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유빠가 되려는 걸까요? 최근에 유시민씨의 책들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헐거운 저의 역사지식을 좀 더 탄탄하게 해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제가 부족하다 느끼는 부분과 알고 싶었던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유태인과 팔레스타인에 관한 글입니다. 유태인의 이스라엘 건국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태민족이 2천 년 동안이나 극심한 차별을 당한 민족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특히 나치 독일이 저지른 대량학살은 그것을 방조하거나 적어도 방관한 유럽의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상당한 죄의식을 안겨 주었다. 유태인이 그같은 박해를 받은 것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며, 유태민족이 모든 박해에 저항하여 평등한 민족적 권리를 찾거나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려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유태국가를 세웠다. 과연 유태민족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그들 조상의 일부가 2천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이기 때문에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결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말세가 되면 황금시대가 팔레스타인에서 열리게 될 것이라는 유태교의 종말론적 예언이 그 땅의 소유권에 대한 유태인의 주관적 확신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땅에 자손을 퍼뜨리고 땅을 경작하면서 나름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가진 민족공동체를 가꾸어 온 것은 아랍인이었다.

 더욱이 시온주의자들은 자기의 불행한 처지와 고난에 대한 호소와 설득으로 협력을 구하지 않고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무력으로 몰아냄으로써 이스라엘을 세웠다. 그 숱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종교와 문화전통을 지켜 온 눈물겨운 과거와, 그들이 이룩한 과학기술의 발전, 내게브사막을 옥토로 가꾼 눈부신 업적과 나름의 민주주의가 아무리 훌륭한 것일지라도,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아랍인이 아무리 몽매하고 그들의 정치체제가 아무리 낙후한 거일지라도, 식민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아랍 민중이 민족 주체성에 눈떠 그것을 수호하려는 열망을 가진 20세기 중반에 유태인이 휘두른 무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시온주의는 민족주의와 같지 않다. 시온주의는 다른 민족을 물리적인 힘으로 내몰고 그 땅에 순수한 유태국가를 수립하려는 침략적 민족주의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를 세움으로써 수천 년에 걸쳐 당해 온 박해와 불행을 종식시키겠다고 결심한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 그 불행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만일 이러한 행위가 정당하다면 나치의 유태인 박해 역시 전적으로 나쁜 짓이라고 단죄하기 어려울 것이다. -p232-233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현대 중동문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관심 밖입니다. 저또한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무어라 할말은 없습니다만, 다른 민족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었을때 다른 나라의 관심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때 어떤 우국열사는 우리나라의 사정을 알리기 위해 다른 나라의 대사관에서 분신자살까지 하였습니다. 침략의 고통을 알고 있는 민족의 일원으로서 안타깝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태인은 과거 홀로코스트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해 재현하고 있습니다. 나치가 유태인을 홀로코스트에 가두었듯이 유태인은 팔레스타인민족을 가자지구에 가두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유태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요? 너무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진 걸까요? 

 

 다음은 4.19 혁명때의 서울대 선언문입니다.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물러가게 한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학생운동이었습니다. 세계사를 빛낸 혁명이었습니다.

 

 긴 칠흑과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협과 폭력으로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구의 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아래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p254, (서울대학교 선언문)

 

 말콤X에 대해 다룬 장도 무척좋았습니다.

 

 나의 것과 마틴 루터 킹 박사의 비폭력 행진은 접근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항상 같아서, 그 목표는 무방비상태의 흑인들에 대한 백인의 만행과 죄악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인종적 풍토에서, 흑인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의 '두 극단'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가, 즉 '비폭력' 의 킹 목사인가 아니면 소위 '폭력적' 이라는 나인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p327 

 

 여전히 인종차별은 지구를 뒤덮고 있습니다. 인류 전체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견이지만 말콤X와 마틴 루터 킹 박사는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방식과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콤X는 마틴 루터 킹 박사를 흑인 몸뚱아리에 백인 대가리를 달아 놓은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비교적 안정된 목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된 '성공한 흑인' 이었습니다. 간디의 사상에 감명을 받고 비폭력 흑인 민권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에 반해 말콤X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잠시 말콤의 삶을 살펴봅시다.

 

  말콤은 1925년 5월 19일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로서 선조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귀향해야 한다는 것을 설교하고 다녔다. 이 때문에 말콤 아버지의 다섯 형제는 광신적인 백인 우월주의 폭력단체인 KKK 단원들에게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6남매의 네 번째 아이인 말콤도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백인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백인 주인에게 겁탈된 흑인 노예에게서 태어나 외모가 백인과 비슷했던 어머니 루이즈 리틀은 남편을 잃은 충격과 뒤어어 닥쳐 온 생활고 때문에 미쳐버렸다. 루이즈는 자기를 닮아 피부가 적살색이고 붉은 고수머리를 가진 말콤을 구박했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겁탈자 아버지를 지독하게 미워했기 때문이다. 주 복지국 직원들이 루이스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갔고 말콤의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남의 집에 맡겨졌다.                              -p314

 

 말콤X의 아버지와 다섯형제는 백인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말콤의 어머니 루이즈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백인 겁탈자로 인해 태어났습니다. 루이즈는 남편이 죽자 미쳐버립니다. 루이즈는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말콤과 그의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이후 말콤은 문제아가 되고 사회적 차별에 모욕감을 느끼고 마음의 벽을 쌓게 됩니다. 할렘가에서 타락과 방황, 도박과 범죄로 세월을 보내다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이슬람교를 접하고 흑인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게 됩니다. 거짓말처럼 담배를 끊었으며 죽는 날까지 술, 담배, 마약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과연 말콤X에게서 비폭력 평화주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평생을 분노와 증오로 얼룩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불행의 원인은 단 하나 입니다. 그가 흑인이고 그의 부모가 조부모가 흑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콤X는 한 쪽 뺨을 맞고 나서 다른 쪽 뺨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항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를 과연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최근에 <이기적 유전자>를 보았습니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한 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밀자.' 라는 행동규칙을 지키면 분명 평화로운 사회가 형성될 것입니다. 복수의 연쇄반응을 끊을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만약 그 사회에서 뺨을 때리기를 좋아하는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그는 그 사회에서 엄청난 혜택을 얻게 되고, 그의 유전자는 사회에 퍼쳐나갈 것입니다. 물론 그런 뺨 때리기 좋아하는 유전자가 그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면 결국 그 사회는 절멸할 것입니다. 때문에 적정한 안정된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으로 고정되어 갈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전략을 가진 일원이 대다수를 차지할 것입니다. '상대가 내 뺨을 때리지 않으면 나도 때리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내 뺨을 때리면 나도 때린다."

 간디와 마틴 루터 킹, 그리고 그리스도와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주의 저도 존경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비폭력주의를 관철할 수 없습니다. 성인이나 되어야 관철할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 특히 증오와 분노를 가진 사람에게는 무리입니다. 말콤X는 흑인들에게 "그만 뺨을 맞아라!" 라고 외친 인물입니다. 흑인들에게 뺨을 맞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뺨을 맞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뺨을 때리는 놈들이 나쁜놈들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흑인들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흑백분리운동을 펼쳤습니다.

 

 

 말콤X와 마틴 루터 킹, 어떤 방법이 옳은 방법일까요? 저는 이성적으로는 마틴 루터 킹을 지지하고 싶습니다만, 감정적으로는 말콤X를 지지하고 싶습니다. 부당하게 뺨 맞으면 화를 내야지, 반대쪽 뺨을 내밀어선 안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신나서 양쪽 뺨을 흥겹게 두들겨 댈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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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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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빌려 읽었습니다. 예전에 북플에서 많이 보던 책이라 눈길이 갔습니다. 책이 굉장히 얇아서 '부담없겠다' 싶어 빌렸습니다. 96p의 책이지만 이 책과 저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는 <포린 폴리시> 선정 '세계를 이끄는 사상가' 이자, 2015년 <타임> 선정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에 꼽힌 소설가입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프롤레탈리아여 단결하라!" 라고 했다면,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는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 선언'을 했습니다. 바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라고 선언했습니다.

 

 정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까요? 뭔가 페미니스트하면 깐깐하고 공격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여성부가 떠오릅니다. 일단 페미니스트가 뭔지부터 알아볼까요? 그래야 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테니까요. 페미니스트는 사전에 따르면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이란 뜻입니다. 사전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저자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 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 입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합니다.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에 어떠한 우열도 없습니다. 만약 힘이 세고 덩치가 커서 우열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고릴라라 코끼리 보다 저열하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보다 공격적이고 전투적이기 때문에 우열하다고 한다면, 호랑이나 상어가 우리보다 우열하다고 인정해야합니다. 문화적인 차이를 벗어나면 남녀간에 어떠한 우열도 없다는 것에 동의해야 합니다. 차이는 있지만 우열은 없다. 이것이 페미니즘입니다.

 

 최근에 '강남역 살인사건' 때문에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 와 '페미니즘'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가 성에 따른 불평등지수가 거의 꼴지수준이더군요. 약 150개국 중에 117위 입니다. 우리나라에 분명히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리고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딸들이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딸이 사회적으로 차별대우를 받고, 성범죄의 위험에 떨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딸 낳기 무섭다." 라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성폭력과 성추행, 성범죄의 위험에 떨어야하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요? 제도든 의식이든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2012년 TEDxEuston 강연을 바탕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유투브에서 25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팝스타 비욘세는 강연의 일부를 자신의 노래에 샘플링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나라 스웨덴에서는 이 책을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에 주는 선물" 이라 부르며 전국의 모든 16세 고등학생에게 배부하여 성평등 교육의 교재로 삼았다고 합니다. 스웨덴이란 나라, 정말 부럽습니다. 너무 자주 부러워서 탈입니다. 우리나라도 강은 그만 엎고 주입식 교육 대신이 이런 교육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녹차라떼대신에 이 책을 선물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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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5 - 번지는 들불, 개정증보판
시내암 지음,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199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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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지> 1권부터 2, 3권 까지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이해가 안될만큼 재미있었습니다. 혼자서 곰곰히 수호지의 재미의 요소는 무엇일까 따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권부터 점점 재미가 떨어집니다. 스토리 전개가 익숙해져서 일까요? 역시 저에게 이렇게 긴 장편은 잘 안맞는 걸까요? 


 <로마인 이야기>도 1, 2권 까지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3권도 재미있었지만 1, 2권에 비해 아쉬웠습니다. 4권을 보고나니 5권부터는 손이 가지 않네요. 카이사르의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만, 흐름이 끊겨버렸습니다.


 그래도 수호지는 현재 6권까지 보았습니다. 절반을 넘어섰으니 완독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 재미는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술술 읽힙니다. 5-6권은 같은 패턴의 반복입니다. 동료가 적에게 잡히고 구해내고, 그러면서 새로운 동료를 얻습니다. 6권에 비로소 108명의 호걸이 모두 모입니다. 


 점점 수호지의 재미가 떨어지는데는 공감의 결여도 큰 것 같습니다. 호걸이라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는 그냥 살인마일 뿐입니다. 너무 사람을 쉽게 죽입니다. 입으로는 충과 의를 부르짓지만, 복수 앞에서는 잠시 눈을 감습니다. 특히 쌍도끼 이규 이놈은 진짜 나쁜놈입니다. 감초같은 역활을 합니다만, 너무 천방지축입니다. 왠만하면 소설이나 영화에서 아이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불문율같은겁니다. 영화감독이나 관계자, 소설가, 출판업자가 원탁에 모여서 "아이는 건드리지 말자!" 라고 결의를 한 것은 아닙니다만, 아이를 건드리는 것은 굉장히 드뭅니다. 수호지에는 애도 어른도 남녀도 없습니다. 이규는 도끼로 아이의 머리를 세로로 이등분합니다. 어처구니 없는게도 이유는 다른 호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입니다. 동료로 얻고싶은 호걸이 있는데, 그 호걸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서 양산박에 데리고 가려고 그런 만행을 저지릅니다. 여기서 무슨 충과 의가 있습니까? 또 한 번은 여걸 호삼랑을 동료로 맞아들이는데, 쌍도끼 이규가 명령을 어기고 호삼랑을 일가족을 몰살시킵니다. 하지만 호삼랑은 양산박의 동료로 들어가고 심지어 바로 다른 호걸과 결혼까지 합니다. 이런 상식 밖의 일들이 허다하다보니 점점 소설에 거리를 두고 몰입을 못하게 됩니다.


 이런 부분들을 현대적으로 각색하면 어떨까요? 그럼 수호지가 수호지가 아닌게 될 겁니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도 바뀝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과 도덕이란 개념들이 천년 후에는 얼마나 우습게 느껴질지 생각하면 이상합니다. 몇 백년 후면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조차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남녀차별도 물론이고요. 우리의 후손들은 현재의 문학작품이나 자료들을 보면서 "아니 이때는 남녀차별이란게 있었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정말 웃긴다." 하는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많은 것들이 미래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미래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과거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수호지>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요. 가부장제에 살았던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이해는 커녕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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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레이트 인 재즈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와다 마코토 그림 / 문학사상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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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관심의 범위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초창기 한창 독서에 열을 올릴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습니다. 이것도 신기하고 저것도 신기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느정도 관심의 경계가 형성되고 그 울타리 안에 머무르려는 것 같습니다. 잘 모르는 것은 모르는데로 내버려둡니다. 관심의 촉수가 뻣어나가지 않습니다.

 

 이 책도 제겐 관심의 범위 밖이었습니다. 저는 루이 암스트롱, 찰리 파커 등 몇몇 재즈뮤지션의 이름만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재즈 뮤지션과 그들의 음악이야기는 낯설고 난해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감도 못잡기 일쑤였습니다. 하루키씨의 책은 다 읽으려고 합니다. 하루키씨의 에세이도 거의 다 읽어서 이 책은 가장 마지막에서야 읽었습니다.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하루키씨의 문장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들의 모르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억지로 완독을 하고자 하루키씨의 표현과 문장에 주목하면서 읽었습니다. 역시 멋진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씨는 재즈 마니아입니다. 재즈, 클래식, 팝 등 엄청난 음악애호가에 수집가 입니다. 전문가 못지 않게 방대한 양의 음악가를 알고 음악을 듣습니다. 그의 직업이 소설가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꾸준함이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청소년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들어왔으니까요. 여행을 가서도 그는 중고 레코드가게에 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둡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합니다. (하루키씨에게는 조깅이란 단어보다 달리기라는 단어가 잘 어울립니다.) 청소년때 우연히 공연장에 가서 재즈를 접하고 그는 마치 신내림을 받은 것 마냥 재즈에 심취합니다. 그의 재즈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재즈에 관심이 많으시거나 애호가시라며 이 책은 값진 보물일 겁니다. 재즈에 관심이 없지만 하루키팬이시라면 글쎄요. 하루키씨의 다른 좋은 책이 워낙 많아서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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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토요일, 일요일 도서관에서 짱박혀서 즐겁게 책을 읽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온전히 책만 읽은 주말이었습니다. 그 여새를 몰아서 이번주 월요일까지 즐겁게 책을 읽었습니다. 밀린 리뷰를 써야해서 화요일날 리뷰와 페이퍼를 쓰다보니 또 신나게 수요일까지 썼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읽고 쓰다보니 갑자기 방전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네요. 책을 봐도 별 감흥이 없고, 글을 쓰려고 해도 그렇게 재미가 없네요. 마치 식욕과 성욕이 채워지면 해소 되듯, 읽고 쓰는 욕구도 채워지면 없어지는 걸까요? 


 저는 이럴 땐 영화를 봅니다. 혹은 어제처럼 조깅을 하거나요. 조깅을 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씨를 생각합니다. 걷고 싶어질 땐 무라카미 하루키씨를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씨는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정해놓았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감동적이지 않으신가요? 저는 나중에 꼭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묘비에 가보고 싶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오싹해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장수를 기원합니다. 


 보려고 다운받아놓은 영화가 있는데, 그렇게 보고 싶진 않네요. 개봉작중에 <테러>라는 영화가 재미있다던데, 왠지 끌리지 않습니다. 신나는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그나마 현재 개봉작 중에 메릴 스트립과 휴 그랜트의 <플로렌스>가 가장 끌리네요. 역시나 24:30분 영화밖에 없네요. 시간대가 좋지 않습니다. 이래가지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사람들이 볼 수가 없습니다. 좋은 영화가 아니라서 시간대가 밀린 걸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네요. 왠지 메릴 스트립 주연 영화는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이렇게 기운빠질 때는 새로운 피를 수혈하듯 도서관에 가서 새로운 책을 빌려보기도 합니다. 도서관에 가려고 보니 책 한 권이 연체되었네요. 당분간 책도 못 빌려봅니다ㅠ. 그래도 도서관에 가서 다카노 가즈아키의 책을 보려고 합니다. 밤10시가 되면 즐겁게 읽던 책을 두고 와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너무 재미있지 않기를... 복잡한 감정입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6시간 후 너는 죽는다>가 도서관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늦어서 혹시 가버리지는 않겠죠? 꼭꼭 숨어서 기다려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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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8-27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여러 모로 생활에서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하루를 철저하고 충실하게 보내고, 운동과 일, 레져가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는 듯 합니다.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네요.ㅎㅎ

고양이라디오 2016-08-27 18:18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도 굽신거리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셨다는 것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과 현실이 거의 일치하는 살이 아닐까 싶어서 부럽고 감탄스럽습니다ㅎ 저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참 어렵습니다ㅎ

yamoo 2016-08-2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신 고양이라디오 님. 책읽고 리뷰쓰고, 책 읽고 리뷰쓰고 무한 루프! 시이소님과 더불어 알라딘 2대 북마스터 이실 듯^^;;

고양이라디오 2016-08-27 18:2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시이소오님과 비교하다니 부끄럽습니다. 리뷰의 질에서 차이가 성인과 어린아이 차이인데요ㅠ
요즘은 점점 어려운 책을 기피하고 소설을 많이 읽는 것 같습니다ㅠ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