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4 : 걷다 나는 오늘도 4
미쉘 퓌에슈 지음, 루이즈 피아네티보아릭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미셸 퓌에슈(Michel Puech) 교수는 <걷다 Marcher>를 통해 '걷는다'는 의미를 다시 해석한다. 저자에 의하면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번 리뷰에서는 '걷는다'에 담겨진 의미를 저자와 함께 생각해 보자.


1. 세상과 맺는 관계로서의 걸음


 저자에 따르면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무의미한 과정이 아니다. 세상과 직접 대면(對面)하는 행위이며, 그 자체로 우리의 경험이 된다. 걸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고, 세상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첫 걸음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오게 된다.


 '거리 감각을 되찾고, 시간과 공간에 대해 좀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도구들을 이용하다보면 주변 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좀 더 생생하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기는 것이다.(p42)... 두 발로 걸을 때, 우리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다.(p45)'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 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p13)'


2. 첫 걸음 : 정(靜)적인 상태에서 동(動)적인 상태로의 첫 변환


 첫 사랑처럼 '처음'의 의미가 주는 특별함과 마찬가지로 걸음 중에서도 첫 걸음의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남다르게 남는다. 첫 걸음을 떼기 위해 아이들은 수많은 실패를 하게 되고, 그 과정은 아이에게는 아픔으로, 부모에게는 안타까움을 가져다 주게 된다. 그렇지만, 첫 걸음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저자는 '첫 걸음'의 의미를 인생에서 정(靜)적인 상태에서 동(動)적인 상태로 전환되는 첫 순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는 일단 넘어지기부터 한다. 균형을 잡고 서서 두 발로 쓰러지지 않고 움직이는 데에는 발가락부터 목에 이르는 수많은 근육을 쓰는 복잡한 신체적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걸음마를 배우려면 넘어지기를 받아들여야 하며,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p16)'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른다. 첫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 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 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p34)'


 3. 함께 걷는다는 것 : 촛불 


 첫 걸음 이후 사람들은 수 많은 걸음을 걷게 된다. <걷다>에서 해석하는 걸음의 의미 속에는 정치적 의미도 포함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음을 통해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우리는 일 년 전 함께 나누었기에 '걷다'의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할 때 함께 무리 지어 걷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진은 상징적 행동으로, 공적인 장소를 걸어 지나감으로써 그 공간을 점령한다는 의미가 있다.. 시위 행진이 있을 때면 수천 명(경찰 추산에 따르면 수백 명)이 사람들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이렇게 함께 걷는 가운데 생성되는 연대감 역시 상징적인 것이다.(p57)'


 <걷다>를 통해서 우리는 '걷는다'는 의미가 다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적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걷다>에는 이러한 '걸음'의 수많은 의미가 열거된다. 그러한 여러 글 속에서 특히 '맨발로 걷기'에 대한 부분이 더 인상깊게 느껴진다.


4. 맨발로 걷기


   <걷기> 속에서는 맨발로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자연(自然)'과의 소통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러한 '자유로움' 의미 외에 다른 느낌은 없을까.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발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심플한 가죽 혹은 플라스틱 샌들이나 털 부츠, 캔버스 운동화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 자칫 잊어버리고 지나치기 쉽지만, 신발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소박한 도구 중 하나이다. 새 신발을 신었는데 발이 아프면 하루가 고역스럽다.(p30)'


 '여름에 맨발로 해변에 처음 들어서거나 테라스의 타일 바닥을 밟으면 묘한 해방감이 든다.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고 되찾는 것외에도, 걷다보면 세계와 직접 몸을 맞대는 데서 오는 자유로운 느낌이 있다... 자연 속을 걷다보면 자연과 오감(五感)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p76)'


[사진] 지압용 돌(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br4&articleno=7886109&categoryId=764151®dt=20100916105135)


 지압용 돌 위를 맨발로 걸어 보자. 옮길지 모르는 무좀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처음 맨발로 걸을 때 그 낯선 느낌과 통증은 처음에 견디기 어렵지만, 계속 걷다보면 몇 차례 걷다보면 어느새 익숙한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대하게 된다. 마치 신발을 신는 것처럼. 평소 가면을 쓴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어느새 우리가 쓴 사회적 가면을 우리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공원의 지압용 돌을 걷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에게도 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올바른 걷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미셸 퓌에슈의 다른 철학 시리즈 <나는, 오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걷다>에서도 일상의 행위 속에서 우리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에, 삶에 지칠 때 잠시 걸으며 읽기를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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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07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요. 걷는 것처럼 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서도 저렇게 꼼꼼하게 의미를 길어올리는 거 보면, 철학자라는 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싶었어요. 맘만 먹으면 짜장면으로도 700페이지짜리 인문서를 쓸 수 있을 사람들이라고....

왜 걷기 책을 읽었는데 걷기보다 걷기를 쓴 사람에 대해 더 경외감이 드는 걸까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2-07 22:07   좋아요 1 | URL
^^: syo님 말씀처럼 철학자들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개미만한 작은 곤충으로부터 코끼리같은 의미를 발견하니까요. 저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진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습니다^^:

yamoo 2017-12-07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콩 여행가서 발이 아작나는 바람에 걷는 게 너무 힘듭니다. 한 2킬로 정도 걸으면 발이 무쟈게 아파요. 밤에 자고 읽어나 첫 발을 내 디딜때 역시 매우 아픕니다. 아무래도 족저근막염이 의심되는데....그나마 밑창이 두꺼운 운동화는 발이 별로 아프지 않아 운동화를 주로 신습니다만, 그래도 오래 걸으면 발이 아파 움직이질 못하겠더이다.

걷는 거 정말 좋아했는데, 발이 아프니...ㅠㅠ

겨울호랑이 2017-12-07 22:49   좋아요 0 | URL
이런... yamoo님은 그런 아픔이 있으시군요... 저 역시 걷기를 좋아하기에 yamoo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됩니다...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2017-12-07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2-08 0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것도..
첫 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수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경험하는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겨울호랑이 2017-12-08 01:09   좋아요 2 | URL
^^: 그런 것 같습니다. 기존의 나에게서 벗어나는 모든 행동이 걷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cyrus 2017-12-08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꽃과 나무가 있는 흙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 좋습니다. 유레카님이 알려주셨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12-08 12:37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예전에 cyrus님께서 유레카님과 만나 맨발로 흙길을 걷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기억납니다^^:

AgalmA 2017-12-16 0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도 정신도 보조를 맞춰서 잘 걸었으면 싶습니다. 가끔 로봇처럼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몸 따로, 정신 따로^,ㅜ;
바꾸신 연의 프사 역시 이쁘네여 :) 연의는 우리가 흐뭇하게 자기 보고 있는 거 알랑가. 마치 조상신 된 기분ㅎ;;

겨울호랑이 2017-12-16 08:13   좋아요 1 | URL
^^: 저도 그렇지만 우리가 걷는 자체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목적지를 가기 위한. 걷는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로 다가온다면 더 여유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쉽지 않지만요 ㅋ 네. 딸을 아들처럼 씩씩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ㅋㅋ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식인마을 25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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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하는 것이 증거가 될 순 없습니다. 이처럼 빈약한 습성이나 그럴듯한 추측보다는 좀 더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그를 고발할 수 있습니다. - 오셀로 中 -


To vouch this is no proof, without more wider and more overt test Than these thin habits and poor likehoods Of modern seeming do prefer against him' - Othello - 


[그림]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출처 : www.pinterest.co.kr/pin/427208714625932919)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포퍼(Sir Karl Raimund Popper, 1902 ~ 1994)와 쿤(Thomas Samuel Kuhn, 1922 ~ 1996)의 사상에 대한 입문서이면서 '과학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쿤과 포퍼가 생각하는 과학이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1. 포퍼 : 과학적 진술이란 무엇인가?


 포퍼는 그의 저서인 <추측과 논박 : 과학적 지식의 성장 Conjectures and Refutations :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Routledge>(1963)을 통해 과학적 진술이란 '반증 가능'한 진술임을 밝힌다. 과학자들은 반증 가능한 명제를 바탕으로 증명과 반증을 통해 기존 이론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하면서 과학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포퍼는 연역만으로 작동하는 과학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귀납의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던 과학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줬다... 포퍼는 반증이 가능한 진술과 불가능한 진술을 구분하여 반증이 가능한 진술만 "과학적 진술 scientific statement"라고 규정한다.'(p75) 


 '포퍼의 기준으로 봤을 때 어떤 진술이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반증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이다... 어떤 사람이 "과학자냐, 사이비 과학자냐"라는 문제는 그의 태도나 행위와 관련된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자는 반증 가능한 진술들을 던져놓고 그것을 혹독하게 반증하려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과학자는 반증 가능성이 더 높고 더 대담한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람들이며, 사이비 과학자는 비판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계속 변명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p77)


2. 쿤 : 도그마와 패러다임


 이에 반해, 쿤은 과학의 발전이란 객관적인 증명과 반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심리상태, 사회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게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cific Revolutions>(1970)속의 내용을 통해 과학의 발전과 패러다임의 내용을 살펴보자. 


 '1962년 <과학혁명의 구조>가 세상에 나왔다. 이 책에서 쿤은 당시에 널리 받아들여진 과학에 대한 이미지와 양립할 수 없는 아주 새로운 과학관을 제시한다. 쿤은 한마디로 실제 과학은 절대로 포퍼나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규범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신 과학에는 "도그마 dogma"와 같은 것이 필요하고 대부분의 정상적인 과학은 그것에 기댄 활동이며, 드물게 일어나는 과학혁명은 논리적 절차보다는 과학자들의 심리상태에 더 크게 의존해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혁명을 통한 과학의 변동이 꼭 진보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p107)


 특히, 쿤의 용어 '패러다임'은 과학철학 용어를 넘어 지금은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원리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쿤은 "패러다임 paradigm" 이라는 용어를 크게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넓은 의미는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이고, 좁은 의미는 그 집합의 한 구성 요소로서 구체적이고 인상적인 문제 해결의 사례에 해당하는 "범례"가 그것이다.'(p114)


'요약하면 범례는 어떠한 기호적 일반화가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매우 인상적인 사례들의 모음이다. 과학도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범례를 학습해 나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범례를 학습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현상이 어떻게 동일한 원리의 지배를 받는가를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다시 세계에 대한 유사성 관계 즉, 이 세계의 존재자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패러다임은 점점 더 성숙해진다. 이것이 바로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다.'(p120)


 <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의 사상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과학은 과연 포퍼가 주장한 것처럼 객관적인 탐구 과정의 결과일까, 아니면 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대 사회의 지배원리가 상호 작용하면서 성숙해지는 일련의 과정일까. 이러한 과제를 던지는 책을 읽으면서 포퍼와 쿤의 사상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포퍼의 사상에서는 우주가 한 순간에 만들어졌다는 빅뱅 이론 (Big Bang Theory)과 같은 느낌을, 쿤의 사상은 우주가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정상우주론(正常宇宙論, Steady State theory)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이들 과학철학자들의 사상을 깊이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느낌을 잡고 그들의 저서를 향후 살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구성과 내용을 보자. 개인적으로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에서도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여러 책들을 소개한 우수한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에서는 쿤과 포퍼 외에도 다른 과학철학자인 라카토시(Lakatos Imre, 1922 ~ 1974)와 파이어아벤트(Paul Karl Feyerabend, 1924 ~ 1994)의 사상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현대 과학철학사를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독자들의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추천도서 목록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다른 책보다  '깊이 읽기' 에 해당하는 추천 도서 목록을 2~3배 많이 제공하고 있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잘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알찬 내용은 아마도 저자인 장대익 교수가 지식인 마을의 전체 기획자인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생각해볼 때<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좋은 입문서 시리즈인 지식인 마을 책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표작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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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6-30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등장하는 저 그림은 제 눈에도 익숙하네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제가 갖고 있는 책 (앤터니 홀든 지음,『윌리엄 셰익스피어』, 부제는 <그림과 자료로 복원한 셰익스피어의 삶과 예술>)엔 저 그림과 ‘아주 비슷한 그림‘이 두 페이지에 걸쳐 커다랗게 실려 있는데, 화가 이름이 겨울호랑이 님께서 밝혀주신 출처에 나오는 화가(Carl Ludwig Friedrich Becker)와 서로 다르네요. 제가 지닌 책에서는 세바스티아노 노벨리(Sebastiano Novelli, 1853~1916, 이탈리아)로 표기되어 있거든요. 그림이 서로 ‘살짝‘ 다른 걸 보면. 누가 누구의 그림을 베낀 듯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셀로의 아내 이름이 살짝 뒤바뀐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6-30 18:59   좋아요 0 | URL
^^: oren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잘 못 적은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제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그림에 대한 부분은 잘 몰랐네요. 요즘 oren님께서는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희비극 작품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그림까지도 깊이 있게 공부하시고 계신 듯합니다. 덕분에 저도 같은 듯 다른, 동일한 주제를 가진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네요.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작품을 읽을 때 관련 주제인 음악과 미술 작품도 읽는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니벨룽겐의 반지>를 읽으면서 바그너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것처럼요. oren님으로부터 좋은 독서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oren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oren 2017-06-30 18:56   좋아요 1 | URL
좀 더 찾아 보니 아무래도 Carl Ludwig Friedrich Becker(1820∼1900, 독일)의 그림이 먼저인 듯싶네요.
그런데 매우 권위있는 책으로 인정받는 앤터니 홀든의 책에서는 왜 하필 세바스티아노 노벨리(Sebastiano Novelli, 1853~1916, 이탈리아)의 그림을 실었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제가 얼핏 봐서는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이 훨씬 더 나아 보이긴 한데, 만약에 그게 독일 화가의 그림을 보고 베낀 작품이라면 ‘독창성‘이 결여된 ‘모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텐데 말이지요...

겨울호랑이 2017-06-30 19:07   좋아요 1 | URL
^^: 아무래도 oren님께서 말씀하신 앤터니 홀든의 책을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제가 미술 관련된 배경 지식이 많이 부족하여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겠지만요...^^:

oren 2017-06-30 21:33   좋아요 1 | URL
앤터니 홀든의 책은 강추합니다. 도판도 아주 훌륭하고 내용도 충실하니까요. 다만 한가지 아숴운 점이라면 책값도 비싸고 이미 절판되었다는 점이지요.. 저는 정말 우연히 이 책을 구입했답니다. 몇 년 만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이 커다란 책이 제 눈에 번쩍 띄었으니까 말이지요. 이 책에 담긴 그림들만 보더라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풍성하고 퀄리티 높은 도판 하나만큼은 이 책이 단연 최고더군요...

서니데이 2017-06-30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날씨가 참 덥습니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데, 그래서 더 더운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6-30 20:37   좋아요 1 | URL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가뭄이 해소되길 기대해 봅니다.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oren 2017-07-01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댓글‘ 형식을 빌어 글을 하나 써봤습니다. ‘먼댓글 주소‘를 제대로 넣었는데도 ‘링크‘가 생기지 않네요.. ㅠㅠ

겨울호랑이 2017-07-01 20:13   좋아요 0 | URL
^^: oren님 감사합니다. oren님 글을 통해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편한 밤 되세요.

2017-07-0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2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7-03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객관적 탐구라는 게 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쿤쪽에 더 기웁니다.
DNA 발견 이후 생물학의 판도가 달라졌듯이 거울뉴런으로 뇌과학도 판도가 달라질 거라 말하죠. 즉 당대 지배적 과학 기반이 발전의 척도죠.

겨울호랑이 2017-07-03 18:13   좋아요 1 | URL
^^: 그리고 하라리의 관점이기도 한 것 같네요. 과학, 종교, 제국주의가 별개가 아니라 상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요^^:
 
형이상학 논고 대우고전총서 27
라이프니츠 지음, 윤선구 옮김 / 아카넷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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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이상학 논고 Discours de Metaphysique>는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의 저술 중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 <형이상학 논고>, <제일철학의 개선 및 실체의 개념에 대하여>, <자연, 실체들의 교통 및 영혼과 육체 사이의 결합에 관한 새로운 체계>, <동역학의 시범>, <자연과 은총의 이성적 원리>, <모나드론>의 7개 저술이 담겨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라이프니츠의 '실체'의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가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는 철학 1명제로부터 출발한다면,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신(神)의 실존'으로부터 개별 모나드의 실존으로 내려가게 된다.


1. 완전한 실체 : 신(神)


 먼저 정리해야할 개념이 '실재성'이다. 라이프니츠는 스콜라 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실재성(realitas)'과 '완전성(perfectio)'는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라이프니츠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라이프니츠는 실재성은 '모순율'과 '가능성'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재성은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정도(精度)를 가지게 된다. 현실적 존재는 신으로서 최고의 정도를 가지는 반면, 무(無)의 정도는 '0'이 된다. '무'와 '신' 사이의 정도를 가지는 것을 우리는 '관념(觀念)'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더이상 분할할 수 없는 관념이 바로 'monad'가 된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실재성은 모순이 없는 적극적인 의미 내용이다. 모순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므로 실재성의 첫 번째 조건은 내용이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여기에 중요한 실재성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것은 최고의 정도가 모순되지 않고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p339) -해제 中-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모든 관념들은 그 자체로 실재성을 가지고 있으며, 실재성(완전성)의 크기에 따라 존재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무한한 존재인 신(神)의 실재성은 이처럼  '가능성'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지만, 유한한 존재들은 이러한 가능성만으로 실재할 수 없다. 존재가 본질에 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신(God)만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완전한 '실체 substance'가 된다.


 '완전성이 무엇인가를 식별하는 데에 적용할 수 있는 아주 확실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를 들어 수나 도형의 본질과 같이, 최고의 정도가 불가능한 형상들 formes 또는 본성들 natures은 완전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수들 중에서 가장 큰 수(또는 모든 수의 갯수)는 모든 도형들 중에서 가장 큰 도형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모순을 포함하지만, 가장 큰 지식과 능력은 어떠한 불가능한 것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의 무한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신은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의미에서도 가장 완전하게 행위하며...'(p30) <형이상학 논고>中


 '나는 신이 행한 것은 최고로 완전한 것이 아니고 신은 훨씬 더 잘 행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는 많은 근대인들의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다.'(p34) <형이상학 논고>中


 '신이 가능하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기 위하여 단지 가능성 또는 본질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실제로 신적인 본성의 탁월한 특권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Ens a se(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다.'(p96) <형이상학 논고>中


2. 라이프니츠의 실체 : 모나드(Monad)


 라이프니츠의 실체는 '모나드(Monad 單子)'다. 이들 모나드는 단순한 실체이며, 분할 불가능한 연장과 형태가 없는 '관념'이다. 그리고, 이들 관념은 '창(窓)이 없기' 때문에 오직 개별적으로 '신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신은 그가 우주에 대하여 갖는 상이한 관점에 따라 다양한 실체들을 산출한다. 그리고 한 실체에 발생하는 것이 그들이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함이 없이 다른 모든 실체에 발생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은 신의 중재를 통하여 모든 실체의 고유한 본질이 된다.'(p68) <형이상학 논고>中


 '우리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모나드는 복합된 것 안에 있는 단순한 실체에 다름 아니다... 복합된 것이 존재하므로 단순한 실체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분이 없는 곳에서는 연장도, 형태도 또한 분할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나드들은 자연의 진정한 원자이고, 간단히 말하면 사물의 요소이다.'(p251) <모나드론> 中 

 

 '모나드들은 단지 한번에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있다고, 즉 그들은 단지 창조를 통해서만 생성되고 파괴를 통해서만 소멸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모나드가 어떤 다른 피조물에 의해 그의 내부에 영향을 받거나 변화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나드들은 어떤 것이 그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창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p253) <모나드론> 中

 

 이들 모나드는 주어(主語)형태로 존재하며, 이들에 대해 서술될 수 있다. 이는 '주어는 술어에 의해 설명된다'는 내용으로 정리되며,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 ~ 1970)의 기술론(descriptive theory)을 연상시킨다. 다만, 러셀이 기술론을 통해서 주어가 존재(existence)할 수 없음을 밝힌데 반해,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의 속성으로서의 '기술(서술)'을 의미하는 한계를 가진다.


 '관념이나 사물의 정의로부터 도출되는 것은 그 사물에 대하여 진술될 수 있다. 존재는 신, 즉 우리가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완전한 존재의 관념으로부터 도출된다. 따라서 신에 대해서 존재가 진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실제로는 단지 다음과 같은 내용만이 도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신이 가능하다면, 이로부터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정의가 실질적 정의라는 것을 또는 그것이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그것을 추론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p17)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 中


 '모든 참인 진술은 사물의 본성 안에 그 근거를 갖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한 명제가 동일명제가 아닐 때, 즉 술어가 명시적으로 주어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때, 그것은 잠재적으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주어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술어가 그 주어에게 귀속됨을 또한 판단할 수 있도록, 주어 개념은 항상 술어 개념을 포함하여야 한다.'(p48) <형이상학 논고>中


3. 신(God)과 모나드(Monad)의 관계


 그리고, 신은 조화 가능한 모든 모나드들의 지각을 예견하고, 모나드의 지각에 상응되도록 모나드들을 배열하게 되며(예정조화설豫定調和說), 항상 최선의 것을 추구하도록 우리 의지를 규정( the best possible world)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에 신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신이 유한한 실체들을 전체에 순응하도록 미리 조정하여 창조하였기 때문에, 유한한 실체가 다른 실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다른 실체의 표현 정도가 감소할 때 자신의 표현정도가 증가하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p72) <형이상학 논고>中


'신은 그의 의지를 어떤 특별한 관점에서 표현하거나 모방함으로써 의지가 항상 그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도록 섭리하였다. 이러한 결정을 통하여 신은 우리의 의지를 강제함이 없이, 우리 의지에 최선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하도록 우리의 의지를 규정한다.'(p111) <형이상학 논고>中


  라이프니츠의 존재론은 '신(神)의 존재'로부터 개별 모나드(單子)의 속성을 밝히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의 철학은 스콜라(Schola) 철학을 바탕으로 했으며, 초기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354 ~ 430)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구체적으로, 라이프니츠는 실재성의 소극적 성질과 관련하여 '차가움은 뜨거움의 소극적 성질'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악(惡)을 선(善)의 결핍'으로 판단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결핍론'과 통한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 사용과 관련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 신들을 닮은 모나드의 왕국을 '신국(神國)'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동저자의 <신국론>의 내용과 연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라이프니츠 철학 이전에 기독교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라이프니츠 철학은 존재론적인 면에서는 현대의 러셀의 '기술론'과 맞닿아 있을 만큼 시대에 앞선 철학이기도 하지만, 실체론에 있어서는 중세(中世) 기독교 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 역시 존재한다. 중세의 한계와 현대의 가능성을 그 사이에서 보여준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통해 사상(思想)의 발전(發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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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5-30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웅, 어려워요~--;
저는 님의 리뷰로 갈음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__)

겨울호랑이 2017-05-30 16:53   좋아요 1 | URL
제가 정리를 잘 못해서 어렵게 느끼신 듯 합니다... 쉽게 쓰려고 하는데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네요.. 다음에는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양철나무꾼님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7-05-30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헛~, 아닙니다~!
님은 충분히 잘 정리해주셨고,
덕분에 제가 어려워라 하는 분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님의 것이 그렇다는게 아니라, 제가 어려워 하는 분야라는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정리되었는걸요, 제가 완전 감사드려야 하죠~^^

연의 어린이는 더운데 잘 지내나요?^^

겨울호랑이 2017-05-30 17:04   좋아요 0 | URL
네^^: 사실 저도어려워서 여러 차례 본문 수정을 했습니다. 그래서제가 잘 이해 못해 어렵게 느끼신 듯하여 추후 수정, 보완리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연의는 하루가 다르게 쑥 커나갑니다. 이젠 제법 어린이 티가 나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양철나무꾼님 건강에 유의하시고 하루 마무리 즐겁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5-30 2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철학 논쟁이 일정 부분 증명이 힘든 내용에 있기에 논외로 한다면, 철학 논쟁의 백미는 논리 형식에 있는 거 같습니다. 라이프니치의 형식 논리에 big jump가 ‘따라서‘ 앞뒤에 있었는지 살펴본 재미가 있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30 23:13   좋아요 2 | URL
라이프니츠 저술의 원문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만연체‘로 서술된 면이 있었습니다. 제가 편집한 부분이 북다이제스터님께 논리상의 비약으로 비춰진 것은 아닌지 다소 염려가 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05-30 23:24   좋아요 2 | URL
‘신은 그의 의지를 어떤 특별한 관점에서 표현하거나 모방함으로써 (따라서) 의지가 항상 그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도록 섭리하였다‘에서 자연스러운 자연을 창조한 신이 ‘특별함‘과 부자연스러움으로 뜻을 표출하고 섭리한다는 것이 ‘따라서‘ 앞뒤에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논리 형식 오류로 보입니다, 내용과 뜻과 상관없이요. ^^

겨울호랑이 2017-05-30 23:43   좋아요 2 | URL
제 리뷰에 누락된 부분에 대해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짚어주셨네요^^: 라이프니츠는 완전한 신이 자신의 의지(선의지)를 개체들에게 ‘조명‘처럼 비추며 인도하지만, 결코 개체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는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의 뜻은 ‘신국‘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개체들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에서 각각 분리되어 있으나 이들의. 두 세계의 관계 역시 신의 예정조화로 질서를 유지한다고 라이프니츠는 주장합니다만... 저 역시 깊이 와닿지는 않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 제 리뷰의 부족한 부분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5-30 23:44   좋아요 1 | URL
더 어려운 얘기입니다. ㅠㅠ
개체들은 자유의지가 원래 없는 존재라고 신경생리학자들이 밝혔다고 하는데...ㅠㅠ

겨울호랑이 2017-05-31 00:01   좋아요 2 | URL
네.. 우리가 ‘원자모형‘에 익숙해서 모나드를 ‘원자‘라는 개념으로 쉽게 생각하게 되는데, 모나드를 쉽게 ‘명사‘로 생각하시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산소‘, ‘카이사르‘ 같은 관념이 모나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물질적인 ‘수소‘는 연장(extensión)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나드가 아닌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만... 많이 어렵습니다..ㅜㅜ

AgalmA 2017-06-03 21:21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신경계 자유의지에 대해 강한 믿음이 있으신 거 같은데
˝우리가 자유의지를 실행하는 것은 최초의 의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발생한 후에 그것을 거부하거나, 그것에 동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에 대한 반응에 의해서이다.(benjamin libet) p56˝ <가상계>
이런 생각은 어떠신지. 여울님 서재글에서 봤지요. http://blog.aladin.co.kr/yeoul/9347129
간혹 저는 자유의지를 신경계 우연적 충돌로 환원하는 주장에서 모든 것을 신의 주사위로 말하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받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6-04 00:04   좋아요 1 | URL
^^: 여울님과 AgalmA님의 글을 지금 읽었네요. ‘자유의지‘라는 문제에 대해서 라이프니츠와 스콜라 철학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신‘ 은 창조의 주체로서 능동적 존재, ‘인간‘은 창조된 피조물로서 수동적 존재라는 인식이 놓여있고, 그위에서 자유의지 문제가 언급이 됩니다. 그렇게 볼때, 라이프니츠가 말한 ‘자유의지‘ 문제는 놓여진 상황에 대한 일종의 ‘대응‘ 성격이 강하다고 여겨지네요. 주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선택지 역시 제한적이었으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유의지는 일종의 ‘선택의 자유‘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능동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현대 과학 철학과는 같은 단어, 다른 의미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제 짧은 의견입니다. 북다이제스터님과 AgalmA님 그리고 여울님 덕분에 보다 깊이 생각해 수 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일깨워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AgalmA 2017-06-03 22:15   좋아요 2 | URL
여울님도 말씀하셨지만(남의 서재에서 이거참ㅎ;..)
신경계와 자유의지는 매우 미묘한 관계입니다.
이 책 주장에 따르면, 신경계는 ‘초기 발생의 작용이자 표현이자 경향성‘이라고 할 수 있죠. 그것들은 육체에게 ‘사유의 개정‘을 요구합니다. 즉 그것들을 실행하지 않을 시 가상성으로 그냥 끝날 수 있다는 말이죠. 다시 초기 전제로 돌아가 만약 행동으로 현실계가 되었을 때 그것은 신경계의 강렬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연속적인 사고와 반응(동참, 거부)이 뒤따르게 됩니다. 이 모든 걸 신경계로 다 설명하지 못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경계로 인한 반복적 행동이 다수 있더라도 예외성(이것까지 신경계 작용으로 설명하려 들고 있지만)을 신경계의 돌연변이 증상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거죠.
저는 지금 어떤 인간적 우위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양쪽의 가능성과 의심스러움을 더 생각해봐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6-04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이 말씀하신 모나드와 연장을 전 추상성과 구체성으로 이해했는데요. 추상성이 구체성을 포괄한다고 하지만 그 추상성이 개별 구체성을 포괄한다는 것에 언제나 한계가 있단 뜻으로 보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6-04 00:37   좋아요 1 | URL
아갈마 님 말씀을 제가 잘 이해하지 못 했다는 전제 하에, 자유의지는 동참과 거부 행위의 사후 합리화 과정이라고 이해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6-04 00:36   좋아요 1 | URL
그리고 자유의지는 선택의 자유를 포함하여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는 모든 착각 행위를 포괄하는 것 같습니다. ^^
 
에티카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 서광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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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신에 대하여


스피노자는 [정의]를 바탕으로 신(神)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신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다.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은 모든 것에 내재한다.  신은 생산하는 자연(Natura naturans)이며, 사물은 이로부터 생산된 자연(Natura naturanta) 이고, 신의 능력은 본질 그 자체다.


[정리 14] 신이외에는 어떤한 실체도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파악될 수도 없다.

[정리 15]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도 또 파악될 수도 없다.

[정리 18] 신의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이지 초월적 원인은 아니다.

[정리 19] 신 또는 신의 모든 속성은 영원하다.

[정리 20] 신의 존재와 신의 본질은 동일하다.

[정리 24] 신에서 산출된 사물의 본질은 존재를 포함하지 않는다.

[정리 29] 사물의 본성에는 어떤 것도 우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게끔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정리 31] 현실적 지성은 유한하든 무한하든 간에 의지, 욕망, 사랑 등과 같이 생산하는 자연이 아니라 생산된 자연에 포함된다고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정리 34] 신의 능력은 신의 본질 자체이다.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유일하다는 것, 오로지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서만 존재한다는 것, 만물의 자유 원인이며 또한 어떤 의미에서 자유 원인인가 하는 것,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하며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파악될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은 신에 의해서 예정되어 있다는 것, 더욱이 그것은 의지의 자유나 절대적 재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절대적 본성이나 신의 무한한 힘(potentia)에 의한다.'(p68)


스피노자는 신의 본성을 '능동성'으로 해석하며, 사물 생성 조건을 형상인(形相因), 질료인(質料因), 목적인(目的因), 운동인(運動因)으로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을 비판하고 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능동적이며 긍정적인 자연 그 차제다.


'그러므로 지금, 자연은 자신에게 아무런 목적도 설정하지 않고 또한 모든 목적인은 인간의 상상에 지나지 않음을 밝히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목적에 관한 이 이론은 자연을 전적으로 전도시킨다.... 이 이론은 최고의 가장 완전한 것을 가장 불완전한 것으로 만든다.'(p71)... 


'따라서 우리들은 대중이 자연을 설명하려고 사용하는 모든 개념은 오직 표상의 양식(樣式)일 뿐이고 사물의 본성을 표시하지는 않으며, 단지 표상의 상태를 표시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안다. ... 나는 이것을 "표상의 유(entia imaginationis)"라고 부른다.'(p76)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데카르트(Rene Descartes)도 적지 않게 이 견해에 기울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영혼이나 정신은 "송과선(松果線, glandulae pineale)"이라는 뇌의 어떠한 부분과 특히 결합되어 있다는 것, 정신은 이 선(線)에 의해 신체 안에서 생기는 모든 운동과 외부의 대상을 감각한다는 것, 또한 정신은 오직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이 선을 여러 가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p330)


데카르트에 따르면 정신과 신체는 각각 개별적으로 인식되는 실체이며, 이들이 '송과선'에서 통합적으로 지각되는 반면, 스피노자는 정신의 속성인 사유(cogitato)와 신체의 속성인 연장(extensio)은 모두 신에게 속한다. 


또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가 단순한 사실에 불과하며, 자유의지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류는 손상되고 혼란스런 관념이 포함하는 결핍에만 있다. 그러므로 거짓된 관념은 그것이 그릇된 한에서 확실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거짓된 관념에 만족하여 전혀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우리들이 말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이 그것에 대하여 확실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p140)'


'첫 번째 반론에 대하여 ...만일 사람들이 지성을 명석하고도 판명한 개념으로만 이해한다면, 의지가 지성보다 범위가 넓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의지가 지각이나 사유 능력보다 범위가 넓다는 것은 부정한다.'(p143)


'두 번째 반론에 대하여 나는 판단을 보류하는 자유로운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부정함으로써 답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판단을 보류한다고 우리가 말할 때, 그것은 그가 사물을 타당하게 지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 판단의 보류는 지각이지 자유 의지가 아니다.'(p144)


<에티카> 제2부에서 데카르트의 방법론과 실체관(물심이원론)에 대한 비판을 가하면서,  스피노자는 정신의 본성과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정신에 의해 지각되며, 관념의 대상은 오직 신체일 뿐이다. 또한, 타당한 관념과 마찬가지로 부당하고 혼란스러운 관념 또한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견해다.


[정리 1] 사유는 신의 속성이다, 또한 신은 사유하는 것이다.

[정리 2] 연장은 신의 속성이다, 또는 신은 연장된 것이다.

[정리7] 관념의 질서와 결합은 사물의 질서와 결합과 동일하다.

[정리9]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물의 관념은, 신이 무한일 경우에 한해서가 아니라  신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개물의 관념으로 변용한 것으로 고찰되는 한에서 신을 원인으로 소유하며, 이 관념도 역시 신이 또 다른 제3의 관념으로 변용한 한에서 신을 원인으로 소유하고,,, 이처럼 무한히 진행된다.

[정리 12]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인간 정신에 의하여 지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는 정신 안에는 이 사물의 관념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만일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이 신체라면, 신체 안에는 정신에 의하여 지각되지 않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리 13]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신체이거나, 또는 오직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연장의 양태일 뿐이다.

[정리 19] 인간 정신은 오직 신체가 받는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만 인간 신체 자체를 인식하며 또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

[정리 20] 신 안에는 또한 인간 정신에 대한 관념이나 인식이 있다. 이것들은 인간 신체의 관념이나 인식과 같은 방식으로 신 안에 생기며, 같은 방식으로 신에게 귀속된다.

[정리 26] 인간 정신은 자기 신체의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만 외부 물체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정리 36] 부당하고 혼란스러운 관념은 타당하고 명석 판명한 관념과 똑같은 필연성을 가지고 생긴다.

[정리 39] 인간의 신체와 인간의 신체가 자극받기 쉬운 약간의 외부 물체에 공통적이며 고유한 것, 그리고 이들 각 물체의 부분이나 전체에 똑같이 있는 그러한 것의 관념도 정신 안에서 타당할 것이다.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정신의 수동 상태라고 불리는 정서는 혼란된 관념인데, 그것에 의하여 정신의 자신의 신체나  신체의 일부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크거나 작은 존재력을 긍정하고, 정신은 그것의 소여에 의하여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한층 더 많이 사유하도록 결정된다.'(p236)


스피노자에 따르면 정서는 "정신의 수동 상태"로서 신체와 정신의 상호 작용을 받는다. 이러한 상호 작용에서 능동은 타당하며 긍정적인 반면, 수동은 타당하지 않고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정서의 이러한 속성는 현재 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관점은 '영원의 상'이라는 초월적 시간관과 연결된다.)  


[정리 1] 우리의 정신은 어떤 점에서는 작용을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작용을 받는다. 즉 정신이 타당한 관념을 갖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작용하고 타당하지 못한 관념을 갖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작용을 받는다.

[정리 2] 신체는 정신을 사유로 결정할 수 없으며, 정신도 신체를 운동이나 정지로 그리고 (만약 다른 어떤 것이 있다면) 다른 어떤 것으로 결정할 수 없다.

[정리 3] 정신의 능동은 오직 타당한 관념에서만 생기지만, 수동은 타당하지 않은 관념에만 의존한다.

[정리 8] 각 사물이 자신의 존재 안에 지속하고자 하는 노력은 유한한 시간이 아니라 무한정한 시간을 포함한다.

[정리 12]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을 가능한 한 표상하고자 한다.

[정리 15] 모든 사물은 우연에 의하여 기쁨이나 슬픔 또는 욕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정리 18] 인간은 현재의 사물의 표상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과거 또는 미래의 사물의 표상에 의해서도 동일한 기쁨과 슬픔의 정서로 자극된다.


사물의 본질은 완전성이며 이것은 신의 본성과 같다. 사물의 실재성을 긍정할 때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성'의 안내를 통해 긍정을 하게 되며 신의 본성으로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즉, 정신은 그것에 의하여 자신의 신체나 신체의 일부에 대하여 이전보다 더 크거나 작은 존재력을 긍정한다... 그리고 정서의 형상을 구성하는 관념은 신체 자체나 신체의 어떤 부분이 가지는 활동력이나 존재력이 증대하거나 감소하거나 촉진 되거나 방해받음에 따라서 신체나 신체의 일부가 표시하는 상태를 지시하거나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p236)


'정신의 본질은 자신의 신체의 현실적 존재를 긍정하기 때문에 또한 우리들은 완전성을 사물의 본질 자체로 이해하기 때문에 다음의 결론이 나온다. 즉 정신이 자신의 신체 또는 그 일부에 대하여 이전보다 크거나 작은 실재성을 포함하는 어떤 것을 긍정할 때면 언제나 정신은 더 크거나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한다. 그러므로 정신의 사유 능력이 증대하거나 감소한다고 앞에서 내가 말했을 때, 그것은 오직 정신이 자기의 신체나 그 일부에 대하여 이전에 긍정한 것보다 크거나 작은 실재성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관념을 형성한다는 것을 뜻할뿐이다.'(p237)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정신의 수동 상태인 정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스피노자는 '예속'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절대적인 '선(善)'과 '악(惡)'을 부정하면서 완전성을 사물의 본질로 인식한다. 절대악(絶代惡)을 부정하는 스피노자의 선악관은 악을 '선의 결핍(缺乏)'으로 해석한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354 ~ 430)를 연상시킨다.


'정서의 통제와 억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한다.'(p241)


'선과 악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것들 또한 우리들이 사물을 그 자체로 고찰할 경우 사물에 있어서의 아무런 적극적인 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사유의 양태나 우리가 사물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되는 개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고 악일 수 있으며 또한 양자와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p244)


'나는 이미 말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완전성을 실재성으로 이해한다. 즉 각각의 사물이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용하는 한, 완전성은 그 사물의 본질이다.... 사물의 본질은 아무런 특정한 또는 결정적인 존재의 시간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p245)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신)의 일부이고, 정서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는(또는 더 강한) 정서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정서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우리의 본성에 따라 '신'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리 4]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인간이 오로지 자기의 본성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변화, 곧 자신이 타당한 원인이 될 만한 변화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리 7] 정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정서, 그리고 억제되어야 할 정서보다 더 강한 정서에 의지하지 않고는 억제될 수도 없고 제거될 수도 없다.

[정리 8] 선과 악의 인식은 우리들이 그것을 의식하는 한에서 기쁨이나 슬픔의 정서일 뿐이다.

[정리 10] 우리들은 빨리 나타나리라고 표상되는 미래의 사물에 대해서는 그 출현 시간이 현재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고 표상될 때보다 한층 더 강하게 자극받는다.

[정리 18]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다른 사정이 같을 경우,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보다 강하다.

[정리 19] 각자는 자기가 선이나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자신의 본성의 법칙에서 필연적으로 욕구하거나 또는 피한다.

[정리 24] 참으로 덕으로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기초로 행동하고 생활하며 자기의 유를 보존하는 것일 뿐이다.

[정리 28] 정신의 최고의 선은 신의 인식이며, 정신의 최고의 덕은 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정리 31] 어떤 사물은 우리의 본성과 일치하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선이다.

[정리 65] 우리들은 이성의 명령에 따라 두 가지 선에서 더 큰 것을 그리고 두 가지 악 중에서 더 작은 것을 따를 것이다.

[정리 68] 만일 사람들이 자유롭게 태어났다면, 그들이 자유로운 동안에는 아무런 선과 악의 개념도 형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것 그리고 우리들이 인간의 참다운 자유에 대하여 제시한 이와 유사한 것들은 용기, 즉 정신의 강함과 관대함에 관계된다... 말하자면 미움은 사랑에 의하여 정복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성에 따라 인도되는 각자는 자기를 위하여 욕구하는 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욕구한다는 것에서 쉽게 증명된다....정신이 강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참다운 인식의 장애들, 즉 미움, 분노, 질투, 조롱, 오만과 우리들이 앞에서 주의한 여러 가지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p314)


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스피노자는 '정신'을 통해 신의 관념에 연관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정신은 '개별 사물'을 통해 '영원한 상' 아래에서 실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적 행동을 통해 우리는 쾌락을 멀리하고 지복(至福)에 이르게 된다.


[정리 6]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으로 인식하는 한에서 정서에 대하여 더 큰 힘을 가지거나 정서의 작용을 덜 받는다.

[정리 14] 정신은 신체의 모든 변용 또는 사물의 표상상을 신의 관념에 연관되게끔 할 수 있다.

[정리 16] 신에 대한 사랑은 정신을 가장 많이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리 17] 신은 수동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어떠한 기쁨이나 슬픔의 정서에 의해서도 작용받지 않는다.

[정리 23] 인간의 정신은 신체와 함께 완전히 파괴될 수 없고 그 가운데 영원한 어떤 것이 남는다.

[정리 24] 우리는 개물(個物)을 많이 인식하면 할 수록 신을 더 많이 인식하다. 또는 신에 대한 이해를 그만큼 더 많이 가진다.

[정리 29] 정신은 영원한 상 아래에서 인식하는 모든 것을 신체의 현재의 현실적 존재를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체의 본질을 영원한 상 아래에서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 인식한다.

[정리 30] 우리들의 정신은 자신과 신체를 영원한 상 아래에서 인식하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신에 대한 인식을 소유하며, 자신이 신 안에 있으며 신에 의해서 파악된다는 것을 안다.

[정리 36] 신에 대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신이 무한한 한에서가 아니가 영원한 상 아래에서 고찰된 인간 정신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는 한에서 신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신의 사랑 자체이다. 

[정리 40] 각 사물이 완전성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은 활동적이고 작용을 덜 받는다. 반대로 각 사물이 활동하면 할수록 그것은 완전하다.

[정리 42] 지복은 덕의 보수가 아니라 덕 자체이다. 우리들은 쾌락을 억제하기 때문에 지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쾌락을 억제할 수 있다.


지복에 이르기 위해 스포노자는 다음과 같은 현자의 삶을 제시한다. 스피노자가 제시하는 현자(賢者)의 모습에서 우리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실천하는 선비(士)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현자는 현재로서 고찰되는 한에서 거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과 신과 사물을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서 인식하며, 존재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고 언제나 영혼의 참다운 만족을 소유한다.'(p367)


<에티카>에 나타난 스피노자의 사상은 세계를 이원화시켜 판단한 기존의 서양철학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이러한 스피노자의 독창성이 <에티카>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만, 스피노자의 철학은 동양사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동양적 관점에서  스피노자를 이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에티카>만의 독특한 용어와 구조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장애를 걷는다면 '이성을 통해 본성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라'는 말을  <에티카>에서 발견하게 된다. 길었던 <에티카> 리뷰는 마지막 문장으로 마친다.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Sed omnia par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ps. [페이퍼] 수록 용어 해설.


1. 용어 해설(출처 : 책세상)

2. <에티카>의 구조(構造)

3. 아리스토텔레스 4원인론

4. 데카르트의 실체관 :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

5, <에티카>의 정의 (출처 : 서광사 版)

6. 영원의 상(相) 아래서 (sub specie aeternita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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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3-27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피노자도 그렇고, 톨스토이도 그렇고.

책을 읽지 않으면, 또는 그들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착각하게 만드는 구절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7 13:51   좋아요 2 | URL
아직 톨스토이 작품을 읽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에티카>의 경우 마립간님 말씀처럼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스피노자의 사상을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정의‘에 대한 선파악 후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립간 2017-03-27 14:59   좋아요 1 | URL
스피노자나 톨스토이에 관한 제 경험이 단편적이라 ... ; 혹시 제 글에 오해가 있을까하여 추가 댓글을 남기면

경험을 말씀들이면 ; 개신교에서 톨스토이 책을 많이 (또는 자주) 추천합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현재 개신교 신앙에서 이단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많이 주장합니다. 스피노자도 비슷하구요.

겨울호랑이 2017-03-27 15:02   좋아요 0 | URL
^^: 네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비록 <에티카>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 베드로의 경험 등이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만 근원적인 부분에서 기독교 사상과 양립하지 못하는 것을 저도 확인했습니다. 통스토이도 그렇군요. 나중에 톨스토이를 읽을 때 유념하겠습니다. 마립간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AgalmA 2017-03-27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티카>를 완독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 말이 경솔할 수도 있지만 그간의 공부, 겨울호랑이님의 성실한 리뷰를 통해 이런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의외로 부정적으로 남아 저도 슬프네요...

ㅡ일원론 속에선 당연히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스피노자는 이성을 강조하는데 그의 정의에 따르면 의지는 감성의 속성이니 더욱 그렇죠. 일원론 속에선 많은 것은 불완전하고 일시적으로 보여 그것들을 종속할 상위를 설정하게 만듭니다.
가령 ‘판단 유보‘에 대해 스피노자는 지의 부족으로 설명하는데, 그것은 양립할 수 있는 결과의 가능성을 고려한 현명함, 포괄성으로 고려할 수도 있죠. 이 부분은 비트겐슈타인이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ㅡ완전한 상태 지복(이를테면 안분지족)을 최고의 가치로 환원한다는 것. 이 세계는 카오스도 중요하며, 생성과 소멸이 약동하는 이 세계에서는 코스모스와 카오스가 동등할 정도로 공존합니다. 사실 이것은 가치로 판단할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선과 악처럼 끊임없이 오가는 것과 같아서. 상대성 문제이기도 하죠.

이러저러 반론이 많이 생각났는데 읽다가 많이 까먹었어요^^;
올해 안에 <에티카>도 읽고 제 이런 인상도 어찌 처리해야 될 문제로 남았네요. 서재오면 늘 일거리만 더 생기는 거 같아 괴롭군요ㅜㅜ

겨울호랑이 2017-03-27 14:56   좋아요 1 | URL
^^: <에티카>를 통해 스피노자의 사상이 표현되겠지만, 스피노자의 사상 전체는 아니겠지요...유일하게 존재하는 실체로서 신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으로서 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모든 것에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며,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정리된 것이 <에티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이 부분이 세계의 창조나 생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아직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이러한 연결은 개인의 배경지식과 연관되어 취사선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Agalma님께서는 이런 고민을 즐기시는 듯한데, 괜한 엄살로 보이는 군요^^:

AgalmA 2017-03-27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성의 속성에 대한 스피노자의 논의엔 공감해요. 그걸 세계관으로 통합할 때 다른 가능성을 쳐내는 부분에 있어서 수긍하기 어려운 점들이 보인다는 거죠. 겨울호랑이님 말씀처럼 각자의 취사선택과 해석의 문제가 있으니...

즐긴다기보다 세계가 이런 식으로 규획되고 정의되는 것에 대한 반발, 아니다라고 말할 이성적 용기 혹은 어리석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ㅎ;

겨울호랑이 2017-03-27 15:07   좋아요 1 | URL
사실 스피노자가 만든 <에티카>라는 건축물은 [정의]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정의]에 대해 독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에티카>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에서 ‘변형된 삼단논법‘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에티카> 역시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Agalma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자유의지라기 보다 세상을 보는 또다른 Agalma님만의 시각인 것 같네요.

마립간 2017-03-27 16:14   좋아요 2 | URL
≪ 에티카≫는 ≪원론≫의 형식으로 글을 쓴 대표적인 책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7 16:53   좋아요 1 | URL
^^: Oren님의 글을 읽다보니, 스피노자에게 있어 자유의지 문제는 중요한 문제라 생각되네요..Agalma님의 글을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답을 쓴 것 같습니다. 다음에 재독할 때 또는 독일 관념론 철학 공부 시 Agalma님이 던진 화두를 고민해야겠습니다.^^:

갱지 2017-03-27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니 말씀은 길고 머리는 짧아서 더는 못따라가겠어요-후후, 쉽지않은 고전 위주로 계속 올려주시니, 덕분에 뇌가 호강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7 16:22   좋아요 1 | URL
<에티카>의 내용이 스피노자의 독특한 사상에 기반한 책이라 내용만 간추릴 경우 내용의 비약이 일어날 듯하여 가능한 책의 내용을 옮기다 보니 길어졌네요..ㅜㅜ 부족한 제 글보다 직접 읽으시면 훨씬 쉽지 않은까 생각하게 됩니다.. 갱지님께서 읽기 좋은 글 못드려서 아쉽습니다..

oren 2017-03-27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이 철학자를 볼 때마다 ‘스피노자의 기교‘와 ‘데카르트의 혼동‘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쇼펜하우어의 글을 떠올리고, 그 대목들을 다시 찾아 읽어본답니다. http://blog.aladin.co.kr/oren/5847922

* * *

스피노자의 기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그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특정한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은 존재하는 사물의 고유한 본성과 정의 안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 원인은 그 사물이 존재하려는 본질 자체에 속하므로) 사물의 외부에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에티카》1부 정리8 주석2). 후자의 경우에서 스피노자는 다음에 밝혀지듯이 하나의 작용하는 원인을 의미한다. 반면 전자의 경우에서 그는 단지 하나의 인식이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동일시하고 이를 통해 신을 세계와 동일시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위한 사전작업을 한다. 하나의 주어진 개념의 내부에 놓여 있는 하나의 인식이유를 외부에서 작용하는 원인과 혼동하고 이 원인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스피노자의 기교이다. 그리고 그는 이 기교를 데카르트에게서 배웠다. (29쪽∼30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 * *

데카르트의 혼동

데카르트는 《제일 철학에 관한 성찰》의 ‘ 두 번째 반박에 대한 답변‘, 공리 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에게조차 이 물음이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이 존재하기 위해 어떤 원인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본성인 무한성이 곧 원인 혹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기 위해 아무런 원인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의 무한성을 신이 아무런 원인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도출하는 인식이유라고 말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섞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가 원인과 인식이유 사이에 놓여 있는 큰 차이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이 둘을 혼동한 것은 원래 그 자신이 의도한 바이다. 말하자면 그는 인과법칙이 원인을 요구하는 여기서 원인 대신에 인식이유를 슬쩍 써넣는다. 왜냐하면 인식이유는 원인이 그렇듯이 또다시 계속 찾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바로 이 공리를 통해 신의 현존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길을 개척한다. (25쪽∼26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겨울호랑이 2017-03-27 16:50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Oren님 쇼펜하우어는 데카르트와 스피토자의 원인과 인식이유에 대해서 위와 같이 비판했군요. Oren님께서 소개해주신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어보니, ‘의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군요. 이에 반해 자유의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스피노자가 쇼펜하우어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칸트, 쇼펜하우어등 독일 철학에 대해 들어가기 전인데, Oren님 덕분에 ‘의지‘라는 다른 포인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7 1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에 훌륭한 댓글이 많아 제가 감히 말 보탤 수 없습니다만, 원전이 아닌 해제로 읽길 잘 했다는 생각듭니다. ㅎㅎ 원전은 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3-27 19:07   좋아요 2 | URL
제가 원전을 이리저리 잘라서 어렵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ㅜㅜ.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원전을 보시면 새로운 것을 많이 느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기회되시면 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셨으면 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7 20:29   좋아요 2 | URL
말씀에 용기내어 <에티카> 해제 읽은 개인적 감상평을 말씀드리면, 스피노자는 현실의 일상적 그리스도교가 사회 복종과 순응에 가장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 그 잘못된 역할에 개탄한 듯 합니다.
우리 모두 현 종교체계를 벗어나 눈 뜨길 기원하는 듯 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3-27 20:26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스피노자가 비판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교회-황제‘로 대표되는 이원론적 지배체제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피노자의 사상을 체제 개혁적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북다이제스터님 덕분에 새로운관점을 보게됩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7 20:34   좋아요 2 | URL
그리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단 스피노자 주장은 요즘 뇌과학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단 주장과는 약간 다르게 인간은 이데올로기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단 관점에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ㅎ

겨울호랑이 2017-03-27 20:40   좋아요 2 | URL
^^: 그렇군요.. 저는 스피노자 이론을 자연과학과 법칙면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사회과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 스피노자가 정신과 신체를 하나의 관점에서 파악한 일원론자임을 감안했을 때 더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서니데이 2017-04-01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4-01 14: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혹시 오늘도 열공이신가요? 일주일에 하루는 reset하시길요^^:
 
신기관 한길그레이트북스 143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진석용 옮김 / 한길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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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관(Novum Organum)>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 ~ 1626)이 저술한 책으로 전체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우상)파괴편'이며, 제2권은 '(진리)건설편'으로 불리운다. 제1권에서는 유명한 '베이컨의 4가지 우상'이 언급되면서 귀납법을 통한 학문의 추구를 강조하고, 제2권에서는 '열'을 통해 학문추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1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베이컨의 귀납법(歸納法)


가. 베이컨과 데카르트


'진리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하여 일반적인 명제에 도달한 다음, 그것을 [제1]원리로 혹은 논쟁의 여지 없는 진리로 삼아 중간 수준의 공리를 이끌어내거나 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하여 지속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상승한 다음, 궁극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명제에까지 도달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시도된 바 없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방법이다.'(제1권 19)


[그림1]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 ( 출처 : 위키피디아)


베이컨과 같은 시기에 대륙에서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가 활동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 철학의 제1명제(Cogito ergo sum)를 도출하고 그로부터 그의 사유를 넓혀갔다고 한다면(연역법 演繹法), 베이컨은 귀납법만이 진정한 과학적인 방법임을 강조한다. 베이컨 자신은 '귀납법'만이 진정한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깊이 와닿지 않는다. 제2권에서 제시된 그의 과학적 분석을 따라가다보면 이러한 점을 특히 더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과학(科學)적 방법에 '수학(數學)'이 빠졌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 베이컨 식(式) 귀납법의 한계 : 정량적 분석의 한계


역설적으로 베이컨이 비(非)과학적 방법이라고 비판한 '연역법'의 데카르트가 수학을 강조한 반면, 정작 '과학적인' 베이컨의 방법론에서는 수학이 빠져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다음의 베이컨의 진술에서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거의 무한(無限)과 미래의 무한(無限)'사이의 구별도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만일 양자의 구별이 성립한다면, 하나의 무한이 또 하나의 무한보다 더 큰 것이 되고, 더 작은 무한은 점차 줄어들어 마침내 유한에 근접하고 말 것이다.'(제1권 48)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과거의 무한', '미래의 무한'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의 <신학대전>에서 나온 개념이다. '과거의 무한'과 '미래의 무한'을 '음의 무한대(마이너스 무한대)', '양의 무한대' 라는 개념으로 대칭시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베이컨의 논술(두 개의 무한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이론)이 맞지 않음을 우리는 수학의 좌표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베이컨 이후에 '극한', '미적분'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에 베이컨을 비판할 이유는 되지 못하겠지만.


[그림2] 정발산 수열(출처 : http://hanmaths.tistory.com/95)


'설명의 편의를 위해 오늘날 우리들이 자연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추론을 (경솔하고 미숙한 것인만큼) "자연에 대한 예단(豫斷, anticipation)"이라 부르기로 하고, 사물로부터 적절하게 추론된 것을 "자연에 대한 해석(解析, interpretation)"이라고 부르기로 하자.'(제1권 26)


베이컨은 자신이 주장한 '귀납법'을 '자연에 대한 해석'으로 부르며, '연역법'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펼친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념이 '우상(偶像, idola)'이다.


2. 베이컨의 우상(偶像)


가.  idola와 idea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우상(偶像, idola)과 신(神)의 이데아(idea) 사이에는, 다시 말해 황당무계한 억측과 자연에서 발견되는 피조물의 사실상의 모습 사이에는 실로 큰 차이가 있다.'(제1권 23)


베이컨은 자연의 실체를 왜곡하는 인간의 편견을 4가지 우상으로 정리하고,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귀납법'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에는 네 종류가 있다. (편의상) 이름을 짓자면 첫째는 '종족(種族)의 우상'(iolda Tribus 인간성 자체에 뿌리막고 있는 우상)이요, 둘째는 '동굴(洞窟)의 우상'(idola Specus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우상)이요, 셋째는 '시장(市場)의 우상'(idola Fori 인간 상호간의 교류와 접촉에서 생기는 우상)이요, 넷째는 '극장(劇場)의 우상'(idola Theatri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방법에서 생기는 우상)이다.(제1권 39)... 이러한 우상들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참된 귀납법으로 개념과 공리를 형성하는 것이다.'(제1권 40)


나. 우상의 극복 방법 : 귀납법


베이컨은 '종족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 '자연을 분해하는 방법(제1권 51)'을, '동굴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지성을 강하게 의심하는 방법(제1권 58)'을, '시장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황당한 학설을 거부하거나,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여 극복하는 방법(제1권 60)'을,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학문의 방법(귀납법)(제1권 61)'을 활용하여 극복할 수 있다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베이컨은 특히 '시장의 우상'을 강조한다.


'시장의 우상은 모든 우상 중에서 가장 성가신 우상으로서, 이른바 언어와 명칭이 [사물과] 결합해 지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이 언어를 지배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 언어가 지성에 반작용하여 지성을 움직이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수학자들처럼) 차라리 처음부터 정의에서 출발해서 논쟁을 차근차근 전개해나가는 쪽이 훨씬 낫다.' (제1권 59)


다. 시장의 우상과 비트겐슈타인


베이컨의 '시장의 우상'의 내용은 후대의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의 그의 전기 철학 저서인  <논리-철학 논고>에서 언급한 다음의 내용을 연상케 한다. 베이컨의 조언을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을 통해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를 극복해 나간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중에 자세히 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위키백과]의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내가 믿기에는, 이러한 문제들의 문제 제기가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뜻은 대략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 나에겐 여기서 전달된 사고들의 진리성은 불가침적이며 결정적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나는 본질적인 점에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출처 : <논리-철학 논고>, 이영철 옮김, 책세상) 


[그림3]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출처 : 위키피디아)


3. 베이컨의 학문 연구 방법


베이컨은 <신기관> 제1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의 귀납적 연구 방법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귀납법이라는 방법이 bottom-up 방식이기 때문에 충분한 사례의 수집과 이상치(outlier) 제거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베이컨은 강조한다.


'내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자연지와 경험지를 앞에 놓고 다만 두 가지만 주의하면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정신 본래의 힘만으로도 우리가 설명한 자연에 대한 해석 방법에 도달할 수 있다. 첫째로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이며, 둘째로 적당한 시가가 될 때까지 성급한 일반화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이다.'(제1권 130)


'어떤 사물의 본성을 오직 그 사물 속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은 하책(下策) 가운데 하책이다. 어떤 사물에는 숨어 있는 본성이 다른 사물에는 아주 명백하게, 거의 손에 잡힐 듯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물에서는 경이롭게 생각되는 일이 다른 사물에서는 거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일이 왕왕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물에 숨어 있는 본성은 그 사물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그 사물에 대한 실험과 고찰만으로는 알아내기 어렵다. 그런 본성이 아주 분명하게, 흔하게 나타나는 다른 사물을 보아야 한다.'(제1권 88)


'학문과 기술의 발견 및 증명에 유용한 [참된] 귀납법은, 적절한 배제와 제외에 의해 자연을 분해한 다음, 부정적 사례를 필요한 만큼 수집하고 나서 긍정적 사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제1권 105)


<신기관>은 '과학적 학문 연구'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음에도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신기관((Novum Organum))> 전체에서 베이컨이 그렇게 비판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의 저서 <형이상학>,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 등 구(舊)Organum에 해당하는 저술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베이컨의 '학문을 대하는 정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림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출처 : 나무위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헛된 숭배에 빠져들어 <창세기> 나 <욥기>와 같은 성경 구절에 기대어 자연철학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이것은 실로 "산 자들 가운데서 죽은 자를 찾는"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이처럼 어리석게 결합되면, 공상적인 철학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단적인 종교가 출현하기도 하는 것이니, 그와 같은 헛된 숭배는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규제해야 한다.'(제1권 65)


마치, 위의 글은 베이컨이 21세기 미국으로 돌아와 '진화론'과 '창조론'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쓴 것과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을 보면 <신기관>은 역시 우리 시대에도 고전이라 생각된다.


ps. '우상(偶像)'이라고 할 때는 잘 몰랐는데 idola와 idea라고 놓고 보니, 베이컨이 용어 선택을 할 때 언어적인 측면을 많이 고려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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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7-02-15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이컨은 대단합니다. 베이컨 까지 다 소개해주시는 호랑이님도 대단하시고요 ^^

겨울호랑이 2017-02-15 16:10   좋아요 0 | URL
에고.. 사마천님 과찬이십니다. 저도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4가지 우상‘만 접하다가 <신기관>을 통해 전체 맥락을 뒤늦게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사마천님, 행복한 오후 되세요.

yureka01 2017-02-15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학이 없었더라면 과학도 없었을 것입니다..^^..통계학 경제학 자연과학.. 기계공학 ..건축공학..전부 큰 줄거리는 수학에서 수학으로 끝나죠..

겨울호랑이 2017-02-15 17:26   좋아요 2 | URL
네^^: 유레카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수학은 언급하지 않는 베이컨의 과학은 ‘팥없는 붕어빵‘느낌입니다. ㅋ 감사합니다.

컨디션 2017-02-15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분야의 책은 저에겐 접근자체가 어려운데, 리뷰까지 이렇게 마치 한편의 논문형식으로 쓰시다니, 입이 떡..벌어집니다.
베이컨은 데카르트에 비하면 장수했군요. 아버지와 아들뻘..(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ㅎㅎ)
참, 베이컨 인물사진(그림?)은 왜 안올리셨는지요.(이왕 이리 된 거, 이런 걸 궁금해합니다ㅠ)

겨울호랑이 2017-02-15 18:51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컨디션님^^: 베이컨의 저작 3부작이 「학문의 진보」, 「신기관」, 「새로운 아틀란티스」3부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 리뷰도 순서를 따라가다보니 2부까지 왔네요^^: 말씀하신 베이컨 사진은 1부 「학문의 진보」에 넣어 중복을 피하고자 여기에서는 넣지 않았습니다. 작은 것에도 궁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컨디션님 편한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