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6

감독 제임스 완

출연 빈 디젤, 폴 워커, 드웨인 존슨, 제이슨 스타뎀, 미셸 로드리게즈, 조다나 브류스터

장르 액션, 범죄, 스릴러

 

 

 유튜브에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 소개를 봤다. 재미있게 소개되어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가볍게 볼 영화가 필요했고 분노의 질주가 떠올랐다. 영화의 OST와 폴 오커를 추모하기 위해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을 선택했다.

 

 평점은 더 세븐이라 7점을 주려다 솔직하게 6점을 줬다. 아니 사실은 마지막 영화의 엔딩 씬이 없었으면 3~4점을 줬을 거 같다. 영화관에서 봤으면 좀 더 스릴이 있었을 거 같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네이버 평점이 지나치게 높은 거 같다.

 

 마지막 5분을 위해서 영화를 다 봤다.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 더는 안 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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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양자오다!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양자오는 박식하고 통찰력이 있다. 그가 소개하는 책은 읽어진다. 그는 유혹의 기술을 갖추신 분이다. 추리 소설이 무척 땅겼던 때에 이 책을 빌렸고 오늘 다 읽었다.

 

 나는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추리 소설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기 되었다. 양자오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레이먼드 챈들러, 움베르트 에코,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이 더 읽고 싶어졌다. (홈즈는 이미 읽었다!)

 

 

 먼저 챈들러부터 살펴보자.

 

 "좋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영웅이 되어야 한다." -p 132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문장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새랑>과 <빅 슬립>을 읽어보고 싶다. 챈들러의 모든 소설은 영화화되었다. 그 중 <빅 슬립>은 가장 유명한 영화이다.  나는 챈들러의 소설은 <기나긴 이별>만 봤다. 매우 훌륭한 소설이었다. 챈들러는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더욱 애착이 간다.

 

 

 

 

 

 

 

 

 

 

 

 

 

 

 추리소설이 현실 생활로 들어오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같은 영화가 나오게 된다고 한다. 이 영화도 궁금하다.

 

 

 

 

 

 

 

 

 

 

 나중에 심심할 때 만화 <시마 과장>도 한 번 봐야겠다. 회사생활에 대해서 조금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추리소설과는 큰 상관이 없는 만화다)

 

 

 

 

 

 

 

 

 

 

 

 

 

 

 

 <모방범> 1권의 앞 부분을 조금 읽었었다.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양자오 선생님의 해설을 읽으니 이 책을 마저 읽고 싶다. 국민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명성을 확인해봐야겠다.

 

 

 

 

 

 

 

 

 

 

 

 

 

 

 

 

 <장미의 이름>은 벌써몇 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몇 번이나 실패한 소설이다. 읽다보면 재밌다고 하니 다음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지금은 아니지만 다시 추리소설이 읽고 싶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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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30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간 채사장의 책들은 기대이상이었다. 그가 부러워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책을 읽었지만, 어느새 그의 글에 매료되어 즐겁게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번 책은 기대보다는 아쉬움이 컸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채사장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내용들은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아래에는 책 속에서 밑줄을 그었던 부분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감명깊은 부분들, 공감가는 부분들이 더러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독특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 극단적으로 먼 미래나 먼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들. 죽음 이후나 탄생 이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부재'를 살아간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음, 사라짐, 무, 이곳이 아님, 피안, 초월을 현재로 당겨와 살아간다. 하지만 그 삶이 가능할 리 없다. 부재가 삶의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차라리 삶을 지워낸다. 극단적인 미래를 사는 사람들에게 삶은 없다. -p101

 

 채사장도 위에서 어급한 사람들에 해당하고 나도 어느정도는 해당 된다. 현재를 살고 있지만 현재보다는 먼 과거와 먼 미래에 관심이 더 많다. 때문에 삶에 부유하게 된다. 계속 발이 두둥실 뜬다. 대지에 굳건하게 안착하지 못하고 허공을 두둥실 떠다닌다. 때문에 때로는 삶이 지겹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내가 요즘 이렇다. 바빠서 책 볼 시간이 줄어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삶을 즐겨야 되는데 자꾸 삶 바깥의 것들에 눈이 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저 광활한 히말라야의 설원 위를 오체투지로 건너고 있는 티벳인들을 향해 너희는 종교 때문에 괜한 고생을 하고 있다고 쉽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을 보라. 너덜너덜해진 신발 밑창과 흙먼지에 더럽혀진 머리카락과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눈동자를, 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내면의 광활함을 믿게 되었다. 가난하고 초라한 행색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의 광활함이 물리적인 한계 너머 저 신체 안쪽 어딘가에 우주처럼 펼쳐져 있다는 진실을, 나는 믿게 되었다. -p111

 

 나는 종교적인 것, 신성한 어떤 것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첫 여행지로 인도를 갔었다. 아쉽게도 내가 그려왔던 인도의 이미지를 발견하진 못했다. 종교적이고 영적인 인도는 쉽게 내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티벳인들의 오체투지를 지켜보고 싶다. 나도 종교적인 마음을 갖고 싶다. 작은 신체에 담겨진 거대한 영혼. 깊은 눈동자와 흔들리지 않는 영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될 거 같다.

 

 

 만다라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미적인 색감과 모양과 승려들의 정성 때문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만다라가 완성과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승려들은 만다라를 남기지 않는다. 모든 것이 완벽히 쌓여진 바로 그 순간, 승려의 모진 손이 둘레의 가장자리부터 중앙까지 훑는다. 망설임 없는 그 손짓에 모래는 뒤섞이고 선명한 색상은 혼합되어 빚을 잃는다. 

 주위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짧은 순간에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만다라가 인생에 대한 상징이었음을. 나의 모든 노력과 정성은 집착이 되어 모래처럼 쌓여가고, 우리는 이것을 붙들고 싶지만 결국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나마 한 줌이라도 움켜쥐고 싶지만 그것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다. -p117

 

 위 구절이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힘겹게 그린 만다라와 그것이 완성되어 훑어버리는 손짓. 우리의 인생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집착을 버려야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인생을 살아가면 갈수록 집착이 약해지는 것 같다. 점점 놓는 법을 배워가는 거 같다.

 

 

 

 나는 유물론자에 가깝다. 물질 외에 영혼같은 것은 없다고 믿는 편이다. 물론 다양한 가능성은 존재한다. 신이 존재하고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수 있다.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컴퓨터가 만든 가상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가정들은 불필요한 가정이다. 그 가정들을 받아들일 근거가 없다. 아직 아무도 이 세상에 대해 완전한 해설을 내놓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 어딘가에서 만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의미가 덜해지거나 감동이 덜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에겐 지금 당신이 나의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이고 기적이다. 내가 존재하고 당신 또한 존재한다는사실이, 그리고 당신이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감동이고 기쁨이다.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나의 글을 읽어주어서 나는 감사하고 기쁘다. 삶이 당신에게도 경이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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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1-3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 어딘가에서 만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서로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고 사랑을 한다는 것이 기적이겠지요

고양이라디오 2018-01-30 19:36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님의 댓글은 제게 감사이고 행복입니다^^
 

 

 

 

 

 

 

 

 

 

 

 

 

 

 칼 포퍼의 저서를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칼 포퍼를 직접 대면하니 감개무량입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그를 추종하는 것이 너무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도 칼 포퍼를 추종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칼 포퍼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들을 듣고 많이 배웠습니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란 책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리고 반증주의라는 개념으로도 유명한 과학철학자입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인근 도서관에 없습니다. 이런 훌륭한 책이 도서관에 없다니 개탄할 노릇입니다. 칼 포퍼의 저서들을 모두 읽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분입니다.

 

 

 

  내 말은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비롯한 과거의 위대한 작품들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미술이 쇠퇴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분명 미켈란젤로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그의 작품과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술이 전반적으로 쇠퇴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든 예술가들과 역사주의자들이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 예견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 대신에 미래의 주역이 되는 데에만 노력을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작품의 질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앞서 가려고 하는 나쁜 예언자들, 나쁜 철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시대보다 앞서 가려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미래를 예견할 수 없습니다.  -p124

 

 윗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저는 예술과 미술에 대해선 잘은 모르지만 일반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현대예술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감동도 없습니다. 오히려 예술가들의 사변적인 논리만이 부각되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중적인 주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재 정권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이다. 민주 국가들은 독재의 지배, 권력의 축적을 허용하지 않으며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길을 찾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그 권리와 의무를 존경하는 데 실패한다고해도 우리가 그 정책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 정부를 제거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안 문제는 지배자가 '누구' 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p218 

 

 민주주의의 최고의 장점은 피를 흘리지 않고 정부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이 그 모습을 이번에 잘 보여줬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그리고 법의 원칙 아래에서 대통령을 탄핵하고 현 정권을 심판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배가 아닌 국민의 판정과 심판이라는 칼 포퍼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수정할 권한도 주어집니다. 독재는 가장 위험한 정치체제입니다. 민주주의는 독재를 막고 국가 권력을 제한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정부형태입니다. 아직까지 우리가 아는한에서는요.

 

 

 이 책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칼 포퍼를 꼭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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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1-29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 역시 칼 포퍼네요.
독재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말하면서 예술적 관점에 대해서는 자기 기준을 거의 독재적으로 윽박지르는군요 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8-01-29 18:55   좋아요 1 | URL
뭐 누구나 자기 주장을 할 자유쯤은 있지 않겠습니까ㅎㅎ 저는 그의 독재적인 예술적 관점에 끌렸습니다ㅎ

상대주의자, 회의주의자라고 해서 자신의 주장을 회의적으로 개진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거 같습니다ㅋ

syo 2018-01-29 19:0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맞아요.
포퍼의 개인적인 예술관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할 말은 하나도 없지요.

근데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 인정할 것이다.˝ 이거 되게 오만해 보이지 않습니까? 제가 포퍼한테 ˝저....전 아닌데요.....˝ 이러면 포퍼가 제게 뭐라고 할 것 같으세요? ˝우리는 열린 사회에 살고 있고 저는 당신의 예술관을 인정합니다.˝ 이럴까요? ˝당신은 지금 나쁜 예언자들, 나쁜 철학자들의 말에 속고 있는 겁니다. 얼른 깨어나세요. 그들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적이라구요!˝ 이럴 것 같지 않으세요? ㅎㅎ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18-01-29 19:11   좋아요 1 | URL
역시 쇼님과의 대화는 즐겁네요. 네 저도 그 부분을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포퍼씨를 아직 잘 몰라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후자처럼 생각하면서 전자처럼 말할 꺼 같네요ㅋㅋ

열린 사회의 적들을 우리 마음 속에 있군요ㅠㅋ

아무리 위대한 지성이라도 독단과 독선, 고정관념과 편견,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지요ㅎㅎ

syo 2018-01-29 19:15   좋아요 0 | URL
왜 항상 고라님 글에서만 이런 대화가 벌어지는지 모르겠네요. 딴데선 안그러는데. 그건 우리가 하늘이 점지한 운명이기 때문이려나요 ㅋㅋㅋㅋㅋㅋ윽ㅋㅋㅋ

고라님의 독서를 응원합니다. 전 요즘 많이 못 읽어서, 대리만족 시켜주세요~~

고양이라디오 2018-01-29 19:21   좋아요 0 | URL
글쎄요ㅎ 그건 아마도 제가 쉽게 찬양하기 때문이 아닐까요ㅎㅎㅎ???

저의 부족한 비판력을 쇼님이 비판해주시기 바랍니다ㅎㅎ


저도 요즘 많이 못 읽습니다ㅠ 쇼님도 건강 챙기시고 파이팅입니다!!

나와같다면 2018-01-30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학부때 필독서였는데.. 요즘 학생들도 읽는지 궁금하네요..

고양이라디오 2018-01-30 19:34   좋아요 1 | URL
전 어제 책 주문했어요ㅎㅎ 학생들에게 이런 책을 읽혀야 하는데요ㅎ
 

 

 

 

 

 

 

 

 

 

 

 

 

 

 

 

 "고통이란, 로지온 로마느이치, 위대한 것이거든요. 거참, 내가 왜 이리 뚱뚱해졌나,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머 하게요, 안 그래도 저도 잘 아는걸요. 이런 걸 비웃지 마십시오, 고통에는 이념이 있거든요. 아무래도 미콜카가 옳습니다. 아니요. 선생은 도망치지 않으실 겁니다, 로지온 로마느이치." -p341

 

 고통이란 위대한 것이고 고통에는 이념이 있다는 이야기가 와닿았습니다. 최근에 읽은 <신경 끄기의 기술>의 내용과도 상통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혹은 고통은 견딜 때는 거기에는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상사의 갈굼과 회사의 부당한 처우 속에서 고통받지만 우리는 그 고통을 쉽게 뿌리칠 수 없습니다. 그 고통에는 책임져야할 식구가 혹은 자기 자신의 생존이 걸려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면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이념이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고통을 합리화 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통에도 숭고한 고통과 부당한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부당한 고통은 되도록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영화 <1987>이 생각납니다. 숭고한 이념을 위해 고통을 견디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 형식이 틀렸단 말이야, 미학적으로 그렇게 좋은 형식이 아니었거든! 뭐, 나는 진짜 모르겠는데, 왜 사람들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포위 공격을 일삼는 것이 보다 더 점잖은 형식일까? 미학에 대한 두려움은 무기력의 첫 번째 징후야.......! 이 사실을 지금보다 더 또렷이 의식한 적은 결코, 결코 없었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의 죄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지금보다 더 강하고 확신에 찼던 적은 결코, 결코 없었단 말이야......!" -p445

 

 로쟈는 노파를 죽입니다. 로쟈가 노파를 살해한 것은 죄가 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알렉산더, 솔로몬, 카이사르 등이 수만명 혹은 수십만 명을 살해한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줍니다. 이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로쟈는 이 부분을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들은 되고 자신은 안되는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

 

 평시에 타인을 살해하면 죄가 됩니다. 하시만 전시에 적군을 살해하면 영웅이 되고 훈장을 줍니다. 이 차이는 도대체 멀까요? 우리는 모두 어떠한 맹목에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법으로 이를 구분해 놓았습니다. 그 법은 누가 만든 것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저도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아무리 엄중하게 심판하고 양심을 모질게 다져봐도 지난 일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책 외에는 유달리 끔찍한 죄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수치스러워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즉 라스콜니코프라는 인간이 운명의 어떤 맹목적인 선고에 따라 그토록 맹목적이고 허망하고 먹먹하고 어리석게 파멸했으며 만약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킬 마음이 있다면 저 무슨 선고의 '어처구니없음' 과 타협하고 그것에 굴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p486

 

 위 구절은 실존주의 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입니다.

 

 

  아니, 지금은 의식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그는 오직 느낄 따름이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 생겨나야 했다. -p498

 

 위 구절은 이 책의 결말이자 메시지 같습니다. 머리 속의 생각, 이상때문에 고민하다보면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가 힘들게 됩니다. 변증법 대신에 삶. <죄와 벌>의 교훈이자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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