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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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울 때 나를 받쳐줄 사람이 필요하다.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를 나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 하지만 그건 모두 자기를 위한 거야.

공리주의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떤 헌신이든 모두 자기 이익을 위한 거야.(1권, 158)

 

히라노게이치로의 '일식'을 좀 읽다가 집어던진 기억이 난다.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은데,

이 소설 역시 집어던지고 싶었으나,

꾸역꾸역 읽었다.

 

일단 '결괴'라는 말 자체가 흔히 쓰는 말이 아니고,

방둑 따위가 결국 터져버리는 일이라 하는데...

소설의 내용과도 그닥 어울리지도 않는다.

다카시의 심리를 읽어 봐도 어떤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터져버리는 것 같지는 않다.

 

형사가 나에게 '정체를 밝혀'라고 소리치더군.

정체라니, 나에게는 다른 얼굴이 너무 많아.

어떤 게 진짜인지 알 수 없어.

그들의 정보는 불공평하고 한정적이야.

심지어 잘못된 것도 있지.

거기서 대충 귀납적 추론을 거쳐 내 정체라는 것을 날조하고,

또다시 대충 연역적 추론을 통해 내가 죽였다고 믿는 거지.(2권, 159)

 

소설의 대사치고는 지나치게 사념덩어리다.

사건의 엽기성을 뛰어넘는 스토리라인보다는

작가의 선과 악에 대한 생각들을 구석구석 밀어 넣는 느낌이랄까.

 

끝내는 법을 잊어버린 듯 지루하게 이어지던 잔서가

마지막까지 버둥거리며 급하게 일단락되자,

명색 정도로 끼어든 가을의 기미가

무르익기도 전 10월말부터 일찌감치 겨울이 밀려들었다.(171)

 

2권이 중반까지 흘러가도록 사건의 흐름은 지지부진하고,

다카시는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가 된다.

도모야의 범죄 행위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인과관계 따위는 없이 엉뚱한 사람을 죽이고 만다.

 

죽이고 싶다는 것과

살아있길 원치 않는다는 것도 달라.(2권, 419)

 

그의 주장에 간혹 공감되는 부분도 많지만,

이렇게 꼭 많은 생각들을 집어넣어 과도한 진지함을 끌어냈어야 하는지...

그의 소설이 선뜻 읽히지 않는 이유들 중 하나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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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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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수천 명의 조선 반도 출신 사람들을 말살...

조선 반도를 무력으로 식민 지배한 것이 당시의 일본인들에게는 켕기는 구석이었던 탓에,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가 오히려 흉폭함으로...(171)

 

대량 학살이라고 하면 보통 '멸절 수용소'로 알려진 나치 수용소를 들먹이기 쉬운데,

이 작가는 조선 반도인들에 대한 관동대지진 직후 학살을 들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자 중 한 명을 한국인으로 상정한 것도 동반자적 입장을 강조하려는 의도인 듯 보였다.

 

문제적 존재가 태어난다.

그 존재를 멸절시키기 위해 미국이라는 나라는 용병을 파견하지만...

문제적 존재들은 미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린다.

 

살육 병기의 개발은

적을 보다 간단하게 대량의 희생자를 내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있고,

미국의 경우

이건 나라의 기간산업 중에 하나가 되었어.

그래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255)

 

작가의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그의 세계관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인간은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천국이 아니라.(377)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살육전을 그리며

작가는 인간이 지옥도를 그린다고 말한다.

 

전 세계에 보급되어 있는 미제 OS에는

미국 첩보기관으로 통하는 '뒷문'이 만들어져 있다.(409)

 

이런 것도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415)

 

원로의 이야기이다.

한국에 THAAD - 종말단계 고고도 미사일을 배치하는 일이 두려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의 인격이 땅바닥이기 때문이다.

 

군산 복합체의 중심에 있다 보면

지배논리란 것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했다.

공포였다.

전쟁으로 돈을 벌고 싶은 정책 결정자는

달느 나라의 위협을 과장하여 국민에게 크게 퍼뜨리기만 하면 됐다.

판단의 근거를 국가 기밀이란 벽으로 감춰버리면

매스컴도 확인 없이 이 위협론에 올라탔다.

그저 그것만으로 막대한 자금이 세금에서 국방예산으로 흘러들어

군수기업 경영자들에게 갈 대가가 순식간에 뛰어올랐다.(462)

 

청와대가 하는 일을 고대로 적고 있다.

 

피난민이 된 현지 여성에게

성적학대를 하기로 악명 높은 평화유지군.(492)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일들이 폭력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 하면 평화를 위한 전쟁이고, 약자들이 하면 폭력집단이 된다는...

 

전지전능한 존재를 꿈꾸며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호모사피엔스에게 널리 보이는 습성.

신은 회개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대학살의 죄악도 사라지게 해 주는 편리한 존재.(506)

 

이 책은 단순히 스릴러물로 읽어도 좋지만,

세계관을 넓히기 위한 책으로도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약 40권의 참고 서적은

이 책이 단순한 장르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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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여행
가쿠다 미츠요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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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 아빠를 만났을 때도 아마 저랬을 거야.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 유독 반짝거렸겠지.

그 자리에 서서 언제까지고 바보처럼 손을 흔드는 그 남자가 나는 정말 좋았다.(164)

 

아빠도 한때는 그런 존재였음을 깨닫기 위해,

아빠와 딸은 납치여행을 떠난다.

 

그래 네 말대로 아빠는 형편없는 어른이다.

하지만 내가 형편없는 어른이 된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형편없는 인간이 된다면 그건 다 네 책임이고 네 발못이야.

아빠나 엄마 탓이 아니라구.

아빠가 아무리 무책임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도,

네가 형편없는 어른이 되는 건 다른 사람 탓이 아니라구.(160)

 

아빠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대화를 얻게 되었다.

이해는 시간의 골을 타고 흐른다.

 

뎔들 사이에 떠있는 우리는 서로가 만나기 전의,

부모 자식도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닌

그저 뿔뿔이 흩어진 하나의 덩어리로 둥실 떠 있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채로...(134)

 

부모 자식간이라고 특별한 인연은 아니다.

우연히 이 행성에서 엮인 인연.

 

그 중요함의 없어짐에 대한 이야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짧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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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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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무엇보다, 야기미라는 인물, 매력적이다.

무식해서 컴퓨터 용어도 못 알아듣고,

기껏해야 사기나 쳐먹는 인물이지만,

아이들의 오디션 사기를 친 죄책감인지,

골수를 기증하기로 하여 '도너'가 되고, 마침 골수를 기증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온갖 스펙터클 스릴이 시작된다.

 

악당이지만 참 이쁘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뺀들거리는 정치가들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현재 상황과 다르면 모조리 적,

바꿔 말하면 이단."

그 징후는 이미 지금의 사회에서 간파할 수 있다.

국정원이 극우나 극좌 등의 사상단체뿐 아니라 시민 옴부즈맨이나 언론 단체

나아가 교원 조합에까지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사형 폐지, 일장기 반대, 원자력 반대,

무엇이건간에 현실을 바꾸려는 자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그늘에서 꾸물대는 마녀재판의 논리,

현대 사회의 이단 심문 제도.(279)

 

권력의 부패라는 구조에서 비롯된 범죄라는 것도 섬뜩하다.

한국의 '내부자들'과 그 구조는 다르지 않다.

아주 기분나쁘다.

 

현 체제 속에서 권력자의 범죄행위에 가담한 경우,

이를 추궁하는 행위마저 반체제의 딱지가 붙어 조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권력 기구는 비리를 추궁하는 손에서 벗어나

부패의 길을 곧장 달려간다.

구정물을 좋아하는 시궁쥐의 세계가 자연 정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288)

 

인사 청문회마저 무시하는 장관 내정자나 여당의 행패를 보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권력자로 등장하는 어둠의 인물들이

누군가에 의하여 '급성 심부전'으로 제거되는 <구조>는 더 무섭다.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소설.

논스톱 서스펜스란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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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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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이나 김전일은 '私刑'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살인사건의 해결 뒤에 선 범인은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함을 '자력구제'의 형식으로 해결하려던 것.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이 책은 주말에 읽었어야 했는데,

어중간한 시점에 시작해서 밤잠을 설치게 만든 책이다.

그리고, 이 작가의 책을 구해서 읽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이 탓인지, 집중력 탓인지, 세상 탓인지,

추리물이나 읽게 된 것이 몇 년 된다.

 

재판이란 게 다 운에 달렸어요.

피고인이 만나는 변호인, 검찰관, 재판관,

그런 사람들의 편성으로 재판이 좌우되는 거죠.(72)

 

그렇다.

법이란 것을 만든 것도 인간이고,

과정 역시 인간의 두뇌가 벌이는 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사형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피해자의 감정을 유린하는 행위(98)

 

아이들에게 토론 공부를 시킬 때, 반드시 넣는 것이 사형의 존폐에 대한 것인데,

역시 결론이 없어 재미있는 토론이 된다.

사형에 찬성하는 쪽이 반드시 들고나오는 것은 피해자 가족의 감정이다.

 

사람이 사람을 정의라는 이름하에 심판하려 할 때

그 정의에는 보편적인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110)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사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히틀러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그를 사형대에 올렸어야 했고,

현대 한국사에서도 반드시 사형에 처했어야 했던 인간들이 여럿 있어서다.

사형은 개인적 범죄보다는 이런 사회적 파국을 야기한 인물들에게 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죄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침투하여 그 토대를 들어내는 것이다.(131)

 

이건 주인공이 피해자를 생각하며 든 것인데,

과연 사건에서 피해자는 온전히 피해자일 뿐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꼬이고 또 꼬인 클라인 씨의 병이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상식적인 판단을 유보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책을 덮으면서,

어떻게든 유리가 힘을 내서 살아주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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