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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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게이고에 필적할만한 작가를 만났다. 그가 게이고처럼 다작이면 좋겠다. 데드맨은 신기하고 놀랍고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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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플라이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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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참 재미있다.

길을 잃는 한 남자의 이야기도 재미있고,

세 소년소녀의 잠자리 이야기, '나는 용 마을 - 히류무라'도 흥미롭다.

기괴한 살인사건도 앞서 일어난 이야기들과 연관성을 지어나가는 일에 재미있는데,

유럽풍으로 환경 문제를 거론한다든지 하는 것에서는 조금 식상한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충분히 멋진 미스터리 작품을 생산할 만한 능력을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인물들의 개성이 조금 더 확연하게 드러났으면 싶기도 하지만,

도쿄도경의 형사들이 그렇게 한가롭게 몰려다녀서야 어디 현실감이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사회 소설의 내용도 담고 있으면서,

잔인한 살인사건의 해결과 그에 얽힌 애잔한 에피소드들도 읽을 만 하다.

 

잠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자연 속의 잠자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녹아 있어,

만화로 만든다면 미야자기 히데오의 극화를 차용한다면 어떨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상상을 하게 해준 글이다.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지,

현실에서는 너무도 빤해 보이는 진실도,

법 앞에서는 거짓이 난무하는 현실을 목도하는 나날 속에서,

진실을 밝히는 일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

 

가와이 간지의 '카와이~(귀엽다)'하고 '간지'나는 작품을 더 기다리게 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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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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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음악은 '토카타와 푸가 D단조'와 '샤콘느'다.

페터 회의 <스밀라~>를 조금 읽다가 반납해버린 일이 있었는데,

언제 호흡이 좀 골라지면 다시 빌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유럽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미국 헐리우드 풍의 기승전결이 없는 것도 있고,

예술적 감각의 지나친 자랑질이 도배가 되는데,

스토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런저런 사념들이 '푸가'가 되어 반복된다.

 

굉장한 청각적 감각을 가진(소머즈가 그 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좀 다른) 주인공 카스퍼.

능력과 달리 도박빚과 탈세로 알쏭달쏭 수녀들과 한 배를 타게 된다.

스토리는 이 소설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같다.

 

삶은 뭐, 기승전결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도가 담긴 듯도 싶다.

삶은 희극적이고 즉흥적인 코미디같은 면도 있지만,

당연히 삶은 슬픈 비극의 그림자도 드리운다.

그리고 그 일들은 반복 또 반복된다.

그런 것들을 음악의 형식을 빌려와서 화려하게 펼치고 있다.

 

샤콘느의 테마는 죽음이에요.

운명의 불가피함, 불변성을 들어보세요.

우리는 모두 죽어요.

여기 1학장에서 여러 대의 바이올린이 서로 대화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바흐가 음역을 바꾸면서

네 개의 현을 동시에 긁어 소리를 낸 주법을 들어 보세요.

이 소리들은 우리 각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목소리예요.(540)

 

이런 음악적인 설명을 듣다 보면, 유튜브의 '샤콘느'와 '푸가'를 찾아 들을 수밖에 없다.

 

카스퍼가 들은 것은 피로였다.

일시적인 피로가 아니라 2,30년쯤 된 피로

카스퍼는 돈을 버는 것보다 뭔가 다른 것, 뭔가 더 많은 것을 원했던 위대한 서커스 감독들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명을 지닌 사람,

그리고 그 사명이 자신을 완전히 삼켜버리도록 방치한 사람의 피로였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그 안에서 소진되고 있다.(356)

 

<스밀라~>에서는 눈에 대한 감각이 펼쳐지려나... 기대가 될 만큼 청각에 몰두한 정열이 두드러진다.

음악의 형식에 대입시켜 인생을 풀어내는 작가라니,

읽기 쉽지는 않은 소설이지만, 그리고 뒷부분으로 가면서 긴장감은 많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나름 멋진 시도가 아닌가 싶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을 따라하는 것은 좀 시시하다.

<나는 가수다>가 유행한 뒤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 가왕>, <히든 싱어>, <판타스틱 듀오>, <슈스케> 등의 가요 프로그램이 변주되는 것은 그저 그랬지만,

<팬텀 싱어>처럼 장르를 획기적으로 바꾼 프로그램은 신선해 보이는 것처럼

이 소설만의, 작가만의 영역이 확보되는 느낌이 든다.

 

도시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삶과 행복한 시절.

그 이면은요?

고뇌. 모든 인간이 품고 있는 것과 같은 고뇌.(126)

 

이런 것을 음악적으로 풀어낸 것이 '바흐'였고, '토카타'와 '샤콘느'가 아니었나 싶다.

 

침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지.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먼저 고귀한 침묵, 기도 이면에 들리는 침묵이 있어.

사람이 하느님 가까이 있을 때 나오는 침묵, 그 침묵은 짙어, 모든소리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와 같아.

그리고 또 하나의 침묵은 신에게서, 그리고 타인에게서 멀리 떨어진 절망과 부재의 침묵, 고독의 침묵이지.(289)

 

사뭇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대화들 속에서 주인공은 짓궂기도 하고 방정맞기도 하다.

소양인 같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화려한 건반악기의 토카타를 위한 인물로는 소양인이 제격이다.

소음인이라면 샤콘느의 늪에서 허우적대기만 할 뿐, 푸가의 화성을 울리기는 힘들 수도 있을 터이니...

 

술은 바이올린과 같다.

도대체 그냥 놔두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책을 들고 잔을 비웠다.(80)

 

그래서 그가 울리는 바이올린은 샤콘느다.

 

"난 당신보다 가진 게 많아.

아이들도 있고, 가정도 있어. 사랑하는 사람도...

일상생활에서 만족을 느끼는 재주로 보면 당신은 빵점이야.

하지만, 당신의 갈망은, 가끔 난 당신의 갈망이 부러워."

만진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우린 결코 서로에게 닿을 수 없다. 그래도...(160)

 

소양인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것이다. 갈망으로 방방뛸 수 있는 사람.

서로에게 닿을 수 없어도, 샤콘느의 절망의 늪에서만 허우적대지는 않을 사람이...

 

"지금 옆에 누구 있어? 당신은 혼자 있으면 안 돼."

"친구가 있어. 하느님의 조율사. 나의 반음을 낮춰줄 사람."(344)

 

소양이라서, 옆에는 조금 진정시킬 수호천사가 필요하다.

수호천사는 소양인의 음조를 반음 낮춰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느낌, 좋다.

 

여성스러움에는 어떤 특정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한 음조가 있거나 특별한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스러움은 하나의 과정이다.

주도적인 일곱 번째 화음이

주도적이지 않은 장조에 울려 퍼지면 여성스러운 소리가 난다.

그때까지 그는 불협화음 속에서 살았다.(346)

 

같은 표현도 참 예쁘게 한다. 그러니 그는 천상 소양인이다.

 

차에서 나는 소음은 기이하다.

음속 장벽에도 걸리지 않고

그냥 하늘로 올라갔다가 어딘가에 내려 앉는다.

마치 화학물질 누출사고에서 나온 낙진처럼.(349)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에 빗대는 공감각적 표현.

하긴, 모든 것을 청각에 몰두시키려니 나올 수밖에 없는 표현이지만,

이 사람의 두뇌 회로는 어떻게 흐르는 것일지, 몹시 궁금해진다.

 

난 예술가요, 내 신경이 움직이는 걸 느끼고 싶소.(411)

 

피를 흘리면서도 마취를 통해 감각이 둔해지는 것을 거부하고 싶을 정도로 신경이 움직이는 걸 느끼고 싶은 사람.

예술의 피가 맥동하는 심사를 글로 읽는 일도 재미있다.

 

뭔가를 원하는 기도는 할 수 없어.

적어도 다른 음표를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어.

다만 자신이 타고난 음표를 최대한 잘 연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지.(152)

 

기도에 대한 생각도 그럴싸하다.

인간이 타고난 음표가 있다면, 그 음표의 선율을 최대한 잘 연주하는 것이지,

음표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는 일은 과욕이란 말일지...

 

그 비밀은 G 단조의 비극이었다.

아이와 관계있는 비극. 그녀는 자식이 없다.

A 장조의 완벽주의가 누그러지지 않는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제5도에서 한 단계 높은 음조를 받아들이는데,

이것은 음향학적인 성숙과 같다.(158)

 

인생의 성숙을 음향과 빗대놓으니, 뭔가 있어 보인다.

음향학적인 성숙이라...

 

뭔가 그런 것들을 풀어 놓기 위해서 장치를 만들었는데,

풍성한 부페음식을 앞에 두고 부른 배를 두드리듯,

소설이 쉽지는 않지만 조목조목 멋진 표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책.

 

 

 

356. 횡경막...은 '횡격막'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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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7-02-0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글샘님은 월간 샘터와 상관 있으신가요? 그냥궁금해서요.

글샘 2017-02-07 00:55   좋아요 0 | URL
낭만인생님은 김사부와 뭔 상관이 있으시남요? ㅎㅎ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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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소설을 들고 읽기시작해서 오 분도 되지 않아 당황감을 느꼈다.

두세 페이지 넘기고 만난 '그레이스 씨네 가족'은,

십년 쯤 전에 이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휘리릭 떠오르게 했고,

다시 표지에서 정영목이라는 이름을 만났을 때에야,

십년 전에 '위즈덤하우스' 서평단을 할 때 읽었던 책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검색해보니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는 제목으로 된 책이었다는 기억을 만났다.

 

당시에 책을 읽은 기억은 나지만, 리뷰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열심히 읽지 않았거나,

아마도 당시 내가 젊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십년을 늙었다기보다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일이 있어야 이 책을 깊이 읽을 수 있겠다 싶다.

 

아내가 병들고, 죽는 이야기이다.

 

나는 몸이 잠시 들려 해변쪽으로 약간 밀려갔지만,

다시 전처럼 두 발로 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실제로 아무런 일도 없었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저 큰 세상이 또 한번 무관심하게 어깨를 으쓱한 것일 뿐이었다.(245)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는 부분이다.

쇼크일 것 같은 아내의 죽음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게 된다.

화자 역시 죽어갈 것이지만, 뭐 세상은 무관심하게 어깨를 으쓱~ 하겠지.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 조수가 이상한 날이었다.

나는 수영을 하지 않으려 했다. 안해. 두 번 다시는.

누군가 막 내 무덤 위를 걸어갔다. 누군가가.(12)

 

이건 소설의 맨 첫부분이다.

신들이 떠나갔다는 말은, 화자가 죽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시간은 지나가고 바다는 그대로 남는다.

바다는 그대로인 것 같이 보여도, 그 속의 조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철썩거려 시퍼런 멍을 들인다.

 

마치 어떤 비밀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 같았다.

그 비밀은 아주 지저분해서 함께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서로 상대가 아는 지저분한 것을 알고 있었으며,

바로 그렇게 아는 것으로 둘은 함께 묶여 있었다.

이날부터 앞으로는 모두 속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죽음과 더불어 살아갈 방법이 없을 테니까.(28)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잘 그리고 있다.

서로 알고 있어 말을 꺼내기 힘들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태.

심각한 질병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부부 사이의 곤란한 심경을 그리는 일은 어려울 터인데...

 

내가 어떤 괴로움을 겪든,

머리카락과 손톱이 집요하게 자라는 것.

이미 죽은 물질의 이런 무자비한 발생은 너무 배려가 없고, 상황에 무심한 것 같다.

위층의 차가운 침대에 입을 벌리고 눈이 흐려진 채 널브러진 주인이 다시는 거칠게 빻은 먹이를 접시에 쏟아줄 수도

마지막 정어리 통조림을 가져오려고 열쇠를 집어들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또는 그런 사실에 개의치 않고 동물이 계속 동물로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71)

 

지금도 대학병원의 어느 사무실에선가는, 죽음을 앞둔 가족이 의사에게서 최종 선고를 듣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금세 캄캄하게 닫힐 듯이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사실 세상은 무자비할 정도로 집요하게 그대로 돌아간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리면서 '그레이스 부인'에 대한 회상으로 가득하다.

젊은 시절의 파충류같이 본능적이던 그를 그리기도 한다.

아마도 죽음 앞에서 젊은 시절은 참 덧없이 보여서 거기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악마 연인인 동시에 그녀의 아이였다.(87)

 

이것이 내가 어른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던 것이다.

늦가을에 맞이한 기나긴 화창한 날씨같은 것.

고요의 상태, 호기심이 사라진 차분한 상태, 견디기 힘들었던 유년의 날것 그대로의 직접성은 다 사라지고,

어렸을 때 곤혹스러워하던 것은 다 풀리고,

모든 수수께끼가 해결되고,

모든 질문에 답이 나오고

순간순간이 물이 똑똑 듣듯이 거의 알아챌 수도 없이,

황금 방울처럼 똑똑, 마지막, 거의 알아챌 수도 없는 해방을 향해 흘러가는 상태.(92)

 

박범신이 '은교'에서 노인의 성적 욕구에 대해 간절하게 그리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더 나이들었을 때의 삶이 드러나 있다.

호기심과 날것으로서의 유년시절의 거칠었던 상상들은 이제 스르르 풀어져 버린 나이.

잿빛으로 심심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해방'을 향한 흐름이라도 읽는 것도 재미있겠다.

 

그녀(아내 애나)는 칼처럼 내게 박혀 있는데도 나는 그녀를 잊기 시작한다.

내 머릿속에 담긴 그녀의 영상은 이미 가장자리가 닳고,

염료조각, 금박조각이 떨어져나가고 있다.

언젠가는 캔버스 전체가 텅 빌까?

내가 그녀를 얼마나 모르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주 천박하게, 아주 서툴게 알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탓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게을렀던가?

너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가?

너무 나 자신에게만 열중했던가?

그래. 다 맞다.

하지만, 그것을, 이런 잊음을, 이런 몰랐음을 꼭 탓할 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안다는 면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자신도 요것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아가서, 우리가 바랐던 것은 바로 그것,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200)

 

결혼하여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남자는,

아내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참 적은 것임을, 알수 없는 것임을 생각한다.

이 책의 잔잔한 무게는 그런 것에 있다.

 

아내가 수술을 받고 병원에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 소설과 같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질병의 진행이 걱정도 되고, 아픈 사람에 대한 안쓰런 맘도 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덧없다는 상념들이 하나로 엉켜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그것들이 정연하게 적혀있다는 것에 놀라운 생각이 든다.

 

207쪽.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하녀'와 똑같은 자세... (Johannes Vermeer, 1632~1675)를 베르메르라고 알고 있었는데, 네덜란드 쪽의 발음으로는 페르메이르가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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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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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의 일인자(3권)

2. 풀잎관(3권)

3. 포르투나의 선택(3권)

4. 카이사르의 여자들(3권)

아직 5,6,7부가 번역되지 않았다.

 

몇 번 시작해볼까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손에 잡기 어려운 책이었는데,

방학을 기회로삼아 시작해 본다.

 

소설가 콜린 매컬로의 작품으로 굉장한 소설인데,

역시 역사가의 일과 소설가의 일은 이렇게 같으면서 다르다.

신문 기사로 읽는 최순실보다 소설로 읽는 <여인 천하>는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지...

 

낡은 체제의 끝이라는 로마의 후기,

욕망으로 가득한 정치가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숨쉬는 듯 달려든다.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것이 어언 20년이 다 되어 가니,

로마의 공화정 말기가 어디쯤인지 가물가물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인물이 살아 있으니, 마리우스와 술라의 모습과 언행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시작이 힘들지, 발동이 걸리면 중독성이 있을듯하다.

 

1부의 한 권만 읽었을 뿐인데,

2부의 <풀잎관>이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는지, 기대가 크다.

 

아, 배울 것은,

술라가 배워야 하지만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은 얼마나 많은가.

술라는 때때로 충분히 배울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마리우스가 자신의 상관이라는 행운을 떠올리면 이내 마음이 놓였다.

마리우스는 아무리 바빠도 술라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무지를 이유로 술라를 하찮게 보는 법도 없었다.(459)

 

여럿의 행운이 등장한다. 3부의 <포르투나>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정치가들의 이야기인 만큼, 정치판에서 행운과 부조리가 동의어로 쓰이는 상황이 끄덕여지기도 하고,

혐오감에 욕지기도 치민다.

술라같은 열등감에 뻗친 자들의 말로는 결국 김기춘이나 우병우 같은 공포정치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문제는 마리우스, 내가 자네한테 느끼는 호감을 술라에게선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네.

그에게는 내 신경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어.

그런데 그게 정확히 뭔지 도무지 모르겠네.

누군가를 판단할 때는 언제나 공정하고 편견이 없어야 하는데 말이네.(441)

 

술라의 행적을 우리는 알고 있으나, 카이사르와 마리우스는 정확히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직관적으로 그의 비열함이 감지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간파해 보여주는 것이 소설의 힘이다.

 

로마인들은 태양과 바람, 비와 같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든 것을 모래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422)

 

로마에 비해 약소국인 누미디아인들의 이야기.

약소국 사람들에게 태양과 바람, 비는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것이 역사던가.

이 소설의 장점이라면, 로마의 시각이 아닌 바깥의 눈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은 모래들 역시 한 호흡 로마와 함께 하며 살았으니 말이다.

 

법이란 사람을 획일적으로 찍어누르는 거대하고 육중한 석판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획일적이지 않으니까요.

법은 사람을 덮어주며 각 개인의 독특한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드러운 담요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 로마 시민은 바깥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특히 우리의 법과 법정은 그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261)

 

드루수스의 연설이다.

로마법이 가지는 힘이 느껴진다.

이 시대에 금이가는 시기를 읽자니 가슴이 애린다.

 

짧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또 한 경계가 만들어지는 시기를 살고 있다.

해방 이후 대 혼란기를 거쳐 <친미 이승만 독재기>의 암흑을 살아내었고,

4.19의 혼란기를 거쳐 <박정희 독재>의 시기를 견디었으며,

광주의 함성과 서울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 노태우 군부 독재>의 엄혹한 시기를 살아남았다.

합당으로 권력을 잡았으나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는 금세 지나고,

다시 <이명박근혜>의 자본 독식의 세상을 보고 있다.

이 나라의 운명은 <포르투나>의 여신이 윙크를 해줄 것인지, 아니면 다시 <반기문-뉴라이트>의 친일 정권의 치하에서 굴욕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인지, 한겨울을 보내는 시기를 살면서,

제발 법이 법같이 서기를,

민주주의는 박근혜나 이재용 앞에도 같이 서기를,

공화국의 이념에 좇아 좀 더 희망이 남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읽는 의미를 찾아 본다.

 

알라딘의 '책 소개'가 아주 간명하고 훌륭하다.


권력의 공백기에 펼쳐진 인간의 욕망과 암투
이 작품은 권력의 분리와 견제의 원칙 속에서 500년간 지속돼오던 로마 공화정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 오로지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신진 세력 간의 모략과 암투, 욕망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기원전 110년을 첫해로 설정한 이 작품은, 전통적 귀족 출신이지만 돈이 있어야 후대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카이사르(독재관 카이사르의 조부)가 아직 어린 자신의 첫째 딸을 돈은 많지만 천민 출신으로 권력을 잡기 힘든 나이 많은 마리우스에게 시집보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권력과 재력이라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정략결혼으로 이 두 가문은 혼란스러운 로마 공화정 말기에 명실상부한 최고의 권력가로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귀족 출신이지만 난잡한 생활을 하던 술라도 카이사르 집안과 관계를 맺고 마리우스 아래에서 권력의 중심부로 서서히 진입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카이사르, 마리우스, 술라 그리고 유구르타
이 책은 크게 카이사르, 마리우스, 술라 세 인물과 그 집안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로마의 속국인 누미디아 왕 유구르타, 마리우스의 정적 메텔루스 등 다양한 인물들을 로마의 성장과정과 함께 그리고 있어 흥미롭고 입체적이다. 또한 리더의 오만과 그릇된 판단으로 10만 대군이 게르만족에게 몰살당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처음의 협상부터 전쟁 상황, 처참한 최후, 그리고 시체의 처리문제 등까지 전쟁사, 행정, 권력이동 등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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