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이러한 관찰에 근거하여 마음과 몸이 분리된 실체라는 심신이원론mind-body dualism을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이 뇌 속에 있는 송과선pineal gland을 통해 연결되고, 영혼이 ‘몸의 조종사’라고 생각했다.

심리학이 가능해졌고,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 즉 마음이란 고장이 날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서서히 몸과 마음은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견해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각에 대한 뇌인지 연구는 무의식적으로 지각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감각 역시 의식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였다. 감각과 지각은 더 이상 예전처럼 구분되지 않고, 의식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또 어떻게 정의해야 되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통계물리학을 공부하다보면 가장 먼저 배우는 주제는 상호작용이 없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상호작용이 없다면 전체의 특성은 구성 요소 하나의 특성으로부터 모두 결정된다. 이 경우 하나를 알면 전체를 알 수 있다.

이처럼 물질의 거시적인 상이 변하는 것이 상전이phase transition다. 정확히 같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상호작용의 꼴도 온도에 따라 전혀 달라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물질의 특성이 급격히 변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이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물리계는 입자 하나를 이해한다고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전체를 부분의 합과 다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상호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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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칸타타에서 만날 수 있는 바흐의 가장 매력적인 습관 중 하나는 악기의 개성을 한껏 살린다는 점이다. 표정 있는 결말을 위해 그는 각 악기를 독립적으로 사용하거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한다. 그의 손길 속에서 악기들은 특별한 효과나 분위기 이상을 만들어낸다.

「이도메네오」나 「돈 조반니」와 가장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 바흐의 「요한 수난곡」 오프닝이다. 18세기 전반에 작곡된 오페라 서곡 중 내가 아는 한 이 곡에 필적하는 작품은 없다. 베토벤의 「레노오레」에 삽입된 세 곡의 프렐류드의 직계 조상으로서도
이보다 훌륭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 악에 대항하는 선, 영혼과 육신, 진실과 거짓 등 바흐는 요한이 자주
드러내는 극명한 사상의 양극성을 연결시킬 줄 알았다. 이 악장이 연주되면 우리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신과 같은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 사이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양극성과, 인류를 위해 ‘영락하며’ 스스로 몸을 낮춘 그리스도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수난곡은 스토리텔링과 명상, 종교와 정치, 음악과 신학의 혼합물로서 당시에는 대단히 대담하고 복잡한 시도였고, 앞서 4장에서 찾아본 ‘음악 드라마의 정신’의 발현이 절정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그리고 바흐는 ‘수동적인’ 오페라-연극 청중이
아닌 정신적 자양분을 열망하는 루터교 신도들의 요구에 부응해왔다.

바흐의 음악은 내러티브와 해설, 성서 연대기와 신학적으로 형상화된 시적 텍스트가 서로 맞물려 있었으며, 이처럼 정교하게 음악적 깊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바흐가 이 경건주의 신학자가 윤곽을 잡은 여러 테마에 동화되어,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자신의 첫 번째 수난곡을 구성했는지는 실로 놀랍기만 하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는 군중과 투옥된 평온한 예수 사이의 극적인 대립을 기반으로 삼으면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그의 마지막 승리로 표현했다

요한의 수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점은 바흐가 전략적으로 배치한 아리아들이다. 중요한 순간에 이 아리아들은 교리의 근원적 의미를 하나로 모아서 청중과 능동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드라마는 여전히 거침없이 펼쳐진다.

시간은 두 차원, 즉 과거(및 그에 대한 반응까지)를 암시하는 현재와 현재를 조건 짓는 과거 사이를 항상 오간다. 서사의 본질적인 시작과 끝을 알리고 동시에 신학의 근원적 테마를 조율하는 역할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신중하게 선택되고 배치된 코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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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트가 말했듯이, 연주란 ‘일부는 과거고, 일부는 미래이며, 일부는 막 완성된 신작으로 볼 수 있다.’* 바흐가 악보에 포함시킨 엄청난 분량의 디테일한 장식음은 그의 실제 연주 경험과 관련된 것으로, 그가 즉흥적으로 작곡하고, 다듬고, 그리고 최초의 단순한 첫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했던 다양한 전략들이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압축되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부 해설자들은 1729~1730년경 바흐가 의무적으로 교회 칸타타 작곡하는 데 환멸을 느껴서 다른 작품들을 작곡하며 창조적인 시간을 보냈으며 심지어는 신앙의 위기까지 맞이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1950년대 알프레드 뒤르와 게오르크 폰 다델젠이 수행했던 법의학 연구에 대해 반응하는 (혹은 과잉 반응) 한 유형이었다.

전통적인 바흐의 이미지 중 그가 수정한 부분에 따르면 ‘그는 보다 세상물정에 밝고, 더욱 인간적이며… 온몸으로
동시대와 엮여 있던 사람이다. 그는 전도유망한 미래의 트렌드를 환영했지만, 칸토르라는 전통적인 직업에 귀속된 뒤에는 온 힘을 다해 충실하게 일했다. 그는 두 시대 사이의 경계에 서서 사실을 직시하는 사람이었다.’ 이를 반박하기는 어렵다. 그가 주장한 ‘점차 깊어지던 교회의 편협함에 대한 칸토르의 저항’*도 잘못되었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칸타타 작곡이 위축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것 말고도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바흐는 1729~1730년 즈음에는 라이프치히 주요 교회에서 연주할 칸타타들을 충분히 작곡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라이프치히 지식층에 막 유입되기 시작하던 계몽주의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 사상은 훗날 도시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던 정통 루터교와 순식간에 결합했다. 헤겔은 아마도
독일식 계몽주의가 ‘신학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던 것 같다. 이는 공연 예술에도 확실하게 적용됐다.* 바흐와 동시대 사람들은 예술에서도 도덕적, 종교적 혹은 합리적 의미를 분명하게 찾고자 했다. ‘아름다움’과 ‘숭고함’과 같은 미학적 개념이 예술적 개념과 과학 및 도덕적 개념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이 세기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였다.

라이프치히에 정착하면서 바흐의 가치관은 프리드리히 에르하르트 니트*와 같은 음악가들의 ‘계몽된’ 표현 쪽으로 더욱 기울어졌다. 이들의 음악은 헌신과 교화뿐 아니라 미적 즐거움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요한 리스트의
찬송가는 신도들에게 매우 익숙한 선율이었지만, 바흐는 그 선율을 참신하고도 충격적으로 다룬다. BWV 21이 이전 해 신앙의 힘으로 영원을 열망하는 비전을 보여줬다면, BWV 20은 평안보다는 공포, 고문과 고통의 영원의 가망성을 냉담하게 메시지로 담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라는 촉구다. 구원을 향한 유일한 길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바흐의 자필 악보에 남아 있는 수정 흔적에서는 서로 연결고리가 없는 구조와 그들을 어떻게든 화해시켜보고자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충돌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일들은 촌각을 다투는 가운데 발생했다. 이처럼 곤란한 문제가 생긴 까닭은 음악이 이전 해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난해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능력의 절정에 오른 위대한 작곡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매주 스스로 선택한 도전을 마주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형식과
접근, 각 테마의 근간이 되는 음색, 자기 앞에 놓인 가사에서 떠오르는 각각의 상징과 은유를 적용시켰다. 작업의 규모와 속도도 그의 기교를 발전시키는 데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바흐는 루터의 찬송가가 오랜 전통의 프리기아 선율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선율은 다른 방식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구식 모테트 스타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우주 전체가 신의 풍요로운 창조를 기념한다는 아이디어는 구상 능력이 뛰어난 작곡가 바흐에게 선물로 다가왔다. 이 아이디어로 그는 무한성의 의미를 숙고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에는 대체로 거론되지 않았던 이 무한성이란 개념은 우주를 그 자체로 인식하고, ‘자연과 은총이 인류 전체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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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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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국의 국내 문제가 어떻게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뒤흔들고 전 세계적인 위기를 불로올 수 있었을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부동산은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중산층을 위한 일반 주택들은 그다지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의 시장성 높은 재산 중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부동산이 전 세계 부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 현상이 공황상태를 불러온 은행 파산, 그리고 전 세계의 신용경색과 함께 어덯게 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는지 설명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부동산은 단순히 재산을 구성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융자를 위한 가장 중요한 형태의 담보물이라는 사실이다. 경기순환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는 동시에 주택 가격 동향을 금융위기와 결부한 건 다름 아닌 모기지 관련 채무였다. _ 애덤 투즈, <붕괴> , p42/522

애덤 투즈(Adam Tooze, 1967 ~ )의 <붕괴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 >는 미국의 주택금융회사인 파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의 부실화로부터 시작된 사건이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를 강타하고, 이의 여파로 유럽연합(EU)의 흔들림과 브렉시트(Brexit), 트럼프(Trump)의 등장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부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계화(globalization)가 자리한다.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의 수석 경제학자이자 "거시금융론(macrofinance)"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들 중 한 사람인 한국 출신의 신현송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세계 경제를 국가경제 대 국가경제, 즉 국제경제의 상호작용이라는 "섬 모형(island model)"의 관점이 아니라 은행 대 은행, 즉 기업의 대차대조표들 간의 "서로 맞물리는 매트릭스(interlocking matris)"를 통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0/522

"민간의 신용창조(private credit creation)" 시의 절대 다수는 견고하게 엮인 일부 거대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들이 바로 신현송이 이야기하는 "서로 맞물리는 구조" 안의 핵심 구성 요소이며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20~30여 개의 은행이 여기에 해당한다. 각 국가의 주요 은행들까지 포함한다면 이런 거대 금융기관이나 업체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대략 100여 개에 이를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9/522


미국에서 최초의 위기는 모기지 상품의 증권화와 이에 대한 적절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주택금융회사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들 증권을 인수한 대형은행들에게로 불꽃이 튀었고, 자산부실화로 인해 자금순환이 막히면서 미국경제는 하루 아침에 얼어붙고 말았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모기지 차입자들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들로부터 위험을 바깥으로 분산하고 모기지 상품을 다양한 단계의 이익과 위험을 제공할 수 있는 증권으로 바꿔 투자자들을 끌어모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고 이 방식은 실제로도 효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저축과 대출의 사업 모델과 비교하면 이런 증권화는 위험을 분산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위험이 분산되었다는 이유로 제일 처음 진행되는 대출 업무를 주의 깊게 심사해야 한다는 것을 자칫 망각하게 한 것은 아닐까? _ 애덤 투즈, <붕괴> , p48/522

2007년 회계연도 말에 리먼브라더스의 6,910억 달러에 달하는 대차대초표 중 40퍼센트는 Rep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었으며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그리고 모건스탠리의 경우 약 40퍼센트였다. 만일 이런 투자은행 중 한 곳이라도 Repo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면 사업모델은 단번에 무너질 것이며 단지 MBS 사업뿐만 아니라 파생상품과 금리 및 통화 스와프를 포함한 대차대초표 전체가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42/522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미 연준은 과감하게 개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다. 1971년 미 달러의 금태환정지 조치 이후 본격화된 자유주의 시대에 거의 잊혀졌던 케인즈주의는 금융위기상황에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연준의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 1953 ~ )는 마치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듯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미국의 위기를 막아섰다.

국가와 정부가 개입한 주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 은행에 대출 형태로 자금 지원 (2) 자본재 구성(recapitalization) (3) 자산매입 (4) 은행예금, 채무 혹은 심지어 은행의 대차대조표 전체에 대한 정보의 보증. 위기가 발생한 모든 곳에 대해 각국 정부는 이 네 가지 방식을 몇 가지로 결합해 적용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관계된 기관은 중앙은행과 재무부, 그리고 금융 규제 감독청 등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33/522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있었고, NO1. 채권인 미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은 이렇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른 국가들은 미국처럼 할 수 없었다. 이제 다음 위기의 파도는 유럽을 강타한다.

무역수지 흑자와 1994~1998년에 발생한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을 스스로 막아내겠다는 의지 때문에 이런 신흥시장국가들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정리해 사용할 수 있는 준비 자산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자산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장단기 채권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53/522

금융위기로 국제금융에 대한 달러화의 영향력이 약해지기는 커녕 실제로는 더 강해졌던 것이다. 통화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서의 미국 재무부 채권에 대한 수요 덕분에 달러화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연준은 통화스와프 협정을 통해 모든 글로벌 은행시스템의 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206/522


런던의 시티는 유로달러를 활용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를 연결시키고 있었고, 서로 다른 체력의 국가들이 유럽은행과 유럽연합(EU)의 울타리에서 동일한 재정정책/금융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의 입장 차이 속에서 적절한 조치는 미뤄졌고 그 과저에서 이른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유럽연합은 붕괴의 위기에 처하고 결과적으로 브렉시트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흔들림은 동유럽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갔다.

달러 헤게모니는 일종의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바로 런던을 통해 달러는 세계의 통화가 되었다(p70)... 금융업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인 대격변 중 상당수가 월스트리트가 아닌 런던에서 일어났고 그건 지역의 선택과 관련한 문제였다. 2007년, 전 세계 외환거래 총액의 35퍼센트, 규모로 치면 하루에 1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시티의 전산망을 통해 거래되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71/522

유럽의 금융 중심지들은 아시아와 아라비아반도에서 흘러 들어오는 자금이 미국의 투기성 강한 투자 상품으로 몰려가는 데 안전한 경로를 제공했다. 또한 중국에서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 자금 중 상당수가 벨기에를 경유했다는 사실 역시 의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금융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연준 분석가의 말을 빌리면 단기로 자금을 빌려와 장기로 빌려주는 "글로벌 헤지펀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64/522


1990년대 냉전 이후 서유럽에 의한 경제의존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서유럽의 위기와 이로 인한 자본회수는 동유럽에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그나마 러시아는 자신이 보유한 막대한 규모의 외환보유고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다른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유럽연합(EU)과 러시아의 틈사이에서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로 옮아가게 되고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2014년 크림전쟁의 형태로 폭발하고 만다.

1989년에서 1994년 사이 평균 생산량은 30퍼센트 이상 떨어졌고 물가와 실업률,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이 급등했으며 실질임금은 폭락했고 공산주의 시절의 사회복지제도는 붕괴했다. 발트 3국의 경우 임금에 대한 타격은 그야말로 엄청나서 에스토니아는 60퍼센트, 리투아니아는 70퍼센트나 임금이 줄어들었다. 수백만 국민이 이민을 택했고 필요한 경우 불법 이민도 마다하지 않았다. NATO와 유럽연합이 동쪽으로 그 세력을 확대하고 눈앞의 위기를 우선 진정시키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정학적 지도를 영구히 다시 그리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사정들이 있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00/522

냉전 이후 유일한 대안으로 보였던 자유주의체제가 금융위기 속에서 무참하게 좌절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거의 유일한 승자처럼 보였다. 막대한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이라는 양날의 칼을 효과적으로 휘두르면서 중국이 새롭게 G2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러시아가 경제제재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나가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외부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분명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정책들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문제는 이를 위한 예산이 어떻게 조달되었나 하는 것이다. 예산 조달은 모든 "경기부양책"의 핵심이다. 만일 세금을 올려 필요한 재원을 조달했다면 일반 국민들의 구매력은 전혀 올라가지 않는다. 채권 발행을 했다면 민간 부문의 저축을 흡수했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일반 국민들이 다른 투자를 멀리할 우려가 있다. 만일 경기부양의 목적이 침체된 경제를 빠르게 다시 살려내는 것이라면 신용창조야말로 경기 부양 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중국 당국의 경기부양책이 특별히 효과가 있었던 건 엄청난 규모의 정부 지출과 대규모 통화완화 정책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92/522

러시아는 축적해놓은 외환보유고 덕분에 서방측 제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어떠면 중국은 미국의 연준과 중국인민은행사이의 밀접한 협조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이 그렇게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한 건 결국 서방측이 그토록 오랜 세월 비판을 가해온 금융 규제와 외환관리 시스템의 결과였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133/1312


그리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내부적인 도전은 트럼프의 대통령당선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낸다. 막대한 구제금융이 소수의 기업들에 집중되면서 기득권에 대한 일반의 분노는 극우집단의 부상이라는 부정적인 정치결과를 낳고 말았음을 <붕괴>는 보여준다.

유럽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훗날 있었던 유로존 파산 사태가 아닌 2008년의 위기가 바로 투자와 소비의 심각한 위축과 실업 사태를 만들어냈다. 2007년 하반기부터 독일과 프랑스, 영국, 스위스, 그리고 베네룩스 3국의 크고 작은 은행은 자신이 입은 손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대출 부문이 주저앉았다. 금융 분야가 맨 먼저 타격을 받은 건 그들이 매일 일어나는 방대한 규모의 신용 거래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기업과 가계로 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124/522

애덤 투즈의 <붕괴>는 세계경제의 동기화라는 연환계(連環計)로 미국에 불붙은 불이 세계로 옮겨붙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국가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키코(KIKO)사태로 수많은 기업들이 연쇄부도를 맞았던 사례는 한국의 취약한 금융구조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실례였다.

2008년에 가장 위기에 몰린 나라는 한국이다. 지금의 한국을 일으켜 세운 유명한 수출전문 기업집단, 즉 대우나 현대, 삼성 같은 "재벌"들과 거대한 규모의 제철소, 조선소, 자동차 공장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별나게 동유럽이나 러시아처럼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전세계와 하나로 엮어 있었기 때문이다(p198)...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하려 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통화와 자본의 흐름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한국 금융업의 상당 부분을 해외 투자자들이 소유했으며 한국의 은행들은 도매금융 자금조달 방식이라는 새롭지만 불안정한 방식으로 전 세계 달러시장에서 단기로 자금을 빌려와 한국 내에서 고금리로 장기간 투자를 했다._ 애덤 투즈, <붕괴> , p199/522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4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제2의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역수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외화의 유입이 줄어드는 반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환율방어를 위해 막대한 외화가 소모되는 안 좋은 상황에 부족한 대통령의 리더십까지. 만약 이러한 위기 상황이 재현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리뷰의 마지막은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 1947 ~ ) 전(前) 유럽은행 총재의 일화를 옮기는 것으로 마친다. '슈퍼 마리오'로 불렸던 그는 말 한마디로 유럽의 위기를 극복했건만, 우리의 강원도지사는 말 한마디로 '레고랜드'로 채권시장의 위기를 불러오고 말았다는 점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와 우리나라 금융책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보다 진중한 대처를 희망한다...

마리오 드라기는 투자자들이 들어주었으면 하는 또 다른 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의 지원 아래 유럽중앙은행은 유로화를 존속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잠시 말을 멈춘 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를 믿어달라. 오직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마리오 드라기가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을 때가 유로존 위기의 전환점이었다. 그의 발언 이후 시장은 급속도로 안정되었고 취약한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 대부분은 시장금리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존 붕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깊은 호소력을 지닌 설명이었다. _ 애덤 투즈, <붕괴> , p33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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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11-17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붕괴」 이 책 제가 기억하는 책이 맞다면 엄청난 벽돌책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완독하시고 정리까지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겨울호랑이님 말씀대로 제2의 금융위기가 걱정되는 이 시기에 필요한 책이네요... 저는 우리나라 금융책임자도 아닌 일개 개미이지만 겨울에호랑이님의 리뷰를 표지판 삼아 읽고싶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11-18 09: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파이버님. 현재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발생 원인은 10년 전의 위기 때와는 분명 다르지만, 과거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그때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코로나19위기가 조금 잦아들면서 재발되었다는 면에서 많은 연관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붕괴>에서 금융위기로 가장 힘들었던 나라로 지목된 우리가 교훈을 얻어내 이번 위기를 현명하게 넘어섰으면 하는 바랍을 가져봅니다... 파이버님, 좋은 주말 그리고 유익한 독서 되세요! ^^:)

서니데이 2022-12-08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2-09 04:51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슈퍼 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
닉 보스트롬 지음, 조성진 옮김 / 까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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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초지능"은 다양하고 보편적인 인지 영역에서 현시대의 가장 뛰어난 인간보다 훨씬 더 우수한 지능체를 일컫는다. 이 정의는 여전히 꽤 모호하다. 단지 이 정의만을 따른다면 각기 다른 수행능력을 가진 여러 가지의 시스템들이 초지능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37/189

닉 보스트롬 (Nick Bostrom, 1973 ~ )의 <슈퍼 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 Superintelligence: paths, dangers, strategies>는 책 제목 그대로 '초지능(超知能)'에 대한 책이다.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I)의 시대는 우리 곁에 와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저자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예상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지금 현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난관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이 생각보다 쉽게 돌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외에도, 인공지능의 확산과 인간의 완전대체까지는 개발단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에 인공지능의 시대가 조만간 도래한다고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인공지능 개발이 예상보다 느린 이유는 이러한 인공지능형 기계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기술들이 여러 선구자들의 예측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사실로부터 이러한 기술적인 난제들이 정확히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 얼마나 더 걸릴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간혹 처음에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매우 복잡한 문제가 놀라울 정도로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10/1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 의해 통제받는 디스토피아(dystopia)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지성'과 ' 이성'이 인류의 본성이라는 근본적인 사상의 기반이 위협받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유한한 육체의 제약을 도구를 통해 극복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적은 반면, 서구 사회의 역사에서 인간 본연의 것으로 여겨지는 '이성'( reason 理性)을 다른 존재와 공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의 실체가 아닐까.

기계와 기술이 많은 특정 유형의 인간 노동을 대체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과학기술은 대체로 노동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런 보완성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특정 노동에 대한 보완 수단으로 시작된 기술이 나중에는 노동을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98/189

이같은 면에서 향후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닉 보스트롬의 전망은 인간 이성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선사한다. 인간의 지능체계를 모사한 '또 하나의 인간'이 아닌 이와 별도로 '도구적 지능'으로서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우리는 조금은 여유롭게 대답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인간존엄에 대한 위기감도 낮춰준다.

한 가지 강조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체계와 완전히 똑같을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와는 완전히 이질적일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이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생물학적 지능과는 아주 다른 인지구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특히 개발 초기 단계에는 인지능력에서 우리와 아주 다른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지향하는 목표 시스템(goal system)은 인간의 목표 시스템과 아주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인공 일반 지능이 사람이나 증오, 또는 자존심 같은 인간의 감정을 행동의 동기로 삼으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인공지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25/189

그렇다면, 보스트롬이 전망하는 인공지능에 사용되는 이성은 도구적 이성(道具的理性, instrumentellen Vernunft)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찍이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 ~ 1973)가 비판했던 이성의 도구적 사용이 인공지능의 목표라면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각각 선악(善惡)을 나눠가지듯, 인간 이성과 인공지능 이성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각각 점유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인공지능이 별도의 체계를 갖는다면 그것은 코딩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지향이 '행복의 목적'이 '행복의 수단'이라면 인공지능의 위협이 조금은 감수되고,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신하듯 인공지능은 지식노동을 행하는 기계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인류의 미래가 아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다만 여기에는 한 자기 전제가 따를 것이다. 도구적 이성의 효과적인 통제가 그것이다.

어려운 부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도를 어떻게 이해하도록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초지능은 이런 이해 정도는 쉽게 획득할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의도한 대로 묘사된 가치를 추구하도록 인공지능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115/189

기대효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프로그래머는 행복의 양에 비례하여 효용 가치를 특정 세계에 배치해주는 효용함수를 찾는다. 그런데 이런 효용함수를 어떻게 컴퓨터 코드로 표현할 수 있을까? 컴퓨터 언어는 "행복" 같은 개념을 어근(語根, primitives)으로 삼지 않는다. 이런 개념을 사용하려면 먼저 정의를 내려주어야 한다. "행복은 인간 본성의 가능성을 즐기는 것"이라든가, 또는 어떤 철학적 주해(註解)처럼 인간의 대란 개념을 이용해서 정의해주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110/189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공지능의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통제 가능성일 것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인공지능이라는 도구적 이성의 합리적 사용. 인공지능이 궁긍적으로 인류 행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면, 통제 없는 인공지능의 도입이 마치 파에톤이 모는 태양마차처럼 우리 삶을 파국으로 몰고갈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다시 인문학으로 향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는 과학문명의 시대에 인문학과 통섭(統攝,Consilience)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초개체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하나의 조상이 낳은 복제품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개인의 에이전트가 공동의 목표에 온전히 헌신적이라는 것이다. 초개체를 만들려면, 따라서 통제 문제의 부분적 해결이 필요하다. 통제 문제의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 누군가에게 임의의 최종 목표를 가진 에이전트(대리인)를 만들 권한을 주는 것이라면, 초개체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부분적 해결책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임의적이지 않은) 하나의 최종 목표를 가진 여러 개의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107/189

인공지능의 최종 목표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지, 프로그래머들이 이 목표를 입력했을 때에 의도했던 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우리가 무엇을 의도했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도구적 관심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은 프로그래머들이 의도한 것을 알아내는 일에는 그저 도구적 가치만을 부여할 수 도 있을 것이다(p77)... 이 왜곡된 사례들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처음에는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보였던 최종 목표들이 좀더 깊이 검토해보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들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이 확실한 전략적 우위를 획득하는 경우, 인류에게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는 게임 끝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_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전스> , p7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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