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소원 빌기 상당히 어렵다. 물론 정령의 '지니'가 나의 소원을 들어주지도 않겠지만 소원 빌기 은근히 어렵다. 영화 속 대사에서도 나오듯이 소원을 비는 신화나 전설은 많다. 그리고 대부분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원은 함부로 빌면 안된다는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탐욕은 화를 부른다는 등의 교훈이다. 약간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나비효과>같은 영화처럼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과거를 바꾸면 미래에 전혀 예측못한 결과가 따라온다. 주로 나쁜 결과가 따라온다. 


 방금 소원을 떠올려봤다. 세상 모든 여자가 나에게 반하면 어떨까라는 소원을 떠올려봤다. 잠시 후 역효과가 생각난다. 좋은 점도 있겠지만 분명 엄청난 혼란이 따라올 것이다. 일단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에게 반하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중에는 변태적이고 위험하고 파괴적인 사람도 있다. 분명 나를 사랑해서 나를 죽이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나를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 방부처리를 할지도 모른다. 아... 역시 소원은 신중하게 빌어야 한다. 최소 한 달은 고민하고 A4 용지 세 장에 달하는 긴 소원을 빌어야 한다. 


 다른 소원도 떠올려 봤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로 만들어주세요. 약간 모호한 소원이다. '지니' 가 소원을 잘못 이해해서 나를 세계에서 가장 부자의 모습으로 바꿔줄 수 있다. 생김새만.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부자가 일론 머스크라고 하자. 그럼 나의 소원은 '일론 머스크로 만들어주세요'가 된다. 지니가 오해하고 모습만 일론 머스크로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런데 재산은 그대로다. 지니가 소원을 제대로 이해해서 내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입금해줄 수 있다. 내 통장에 엄청난 돈이 찍힐 것이다. 그러면 분명 세무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지니가 소원을 들어줬다고 우겨도 내 돈은 단순한 오류로 치부되서 사라질 것이다. 현금이 입금된 증거도 없고 이체된 증거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계좌에 돈이 찍힌다면? 분명히 돈의 출처를 인정받지 못하면 그 돈은 없어질 것이다. 역시 소원은 세 달 정도는 고민해서 1만 4천가지 정도의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빌어야 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잘못될 가능성이 생각난다. 만약 지니가 돈을 입금했다고 치자. 수많은 재산이 원화로 입금되었다면 원화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다. 나 때문에 국가부도가 나고, 이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생기고 그리고 그 피해자가 나에게 복수를... 소원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이쯤되니 소원을 떠올리기가 두렵다. 큰 소원을 빌수록 크게 잘못될 확률이 높아진다. 작은 소원은 리스크는 작지만 굳이 작은 소원을 왜 빌겠는가. 


 아래는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에 관한 소설 <아자젤>이다. 소원 비는 게 왜 위험한 것인지 알고 싶은 분은 이 소설을 읽어보시길. 유머러스하고 SF 적이며 재밌다. 소원을 빌 때는 물리법칙까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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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5-30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자젤 읽어보겠습니다. 일론 머스크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 전 세계 최고 부자로 중동 왕자들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으로만 바뀌는 거면 싫어요 ㅋㅋㅋ 예전에 웹툰에서 악마가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주인공이 달에도 갔다오고 산해진미 다 먹어보고 허무해져서 빈 소원이 행복이었던 거 같아요. 주인공은 바보가 되었어요. 늘 웃으면서 침 흘리고 있으면 엄마가 다 챙겨주는…

고양이라디오 2023-05-30 23:31   좋아요 1 | URL
처음에 중동 왕자로 글 썼다가 일론 머스크가 왠지 임팩트가 있는 거 같아서 바꿨습니다ㅎ 저도 지금 제 모습이 적응되서 별로 바뀌고 싶지 않네요ㅠㅋ

어쩔 땐 바보가 혹은 어린 아이가 부럽습니다. 그들이 훨씬 삶이 행복할 거 같아요ㅎ...

아자젤 읽어볼만합니다ㅎ

꼬마요정 2023-05-30 23:44   좋아요 1 | URL
일론 머스크 선택 탁월하십니다. ㅎㅎㅎ 때론 말씀처럼 어린아이나 바보가 행복해보여요. 생각이 많은 게 마냥 좋은 건 아닌 듯 해요. ㅎㅎ 아자젤 아자젤 기대됩니다.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3-05-31 18: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아무 생각없는 게 제일 행복한 거 같아요ㅎ

아자젤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ㅎ

그레이스 2023-05-3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에서 나오는 아사셀하고 같은 말인가 싶네요?

고양이라디오 2023-05-31 18:09   좋아요 1 | URL
알라딘 책 소개 보니 성경에 등장하는 타락천하 아자젤이라고 하네요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점 7.5

 감독 조지 밀러

 출연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장르 멜로/로맨스



 빅재미는 없었지만 소소하게 볼만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과거가 실감나고 아름답게 그려져서 좋았다. 이드리스 엘바의 키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189cm로 틸다 스윈튼보다 10cm크다. 영화에서는 30cm이상 차이나는 거인으로 나오는데 CG인가 신기하다. 영화를 보면서 틸다 스윈튼도 키가 큰 걸로 알고 있어서 이드리스 엘바는 2m가 훨씬 넘는 거인인가 했다. 감독은 <매드 맥스>의 조지 밀러 감독이다.


 세계의 신화나 전설 등의 이야기를 연구하는 서사학자 틸다 스윈튼이 우연히 호리병의 정령 '지니'를 소환한다. 지니는 그녀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둘의 대화가 사실감있어서 좋았다. 지니의 과거 이야기들이 재밌고 흥미로워서 좋았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지니의 과거 이야기에 빠져 중후반까지 재밌게 보다가 틸다 스윈튼과 이드리스 엘바의 로맨스가 시작되면서 왠지 김이 새면서 흥미가 떨어졌다. 둘의 연애는 영화의 주제라던가 결말 등 영화에 필요한 부분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왠지 김이 샜다. 뒷이야기가 예측이 안되던 흥미롭던 이야기가 갑자기 뻔하게 흘러가는 느낌? 이게 다 하루키씨 때문이다!?


 김이 샌 게 왜 하루키씨 때문이냐고? 하루키씨의 에세이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작가가 작위적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면 독자들이 눈치를 채고 그러면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고 김이 새버린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소설 작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의 결말과 교훈, 주제까지 이야기를 정해놓고 소설을 쓰는 방식과 그런 거 없이 소설 속 인물들을 따라가며 소설을 쓰는 방식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끝이 어떻게 끝날지 소설가가 알고 쓰는 경우와 모르고 쓰는 경우이다. 전자의 방식은 단편이나 추리 소설 등에 많이 쓰일 것이고 후자는 장편 소설에 많이 쓰일 것이다. 


 소설의 결말을 모르는 데 소설을 어떻게 쓸 수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스티븐 킹과 하루키는 명백히 후자의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 이 둘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끝을 알고 있으면 소설가가 소설을 도대체 왜 쓰겠냐고 무슨 재미로 쓰냐고 말한다. 단편 소설은 시작과 결말을 정해놓고 쓸 수 있다. 장편 소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등장인물이 어떻게 행동할지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 지 하루키나 스티븐 킹 같은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기 전까지 모른다. 


 어쨌든 하루키의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부터는 에전보다 더 이런 부분에서 예리해지고 엄격해진 거 같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이렇게 김이 새버린다. 그리고 왜 김이 샜지 하고 생각하면 혹은 김이 샘과 동시에 '아 이 부분은 소설가가 미리 정해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3000년의 기다림>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 틸다 스윈튼이 램프의 정령 '지니' 에게 사랑에 빠진 순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순간 왠지 김이 샜다. 뒷 이야기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뒷 이야기는 뻔한 수순으로 흘러갔다. 심지어 대사들도 뻔한 대사들이 많았다. 사실 영화는 소설로 치면 단편이나 중편 소설 정도의 분량이다. 끝을 정해놓고 썼다고 해서 머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각본가가 끝을 정해놓고 썼는지 아니면 내가 그냥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른다. 90% 정도의 확신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지니'의 과거의 이야기들은 실은 다양한 사랑 이야기들이며 틸다 스윈튼이 이드리스 엘바에게 사랑에 빠져야 이야기는 완성된다. 이는 이 영화 속 아주 중요한 포인트로 틸다 스윈튼이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이 영화가 성립하지 않을 정도다. 아무튼 영화의 서사 구조에 틸다의 사랑은 아주 중요했지만 그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지진 않아서 아쉽다. 내가 눈치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약간 뜬금없이 느껴지고 억지로 짜맞춘 느낌이 살짝 들었다. 


 아무튼 용두사미로 끝난 거 같아 아쉽다. 전반적으로 볼만해고 재밌었다. 흥행에는 참패하고 관객들의 평점도 그리 좋진 않다. 조금 안타깝다. 그런데 나는 무슨 소원을 빌까? 




 평점 10 : 말이 필요없는 인생 최고의 영화. 

 평점 9.5: 9.5점 이상부터 인생영화. 걸작명작

 평점 9 : 환상적. 주위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 수작

 평점 8 : 재밌고 괜찮은 영화. 보길 잘한 영화. 

 평점 7 : 나쁘진 않은 영화. 안 봤어도 무방한 영화. 범작

 평점 6 :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 6점 이하부터 시간이 아까운 영화. 

 평점 5 : 영화를 다 보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한 영화. 

 평점 4~1 : 4점 이하부터는 보는 걸 말리고 싶은 영화. 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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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샬의 신작이다. 역시나 지리를 바탕으로 세계 속의 장벽들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려준다. 중국의 '인터넷 검열 방화벽' 부터 영국의 브렉시트까지 다양한 장벽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부분은 약간 흥미가 떨어졌지만 전체적으로 재밌게 읽었다. <지리의 힘2>도 마저 읽어야겠다. 



 범죄가 반드시 이민과 연결되지는 않지만 빈곤과는 연결되며, 둘 다 아프리카 전역에 널리 퍼져 있다. 통계가 보여주듯이, 범죄율과 관련해서, 특히 살인사건 발생률과 관련해서 아프리카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2012년 세계 범죄율에 대한 국제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그 해에 43만7000건의 살인 사건 중 36퍼센트가 미국에서 발생했고, 31퍼센트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 -p235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의 살인범죄율이 세계 1위라는 것이다. 총기자유도 하나의 원인이겠지만 총기 자유만의 문제는 아닌듯하다. 캐나다도 총기 자유화국가이지만 거의 총기살인사건이 없는 수준이다. 


 

 가자지구 장벽, 방글라데시 주변의 장벽, 헝가리와 세르비아 사이의 철조망은 우리의 감성을 해치고, 우리가 차이를 해결하지 못함을 증명한다. 

 장벽을 세우는 추세를 비난하기는 쉽다. (중략) 장벽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다. -p334


 저자는 <장벽의 시대>에서 세계에 세워진 여러 장벽들과 장벽들이 세워진 지리적, 역사적 원인에 대해 알려준다. 물론 장벽은 우리에게 갈등과 분리를 상징하는 불쾌한 요소이다. 하지만 저자는 중립적으로 장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벽이 세워진 것은 그것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만리장성을 비롯하여 언제나 장벽, 울타리를 세워왔다. 장벽은 현실이다. 장벽을 없애자는 단순히 순진하고 이상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당장에 본인의 집 문을 없앤다 생각해봐라. 



 대부분의 언어에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격언이 있다. 이것은 진부한 속담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한계에 관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는 최선을 희망하고 최악을 두려워하기에 미래를 위해 계획하며, 두려움 때문에 장벽을 세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성에 대한 암울한 견해로 보인다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 생각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또한 우리에게 장벽 사이의 공간을 희망으로 채울 수 있는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p345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장벽을 연결해주는 다리이다. 그리고 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문이다.



 아래는 옮긴이의 글에서 발췌했다. 이 책에 대해 설명해주는 글이다.


 이 책 <장벽의 시대>는 전 세계에 걸쳐 국가 간에 세워진 장벽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분쟁과 분열, 갈등이 벌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고한다. 그 분쟁과 분열, 갈등은 국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종교적, 계급적, 민족적, 부족적 차이 등을 이유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중국에서는 외부 세계와 분리된 '거대한 방화벽', 미국에서는 멕시코와의 국경선 장벽과 내부의 인종적, 정치적 분열,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대립, 남아시아에서는 인도와 그 주변 국가들 간의 분쟁과 이주민 문제, 아프리카에서는 끊임없는 국가적, 민족적, 부족 간의 갈등, 유럽에서는 유럽 통합 세력과 민족주의적 분리 세력의 갈등과 난민 문제,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갈등과 내부적 분열.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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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27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벽의 시대]
꽂아만 두고 아직 ....^^
고양이라디오님께서 2권 읽으실 때까지 전 과연 1권을 읽을 수 있을까요?

˝미국의 살인범죄율이 세계 1위˝ 그럴 거라고 짐작했어도 막상 공식적인 선언처럼 들으니 다시금 무섭네요.
수년 전 읽었던 책에서 청소년 범죄가 영국의 경우는 칼, 미국은 총....그런 유형이 있다 언급했던 게 생각나요
총이 문제일까요?^^;;;

고양이라디오 2023-05-28 00:46   좋아요 1 | URL
<지리의 힘> 재밌었습니다. 추천입니다ㅎ

총도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빈곤, 빈부격차, 인종차별, 복지의부족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캐나다도 총기자유국이지만 총기살인범죄율이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요ㅜ

그레이스 2023-05-31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되던 가자지구의 청소년들, 감옥같은 그 지역으로부터 죽음으로라도 벗어나고 싶은 절망감, 분노를 느낀다고 들었어요 ㅠ

고양이라디오 2023-05-31 18:14   좋아요 1 | URL
현존하는 가장 최악의 장벽이 가자지구 장벽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해하고 같이 살면 좋을텐데ㅠ 해결이 요원해보입니다. 안타깝습니다ㅠ
 
















 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에 언제부터 흥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언뜻 떠오르는 이야기는 크게 2가지 이다. 첫번째는 대학생 때 본 만화 <기생수>. 만화 <기생수>에는 사람을 재미로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나온다. 그 캐릭터가 너무 기괴하고 무서워서 강렬한 인상이 남았었다. 두번째는 대학생 때 본 영화 <조디악>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이고 조디악이라는 실존했던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이후에 영화, 소설, 만화 등에서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을 만났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중고서점에서 책 제목이 인상깊어서 구입한 책이었다. 오랫동안 책을 펼치지 않았다가 <마인드 헌터>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마인드 헌터>는 동명의 책을 소재로한 드라마다. 공교롭게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연쇄살인범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세븐>, <조디악>, <마인드 헌터> 같은 연쇄살인범을 소재로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었다. <마인드 헌터> 드라마를 보고 동명의 책도 보고 마침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까지 봤다. 드디어 연쇄살인범과 FBI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마인드 헌터> 시즌 3는 없을 거라고 한다. 무척이나 아쉽다. 높은 제작비 대비 시청자 수가 적다고 한다. 내겐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인데 인기가 많지는 않은가 보다.



 아래는 드라마에서도 그랬고 책에서도 가장 긴장감있고 몰입감 있는 장면이다.

 

 "교도관이 와서 당신을 꺼내주려면 적어도 15분, 아니면 20분은 더 걸릴 거요."

 

 그가 말했다. 나는 냉정하고 태연해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만 확연하게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고 말았는데 캠퍼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난장판을 만들어버리면 당신은 무척 곤란해지겠지. 안 그래. 선생? 당신 머리통을 잡아뜯어서 탁자 위에 올려놨다가 교도관한테 보여줄 수도 있다고." -p93


 (중략)


 "그냥 장난이었다는 거, 당신도 알죠?"

 "당연하지."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나 자신은 물론이요 다른 FBI 면담자 역시 다시는 이런 상황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유죄가 확정된 살인범이나 강간범, 혹은 아동 성폭행범을 면담할 때는 절대로 혼자 가지 않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 되었다. 다시 말해 면담을 갈 때면 늘 짝을 지어서 함께 들어갔다. -p96


 이 책의 저자이자 FBI요원, 최초의 프로파일러 로버트 K. 레슬러는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실수가 됐을지 모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대담하게도 혼자서 캠퍼의 면담을 진행한 것이다. 에드먼드 캠퍼는 키 2미터 5센티미터에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을 육박하는 거구이다. 놀라운 지능의 소유자로 외조부와 자기 어머니를 포함해 8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다. 


 4시간에 걸친 면담이 끝나고 레슬러는 교도관을 호출하는 벨을 누른다. 그런데 15분이 지나도록 교도관이 오지 않는다! 아마도 식사 중이거나 근무 교대 중이었던 모양이다. 밖에 교도관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밀폐된 방에 거구의 연쇄살인범과 둘이 남게 된 상황, 결코 침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캠퍼는 장난인지 진담인지 레슬러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둘은 레슬러의 죽음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무사히 교도관이 나타나서 다행이지 정말 아찔했을 거 같다.   

 

 

 아래는 캠퍼에 관한 정신과 의사의 진찰 기록이다. 캠퍼는 외조부모 살해 후 4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조건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가석방 후 계속 정신과 검사를 받게 된다. 캠퍼는 정신과 검사를 받으면서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 1972년 봄, 외조부모 살인 후 첫 살인을 저질렀다. 어느 날은 시체의 머리를 트렁크에 넣어 둔 채 정신과 의사에게 검사 받으러 가기도 했다. 


 1972년 9월 캠퍼를 검사했던 정신과 의사 두 명은 캠퍼가 아타스카데로 정신병원에서 지내면서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환자의 과거 기록을 읽지 않았거나 환자가 그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본인은 정신병력이 전혀 없고 창의적이며 지성적인 젊은이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컨대 과거에 살인을 저질러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15세 소년과 현재의 23세 청년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본인은 이 환자가 수년간 치료를 받고 회복기를 거쳐 병세가 상당히 호전되었으며, 자기 자신에게나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도 위험이 될 만한 정신의학적 사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두 번째 정신과 의사는 다음과 같이 추가했다.


 이 환자는 예전의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자아분열에서 훌륭히 회복된 듯 보인다. 이제 한 사람의 훌륭한 사회인이며 감정을 언어, 일, 운동 등으로 표출하고 스스로 신경증이 더는 발달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는 듯하다. 성인으로서 가능성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어린 시절의 전과를 영구 말소해 좀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최근 환자가 오토바이를 '끊은'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오토바이가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주기보다는 그 자신의 삶과 건강에 더 위험하므로 이후로도 계속 타지 않기를 바란다. -p395



 이렇듯 캠퍼는 정신과 의사의 검사를 통과해서 1972년 11월 29일 그의 전과기록은 공식적으로 말소되었다. 캠퍼는 소년시절 정신병원에서도 정신과 검사에서 매번 좋은 결과를 받았다. 훗날 그는 당시 28가지 검사와 그 정답을 모두 암기했었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들을 욕하고 싶진 않다.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였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여전히 의심스럽다) 정신의학은 캠퍼와 같은 사람들의 위험성을 결코 감지할 수 없었다. 환자의 진술만으로 진찰하는 것은 정신의학의 가장 큰 오류가 아닐까 싶다.(환자가 거짓말을 해도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와 같이 정신과 검사와 정신의학의 틈새를 이용해 빠져나간 범죄자가 많다. 그리고 그 범죄자는 또다시 범죄를 일으킨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싸이코패스 살인마를 척하면 척하고 알아챌 수 없다. 그들은 주위의 평판이 좋은 경우도 많다. 실제로 캠퍼는 지역 경찰관들과 친하게 지냈다. 경찰관 중 아무도 그를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자백을 했을 때도 좀처럼 믿지 않으려 했다. 


   

 아래는 정신과 의사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다.


 그 사이 나는 리셀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에도 강간 살인을 저질렀고, 그 정신과 의사는 리셀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간파하지 못하고 증세에 호전을 보인다고 진단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나는 이것이 조직적 살인범들이 쓰는 속임수의 한 예라고 설명하면서, 내 생각에 이런 문제는 정신의학계가 전통적으로 환자 자신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가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치료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부분에 지나치게 기댄다는 얘기였다. 나는 법 정신의학자들은 환자의 고백에만 의존하지 말고 외부 보고나 법원 기록 등을 참조해야 하며, 범죄를 저지른 환자가 자기 삶과 행동에 대해 털어놓는 이야기가 정확한지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p414 

 

 이런 시행착오들을 통해 개선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책 속에 심령술사 르니에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런 심령술사가 근처에 있으면 보러 가고 싶다.


 르니에르는 1981년 초에 콴티코를 방문했다. (중략) 그날 르니에르는 경찰들 앞에서 월말에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당하겠지만 미수로 그칠것이라고 예언했다. 대통령은 왼쪽 가슴에 총을 맞을 테지만 죽지 않고 회복될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더 큰 일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르니에르는 어떤 FBI 요원 친척의 시체가 숨겨져 있던 비행기를 찾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나에 관한 예언을 하기도 했다. 내가 6주간의 독일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그녀는 검은머리 여자와 관련된 일 때문에 곧바로 돌아와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독일에 도착하고 사흘 뒤, 나는 정말로 검은머리 여자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p420

 

 

 


 














 저자는 토머스 해리스란 소설가에게 자문을 줬다. 그로 인해 탄생한 소설이 <레드 드래곤>과 <양들의 침묵>이다. 저자는 한니발 렉터라는 등장인물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마인드 헌터>로부터 시작된 연쇄살인범과 프로파일러에 대한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개인적으로 <마인드 헌터> 드라마와 책은 강추하고 싶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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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6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철학자들의 사상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럴 때면 그들의 사상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아주 조금 깊이. 생각해보니 그들의 저서를 찾아 읽는 거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게 나을 거 같다.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외에도 해체주의의 자크 데리다, 유럽의 오만을 비판한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읽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여러 사회나 현상은 서로 다른 모습과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안의 공통적인 몇 가지 일반 법칙으로 참된 결론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중략) 가장 중요한 구조주의 철학자는 프랑스의 문화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이다. -p234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인간관계의 구조라는 사실을 밝혀낸 인류학자이다. 그의 사상과 관점에 동의한다. 문자가 없는 원시사회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그의 저서들이 도움이 될 거 같다. <야생의 사고>나 <인류학 강의>를 먼저 읽어보고 싶다.  


 

















 

 BBC가 뽑은 10대 철학자


1. 카를 마르크스

2. 데이비드 흄

3.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4. 프리드리히 니체

5. 플라톤

6. 이마누엘 칸트

7. 토마스 아퀴나스

8. 소크라테스

9. 아리스토텔레스

10. 카를 포터


 책 속에 부록으로 BBC가 뽑은 10대 철학자가 있어서 소개해본다. 예상과 다른 순위들도 많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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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25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슬픈 열대를 읽은 것 같습니다. 배울 게 많았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10대 철학자 리스트가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네요. 저는 요즘 미셀 푸코의 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잘 보고 갑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5-26 10:06   좋아요 1 | URL
<슬픈 열대> 읽으시다니 대단하십니다bbb 페크님 말씀 들으니 더 읽고 싶네요.

저도 푸코의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벽돌책들이라ㅠㅋ 즐독하세요!

페크pek0501 2023-05-26 14:30   좋아요 1 | URL
아, 제가 읽은 슬픈 열대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어요. 찾아보니 7백 쪽이 넘던데 제가 그런 벽돌책을 읽을 리가 있겠어요. 제가 읽은 책은 절판인가 봅니다.ㅋㅋ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고양이라디오 2023-05-26 16:38   좋아요 0 | URL
두껍지 않은 책도 370페이지인 걸요ㅎ <슬픈 열대>도 궁금하고 요즘 다시 독서욕이 샘솟네요^^ㅎ

페크님도 즐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