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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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옳은가>는 윤리에 대해 다룬다. 우리는 탈진실이라 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사실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한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한다. 사형제도, 최저시급, 감세와 증세, 부동산 정책 모두 윤리와 관련이 있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공정한가? 과연 답은 존재하는 가?


 저자의 대답은 답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윤리도 변화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은 윤리가 변화하는 중요 요인이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노예 제도가 사라진 것은 인류의 의식이 진보해서였을까? 과거보다 우리가 더 착해져서일까? 노예제도가 사라진 것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부터 였다. 농장의 노동은 노예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장은 사라지고 노예의 필요성은 떨어졌다. 대량생산된 물품을 소비해줄 소비자가 필요해졌다. 그렇게 노예는 노동자가 되었다.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 영국에서 가장 먼저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우연일까? 산업화가 먼저 진행되었던 미국 북부와 대농장으로 유지되었던 미국 남부와의 노예제도에 대한 입장차이는 과연 도덕, 윤리의 차이였을까?


 우리는 현재의 윤리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해서는 안된다. 과거에는 아무리 정의롭고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노예제도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산소에 의문을 가지지 않듯이. 과거의 사람들을 모두 노예제도 찬동자로 낙인 찍어서 그들의 업적과 사상을 부정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현재의 윤리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또 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 또한 미래 세대에게 수많은 부분에서 비윤리적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할 것이다. 지구온난화, 도축, 동물보호 등등. 한 예로 과거에는 인공수정 같은 것은 비종교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식도 변화했다. 요즘 누가 인공수정을 비윤리적이라 말하겠는가? 기술의 발전은 윤리의 기준을 바꾼다. 


 앞으로 기술은 끝없이 발전할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리의 윤리는 시험받고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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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네이션 -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애나 렘키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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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중독에 관심이 많다. 나또한 중독에 취약하다. 특히 내게 가장 위험한 것은 게임이다. 책중독은 그리 나쁘지 않다. 내게 게임과 책 두 가지의 큰 차이는 수면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책은 재밌게 읽다가도 잘 시간이 가까워지면 책을 덮고 잠을 취할 수 있다. 내일의 컨디션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못하다. 한 판 더, 한 판 더 하다보면 어느새 늦은 새벽이 된다. 삶이 피폐해진다. 새벽에 게임을 끝내면 내일은 절대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하지만 다음 날이 퇴근 할 때가 되면 다시 게임이 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몇 개월을 게임에 중독되어 시간을 보냈다. 그 피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학자들이 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경물질은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우리에게 쾌락을 준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재밌는 게임을 할 때, 쾌락을 느끼면 어김없이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 "맛있는 것을 계속 먹어!", "즐거운 일을 계속해!" 하지만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우리는 점점 쾌락에 적응된다. 더 큰 쾌락을 원하게 된다. 그렇게 중독에 빠져든다. 


 현대사회는 쾌락 과잉의 시대다. 때문에 더욱 도파민에 대해 이해하고 균형을 찾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일찍이 이렇게 풍요롭고 다양한 쾌락이 존재하고 또 그 쾌락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때는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이 추세는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로 더 많은 중독과 더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쾌락과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중독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과 통찰, 교훈을 얻는다. 물론 저자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극심한 중독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편으로는 나는 저정도까진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심과 위안이 된다. 


 쾌락과 중독의 치료의 핵심은 고통에 있다. 쾌락의 반대편에는 고통이 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통에 노출되면 쾌락을 보다 잘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쾌락에 끝없지 탐닉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고통이 필요하다. 배고픔을 참으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통은 쾌락을 선물해준다. 


 다시 예를 들어보면 마약에 중독되면 우리의 쾌락 민감도는 높아진다. 어지간한 쾌락이 아니고서는 만족을 못하게 된다. 음식 먹는 것도 잊고 마약이 주는 쾌락만 쫓게 된다. 마약을 끊으면 고통이 찾아온다. 금단 증상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우리 몸의 쾌락 민감도는 다시 떨어진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작은 일들에서 쾌락을 얻을 수 있다. 맛있는 음식, 따뜻한 햇살 등.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솔직함에 대한 이야기다. 솔직함 사람이 정신도 건강하다. 솔직한 사람은 중독에 잘 빠지지 않고 중독에 빠져도 솔직함은 중독을 치유하고 극복할 힘이 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말 하지 않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더라도 솔직하기. 때론 솔직함이 고통과 위험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 솔직함은 큰 힘이 된다는 것. 


 재밌게 읽었고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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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 슬프고 안타깝도다. 구국의 영웅 이순신. 그의 삶이 참으로 애처롭구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안봤다. 그 때는 이순신에 대해 잘 몰랐다. 그저 임진왜란의 장수. 한산도대첩, 거북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정도만.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도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그의 삶과 업적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았으면 좋겠다. 정말로.


 이순신은 전쟁을 준비하고 용감히 맞서 싸우고 승리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파직과 옥살이, 모진 형벌이었다. 선조의 질투, 의심, 불안과 원균의 합작품이었다. 다행히 우의정 정탁의 명문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아직 전시 상황이라 함부로 그를 죽이기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명받는다. 


 이순신은 효심이 대단했다. 백의종군길 도중에 어머님의 부음을 듣는다. 이순신은 마당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4월13일. 배에서 달려온 종 순화가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뒹굴었더니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였다. <난중일기>


 더욱 안타까운 일은 어머니 변씨가 의금부에 하옥된 아들을 보러 여수에서 나룻배를 타고 올라오다가 기력이 쇠약해져 배 위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자식 입장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데, 못난 자식 얼굴 한번 보겠다고 80대 늙은 노모가 무리한 길을 나서다 그만 돌아가신 것이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아마도 이순신이 죽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죽기 전에 아들 얼굴을 보기 위해 나선 것이리라. 이순신의 마음을 생각하면 같이 억장이 무너진다.


 4월16일. 영구를 상여에 올려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집에 이러르 빈소를 차리고 나니 비가 크게 쏟아졌다. 나는 기력이 다 빠진 데다 남쪽으로 떠날 길이 또한 급해서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다만 빨리 죽기를 기다릴 따름이다. <난중일기>



 아마 이 때부터 이순신은 임금, 조정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여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생에 대한 미련, 집착도 버렸을 것이다. 그저 나라와 백성에 대한 忠 만 남았으리라.



 원균의 트롤짓은 임진왜란 시작부터 칠전량해전의 대패까지 계속 된다.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술 쳐마시고 아몰랑 돌진으로 134척의 판옥선 중 122척을 잃고 조선수군 1만명을 잃었다. 일본 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다행인지 경상우수사 배설만이 원균의 명을 어기고 12척의 판옥선과 함께 진영을 이탈했다. 12척의 판옥선이 없었다면 노량해전도 없었다. 아니 임진왜란의 승리도 없었다. 


 선조실록에 기록된 한 사관의 원균에 대한 평을 들어보자. 


 원균이라는 사람은 원래 거칠고 사나운 하나의 무지한 위인으로 당초 이순신과 공로 다툼을 하면서 백방으로 상대를 모함하여 결국 이순신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다. 겉으로는 일격에 적을 섬멸할듯 큰소리를 쳤으나 지혜가 고갈되어 군사가 패하자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와 사졸들이 모두 어육이 되게 만들었으니 그때 그 죄를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한산(칠천량)에서 한 번 패하자 뒤이어 호남이 함몰되었고 호남이 함몰되고서는 나랏일이 다시 어찌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시사를 목도하건대 가슴이 찢어지고 뼈가 녹으려 한다. <선조실록 1598년 4월 2일. 사관의 논평>

 

 

 이순신은 지형을 이용한 전략, 전술로 단 한 척의 판옥선도 잃지 않고 압도적인 승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원균은 대책도 없고 정찰도 없고 전략, 전술도 없이 무리한 출정을 하다 일본 함대에 포위당해 괴멸되었다. 그로 인해 전쟁 5년 동안 무사했던 호남지역은 쑥대밭이 되었다. 


 이순신은 홀로 수군을 재정비했다. 패잔병들과 민병, 승병들을 규합하고 군량미를 확보했다. 30일간 60km의 대장정이었다. 이순신이 보성에서 여러 장수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을 때 선조의 교지가 내려왔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수군의 전력이 약하니 권율의 육군과 합류해 전쟁에 임하라.' 


 이순신의 억장은 무너졌다. 수군이 육군에 합류하여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왜군이 서해 바다를 돌아 한강을 통해 한양으로 들어간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중략)


 이순신은 교지를 받은 다음날 선조에게 장계를 올렸다.

 "지금 신에게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전선의 수는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p301


 

 역사 속 명량해전은 영화보다 더 처절했다. 칠전량해전의 대패로 인한 사기 저하. 적은 300척이 넘는 대군인데 조선의 판옥선은 고작 12척이었다. 이순신에겐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웠을 것이다. 바로 병사들의 공포감. 


정탐꾼 임준영이 전갈을 전해왔다.

"내일 일본군이 벽란진 쪽으로 싸움을 걸어올 것 같습니다." 

(중략)

 이제 일본군이 전라우수영을 공격하려면 울돌목을 지나쳐야만 했다. 이순신이 생각했던 전장은 울돌목, 즉 명량이었다. 역사적인 전투 하루 전인 1597년9월15일 밤, 이순신은 전라우수영에 모든 군졸들을 도열시켰다. 

 "죽으려고 하면 곧 살 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곧 죽을 것이다."

 "능히 길목에서 한 명이 천 명을 막아낼 수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막아 낼 수 있다."

 "내일 내 명령을 듣지 않으면 군법을 제대로 적용하리라." 

-p312



 하지만 그럼에도 병사들과 장수들의 공포감은 극복하기 힘든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13척으로(1척의 판옥선이 추가되었다) 300척이 넘는 일본함대를 막아야 한다. 모든 이들은 승산이 없다 생각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도망가고 싶었으리라.


 실제 전투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진격명령을 내렸는데도 대장선을 제외한 나머지 판옥선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저 눈 앞에 다가오는 수많은 일본함대를 바라보며 죽음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었으리라. 


 

 

 

 결국 이순신의 대장선만 앞으로 나선 채 일본함대의 선발부대 133척과 맞서 싸우게 된다. 몇 시간을 버티며 치열하게 싸움을 계속하자 거제 현령 안위와 중군장 김응함의 판옥선이 합류했다. 그렇게 3척으로 맞서 싸우다보니 정오가 되자 물살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일본군이 순류를 타고 공격을 하고, 조선 수군은 역류에서 맞서며 몇 시간 동안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정오까지 버티자 이순신의 계획대로 물살은 조선 수군의 편이 되었다. 


 물살이 바뀌면서 난파된 세키부네의 잔해들이 거친 물살을 타고 일본 군 지영으로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일본의 100여 척의 함선들은 떠내려오는 자기 편의 난파선들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반면 이순신과 안위와 김응함의 판옥선은 순류 물살을 타고 빠르게 전진하면서 함포 사격을 전개하였다. 

 3척의 판옥선이 승기를 잡자 후방에서 구경하던 9척의 판옥선들이 용기를 얻어 합류하였다. 이제야 12 대 133의 해볼만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p321

 

 울돌목은 우리나라에서 물살이 가장 센 곳이다. 지형이 좁아 일본군 함대가 조선의 함대를 에워쌀 수 없다. 그리고 물살이 바뀌면 조선군에게 유리했다. 절호의 위치 선정이었다. 결국 일본 함대는 역류 때문에 자기들끼리 부딪혀서 나아갈 수도 없고 판옥선의 포탄에 얻어맞는 샌드백이 되었다. 31척이 침몰되고 92척이 난파 되었다. 선발대는 괴멸하였고 후방에 있던 부대는 후퇴했다. 정말로 12척으로 300척을 막아선 것이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후 조선에 남아 있던 일본군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국토를 짓밟고 백성들을 유린한 일본군을 단 한 명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탈출하려는 자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자들의 마지막 처절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량해전은 임진왜란 뿐 아니라 세계 해전사에도 기록될 대전투였다. 일본전함 500척(고니시 300척 제외)과 조선 판옥선 83척, 명나라 호선 61척. 조선명연합군 2만명과 일본군2만명(고니시 1만 5천 명 제외)의 전투였다. 노량해전은 그전까지의 이순신이 싸워온 방식과 달랐다. 그 전까지는 유리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취할 수 있는 싸움만 하였다. 하지만 노량해전은 달랐다. 한 명의 외적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살기가 서린 섬멸전이었다. 처절한 전투 중 이순신 장군은 적군에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조명연합군은 대승을 거뒀다. 500척 중 살아서 도망간 함선은 50여 척에 불과했다. 고니시의 300척과 1만 5천명은 같은 편이 싸우는 것도 무시한채 혼란을 틈타 도망쳤다.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각 진영에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듯 슬퍼했다. 그의 영구 행렬이 지나는 곳에서는 모든 백성이 길가에 나와 제사를 지내면서 울부짖었다. 

 "공께서 우리를 살려주셨는데, 이제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수많은 백성이 영구를 붙들고 울어 길이 막히고 행렬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징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이나 어린이들까지도 많이 나와 울었으니,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동정을 얻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었을까. <이덕형의 장계>



 이순신 장군 묘소에 가본 적이 있는가? 

 갈 때 마다 항상 혼자였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평일에도 사람이 북적거린다. 

 그러나 현충사는 한적함이 좋다. 

 그게 서글프다. 

-p369 



 이순신 장군의 죽음은 전사설과 자살설이 있다. 저자는 전사설에 비중을 두고 자살설을 일축했지만 나는 자살설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이순신 장군은 수군의 총대장이다. 과연 그가 자기 자신을 위험에 노출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후방에서 지휘하고 방패 뒤에서 충분히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었다. 아니 그게 총대장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었다. 명량해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대장선 홀로 돌진할 수 밖에 없었지만 노량해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켰다. 여러 기록들이 이를 뒷바침 한다. 

 

 선조의 그간 행실을 봤을 때 이순신이 전쟁 후에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칫하면 역모죄로 자신 뿐만아니라 가족까지 연류될 수 있었다. 한창 전쟁 중일 때도 죽이려고 했는데 전쟁이 끝나면? 그의 인기와 역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절대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순신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평소에도 주위에 그렇게 말했다.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자. 먼저 이순신과 함께 싸우고 그를 존경했던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의 <제이통제문>을 보자. 


 평시에 사람을 대하면 '나라를 욕되게 한 사람이라, 오직 한 번 죽는 것만 남았노라' 하시더니 이제 와선 강토를 이미 찾았고 큰 원수를 갚았거늘 무엇 때문에 오히려 평소의 맹세를 실천해야 하시던고, 어허 통제여! -p376

 

 진린 역시 이순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린은 명나라 황제에게 진언하여 이순신이 전쟁 후에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순신이 명나라 황제로부터 면사첩(죽음을 면해주겠다는 황제의 밀지)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비가 내렸다. 

 경리 양호의 차관이 초유문과 면사첩을 가지고 왔다. <난중일기 1597년 11월 17일>

 

 이순신의 면사첩이 확실하다는 주장말고 당시 친일했던 순왜자들을 회유하기 위해 초유문(용서하겠다)과 순왜자들의 면사첩(죽이지 않겠다)을 이순신에게 건네주었다는 해석이 강하다고 한다. 명나라에서 왜 순왜자들을 신경썼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순신의 부하로 총애를 받았고, 훗날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던 류형은 생전에 이순신이 했던 말을 기록하였다.


 자고로 대장이 자기의 공로를 인정받으려 한다면 생명을 보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적이 퇴각하는 날에 죽어 유감될 일을 없애겠다. 


 숙종 때 대제학까지 지냈던 이민서는 이렇게 말했다. 


 의병장 김덕령이 옥사하자 제장과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곽재우는 드디어 군직을 떠나 생식을 하며 당화를 했고, 이순신은 싸움이 한창일 때 스스로 갑옷과 투구를 벗고 적탄에 맞아 죽었다.


 어떤 의병장은 역모죄로 옭아매질까 두려워 전쟁 후 미친 적을 했다고도 한다. 


 끝으로 숙종 때 영의정 이여의 말을 들어본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순신은 얼마든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으나 스스로 큰 공이 용납되기 어려움을 알고 드디어 싸움터에 이르러서 그 몸을 죽였다고 했다. 장군의 죽음은 미리 결정된 것이다. 오호, 슬프도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서양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를 옮기며 글을 마무리 한다. 


 p395-396


일본의 사토 테츠타로는 이순신과 영국의 넬슨을 이렇게 비교했다.


 역사상 최고의 제독은 동방의 이순신과 서방의 호레이쇼 넬슨이다. 거기에 넬슨은 인간적, 도덕적인 면에선 이순신에 떨어진다. 조선에서 태어났다는 불행 덕분에 서방에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제국국방사론>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는 러일전쟁 승리 직후 축사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조선사 연구소>


 제2차 세계 대전의 영웅이었던 영국의 버나드 몽고메리 역시 조선의 이순신을 알고 있었다.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이며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 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전쟁의 역사>


 해전사 전문가이자 해군 제독이었던 영국의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제독은 이순신과 넬슨을 비교했다.


 영국인의 자존심은 그 누구도 넬슨 제독과 비교하길 거부하지만, 유일하게 인정할 만한 인물을 꼽자면, 한반도의 이순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가 없었으며,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완벽해 흠잡을 점이 전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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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03 2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인으로 하여금 책을 집어들게 하는
리뷰, 이러한 리뷰를 우리는 명문이라
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8-03 21:34   좋아요 1 | URL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책이 좋아서 인용만해도 좋은 리뷰가 되는 거 같습니다. 이 책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mini74 2022-08-03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순신 일기에 진짜 원균 욕이 많더라고요 ㅠㅠ 선조가 김덕령을 참수한 일은 정말 열받더라고요. 라디오님 잘 읽었습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2-08-03 21:35   좋아요 1 | URL
선조와 원균은 정말... 리더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게 많아졌다. 예전부터 하고 싶은 건 많았던 거 같다. 하지만 책중독이라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다. 책중독이 완화되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게 많아졌다. 코로나 기간 때는 참아야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


 이번 주부터 수영을 배우고 있다. 초등학생 때 수영을 잠깐 배웠는데 다 잊어버렸다. 제 수영실력은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첫날은 음파와 발장구를 배웠다. 둘째날은 팔돌리기를 배웠다. 하나하나 배워가는게 재밌다.


 클라이밍도 배우고 싶다. 클라이밍을 배울까 수영을 배울까 아니면 둘 다 같이 배울까 고민을 많이했다. 고심 끝에 수영을 선택했다. 여름이기도 하고 클라이밍은 주말에 일일레슨을 받을 수도 있고. 


 다음 달에 대학교에서 학기제로 운영되는 수영강습을 등록할까 한다. 아침수영!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와 수영. 물론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다. 


 내가 수영을 배우고 싶은 건 하루키의 영향이 큰 거 같다. 런닝도 그렇고. 이 양반 맨날 수영하는데 재밌어 보이기도 고 부럽기도 했다. 수영은 평생 취미로 할 수도 있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즐길거리가 많아지면 좋지 않겠는가.


 오늘 갑자기 영화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보고 싶다. 주옥같은 대사들을 다시 듣고 싶다. 속으로 대사들을 따라하고 싶다. <헤어질 결심 각본집>도 사고 싶다. 오늘 영화 <비상 선언>도 개봉한다. 그것도 보고 싶다. 요즘 매주 볼만한 영화들이 개봉해서 즐겁다. 


 당연히 책도 즐겁게 읽고 있다. 새 책을 3권 샀지만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이순신의 바다>와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 원칙>을 읽고 있다. 팟캐스트와 책으로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다. 부동산 하락장에 내집 마련하고 싶다. 이왕이면 잘.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공부가 최고다. 부동산 역시 공부해놓으면 평생 써먹을 수 있다. 음, 대부분의 것들은 공부해놓으면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마도.


 아무튼, 하고 싶은 건 많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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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2-08-03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수영실력은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자꾸 대사를 곱씹게 되요..

고양이라디오 2022-08-03 16:09   좋아요 2 | URL
헤어질 결심 대사가 좋아서 자꾸 써먹고 싶어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써먹고 싶은데 누가 저 좀 만만하게 봐주세요ㅠㅋㅋㅋㅋ

레삭매냐 2022-08-03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고 계시겠지만 책중독은
불치병인 거 아시죠? ^^

고냥이라디오님의 수영 마스터
를 응원하는 바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8-03 16:09   좋아요 2 | URL
불치병인가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증상이 많이 완화되서 다행이예요ㅎ 예전에는 진짜 강박, 집착까지 심했던 거 같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라파엘 2022-08-03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라이밍과 수영은 사용하는 근육이 비슷해서 서로 도움이 됩니다 ㅎㅎ 저는 아침수영 하고 있는데,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고 좋아요. 고양이라디오님의 즐거운 배움을 응원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2-08-03 16:10   좋아요 2 | URL
오오! 아침 수영하시는군요. 전 아침 잠이 많고 야행성이라 걱정입니다ㅠ 적응하는 동안 힘들듯요ㅠㅠ
 














 이순신의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저의 영웅입니다. 영화 <한산>을 재밌게 보고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이순신의 바다>를 빌리고 <난중일기>를 구입했습니다. <이순신의 바다>는 한국사 강사이신 황현필님이 쓴 책입니다. 그림도 많고 좋습니다.  




 이순신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보다 대단한 인물이 우리 역사 속에 있었음을 알게 하고 또 우리가 그의 후손이라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역사서이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p05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으면 합니다.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벌벌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산하가 피로 물든다.

<이충무공전서> 중 '검명' 


 영화 <명량>에서 이 문구가 나왔던 거 같은데 맞나요? 



  분명히 말하지만 임진왜란 발발 전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아니라 경상좌수사나 경상우수사였다면 일본군은 조선땅을 상륙하기도 전에 바다에서 참패하고 일본 열도로 물러났을 것이다. 혹여 일부 부대가 상륙했다치더라도, 전진 기지를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고, 육지에 상륙한 일본 육군은 사기 저하와 보급품 부족으로 조선땅에서 빨치산처럼 살아가다 고사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임진왜란(1592~1598)은 우리에게 임진왜변(1592) 정도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경상좌수사 박홍과 경상우수사 원균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p92 


 전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못해봤습니다. 저도 저자와 같은 생각입니다. 이순신이 경상도 바다를 지켰다면 일본군은 조선에 상륙조차 힘들었을 것입니다. 경상우수사 원균과 경상좌수사 박홍은 일본과 교전도 하지 않고 달아나기 바빴습니다. 원균은 판옥선이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갈까 두려워 자신이 도망칠 판옥선 1척을 남기고 남은 판옥선을 모두 불태웠습니다. 참, 판옥선을 적에게 넘기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하는건지.


 당시 전라좌수사인 이순신의 관활지보다 원균과 박홍의 관할지는 2-3배가 컸습니다. 그만큼 병력도 많았다는 소리고 판옥선도 많았다는 소리입니다. 이순신이 25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원균과 박홍의 판옥선만 합쳐도 최소 50척에서 많게는 100척 이상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방비로 적을 상륙시켰고 교전 한 번 하지 않고 달아나기 바빴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존경스러운 부분이 이순신 장군의 철저한 준비성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미 일본군이 쳐들어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준비에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병사를 조련하고 판옥선을 건조하고 일본군의 전투에 대비해 거북선까지 준비했습니다. 충분한 대포와 화약도 준비했습니다. 원균과 박홍과 그의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서 도망치기 바빴지만 이순신과 그의 병사들은 판옥선 25척을 이끌고 일본 함대를 차례로 격파해 나갔습니다. 


 가장 본받고 제가 개선해야할 점이 이순신 장군의 준비성입니다. 저는 항상 일이 터지고 나서야 수습하기 바쁩니다. 앞으로 미리미리 조심해고 준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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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2-08-02 2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헤어질 결심을 보고 왔습니다

박해일님의 나이 들어 가는 모습을 보는것도 좋았어요
박해일 배우의 이순신장군의 모습도 기대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2-08-03 10:10   좋아요 3 | URL
헤어질 결심 또 보고 싶습니다.

한산도 재밌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