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보통은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진 않습니다.) 제 글을 읽어보시고 의견이나 본인의 생각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정말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질문은 간단합니다. 그 때 그 당시의 홀로코스트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옳은가 그른가?

 

 오늘 인문학 모임을 했습니다. 오늘의 선정도서는 <죄와 벌>, 그리고 영화는 <시카리오>를 다뤘습니다. 정의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토론했습니다.

 

 자려고 누웠다가 오늘 나눴던 이야기들이 떠올라서 이걸 빨리 글로 쓰지 않으면 잠 못 이루고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글을 씁니다.

 

 

 윤리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칸트로 대표되는 절대론적 윤리관과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상대론적 윤리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도덕법칙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토론 도중에 저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홀로코스트도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사례를 통해서 상대방의 논리를 무너뜨리려는 생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인데, 상대방의 대답은 "그 당시, 그 상황을 고려해봤을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무어라 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저 대답이 미친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미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임인원이 5명이었는데, 2명이 이런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저와 입장을 같이한 나머지 두 명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 두 명은 그다지 충격을 받은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그 상황에서 홀로코스트가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두사람을 타임머신에 태워서 그 당시 그 상황 속 홀로코스트로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홀로코스트가 정당하다고 생각할까요?

 

 

 사실 저는 하소연을 하기 위해 여기 글을 올린 것입니다. 저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싶어서 말입니다. 사실 누군가가 제글에 댓글로 "홀로코스트는 정당했다." 라고 글을 올리고 저를 설득하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제가 설득당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홀로코스트는 정당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홀로코스트는 정당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여기가 만약 프랑스나 독일 등의 유럽국가였다면 저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저는 열심히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통해 악의 평범성, 시스템화된 악, 무사유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강조해도 소귀에 경읽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나타나서 산파술을 통해 그 두 명의 생각을 검증해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는 포기가 빠른 편입니다. 저의 능력부족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그 두 명을 설득할수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말문이 너무 쉽게 막혀버립니다. 그리고 감정이 앞서다보니 오히려 침묵하게 됩니다. 더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생각밖에 안드는 거지요. 그러고보면 소크라테스는 참으로 끈기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소크라테스 선생도 저처럼 놀라서 말문이 막혀버렸을지도요.

 

 

 글을 이렇게 써놓고 각자의 의견에 대해 말씀해달라고 하다니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되었네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정말로 궁금합니다. 정말 대국민투표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도 정당했다." 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설마 5명 중에 2명, 40%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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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득 2016-03-13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라디오님의 생각에 동조합니다. 홀로코스트가 용납될 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요? 굳이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관을 따르지 않더라도 절대 없겠죠.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란 책을 썼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홀로코스트가 아이히만에게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도 같이 어떤 괴물성, 어떤 예외가 아니라 현대성 자체에 내재된 보편성의 결과로 봐야만 제2의 홀로코스트를 막을 수 있다고 봤었죠. 그는 악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말 없는 윤리적 시선을 외면하는 눈길과 무감각이 바로 악이라고 말이죠. 악이란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나보다 약한 타인의 윤리적 호소에 대한 무시나 거부도 악으로 봐야한다는 것이죠. 상황에 따라 홀로코스트를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제겐 아직 홀로코스트가 절멸된 것은 아니며 다시 반복될 위험을 알려주는 것 같네요. 더구나 소귀에 경읽기라니! 두서가 많이 없습니다만 고양이라디오님 지지를 위해 감히 말해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13 11:05   좋아요 0 | URL
헤르메스님 좋은 말씀 격하게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단비같은 댓글이네요. 하지만 상대방의 이런 답변이 예상됩니다.

첫째, 홀로코스트가 용납될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미래 사회의 특별한 상황에 처하면 정당화 될 수도 있지 않느냐?

혹은 둘째, 왜 지그문트 바우만의 악의 정의를 내가 받아들여야 되느냐? 그 정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개인의 정의일 뿐 그것이 모든 시대 모든 사람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절대 진리는 아니지 않느냐? 충분히 다른 악의 정의가 있을 수 있고 지그문트 바우만과 상반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생각이 보편타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

라고 나올 것입니다. 저도 어느정도 학습효과가 있어서 이제는 상대방의 반응도 예상이 되네요. 저는 알파고는 아니지만 1초 만에 `더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라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하루키의 소설의 이런 문구를 좋아합니다. ˝설명하기 전에 모르는 사람은 설명해도 모른다.˝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성을 설명하기 전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아무리 설명해봐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을 바꿔야 되는데, 그 독을 바꾸기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저도 그들의 논리에 홀로코스트나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겠지만요...

오드득 2016-03-13 12:39   좋아요 1 | URL
실은 고양이라디오님이 생각하신 상대방의 반박이 2차 대전 전에 법철학의 주류이기도 했습니다. 근대 이후 법철학사는 자연법과 실정법의 투쟁 그 자체였습니다. 특수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법을 인정해야 하는가가 근본이었죠. 그런 보편적인 법을 자연법이라고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가 가장 대표적인 자연법이죠. 반면 시대와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게 실정법입니다. 근대엔 자연법 부정론자들이 우세했죠. 고양이라디오님을 반박했던 이들처럼 말이죠.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홀로코스트 때문에 자연법이 다시금 강하게 요청되었고 지금은 자연법적 가치가 보편이 되고 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학살자에 대한 국제재판이 가능했던 것도, 북한인권법 같은 것도 2차 대전전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이제 가능하죠. 다들 자연법이 실정법에 우선한다는 사고가 깔려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법철학자 존 피니스는 과연 정말 이런 자연법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를 반박하기 위해 고대부토 현재까지 전 세계 모든 자료를 모아 검증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인류 보편으로 인정되는 자연법적 명령(칸트의 의무 명령 같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실정법이 반드시 지켜야 할 9개의 자연법적 가치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반박하는 상대주의, 특수주의는 현재까지 충분히 반박되어온 상황이고 현재는 적어도 학계에서는 아무도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독단이고 아집일 뿐이죠. 그러므로 고양이라디오님 말씀대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한 것이 독일의 나치를 만들고, 아도르노가 비판했던 도구적 이성이었죠. 목적 자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완수할 수 있느냐에만 이성을 사용할 뿐, 목적 그 자체가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상황에 따라 살인도 허용된다는 것은 사실우리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본 아이덴티티 같은 영화에서 많은 이들을 지키기 위한 임무 때문에 일반인들이 사건에 휘말려 희생되는 것 같은 장면이죠. 전염병이 창궐하는 사태를 다룬 영화에서도 이런 상황은 자주 등장합니다. `콜레트럴 데미지`란 말도 있듯이 말이죠. 다수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소수의 사람을 위험에 빠뜨려도 좋은가? 안되는 일이죠. 필요불가결할 일일 수는 있어도 결코 정당화되어선 안되는 일이죠. 문제는 정당화에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수의 이익을 구했기 때문에 이 일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설령 그런 이유로 소수를 희생시켰더라도 거기에 대한 책임과 사죄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일을 당연시여기는 게 정말 커다란 문제라고 봅니다. 댓글이 너무 길어집니다만 라캉은 유토피아의 추구 자체에 이런 폭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토피아 때문에 이런 폭력성이 정당화되고 있다고 했었죠. 실은 알고보면 우리의 문명 자체가 이런 폭력성을 한 축으로 해서 존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보다 열등한 타자에 대한 폭력적 배제가 늘 상존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독일 나치가 예외적 현상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종북몰이, 색깔론 많잖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전 더욱 바우만의 악에 대한 정의가 보편 윤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분명 주제넘지만 그런 취지로 댓글을 달고 있는 것입니다. 실은 여기엔 오직 하나의 마음 밖에 없습니다. 고양이라디오님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으며 언제까지나 그것을 밀고나가셨으면 좋겠다. 그것 뿐이지요. 잡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럼, 휴일 잘 보내세요^^

고양이라디오 2016-03-14 20:05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자연법이 실정법에 우선한다.˝ 라는 의견에 학계에서 동조하고 있군요. 점차 일반인들의 의식에도 스며들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헤르메스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필요불가결한 상황이라고 해서 소수의 피해를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피치 못하게 소수에게 피해를 줘야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한 협의와 논의를 해서 동의를 구하고 책임의식과 사죄, 보상 등이 주어져야지, 어쩔 수 없다라고 당연시해서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03-13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3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뒤 맥락이 없어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홀로코스트를 지지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아닙니까 ? 뭐라 하던가요 ?

고양이라디오 2016-03-13 10:49   좋아요 0 | URL
정확한 맥락은 생각나질 않고요. ˝선한목적은 악한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란 주제로 토론을 나눴습니다. <죄와 벌>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고요. 두 명은 정의나 선, 악의 개념은 상대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살인하면 안된다.` 라는 명제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때문에 홀로코스트도 정당하다는 논리까지 가게되는 것이고요.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상황에 특별한 논리였으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11:30   좋아요 1 | URL
글쿤요. ㅋㅋㅋㅋㅋㅋ.

선한 목적을 위한 악한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항상 도덕적 딜레마를 다룰 때 나오는 소리입니다만.. 이 논리를 확대해서 홀로코스트도 정당하다, 라고 말한다는 그것는 논리 박약`인 것이죠. 홀로코스트란 집단성을 의미합니다. 대량 학살이잖아요. 이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테러했다. 이것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씁니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이토 한 명을 죽이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안중근이 일본 전체에 핵폭탄을 떨어트려서 홀로코스트를 감행한다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 그런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나찌와 다름없죠. 그 논리에 대해 찬성한다면 그 사람은 나찌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14 19:56   좋아요 0 | URL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전쟁에서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처럼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 명을 암살해도 되면, 두 명도 될까요? 이런식으로 연속성 문제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홀로코스트도 600만명이라는 수치로 양적으로만 접근하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유대인 한 명이 살해당했다고 해도 결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되선 안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토 히로부미 암살도 어려운 문제같습니다.

yamoo 2016-03-13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라디오 님은 항상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책을 보시는 듯해서 리뷰 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쓰신 논조에 동의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14 19:51   좋아요 0 | URL
칭찬에 동의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6-03-14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극적인 제목이네요.
 

 

 얼마전에 읽은 책 아마도 <마음의 미래>였던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에서 아직 바둑에서는 A.I 가 인간을 앞서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벌써 인간이 기계에 지는 일이 벌어졌다. 5판에서 아직 첫판을 내준 것이라 속단하기 이르지만, 불계패했다는 것은 사뭇 충격적이다. 기계를 대하는 것이 낯설어서 였을까? 방심했을까?

 

 

이세돌 9단은 "4개월 전에 판후이를 꺾을 때만해도 알파고는 나와 실력을 논할 수준은 아니었다"며 "그러나 실력 향상 속도를 감안하면 향후 1년~2년이 지나면 승부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이어 "알파고의 대국을 보면서 그에 맞춰 훈련하고 있는데 프로 3단 정도 레벨로 보고 있다"며 "어쨋든 이번 대결은 컴퓨터 인공지능이 프로기사에게 호선으로 도전한 첫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위의 내용은 이세돌 9단의 인터뷰 내용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는 이세돌의 예측을 분명 넘어섰다. 1년이 아닌 4개월 만에 이세돌을 따라잡았다. 20년 전에 인공지능이 체스에서 세계챔피언을 압승했다. 이제 바둑도 인공지능의 손에 왕좌가 넘어가는 것일까?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많아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는데 역시나 미래는 빠르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인공지능의 미래를 낙관하고 두려워하기에는 조금은 이르다. 알파고는 그냥 바둑두는 프로그램일 뿐이지 어린아이는 고사하고 곤충정도의 지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비전 2003, 미치오 가쿠)에 따르면 현재 인공지능의 수준은 곤충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느정도까지 발전했을지 궁금하다. 인공지능도 생물 진화의 역사를 똑같이 밟아나가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곧 어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지능까지 급속도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감각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 감정과 경험을 통한 학습능력, 상식과 사고력, 심지어는 자아까지 갖게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과학자나 미래학자는 21세기 말정도는 되야 이런 미래가 다가올 것이라 전망했는데, 어쩌면 조금은 빨리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공각기동대>라는 영화를 소개했었는데, 조만간 한 번 봐야겠다. 이 영화 예전에 한 번 봤는데, 그 때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이니 관심있으신 분들께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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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1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공지능의 힘이 대단해요. 오늘 또 이겼어요.

고양이라디오 2016-03-10 19:14   좋아요 0 | URL
네. 먼가 우울하네요. 삼연패의 향기가 벌써 풍기네요.

비로그인 2016-03-10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무생물이 인간의 지적 능력과 거의 차이가 없으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3-10 23:21   좋아요 0 | URL
바둑이나 체스같은 것은 일정한 방식이나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으로 많아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 봤는데, 컴퓨터의 전산처리 속도가 빨라져서 인간을 이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도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네요ㅠㅋ

북다이제스터 2016-03-10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지 괜히 기분 나빠요. ㅠㅠ
이젠 인공지능 땜에 일자리 걱정까지 해야 될것 같아요. ㅠㅠ

고양이라디오 2016-03-10 23:23   좋아요 0 | URL
네. 먼가 불안하네요. 인공지능의 승리가 반가운 소식은 아니네요ㅠㅠ
저도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워낙 SF장르에서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많이 다뤄서 그런 영향도 받은 것 같고요. 일자리도 쉽게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진 않겠지만 불안하네요ㅠ

비로그인 2016-03-1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고양이라디오님 좋은 하루되세요.

고양이라디오 2016-03-14 21:08   좋아요 0 | URL
닉네임 바꾸셨군요ㅎ 롤리팝도 좋은데요^^
알파벳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
틱낫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틱낫한스님의 저서이다. 역시 좋았다. 간만에 마음공부 좀 했다. 건강에는 지적,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건강도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적 건강도 매우 중요해다. 이 책은 나에게 부족한 영적인 부분을 보완해준 아주 고마운 책이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잊고 사는 것이 있다. '지금, 여기' 중요성. 그것을 잊고 산다. 내 마음은 항상 바쁘다. 바보처럼 한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머리 속에는 다른 책을 생각하고 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머리 속에는 다른 일, 나중의 일, 지난 일을 생각하기에 바쁘다.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마음만 바쁠 뿐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쓰지 못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하나에만 집중하기,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기, 이 모든 것이 마음챙김이며 수련이며 명상이다.

 

 이 중요한 것을 나는 이따금씩 놓친다. 책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틱낫한 스님의 친구인데 그는 항상 바쁘다. 자녀들과 놀아주는 시간도 아깝고 부족하다. 자기시간이 없다고 불평불만이다. 틱낫한 스님은 간단한 처방을 내린다. "자녀들과 놀 때는 그 시간에 온전히 마음을 쏟으세요."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 친구는 자녀들과 노는 시간을 즐기게 된다. 함께 놀고 함께 쉰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자녀들에게 쓰는 시간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시간이 된다.

 

 지금, 여기,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집중하기. 한 번에 한 곳에만 마음을 쓰기. 순간을 소중히하기. 이 책 덕분에 나의 조급함을 어느정도 내려놓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면 추동력도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바쁜 마음이 없다면 너무 느슨해지는 것은 아닐까? 추동력과 열정을 유지하면서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일단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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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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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모스> 위대한 책 중에 하나이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과학대중화에 시발점이 된 책이다. 과학이 대중과 점점 멀어져 갈 때 칼세이건이 단단한 교두보를 마련해두었다. <코스모스>는 대중도 쉽게 읽고 즐길 수 있는 과학서이며 청소년이 과학에 대한 아름다움과 경이감을 느끼고 과학에 대한 꿈을 키우게 해준 책이고 수많은 과학자를 만들어낸 책이다.

 

 이 책 두껍다. 표지도 어둡다. 쉽게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토록 많이 팔렸다니 놀랍다. 사실 우리나라 과학 분야에선 베스트셀러가 굉장히 적다고 한다. 지금까지 과학분야 베스트셀러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과학분야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앞으로 <코스모스>를 뛰어넘는 베스트셀러가 언제쯤이나 나올지 요원하다. 그만큼 <코스모스>는 블루오션에서 당당히 1위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코스모스>가 이토록 많이 읽힌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유명하다. 칼세이건의 명성뿐만아니라 <코스모스>는 미국에서 1980년 다큐멘터리로도 방영되었고, 7억 5천만명이 시청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014년에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서 닐타이슨에 의해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코스모스>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과학을 대중에게 선보인 최초의 책이며, 최고의 책이다.

 

 그리고 따뜻함과 높은 문학성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차가움과 많이 대비가 된다. 당대의 최고 지성 중에 한 명이었던 칼세이건의 글은 종교, 철학, 생물학, 인류학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다. <코스모스>는 별과 우주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지구와 생물, 종교와 과학사, 인류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문체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포근하다. 우리가 별의 일부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겐 이 책이 다음 내용이 궁금하고 계속 읽고 싶어지는 책은 아니었다. 청소년이나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새롭고 재미있겠지만, 어느정도 과학에 대해 아시는 분들께는 대부분 아는 내용들일 것이다. 아는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어서 좋긴 했지만 나는 본래 새로운 지식과 내가 몰랐던 것들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책이 두꺼워서 가지고 다니기 싫어서 집에 놓고 읽다보니 더욱 더뎠다. 나는 원래 집에서는 공부나 독서를 잘 못하는 편이기도 하고, 집에서도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밀리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갔고 마침내 다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좋은 책이고 위대한 책이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쓴 책이며 우주사를 한 번 훑어볼 수 있다. 그리고 칼세이건의 따뜻하고 문학성 높은 글들도 밤에 읽기에 참 좋다.

 

 나는 이 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드레이크 방정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SETI 연구소 소장)가 고안한 우리은하 안에 존재하는 우리와 교신할 가능성이 있는 외계지성체의 수를 계산하는 방정식이다.

 

'드레이크 방정식'이라 불리는 이 유명한 식은 N=R*·fp·ne·fl·fi·fc·L로 표기된다.

여기서 N은 우리의 은하계 속에서 탐지가 가능한 고도문명의 수이며 R*은 은하계 속에서 지적 생명이 발달하는데 적합한 환경을 가진 항성이 태어날 비율이다. fp는 그 항성이 행성계를 가질 비율, ne는 그 행성계가 생명에 적합한 환경의 행성을 가질 비율, fl은 그 행성에서 생명이 발생할 확률, fi는 그 생명이 지성의 단계로까지 진화할 확률, fc는 그 지적 생명체가 다른 천체와교신할 수 있는 기술문명을 발달시킬 확률을 가리킨다. L은 그러한 문명이 탐사가능한 상태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이 식에 기초해 드레이크 자신이 예측하는 은하계 내 문명의 수는 약 1만개에서 수백만개에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드레이크방정식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칼세이건은 책 마지막의 드레이크 방정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은하 안에 또 다른 외계지성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이 드레이크방정식의 변수들이다. 먼저 태양같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이 존재해야 한다. (칼세이건은 빅뱅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별이 만들어지는지 책 초반부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항성 주변에 생명이 살기 적합한 행성이 존재해야 한다. 이는 '골디락스 존' 이라 불리는 위치에 행성이 높여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며, 너무 춥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위치에 행성이 있어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다. (칼세이건은 우리 태양계의 행성들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 적합한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해야 한다. 우리는 이 값을 아직 모른다. 어떻게 무생물에서 생명이 탄생했는지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것이 가능하다고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생명이 탄생한 후 지성이 있는 생명체로 진화를 해야하고, 그리고 그 지성체가 외계와 수신할 수 있는 기술문명을 발달시켜야 한다. (칼세이건은 생물의 진화와 인류의 과학발전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지금 우리가 외계 지성체를 찾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파를 수신하는 것인데 아무리 외계에 지성체가 있다고 해도 그 지성체가 전파를 발생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알아낼 수 없다. 예를 들면 우리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발명하기 전에는 우리가 존재해도 먼 곳에 있는 외계인은 지구에 와서 우리를 직접 보지 않고는 우리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에 그 기술문명이 존속가능한 시간이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라도 어느 한 순간에 그 문명이 멸망할 수도 있다. 핵전쟁이나 운석충돌, 지구온난화 등에 의해서도 문명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우리 인류의 문명도 마찬가지다. 우리 문명이 천년 후 만년 후까지 지속될꺼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만년은 우주에서는 찰나의 시간이지만 겨우 100년을 채 못사는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이처럼 칼세이건은 드레이크방정식의 변수들을 책에서 모조리 이야기한다. 우주와 별의 탄생, 우리 태양계 행성과 소행성들의 이야기, 생물의 진화와 인류의 과학발전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 문명의 멸망가능성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린다. 핵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야기한다. 우리는 체감하지 못하지만 핵전쟁의 위험성을 잘 알고있는 과학자들은 핵폐지를 위한 운동에 앞장섰다. 아인슈타인, 버트런트 러셀, 칼세이건 등 수많은 저명한 과학자가 핵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핵폐지운동을 벌였다.

 

 우주는 너무나도 넓다. 그 넓은 우주에 우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외롭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멸망한다면 우주에 지적생명체는 사라지는 것이며 아무도 우주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주에는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외계인과 교류를 하는 날까지 우리 인류가 꾸준히 발전을 이루어나가면 좋겠다. 스스로 자멸하는 일 없이, 그리고 환경의 변화에도 적절히 적응하고 역경을 이겨내면서 말이다. 칼세이건도 그런 미래를 꿈꾸고 바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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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3월
평점 :
품절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훗날 시저, 카이저라 불리우는 분의 이야기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야기는 4, 5권 두권으로 되어있다. 2권이나 되는 묵직한 양이다. 한니발도 1권 밖에 안됐는데, 무려 2배의 분량이다.

 

 영웅은 영웅이다. 영웅의 이야기를 읽으면 먼저 나 자신의 평범함을 깨닫게 되고, 그 다음에는 영웅의 비범함에 매료된다. 한니발도 엄청난 영웅이었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위대한 인물이었다. 한니발은 군사적 재능에서 단연 발군이었던 반면, 카이사르는 군사적 재능뿐만아니라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하는 교양인이었으며 수많은 여인을 홀린 카사노바였으며 정치적 능력까지 타의 추정을 불허했다. 카이사르의 매력과 카리스마는 99 였다. 그리고 배포와 담력 또한 커서 해적들에게 인질로 붙잡혔을 때의 일화는 정말 압권이다. 해적들에게 붙잡히고 해적들은 카이사르의 몸값으로 엄청난 액수를 요구한다. 이에 카이사르는 자신의 몸값을 더욱 높인다. 아마도 현재가치로 몇억에서 몇십억에 해당하는 몸값이었을텐데 그것을 배이상으로 올린다. 해적들은 카이사르의 몸값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행여나 상처나거나 건강을 해칠까 카이사르를 극진히 모신다. 카이사르는 해적들과 어울리면서 내가 풀려나면 너희들은 모조리 잡아 족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해적들은 그의 농담이 재미있어서 웃기 바쁘다.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가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것을 해적이 자신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한 카이사르의 술수였다고 해석한다. 나 역시 동의한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몸값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몸값을 주고 풀려난 카이사르는 곧장 토벌대를 모집해서 해적을 소탕한다. 물론 자신의 몸값도 되찾는다. 꿩 먹고 알 먹기다. 해적들은 카이사르의 농담이 진담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물론 평화주의자이고 개인주의자이지만, 한니발이나 카이사르의 영웅담을 듣고 있노라면 만약 그들의 수하로 들어갈수만 있다면 기꺼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천인장이나 오천인장 정도면 수락할만하다. 그만큼 그들은 인간적인 면모도 뛰어나고 전투에 있어서는 귀재이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대의 영웅, 그리고 역사적 영웅이었다. 물론 전쟁에 나가느니 차라리 농사를 짓는 것이 낫겠지만, 그들의 행보는 역사적이며 가슴뛰게 만든다. <바른 마음>이란 책에서 "인간은 90%는 침팬지고 10%는 벌"이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나에게도 '벌'적인 요소가 분명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나 2002월드컵때 한마음이 되어서 응원하던 그런 사회적 본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한 영웅을 좋아한다. 역사 속 비범한 인물들을 동경한다. 아직 슈퍼히어로를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습성이 남아있는 것일까?

 

 4권을 읽고 5권은 아직 읽지 않고 꽤 오래 쉬고 있다. 책이 그만큼 두꺼워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1권과 3권에서 느꼈던 재미가 더이상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1권 로마의 태동과 3권의 한니발 이야기는 정말 책에 빠져들다시피 할 정도로 재미있었는데, 4권은 그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5권에 어떤 재미가 숨어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읽어볼 수 밖에 없다. 아마도 5권에 본격적인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리라. 그리고 이왕 읽기 시작했으니 왠만하면 <로마인이야기> 전 권을 다 읽어보고 싶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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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9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컬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4, 5부가 나오면 《로마인 이야기》 시저 편과 비교하면서 읽어보고 싶어요. ^^

고양이라디오 2016-03-10 09:58   좋아요 0 | URL
<마스터스 오브 로마>, <로마인 이야기> 둘다 읽어보셨나요?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어떤가요ㅎ?

cyrus 2016-03-11 04:51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마스터스 오브 시리즈>가 2부까지 나온 상태입니다. 3부는 올해 6월 초에 나올 예정입니다. 작가가 로마 역사 관련 서적을 참고해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픽션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로마의 역사를 생생하게 잘 살려서 묘사했습니다. 분량이 엄청 많은데도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3-14 22:14   좋아요 0 | URL
<로마인 이야기>와 함께 <마스터스 오브 로마>도 읽어봐야겠군요ㅎㅎ 설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