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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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 기억이 살아나는 부분도 있었고 처음 읽는듯이 새로운 부분도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처음 읽었을 때보다 깊은 감명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왜 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요즘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탓일까? 나이가 든 만큼 감성이 무뎌졌나? 9년 전에 느꼈던 환희,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 때는 책을 다 읽고 눈이 반짝였는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감정이 메마른 탓일까?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알라딘 책소개에는 6편이라고 되어있는데 7편이 맞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어째서 인지 빠져있다. 하나하나 짧은 감상을 적어본다. (스포 있습니다.)


 표제작 <렉싱턴의 유령>은 처음 읽었을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마치 직접 경험한 일을 서술하는 듯이 이야기해서 더욱 기묘하게 느껴졌다. 한 밤 중 대저택을 찾아와서 파티하는 유령들. 공포와 호기심으로 이 사건을 경험하는 주인공.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 생생하고 신기했다면 두번째로 읽었을 때는 이미 알던 내용을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잊고 있었지만 유령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저택의 주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어딘가 쓸쓸한 이야기였다.


 두 번째 작품은 <녹색 짐승>이다.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이 소설이 언급되서 <렉싱턴의 유령>단편집을 찾아보게 되었다. 상당히 기괴하고 예상 밖이고 약간 난해하다. 집에 홀로 있는 여성의 집에 땅 속에서 온 녹색 짐승이 침입한다. 처음에 여성은 공포스럽지만 이 녹색 짐승과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리 나쁜 짐승은 아닌 거 같다. 오히려 녹색 짐승은 여자를 좋아해서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성이 거절하고 잔인한 상상을 할 수록 녹색짐승은 작아지고 괴로워한다. 이윽고 녹색 짐승은 소멸한다. 이게 무슨 이야기지 싶었는데, 굳이 의미나 교훈을 찾으려면 못 찾을 건 없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시시해진다. 그냥 기존 클리세를 여러 번 비트는 독특하고 재밌는 이야기다.


  세 번째 작품은 <침묵>이다. 책은 세번째 작품부터 더 재밌어졌다. 어린 시절 학교 따돌림을 경험했던 남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상당히 재밌었다.


 네 번째 작품은 <얼음 사나이>다. 얼음사나이와 결혼한 한 여자의 고독함 체험담이다. 결혼하면 어찌됐든 한 쪽이 희생하게 되는 것일까?


 다섯 번째 작품은 <토니 타키타니>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읽으니 매우 좋았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 옷을 광적으로 구매했던 아내가 죽은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왜 이 소설을 영화화했지? 내용도 별로고 영화화 하기에는 할 이야기도 없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충분히 영화화할 만했다. 재발견해서 기뻤던 소설.


 여섯 번째 작품은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이다. <상실의 시대>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소설이다. 한 쪽 귀가 잘 안들리는 사촌동생과 병원을 방문하는 이야기다. 처음 읽을 때는 사촌동생도 사랑스럽고 은근히 사촌동생을 아끼는 주인공도 사랑스러웠는데 두번째 읽을 때는 그런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감정이 메마른 걸까?


 일곱 번째 소설은 <일곱 번째 남자>이다. 이 소설이 가장 따뜻한 소설이었다. 일생 동안 끔찍한 기억으로 괴로워했던 남자의 이야기다.      

 


 <렉싱턴의 유령>을 첫 번째로 읽기 전에 나는 이미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렉싱턴의 유령>을 읽고 하루키가 더 좋아졌으며 하루키의 단편소설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좋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두 번째로 읽으니 그런 느낌이 안나서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역시나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TV피플>과 <도쿄기담집>을 읽어야겠다. 이 책은 처음보다 좋기를. 하루키는 이런 기묘한 단편을 참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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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샬의 신작이다. 역시나 지리를 바탕으로 세계 속의 장벽들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려준다. 중국의 '인터넷 검열 방화벽' 부터 영국의 브렉시트까지 다양한 장벽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부분은 약간 흥미가 떨어졌지만 전체적으로 재밌게 읽었다. <지리의 힘2>도 마저 읽어야겠다. 



 범죄가 반드시 이민과 연결되지는 않지만 빈곤과는 연결되며, 둘 다 아프리카 전역에 널리 퍼져 있다. 통계가 보여주듯이, 범죄율과 관련해서, 특히 살인사건 발생률과 관련해서 아프리카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2012년 세계 범죄율에 대한 국제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그 해에 43만7000건의 살인 사건 중 36퍼센트가 미국에서 발생했고, 31퍼센트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 -p235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의 살인범죄율이 세계 1위라는 것이다. 총기자유도 하나의 원인이겠지만 총기 자유만의 문제는 아닌듯하다. 캐나다도 총기 자유화국가이지만 거의 총기살인사건이 없는 수준이다. 


 

 가자지구 장벽, 방글라데시 주변의 장벽, 헝가리와 세르비아 사이의 철조망은 우리의 감성을 해치고, 우리가 차이를 해결하지 못함을 증명한다. 

 장벽을 세우는 추세를 비난하기는 쉽다. (중략) 장벽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다. -p334


 저자는 <장벽의 시대>에서 세계에 세워진 여러 장벽들과 장벽들이 세워진 지리적, 역사적 원인에 대해 알려준다. 물론 장벽은 우리에게 갈등과 분리를 상징하는 불쾌한 요소이다. 하지만 저자는 중립적으로 장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벽이 세워진 것은 그것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만리장성을 비롯하여 언제나 장벽, 울타리를 세워왔다. 장벽은 현실이다. 장벽을 없애자는 단순히 순진하고 이상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당장에 본인의 집 문을 없앤다 생각해봐라. 



 대부분의 언어에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격언이 있다. 이것은 진부한 속담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한계에 관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는 최선을 희망하고 최악을 두려워하기에 미래를 위해 계획하며, 두려움 때문에 장벽을 세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성에 대한 암울한 견해로 보인다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 생각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또한 우리에게 장벽 사이의 공간을 희망으로 채울 수 있는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p345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장벽을 연결해주는 다리이다. 그리고 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문이다.



 아래는 옮긴이의 글에서 발췌했다. 이 책에 대해 설명해주는 글이다.


 이 책 <장벽의 시대>는 전 세계에 걸쳐 국가 간에 세워진 장벽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분쟁과 분열, 갈등이 벌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고한다. 그 분쟁과 분열, 갈등은 국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종교적, 계급적, 민족적, 부족적 차이 등을 이유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중국에서는 외부 세계와 분리된 '거대한 방화벽', 미국에서는 멕시코와의 국경선 장벽과 내부의 인종적, 정치적 분열,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대립, 남아시아에서는 인도와 그 주변 국가들 간의 분쟁과 이주민 문제, 아프리카에서는 끊임없는 국가적, 민족적, 부족 간의 갈등, 유럽에서는 유럽 통합 세력과 민족주의적 분리 세력의 갈등과 난민 문제,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갈등과 내부적 분열.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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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27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벽의 시대]
꽂아만 두고 아직 ....^^
고양이라디오님께서 2권 읽으실 때까지 전 과연 1권을 읽을 수 있을까요?

˝미국의 살인범죄율이 세계 1위˝ 그럴 거라고 짐작했어도 막상 공식적인 선언처럼 들으니 다시금 무섭네요.
수년 전 읽었던 책에서 청소년 범죄가 영국의 경우는 칼, 미국은 총....그런 유형이 있다 언급했던 게 생각나요
총이 문제일까요?^^;;;

고양이라디오 2023-05-28 00:46   좋아요 1 | URL
<지리의 힘> 재밌었습니다. 추천입니다ㅎ

총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빈곤, 빈부격차, 인종차별, 복지의부족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캐나다도 총기자유국이지만 총기살인범죄율이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요ㅜ

그레이스 2023-05-31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되던 가자지구의 청소년들, 감옥같은 그 지역으로부터 죽음으로라도 벗어나고 싶은 절망감, 분노를 느낀다고 들었어요 ㅠ

고양이라디오 2023-05-31 18:14   좋아요 1 | URL
현존하는 가장 최악의 장벽이 가자지구 장벽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해하고 같이 살면 좋을텐데ㅠ 해결이 요원해보입니다. 안타깝습니다ㅠ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트 - 전13권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요코야마 미쓰테루 그림,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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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총 32권으로 일본역사소설 중 1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로 1위를 차지한다. 그는 전국시대의 마지막 무장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이어 일본을 통일했다. 그는 인내심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섣불리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지 않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터이다.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총 13권이다.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작품이다. 그는 60권 짜리 <전략 삼국지> 만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만화가이다. 일본 국민만화가이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소설을 만화로 만났다. 오래 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전국시대도 항상 궁금했는데 이번에 접하게 되서 좋았다. 


 이 작품은 재미도 재미지만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은 책이다. 우리나라 CEO, 정치가들이 많이 보는 책이라고 한다. 책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리더의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친 듯한 인물이다. 군략에도 밝았고 정치도 잘했다. 만화에서 미화된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난세를 없애고 평화를 지키려는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정이 많지만 대의를 위해 가슴아픈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사랑하는 아들을 파면하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면을 허락하지 않은 모습은 가슴아팠다.


 만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만화에서 그려지는 시대의 모습, 사람들의 모습과 지금 모습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 시대는 충성이 정말 큰 가치였다. 주군을 위해서는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모습들이 내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죽을지 알고 패할지 알고 전투에 나서는 장군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전투에 참가해 죽는 병사들이 불쌍하게 생각됐다.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 아무것도 모르고 죽는 병사들은 무슨 죄람ㅠ


 13권이지만 재밌어서 금방 읽힌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역사 만화들을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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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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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는 저랑 안 맞는 걸까요? 문학계의 거장이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는 너무나 유명하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작가, 평론가가 꼽은 최고의 소설로 평가되었다고 해서 구입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초반부를 읽었는데 도무지 재미가 붙지 않아서 읽다 말았습니다. 이후에도 몇몇 작품을 읽었지만 여전히 큰 재미를 못 느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 중단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알라딘 평점도 무려 9.4점으로 매우 높습니다. 세일즈 포인트도 꽤 높습니다. 기대가 컸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별점4점 정도는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평가는 별점3.5점 정도를 주고 싶습니다. 돌이켜 보면 '큰 재미는 없었다.' 입니다. 


 한 남자의 인생과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죽음에 대한 고찰을 준다는 점은 괜찮았지만 큰 재미가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톨스토이는 너무 진지해서 저랑 좀 안 맞는 걸까요? 앞으로 또 언제 그의 책을 만나볼지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책에서 재밌었던 구절입니다.  


 그리하여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독립된 세계를 지키고자 공무와 관련된 온갖 의무를 핑계로 아내에 대항해 나갔다. -p33


  아내에 대항해 나갔다는 표현이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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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26 14: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무도회가 끝난 뒤>라는 책을 보면 네 개의 작품이 담겨 있는데 저는 괜찮더라고요.
톨스토이와 정말 안 맞는지 알아 볼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3-05-26 16:41   좋아요 1 | URL
오~ 뭔가 재밌을 거 같은 책이네요. 담에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ㅎ

Falstaff 2023-05-26 17: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젠가 톨스토이를 경배하실 날이 올 거라는 데 만원 겁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3-05-26 18:1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얼른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ㅎㅎ
 
















 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에 언제부터 흥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언뜻 떠오르는 이야기는 크게 2가지 이다. 첫번째는 대학생 때 본 만화 <기생수>. 만화 <기생수>에는 사람을 재미로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나온다. 그 캐릭터가 너무 기괴하고 무서워서 강렬한 인상이 남았었다. 두번째는 대학생 때 본 영화 <조디악>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이고 조디악이라는 실존했던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이후에 영화, 소설, 만화 등에서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을 만났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중고서점에서 책 제목이 인상깊어서 구입한 책이었다. 오랫동안 책을 펼치지 않았다가 <마인드 헌터>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마인드 헌터>는 동명의 책을 소재로한 드라마다. 공교롭게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연쇄살인범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세븐>, <조디악>, <마인드 헌터> 같은 연쇄살인범을 소재로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었다. <마인드 헌터> 드라마를 보고 동명의 책도 보고 마침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까지 봤다. 드디어 연쇄살인범과 FBI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마인드 헌터> 시즌 3는 없을 거라고 한다. 무척이나 아쉽다. 높은 제작비 대비 시청자 수가 적다고 한다. 내겐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인데 인기가 많지는 않은가 보다.



 아래는 드라마에서도 그랬고 책에서도 가장 긴장감있고 몰입감 있는 장면이다.

 

 "교도관이 와서 당신을 꺼내주려면 적어도 15분, 아니면 20분은 더 걸릴 거요."

 

 그가 말했다. 나는 냉정하고 태연해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만 확연하게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고 말았는데 캠퍼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난장판을 만들어버리면 당신은 무척 곤란해지겠지. 안 그래. 선생? 당신 머리통을 잡아뜯어서 탁자 위에 올려놨다가 교도관한테 보여줄 수도 있다고." -p93


 (중략)


 "그냥 장난이었다는 거, 당신도 알죠?"

 "당연하지."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나 자신은 물론이요 다른 FBI 면담자 역시 다시는 이런 상황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유죄가 확정된 살인범이나 강간범, 혹은 아동 성폭행범을 면담할 때는 절대로 혼자 가지 않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 되었다. 다시 말해 면담을 갈 때면 늘 짝을 지어서 함께 들어갔다. -p96


 이 책의 저자이자 FBI요원, 최초의 프로파일러 로버트 K. 레슬러는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실수가 됐을지 모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대담하게도 혼자서 캠퍼의 면담을 진행한 것이다. 에드먼드 캠퍼는 키 2미터 5센티미터에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을 육박하는 거구이다. 놀라운 지능의 소유자로 외조부와 자기 어머니를 포함해 8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다. 


 4시간에 걸친 면담이 끝나고 레슬러는 교도관을 호출하는 벨을 누른다. 그런데 15분이 지나도록 교도관이 오지 않는다! 아마도 식사 중이거나 근무 교대 중이었던 모양이다. 밖에 교도관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밀폐된 방에 거구의 연쇄살인범과 둘이 남게 된 상황, 결코 침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캠퍼는 장난인지 진담인지 레슬러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둘은 레슬러의 죽음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무사히 교도관이 나타나서 다행이지 정말 아찔했을 거 같다.   

 

 

 아래는 캠퍼에 관한 정신과 의사의 진찰 기록이다. 캠퍼는 외조부모 살해 후 4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조건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가석방 후 계속 정신과 검사를 받게 된다. 캠퍼는 정신과 검사를 받으면서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 1972년 봄, 외조부모 살인 후 첫 살인을 저질렀다. 어느 날은 시체의 머리를 트렁크에 넣어 둔 채 정신과 의사에게 검사 받으러 가기도 했다. 


 1972년 9월 캠퍼를 검사했던 정신과 의사 두 명은 캠퍼가 아타스카데로 정신병원에서 지내면서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환자의 과거 기록을 읽지 않았거나 환자가 그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본인은 정신병력이 전혀 없고 창의적이며 지성적인 젊은이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컨대 과거에 살인을 저질러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15세 소년과 현재의 23세 청년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본인은 이 환자가 수년간 치료를 받고 회복기를 거쳐 병세가 상당히 호전되었으며, 자기 자신에게나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도 위험이 될 만한 정신의학적 사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두 번째 정신과 의사는 다음과 같이 추가했다.


 이 환자는 예전의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자아분열에서 훌륭히 회복된 듯 보인다. 이제 한 사람의 훌륭한 사회인이며 감정을 언어, 일, 운동 등으로 표출하고 스스로 신경증이 더는 발달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는 듯하다. 성인으로서 가능성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어린 시절의 전과를 영구 말소해 좀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최근 환자가 오토바이를 '끊은'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오토바이가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주기보다는 그 자신의 삶과 건강에 더 위험하므로 이후로도 계속 타지 않기를 바란다. -p395



 이렇듯 캠퍼는 정신과 의사의 검사를 통과해서 1972년 11월 29일 그의 전과기록은 공식적으로 말소되었다. 캠퍼는 소년시절 정신병원에서도 정신과 검사에서 매번 좋은 결과를 받았다. 훗날 그는 당시 28가지 검사와 그 정답을 모두 암기했었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들을 욕하고 싶진 않다.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였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여전히 의심스럽다) 정신의학은 캠퍼와 같은 사람들의 위험성을 결코 감지할 수 없었다. 환자의 진술만으로 진찰하는 것은 정신의학의 가장 큰 오류가 아닐까 싶다.(환자가 거짓말을 해도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와 같이 정신과 검사와 정신의학의 틈새를 이용해 빠져나간 범죄자가 많다. 그리고 그 범죄자는 또다시 범죄를 일으킨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싸이코패스 살인마를 척하면 척하고 알아챌 수 없다. 그들은 주위의 평판이 좋은 경우도 많다. 실제로 캠퍼는 지역 경찰관들과 친하게 지냈다. 경찰관 중 아무도 그를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자백을 했을 때도 좀처럼 믿지 않으려 했다. 


   

 아래는 정신과 의사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다.


 그 사이 나는 리셀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에도 강간 살인을 저질렀고, 그 정신과 의사는 리셀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간파하지 못하고 증세에 호전을 보인다고 진단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나는 이것이 조직적 살인범들이 쓰는 속임수의 한 예라고 설명하면서, 내 생각에 이런 문제는 정신의학계가 전통적으로 환자 자신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가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치료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부분에 지나치게 기댄다는 얘기였다. 나는 법 정신의학자들은 환자의 고백에만 의존하지 말고 외부 보고나 법원 기록 등을 참조해야 하며, 범죄를 저지른 환자가 자기 삶과 행동에 대해 털어놓는 이야기가 정확한지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p414 

 

 이런 시행착오들을 통해 개선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책 속에 심령술사 르니에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런 심령술사가 근처에 있으면 보러 가고 싶다.


 르니에르는 1981년 초에 콴티코를 방문했다. (중략) 그날 르니에르는 경찰들 앞에서 월말에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당하겠지만 미수로 그칠것이라고 예언했다. 대통령은 왼쪽 가슴에 총을 맞을 테지만 죽지 않고 회복될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더 큰 일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르니에르는 어떤 FBI 요원 친척의 시체가 숨겨져 있던 비행기를 찾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나에 관한 예언을 하기도 했다. 내가 6주간의 독일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그녀는 검은머리 여자와 관련된 일 때문에 곧바로 돌아와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독일에 도착하고 사흘 뒤, 나는 정말로 검은머리 여자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p420

 

 

 


 














 저자는 토머스 해리스란 소설가에게 자문을 줬다. 그로 인해 탄생한 소설이 <레드 드래곤>과 <양들의 침묵>이다. 저자는 한니발 렉터라는 등장인물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마인드 헌터>로부터 시작된 연쇄살인범과 프로파일러에 대한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개인적으로 <마인드 헌터> 드라마와 책은 강추하고 싶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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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23: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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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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