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르와 장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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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빠상은 '목걸이'로 유명한 단편 작가이다.

이 소설은 중편 정도에 해당한다.

 

삐에르와 장 형제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문제는

어머니의 문제와

유산의 문제였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동사도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을 형용할 형용사도 하나밖에 없다.

따라서 그것들을 발견할 때까지 그 단어, 그 동사, 그 형용사를 찾아다녀야만 하며,

어려움을 피해가려고 적합하다 할지라도 속임수와 언어의 광대짓에 도움을 받아서는 결코 안된다.

희귀용어 수집가보다는 뛰어난 문장가가 되도록 노력하자.

다양하며, 다른방식으로 구축되고, 교묘하게 끊어지고 소리의 어우러짐과 재치있는 리듬으로 풍성한 문장들은 더 쓰자.(소설, 28)

 

이 소설은 스토리 라인이 단순하고, 등장인물도 간명하다.

그리고 내적 독백보다는 표정, 대화를 통해 묘사하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흡인력 강한 이야기는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좋은 소설은 이런 것이다, 하면서 보여주기라도 하듯,

쓸데없이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최소한의 인물들이 최소한의 갈등으로 부딪치지만

그 파장의 울림은 크고 오래간다.

 

재능은 오랜 인내이다.(26)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봄직한 작가다.

그의 짧은 소설론 역시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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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사
비페이위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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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추나'이다.

'추나' 요법이라 하면 글자의 뜻으로는 '밀고 당긴다'는 의미이고,

동양 의학에서는 척추 관절이나 근육 등의 이상을 바로잡는 활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중국어 사전을 찾으면 '뚜이나'는 '마사지하다, 안마하다'는 의미란다.

 

가장 천한 자본의 나라 한국에서는

마사지... 하면, 퇴폐 업소를 떠올리게 한다.

창녀촌을 불법으로 몰아내면서,

번듯하게 개업한 창녀들의 술집을 번성하게 하는 것은,

마치 농촌을 무너뜨려 아파트 촌을 만드는 것과 같은 수법인데,

이 책의 마사지사는 말 그대로 맹인들의 마사지 공간을 말한다.

 

점자를 위한 워드 입력 봉사를 하는 아이와 면접 준비를 하면서 질문을 던지니,

처음엔 그냥 갔는데, 거기서 맹인이 서비스의 정신과 방식을 설명해주는 것을 직접 보고

봉사 시간 채우는 것보다 그 일이 훨씬 의미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는 답을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한국은 장애인 출현률이 극히 낮은 나라이다.

통계로 보면 선진국의 10%에 비해 한국은 4% 정도에 못 미친다.

펠프스도 한국에 태어났으면 문제아로 낙인이나 찍혔을 거라는 농담도 씁쓸하다.

중국인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한국보다 얼마나 나으랴 마는...

이 소설은 맹인들의 삶에 대하여 따스한 시선으로 기술한다.

어지간한 애정이 없이는 이런 책을 쓰기 어렵다.

 

비페이위의 소설은 여러 편이 번역되었는데 인연이 없다가 이번에 읽었는데, 참 좋다.

 

결혼식은 아주 간단히 치를 계획이었다.

제아무리 예쁘게 꾸며봤자 자신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맹인의 결혼식.(41)

 

맹인으로서 직업을 구하기 쉽지 않고,

그래서 마사지사의 일을 배우게 되지만,

그들의 생활은 단조롭기 쉽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고,

갈등도 겪고 해소해 나가기도 한다.

 

그녀는 말에도 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푸밍의 말은 혈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절로 머릿속이 환해졌다.

자신의 마사지 실력이 좋지 않았던 원인이 마음가짐에 있었음을 이내 깨달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썼고, 너무 조심스러웠고 너무 주저했다.(116)

 

피아니스트 출신 두훙의 이야기다.

 

연인 사이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말투.

말투는 말 속에 숨은 뜻을 보여준다.(127)

 

맹인이 아닌 이들에게 언어의 <분절적 음운 요소> 외에도,

<비분절적 음운>이 의미를 정확하게 해준다.

표정이나 주변 상황이 그런 것이다.

맹인의 경우, 이 상황을 볼 수 없으니, <분절적 음운> 외에 <반언어적 요소>인 <어조, 높낮이, 어투, 고저나 음량> 등이 더 큰 요소일 수 있겠다.

이렇게 이 소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읽게 해준다.

신선하고, 가슴 저릿한 아픔이 있다.

 

내가 분노하는 페이스북의 뉴스는 맹인들에게 접할 수 없는 구역일 것이고,

인터넷 기사 역시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비페이위의 책들이 위화와 비슷한 시기의 중국을 그리고 있다 하니,

모옌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휩쓸리는 인간의 운명을 그리는 작품들일 듯 싶은데,

그이 문체는 따스하다.

소재가 달라지면 신랄하게 변할지 모르지만 그의 <위미>, <청의>, <평원> 등도 찾아보고 싶다.

 

이 세계를 사용할 뿐, 이해할 수는 없었다.(181)

 

붉은 그리움과 푸른 시름,

푸름은 무성해지고 붉음은 시드는 것을...

'아름다움'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만 하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 문제.

 

아, 어쩔 수 없는 이해의 절벽이 장애의 한켠에 놓여있을 수 있겠다.

 

말이라는 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말은 특별한 때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되새겨서는 안 된다.

되새기면 의미가 커진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엄청난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219)

 

사랑에 있어서는 한 마디 말이 불씨가 된다.

분노의 경우에도 그렇다.

불씨는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한 머저리도 있지만,

들불의 불씨는 바람에 요원의 불길이 된다.

 

인류는 시간을 상자 안에 넣어두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그것을 볼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째깍이게 했다.

시간 앞에서는 모두가 맹인이다.

시간의 진실된 모습을 보려면 방법은 하나뿐.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은 그 자신의 눈이 방해물이 되어 영원히 시간과 더불어 한 몸이 될 수 없다.(208)

 

좀 어렵다.

그렇지만, 시계를 쳐다보는 이의 시간과 째깍 소리의 시간은 다를 수 있겠다.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게 하는 사고를 하는 경험을 부여하는 소설.

 

그는 사랑의 뒷면에서 비로소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다.

꼭 점자 같다.

글자의 뒷면이라야 그것을 만질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듯이.

(점자는 점필로 오목새김하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가고,

읽을 때는 뒤집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감, 317)

 

쓰는 것과 읽는 것이 반대쪽이고, 방향도 거꾸로라는 것.

사랑을 이해하는 것과 잃는 것 역시 그렇다는 것.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르고, 잃고 나서야 비로소 눈물흘리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 마지막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회식 도중 쓰러진 사푸밍을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하게 한 동료들 중

맹인이 아닌 가오웨이를 맹인인 줄 착각한 간호사.

 

간호사는 문득 그녀가 자신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상을 바라보는 분명한 시선,

지극히 일반적이고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그런 시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간호사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았다.

무서워서,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485)

 

맹인들로 이루어진 위문단 사이에서 발견한 가오웨이를 보고 질겁을 했다는 것은,

전철 상록수 역 같은 곳에서 동남아 사람들 사이에 자신만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섬찟, 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일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한계.

그러나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한계.

 

마사지사들의 삶을 통하여

사람의 시선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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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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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방법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확신하는 건, 사는 방법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567)

 

이것이 소설의 마무리다.

그리고 작가는 소설은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나뉜다면서,

자기 소설이 전자이기를 소망했다.


송자는 '세원집록'이라는 법의학서를 집필한 사람이라 한다.

스페인의 작가가 쓴 것이라 송나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여느 형사물과 별 차이가 없는 장르물이다.

배경이 송나라라는 것이 좀 특이할 뿐.

그가 잘 아는 시대에 대해 썼다면, 아니면 스페인의 골목골목이 배경이었다면... 이런 상상을 해본다.

 

정말 이상해.

그는 매우 점잖고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가 왜 그토록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네.

그걸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정상적인 이해를 그의 비정상적 행위에 적용하면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비정상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그의 행동이 이해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탐욕에 의한 것이었답니다.

그는 이미 부자였네, 그런데 탐욕때문이라니?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재산을 두터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투자했습니다.

그것의 최종 목적은 살상무기의 비밀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누기와 다름없는 행동이었습니다.(561)

 

이 부분을 읽으면서 청와대의 누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 비아그라를 구입한 사람.

 

아마도 미국의 사드와,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과의 협정 체결이 그의 임기에 부과된 과업이었을 것이다.

그 틀을 짠 것은 사악한 세력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그의 임기 후를 독일, 베트남 같은 곳에서 보낼 수 있도록 신경썼을지도 모른다.

 

이제 정무수석과 법무부장관이 손을 뗐다.

다음 수순은 어찌될지, 장르소설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

 

죽는 방법은 수없이 많고, 그 이유도 끝없이 많다.

그러나 사는 방법은 단 하나.

그것은...

탐진치를 극복하는 길 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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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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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났다.

아이들은 좀더 좋은 대학으로 가려고 안달이다.

현실은,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사회를 망가뜨릴 수도 있음을 강하게 증명한다.

 

인간이 공부를 하는 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인간이 공부를 하는 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예요.

그러니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지요.(14)

 

이런 큰 어른이 이 나라에는 없다.

 

'요즘 아이들은 열정이 없다.' 같은 말을 하지 말고, 열정을 품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이 생기있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줬으면...(15)

 

그렇다.

닭이 '열정이 없다, 헬조선이라니...' 이런 말을 지껄였다.

세상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아이들은 열정을 쏟을 곳이 없어진다.

헬조선을 개조하지 않으면, 다시 닭같은 존재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산업 전사를 만들기 위해,

일부 엘리트를 만들기 위해 학교가 이용당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20)

 

그렇다.

서울대, 의대 많이 보낸다고 자랑질 할 게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보면, 범죄자들이 다 서울대, 의대 출신이다.

양심이 없고, 법에 대한 개념이 없다.

싸워서 처벌해야 한다. 법에 의해서.

 

엘리트 체육이 만든 판이 이번 사기사건의 핵심이다.

엘리트 체육 뒤에는 반드시 비리가 수북하게 쌓인다.

학생의 부모들이 돈을 걷어 뒷감당해야하고,

그걸 유용하는 감독, 코치는 늘 불명예를 안게 되고,

감독들과 심판들을 매수하려 들게 마련이다.

결국 엘리트 체육이 대학 입시까지 엮인 부정은 나라의 수치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박근혜 뿐만 아니라, 이참에 체육계도 크게 대오각성 해야한다.

 

김연아나 박태환을 옹호하고 손연재를 욕할 것이 아니다.

다들 엘리트 스포츠의 수혜자들이고, 또한 피해자들이다.

엘리트 스포츠가 아니라 스포츠 쓰레기를 만드는 시스템이다.

70년대 개발독재 시스템의 그늘이라고 할까...

 

아무튼 세상은 어둡다, 너무 어둡다.

가장 어두운 것이 정치의 세계로,

국정 주도권을 둘러싼 정치가들의 언동은 음란하고 위협적이며 철저하게 어둡다.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도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

일부 젊은이들의 무사태평하고 그저 밝기만 한 경박함에도 화가 치밀지만,

어둠은 그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기에 더 견딜 수가 없다.(69)

 

하니타니 겐지로는 오키나와의 작은 섬에서 살았다.

세상의 험하고 추한 소리를 바람소리가 막아주고 파돗소리가 막아내는 곳에서 살아도,

세상의 추함에 이렇게 치를 떤다.

 

썩은 감자는 옆의 감자도 썩게 만든다.

썩은 피부는 제거하지 않으면 살갗을 온통 썩게 만든다.

이참에 아프더라도 도려내지 못하면, 이 나라의 재건은 요원하다.

 

일본에서 광부로 일했던 한국 목사님에게 일본 여자가

"일본인이 한국 분들에게 범한 잘못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라고 했단다.

그 목사님의 말씀.

"일본인을 위해 기도할 수 없었던 한국 기독교인들의 죄를 용서하십시오."(73)

 

용서를 빌어야 용서할 수 있다.

아직도 전두환은 용서를 빌지 않았고,

닭은 거짓 조문과 개뻥 사과만을 남발했다.

용서를 빌지 않는데도 용서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행위는, 멍청하고 병신같은 짓일 뿐이다.

용서를 빌어야 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

 

하나의 답, 하나의 가치밖에 인정하지 못하는 쪽이 빈곤하다.(114)

 

오로지 돈을 위해 사는 것들.

사립대학을 만들어서 그 이익에 목숨거는 것들.

땅을 여기저기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돈을 버는 것들.

그들이 학교에 요구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답만 가르쳐라.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 가르쳐도 길거리로 나간다.

헌법에 적혀있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3.1운동과 4.19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차벽에 꽃을 붙이고 촛불은 든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책들을 읽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보다 쉬워서 좋다.

참 가벼우면서도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좋은 글은 이래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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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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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이 사고를 일으키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도 피해를 입게 돼.

말하자면 나라 전체가 원전이라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셈.

아무도 탑승권을 산 기억이 없는데,

하지만 사실은 그 비행기를 날지 않도록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럴 의지만 있다면.

그런데 그럴 의지가 보이지 않아.

승객들도 일부 반대파를 제외하곤 말없이 좌석에 앉아 있을 뿐 엉덩이조차 들려고 하지 않아.

그러니 비행기는 계속해서 날 수밖에.

그리고 비행기가 나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비행기가 잘 날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어.(423)

 

이 소설은 1995년 출간된 것으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이 아니라 '핵 발전'이므로 <핵 발전소> 또는 <핵전>으로 부르는 게 옳겠다.

주제가 공익에 관련된 것인 만큼,

소설은 재미없다. ㅠㅜ

 

방사선 장해 전문가인 교수가,

원전 정책이 수많은 작업원들의 희생 위에 이뤄지는 것임을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

미시마는 덧붙이고 싶은 한 마디.

원전과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도

그같은 사실을 인식시켜야 (529)

 

결국 이 소설의 주제는,

누구도 원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1986년 4월 26일 토요일...

그날은 체르노빌 원전의 재앙이 일어난 날이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나트륨 폭발'까지 걱정하며 전문적 지식을 뽐내지만,

좀 의도성이 진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 가독성이 많이 떨어지는 책일 듯.

 

다수의 사람들은 어른이 돼서도 가면을 벗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침묵하는 군중을 형성한다.

미시마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침묵하는 군중의 저 섬뜩한 가면을 향해 돌 하나라도 던질 수 있을까.(633)

 

한국에도 원전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이름도 지역을 감추고 있다.(부산은 '고리', 경주는 '월성', 울진은 '한울', 영광은 '한빛')

수도권에서 집중적으로 사용할 전기를 위해 원전을 가동하고,

세계 수위의 철탑을 흉물스럽게 꽂아대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거기 관심이 없다.

남의 일처럼 여기기 쉽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원전에서 직경 4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지난 번처럼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가장 먼저 건물붕괴보다 원전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여수의 밤바다를 구경하는 관광버스를 타면,

여천 석유화학단지의 야경이 볼만하다.

만약 거기 비행기가 처박히면 불바다가 될 것이므로

인근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한 배려일 것이다.

포항제철 공장같은 시설도 밤에는 화려한 불을 밝힌다. 마찬가지 이유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것이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한국의 원전마피아들은 자기 주머니가 급하다.

이 암흑의 시기에, 최순실이 원전까지 파고들지는 않았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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