 그 어머니도 다른 사람들을 말리면서 오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맞아죽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런 일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와 다른 문화에서 벌어진 일이고,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 생각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야 옳은 걸까요? 설사 그 맞아죽은 사람이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었다고 해도 그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도킨스가 분노하는 이유는 사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분노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극단적 문화상대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친 짓은 어떤 이유에서든 미친 짓이죠. 인류가 지켜야할 보편규범이라는 것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없다는 입장과는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죠.

 

 물론 문화적 상대성은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에 지켜져야할 도덕이나 윤리는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어떠한 기준도 없다면,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할 도덕윤리가 없다면,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A군을 설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A군도 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극단적 ISIS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이미 시작지점이 다릅니다.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과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은 너무도 다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극단적 문화상대주의조차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최소한의 생명존중은 지켜져야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시든지 간에 그것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한 쪽을 맞다고 생각하면 다른 쪽은 틀렸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떠한 생각을 하시든지 간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만약 ISIS에게 포로로 잡힌다면 아마 설득을 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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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4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02-14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만도 문화 상대주의로 포용을 해야되느냐 마느냐로 논점을 이동하는 것이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죠. 먼저 야만이 존재하려면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률이 있어야 겠지요. 그마저 인정하지 않겠다면 이 논쟁은 성립하지 못하겠지요.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51   좋아요 0 | URL
배익화시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률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비로그인 2016-02-14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대적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것이 있기때문에 생긴 말이죠. 그래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말이 절대 진리가 되면 역설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50   좋아요 0 | URL
저 대신 좋은 답변을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망고林 2016-02-14 0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공계 교육을 받아서, `절대적 진리`라는 말에는 어떤 맥락에서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순수수학은 예외). 저는 모든 학문이 기본적으로는 과학과 같이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오류의 발견 및 수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동설도 한때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천동설과 치열하게 누가 더 정확한지 맞붙던 라이벌이었습니다. 지금 고양이라디오님과 A군이 벌이는 논쟁도 몇백년, 빠르면 몇십년 안에 지동설과 천동설 간의 논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는 박빙의 매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론에서 제일 얄미운, 비겁한 제3자 위치를 택해서 유감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넓게 보면 인류는 하나의 종으로 간주하기엔 너무 다양합니다. 물론 생식행위의 결과 가임인 자손이 나온다면 같은 종이다-라는 현재 우리의 종 분류의 카테고리 하에서는 인류는 모두 같은 종입니다만, 인간이 얼마나 특별하게 문화적인 종인지 생각하면 문화에 따라 좀더 세분화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인류는 자연선택설을 가장 자주 의심하게 만드는 종일 만큼 기상천외하고 발생 및 지속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들을 갖고 있는 종이기도 하죠.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우리는 사마귀 암컷이 사마귀 수컷과 교미한 뒤 머리부터 먹는다고 해서 사마귀를 욕하고 사마귀의 대체적인 번식수단을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 그렇구나- 신기해하죠. 좀 덜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오래된 미래] 등의 훌륭한 인류학 서적들이 수차 호소해온 `서구 중심 사고방식의 강요와 산업화 우월주의의 폐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인류의 기원]에서는 `농업은 인류가 택한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인용문도 나오죠. [오래된 미래]는 평화롭고 조화롭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던 라다크 사람들이 관광객, 개발, 돈&자본주의 등이 라다크에 들어오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빈곤하다고 느끼며 실제로 빈곤해지는지 보여줍니다. [인류의 기원]에서는 농업으로 인해 발생한 학대에 가까운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의 반복, 인구 폭발 및 인구 밀집에 따른 전염병과 영양 결핍 등 수많은 인간의 행복과 삶을 앗아간 온갖 악재를 설명해줍니다.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 꼭 선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저는 요즘 많이 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히 옳은 일이지만, 그 대상자가 아닌 그 대상자가 속한 문화 전체를 변화시켜야할 타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우월주의일 수 있으며 오히려 상대의 문화가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 반감만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종이 살아온 방식은 언제나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종이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종의 상황에 대한 적응력에 달려있다고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야만적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1:02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망고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교육의 기회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 뿐이라는 말씀에도 동의하고요. 하지만 망고님의 말씀대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보다 보편적 도덕률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망고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3자에 입장에서는 `그들의 문화는 참 특이하구나.`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문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높은 제단 위에서 순식간에 심장이 꺼내지고 싶지 않을 것이며, 돼지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오해를 받아서 맞아죽고 싶지 않을 것이며, 영국 남자친구하고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해서 가족에게 살해당하길 원치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문화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이 아닐까요?

이런 문화적 양식이 꼭 개인이나 집단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적 양식은 마치 `바이러스` 처럼 우리의 문화에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밈`의 개념처럼 말입니다.

망고林 2016-02-14 0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실례지만 IS는 Daesh나 적어도 ISIS로, 이슬람주의자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로 바꿔써주셨으면 합니다. Islamic state라는 이름은 그런 테러리스트 집단에게는 전혀 가당찮을 만큼 과분한 명칭이고, 그들은 이슬람(=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이슬람교의 경전을 자기네 구미에 맞게 고르고 해석하면서 스스로를 `원리주의자`라고 부르는 파렴치한 집단입니다. 진짜 이슬람의 핵심 가치는 화합과 평등과 평화인데 말입니다. 이미 모든 이슬람권 국가들이 Daesh의 만행을 비난하고 그들에 대한 지탄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원리주의자들과 같이 이런 폭력적이고 과잉보호적인 종교분파의 발생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 이들 모두를 `원리주의자`로 부르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Daesh(그들에겐 모욕적인 이름)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라고는 부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이름인 Islamic state라고는 불러주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동참해주시면 조금이나마 그들의 위세를 꺾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44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음... 열린책들에서 먼가 이벤트를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북플에서 간간히 올라오는 사진과 글들을 봤었다. 페이퍼에 글을 쓰려는데 '이벤트 응모하기' 란이 있어서, 한 번 어떤 이벤트인가 확인해 보았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들, 그리고 대표 저자들을 보니 왠지 기분이 흐뭇하고 좋았다. 나도 이벤트에 참여하고 싶어졌다. 이벤트 당첨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왠지 나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의 책을 보니 내가 읽었던 반가운 책들도 많이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나도 왠지 내가 가진 열린책들을 한 번 찾아보고 눈 앞에 놓고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 알고싶었다. 그리고 그 책들을 맘껏 음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이게 왠 걸?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적었다. 대략 500권의 책이 있는데 그 중에 3권 찾았다...  

 

 나는 '열린책들'을 좋아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거의 대부분을 읽었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들도 한 권 빼고 다 읽었다. 그리고 최근에 <죄와 벌>을 읽었고 <백치>를 읽고 있고, <아자젤>, <그리스인 조르바>,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르부아르> 등을 읽었다. 그런데 내가 산 책은 꼴랑 아래 사진의 이 세 권이 전부였다.<죄와 벌>, <백치>, <아자젤>은 현재는 없지만 숙소에 있다. 그래봐야 6권이다. 숙소에도 100권 정도 책이 있으니, 600권 중에 6권. 생각보다 적었다. 나도 책장 한칸 정도에는 책들을 모아놓고 멋지게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다른 분들의 책들을 보며 위안을 삼아야겠다.

 

 물론 이 페이퍼는 이벤트에 응모하지 않았다. 6권이라도 모아서 한 번 응모해봐야겠다ㅎ; 열린책들 응원합니다ㅎ 비록 열심히 응원은 못해드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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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4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은 많으니까 책을 더 찾아보고 다시 응모하세요. (제가 이렇게 말하니깐 무슨 출판사 직원 같군요. 하하하)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7:35   좋아요 0 | URL
네ㅎㅎ 감사합니다. 잊을뻔했는데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현종 옮김 / 물병자리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20세기 최고의 영적 지도자라 불리운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저서이다. 그의 깊은 명상이 담겨있다. 나는 이 책을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통해 알게 되었다. 김도인님이 저자와 함께 이 책을 소개해주셨다. 읽고 싶어서 금방 구입했지만, 왠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읽게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책의 표지가 문제인 것 같다. 도무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니 눈꼽만큼의 욕망도 사라져버리게 하는 표지이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목욕재계하고 물 떠놓고 무릎꿇고 읽어야 할 것만 같다. 요즘 책들이 너무나 이쁘기 때문에 더욱 이 책은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그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포장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좀 더 책의 표지를 이쁘고 읽고 싶게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역시나 쉽지 않은 책이었다. 얇지만 무거웠다. 사고의 전환, 사고의 확장을 가져오는 책이다. 매우 좋았지만,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절대 어렵게 쓰인 책은 아니다. 아주 쉽게 잘 쓰인 책이다. 아주 좋은 책이다. 하지만, 낯설다. 그의 글들은 우리에게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볼 것을 권유한다.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새롭게 인식해보도록 한다. 때문에 쉽지만 어려웠다. 잘 따라가다가도 조금만 집중을 잃으면 금세 예전의 생각들로 되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자아, 공포, 폭력, 관계, 자유, 사랑, 생각, 명상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새롭게 인식해보는 시간이었다. 마치 철학수업과도 같았다. 깊은 명상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사물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 나가는 것. 어떠한 굴레와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고 보다 자유롭고 명료하게 사고하는 것. 이 책은 그것을 위한 책이다.

 

 한 번 읽어서는 도무지 소화할 수 없는 책이다. 여러번 읽어서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들로 정화해나가야겠다. 그리고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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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자리 2025-10-3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물병자리출판사입니다.
저희가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고양이책방님이 쓰신 리뷰 일부를 뒤표지에 게재하려고 하는데, 가능하실지 여쭙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은 개정판이 나온 후 다섯 부를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다음 주에 인쇄 들어갈 예정입니다. 긍정적인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병자리(aquariuspub@naver.com) 02-735-8160.

물병자리 2025-11-0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물병자리출판사입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개정판이 오늘 최종교정을 보고 내일 인쇄에 들어갑니다. 아직 연락이 없으셔서 일단은 그대로 선생님 리뷰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수록하였습니다. 차후에라도 꼭 연락주셔요. 감사합니다. 물병자리(aquariuspub@naver.com) 02-735-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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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책이었다. 얇지만 무거웠다. 사고의 전환, 사고의 확장을 가져오는 책이다. 매우 좋았지만,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절대 어렵게 쓰인 책은 아니다. 아주 쉽게 잘 쓰인 책이다. 아주 좋은 책이다. 하지만, 낯설다. 그의 글은 우리에게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볼 것을 권유한다. 그래서 쉽지만 어려웠다. 잘 따라가다가도 조금만 집중을 잃으면 금세 예전의 생각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한 번 읽어서는 도무지 소화할 수 없는 책이다. 여러 번 읽어서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들로 정화해 나가야겠다. - 고양이책방(알라딘 서재)

고양이라디오 2025-11-05 16: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네 리뷰 쓰셔도 됩니다.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미리 확인했으면 리뷰글을 좀 더 다듬고 수정했을텐데 아쉽네요;

물병자리 2025-11-1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선생님. 저희 이메일로 주소와 전화번호 남겨주셔요. 책 나오면 증정본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병자리(aquariuspub@naver.com) 02-735-8160.

물병자리 2025-11-2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개정판 나왔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046663

증정본 보내드릴 연락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물병자리(aquariuspub@naver.com) 02-735-8160.

고양이라디오 2025-11-26 16:18   좋아요 0 | URL
개정판 출간 축하드립니다^^ 메일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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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울란바토르, 알타이. 그녀가 알타이로 떠난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갈잔 치낙이 그곳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본래 그러한 것이다. 어느 순간 문득 내 머리 속에 북소리가 둥둥하고 울리는 것이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북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이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야만 한다. 그 소리 속으로 들어가야만 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

 

 척박한 땅 몽골, 대초원, 아직 사람이 닿지 않은 땅, 문명이 미치지 못한 땅, 마치 거대한 동물의 등뼈를 연상시키는 갈라진 산맥들. 그 동물의 눈같은 푸른 호수. 그리고 휘몰아치는 거센 돌풍. 바람과 추위. 추위를 피하기 위해 야크 똥을 모으는 유목민들. 불. 유르테의 꺼지지 않는 불의 여신.  

 

 책을 읽으면서 나는 거의 알타이에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알타이의 정령이 되어 저자의 주위를 맴돌았다. 배수아씨가 알타이에서 느낀 정령의 정체가 실은 나였다. 나는 그녀와 여행을 함께 했고, 그리고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아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알타이를 유목민들을 배수아씨를 마리아를 갈잔 치낙을 지켜보았다. 거의 알타이와 사랑에 빠졌다. 그곳은 생명이 숨쉬고 있는 곳이었다. 자연과 내가 엄격히 분리되고, 때로는 혼란스럽게 뒤섞인 공간이었다. 유목민들이 수줍게 미소짓는 곳이었고, 알타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그리고 그리워하는 마리아가 있는 곳이었다. 갈잔 치낙이 너스레를 떨면서 때론 진지하게 농담을 내뱉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글들이었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들이었다. 너무 과하지 않게, 차분하고 고요하게.

 

 그녀가 알타이를 묘사하는 글들을 읽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알타이의 정령이 되었다. 그녀의 글이 나를 그곳으로 강제 소환했다. 야크의 정령을 보았고, 이글거리는 불의 여신도 만났다. 물 속에 뱀처럼 구불거리며 빛나는 정령도 볼 수 있었다. 그곳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고, 혹독한 추위와 자연이 가진 거친 아름다움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신비로움도. 

 

 이 책을은 나에게 아주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담담하게 진행되다가 얼음이 쩍하고 갈라지는 듯한 충격이 책의 거의 끝에 있었다. 열심히 야크 똥을 주워모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거기에 불의 여신이 찾아와서 큰 불꽃이 두 번이나 일었다. 너무나도 멋진 마무리였다.

 

 그 마무리 중에 하나를 소개하며 나도 이 글을 마친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마리아, 너는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열렬한 그리움의 열광자이다. 그리움만으로 너는 거의, 알타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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