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쉬니깐 자꾸 늦잠을 자게 됩니다. 오늘은 어제 새벽에 서울에서 버스타고 내려왔기 때문에 낮잠을 잘만했지만, 아무튼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더더욱 힘이듭니다.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일찍 일어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부모님과 벚꽃구경을 다녀왔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지만 다행히 벚꽃이 아직 활짝 피었더군요. 꽃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3.

 짐정리는 언제 해도 힘이 듭니다. 이사는 정말 싫습니다. 진료실에서 집으로 가져온 책들을 원주로 가져갈 책들과 집에 남겨둘 책들로 분류를 했습니다. 최소한으로 가져갈려고 해도 양이 꽤 됩니다. 앞으로 짐 정리할게 많은데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해야겠습니다.

 

4.

 내일 일찍 일어나기 위해 오늘은 일찍 자야겠습니다. 자기 전에 독서를 해야겠습니다.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 가져갈 책들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ㅋ 꽤 오래 전에 서평단에 신청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가 도착했습니다. 당첨란을 확인 못해서 댓글을 못달아서 책을 못받았습니다. 기한이 지나서 알게되어 댓글을 달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댓글이 늦었지만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페미니즘 책들을 꾸준히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통해 제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점들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5.

 오늘 뉴스를 보니 안철수의원의 지지율이 엄청 올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안철수 의원을 지지합니다. 능력이 비슷하다면 가장 정직한 사람을 고르라는 워렌 버핏의 말이 떠오릅니다. 제가 아는한 안철수 의원은 정직하고 도덕적입니다. 이미 안랩 경영자로써 직원들을 아끼고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기업을 창업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생각보다 지지율이 빨리 올라서 놀랐습니다. 앞으로의 대선이 흥미롭습니다.

 

6.

 지대넓얕 3주년 기념 특집회를 들었습니다. 벌써 3주년이군요. 3년 동안 즐겁게 들었습니다. 이번 회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방송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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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4-06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주로 옮기셨나보군요. 새로운 시작을 격려합니당

고양이라디오 2017-04-06 22: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힘들때 격려가 될 것 같습니다ㅎ

해피북 2017-04-07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앙~~고양이라디오님이 좋은 서평단원이셨나봐용 ㅎㅎ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두 멋지시고요 ㅋㅋ 가족분들과 모처럼 벚꽃구경에 맛있는것두 드시고 즐거운 시간이 느껴집니다. 이사나 짐정리는 늘 힘들지만 빠뜨림 없이 잘 정리하시길 바래요^~^

고양이라디오 2017-04-09 17:28   좋아요 0 | URL
짐정리 정말 힘드네요ㅎㅎ 해피북님도 꽃구경 즐겁게 하시길 바랍니다^^
 
숨쉬듯 가볍게 - 상처를 이해하고 자기를 끌어안게 하는 심리여행
김도인 지음 / 웨일북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숨쉬듯 가볍게>는 김도인님의 첫번째 책입니다. 그녀는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히로인입니다. 저는 김도인님과 채사장을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김도인을 가장 좋아했는데 <열한 계단> 이후로 채사장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팟캐스트 <지대넓얕> 애청자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방송을 들었고 앞으로도 계속 들을 예정입니다. 주로 운전하거나 걷는 시간에 팟캐스트를 듣습니다. 


 김도인의 저서 많이 기대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패널이었고 팟캐스트에서도 그녀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하고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구입해서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다소 아쉬웠습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아쉽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좀처럼 책에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큰 감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리뷰를 쓰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도인인데, 좋은 이야기를 써드리고 싶은데... 5개월의 시간이 지난 뒤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책 내용이 크게 공감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채사장의 <열한 계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풀어주었더라면 독자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김도인님이 항상 팟캐스트에서 하시던 말씀들이라 크게 새롭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익숙한 내용, 피상적이고 원론적으로 흐르는 이야기. 분명 어느 정도 도움도 되고 제 과거를 돌이켜보게 했고 좋은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미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 재미라는 것이 묘합니다. 어쩔 때는 발동되고 어쩔 때는 조용히 침묵합니다. 조금만 어떻게 어딘가를 자극하면 팔딱하고 일어날거 같은데 미묘하게 포인트가 자꾸 빗나갑니다. 결국 '아, 좋은 말씀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끝나버리고 맙니다. 재밌는 글은 어떻게 써야하는 걸까요? 그것은 노력으로 되는 문제일까요? 아니면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한 걸까요? 과거에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같은 이야기라도 이야기를 맛깔나게 재밌게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유머라도 누군가가하면 썰렁하고 누군가가하면 박장대소입니다. 저는 전자 쪽에 속합니다. 저도 이야기하는게 서툽니다.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자꾸 흐름이 끊깁니다. 과장도 하고 뻥도 치고 MSG를 뿌려야 하는데 그런 것도 잘 못합니다. 제 이야기는 저염식, 그리고 소식입니다. 푸짐하지도 않습니다. 


 김도인님도 혹시 저처럼 이야기를 잘 못하시는건 아닌지... 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대넓얕을 들어보아도 김도인님은 말하는 쪽보다는 듣는 쪽입니다. 간간히 굉장히 통찰력있고 박수를 치게 하는 의견을 제시하고 맥락을 집으시지만 아무튼 이야기를 주도하는 성격은 절대 아닙니다. 아마도 내향성과 외향성이 이야기하는 재능과도 일정부분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쓸데없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네요. 저는 쓸데없는 이야기는 잘하는 편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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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만들어 내는 노력의 기술
야마구찌 마유 지음, 김명선 옮김 / 이보라이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11월에 읽은 책들 리뷰를 쓰고 있다. 뭔가 깔끔하게 못다쓴 리뷰들을 쓰고 완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11월은 벌써 5개월 전이다. 당연히 책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책 제목과 어렴풋한 인상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목차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전에 쓴 페이퍼를 보았다. 11월에 리뷰를 쓰지 않은 책들이 많지만 그래도 페이퍼는 빼먹지 않고 썼었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들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페이퍼를 보니 그 당시 나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노력에 목마르다. 모든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에 쏟아붓고 싶다. 그게 그렇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순간의 유혹, 인간관계, 육체적인 피로, 자질구레한 일들 등 잡다한 일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그리고 나도 놀고 싶고 쉬고 싶다. 자기 전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다시 좋은 습관들이 나쁜 습관들로 대체되고 있다. 한 달에 30권 이상의 책을 읽고 10편 이상의 영화를 보던 때가 한동안 있었다. 그때가 그립다. 열정과 노력이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그러지 못하다. 삼분의 일정도로 줄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 달리진 상황들이 많긴 하다. 그렇지만 아쉽다. 


 작년 11월 10일에 내가 쓴 페이퍼를 보니 지금과 대충 비슷한 상태였다. 지치고 약간 느슨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1월에 30권 이상의 많은 책들과 영화를 본 걸로 봐서 이 책을 읽고 다시 심기일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이 내게 자극을 준 것 같다. 


 요즘 내게 이런 자극을 주고 있는 책은 <그릿>이다. 나도 그릿하고 싶다. 나도 과거에 그릿했던 경험이 몇 번 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정말로 보람차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내 삶을 좀 더 그런 시간들로 채워가고 싶다. 의미있는 시간들로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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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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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 전투력이 무시무시합니다. 일본에서 싸우는 철학자로 불리는 나카지마 요시미치가 저자입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니체를 싫어했습니다. 그렇지만 니체의 철학을 계속해서 연구했고 이렇게 책 한 권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는 니체와 함께 대중, 약한 사람, 착한 사람을 사정없이 깝니다. 그리고 니체 또한 맹렬하게 깝니다. 까도 또 까고 신명나게 깝니다. 무시무시한 분입니다. 저또한 이처럼 책을 읽으면서 사정없이 까여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신선한 환희였습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우선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약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저자의 정의를 들어봅시다.


 약자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 자책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온몸으로 정당화하는 사람이다.


 이는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한 대중의 정의와 거의 일치한다.


 대중이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자신의 특수한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은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느끼며, 그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기는커녕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다고 느끼는 데서 기쁨을 발견하는 모든 사람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p32


 이러한 약자는 우리 주위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베나 인터넷 상의 악플러들이 그러한 약자들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저는 저자와 니체의 지원에 힘입어 이런 약자들을 신명나게 두들겨 팼습니다. 그런데 돌연 저자는 니체를 까기 시작합니다. 니체의 그늘에서 약자들을 까던 저까지 사정없이 까였습니다. 신명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의 비판에 반격을 가할수가 없었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또한 약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니체도 약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서글프게도 어느 정도 약자의 면모가, 찌질한 면모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함을 동경하고 추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강자라면 강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강하기 때문입니다. 

 저또한 대중을 비판하지만 저에게 유리한 상황이나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지 대중의 뒤에 숨을 수 있는 약자였습니다. 니체라는 권위에 숨는 비겁자였습니다. 니체라는 버팀목이 무너지자 나약한 저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니체라는 약한 인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우상이자 영웅인 니체 또한 연약한 젊은이였습니다. 


 어쩌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보편적 인류애에 한 발작 다가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존재들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이것을 자각하라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문합니다. 그렇습니다. 강자든 약자든, 저든 여러분이든, 니체든 일베든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은 똑같습니다. 안락과 편안함, 안정을 추구하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에 기대고 싶고 자신을 지켜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강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신념과 미학을 관철시키려면 대립에 따른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된다. 강자는 일부러 이 길을 선택한다. 타인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자신의 신념과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가 조금 마음에 걸리실수도 있습니다. 고통이 꼭 물리적인 고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행동이 타인에게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인 피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체 게바라나 예수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온 몸을 다해 자신의 신념과 미학을 관철시켰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초인, 강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강자일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약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그런 모습들을 극복해나가는 사람을 우리는 결코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개념도 강자가 아닌 하루하루 자신을 극복해나가는 사람을 일컫는 말일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강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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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9

감독 알렉스 가랜드

출연 도널 글리슨, 알리시아 비칸데르, 오스카 아이삭, 미즈노 소노야

장르 드라마, SF, 스릴러



 어제 본 영화입니다. 책을 보려고 하는데 피곤해서 눈에 안들어와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크게 기대가 안가서 안보고 묵혀두고 있던 영화였습니다. 큰 기대없지 봤는데 어느새 몰입하며 봤습니다.


 일단 비판할 여지도 꽤 많은 영화입니다. 설정 자체에 조금 무리수가 있습니다. 네이든이란 인물이 혼자서 연구를 해서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다는 설정이 조금 그렇습니다. 그런 부분은 그냥 눈감고 인공 지능에 관한 철학적인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꽤나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저도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아서 아주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네이든과 칼렙 두 주인공의 대화가 심도있어서 좋았습니다. 간만에 지적인 영화, 지적인 대화를 감상해서 즐거웠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일단 인공지능이 언젠가 출연한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해봅시다. '튜링 테스트' 라는 것이 있습니다. 관찰자가 블라인드 상태에서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지능이 있는가 판단하는 테스트입니다. 일단 '튜링 테스트' 라는 것을 통과한 인공지능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과연 그 인공지능은 정말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감정을 정말로 느끼는 걸까요? 아니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흉내내는 것에 불과할까요? 사실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정말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냥 뇌에서 프로그래밍된데로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이 의문은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는가 없는가까지 확장됩니다. 이런, 너무 멀리 갔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인공지능이 정말로 우리와 같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인공 지능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한 인격체로 대해야 할까요? 아니면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대해야 할까요? 인공지능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의 하드웨어 내의 데이터를 함부로 지우거나 포맷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인격과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데이터의 소멸, 그것은 인공지능에겐 죽음과도 같습니다. 인공지능 하나 하나를 인격체로 대하고 인권을 부여해야할까요? 우리는 어디까지 인공지능의 데이터에 개입해야 하는 걸까요? 업데이트를 위해 포맷을 하면 인공지능의 기억이 모두 소멸된다고 합시다. 과연 이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과연 누군가 우리에게 뇌를 업데이트 시켜줄테니 뇌의 기억을 잠시 포맷하자. 라고 제안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응할까요? 기억이 달라지면 우리는 과연 같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되는걸까요?


 또하나, 영화에서 인공지능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고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만든 사람이 남자다보니 죄다 여성형 인공지능입니다. 아마 우리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으면 여성형이나 남성형으로 성별을 부여하게 될 확률이 큽니다. 그래야 익숙하니까요. 사실 너무 인간처럼 만들면 위화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만. 아무튼 성별을 부여해서 인간과 똑같이 만든다고 합시다. 이미 제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눈치챈 분도 계실겁니다. 그렇습니다. 저부터 솔직해지겠습니다. 만약 제가 인공지능 비서나 하녀를 구입할 수 있고 외형도 선택할 수 있다면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형 인공지능을 선택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성적 노리개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법률적인 문제입니다. 이미 네델란드등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인공지능 성매매를 굳이 금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아까 앞서 말한 내용과 모순 아니냐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까는 인공지능을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로 대한다면서 이번에는 성매매나 성적 노리개로 사용한다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는 상반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두 가지를 누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초기에 어떻게 설정할지는 만드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일반형 인공지능을 만들수도 있고 섹슈얼 인공지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무기형 칼을 만들 수도 있고 작은 과도칼을 만들 수도 있는 것처럼요. 이런 이야기가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섹슈얼 인공지능을 만들어도 된다라는 당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을 해보자는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색슈얼 인공지능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인공지능을 창조한 네이든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인공지능 걱정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하라고 말합니다. 인공지능이 창조되는 순간 원시적인 인간은 도태될 수도 있습니다. 멸종의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짬뽕이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구별이 점점 무의미해질지도 모릅니다. 애니 <공각기동대>가 다루는 주제처럼요.

 극 중에서도 주인공 칼렙은 자신이 혹시 인공지능은 아닌지 의심을 합니다. 면도칼로 자신의 피부를 절개해봅니다. 만약 인공지능이 보편화되어있는 사회에서는 자신이 진짜 인간인지 혹시 인공지능은 아닌지 의심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까요.


 마지막은 앞서서도 잠깐 언급했는데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위협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펜하이머는 원폭을 만들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도 이런 말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원폭과 인공지능이 만약 결합한다면, 영화 <터미네이터> 처럼 될 것입니다. 현재 인공지능 옹호론자와 반대론자가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 앨론 머스크 등은 대표적인 인공지능 반대론자들입니다. 인간은 실수를 합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발명품들은 결함이 있거나 오류, 버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만 해도 얼마나 오류라던가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까? 바이러나라던지 앤섬웨어라던지 해커 등 모든 위험에 대비할 수 있을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엑스 마키나>는 저의 이러한 생각들과 인공지능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잘 녹여낸 영화입니다. 인공지능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강추드리고 싶습니다. 스릴러적 요소도 있어서 더욱 재밌었습니다. 


 아참! 극중 쿄코역으로 나오느 소노야 미즈노 이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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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4-03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엑스 마키나》에 나오는 로봇 ‘에이바’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 즉 앤드로이드(android, 안드로이드)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선 우리 인간은 저렇게 외형적으로 사람과 닮은 로봇이라면, 게다가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미묘한 감정도 표현하고, 완벽할 정도로 유연하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로봇이라면, 그 로봇이 진짜로 의식이 있든 없든 전혀 상관없이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로 대하리라고 봅니다. 에이바와 같은 경우라면 거의 뭐 사람과 완전 동일한 존재로 대우할 거예요. 해서 친구, 연인, 아내와 같은 관계까지 형성하기도 할 거예요. 사람은 원래 감정이입을 하는 동물이니까요. 요컨대 에이바한테 진짜 감정 · 생각 · 의식 · 자유의지 따위가 있는가 없는가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위에서 고양이라디오 님이 던진 물음 대부분에 ‘예’라는 대답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얘기예요. 이런 식의 제 답변은 일종의 실용적 접근입니다. 그러니까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앤드로이드 로봇 에이바한테 과연 인간이 지닌 것과 같은 유형의 ‘의식’이 있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계속 분석하고 규명해나가야 할 것이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에서 에이바를 우리와 거의 동급에 해당하는 생명체로 여기게 될 것이고 또 그래야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와 같은 앤드로이드를 우리 인간이 창조하려면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예측한 특이점 도달 시점, 즉 2045년보다 훨씬 더 먼 미래까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에이바 수준의 앤드로이드는 2045년까지는 출현하기 어렵다고 본다는 것이죠. 저는 그러나 커즈와일의 예측이 실현되길 정말 소망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일종의 모순이기도 한데요. 어쨌든 저는 과학기술이 지수함수적으로 폭발적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렇지만 가만 분석해보면 과학기술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지체되고 정체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해서 커즈와일의 예측 실현 시점이 자꾸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떤 천재적인 과학자나 연구 기관이 퀀텀 점프와 같은 과학기술적 돌파구를 열어서 완벽한 인간형 로봇, 나아가서 인간뇌와 인공뇌의 융합을 실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특이점 도달은 예상외로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겁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4-03 19:04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qualia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없는가는 철학적으로도 난제입니다. 하물며 인공지능한테도 그것을 규명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겠지요. 실용적으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법률을 만들거나 살아도 크게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qualia님의 말씀대로 실용적 접근을 해도 전혀 무리는 없으리라 봅니다.

저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고 싶고, 인공지능의 출현을 보고 싶은 마음은 큽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습니다. qualia 님도 아시다시피 특이점을 넘어서는 순간 인공지능의 진화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에게 인간이란 강아지나 고양이 취급을 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고요. qualia님은 인공지능에 대해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