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책진(禪關策進) - 이것이 선의 길이다
광덕.운서주굉 지음 / 불광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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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서주굉은 중국 항조우(현재 절강성) 인화현에서 태어났다. 열일곱에 이미 사전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박학하였으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시대는 명나라 말기의 스님이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맨 앞에 '선입문'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선입문에는 삶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불성이란 무엇인가. 인간 상실과 그 회복의 과제에 대하여, 인간 회복의 문제점, 교와 선, 선의 논리, 선의 화두의 본질, 화두 참구의 기본 요건, 선의 공덕, 선의 효용, 선의 자세와 호흡법 등이 있다. 간단하게 초심자가 읽기 좋은 글이다.

본론에는 여러 조사들의 법어가 실려 있다. 간혹 지나치게 간단하기도 하고, 간혹 심오해서 머리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선의 세계란 이해의 세계가 아니지 않은가. 머리를 맑게 하면서 마음의 무구를 찾아 떠나는 선의 여행에 좋은 동반자이다. 이 책의 세로쓰기는 오히려 신선하다. 오랜만에 세로읽기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만끽하면서 두툼한 책의 향기에 빠져들면, 한여름의 무더위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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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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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희망의 끝. 그 모든 끝. 이 소설집의 말미에 역자 김남주씨는 페루의 외딴 바닷가로 새들이 날아와 죽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한 외로운 사내의 시선을 느끼며, 긴장하며, 아리게 쓰는 글을 읽으면서 통찰을 읽어 낸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안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문학은 '상처를 통해 풍경으로 건너갈 때' 나오는 것일까. 오 헨리 류의 반전과 모파상의 깜짝 놀라게 하는 역전 기법을 쓰고 있는 '벽'과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같은 소설도 재미있었지만, 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시니컬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세상은 그에게 권총 하나만 남기고 떠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기는 비둘기같은 시민으로 몰락한 휴머니스트였지만, 마음 속엔 어떤 열정 같은 것을 갖고 있고,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류트에 대한 동경을 싸구려 선술집 가슴 설렘으로 치부시키고, 어딘가에 가서 죽음을 맞는 갈매기들을 동경한다. 저 먼 해원을 향해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흔드는 심정으로. 그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으면서, 줄곧 유치환의 시 <깃발>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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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성자
미국수피즘협회 / 정신세계사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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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일 청소를 하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 하늘이 시리도록 맑은 날, 비가 구질구질 내려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 우선 따끈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청소를 한다. 그렇다고, 열성적으로 빡빡 문지르는 청소는 아니고, 옛날에 쓰던 지금은 쳐박아둔 사물들을, 쪽지들을 살펴보고 읽어 보고, 혹은 버리고, 혹은 다시 정리하곤 한다. 아내는 청소를 하는건지 어질러 놓는건지 모른다면 핀잔이지만, 나는 그래도 마음이 깨끗해 짐을 느껴 상쾌하다.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오래 전에 내가 아주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다. 그 땐 무슨 의미였던지도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읽으니깐, 요즘 내가 생각하는 삶의 무게와 어울려 화음을 울린다. 확실히 독서라는 작업은 정신 세계의 상승과 어울리는 노동이다. 정신 세계가 삭막하고 찌들어 있을 때의 독서는 기억에 남는 부분도 별로 없고, 그저 검은 활자를 읽는다는 외엔 무의미한 작업일 때가 많다.

제일 감명받은 이야기는 처음의 바른이 이야기, 꼬마 성자와 열일곱번째 이야기, 어느 해바라기 씨앗의 일생이다. 인간 존재의 한계와 존재의 본질 탐구는 우리 삶의 과제가 아닐까. 오늘도 내가 내게 묻는다. 너 자신은 무엇인가. 너는 왜 사는가. 답은 몰라도 좋다. 웃을 수 있다. 나는 왜 사는지 궁금하니까. 그걸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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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삶이냐 홍신사상신서 24
에리히 프롬 지음, 정성환 옮김 / 홍신문화사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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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학급문고로 사 두었더니, 아이들이 의욕을 갖고 펼쳐본 다음, 서문의 omniscient의 철자 잘못된 것만 찾아 놓고 읽지 못한 걸 보고 픽-하고 웃었습니다. 하나는 아이들의 수준이 우스웠고, 또 하나는 이런 어려운 책을 아이들 책꽂이에 꽂아둔 내가 우스웠기 때문입니다. 이젠 거두어 들여 내가 대학교 시절 생각하며 다시 읽어 보니, 생각이 변했기 때문인지 상당히 새로운 내용인 것 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 접했던 에리히 프롬의 책은 의식화 서적처럼 여겨졌던 거 같다. 무의식으로 둘러싸인 멍청한 신입생을 의식화시킬 수 있는 책이긴 하지만, 그 당시의 의식화란 단어가 떠올리는 부정적 이미지는, 에리히 프롬의 저서들 마저도, 호기심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관점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할 때에도, 사회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어렴풋한 기억이라 착각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제 이십년 가까이 지나서 다시 소유냐, 삶이냐를 뒤적여 보니, 나의 생각의 흐름이 그대로 적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양의 불교적 세계관과 서양의 에피쿠르스 학파의 영향을 받은, 지금-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의 중요함, 그 사건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들... 물론 사회학적 분석이 뒤따르고, 극단적으로 성경 분석까지 들어가지만, 성경에는 별로 고증학적 관심이 없어 휘리릭 넘겨 버렸다. 82쪽 부터 나오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소유와 존재의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가난한 사람이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사람이다. -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탐욕을 갖지 않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을 소유물, 도그마의 성질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물질과 행동으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한다는 말이다. 소유물에게, 심지어 신에게도 얽매이거나 속박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속박되지 않고, 물건과 자기의 자아에 집착하려는 갈망을 벗어난다는 의미의 자유는 사랑과 생산적 '존재'를 위한 조건이며,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보다, 자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 따라서 선하게 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하며, 행해야 할 일의 수나 종류를 강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당신의 작업의 토대가 되는 기본적인 것을 중시해야 한다.

존재는 소유의 반대이며, 자아구속, 자기중심주의의 반대이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 존대는 능동적이라는 의미로, 자기의 인간적 힘을 생산적으로 나타내는 고전적 의미이다. 즉, 그는 존재를 끓는, 낳는, 그 자체 안에서 그리고 그 자체 밖으로 자꾸 흐르는, 달리는 것으로 파악한다. 끊임없이 달리고 움직이며, 달리면서 평화를 추구하고, 가득 참에 따라 늘어나므로 결코 가득 채워지지 않는 그릇과도 같다는 것이다. 모든 진정한 능동성의 조건은 소유양식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의 가장 높은 미덕은 생산적인 내적 능동성의 상태이며, 이 내적 능동성의 전제는 모든 형태의 자아 구속과 갈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 무엇을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욕심부리며 사는 데서 욕망과 추잡한 삶과 죄악과 질병이 생긴다. 자기를 어디에도 구속시키지 않고 자유로운 삶의 존재로 놓아두는 구름같은 삶. 흘러가는 물처럼 자연스런 삶. 스스로 그러한 산처럼, 물처럼, 바람소리와 솔향기처럼 산새소리와 들풀 향기처럼, 그저 있고 싶다. 열린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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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이런 데도 있었네 - 이색명소.숨은 비경 80곳
안중국 지음 / 조선일보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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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 붐입니다. 사-스 덕분에 제주도가 때아닌 호황을 누린다고도 하지만, 정말 우리 나라를 구석구석 섭렵해 본다면, 외국도 한 번 가 볼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의 정보가 너무 간략하다는 님의 말씀도 있었습니다만, 우선 이 책의 정보는 국립공원 급을 조금 벗어났다는 면에서, 초심자를 조금 넘어선 중급 뛰어넘기 단계의 여행객에게는 새로운 곳을 많이 넣어 준 것 같아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시원시원한 사진들이 책으로서도 마음에 들고요.

어떤 책들은 사소한 도로 정보나 식당의 반찬거리를 잔뜩 늘어놓느라고, 정작 본론인 여행지의 정보에 약한 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나온 곳은 지방에서는 꽤 유명한데, 전국적으로는 유명세를 덜 얻은, 우리 땅의 살가운 구석들입니다. 삼분의 이 정도는 가 본 곳이지만, 아직 못 가 본 곳도 있고, 가 봤어도 더 가보고 싶은 곳도 많답니다.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은, 마이산의 돌탑과 설악산... 하긴 우리 나라 어딘들 정겨운 돌멩이와 동그마한 산등성이가 싸안지 않는 곳이 어디랴만, 불현듯 그리워지는 논다랭이가 있기도 하고, 굴곡진 차밭의 떫은 향기도 느껴지는 정겨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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