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 에세이 - 청소년을 위한, 개정판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아름다운날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는 SF 3대 거장이시다. 과학에 관심이 커지면서 SF에 대한 영화, 책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아서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영화로 제작되었고,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이 로봇>이 영화화 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표작 <파운데이션>도 영화화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영화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서 클라크와 로버트 하인라인은 그 명상만 익히 들었지 아직 책으로는 만나보지 못했다. 비록 영화로는 만나봤지만. 아이작 아시모프는 최근에 출간된 <아자젤>에서 처음 만났는데, 단번에 그의 팬이 되었다. 작은 악마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을 다뤘는데, 너무나 재미있어서 얼마나 즐겁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 중에서 유머 쪽에서는 아이작 아시모프, 마크 트웨인, 더글러스 애덤스를 최고로 꼽고 싶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아프리카 모험>과 더글러스 애덤스의 <마지막 기회라니?>는 정말 강력히 추천해드린다. 배꼽을 잘 간수하면서 보셔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도서관 과학서가에서 기웃기웃 거리다가 눈에 확 들어와서 곧바로 빌리게 되었다. <아자젤> 한 권으로 이미 아이작 아시모트는 내게 믿고 볼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역시나 이 책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과학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SF소설 작가이기 이전에 보스턴 의대에서 생화학교수로 지냈었다. 과학 뿐만아니라 신화, 종교 등 그의 지식은 방대하다. 그리고 읽고 쓰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였던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도 타지 않았다. 다양한 장르에 500여 권을 남긴 다작가로도 유명하다.

 

 이런 사람은 에세이도 과학에세이를 쓴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를 쓰면 여행에세이, 음악에세이가 나오듯이 이 책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사랑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몰랐던 재미있고 다양한 과학 에피소드들이 산재해 있으며, 우리가 이미 알았던 과학이야기들도 아시모프의 손 끝에서는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정말 엄청난 재능이다. 그의 유머와 통찰력이 뻔한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쉽고 재미있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으면 과학을 좋아하게 되고, 과학에 관심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아니,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추천드리고 싶은 아주 좋은 과학교양입문서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2-15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시모프가 SF에 관한 책도 썼는데 절판되었어요. 중고가가 상당히 비쌉니다. 그 책을 가져보는 것이 제 위시 리스트 중의 하나입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16 01:40   좋아요 0 | URL
cyurs님은 다방면에 모르는게 없으시네요ㅎㅎ
<소설 마태우스>처럼 cyrus님의 손에 언제가 들어가길 기원합니다ㅎ

cyrus 2016-02-1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깊이는 없어요. 알라딘 서재 활동하면서 다양한 분들을 알면서 주워 들은 것뿐입니다. ^^

yamoo 2016-02-16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봇과 파운데이션이지요. 이 시리즈를 92년에 전 다 읽었는데, 다시 구입하려니 책 값이 몇 배가 오른 것인지...읽은 지 하두 오래 돼서 이미지만 남아 있습니다. 다시금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하고 구하려 했다가 포기..ㅜㅜ

고양이라디오 2016-02-16 18:10   좋아요 0 | URL
92년도라니 ㅎㄷㄷ하네요ㅎ
도서관에 10권짜리 구판이 있더군요.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ㅎ
 
만화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30
주니어김영사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리스토텔레스는 처음 만났다. 여기저기서 인사만 나눴었는데, 처음으로 부족하나마 이렇게 만화로 만나게 되었다. 역시나 고전 원문으로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맛만 살짝 본 것 같아서 아쉬웠다.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다.' 이 책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담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고,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학>은 국가철학과 정치철학을 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이다. 플라톤의 <국가>와 대비해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궁금한 게 있으면 그 분야를 먼저 연구했던 사람들의 실적이나 기록을 분석해서 정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역사적 방법론’으로 《정치학》을 썼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팔레아스, 플라톤의 사상을 분석하고, 그들과 자신의 생각이 왜 옳은지를 설명하고 증명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에서 발췌

 

 '역사적 방법론' 에 대해 배웠다. 어떤 분야를 연구할 때 굉장히 좋은 방법론이라 생각된다. 이전의 학자나 사상가들의 사상을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서 비판해보는 것. 학문의 기본적 방법론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역시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플라톤과도 일치했고,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 7 : 일본 1 일본인편 먼나라 이웃나라 7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국민 베스트셀러 <먼나라 이웃나라>이다. 일본은 2권으로 나뉜다. 1권은 일본인편이고 2권은 역사편이다. 역사편도 한 번 봐야겠다. 항상 일본만화를 보면 일본 역사에 대해 잘 몰라서 아쉬웠었다. 이 참에 일본 역사에 대해서 조금 공부해야겠다.

 

 일본인편은 무척 재미있었다. 일본인의 특성에 대해 그리고 그 특성의 이유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2007~8년 쯤에 친구가 일본에 있어서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선진국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다. 깨끗한 도시, 양보하는 자동차, 시민들의 높은 문화의식과 질서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고(물론 그 때는 스마트폰 이전 시대라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도 태연히 만화책을 보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사고방식들이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많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되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 제 몫을 다하려는 마음가짐, 빚진 것은 반드시 갚으려는 마음가짐 등이 그러했다.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가 새삼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먼저 일본과 일본인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리고 일본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 7가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일본이 세계 제3의 경제대국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던 7가지 고민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성공비결 7가지와 실패요인 7가지가 똑같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예전의 성공비결이 현재에서는 발목잡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일본을 들여다보는 것이 마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다른 두 민족이지만 사회 구조나 교육 등 또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았다. 재벌구조, 정관경의 유착 등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었다.

 

 일본은 아직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이 어떻게 이 늪에서 벗어나는지 지켜보고 교훈으로 삼던지, 타산지석으로 삼던지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 홉스 리바이어던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11
손기화 글, 주경훈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홉스, 로크, 루소로 이어지는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 사상의 이론적 단초가 되었다. 만약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없었더라면, 민주주의 혁명은 얼마나 늦춰졌을까?

 

 모두들 '사회계약론'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이다. 홉스는 인간은 원시시대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서로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권력을 누군가에게 이향했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서로 계약을 맺었다. 국가와 법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홉스는 국가를 <구약성서>의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강력한 힘을 가지지만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 계약에 의해 국가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계약에 의해 잘못된 국가는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다. 왕권신수설에서 사회계약론으로 사상이 이동하면서 주권은 그 계약의 주체인 국민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종교를 국가의 하부 구조로 두었다. 교황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때문에 홉스는 왕으로부터도 교황으로부터도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이런 책을 읽을 때 한가지 즐거운 점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홉스와 라이벌 관계였던 데카르트, 그리고 홉스가 찾아뵈었던 갈릴레이의 이야기는 왠지 흥미롭고 재미있다. 마치 '손오공이랑 루피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느낌이랄까?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특정 위인들이 실은 동시대 사람이었고 서로 교류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홉스는 시대를 앞당긴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러한 사상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인간의 기본권과 주권은 이러한 사상가들 덕분에 국민의 손으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도 변할 수 없다. 변화의 첫 단추는 인식의 변환이다.

 

 하지만 홉스의 사상은 아직 왕정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홉스또한 그 시대의 세계관, 사고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의 국가론, 종교론은 혁명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극소수의 천재들만이 가능하고 또한 사상적으로 밑바탕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때와 장소와 인물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홉스의 시기에는 아직 민주주의 사상이 여물지 않았지만, 분명 홉스가 그 씨앗을 뿌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민주주의제도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투표를 통해서 대표자를 뽑는다. 하지만 루소가 말했듯이, 국민은 투표를 할때만 잠시 주권을 행사하고 나머지는 노예상태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투표로 뽑는 것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대통령 뿐이다. 나머지 장관이나 총리, 대법관 등은 임명제이다. 대통령과 왕은 얼마나 다를까? 국회의원은 이 시대의 귀족들은 아닐까? 차라리 투표로 국회의원을 뽑는 것보다 과거제도로 뽑는 것이 더 낫지는 않을까? 민주주의는 분명 왕정, 귀족정 보다 가장 나은 제도임에 분명하지만, 중우정치로 흘러갈 때는 똑같이 그 폐해가 심각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징가 2016-02-14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시대를 앞서간 이론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권과 주권을 국민의 손에 넘겨주게한 사상적 기반이라 보기는 힘들지않나 생각합니다. 토마스 홉스는 강한 국가론 즉 전제군주제를 주장한 인물입니다. 그가 주장한건 기독교의 교부철학에서 벋어나 인간 스스로 통치하는 국가를 만들자는 좋은 취지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틀에서 크게 벋어난 정치이념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의 정치철학은 홉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전체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스탈린의 대학살로 이어졌으며 매카시즘의 사상적 기반을 제시했다고 봅니다. 이 사상은 대한민국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자들, 현재의 박근혜 정부 등에게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국가를 위한 애국심의 발로라고 주장할수있는 사상적 면죄부를 안겨준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7:34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도 홉스의 사회계약론 덕분에 왕권신수설의 절대왕정시대에 비해서는 왕권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홉스의 사상은 다행히 로크나 루소에게 계승되어서 더욱 탄탄한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은 이렇습니다ㅎ 민정식님 말씀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홉스 역시 그 시대의 군주론 이념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인문학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열띤 토론, 논쟁을 하고 왔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을 바꾸는 것도,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오늘은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의상 상대방을 A라고 하죠. A군은 상대주의론자 입니다. 저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 입장은 머라고 불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편적. 합리적 상대주의라고 해보겠습니다. 혹은 절대주의라고 해야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A군의 관점은 이렇습니다. 절대적 진리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보기에는 A군의 관점이 극단적 상대주의라는 것이고, 이런 극단적 상대주의는 제가 판단하기에 너무도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예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은 극명한 대립만을 확인한채 끝났습니다.

 

 예를들어 인신공양 문화가 있습니다. 고대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에서는 인신공양 문화가 있었습니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제물로 바쳤죠.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이것을 잘 보여줬습니다. 과연 이런 문화도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고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와 다른 문화일 뿐이고 여기에 어떠한 가치판단이나 개입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일까요? A는 그렇다고 보고,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떠한 타협점도 없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평행선만을 그을 뿐이죠.

 

 또 다른 예로 이슬람 문화에서는 '명예 살인'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이라크의 한 소녀가 영국인 남자와 친구를 맺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집안의 남자 형제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명예 살인이란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자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여성을 살해하는 풍습을 말합니다. 이것도 문화 상대주의 입장에서 인정해야 하는 걸까요? 그 문화의 사회규범과 시스템이 우리와 다르니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역시 단연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A군은 그렇지 않습니다. A군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인신공양이나 명예살인이라는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또 다른 진리에 의한 폭력이 됩니다. 아즈텍 문화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나 이슬람 문화에서 명예살인을 저지른 남자 형제는 제 생각을 이해를 못하겠죠. 분명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 왜 우리 문화에 대해서 너가 왈가왈부 따지느냐? 너가 진리냐? 어떻게 너가 진리라고 그렇게 확신하냐? 너가 옳다는 생각이 옳듯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라고 이야기하겠죠.

 

 이러한 예들은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A군은 힘과 권력, 시스템을 항상 우위에서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저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설득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이런 극단적 상대주의 논리에 설득당할 수 없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제 논리로 A군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평행선이죠.

 

 제가 최근에 본 뉴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도였나? 아무튼 어디에서 누군가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었고, 이것을 알게 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맞아죽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맞아죽은 사람이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맞아 죽은 사람은 그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그리고 그 어머니도 다른 사람들을 말리면서 오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맞아죽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런 일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와 다른 문화에서 벌어진 일이고,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 생각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야 옳은 걸까요? 설사 그 맞아죽은 사람이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었다고 해도 그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도킨스가 분노하는 이유는 사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분노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극단적 문화상대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친 짓은 어떤 이유에서든 미친 짓이죠. 인류가 지켜야할 보편규범이라는 것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없다는 입장과는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죠.

 

 물론 문화적 상대성은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에 지켜져야할 도덕이나 윤리는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어떠한 기준도 없다면,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할 도덕윤리가 없다면,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A군을 설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A군도 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극단적 ISIS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이미 시작지점이 다릅니다.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과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은 너무도 다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극단적 문화상대주의조차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최소한의 생명존중은 지켜져야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시든지 간에 그것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한 쪽을 맞다고 생각하면 다른 쪽은 틀렸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떠한 생각을 하시든지 간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만약 ISIS에게 포로로 잡힌다면 아마 설득을 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2-14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4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02-14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만도 문화 상대주의로 포용을 해야되느냐 마느냐로 논점을 이동하는 것이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죠. 먼저 야만이 존재하려면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률이 있어야 겠지요. 그마저 인정하지 않겠다면 이 논쟁은 성립하지 못하겠지요.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51   좋아요 0 | URL
배익화시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률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비로그인 2016-02-14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대적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것이 있기때문에 생긴 말이죠. 그래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말이 절대 진리가 되면 역설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50   좋아요 0 | URL
저 대신 좋은 답변을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망고林 2016-02-14 0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공계 교육을 받아서, `절대적 진리`라는 말에는 어떤 맥락에서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순수수학은 예외). 저는 모든 학문이 기본적으로는 과학과 같이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오류의 발견 및 수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동설도 한때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천동설과 치열하게 누가 더 정확한지 맞붙던 라이벌이었습니다. 지금 고양이라디오님과 A군이 벌이는 논쟁도 몇백년, 빠르면 몇십년 안에 지동설과 천동설 간의 논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는 박빙의 매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론에서 제일 얄미운, 비겁한 제3자 위치를 택해서 유감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넓게 보면 인류는 하나의 종으로 간주하기엔 너무 다양합니다. 물론 생식행위의 결과 가임인 자손이 나온다면 같은 종이다-라는 현재 우리의 종 분류의 카테고리 하에서는 인류는 모두 같은 종입니다만, 인간이 얼마나 특별하게 문화적인 종인지 생각하면 문화에 따라 좀더 세분화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인류는 자연선택설을 가장 자주 의심하게 만드는 종일 만큼 기상천외하고 발생 및 지속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들을 갖고 있는 종이기도 하죠.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우리는 사마귀 암컷이 사마귀 수컷과 교미한 뒤 머리부터 먹는다고 해서 사마귀를 욕하고 사마귀의 대체적인 번식수단을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 그렇구나- 신기해하죠. 좀 덜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오래된 미래] 등의 훌륭한 인류학 서적들이 수차 호소해온 `서구 중심 사고방식의 강요와 산업화 우월주의의 폐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인류의 기원]에서는 `농업은 인류가 택한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인용문도 나오죠. [오래된 미래]는 평화롭고 조화롭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던 라다크 사람들이 관광객, 개발, 돈&자본주의 등이 라다크에 들어오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빈곤하다고 느끼며 실제로 빈곤해지는지 보여줍니다. [인류의 기원]에서는 농업으로 인해 발생한 학대에 가까운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의 반복, 인구 폭발 및 인구 밀집에 따른 전염병과 영양 결핍 등 수많은 인간의 행복과 삶을 앗아간 온갖 악재를 설명해줍니다.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 꼭 선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저는 요즘 많이 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히 옳은 일이지만, 그 대상자가 아닌 그 대상자가 속한 문화 전체를 변화시켜야할 타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우월주의일 수 있으며 오히려 상대의 문화가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 반감만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종이 살아온 방식은 언제나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종이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종의 상황에 대한 적응력에 달려있다고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야만적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1:02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망고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교육의 기회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 뿐이라는 말씀에도 동의하고요. 하지만 망고님의 말씀대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보다 보편적 도덕률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망고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3자에 입장에서는 `그들의 문화는 참 특이하구나.`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문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높은 제단 위에서 순식간에 심장이 꺼내지고 싶지 않을 것이며, 돼지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오해를 받아서 맞아죽고 싶지 않을 것이며, 영국 남자친구하고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해서 가족에게 살해당하길 원치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문화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이 아닐까요?

이런 문화적 양식이 꼭 개인이나 집단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적 양식은 마치 `바이러스` 처럼 우리의 문화에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밈`의 개념처럼 말입니다.

망고林 2016-02-14 0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실례지만 IS는 Daesh나 적어도 ISIS로, 이슬람주의자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로 바꿔써주셨으면 합니다. Islamic state라는 이름은 그런 테러리스트 집단에게는 전혀 가당찮을 만큼 과분한 명칭이고, 그들은 이슬람(=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이슬람교의 경전을 자기네 구미에 맞게 고르고 해석하면서 스스로를 `원리주의자`라고 부르는 파렴치한 집단입니다. 진짜 이슬람의 핵심 가치는 화합과 평등과 평화인데 말입니다. 이미 모든 이슬람권 국가들이 Daesh의 만행을 비난하고 그들에 대한 지탄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원리주의자들과 같이 이런 폭력적이고 과잉보호적인 종교분파의 발생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 이들 모두를 `원리주의자`로 부르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Daesh(그들에겐 모욕적인 이름)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라고는 부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이름인 Islamic state라고는 불러주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동참해주시면 조금이나마 그들의 위세를 꺾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44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