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독서모임 책이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 비해 감흥이 많이 떨어졌다. 밀란 쿤데라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다. <농담>, <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람들 평이 좋다. 

 


  "쓸데없기만 한 게 아니야. 해롭다니까.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여자가 마음을 탁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워지지. 아, 이쯤 하자. -p25


 이 글을 읽으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공감갔다. 독서모임에서 이 글을 가지고 이야기 나눠서 좋았다.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붙임성이 좋다. 처음보는 사람한테도 말을 잘 건다. 여자와 대화할 때도 여자의 경계심을 풀게하고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다. 부러운 능력이다. 나는 책을 읽고 부터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도 줄어든 거 같다. 그러다보니 쓸데없이 진지해지고 점점 노잼이 되어가고 있다. 좀처럼 가볍고 편해지지 않는다. 디폴트 값이 어색함이다.



  "왜냐하면 그 주위 누구도 농담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게 됐으니까. 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한 거라고 봐." -p31


 스탈린은 농담을 한다. 그러나 아무도 스탈린 말이 농담이라는 걸 모른다. 심지어 나도 그랬고, 독서모임 사람들 대다수도 그랬다. 스탈린이 농담을 한다고? 


 농담이 통하지 않는 세상. 작가는 왜 이를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라고 말했을까? 반어법이었을까? 


 

  그녀는 온힘을 다해 발버둥 쳐야 할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 -p50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라는 표현이 멋졌다. 모순적인 표현이다. 죽음을 구한다니. 한 여자는 자살하려고 물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것을 본 누군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아니, 어떻게? 결심을 잊은 것일까? 죽음을 훔쳐 가려던 이가 이제 살아 있지 않은데 왜 그녀는 물에 빠져서 죽지 않은 것일까? 마침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는데 왜 이제 죽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예상치 못하게 다시 찾은 삶은 마치 어떤 타격처럼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내리쳐 부숴 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죽음으로 온 힘을 집결시킬 기운이 없었다. -p52


 자신을 구하려는 남자를 그녀는 죽인다. 그리고 힘이 빠져 죽으려던 것을 멈추고 물에서 헤엄쳐 나온다. 죽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 의지를 소진하면 우리에게 남은 건 본능적인 생존욕구가 아닐까?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역설적이지만 살려는 의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죽으려는 의지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리방은 신비화하려 기를 쓰는 그런 짓이 모두 아무 소용없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됐는데, 왜냐하면 손님들이 그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또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만큼 무엇을 먹거나 마시고 싶고 간단한 몸짓을 할 뿐 그가 하는 말을 듣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 없는 배우가 되었다. -p67

 

 칼리방은 파키스탄인을 연기한다. 하지만 그의 장난을 아무도 눈치재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우리의 페르소나를 연기하지만 사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우리는 관객 없는 배우가 아닐까?



  "내가 꿈꿨던 건 인류 역사의 종말이 아니야, 미래를 없애 버리는 게 아니라고, 아니, 아니, 내가 원했던 건 인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들의 미래와 과거와 더불어, 그들의 시작과 끝과 더불어, 그들이 존재해 온 시간 전체와 더불어, 부처와 예수와 더불어, 다 사라지는 거였단다, 나는 최초의 여자의 배꼽 없는 작은 배에 뿌리 내린 그 나무의 전적인 소멸을 원한 거야, 자기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그 참담한 성교가 우리에게 어떤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지 몰랐던 그 어리석은 여자, 쾌락을 가져다주지도 못했을 게 틀림없는 그 성교가......" -p104


 이 부분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 뒤를 다시 읽어도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 미래와 과거, 그들이 존재해 온 전부가 다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종말을 원하는 건 아니다. 아, 이제 이해가 간다. 역사의 종말이나 미래만 없애 버리는 게 아니라, 아예 과거까지 송두리채 사라지는 걸 원한 거구나.



  "벌써 세 번, 그래서 사실 여기에 샤갈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한 주 한 주 지나면 줄이 더 길어지는 걸, 그러니까 지구에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 확인하러 오는 거지, 저 사람들 봐! 저 사람들이 느닷없이 샤갈을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해?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하게 조종하기 쉽다고." -p136 


 과거 내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러웠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혹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시회를 가진 않았는지. 이제는 그래서 전시회를 잘 가지 않는다. 진짜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p139


 공감가진 않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거 같다. 저자는 여자들의 배꼽은 다 똑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배꼽은 배꼽을 지닌 여자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태아에 대해 말해준다고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여자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태아를 생각해서 섹스를 한다는 걸까? 잘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 작품 속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인물이 한 페이지에 걸쳐 말을 한다. 저자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김이 좀 샜다. 최근에 하루키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저자가 진술을 하는 순간 끝장이라고. 그 글을 읽고 위 구절을 읽어서 그런지 좀 아쉬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YDADDY 2023-04-04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보면 저자와 대화하고 작중 인물과 대화하고 은유와 의미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사람과 멀어지게 되고 말수가 적어져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줄어들더군요. 하지만 그 간극을 글쓰기로 메우고 감상에 대해 공감하다보면 일상의 무의미한 대화보다 더 큰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 같아요. ^^

고양이라디오 2023-04-04 11:2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공감합니다ㅎ

그런데 아주 가끔은 무의미한 대화, 하찮은 대화가 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 같습니다. 친한 친구들하고만 할 수 있는ㅎ

 


 #1 

 독서모임의 좋은 점 하나. 평소에 읽지 않을 책을 읽는다.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작가나 책을 읽게 된다.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를 읽었다. 좋기는 했으나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볼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시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가>도 아마 혼자서는 찾아 읽지 않았을 책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재밌게 읽어서 에리히 프롬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긴 했다. <소유냐 존재냐>나 <자유로부터의 도피>란 제목을 많이 들어서 이 책들을 읽고 싶었다. 독서모임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었는데 그닥 좋지 않았다. 저자 사후에 미발표 원고들을 묶어 출판한 책이다. 번역도 별로고 저자의 동의나 수정도 없이 초고를 출판한 게 아닌가 싶다. 아쉬웠던 책. 독서모임에서 깔 건 까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싶었는데 동조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 슬펐다.  


 
















 #2

 요즘 독서모임을 하면서 느낀 건데 나는 참 비판적 시각으로 책을 읽는 거 같다. 예전에는 나도 순수하고 순진했는데...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읽은 책을 또 읽어서 그런가?


 
















 <무의미의 축제>는 독서모임 때문에 세번째로 읽게 되었다. 세번째로 읽으면 비판을 안할 수가 없는지도. 처음에 읽었을 때는 무척 재밌었고 참 맘에 드는 소설이었다. 점점 읽을 수록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네번째는 절대 안 읽을듯. 



















 <인간 실격>은 독서모임 때문에 2번째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주인공 요조에 공감하고 요조가 너무 불쌍했는데 두번째로 읽으니 요조가 답답하고 참 못나 보였다. 이번엔 책이 아닌 주인공 비판. 예전에 서친분들 중 비판적 성향이 강한 분들을 보면 '왜 저렇게 비판적이지. 그냥 좋게 좋게 받아들이면 되지 허허.' 하면서 속으로 대인배인 척을 했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잘못, 오류들이 더 잘 보인다. 아직 내공이 쌓여서 그런건지, 성향이 비판적이 되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예전에 쓴 리뷰들을 읽어보면 호불호가 강하고 비판적 성향이 강했던 것도 같다. 그래,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겠어?



 #3

 왜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건지 우연이라 그런건지. 독서모임 책들이 죄다 읽은 책들이다. 진짜 다시 읽은 책은 패스하는데 그래도 한 번 더 읽어볼만한 책은 읽고 모임을 참석하고 있다. 본 책을 다시 봐서 그런가 재미가 덜하다. 재밌는 책을 읽고 싶다. 


 



 














 이번 주 독서모임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내 인생 책이다. 인생 책이라 다시 읽고 싶지만 또 인생 책이라 다시 읽기 두려웠던 책이다. 다시 읽었는데 예전만큼 재미없으면 어쩌지? 실망하면 어쩌지? 흡사 첫사랑을 다시 만나서 실망하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다. 좋았던 기억,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데.


 그래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두려울 게 머가 있겠는가. 읽고 있는데 역시 좋다. 아직까진 읽기를 잘 한 거 같다. 



#4

 독서모임 때문에 매주 한 권씩 읽고 있다. 꽤 버겁다. 독서모임 책을 우선으로 읽다보니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대신 시간을 아껴서 읽다보니 더 재밌다. 마치 시험기간에 딴 짓을 하는 것처럼. 이젠 운영진이 되서 내가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을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할 권한도 생겼다. 그런데 이게 또 쉽지가 않다. 나한테는 재밌는 책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밌을까? 어렵진 않을까? 


 한 두 사람이라도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이 많을 필요는 없으니. 책이 마음에 안들어서 독서모임을 참석 못하게 되는 분들께는 죄송. 















 칼 포퍼의 책을 읽고 싶었는데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가 광고로 눈에 띄어 읽게 됐다. 좋다. 재밌다. 훌륭하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고 싶다. 


 과학과 철학에 배경지식이 있어서 읽기 편한 책이다. 번역은 괜찮다.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보다 개인적으로 훨씬 읽기 편하다. 진짜 그 책은 번역도 엉망이고 작가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 이 책을 독서모임 선정도서로 추천해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es2030 2023-09-18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간중간 제가 쓴 일기를 보는것 같아... 오지랖을;;
나이가 들어서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쌓인 경험과 지식만큼 또 안보였던 틈과 흠들이 더 보여서 저도 더 좋아진 책보다 덜 좋아진 책들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읽을 책이 읽고 싶은 책이 아직도 한참 많아서 한방에(?) 잘 읽고 패스시키자는 맘으로 읽고 있어요~
(자꾸 나쁜 점만 보고 지적하다보니 어느 순간 내 성격이 문제인가 내가 꼬인건가 싶어서 당연한 의문도 말도 주춤하게 되더라구요 혹시나 그러실까봐 오지랖오지랖오지랖;;;)

고양이라디오 2023-09-18 10:07   좋아요 0 | URL
les님 오지랖 감사할 따름입니다^^ㅎ

예전 리뷰들 보니 전 원래 비판 적이 었던 거 같더라고요ㅎㅎ 아는 것이 많아지니 그만큼 비판할 것들도 눈에 많이 보이고요. 나이가 들으니 정말 덜 좋아진 책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요즘은 독서모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는 재독은 지양하고 읽고 싶은 책 위주로 읽고 있습니다ㅎ
 

 #1

 요즘 다시 독서욕이 활활 타오른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산 책, 선물받은 책. 책이 한가득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책에 눈이 돌아가고 구입하고 싶어진다. 참아야 한다.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4월까지만 참자. 아!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자. 상호대차 신청완료!


 #2

 요즘 독서욕이 불타는 이유는 2가지가 있지 않나 싶다. 첫번째, 운동. 운동을 찬양하고 싶다. 운동을 하니 모든 게 더 나아졌다. 모든 게. 예전에는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이 바빴다. 지금은 운동에 시간을 쓰고 있다.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투자 성과는 아주 훌륭하다. 수익률이 아주 좋다. 


 컨디션이 좋고, 기분이 좋다. 의욕도 생긴다. 자신감도 생긴다. 점차 꺼져가는 독서욕이 다시 활활 타오른다. 의지력도 좋아진다. 이제 더이상 유튜브에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밥맛도 좋다.


 #3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독서모임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책을 읽고 있다. 장단이 있다. 독서모임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을 못 읽게 되기도 하지만 다시 독서습관을 들이는 데는 좋다. 평소 같으면 유튜브를 보거나 할 시간에 독서모임 책을 읽게 된다. 매주 모임이 있다. 자주 참석해서 그런가 어쩌다보니 운영진을 맡게 되었다. 뭐 특별한 약속이나 일정이 없으면 당분간 토요일 오전은 독서모임을 하게 될 거 같다. 인문고전이나 문학 위주다 보니 좀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다른 책들은 틈틈이 시간내서 읽어나가자. 


 요즘 문학작품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가 과학책이 너무 땡긴다. 


 #4 

 운동은 PT를 받고 있다. 생애 첫 PT다. 예전에는 헬스는 재미없는 거, 쓸데없는 거라 생각했다. 막상 배워보니 재밌고 유익하다. 역시 뭐든지 경험해보거나 알기 전에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다. PT 4주차다. 과연 2개월 후에 바프를 찍을 수 있을까? 일단 꾸준히 매일 열심히 하자. 재밌게 운동하자! 여정이 보상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3-03-31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danalove 2023-04-03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에서도 힘이 느껴져요!! 저도 홈트 어제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ㅎㅎㅎㅎㅎ 💪🏻💪🏻💪🏻

고양이라디오 2023-04-03 11: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거짓말처럼 저 글쓰고 컨디션이 나빠졌다는... 너무 무리한 운동은 해롭습니다. 앞으로 휴식과 먹는 거에 더 신경을 쓰려고요.

홈트는 저는 힘들더라고요. 집은 유혹이 너무 많아서ㅠㅠ

danalove님 운동, 홈트 파이팅입니다!
 















 요즘 인문/고전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 문학 류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과학도서가 요즘 읽고 싶다. 어제 책 정리를 하다가 <스켑틱 21호>을 발견했다. 앞부분을 거의 읽고 뒷부분 조금 남겨놓은 상태였다. 뒷부분을 읽고 앞부분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도 훑어봤다. 


 <스켑틱 21호>는 코로나에 관한 내용들이 많아서 찾아봤다. 재밌었다. 



 <스켑틱>은 내가 좋아하는 과학잡지다. 구독하면 좋은데 가끔 이렇게 중고로 구입해서 보고 있다. 생각난 김에 <스켑틱> 중고를 찾아서 좀 구입해야겠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다시 독서욕이 활활 타오른다. 


 

















 슈테판 클라인은 좋아하는 과학 작가이다.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는 예전에 구입한 책이니 집에서 한 번 찾아봐야겠다. 


 <슈퍼버그>는 전염병에 관한 책이다. 역시 읽어보고 싶다. 


















 기억과 학습의 원리를 밝히고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의 저서들을 읽어보고 싶다. <통찰의 시대>, <기억을 찾아서>,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를 읽어보고 싶다. 



 셔머는 '악'을 감응적 존재에 의도적으로 가해진 위해로 정의했다. -p221


 악에 대한 꽤 훌륭한 정의라 기록해둔다.


 

 과학을 좋아하는 내게 언제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스켑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좋아하고 장르, 분야를 가리지 않지만 유독 내가 꺼려하는 장르가 있다.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 공부할 때는 시가 좋았다. 몇몇 좋아하는 시나 구절은 외우기도 했다.(금방 까먹었지만)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시도 여러 차례 도전을 해봤다. 하지만 시집을 읽었을 때 좋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유명한 외국 시집을 몇 권 읽었지만 시란 내게 난해한 영역이었다. 


 나는 명료한 문장을 좋아한다. 애매한 건 싫어한다. 시를 읽으면 거의 대부분 해석이 되지 않는다. 일단 가장 1차적인 정보조차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원래 소설을 읽어도 풍경이나 인물 등 묘사 부분을 싫어한다. 가구나, 옷, 악세사리, 나무 등의 이름에 익숙치 않아서 도무지 머리 속에 풍경이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때문에 시에서 묘사하는 것들이 머리 속에 입력이 쉽게 안된다. 아주 천천히 읽어야 조금 들어온다. 그리고 여기에 중의적 표현이나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문장까지 추가되어 버리면 해석할 수 없는 암호문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역사>에 소개된 시들도 대부분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무슨 내용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더라고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자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해설을 읽고 다시 시를 읽으니 전혀 다른 시처럼 느껴졌다. 전혀 다른 감흥을 느꼈다.


 신형철 작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베스트셀러 작가셨다. 이 책은 좋았다. 특히나 첫 부분이 굉장히 강렬해서 책에 빠져들었다. 점점 뒤로 갈수록 시간에 쫓겨서 읽은 탓도 있겠지만 별로였다. 


 저자의 해석에 반대하고 싶을 때도 몇몇 있었다. 그만큼 시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나는 평론가들은 원저자의 의도를 해석하기 보다 자기 자신을 해석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평론가들의 해석을 원저자들에게 들려주면 원저자들은 그런 부분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리라.


 나와 같이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이렇게 해석이 있으면 시를 읽고 또 좋아할 수 있을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