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는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 ~ 1940)과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 ~ 1969)을 다룬 입문(入門)서적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er Schule)인 두 사람은 대중문화에 대해서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20세기을 대표하는 문화양식을 대중문화(大衆文化)라 했을 때, 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할 것인가? 

 


 먼저 아도르노의 관점부터 시작해 보자.  아도르노는 인간이 자기보존의 목적으로 계몽이 출발되었지만, 점차 자연, 사회, 내적 자연의 지배로 확대되어 가면서 인간 자체의 말살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 ~ 1973)가 사용하는 '계몽 enlightenment'은 신화와 마법의 전제 專制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서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이성적으로 각성된 사유 양식"을 지칭한다.(p52)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애초에 계몽의 출발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적인 힘에 맞서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자기보존'이라는 개념인데, 아도르노는 자기보존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법칙이라고 강조한다... 이성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이다. 이제 인간은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연을 지배하는 길로 들어선다.(p53)... 인간은 대자연의 지배로부터 권력을 빼앗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귀결하는 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이라는 또 다른 '야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었다.(p54) <벤야민 & 아도르노> 中 


 그 결과 인간의 이성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회 지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를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이라 부른다. 최대 효율을 위해 동일성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에 의한 지배는 대중 문화에서도 이루어지고,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일종의 지배 수단으로 파악한다.


 이제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를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만 몰두하는 도구적 이성  instrumental reason 이 되어버렸다.(p78)... 도구적 이성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신적 원리가 바로 동일성 원리 the princilpe of identity 라는 것이다. 동일성 원리란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을 주체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강제하는 지배 원리다.(p82)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일종의 비즈니스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문화산업이란 궁극적으로는 인간 주체의 내면적 자연, 그러니까 인간의 감정, 충동, 욕망, 본능, 상상력, 육체 등에 대해서 외적 자연에 가했던 것과 똑같은 폭력을 가함으로써 동일성 원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지배의 수단이다.(p88)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이에 반해, 벤야민의 대중문화론은 긍정적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대량생산로 대표되는 20세기의 기술 복제 시대에 대중문화는 일반 대중을 각성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벤야민은 대중문화의 산물이 대중을 기만하고 불구로 만든다고 비판한 아도르노와는 달리,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로서 영화가 몽타주라는 형식 원리를 통해 대중의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대중을 집단적 주체로 형성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한마디로 말해 아우라의 붕괴를 특징으로 하는 기술 복제 시대에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p217)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 시대를 거치면서 종래 예술이 가지고 있던 권위(아우라)가 상실되었다. 종교예술로 대표되는 과거와 달리 기술복제시대에 들어, 대량생산이 되면서 예술작품은 희소성을 잃게 된 것이다. 그는 특히 사진과 영화에 주목하면서 '소외'를 통해 대중들은 종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면서 새롭게 자각하게 된다고 대중문화를 해석한다. 


 벤야민이 대중문화의 산물을 보다 긍정적인 각도에서 평가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기술 매체의 발전, 즉 복제 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주목했다.(p173)... 벤야민에 따르면 예술의 생산 방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기술 복제 시대의 새로운 예술의 등장은 전통적인 예술에 어떠항 영향을 끼쳤는가? 벤야민은 그것을 한마디로 아우라 Aura의 상실이라고 설명한다.(p175)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보통 소외라는 개념은 부정적인 의미로 곧잘 이해되지만, 여기에서 벤야민이 사용하는 '소외 alienation' 개념은 브레히트의 '소격 Verfremdung' 개념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긍정적이고 유익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p188) ... 소외는 우리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다시 주목하고 세부까지 조명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간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p189)... 벤야민은 이러한 장이야말로 정치적으로 훈련된 시각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젖힌다고 보았다.(p191)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정리하면, 아도르노에게 대중문화는 도구적 이성의 결과로 일종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수단이지만, 벤야민에게 대중문화는 복제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새롭게 깨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두 석학 중 누가 현실을 바르게 바라본 것일까.


[사진] 영화 <토이 스토리 Toystory> 中( 출처 : ttps://www.youtube.com/watch?v=y03qIQciuxQ)


 영화 <토이스토리 2> 에서 주인공 중 하나인 버즈(Buzz)는 자신을 유일한 우주전사로 생각하지만, 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버즈'를 보면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다가 나중에는 다른 버즈를 도와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대중문화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외양이 같은 수많은 버즈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각성하는 버즈에 집중하는가가 아도르노와 벤야민 관점의 차이점이라 여겨진다. 


 20세기의 대중문화에는 이러한 양면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중문화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취해야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상황이라 생각된다. 보다 현명하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벤야민 &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에 대한 두 사상가에 대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 이름만 들어본 이들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입문서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에 대한 내용을 옮기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아도르노에게 "변증법이란 수미일관한 비동일성의 의식"이 된다. 아도르노는 헤겔 Georg Hegel, 1770 ~ 1831 의 변증법에 대해 부정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산출하는 긍정적 변증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반해 부정의 부정이 긍정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 즉 사회에서 부정적인 것이 지속되는 한 부정의 부정은 부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부정 변증법'을 주장한다. 한 마디로 말해 사유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부정 변증법은 비동일자의 구제를 목표로 한다.(p136)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7-21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1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2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 ~ 1980)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통해 현대인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기력'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자유, 평등, 인간 본성, 사랑 등의 개념을 통해 무력감의 원인을 밝히고 있는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의 본문 내용을 따라가면서 우리의 무기력을 떨쳐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평등(平等, Equality)


 오늘날 '평등'의 개념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과거 평등의 의미가 '인간은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을 가지는데 반해, 오늘날의 평등의 의미는 타인과 구별되지 않음을 뜻한다. '개인은 개별 존재로서의 의미 대신에 추상적인 존재(전체)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전체로서의 개인(추상화된 개인)이 아닌 개별화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평등의 개념은 계몽주의 철학에서 절대주의 국가에 저항하며 발전하였다.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 의 말대로 모든 인간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한에서 서로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계몽주의 철학과 인문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의 의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평등을 동일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같다는 것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p30)'


2. 인간의 본성(本性 Human nature)


 인간의 본성은 주어진 부분(상수)과 변화되는 부분(변수)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이처럼 규정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면서 이성과 사랑의 힘을 통해 자신의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적극적인 '자유'를 통해 행동화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을 만드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분열을 해결하는 수단인 이 대답들은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정의를 낳는다. 분열과 불균형은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구성하는 근절할 수 없는 부분이다.(p48)'


 '인간의 본성은 원칙일 뿐 아니라 능력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이성과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만큼 자신의 본질에 도달한다...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과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진술하는 능력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이 인간 본성의 기본 요인이다.(p49)'


3. 자유(自由, Liberty)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자아실현(自我實現)'은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자유의 활동으로 달성가능하며,  적극적인 자유와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 개인은 점점 더 성장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적극적인 자유는 현대적 의미의 '평등'과는 달리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있어, 타인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로부터 적극적 자유는 '사랑'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자아실현이 사고 행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전인격의 실현을 통해, 모든 감정적 가능성과 지적 가능성이 활발하게 표현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적극적 자유는 통합된 전인격의 자발적인 활동에 있다.(p78)'


 '자유는 인간 존엄성의 발견, 혹은 인간 본질 그 자체이다. 그러니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유한성으로 인한 장애, 제약,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p61)'


 '자발적 활동은 자아의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그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p81)... 모든 자발적 활동에서 개인은 세계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는 온전해지고 더 강해지며 더 탄탄해진다.(p82)'


 '자아실현으로서의 적극적인 자유는 개인의 고유함을 완벽히 긍정한다. 인간은 평등하지만 다르게 태어난다. 이 차이는 태어날 때 물려받은 신체적, 정신적 기질이 다른 탓이며, 거기에는 수많은 상황과 각자의 경험이 추가된다.(p85)'


4. 사랑(愛 Love)


 적극적인 자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다름을 인정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기에, 우리는 상처받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인식이지만, 또 인식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p73)


 '사랑하는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이 방식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할 때 유일하게 만족을 주는 방식이다. 사랑이란 그 사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온전함과 현실을 둘 다 보존하는 유일한 형태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복종하거나 그에게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사랑"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람은 자신의 온전함과 독립이라는 인간의 기본 특성을 상실한다. 진정한 사랑에서는 타인과의 연관성과 자신의 온전함이 보존된다.(p20)'


5. 교육(敎育 Education)


 이러한 '적극적 자유 -> 자발적 활동 ->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현대 사회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며, 외부에서 바라는 바를 우리에게 강제하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어렸을 적 '교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생각과 느낌, 소망은 물론 심지어 감각적 느낌까지도 주관적으로 우리 것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고,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p119)'

 

 '우리의 느낌과 감정 못지 않게 독창적 사고 역시 왜곡된다. 처음부터 우리의 교육은 아이의 독자적 사고를 막고 아이의 머리에 완성된 생각을 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이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한 손으로, 이성으로 세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낯설고 거대한 세상에서 방향을 잡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p93)'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는 현대적 의미의 '평등'을 추구한 결과,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현대인들이 '무기력'에 빠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자신 및 사회의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결정적인 힘과 상황을 올바르게 통찰하는 것이다. 무지와 인식의 결핍은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무력감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온갖 망상을 총동원하여 절망적으로 저항해 봤자 개인은 결국 내면적으로 그 무기력을 인식하게 된다.(p180)'


  저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결국 현재 상화에 대한 '관찰'로부터 올바른 현실 '인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결과를 바탕으로 '자발적 활동'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의 결론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는 현대인들의 무기력 문제를 정신분석학의 방법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우리의 무기력을 완전하게 치유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구조적인 빈곤의 문제, 사회적인 불평등의 사회적 문제 역시 현대인들에게 많은 무력감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주는 무력감은 사회개혁을 위한 정치행위를 통해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 평등, 우애(自由, 平等, 友愛, Liberte, Egalite, Fraternite)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대부터 사용된 구호 '자유, 평등, 우애(또는 박애)'는 그러한 면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앞서 '자유'와 '평등'이 개인의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할 덕목이라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이념으로서 우애(Fraternite)가 실현될 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무력감이 온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자유, 평등, 우애(박애) [출처 : 뉴스풀]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2-08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8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2-08 17: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요 위의 사진 제가 가지고 있는 ‘레미제라블‘ 표지랑 닮았어요.
이 참에 레미제라블 시도해 봐야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2-08 19:07   좋아요 2 | URL
^^: 「레미제라블」표지하면 어린 코제트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저는 방대한 양에 도전을 미루고 있습니다만, 양철나무꾼님의 좋은 리뷰 기대해 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2-08 17: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으려고 사놓기만 하고 아직 안 읽은 책인데 겨울호랑이님 리뷰를 읽으니 뭔가 책을 다 읽어버린 느낌이예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2-08 19:09   좋아요 3 | URL
^^: 감사합니다. 다만, 책의 문장과 작은 단락에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 조그만메모수첩님께서 직접 읽으시면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알케 2018-02-08 1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애 fraternité라는 번역을 늘 수상쩍게 봅니다. 맥락 상 피지배계층 간의 ‘형제애적 연대˝로
뜻을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예전엔 ‘박애‘라는 얼척없는 일본식 번역어로 불렸으니 뭐.
현 시대에선 계급, 계층간 정서적, 물리적 연대 solidarité로 새기는게 맞을 듯합니다

프롬 할배는 60년대 미국 사회당 시절의 글들이 이채롭죠. 프롬 할배에게서 프로이트를 -10
마르크스를 +20하면 좋을텐데....ㅋ

겨울호랑이 2018-02-08 19:12   좋아요 0 | URL
^^: 알케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혁명구호에 ‘박애‘는 좀 어색하지요. 알케님 말씀처럼 ‘형제애적 연대‘ 또는 ‘계급 내 단결‘정도의 의미가 보다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에리히 프롬의 다른 저작도 폭 넓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알케님 글을 읽고 하게 됩니다^^:

[그장소] 2018-02-09 0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부분에선 그 시대에 이런 통찰이 ? 싶다가 결론에선 맥이 탁 풀린 , 그 시대의 통찰력도 어쩔 수 없구나 싶었던 책였는데요 . 그래도 처음 무기력을 들여다 보게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랬네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2-09 08:56   좋아요 2 | URL
^^: 그렇군요.. 저는 대체적으로 프롬의 통찰력에 대해 많이 감탄한 편이었습니다.. 그장소님께서 말씀하신 프롬의 한계에 대해서는 제가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장소] 2018-02-09 12:14   좋아요 2 | URL
시대를 생각하니 , 옛 사람의 통찰에 놀랐던 거더라고요 . 감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걸 고민한다는데 놀라운 감탄을 했었고요 . ㅎㅎ이미 예견된 무기력이라 , 알아도 안다는 것 외에 별수 없겠네..그랬어요 . 저 감정이 너무 마이너한 가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2-09 12:35   좋아요 2 | URL
무슨 말씀을... ^^: 그장소님께서 마이너한 감정을 가지고 계실라구요.. 프롬이 1980년에 사망했으니, 아주 옛날 사람도 아니지만, 요즘 우리가 하는 고민이나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온 것들이 다수인 것 같습니다. [기출문제]가 중요한 것은 반드시 자격시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것 같네요ㅋ
 
에우튀프론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20
플라톤 지음, 강성훈 옮김 / 이제이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우튀프론 Euthyphron >은 플라톤(Platon , BC 424 ~ BC 348)의 초기 대화편 중 하나로 경건(敬虔)을 주제로 한다.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와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를 고소한 에우튀프론 사이의 대화를 통해 '경건'의 정의를 완성시켜 나가지만, 완성된 형태에 이르지 못하고  아포리아(aporia) 대화로 마무리된다. 이번 리뷰에서는 경건에 대한 에우튀프론의 다섯 정의와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대화의 시작


 에우튀프론은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를 고소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러한 그의 행동을 불경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에우튀프론은 자신이 경건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경건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그분들 주장으로는 아버지가 그를 죽인 것도 아니고, 설사 죽인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죽은 사람이 살인자인 마당에 그런 사람을 위해서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하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고요. 소크라테스님, 그건 이분들이 경건한 것과 불경한 것에 대한 신적인 입장이 어떠한지를 잘 몰라서 그래요.(4 : e)'


2. 경건에 대한 정의


가.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첫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에우튀프론은 자신의 행동이 바로 경건한 행동이라고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개별 행동이 아닌 경건의 이데아(idea, eidos)가 무엇인지를 재차 요구한다.


 '저는 경건한 것이 바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살인이나 신성한 것들을 훔치는 일이나 다른 어떤 그런 잘못을 벌함으로써 부정의한 행동을 하는 자를, 그가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고소하는 것이라고요. 고소하지 않는 것은 불경한 일이고요.(5 : e)'


 '그럼 내가 많은 경건한 것들 중 한두 개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경건한 것들이 그것에 의해서 경건한 것이 되는 그 형상(eidos, idea) 자체를 요구했다는 것을 기억합니까?... 그러니 이 형상 자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 주시죠.(6 : d ~e)'


나.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두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소크라테스의 요구에 에우튀프론은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이 경건한 것이라고 재정의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여러 신들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올바른 정의가 아니라고 논박한다.


[그림] 파리스의 심판 : 세 여신들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美)가? (출처 : http://blog.daum.net/spdjcj/1357)


 '그럼,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은 경건한 것이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불경한 것입니다.(6 : e)'


 '그럼 고귀한 에우튀프론, 당신 말에 따르면, 신들 중에서도 이 신은 이것을 저 신은 저것을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또 서로 다른 것들은 아름답고 추하고 좋고 나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동일한 것들을 어떤 신들은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신들은 부정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당신 주장입니다.... 당신이 제우스 신에게는 사랑스럽지만 크로노스 신과 우라노스 신에게는 미움을 사고 또 헤파이스토스 신에게는 사랑스럽지만 헤라 여신에게는 미움을 사는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8 : a ~ b)'


다.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세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이에 대해 에우튀프론은 모든 신들이 공통으로 사랑하는 것이 경건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지만, 이 역시 논박을 당하게 된다. 즉,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론으로 이 정의 역시 무력하게 된다.(에우튀프론 딜레마 Euthyphron dilemma)


 '아, 그럼 저는 모든 신들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경건한 것이고, 반대로 모든 신이 미워하는 것은 불경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습니다.( 9 : e)'


'어떤 것이 변하거나 뭔가를 겪는다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하는 게 아니라, 변하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또, "겪는 것"이기 때문에 겪는 게 아니라, 겪기 때문에 "겪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이것도 앞의 것들과 마찬가지겠지요? "사랑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는 것에 의해서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지요?( 10 : c)'


 결국 에우튀프론은 정의를 내리는 것에 실패하고, 이제는 소크라테스의 도움을 받아 경건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시작한다. 정의를 내리기 전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정의로운 것이 있는 곳에 경건한 것도 있습니까? 아니면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어서, 경건한 것이 있는 곳에는 정의로운 것도 있지만 정의로운 것이 있는 곳 모두에 경건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라면, 우리는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어떠한 부분인지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12 : d)'


라.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네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경건'을 '정의'의 부분집합으로 놓았을 때, 에우튀프론은 신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한 부분이 경건이라고 정의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번에는 '보살핌'이라는 언어적 정의를 지적한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보살핌'은 '섬기기 기술'로 서로 합의한다. 


 '정의로운 것 중에서 신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된 부분이 신을 공경하는 것이자 경건한 것이고, 인간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된 부분은 정의로운 것의 나머지 부분입니다.(13 : a)'


 '당신이 "보살핌"이라는 말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신들에 대한 보살핌"을 이야기할 때 다른 것들에 대한 보살핌과 똑같은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경건함은 신들에 대한 어떤 보살핌입니까? 노예들이 주인들을 보살피는 바로 그런 보살핌입니다, 소크라테스님. 알겠습니다. 그건 신들에 대한 일종의 섬기기 기술일 것 같군요.(12 : d ~ 13 : d)'


마.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다섯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결국, 다섯번 째 정의에서 에우튀프론과 소크라테스는 경건함이란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을 올바르게 요청하는 일종의 상거래 기술'임을 도출하지만, 이후 논의를 진행하기 전 에우튀프론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면서 더이상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기도하고 제사 지내면서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행할 줄 안다면 그가 그러는 것들은 경건한 것들이고, 그러한 것들이 사적으로 가정들과 공적으로 나라의 일들을 구원합니다.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에 반대되는 것들은 신에 대해 불손한 것들로, 이것들은 모든 것을 뒤엎고 파괴하지요.(14 :b)'


 '올바로 요청하기란 그들에게서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바로 주기란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선물로 갚아 주는 것이겠군요?... 에우튀프론, 그럼 경건함은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서의 일종의 상거래 기술이겠군요.(14 : e)'


  <에우튀프론>은 이처럼 '경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그렇지만, 이 대화편을 통해 그리스 다신(多神)에 대한 플라톤의 부정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절대적인 이데아 세계를 설명하는데, 여러 다른 신의 존재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그리스 전통신관과 다른 데미우르고스(demiurge)로 표현되는 플라톤의 신관(神觀)이 나오게 된 배경도 다소 나마 짐작하게 된다. 또, 논의를 통해 집합 명제와 관련된 내용과 언어정의의 중요성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정의(定意)를 하기 위한 기본수단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에우튀프론>은 짧은 초기 대화편이지만, 그 안에서 플라톤 철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와는 별도로 에우튀프론이 살인죄로 아버지를 고소하는 장면에서  논어(論語) 子路篇(자로편) 18장을 연상하게 된다. 섭공과 공자(孔子, BC 551 ~ BC479) 사이에 '직(直)' 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다음의 대화를 보면서 동서양(東西洋) 모두에서 부모를 고발하는 행동은 비록 그 부모가 잘못이 있더라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葉公語孔子曰  吾黨 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섭공어공자왈  오당  유직궁자  기부양양   이자증지


孔子曰  吾黨之直者 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공자왈  오당지직자 이어시  부위자은  자위부은  직재기중의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고을의 정직한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아들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를) 숨겨줍니다. 그 가운데 정직함이 있습니다. (출처: http://ingee.tistory.com/361 [있는 그대로])


 또한, 이처럼 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덕목(德目)이라면, 이를 정의해서 형상(이데아)를 규명하고자 하는 플라톤(또는 소크라테스)의 시도는 무모한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19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20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서양은 절대개념(신)이 없음 뭔 말도 성립이 안 돼요ㅎ;;; 그러믄서 뭔 잘난 척은 그리도 많이 하는지;
공자의 저 말은 상대성 속의 유동성을 말하고 있죠. 상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겨울호랑이 2018-01-20 20:16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서양철학은 신(神)의 존재와 함께 흘러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양에서는 ‘절대진리=idea=神‘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에 반해, 동양에서는 ‘상황‘에 보다 집중하고 있는 것 같네요. <에우튀프론>에서 다신론에서 단신론으로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이 다음에 올 ‘절대진리‘를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나는, 오늘도 4 : 걷다 나는 오늘도 4
미쉘 퓌에슈 지음, 루이즈 피아네티보아릭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미셸 퓌에슈(Michel Puech) 교수는 <걷다 Marcher>를 통해 '걷는다'는 의미를 다시 해석한다. 저자에 의하면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번 리뷰에서는 '걷는다'에 담겨진 의미를 저자와 함께 생각해 보자.


1. 세상과 맺는 관계로서의 걸음


 저자에 따르면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무의미한 과정이 아니다. 세상과 직접 대면(對面)하는 행위이며, 그 자체로 우리의 경험이 된다. 걸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고, 세상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첫 걸음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오게 된다.


 '거리 감각을 되찾고, 시간과 공간에 대해 좀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도구들을 이용하다보면 주변 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좀 더 생생하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기는 것이다.(p42)... 두 발로 걸을 때, 우리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다.(p45)'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 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p13)'


2. 첫 걸음 : 정(靜)적인 상태에서 동(動)적인 상태로의 첫 변환


 첫 사랑처럼 '처음'의 의미가 주는 특별함과 마찬가지로 걸음 중에서도 첫 걸음의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남다르게 남는다. 첫 걸음을 떼기 위해 아이들은 수많은 실패를 하게 되고, 그 과정은 아이에게는 아픔으로, 부모에게는 안타까움을 가져다 주게 된다. 그렇지만, 첫 걸음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저자는 '첫 걸음'의 의미를 인생에서 정(靜)적인 상태에서 동(動)적인 상태로 전환되는 첫 순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는 일단 넘어지기부터 한다. 균형을 잡고 서서 두 발로 쓰러지지 않고 움직이는 데에는 발가락부터 목에 이르는 수많은 근육을 쓰는 복잡한 신체적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걸음마를 배우려면 넘어지기를 받아들여야 하며,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p16)'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른다. 첫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 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 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p34)'


 3. 함께 걷는다는 것 : 촛불 


 첫 걸음 이후 사람들은 수 많은 걸음을 걷게 된다. <걷다>에서 해석하는 걸음의 의미 속에는 정치적 의미도 포함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음을 통해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우리는 일 년 전 함께 나누었기에 '걷다'의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할 때 함께 무리 지어 걷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진은 상징적 행동으로, 공적인 장소를 걸어 지나감으로써 그 공간을 점령한다는 의미가 있다.. 시위 행진이 있을 때면 수천 명(경찰 추산에 따르면 수백 명)이 사람들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이렇게 함께 걷는 가운데 생성되는 연대감 역시 상징적인 것이다.(p57)'


 <걷다>를 통해서 우리는 '걷는다'는 의미가 다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적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걷다>에는 이러한 '걸음'의 수많은 의미가 열거된다. 그러한 여러 글 속에서 특히 '맨발로 걷기'에 대한 부분이 더 인상깊게 느껴진다.


4. 맨발로 걷기


   <걷기> 속에서는 맨발로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자연(自然)'과의 소통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러한 '자유로움' 의미 외에 다른 느낌은 없을까.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발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심플한 가죽 혹은 플라스틱 샌들이나 털 부츠, 캔버스 운동화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 자칫 잊어버리고 지나치기 쉽지만, 신발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소박한 도구 중 하나이다. 새 신발을 신었는데 발이 아프면 하루가 고역스럽다.(p30)'


 '여름에 맨발로 해변에 처음 들어서거나 테라스의 타일 바닥을 밟으면 묘한 해방감이 든다.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고 되찾는 것외에도, 걷다보면 세계와 직접 몸을 맞대는 데서 오는 자유로운 느낌이 있다... 자연 속을 걷다보면 자연과 오감(五感)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p76)'


[사진] 지압용 돌(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br4&articleno=7886109&categoryId=764151®dt=20100916105135)


 지압용 돌 위를 맨발로 걸어 보자. 옮길지 모르는 무좀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처음 맨발로 걸을 때 그 낯선 느낌과 통증은 처음에 견디기 어렵지만, 계속 걷다보면 몇 차례 걷다보면 어느새 익숙한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대하게 된다. 마치 신발을 신는 것처럼. 평소 가면을 쓴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어느새 우리가 쓴 사회적 가면을 우리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공원의 지압용 돌을 걷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에게도 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올바른 걷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미셸 퓌에슈의 다른 철학 시리즈 <나는, 오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걷다>에서도 일상의 행위 속에서 우리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에, 삶에 지칠 때 잠시 걸으며 읽기를 권해 본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12-07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요. 걷는 것처럼 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서도 저렇게 꼼꼼하게 의미를 길어올리는 거 보면, 철학자라는 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싶었어요. 맘만 먹으면 짜장면으로도 700페이지짜리 인문서를 쓸 수 있을 사람들이라고....

왜 걷기 책을 읽었는데 걷기보다 걷기를 쓴 사람에 대해 더 경외감이 드는 걸까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2-07 22:07   좋아요 1 | URL
^^: syo님 말씀처럼 철학자들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개미만한 작은 곤충으로부터 코끼리같은 의미를 발견하니까요. 저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진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습니다^^:

yamoo 2017-12-07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콩 여행가서 발이 아작나는 바람에 걷는 게 너무 힘듭니다. 한 2킬로 정도 걸으면 발이 무쟈게 아파요. 밤에 자고 읽어나 첫 발을 내 디딜때 역시 매우 아픕니다. 아무래도 족저근막염이 의심되는데....그나마 밑창이 두꺼운 운동화는 발이 별로 아프지 않아 운동화를 주로 신습니다만, 그래도 오래 걸으면 발이 아파 움직이질 못하겠더이다.

걷는 거 정말 좋아했는데, 발이 아프니...ㅠㅠ

겨울호랑이 2017-12-07 22:49   좋아요 0 | URL
이런... yamoo님은 그런 아픔이 있으시군요... 저 역시 걷기를 좋아하기에 yamoo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됩니다...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2017-12-07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2-08 0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것도..
첫 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수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경험하는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겨울호랑이 2017-12-08 01:09   좋아요 2 | URL
^^: 그런 것 같습니다. 기존의 나에게서 벗어나는 모든 행동이 걷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cyrus 2017-12-08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꽃과 나무가 있는 흙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 좋습니다. 유레카님이 알려주셨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12-08 12:37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예전에 cyrus님께서 유레카님과 만나 맨발로 흙길을 걷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기억납니다^^:

AgalmA 2017-12-16 0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도 정신도 보조를 맞춰서 잘 걸었으면 싶습니다. 가끔 로봇처럼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몸 따로, 정신 따로^,ㅜ;
바꾸신 연의 프사 역시 이쁘네여 :) 연의는 우리가 흐뭇하게 자기 보고 있는 거 알랑가. 마치 조상신 된 기분ㅎ;;

겨울호랑이 2017-12-16 08:13   좋아요 1 | URL
^^: 저도 그렇지만 우리가 걷는 자체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목적지를 가기 위한. 걷는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로 다가온다면 더 여유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쉽지 않지만요 ㅋ 네. 딸을 아들처럼 씩씩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ㅋㅋ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식인마을 25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언하는 것이 증거가 될 순 없습니다. 이처럼 빈약한 습성이나 그럴듯한 추측보다는 좀 더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그를 고발할 수 있습니다. - 오셀로 中 -


To vouch this is no proof, without more wider and more overt test Than these thin habits and poor likehoods Of modern seeming do prefer against him' - Othello - 


[그림]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출처 : www.pinterest.co.kr/pin/427208714625932919)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포퍼(Sir Karl Raimund Popper, 1902 ~ 1994)와 쿤(Thomas Samuel Kuhn, 1922 ~ 1996)의 사상에 대한 입문서이면서 '과학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쿤과 포퍼가 생각하는 과학이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1. 포퍼 : 과학적 진술이란 무엇인가?


 포퍼는 그의 저서인 <추측과 논박 : 과학적 지식의 성장 Conjectures and Refutations :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Routledge>(1963)을 통해 과학적 진술이란 '반증 가능'한 진술임을 밝힌다. 과학자들은 반증 가능한 명제를 바탕으로 증명과 반증을 통해 기존 이론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하면서 과학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포퍼는 연역만으로 작동하는 과학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귀납의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던 과학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줬다... 포퍼는 반증이 가능한 진술과 불가능한 진술을 구분하여 반증이 가능한 진술만 "과학적 진술 scientific statement"라고 규정한다.'(p75) 


 '포퍼의 기준으로 봤을 때 어떤 진술이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반증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이다... 어떤 사람이 "과학자냐, 사이비 과학자냐"라는 문제는 그의 태도나 행위와 관련된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자는 반증 가능한 진술들을 던져놓고 그것을 혹독하게 반증하려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과학자는 반증 가능성이 더 높고 더 대담한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람들이며, 사이비 과학자는 비판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계속 변명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p77)


2. 쿤 : 도그마와 패러다임


 이에 반해, 쿤은 과학의 발전이란 객관적인 증명과 반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심리상태, 사회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게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cific Revolutions>(1970)속의 내용을 통해 과학의 발전과 패러다임의 내용을 살펴보자. 


 '1962년 <과학혁명의 구조>가 세상에 나왔다. 이 책에서 쿤은 당시에 널리 받아들여진 과학에 대한 이미지와 양립할 수 없는 아주 새로운 과학관을 제시한다. 쿤은 한마디로 실제 과학은 절대로 포퍼나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규범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신 과학에는 "도그마 dogma"와 같은 것이 필요하고 대부분의 정상적인 과학은 그것에 기댄 활동이며, 드물게 일어나는 과학혁명은 논리적 절차보다는 과학자들의 심리상태에 더 크게 의존해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혁명을 통한 과학의 변동이 꼭 진보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p107)


 특히, 쿤의 용어 '패러다임'은 과학철학 용어를 넘어 지금은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원리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쿤은 "패러다임 paradigm" 이라는 용어를 크게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넓은 의미는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이고, 좁은 의미는 그 집합의 한 구성 요소로서 구체적이고 인상적인 문제 해결의 사례에 해당하는 "범례"가 그것이다.'(p114)


'요약하면 범례는 어떠한 기호적 일반화가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매우 인상적인 사례들의 모음이다. 과학도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범례를 학습해 나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범례를 학습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현상이 어떻게 동일한 원리의 지배를 받는가를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다시 세계에 대한 유사성 관계 즉, 이 세계의 존재자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패러다임은 점점 더 성숙해진다. 이것이 바로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다.'(p120)


 <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의 사상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과학은 과연 포퍼가 주장한 것처럼 객관적인 탐구 과정의 결과일까, 아니면 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대 사회의 지배원리가 상호 작용하면서 성숙해지는 일련의 과정일까. 이러한 과제를 던지는 책을 읽으면서 포퍼와 쿤의 사상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포퍼의 사상에서는 우주가 한 순간에 만들어졌다는 빅뱅 이론 (Big Bang Theory)과 같은 느낌을, 쿤의 사상은 우주가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정상우주론(正常宇宙論, Steady State theory)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이들 과학철학자들의 사상을 깊이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느낌을 잡고 그들의 저서를 향후 살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구성과 내용을 보자. 개인적으로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에서도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여러 책들을 소개한 우수한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에서는 쿤과 포퍼 외에도 다른 과학철학자인 라카토시(Lakatos Imre, 1922 ~ 1974)와 파이어아벤트(Paul Karl Feyerabend, 1924 ~ 1994)의 사상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현대 과학철학사를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독자들의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추천도서 목록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다른 책보다  '깊이 읽기' 에 해당하는 추천 도서 목록을 2~3배 많이 제공하고 있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잘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알찬 내용은 아마도 저자인 장대익 교수가 지식인 마을의 전체 기획자인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생각해볼 때<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좋은 입문서 시리즈인 지식인 마을 책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표작이라 생각된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7-06-30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등장하는 저 그림은 제 눈에도 익숙하네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제가 갖고 있는 책 (앤터니 홀든 지음,『윌리엄 셰익스피어』, 부제는 <그림과 자료로 복원한 셰익스피어의 삶과 예술>)엔 저 그림과 ‘아주 비슷한 그림‘이 두 페이지에 걸쳐 커다랗게 실려 있는데, 화가 이름이 겨울호랑이 님께서 밝혀주신 출처에 나오는 화가(Carl Ludwig Friedrich Becker)와 서로 다르네요. 제가 지닌 책에서는 세바스티아노 노벨리(Sebastiano Novelli, 1853~1916, 이탈리아)로 표기되어 있거든요. 그림이 서로 ‘살짝‘ 다른 걸 보면. 누가 누구의 그림을 베낀 듯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셀로의 아내 이름이 살짝 뒤바뀐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6-30 18:59   좋아요 0 | URL
^^: oren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잘 못 적은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제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그림에 대한 부분은 잘 몰랐네요. 요즘 oren님께서는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희비극 작품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그림까지도 깊이 있게 공부하시고 계신 듯합니다. 덕분에 저도 같은 듯 다른, 동일한 주제를 가진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네요.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작품을 읽을 때 관련 주제인 음악과 미술 작품도 읽는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니벨룽겐의 반지>를 읽으면서 바그너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것처럼요. oren님으로부터 좋은 독서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oren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oren 2017-06-30 18:56   좋아요 1 | URL
좀 더 찾아 보니 아무래도 Carl Ludwig Friedrich Becker(1820∼1900, 독일)의 그림이 먼저인 듯싶네요.
그런데 매우 권위있는 책으로 인정받는 앤터니 홀든의 책에서는 왜 하필 세바스티아노 노벨리(Sebastiano Novelli, 1853~1916, 이탈리아)의 그림을 실었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제가 얼핏 봐서는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이 훨씬 더 나아 보이긴 한데, 만약에 그게 독일 화가의 그림을 보고 베낀 작품이라면 ‘독창성‘이 결여된 ‘모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텐데 말이지요...

겨울호랑이 2017-06-30 19:07   좋아요 1 | URL
^^: 아무래도 oren님께서 말씀하신 앤터니 홀든의 책을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제가 미술 관련된 배경 지식이 많이 부족하여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겠지만요...^^:

oren 2017-06-30 21:33   좋아요 1 | URL
앤터니 홀든의 책은 강추합니다. 도판도 아주 훌륭하고 내용도 충실하니까요. 다만 한가지 아숴운 점이라면 책값도 비싸고 이미 절판되었다는 점이지요.. 저는 정말 우연히 이 책을 구입했답니다. 몇 년 만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이 커다란 책이 제 눈에 번쩍 띄었으니까 말이지요. 이 책에 담긴 그림들만 보더라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풍성하고 퀄리티 높은 도판 하나만큼은 이 책이 단연 최고더군요...

서니데이 2017-06-30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날씨가 참 덥습니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데, 그래서 더 더운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6-30 20:37   좋아요 1 | URL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가뭄이 해소되길 기대해 봅니다.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oren 2017-07-01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댓글‘ 형식을 빌어 글을 하나 써봤습니다. ‘먼댓글 주소‘를 제대로 넣었는데도 ‘링크‘가 생기지 않네요.. ㅠㅠ

겨울호랑이 2017-07-01 20:13   좋아요 0 | URL
^^: oren님 감사합니다. oren님 글을 통해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편한 밤 되세요.

2017-07-0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2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7-03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객관적 탐구라는 게 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쿤쪽에 더 기웁니다.
DNA 발견 이후 생물학의 판도가 달라졌듯이 거울뉴런으로 뇌과학도 판도가 달라질 거라 말하죠. 즉 당대 지배적 과학 기반이 발전의 척도죠.

겨울호랑이 2017-07-03 18:13   좋아요 1 | URL
^^: 그리고 하라리의 관점이기도 한 것 같네요. 과학, 종교, 제국주의가 별개가 아니라 상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