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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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꼼수다를 통하여 가카의 하해와 같은 목소리를 정겹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가카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특이한 매체를 통하여 일방통행의 연설을 했더랬다.

그것들은 다 자료로 남아 역사적인 매듭의 어느 곳에선가 쓰일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생각이 전혀 없이 그저 읽기 연습 수준의 대통령이 앉아 있어 한심스럽다.

우는 것조차 타이밍을 미리 짜고 울어서 '줌 인' 내지 '31초'의 눈물 렙 타임 비디오를 관찰하게 만든다.

 

작금의 현실을 이야기하면 한숨만 나올 뿐,

이 책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연설담당 작가를 했던 강원국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대부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야기인데,

특이한 점은, 대통령으로 부터 배운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전임 대통령의 책을 읽는 일보다 덜 마음아프고, 더 즐겁고 뿌듯하다.

 

청와대에서 나와 효성그룹 전경련 회장의 연설문 작성을 하러 갔단다.

 

내가 두 대통령을 모시며 그분들에게 배운 내용과

회장의 생각은 차이가 컸다.

내가 배운 것과 정반대되는 내용을 쓰는 것은 행복하지 않았다.

몹시 불편했다.

그래서 두 달 만에 사표를 냈다. 그 후로 6개월을 놀았다.(320)

 

아무리 긴장되고 힘든 일이라 하더라도,

진심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행복을 얻으면 힘들지 않다.

아무리 많은 보수를 받고 일이 적다 하여도,

생각이 정반대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몹시 불편하다. 그런 법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름을 거론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또한 철저했다.

경찰, 군인, 소방관 등 평소 고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자리에서는 특히 그랬다.(314)

 

이렇게 뒷담화로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 온다.

그런 훌륭한 분을 대통령으로 두었던 시대가 있었는데 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응하면서 참으로 뒤늦은 뒷북으로 '담화문'(이건 지 애비가 잘 하던 것)을 낭독하면서,

눈물 철철 흘린 그네가 이름을 여럿 틀렸다고 한다. 가슴이 시리다.

 

故 최혜정, 정현선을 '최혜경', '정한선'으로 불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7289

햇볕 정책은 미국의 성공에서 배운 것입니다.

미국의 데탕트 정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총 한 번 쏘지 않고 소련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반대로 미국이 쿠바를 40년동안 봉쇄하고 압박했지만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108)

 

연설의 힘은 이런 것이다.

미국 국빈방문 시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했던 말이란다.

미국을 추켜올리면서 디스한다. 그 속에 미국의 대북 정책의 기조 역시 방향성을 잡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이나 연설을 하는 일은 창작과는 다르다.

그러나 늘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두 대통령이 얼마나 늘 깨어있는 분들이었는지를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참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 - 마르셀 프루스트(119)

 

한국의 민주주의를 말하던 김 대통령이,

기적은 기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122)고 했다는 말은 신선하다.

기적처럼 보이는 한국의 현대사 아래에서는 물밀듯 천만변화하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반드시 인과응보임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는 것이지, 기적적으로 민주주의를 얻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124)

 

악어의 눈물이 유행인 요즘,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영부인 앞에서 통곡하던 김 대통령이 떠오른다.

깨어있는 시민만이, 어둠 속에서 그래도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글의 종결에서 안정효 선생을 인용한 부분도 재밌다.

 

장황한 종결은 낭비다.

그것은 꽃상여와 비슷하다.

살아서는 뼈빠지게 가난하여 누더기만 걸치고 옹색하게 살았던 사람이,

죽은 다음 만장을 휘날리며 꽃상여를 타고 가서 어쩌겠다는 말인가.(130)

 

참 적확한 비유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굴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는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더이상 설 땅이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성실하게 일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154)

 

결국 이렇게 3.1절 기념사로 출발한 노 대통령이지만

그 다음해 퇴출당하는 국개의원들이 발의한 탄핵부터 시작하여 수세에 몰린다.

기회주의는 아직도 이 땅을 딛고 서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성공을 비웃는다.

슬프다.

 

글은 쉽게 써야 한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다.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헤밍웨이, 178)는 말.

 

그렇지만, 쉽게 써지지 않는 글이 더 많다. 그것은 생각이 올곧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을 이야기하는 대목을 보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살붙여 나가는 일을 즐기던 사람이었던가를 알게 된다.

 

두 대통령이 광복 이후 최고의 연설가라고 하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또한 사후에까지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 됐다. 왜일까?

그 답은 정체성에서 찾아야 한다.

정체성은 행적으로부터 나온다.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하다.

이미지가 정수기를 거쳐 나온 물이라면,

정체성은 있는 그대로의 물이다.

그 사람 자체다.

두 대통령의 살아온 역정이 좋은 연설을 만드는 힘이었던 것이다.(230)

 

곁에서 날마다 글로나마 대통령을 만나면,

그 품성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게다.

 

타고난 품성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눈물은 '악어의 눈물'로 비칠 수 있다.

진짜를 보여줘야 한다.

가짜는 금세 들통나게 되어 있다.

만들어낸 가짜는 반드시 실패한다.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런 점에서 두 대통령은 좋은 진짜를 가졌다.(232)

 

훌륭한 이야기를 읽자니,

왜 그렇게 못난 것들에 대한 기억이 스멀거리며 기어올라와 욕지기가 나게 하는지...

왜 진짜를 진짜로 여길 시간을 느긋하게 가지지 못하고 잃게 되고 말았는지,

왜 한국의 현대사는 이렇게 굴곡과 파행으로 몰려가는 것인지...

 

어떤 책을 읽어도 마음이 아픈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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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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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이명박근혜 정부가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는데,

그 말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그르다.

 

전두환의 집권 시절, 세계경기는 호황이었으나,

5공 말기부터 세계경기가 다운되고, 한국의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 요구에 따라

외세의 정치적 개입보다는 경제적 개입이 강화되는 물결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세계화를 외친 김영삼 정부 이후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책없는 외국자본의 유입은

얼어붙은 발에 오줌누기 식이었고,

그 고통은 이명박근혜 시대의 각종 규제 철폐로 노동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미룰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란 국가의 '사회 구성체'는 이미 '정경유착을 통한 국가 독점 자본'이 판을 휘어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국가 독점 자본은 이제 세계 자본의 하위 블럭으로서 기능하고,

또다시 한국보다 하위 레벨 국가의 상위 구성체로 기능하게 된다.

 

쌍용차의 문제는 단순한 경찰의 폭력(무장경찰의 폭력, 사측이 고용한 용역 깡패의 폭력, 경찰의 최루탄 폭탄 등)이거나

정리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자본이 자본을 낳는 '악마의 연쇄' 속에서

누군가는 회사를 저평가하고, 누군가는 그 회사를 먹고 튀는 일이 벌어지는데,

국가는 그것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사회 안정을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탄압하는데 공권력을 쓰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나 용산 등의 참사의 밑바닥에는 저 추악한 '악마의 금전'이 연쇄적으로 권력과 맞물려 있다.

그저 해고가 되고 복직이 되는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그 근저에 쌓인 '진실'을 밝히는 데서 이 싸움은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세월호와 같다.

용산에서 행한 국가적 폭력에 야당도, 국민도 저항하지 못한 것이 쌍용차를 낳았고, 세월호를 낳았다.

세월호를 잊으면, 더 큰 죽음의 연쇄가 당장 '나'에게 닥칠 것을 직시해야 한다.

 

한 기업에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갔는데

이 땅에 살면서 방치되는 것이 맞느냐?(241)

 

스물네명의 쌍차 관련자들이 병들어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랬다.

 

아직까지 비정규직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려 하는 걸 본 적이 없을 뿐.

본 적이 없어 헛짓이라 하는 것.

저는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불러요.(233)

 

힘들 때일수록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계 부품처럼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일은 지난하다.

그 투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현실은 팍팍하다.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칼날을 내민다.

다만 약자들에게는 희망이라는 상상력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딱 떳을 때,

그럴 때 만나는 일상에 행복해하는 사람들.

일상을 잃어본 이들이 이야기가 이 책에 그득하다.

 

모든 변호사들이 그랬어요.

법대로 하면 복귀된다고.

회사가 잘못한 게 밝혀지고 있는데 잘못한 놈이 해고시켜 놓고,

그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하면 뭘 할 수 있겠어요.(210)

 

법은 10,000인 앞에 평등하댔다.

나머지 49,990,000인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상상력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버텨야 한다.

이런 책을 읽고, 후원금을 보내면서 버텨야 한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신경림, 파장)

 

못난 놈들끼리 연대해야 한다.

정몽준 아들이 말한대로 '미개'하고 '미천'한 존재들이 손을 잡아야 한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꿈을 접을 수 없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은 가족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183)

 

그들만 공장으로 돌아간다고 하나도 나아질 것은 없다.

반올림이 죽음들이 진실을 밝혀야 하고,

무노조 신화 삼성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시신 탈취로 신속함을 보여준 폭력경찰에게 잘못을 되돌려줘야 하고,

세상은 돈 많은 권력자들 중심으로 돌아가지만은 않는 것임을,

이건희에게나 골든타임이 적용되는 나라가 나라라고 여겨져서는 안되는 것임을,

뼈저리게 얻어맞으면서, 쫓겨나면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진짜 애도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변화의 물결이 생기는 것이지 않겠어요?(171)

 

대한문 앞에서, 평택에서 억압받던 노동자들이,

사실 얼마나 일을 신이 나서 했던 사람들이고,

일 잘 한다고 인정받던 사람들이고,

자동차 조립하는 기름밥을 자랑삼아 먹던 사람들인지를, 그 자부심을 읽어야 한다.

 

거짓으로 일관하는 언론은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용역들은 '일터를 지켜낼 수 없다'며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고 공장을 떠났습니다.

저들이 떠난 공장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습니다.

저들은 공장을 다시 가동하기 위해 파업노동자들이 보호하고 있던 부품과 생산시설까지

부수고 나갔습니다.

부서진 부품과 기계들을 보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78)

 

용산에서 쓴 컨테이너, 그걸 가지고 와서 최루가스를 부어버렸어.

도장반도 불내고 현장에 기름 뿌리고 완전 아수라장이었어.(40)

 

용산에서도 보았듯,

폭력 경찰들은 '용역'이란 이름의 깡패집단과 한 패가 되어 노동자를 짓밟는다.

공권력의 민영화라고나 할까. 참 치사하지만 더럽게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단번에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혁명을 일으켜 지금의 권력자들을 쓸어낸다고 세상이 청소되지는 않는다.

먹물에 맑은 물을 계속 들이 붓노라면, 차츰차츰 물이 맑아지리라는 상상력을 놓지 말아야 한다.

먹물을 부으려는 자들과 계속 싸우면서,

맑은 물을 붓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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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사회를 넘어서 - 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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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의 배터리 수명을 의도적으로 18개월에 맞추어 생산한 애플사를 상대로 한 고소...

재판이 아니라 한발 물러선 합의로 결론.<영화, 전구 음모 이론>(93)

 

이 책을 읽노라니,

휴대폰은 산지 1년이 넘으면 배터리가 심각하게 급격히 기능이 저하됨을 실감한다.

약정기간 2년이 문제가 아니라, 2년이 되면 충전하기 짜증나서 새로 장만하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평생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는 질문에

소비자 단체에서 활동하는 브래디 부인은 '단 하나뿐, 피아노!'라고 대답(93)

 

난 지금 타는 차를 13년째 잘 몰고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멀쩡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2~3년만 되면 디자인이 구리다면서 차를 바꾼다.

세상에~ 하긴, 요즘 자동차는 기계가 아니다. 전자제품이나 마찬가지.

나사나 부품 하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조금 고장나면 키트를 몇 만원 주고 바꿔야 하는 판국이다.

 

요즘 '엄마의 밥상'이란 프로그램은 아내가 잘 찾아 본다.

곁눈질로 보노라니, 시골의 투박한 할머니 밥상을 그야말로 가감없이 보여준다.

시골 할머니들은 언제부터 써왔는지도 모르는 돌확에 콩 같은 것을 갈고,

절구나 시루를 자리잡게 하도록 브이자 형 나무받침대를 받치는데,

손때묻은 그 도구들은 백 년도 넘게 이어져오는 물건들이다.

누가 만들어 파는 것도 아니고, 그저 대물림되어 오는 그런 것들.

 

'계획적 진부화'라는 무서운 말은 얼마나 참담한지...

계획적 진부화 - 인위적으로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34)

 

인간은 '욕구'를 충족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다.

갈수록 '욕망'을 부추기는 상업 광고는 잔인하게 인간의 심리를 파고 든다.

욕구는 제한이 있지만, 갈수록 커지는 욕망과의 갭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요구'라고 하는데 요구심이 커질수록 삶은 불만으로 가득차게 된다.

 

광고는 '고의적 기술적 결함을 삽입'하기 전과 똑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홍보를 한다.

 

이런 식으로 일회용품의 영역이 무한정 확대되다 보면

머지않아 결혼, 시민권, 그밖의 개인적, 사회적 관계들도 일회용으로 간주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심지어 국가간 관계조차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이미 아시아 대륙 전체가 티슈 한 장 처럼 쓰고 버리는 존재로 취급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인간이 진부화 되는 일만 남은 셈인가.(74)

 

낭비 사회.

낭비를 조장하는 사회.

아니, 낭비라는 부조리를 계획적으로 조장하는 자본의 사회.

 

결국, 마르크스가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자본에 의한 인간의 소외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해야 하는데...

선진국에 의한 후진국의 착취는... 세계화란 이름 하에

글로벌 차원의 '갑'을 만들어버리고...

만국의 노동자는, 자국의 자본가라는 '갑'을 뛰어넘어

세계의 자본이라는 '슈퍼 갑'을 만나게 되니... 갈수록 글로벌 지구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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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겠다” - 고병권이 만난 삶, 사건, 사람
고병권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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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약하지 않다는 것,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258)

 

성매매 여성들에게 쉼터를 만들어주던 활동가가 한 이야기다.

인문학은,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학 내의 학문으로서만 자리잡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고병권이 각종 운동의 현장에서 이야기하고 생각했던 것을 잘 풀어쓴 책이다.

난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 해도 이런저런 잡지에서 끌어온 칼럼집 같은 책을 아주 싫어하는 편인데,

그래서 이 책을 보고도 그럴까 우려했는데,

전혀 아니다.

이 책은 무척 좋다.

 

인문학자가 데면데면하게 서야 하는 자리.

장애인들 앞에 서서 인문학을 강의해야 하는 자리.

스물 두 명이나 죽어나간 동료들의 영정을 앗기고 불태운 국가 권력에 울고 있는 노동자들 앞에서 강의하는 자리.

그런 참으로 힘든 자리에서 생각한 것들, 이야기한 것들에 대한 그의 감동이 이 책에선 오롯이 묻어난다.

 

시설에서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들,

삶의 터전을 국가의 전력 수급 계획과 한전의 등쌀에 빼앗긴 노인들,

그들 앞에서 그는 끝없이 좌절하고 또 배운다.

 

우리가 역사 앞에서 참 빨리 절망하는구나.

희망도 그렇고,

바로 뒤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모든 게 끝난 듯 절망하거나, 또 헛된 희망을 품는구나.

희망도, 절망도 필요 이상으로 크고 깊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얼마나 소중한지...

아마 그런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 중 하나가 이계삼 선생...(232)

 

세상은 반성하지 않고, 나아가기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후쿠시마의 원전이 녹아내리며 그 무섭고도 아픈 진실을 전할 때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원전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가 왔다고 말하는 사람.

하이데거가 <전진하는 무사유의 발걸음>이라고 부른...

성찰없이 계산기만 두드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172)

 

나 또한 성찰없이 전진하는 무사유의 발걸음으로 오늘 하루 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돌아본다.

 

점거란 대안 없음에서 시작되는 운동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대안 없음에서 어떤 대안이 고개를 내민다.(132)

 

월 스트리트의 점거에 대하여 그는 여러 차례 글을 쓴다.

2008년의 촛불 역시 하나의 점거였다.

그 점거를 박살낸 정부는 파죽지세로 광장을 죽여버렸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점거와 철거의 사이에서 좌표가 움직인다.

 

전향력이라는 힘이 있다고 한다.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 자전하는데,

적도 부근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돌지만,

극지방에 가까워질수록 그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그래서 적도 부근에서 극지방으로 향하는 물체는 그 속도의 차이때문에 전향력을 얻게 된다.

그 방향은 지구가 자전하는 동쪽 방향이고 힘은 극지방으로 갈수록 커진다고 한다.

 

삶의 진자 역시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때는 하루하루가 역동적인 속도의 변동을 느낄 수 있지만,

어떤 때는 그날이 그날인 듯, 힘의 변화를 느끼기 함들다.

그럴 때 '안정과 나태'가 스물스물 몸을 잠식한다.

 

고병권의 인문학은 전향력이 큰 사고방식이다.

위도가 낮은 곳에서 위도가 높은 곳으로 발사한 물체처럼,

그 자전 속도의 차이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를 겪게 되는 현상처럼 말이다.


삶을 살아도 각자의 삶의 속도는 다르다.

그때 속도가 빠른 지점에서 날아온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우리가 바보가 되는 것은 지능이 모자랄 때가 아니고,

의지가 꺾일 때이다.(랑시에르, '무지한 스승'에서, 96)

 

결국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의지를 꺾으려는 '동풍'에 나부끼는 '풀'이라도,

다시 일어나야 하고, 끝내 웃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김수영이 '다시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고 쓴 모양이다.

풀뿌리는 누워도 꺾이진 않으니까.

신경림은 말했다.

산다는 일은... '갈대' 처럼...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고...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인간은 '의식화' 되어야 한다.

 

의식화된 사람은 박식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지식과 정보에 대해 달리 보고 달리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생각에 쉽게 동조하기보다는 오히려 '감히 비판하고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92)

 

의식화된 인간 만들기... 그런 것이 인문학의 좌표다.

 

한국은 '도가니'의 세상이다.

온갖 영토에 철조망의 시설을 만들어 두고,

그 안에서는 인권이 실종된다.

장애인, 각종 복지 시설, 감옥, 불법체류자 등에게 둘러쳐진 철조망의 안과 밖은 법의 중력장이 전혀 다르다.

 

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 슬픈 건 내가 짐승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71)

 

장애인들,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니체를 격렬하게 몸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부르르 떨렸다.

젠체하고 읽고 쓰기를 즐기는 나같은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정서...

짐승이 되어가는 기분... 같은 말을 책에서 보고 인문학의 힘을 실감한다.

 

인문학은 머리로 이해되는 공부가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에 대한 '글과 말'에 대한 '성찰'이 인문학이어야 하는 게다.

 

취업시켜주지 않는 취업기관으로 전락한 대학을 논하면서,

견유주의와 냉소주의의 어원이 같음을 이야기한다.

개처럼 짖는 학자, 곧 발언하는 파수꾼으로써의 견유주의자와는 정반대 편에

냉소주의 대학이 자리잡은 현실...

현실을 바로보는 일은 마음 편하지 않다.

 

견유주의자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정체를 빨리 알아채고,

그것을 인류라는 본대에 알리는 자.

아무런 보호도 없이 인류에 앞서 냄새맡고, 용기를 내서 진실을 알리는 자.(32)

 

인문학도는 이런 위치를 견지해야 한다.

우리가 의식화의 스승 내지 수괴로 리영희 선생을 꼽는 것도 그가 철저한 견유주의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의 지혜란 홀로 득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마찰의 불꽃이 영혼의 램프에 옮겨 타는 것, 그것이 철학의 지혜가 아닌가.

우리는 위대한 누군가로부터 그 불을 나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몸에서 계속 기름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불은 금세 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을 쉼없이 가꾸어 감으로써만 우리 영혼의 램프를 밝힐 수 있다.

그것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참 멋진 학문이 아닌다.(29)

 

노년의 플라톤을 인용한 그의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의붓자식을 독살하려한 모친의 죄를 대속하려 '등신불'이 된 만적의 이야기(김동리, 등신불)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횃불을 든 전태일이 떠오른다.

전태일의 유서를 만나는 일은... 혁명이고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이어받은 경험이었다.

 

이 책을 많이 나눠읽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 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잊지 말아 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 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이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 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돈의 힘)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이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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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1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윽 어제 주문한 책 한 상자가 오늘 오는데..
이 책은 아직 보관함에 있는데...

리뷰만 보고도 왠지 울컥합니다.

글샘 2014-04-10 16:39   좋아요 0 | URL
괜찮은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악마의 덧셈 - 1942년으로 떠난 시간 여행 카르페디엠 33
제인 욜런 지음, 구자언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인류 역사상 홀로코스트가 가장 끔찍한 체험이었다는 데 이견을 보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는 지나치게 강조되어 상업화 되었다.

 

이 책 역시 그러하다.

왜 유태인의 고통만 강조되어 반복 확대 재생산되는가?

이스라엘의 존재에 대한 강한 증명 의지일까?

 

한국인에게 전쟁 포로 수용소의 악몽, 광주의 악몽을 체험관으로 꾸민다면 어떨까?

왜 포로수용소는 만들어 두고, 광주 체험관은 없는가?

광주의 희생을 '민주화'라고 이름붙여 덮어버린다고 그만인가?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광주'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해서 이득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권력자들은 그걸로 얻을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홍어 어쩌고 해도 가만 두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계적 전쟁 국가다.

(일부 종북 좌빨들은 천안함을 폭침이라는 국가의 말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잠수함이 갈라지게 한 원인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인터넷에 이스라엘, 천안함을 검색하면 종북 좌빨들의 주장이 가득하다. ㅋ~)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한 정당성을 재생산하기에 홀로코스트만한 배경은 없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사실들 - 악몽같은 수용소와 가스실-은 모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사실들을 모두 역사에 기록하지는 않는다.

 

진실은... 돈이 되는 사실들을 반복 확대하고,

돈을 들게 하는 사실들(예를 들면 광주, 제주 4.3, 천안함 등)엔 애써 외면하는 것이 <역사>다.

그래서 나쁜 넘들은 '역사책'을 지들맘대로 주무르려 하고,

문제를 일으킨 주범들이 하는 소리라곤, 이렇게 시끄러우니 아예 <국정>으로 하겠다고 수를 쓴다.

자기들에게 돈되는 사실들만 내세우려는 꼼수가 교과서 파동의 <진실>인 셈이다.

 

마치 다른 한 사람이 처리되면 자신은 처리되지 않는 것.

이것이 악마의 덧셈이자 뺄셈이다.(201)

 

홀로코스트를 되새기는 일이 '인도주의'라면,

베트남에서 학살한 사건,

크메르루주의 학살,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체첸, 티베트의 무장 투쟁도 소중한 '인도주의' 측면에서 그려야 하지 않는가?

 

이런 책 하나 더하는 일 역시,

악마의 덧셈의 일종 같아 오싹하다.

 

140. 베개를 '베게'로 두번이나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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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밤 2014-06-11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어, 종북좌빨 운운하는걸 보니 수준을 알겠다. 어느 사이트 회원인지 짐작도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