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만화 삼국지 1 - 난세의 영웅들 이현세 만화 삼국지 1
이현세 글.그림 / 녹색지팡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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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세 작가의 삼국지 만화이다. 삼국지는 언제 이야기해도 재밌다. 최고의 고전 중의 하나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읽었다. 1권은 오늘 읽었다. 2권부터 10권까지는 전에 읽었다. 처음에 빌릴 때 1권이 없고 2권이 있었다. 어차피 내용은 대충 아니 2권부터 읽기 시작했다. 오늘 생각나서 찾아보니 1권이 있어서 읽었다. 역시 재밌다.

 

 나는 아직 제대로 삼국지를 읽어본 적이 없다. 이문열의 삼국지를 조금 읽다가 말았고, 60권 짜리 만화 삼국지도 두서없이 읽어서 다 읽었는지 확실치 않다. 만화 <창천항로>로 삼국지를 접한 것이 가장 완전한 일독이다. 물론 만화라 각색이 많이 들어갔지만. 삼국지 게임도 몇가지 했다. 최근에 삼국지 조조전을 2번이나 했다.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재밌었다.

 

 삼국지 재밌다. 꼭 일독을 하고 싶다.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 남자들이 참 좋아하는 장르다. 개인적으로 이현세 만화 삼국지 시리즈 추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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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신사일 것이란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혹시 정의할 수 있다면 어떤 건지 가르쳐주지 않겠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야."   -p091

 

 주인공 나와 나가사와 선배의 대화이다. 나가사와 선배는 참 독특한 캐릭터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도 그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이 극단으로 치닫은 모습이 나가사와 선배일 것이다. 감정보다 이성적,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기중심적인 생각, 쉽게 얘기해서 남의 감정에 무신경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그가 하는 말들 중에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야." 라는 말이 뇌리에 쿵하고 박혔다. 앞으로 신사답게 행동하기위해 노력하고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은 많은 책을 읽는다. 그 중에 <수레바퀴 아래서>와 <마의 산>을 찜해뒀다. 아... 오늘 도서관 다녀왔는데 <마의 산>을 빌릴 껄 그랬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지금 읽고 있는데, 좀처럼 잘 안 읽힌다... <상실의 시대>에게 밀려버렸다.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 하고 그가 말했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기억해두겠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는 새로운 세계로, 나는 나의 진창으로 되돌아갔다. -p343

 

 나와 나가사와 선배의 대화 2탄이다. 선배는 나와 헤어지면서 한 가지 충고를 해준다. 이 충고가 또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나 자신을 동정했던 때가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이 비열한 인간이라는 말은 십분 공감이 간다. 저 충고 꼭 기억해둬야겠다. 비열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레이코 씨 말씀은 무슨 뜻인지 잘 알겠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저로선 아직 그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그건 정말 너무나 쓸쓸한 장례식이었어요. 사람은 그렇게 죽는 게 아니에요."

 레이코씨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어루만졌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그렇게 죽는 거야, 나도 당신도." -p406

 

 우리 모두는 그렇게 죽는다. 아마도 죽을 때는 무척이나 쓸쓸하지 않을까 싶다. 죽음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물론 죽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히 눈을 감는 장면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은 조용히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쓸쓸하게 죽어갈 것이다. 쓸쓸한 죽음, 쓸쓸한 장례식. 죽음은 원래 그런거다.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었다. 하루키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바뀔 정도로 좋았다. 나는 역시 하루키를 좋아하는구나.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어렵다.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다. 아마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20대 초반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는 전혀 감흥이 없었다. 하루키 소설을 좋아해서 찾아 읽던 중에 읽었다. 그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아무것도 공감하지 못했다. 30대 초반에 다시 읽으니 훨씬 많은 것들이 이해되고 공감이 갔다. <상실의 시대>가 어쩌면 훗날 하루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오랫동안 읽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상실의 시대>에는 분명히 있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어서 즐거웠으며 슬펐다. 슬픈 소설이었다. 하지만 슬픔에 무너져내리는 소설은 아니었다.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힘을, 위안을 주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항상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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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2-01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타나베가 미도리의 집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발견하고 읽는데요..전 이 책의 위대함을 발견못하고 있는1인이긴 하지만, 문체를 꼽더라구요...얼마전 수리부엉이~라는 책에서 샐린저의 문체를 손꼽던데...하루키의 일관성은 역시나 대단하다는 걸..또 실감했습니다..ㅎㅎ

고양이라디오 2018-12-05 10:57   좋아요 1 | URL
음... 분명히 북플에서 답글을 달았는데 안달렸나봅니다. 요새 제 북플이 조금 이상합니다.
전 <호밀밭의 파수꾼> 정말 좋았는데 아쉽네요ㅠㅠㅋ 어? 근데 주인공이 미도리 집에서 <수레바퀴 아래서>도 읽지 않나요? 저는 <수레바퀴 아래서>가 잘 안 읽히네요ㅋ

하루키씨가 <호밀밭의 파수꾼> 좋아해서 기뻤습니다^^ㅎ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은 건 20대 초반이었다. 10년이 지나 30대 초반이 되어 이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재밌다. 전에 읽었을 때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서 아무런 재미도 없었나보다. 지금은 무척이나 재밌게 읽고 있다. 행복을 느끼면서 하루키씨에게 감사하면서.

 

 오랜만에 여유롭게 책을 읽은 하루였다. 이렇게 여유롭게 장시간 책을 읽은 적이 언제였나 싶다. 그리고 이렇게 즐겁게 책을 읽은지도 언제였냐 싶다. 아무튼 오늘 나는 무척이나 즐겁게 책을 읽었다.

 

 이제 중반부를 조금 넘게 읽었을 뿐이지만 이 소설을 3가지 키워드로 이야기한다면 '연애. 이별, 죽음' 으로 말하고 싶다. 이별, 죽음을 상실로 묶어도 상관없을 거 같다. 혹은 '연애, 이별, 죽음' 을 모두 상실로 묶어도 괜찮을 거 같다. 그러고보면 '상실의 시대'라는 책 제목 참 잘 지은거 같다.

 

 어쨌든 20대 초반의 나는 '연애, 이별, 죽음' 이 세 가지 것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 당시 하루키씨를 좋아해서 하루키씨의 소설들을 찾아가며 읽던 때였지만 유독 이 소설은 내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30대 초반이 되어 '연애, 이별, 죽음' 을 경험하고 나니 이 소설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인물들의 캐릭터, 대사, 감정선이 이해가 된다. 인물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 이해가 된다. 이 소설에 흐르는 서정(다소 슬프지만)이 느껴진다.

 

 음악은 퀸의 노래들을 듣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등. 음악과 책이 있어서 즐거웠던 하루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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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11-25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했습니다
컨디션 회복되신것 같아서 좋네요

고양이라디오 2018-11-26 23:38   좋아요 1 | URL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셨다니 좋네요^^ 재밌으셨는지요?
컨디션은 계속 회복 중입니다ㅎㅎ 나와같다면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래요!~
 

 이것도 하나의 성향인지도 모르겠다. 난 항상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화한다. '그때가 좋았지' 하고 생각한다. 우스운 점은 '그때'에는 좋다는 생각을 별로 안한다는 점이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것도 일종의 병인가? 아니면 끝없는 욕심의 발로인가?

 

 요즘은 정말 책을 많이 못 읽고 있다. 이번 달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것도 만화로 된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한 주간 휴가가 있었고, 한 주가 감기로 앓았다. 이 책, 저 책 조금씩 읽고 있긴 하지만, 책 읽는 양이 예전보다 확실히 줄었다.

 

 저번 달은 4권의 책과 9권의 만화 삼국지를 읽었다. 2년 전 순천에서 일할 때는 한 달에 20~30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서재에 글도 엄청 많이 썼다. 평균 하루에 한 편 이상의 글을 썼던 거 같다. 요즘 계속 그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가 그립다.

 

 환경적인 조건이 컸다. 전에 직장은 집에서 다녔다. 그리고 저녁을 직장에서 먹을 수 있었고, 저녁먹고 직장에서 그대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굉장히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일하고 저녁 먹고 책 읽고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주말에도 별다른 일이 없으면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죽치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용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그 때는 그것이 당연했으며 오히려 책을 읽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일종의 집착, 중독 어쩌면 몰입 비슷한 그 무언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열정, 끈기 그 비슷한 무언가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시간은 많다. 퇴근하고 운동하고 저녁먹고 하면 8시다. 하지만 보통 퇴근하면 피곤해서 집에서 한숨자거나 쉬기 일쑤다. 책도 장시간 집중해서 읽기가 어렵다. 습관이 무뎌져서 집중력도 형편없어졌다. 전보다 인터넷, 핸드폰 하는 시간이 무척 늘었다. 휴식이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낭비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이게 한 번 습관이 무너지니 회복하기 어렵다. 좀 더 책을 읽고 싶은데 핸드폰, 인터넷에 더 손이 간다. 망할 스마트폰! 스마트폰이 좋아질수록 나의 독서량은 줄어드는게 아닌가 싶다.

 

 오늘은 퇴근 후 집에서 책을 읽다가 한 숨 잤다. 그리고 이렇게 서재에 글을 쓰고 있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항상 글을 쓰려다가 말았다. 뭔가 쓸 말이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집에 있으면 놀게 될 거 같다. 휴식도 충분히 취했으니 나가서 책 좀 읽어야겠다. 간만에 책 읽는 하루가 되기를.

  

 

 

 

 

 

 

 

 

 

 

 

 

 

 

 오늘 도착한 책이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에 관한 책이다. 재밌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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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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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 다시 읽기. 하루키 다시 읽기가 즐거운 이유는 나의 엄청난 망각 능력 덕분이다. 다행이다. 덕분에 처음 읽는 것처럼, 아니 정말 내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이 맞나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읽었다. 이렇게 충격적인 전개와 내용인데 어떻게 전혀 기억에 없을 수 있을까? 다음 번에 읽을 때도 똑같이 새롭고 충격적일까?

 

 <반딧불이>는 영화 <버닝>을 본 후 '헛간을 태우다' 란 단편소설이 무척 보고 싶어서 다시 읽었다. '헛간을 태우다'는 전에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무척이나 섬뜩한 소설이다. 영화 <버닝>은 '헛간을 태우다'를 모티브로해서 만들어진 아주 인상적인 영화다. 둘 다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하루키는 장편소설 작가로 알려진 작가지만 사실 단편소설들이 어쩌면 더 좋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사실 가끔은 에세이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 다재다능한 작가다. 성실한 작가다.

 

 '반딧불이'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단편소설이었다. 이 단편소설이 <상실의 시대>로 발전하여 하루키 신드롬의 주역이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루키가 이렇게 서정적인 작가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어야겠다.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뭐가 먼지도 모르고 읽었었다. 이번에 읽는 것이 아마 첫 독서가 될 듯 싶다.

 

 '헛간을 태우다'는 이미 애기드렸듯이, 굉장히 섬뜩한 소설이다. 이 단편소설이 영화 <버닝>의 모티브가 되어 멋지게 부활했다. 정말 색다르면서도 멋지게.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역시 <상실의 시대>의 한 장면에 쓰였다. 한 폭의 수채화같은 소설이다.

 

 '춤추는 난쟁이' 가 <반딧불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하루키는 이토록 소설을 잘 쓰는가 싶었다. 단편소설을 어쩜 이렇게 재밌고 맛갈나게 쓸 수 있을까 싶었다. 무척 재밌다.

 

 뒤의 두 작품 역시 나쁘지 않았다.

 

 

 아... 리뷰를 쓰니 <반딧불이>의 단편소설의 장면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른다. 단편 소설을 읽었는데 마치 단편 영화를 본듯이 그림을 본듯이 영상이 떠오른다. 기분좋은 느낌이다. 소설이 다시 읽고 싶어지는 느낌이다. 다시 읽진 않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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