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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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희망의 끝. 그 모든 끝. 이 소설집의 말미에 역자 김남주씨는 페루의 외딴 바닷가로 새들이 날아와 죽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한 외로운 사내의 시선을 느끼며, 긴장하며, 아리게 쓰는 글을 읽으면서 통찰을 읽어 낸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안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문학은 '상처를 통해 풍경으로 건너갈 때' 나오는 것일까. 오 헨리 류의 반전과 모파상의 깜짝 놀라게 하는 역전 기법을 쓰고 있는 '벽'과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같은 소설도 재미있었지만, 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시니컬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세상은 그에게 권총 하나만 남기고 떠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기는 비둘기같은 시민으로 몰락한 휴머니스트였지만, 마음 속엔 어떤 열정 같은 것을 갖고 있고,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류트에 대한 동경을 싸구려 선술집 가슴 설렘으로 치부시키고, 어딘가에 가서 죽음을 맞는 갈매기들을 동경한다. 저 먼 해원을 향해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흔드는 심정으로. 그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으면서, 줄곧 유치환의 시 <깃발>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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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의 눈물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작가정신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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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구로야나기 테츠고의 '창가의 토토'를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속편인가 하고 서점에서 펼쳐 보았다가, 서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두 시간을 꼬박 읽었다. 우리가 툭하면 들르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막상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모른다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눈물조차 말라붙은 아이들이 '행복하세요'라며 감동적인 말을 남기기도 했고, 전쟁과 폭력, 쇠붙이에 시들어가는 전 세계의 어린 생명들이 떠올라 가슴 아렸다.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 떠오른 건 왜일까. 동구의 시린 겨울 소련제 총알 수발이 부다페스트 소녀의 두부를 삼십보 상공으로 날렸던 57년 겨울, 김춘수는 7년 전 한국 전쟁의 한강의 모래알을 쥐고 죽어갔던 한강의 소녀를 떠올렸다. 나는 1년 전, 미제의 탱크 캐터필러에 짓눌렸던 조선의 효순이 미선이와 부시 일당의 총칼에 난자당한 이라크의 순박한 아이들의 눈빛이 가슴을 찌르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우린 촛불 하나 켜 놓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지 않은가. 이 세계에는 아직도 수천만의 아이들이 피가 모자라고, 밥이 모자라서 죽어가고 있는데, 우린 먹는 데 너무 지나치게 집착하는 돼지로 변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의 부모님이 변해갔듯이... 개성없는 가오나시들이 되어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반성하게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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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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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정말 좋은 운동이다. 그리고, 가장 쉬운 운동이다. 자기 몸을 ㅅ 자로 움직여 나가는 연속 동작만 반복하면 되니까. 특히 이 작품은 번역이 뛰어난 작품이다. 원래 아름다운 프랑스어로 쓰여진 책이겠지만, 전문가의 솜씨로 번역한 결과가 사랑스런 책이다.
책의 외견과 함께 읽다 보면 정말 사랑스런 길들이 많다. 도시의 골목길, 시골의 진흙탕길, 탄탄대로에서 바닷가 시원한 길. 우리가 걷지 못할 곳은 없고, 우리가 간 곳은 모두 길이 된다. 걷기와 관련된 자료가 뒷부분에 몇 편 있는데 이 부분은 재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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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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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김종길의 '성탄제'에 보면, 위와 같은 싯구가 등장한다. 서른 살은 정말 서러운 나이일까.어찌 보면 어른과 아이의 가름이 서른 무렵인 것 같기도 하고.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삽십 세에는 삼십세가 갖게 되는 좌절과 힘겨움이 당시의 관념들과 얽혀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하기에는 상당히 난해하게 구조화되고 있다.삼십세는 방황하는 심리와, 안정되려는 가족, 가정의 출발과 특히 여성으로서는 구속과 자아 발전 사이의 갈등을 재촉하게 되는 나이인 것이다.그녀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삼십세는 물론 현대 사회의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조건인 듯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삼십대나 그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양희은이 부른 노래 중에 '내 나이 서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날개 달고 날고 싶어...라는 노래가 있다. 마흔이 되어서 바라 본 서른 살은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는 나이지만, 인생을 다 살아버린 나이에서 서른은 서럽기 시작하는 나인지도 모른다.난 서른을 정신없이 아이 돌보며 시작했다.이젠 서른이라기 보다는 마흔에 훌쩍 가까워졌는데도, 아직 난 내가 늙어간다는 걸 모른다.
서른의 열정보다 내가 더 뜨겁다고 착각하고 있는 지금도 내 혈관 속의 붉은 피는 조금씩 식어가는 줄도 모르는 이 철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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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김재혁 옮김 / 자연사랑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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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게보르크 바하만은 우리 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자 소설가인데, 십 몇 년 전에 이문열이란 작가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해서 어떤 시집인지 궁금해서 구입해 읽게 되었다.잉게보르크 바하만이란 여류 작가의 편력을 읽어 보니, 독일에서는 꽤나 아려진 작가인 듯 했다.그러나, 사실 이 시집을 읽으면서는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바하만이 살았던 시대 자체가 세계대전으로 인한 삶과 죽음 사이의 인간 실존의 문제를 중시하던 무게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고민들과는 좀 괴리를 느낄 수 밖에 없엇다.그러나 그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냉정하고, 차가운 현실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2003년 현재도 전쟁이 기류는 차갑게 지구를 둘러싼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 것은 가녀린 희망을 용기를 주려는 외침이 아니었을까.정말 추락하는 것들이 날개가 있을까.그녀 자신이 크게 자신있게 대답하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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