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미지의 빨간약 - 단편소설로 시작하는 열여덟 살의 인문학
김병섭.박창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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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시간이 해결해줄까? 훌쩍 여행을 떠나야하나? 시간만 믿고 있기에는 시간은 너무 게으르고 느리다. 여행은 여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예술을 향유하고 자연환경 속에 몸을 맡기는 행위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곤 한다. 아마도 유일한 방법이리라. 아니다. 내게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을 통해서, 혹은 명상 등 내적 수양을 통해서도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빨간약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현직 국어교사 두 분이 쓰신 책이다.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여고생들이 단편소설을 읽고 선생님과 토론 수업을 하는 내용이다. 오로라^^님의 리뷰를 읽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는데, 이런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기대 이상이었고, 매우 좋았다.

 

 8편의 단편소설과 개성있는 인물들이 울고 웃으며 펼치는 문학수업! 나도 고등학교 때 교내에 문학동아리가 있었는데... 후회는 하지말자. 근처 여학교와 조인도 했었는데... 아무튼 이 소설과 같은 문학수업이라면 꼭 참가하고 싶다.

 

 8편의 단편소설 중 내가 본 소설이 2편이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변신>과 <인간실격> 이었는데, 특히 <변신>에 대한 해석이 내 해석과 일치해서 좋았다. 다른 단편소설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읽지 않았어도 저자의 해석을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개성있는 여고생들의 가슴아픈 스토리들도 각각의 단편소설과 잘 어울어져서 더욱 깊은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아픔을 문학을 통해서 이해하고 치유해가며 성장해가는 여고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함께 아파하기도 하고, 함께 치유되기도 하는 간접 경험을 했다. 공감가는 내용들이었다.

 

 문학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지는 책이었다. 문학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를 통한 공감. 공감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하나씩 하나씩 확인하고, 상처를 들어내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저절로 조금씩 치유가 되는 것이다. 문학이 상처에 빨간 약을 발라주면, 그 당시에는 참 쓰리고 아프지만, 어느새 거기에 딱지가 지고 새살이 돋아난다. 문학이 낯선 분들, 청소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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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책 2016-02-18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픈 생각이 드네요!! ㅎㅎ

고양이라디오 2016-02-19 01:19   좋아요 0 | URL
추천해요ㅎ
 
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한국 자본주의 2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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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이란 자신의 주장을 뒤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을 많이 확보한 책이다. 풍부한 통계자료들을 통해 설득력을 갖추면 자신의 주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근거들은 주장에 객관성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주장은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는 몇 백 페이지에 달할 수 있다. <총, 균, 쇠> 가 그랬다. 책을 통해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하고 싶었던 주장은 "문명의 격차는 인종간, 민족간의 우월성의 차이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적 요소들 때문이다." 였다. 이 한문장을 위해서 그는 750p를 써야했던 것이다. 장하성교수의 주장 역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수많은 통계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때문에 초중반부에 책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감내해야 한다.

 

 장하성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현재 한국사회의 불평등의 원인 탐구해냈다. 그리고 불평등을 해소할 대책을 이야기하고, 그 대책을 실현할 주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세가지에 대해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일단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장하성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던 산업화 과정에서 기간마다 차이는 있을지라도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소득분배가 악화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소득분배의 형평성이 오히려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 위기이후 불평등은 악화되기 시작하더니, 그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소득분배의 균형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해진 나라가 되었다. 불평등의 악화는 단지 소득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일자리 간의 불평등, 노동자 간의 불평등, 기업 간의 불평등, 세대 간의 불평등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한국은 세계 최악의 위치로 떨어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경제성장의 하락이 뒤따랐다. -p19

 

 현재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로 대기업과 재벌(초대기업)은 갈수록 부유해지고, 국민들은 갈수록 가난해졌다. 비정규직이 늘어났으며,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삼성, 현대, 국민은행 등의 재벌기업들의 임금은 높아졌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성장의 과실을 분배받지 못했다. 낙수효과는 허구였다. 이 참에 한국 경제 위기설을 주장하는 대기업, 친재벌 정권의 허구도 파해쳐보자.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OECD 국가의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평균 누적 성장률은 2.7%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같은 기간 동안에 17.1% 성장했고, 이것은 OECD 국가 중에서 네 번째로 높은 것이다. (중략) 2001년부터 2013년까지에도 한국은 누적 성장률이 68.3%로 OECD 평균의 2배를 상회하며,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다. -p332

 이렇듯 한국경제는 충분히 잘 성장했지만, 국민들의 삶은 그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업은 그 이상으로 나아졌다. 더이상은 이명박근혜정권이 주장하는 대기업이 잘되면 우리나라 경제도 살아나고 국민들도 잘살게 된다는 논리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대기업이 잘되면 대기업만 잘된다. 그리고 대기업경제만 살아나고 대기업의 근로자들만 잘살게 된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수많은 근거를 보여준다.   

 

 일단 현실을 즉시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화되었는지 책에 나온 자료들을 소개하겠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네 번째로 임금 불평등이 심하다. (1위 미국, 하지만 이 통계는 상용 근로자의 임금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때문에 임시직 노동자의 임금을 포함할 경우 훨씬 더 심각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추청된다.) 저임금노동자가 OECD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다! (1위 미국)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다! (하지만 이 통계 역시 임시직 노동자에서 비정규직 중 일부 무기계약직같은 사람들은 빠져있어서 이런 사람들을 고려할 경우 '세계 1등'이 될 것이다.) 한국은 임시직의 영구직 전환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1년 후 영구직 전환율 11.1%, 3년 후 22.4%) 왠지 자꾸 1위를 차지해서 뿌듯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직 나는 배고프다. 한국은 근속 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평균 5.5년) 그리고 한국은 노동자 회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한국 63.7% 2위 터키 48%) 다 소개하려면 끝도 없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아무튼 각종 지표와 통계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고용환경은 최악이며, 임금불평등또한 심각하다. 위에 소개한 지표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문제는 바로 이런 고용불평등과 임금불평등이다. 장하성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의 불평등 근원은 재산의 격차보다는 소득의 격차이며, 소득의 격차는 임금의 격차로 만들어진 것이다. 임금의 격차는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에서 찾아야 하며,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의 책임은 재벌 대기업에게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p28

 

 그렇다. 문제의 근원은 재벌대기업에 있다. 1990년대부터 2014년 까지 가계소득은 8% 감소하고, 기업소득은 8%증가했다. (정부소득은 그대로이다.)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대기업 평균임금의 62.3%이다.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90% 수준이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같은 초대기업과의 임금격차는 더욱 크다. 대기업 평균 연봉은 삼성전자의 57%, 현대자동차의 60%수준이고 중소기업의 평균 연봉은 삼성전자의 35%, 현대자동차의 37% 이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간의 임금 격차도 이와 유사하고,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55.8%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더욱 암울한 사실은 자영업자의 평균소득은 임금노동자의 평균임금의 60%에 불과하고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4년 동안 한국 경제는 73.8%포인트 성장했는데, 소비자물가지수를 적용하여 실질 가치로 환산한 자영업자의 영업이익은 무려 17.3%포인트가 줄어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로 우리 주위에 치킨집이 그토록 많이 생겨나고 망한 것을 보면 이 지표가 이해가 되실 것이다.

 

 굉장히 지루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이런 수많은 통계자료들을 보고, 또 그래프나 그림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참으로 고단했다. 사실 나도 '저자가 이렇게까지 많은 자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핵심적인 것만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방금 전까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또한 수많은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마음이 드디어 이해가 간다. 단순히 "우리사회는 굉장히 불평등해졌고 대기업-중소기업간, 정규직-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가 커지고 자영업자는 오히려 14년 전에 비해 무려 17%나 살기 힘들어졌다." 라고 요약하고 넘어가기에는 왠지 아쉽고 수많은 자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자 똑똑히 봐라. 우리 사회가 이렇단 말이다!" 라고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저자의 노고가 드디어 이해가 된다.

 

 본래, 짧고 간결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리뷰를 지향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책은 책 내용들을 제대로 인용하고 요약해야 할 것만 같다. 그만큼 모두가 알아야할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참아주시라. 이제 7부 능선을 넘었다. 이제 결론부분으로 들어가겠다.

 

 

 앞으로는 책 내용을 인용하지 않고 그냥 평소대로 생각나는 대로 요약하면서 이야기하겠다. 시간이 늦었고 힘도 든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는 분들도 충분히 고생이 많으셨으리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원인을 지적했으니 이제 해결책이 남았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소득재분배가 아닌 원천적분배를 주장한다. 복지정책으로 소득재분배를 실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문제의 본질에서도 어긋난다. 문제의 원인은 과도하게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구조(갑을관계)와 비정규직 문제 때문이니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런 해결책을 실현할 주체로 미래세대인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에게 깨어나고 일어서서 참여와 행동으로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현재사회를 바꾸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가지 통계자료들로 50, 60대 기성세대와 20, 30대 청년세대 간의 인식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현 사회는 지역갈등만큼이나 세대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그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현재도 60대 이상의 70%가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에 20, 30대의 80%는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 고 평가를 내린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기성세대는 대북정책이나 출신지역에 이념이 좌우되는 반면에 청년세대는 소득분배와 경제성장에 대한 태도가 이념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청년세대는 대북정책이나 출신지역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총평과 비판을 하고 끝맺으려 한다. 장하성 교수의 글은 아주 읽기 편하고, 논리적이다. 편파적이지도 않고 간결하고 명확하다. 문체가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다. 통계자료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며, 분배의 필요성을 다각도로 이야기한다. 너무나 많은 자료들로 인해서 힘들기는 했으나, 어느정도는 감내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사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현실과 불평등의 원인,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했고, 청년세대에게 희망과 조언을 건내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여기까지 훌륭하고 좋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있었다. 글이 길어지지만 아쉬운 점 몇가지를 말하고 마무리하겠다.

 

 아쉬운 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책 제목에는 분노가 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분노할 수 없었다. 너무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통계와 자료를 분석하며 이성적인 두뇌를 쓰느라 감성적인 두뇌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좀 더 감정에 호소하는 글이나 자료, 혹은 사례나 사진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전혀 분노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불평등이 세계 몇번째고 임금격차가 얼마나 심하고 이런 것들만으로 사람을 분노하게 할 수는 없다. 강렬한 사진, 가슴아픈사례 이런 것들이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을 크게 발화시킨 것은 한 장의 강렬한 사진이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사진은 시위 현장에서 경찰견이 달려들어 무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꿋꿋하고 의젓하게 서있는 한 청년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흑인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사진이었고, 수많은 흑인들과 그리고 그것을 본 백인들의 각성을 일으키는 너무나 강렬한 사진이었다.

 

 두번째, 다행히 저자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청년세대에게 세상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이 책의 전체적인 논점과 조금 어긋나는 이야기이다. 책 후기에 저자의 변을 들어보자.

 이 책의 목적은 현실을 바꾸는 데 있다는 점에 대한 자각과 되새김질을 반복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불평등한 한국의 현실을 분석하는 것과, 청년세대에게 세상을 바꾸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두 가지의 결이 다른 이야기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 책의 원초적인 집필 동기는 불평등 분석이 아니라 청년세대들에게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하고,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해달라는 기대와 소망에서 출발한 것이다. -p456 

 

 그렇다. 한국의 불평등한 원인과 청년세대는 큰 관계가 없다. 장하성교수는 애초에 집필동기가 청년세대를 촉발하기 위해서 였다보니, 결국 어쩔 수 없이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불평등의 해결주체는 청년세대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특히 기성세대의 각성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청년 세대는 이미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노력하고 있다. 등록금 반값투쟁, 알바노조, '30분 배달제'폐지, 최저임금 등 참여와 행동을 실천하고 있다. 여기에 장하성교수는 "아직 부족하다. 좀 더 노력해달라." 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장하성교수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 고정된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문제의 본질을 놓친 건 아닌가 싶다. 진짜 문제는 기성세대에 있다. 장하성교수는 기성세대는 이제 틀렸다고 포기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잘못이라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시험 성적에서 평균을 올리기 위해서는 80점 맞는 과목을 90점 맞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20점 맞는 과목을 30점 맞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훨씬 쉬울 수 있다. 어쩌면 청년세대가 더욱 노력하는 것보다 일부 기성세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는 결국 청년세대의 부모이다. 기성 세대의 5%만 바껴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생길 수 있다. 기성세대 중 자신들이 경제성장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5%만 깨닫고 각성하게 되어도 충분하리라. 대기업, 친재벌 정책을 옹호하는 정당에 계속 투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한국사회의 문제는 청년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며 청년세대만이 노력하고 바꿔야할 문제도 아니며 청년세대만이 해결할 주체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청년들의 부모또한 함께 인식을 바꾸고, 각성해야 한다. 함께 바꿔나가야 한다. 이것이 더욱 쉬운 일이며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청년세대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설득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설득하고, 대화해야 한다. 장하성 교수가 자신의 책을 이런 용도로 사용하라고 청년세대에게 이야기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그만큼 설득력있는 아주 좋은 자료다. 자식이 부모에게 보여줄 이런 좋은 책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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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8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기 전에 <한국 자본주의>를 읽어봤습니다. 이 책의 출간 연도를 생각하면 상당히 늦게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분량도 조금 두꺼운데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들이 미디어나 다른 책에서 본 것 같아서 읽다가 말았습니다. 그냥 서평만 참고했습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18 16:55   좋아요 0 | URL
저도 읽어볼까하다가 너무 두꺼워서 말았는데, 서평만 참고해보는것도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ㅎ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6-02-26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불평등이 하루 빨리 좋게 진전되었으면 합니다.
고양이라디오님 좋은 하루되세요.

고양이라디오 2016-02-18 21: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롤리팝님도 좋은 밤 되세요^^
 
하루관리 - 인생을 바꾸는 하루관리의 기적
이지성.황희철 지음 / 차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이지성 작가의 <하루관리>란 책은 시간관리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자기계발서이다. 북플에서 이지성 작가에 대한 디스글을 자주 본다. 굳이 쓸데없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댓글을 달지는 않는다.

 

 우선 자기계발서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단순하다. 자기계발을 도와주는 책이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이것을 혼동한다.

자기계발서에서 인문학을, 철학을, 과학을, 혹은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을 찾는다. 분식집에서 랍스타를 주문한다. 혹은 노래방에서 클래식 음악을 선곡하고, 악기를 요청한다. 나는 자기계발을 하라고 모는 사회만큼이나 자기계발은 무용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나쁘고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남들에게 어떠한 조언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안되는 것은 남들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는 아주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자기계발서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조언이 마음에 와닿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조언이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시간관리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시간의 소중함과 시간관리의 필요성, 그리고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자기계발서는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지 않는다든지, 사회의 모순으로부터 눈멀게 한다든지, 사회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잘못 인식하게 한다든지 하는 말들은 모두가 허망하다. 자기계발서만 읽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게서 자기계발서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회가 아프면 개인은 그 속에서 시를 짓고 사랑을 나누고 행복하면 안되는 것인가? 사회가 불평등하면 개인은 자기계발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생각한다. 수신이 우선이다. 나를 바꿔야 사회도 바꿀 수 있다. 나는 자기계발과 수신을 혼동한다. 차라리 그것이 낫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판들에 대해 따져보자. 첫번째 비판은 '자기계발서는 쓸모없다. 도움이 안된다. 뻔하다.' 라는 비판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안 읽으면 된다. 쉽게 해결 된다. 아무도 그들에게 자기계발서를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멍청한 사람들을 돕고 싶을 것이다. 여기서 대립이 발생한다. 정말 자기계발서는 쓸모 없는 것일까? 도움이 안될까? 뻔한 내용일까? 일단 나는 자기계발서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위의 명제에는 반례가 존재한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존재하면 저 명제는 항상 참은 아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남들도 도움이 안된다는 1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면 문제는 해결 된다. 자기계발서는 뻔할까? 역시 뻔한 사람에게는 뻔하고 새로운 사람에게는 새롭다. 그리고 원래 자기계발서란 뻔할 수도 있다. 뻔해서 안될 것은 또 머인가? "시간은 소중하다." 라는 뻔한 이야기를 또 해서 안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 뻔한 것들을 얼마나 뻔하게 잘 실천하고 있는가? 자기계발서가 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죄와벌>도 뻔하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죄와 벌' 이라니 얼마나 뻔한가! <노인과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노인이 고래잡다가 실패한 이야기라니. 뻔한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문학작품도 읽고 나면 뻔한 줄거리이다. 한 줄로 요약 불가능한 책은 없다. 하지만 그 뻔함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숭고함이 숨겨져 있고, 심오한 사상이 들어있다.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다. 뻔함 속에 진리가 들어있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읽지도 안고 함부로 뻔하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뻔하게 느껴질지 궁금하다.

 

 두번째 비판은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자기계발서는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최근에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에세이>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도 사회의 모순과 사회의 불평등을 지적하지 않았다. 과학책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실망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은 황당해 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책을 자기계발서로 아이작 아시모프를 이지성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에세이>를 <시간관리>로 바꾸면 사람들은 공감한다. 왜 우리는 자기계발서에게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해주기를 원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학자금대출과 취직이 안되서 힘들어 하면서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다고 하자. 자기계발서에서는 그 사람에게 "너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야." 라고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TV광고에서도 예능프로에서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헬스장에서도 알려주지 않고, 지하철 안내방송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계발서에서는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한채 자기계발의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논리인가! 그 사람이 접하고 있는 것은 자기계발서만이 아니다. 누구도 자기계발서에만 둘러싸인채 세상을 살지 않는다. 자기계발서 말고도 사회의 모순을 알려줄 책들이 무수히 많다. 그런 논리라면 자기계발서만의 잘못이 아니라 (당신을 포함해서) 사회의 모순을 알려주지 않는 모든 것들의 잘못이고, 사회의 모순을 깨닫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그 사람의 잘못이다. 도대체가 왜 자기계발서가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고, 허수아비처럼 공격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모든 자기계발서의 표지에 ※자기계발서는 사회의 모순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자기계발서에만 장시간 몰두하면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에 눈 멀고 이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라고 주의사항을 알려줘야 할까?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그렇다면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을 알려주지 않는 모든 책에 이런 주의사항을 붙여야 할 것이다. 심지어 시집같은 문학작품에도 말이다. 책 뿐만 아니라 모든 광고, 모든 예능프로, 모든 상품, 심지어 헬스장 등 끝도 없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에도 이런 주의사항을 붙여놓고 다녀야 할 것이다. 헬스장에서는 사회의 모순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피곤하고 지치는 이유는 장시간의 노동, 임금착취, 사회 불평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데 헬스장은 그것을 외면한채 개인에게만 건강해지라고 말하고 사회의 모순에 눈멀게 한다. 왜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자기계발서에는 그대로 적용하는 것일까? 누가 속 시원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세번째 비판은 '그냥 자기계발서는 나쁘다.' 라는 비판이다. 왜 생긴대로 살면 되지 자기계발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읽어서 다른 사람들과 같아져야 하느냐 라는 비판이 있다. 역시나 해결책은 이런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안 읽으면 된다.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자기계발을 수신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향상을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생긴대로 살기에는 우리는 너무도 불충분하다. 너무 게으르고, 나태하고, 천박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고, 충동적이고, 어리석다. 간단히 말해서 어리석다. 최근에 본 책 <인간의 품격>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을 '뒤틀린 목재'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자는 결단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행동은 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고칠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나이만 먹어갈 뿐이다. 나이들어서 남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 나이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인간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사실 이렇게 이야기해도 결국은 공허할 뿐이다. 결국 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고, 나의 인식일 뿐이다. 자기계발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이 글로 인해 설득당하기는 커녕, 더욱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기계발서가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쓸모없는 것 같다. 사실 자기계발서보다 좋은 책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좋은 자기계발서는 드물다. 나도 굳이 자기계발서를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장자>의 말씀처럼 쓸모없는 것은 없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다. 자기계발을 수신의 관점으로 생각해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그러면 모든 책이 자기계발서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자기계발에 쓰일 수 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물론 내가 모든 자기계발서가 좋고, 모든 자기계발서 작가가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발 이것을 혼동하지 마시길 바란다. 소설도 모든 소설이 좋고, 모든 소설이 재미있고 훌륭할 수가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도 무수히 많이 봤다. 자기계발서도 좋은 책이 있고 나쁜 책이 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내가 구태여 말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몇 권의 안좋은 자기계발서와 자기계발서작가를 놓고 모든 자기계발서가 안좋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나는 굳이 자기계발서가 사회의 모순에 대해 말해야하는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해주길 기대하고 읽지 않는데 말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만은 반드시 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사회의 모순을 모르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지 자기계발서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혼동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자기계발서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책이 아니라 개인을 바꾸기 위한 책이다. 사회를 비롯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하지만 자신을 바꾸는 것은 그보다 쉽다. 둘다 해서 안 될 것도 없다. 나를 바꾸는 것과 사회를 바꾸는 것은 전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택일의 이분법이 아니다. 제발 이것도 혼동하지 마시길. 자기계발을 한다는 것이 사회의 모순에 눈감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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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2-16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 내용도 좋고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판에 대체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과학책이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저자한테 실망했다는 의견은 의외군요. 과학책이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거나 대척점을 이뤄야한다는 말씀인가요? 자기계발서까지도요.

고양이라디오 2016-02-16 08:21   좋아요 1 | URL
그것은 반어법이었습니다ㅎ 글을 수정해야겠네요.
물론 저는 과학책을 읽을때 사회모순을 지적해주길 기대하면서 읽지 않습니다.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나 힐링서에게서 사회모순을 지적해주길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저자에게 실망했다느니 하는 것을 패러디해 본 것입니다.
아이작아시모프에게 실망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ㅎㅎ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리하라의 세포여행 봄나무 과학교실 9
이은희 지음, 박양수 그림 / 봄나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하리하라의 음식과학>을 보고 그녀의 팬이 되었다. 쉽고 친절한 개념설명 덕분에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 눈높이에 딱 맞았고 기초적인 개념들을 확실하게 알고 이해하게 되어서 좋았다.

 

 이 책 또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학습동화이다. 세포에 대한 이해와 우리 몸, 그리고 식물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고마운 책이다. 생물의 가장 기초적인 구성단위인 세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충분히 유용하리라 생각 된다. 사실 얕잡아 봤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다. 생각보다 내용이 알차서 술술 넘어가지 않아서 살짝 답답한 면도 있었다. 정보량이 꽤 된다.

 

 세포에 대한 이해와 기초적인 생물학 지식들을 알려주는 좋은 학습도서였다. 하리하라의 과학도서들을 섭렵해야겠다. 도움이 많이 된다. 따분한 교재들, 교과서들 보다 재미있고 내용도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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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전사의 탄생 - 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최근에 프랑스에서 IS에 의한 테러가 벌어졌다. 그 이전에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에 의한 9.11테러가 있었다. 여전히 세계는 끊임없는 테러에 시달리고 있으며, 중동에서는 잠시도 총알과 포탄이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다. 분쟁, 전쟁, 내란, 소요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신이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악마가 있다면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으리라.

 

 뉴스에서는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팔레스타인 난민, 시리아 내전, 이집트 민주화 운동,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미국의 이라크전, 탈레반, 알카에다, IS 등 끊임없이 정보를 쏟아내고 있지만, 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설사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피상적인 지식만을 접하게 된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뉴스에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중동은 현재 끝없는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세계는 그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 언제 어디로 거슬러가야 올라가야 할까? 병이나 증상을 진단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on set을 파악하는 것이다. 언제 시작되었나? 증상이 발현되기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이슬람 분쟁의 시작은 언제였으며,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세가지로 본다. 첫째는 서방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건설이다. 때가 근원적인 분쟁의 씨앗이다. 지금 아프리카가 분쟁이 소용돌이에 휩싸인 이유와 같다. 서방에서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자기마음대로 영토의 경계선을 그었다. 하나의 영토 안에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민족, 종교를 우겨넣었다. 또는 미국과 소련의 이념에 의한 영토나누기도 벌어졌다. 마치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듯이, 중동도 그렇게 강대국들의 임의대로 쪼개졌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이다. 이는 미국을 우방으로 한 이스라엘과 중동 대립의 시작이었고, 끊없는 성전과 테러의 시작이었다. 이로 인해 제4차 중동전쟁까지 벌어지고, 수많은 '자하디스트(성전을 수행하는 사람이란 뜻)'를 양산해냈다.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종교전쟁, 미국에 대한 깊은 증오와 혐오가 뿌리내렸다.

 

 셋째,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이다. 이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결국 소련의 발목을 잡아서 소련의 붕괴로까지 이어지게 되고, 소련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은 몰래 뒤에서 어마어마한 게릴라 조직의 양성에 돈과 무기를 제공한다. 미국은 무장조직, 게릴라조직에 대한 양분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키운 자식들이 악마가 되어 돌아올지 모른채.

 

 정리하자면, 서방의 제국주의와 식민지건설이 분쟁의 씨앗을 뿌렸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의해 서방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증오가 뿌리내렸다. 그리고 1979년 소련.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통해서 무장조직, 게릴라조직은 미국에게 양분을 공급받게 된다. 그리고 이 조직들은 훗날 테러조직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뿌린대로 거둔다. 결국 테러는 서방에 대한 이슬람의 무력투쟁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시대때 중국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새워서 이토히로부미 암살 등 테러작전을 펼치고, 국지전, 게릴라전을 벌이는 것과 똑같은 양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슬람의 테러에 공감하지 못한다. 민간인까지 휘말려드는 무차별 테러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이스라엘, 소련의 침공에서는 민간인이 휘말려들지 않았을까? 민간인을 피해서 총을 쏘고 미사일을 발사했을까? 결단코 아니다. 똑같은 관점에서 보면 미국, 이스라엘, 소련의 침공과 이슬람의 테러는 동등하다. 이슬람은 테러가 아닌 전쟁을 수행중이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테러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서방과 이슬람세력간의 전쟁으로 단순하게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어마어마하게 훨씬 복잡하다. 이슬람 국가간들 간의 전쟁(이란과 이라크,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등), 국가 내에서의 권력을 잡기위한 내전(시리아 내전, 아프카니스탄 내전, 이라크 내전 등),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종파갈등, 독재와 민주화투쟁,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종교분쟁 등이 함께 중동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가장 큰 핵심이 내게는 종교로 보였다. 종교만큼 사람을 과격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배타적인 종교관은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다. 종교가 구심점이 되어서 쉽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성전의 이름하에 자살테러를 일으킨다. 해결의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하고 눈멀게 한다. 물론 종교는 하나의 이유에 불과하다. 핵심적인 이유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종교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 해결이 어렵다는 면에서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은 기대이상으로 아주 좋았다. 이슬람 분쟁의 역사와 그 원인에 대해 알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책들을 고르던 중 가장 괜찮아보여서 선택했다. 내가 원하는 내용이 딱 담겨있었고, 글도 읽기 좋고 편했다. 잘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에, 익숙치 않은 지명, 명칭 등으로 인해 어려웠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맥을 잡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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