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르메르란 작가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내 무지의 소치만은 아니리라. 이런 작가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후진국 국민을 벗어나는 것 같아 다소간 즐거운 기분이다.

해야 할 일을 산더미같이 쌓아 두고서 책 읽는 스릴은 남다르다. 그럴 때는 보통 책을 빨리 읽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리트와 빨리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트의 하녀로서의 삶은 내 군대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남의 아랫사람이 되어 아는 일이 거의 없는 공간에서 마음 졸이며 사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타인의 삶의 시간들. 그래서 그리트가 맘에 들었고, 그리트 편이 된 것이다.

그림으로 재구해 낸 역사. 픽션. 재미있는 설정이었고, 그림에 대해 화룡점정의 순간이 갖는 법열을 보여주는 읽어주는 그림책이다. 그림 읽어주는 많은 큐레이터들이 있지만, 역시 설명에는 설명문보다 문학적인 손맛이 느껴져야 맛깔스럽다.

난 시를 가르치다가 아이들이 낯설어하면 직접 소설을 쓴다. 콩트라고 해야겠지만... 그 이야기를 읽어주면, 아이들은 간혹 정말인 줄 믿는다. 시의 낯설게 하기가 형상화를 통해 구체성을 띠게 되면 더 잘 보이게 된다고 믿는다.

내가 콩트를 쓰면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아이들 눈에서 읽어내는 재미를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예술이란 상상의 날개를 펴도록 이끌어 주는 메리포핀스가 드나드는 입구와도 같은 거니깐.

왜 터번을 둘렀으며, 입을 살짝 벌렸으며, 반짝이는 귀고리의 윤기가 포인트가 되었는지를 픽션으로 재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술 이해의 방법일 수 있음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코스메틱끄
화장법.

이것이 아멜리 노통의 화두다. 화장을 해 본 여성이라면 알리라. 화장을 하기 전의 자기 모습과 화장한 뒤의 자기 모습이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를... 그래서 화장하고 난 뒤의 자기 행동은 화장하기 전의 자기 행동과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음을... 코스메틱끄는 나를 나 아닌 존재(타자)로 만들어준다는 비밀을 간직한 용어이다. 나는 나인가? 나는 나라고 주장한다면, 화장을 해서는 안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화장을 싫어하는 이유는 '나'라는 여성을 부정하면 페미니즘 자체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화장술은 페미니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내 속에는 내가 아닌 나(非我)가 들어 있다. 노통은 열 두 살 때부터 자라온 창조적 파괴자인 非我를 찾아내서 그릴 뿐이라고 한다. 참으로 솔직하고, 정직할 따름이다. 나도 아무에게도 보인 적 없고, 보일 수 없는 열두 살의 창조적 파괴성을 떠올릴 수 있다. 사춘기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殺意 번득이는 시절이 있었다. 그 非我를 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를 무의식중에 잊고 살다 보니 적이라는 것도 잊고 만 것일까. 노통은 그 오랜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非我를 살려내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이 책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런 메타포를 읽어내지 못했을 뿐이다.(그의 '적'은 프로이트의 'id'의 다른 번역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기의 경험을 '텍스트'로 구성해 냈을 따름이다. 박진감 넘치는 긴박한 대화를 통해서 직조하듯이 자기의 경험을 얽어내는 데 성공했다. 화장한 모습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섬뜩함을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我와 非我의 투쟁'을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은, 모순의 변증법적 통일체로서의 '나'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인생은 생로병사의 과정이라 한다. 태어나고 늙어가며 병들고 죽는 것이 고통이라고 한다. 난 이 말에서 궁금한 게 있었다. 태어나는 게 왜 고통일까... 나이를 들어가며 느끼는 건, 生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란 거다. 산다는 것은 가장 큰 고통이란 말이 아닐까. 그래서 생로병사의 제일 화두가 '生'이 아닐까?

신경림 시인이 발견한 '갈대'의 울음처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읽을 줄 알고, 자가용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대학교육도 받았으므로... 이 메일을 읽기도 했으므로... 무장단체의 협박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므로...

숫자의 힘은 대단하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빨간 벽돌집에 사는 담쟁이 장미가 탐스럽게 핀 가정의 아이보다는 의사집 아들로서 80평 짜리 아파트에 사는 우리 반 1등짜리 친구를 데리고 오는 아들을 뿌듯해 한다.

어른들의 약점인 숫자를 이용해서, 그것도 백분율로 조금 과장된 면도 있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함을 배운다. 내가 살고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관념적으로 헛돌고 있을 때, 내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아직은 늦지 않았음을. 나는 그 비열한 편에 서지 않아야 함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이란 이름은 자주 들어 왔지만, 막상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난 이상하게도 베스트 셀러나 느낌표! 책으로 선정되거나, 서평이 좋은 글들은 잘 읽지 않는 습벽이 있다. 아마도 대학 다니던 시절부터 신문을 맨 첫장부터 읽지 않고 맨 뒷장 맨 아랫단부터 읽던 습관이 이런 행동으로 굳었는지도 모르겠다.

노통이란 특이한 이름 때문에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해 봤더니 앳되어 보이는 소녀 얼굴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서평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작가, 새로운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가 읽지 않는 부류의 작가로 충분히 찍힐만 했다. 젊은 나이에 이름을 얻은 것은 천민 자본주의의 속물 근성이 더께앉은 상혼을 감추기 위한 뉴 페이스일 가능성이 많은 법이니까.

처음으로 읽은 <오후 네 시>는 기대 이상이다. 마치 귀여니의 <그 놈은 멋있었다>를 치기어린 장난으로 여기다가 읽고서는 의외로 놀랐듯이. 우선 그의 글쓰는 방법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에밀과 쥘리에트란 노부부의 평화롭기 그지없는 천상의 세계를 묘사하다가, 점점 그로테스크해 지는 이웃(베르나르댕)의 출현과 오후의 두 시간, 베르나데트 부인의 엽기적 묘사와 식성은 마치 교향곡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조용하게 시작한 전원 교향악으로 시작해서 새소리, 시냇물소리 들려주다가, 마왕의 울림같은 긴박감이 고조되다가, 운명으로 마감하는 듯 한, 감미로우면서도 장엄하고, 때론 이해하기 힘든 것이 음악이자, 소설이자, 인생이 아닐까.

원 제목은 카틸리니의 국가 전복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에서 따온 논박, 야유를 가리키는 'Les Catilinaires'다. 천사와도 같은 소심한 주인공이 상황에 밀려 이웃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엽기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대목은 우리에게 감추어진 무의식들을 의식의 세계로 드러내려는 듯 전율하게 만든다.

그의 글들을 프랑스어로 읽었더라면, 그리고 프랑스 문학에 대한 소양이 깊었더라면 좀더 재미있게 읽었을 수도 있었을 걸... 하는 생각이 아쉬움과 남는다. 다른 작품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가다. 귀여니처럼 늑대의 유혹을 읽고 절필을 당부하지 않게 되길 바라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콘트라베이스라는 관현악단의 작은 역할을 맡은 연주자가 내뱉는 푸념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중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쳤던 현이의 연극, 내가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북치는 역할을 맡았던 영수(? 뭐 그런 흔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피천득의 플루트 연주자가 떠올랐다.

현이의 연극은 작은 역할을 열심히 하는 아이를 보고 대견하게 여기는 엄마의 마음을 썼고, 영수의 기악합주는 '작은 역할도 성실히'의 이면에 담긴, 무조건적인 복종이 담겨 있는 선동과 세뇌의 이야기였고, 플루트 연주자는 콘트라베이스, 바순, 팀파니, 플루트 연주자들처럼 오케스트라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들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또 항상 전체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사는 삶이 가치있다는 생각을 잔잔한 목소리로 전해 준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스켈소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도 둔한 콘트라 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연주자를 부러워한다... 는 피천득의 수필을 읽노라면, 세상을 팍팍하게만 살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고 여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글을 읽고 나면, 그런 여유보다는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가엾은 소시민적 삶이 드러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알-싸-하다.

<향수>에서 인간의 세계와 동떨어진 그르누이를 창조한 그는 , 인간 속에 파묻혀서도 고독하고 소외당하는 인간의 독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울먹이다가, 용기도 가져 보지만, 다시 우울해지고, 미칠 듯한 비명을 지르는 한 사내를 통해서 현대인의 울적하고 우울한 심사를 대리 분출시키려는 글일지도 모른다. 그의 해박하기 그지 없는 전문적 묘사가 탁월한 희곡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