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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 김별아 치유의 산행
김별아 지음 / 에코의서재 / 2011년 4월
평점 :
주말에 두 집의 상가에 다녀왔다.
대학 동기 녀석의 모친상으로 광주까지 부랴부랴 갔다 왔는데,
일요일 발인날 날이 포근해서 고생 덜 할 것 같아 다행이라고 덕담을 해주고 왔다.
어제는 황당한 상가엘 가게 되었다.
달리던 자동차에 불이나 상상도 못했던 죽음을 맞은 고인의 상가.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미망인과 자식들은
아비의 새까만 몰골에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갔으리라.
이렇게 죽음은 삶의 한끝에서 불시에 찾아들 수도 있는 것임을 생각하면,
세상사 화낼 일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결코 화를 내진 않으리라.
그리고 사랑한단 말까진 못해도 손 꼭 잡아주고 안아줄 순 있으리라.
아이가 다니는 이우학교의 학부모들과 아이들을 이끌고 백두대간을 주말마다 오르는 작가의 이야기다.
미실 등 작품으로 유명해진 이였지만,
그는 강박증, 우울증, 지나친 집착 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물론 그의 강박증은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의 집착은 이렇게 책을 내게까지 만들었다.
그걸 꼭 좋다고까지 말하긴 힘들겠다.
그렇지만, 그는 산을 통하여 스스로를 가둔 문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걸어나오는 중이다.
그 감옥은 처음부터 잠겨있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139)
나도 지난 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억지로 지리산 2박3일 산행을 했다.
나는 그야말로 평지형 인간의 대표격이어서, 등산을 그것도 지리산처럼 고산을 오르리라곤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지도 교사가 없어 마지못해 따라나선 길이었다.
마음의 준비도 몸의 준비도 없었다. 그저 지도하는 팀을 믿고 뒤따르기로 한 것이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힘겨우면 쉬고 쉬엄쉬엄 걷노라니
죽여주는 경치가 내 옆에 펼쳐졌고,
나는 늘 맨 꼴찌였지만, 아이들도 잘 걸어 주었고 나중엔 멋진 사진들도 남기게 되었다.
먼 길을 걸으면서,
힘겨우면 천천히 가고, 주변을 즐기면서 가고,
떨어져도 쫄지 말고 슬슬 움직이면 된다는 걸 배웠다.
김별아의 이 책은 등산 도서이기도 하고, 심리 수양 서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 계발에 넣었다.
산을 걷노라면 자연이 나와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꽃 속이 따뜻하다
너무 아프면
세상이 다 꽃으로 보여
천지간
온통 꽃 아닌 것 없으니
저녁이면 꽃잎은 물 속으로 잠기고
꽃물 든 속이 환하다.(이승희, 푸른 연꽃)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김재진, 풀)
그러면 이런 시들이 가슴으로 와락, 달려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존재가 참으로 작다는 것도 알게 되고,
죽음 앞에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도 된다. 겸손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산행팀은 '까불지 말자!'를 구호로 되뇐다.
인간은 그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의 합보다 크다.(159)
인간은 결코 환원주의적 관점으로 분해해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몽타주로 만들어낸 인간은 결국 원본보다 자연스러울 수 없는 것인데,
인간 존재가 크다는 것은 그가 숨쉬고 그가 꿈지럭거리는 걸 긍정함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꿈지럭거리는 인간의 가치를 읽고 나면,
그 외의 환경, 가치는 부질없음이 마음으로 다가선다.
서산대사의 4대 명산 판정도 재미있는 문장이다.
금강은 秀而不壯하고 지리는 壯而不秀하고 구월은 不秀不壯한데 묘향은 亦秀亦壯하니라.
소설가의 눈에는 자연 현상 또한 예술로 비추인다.
날카로운 번개의 빗금이 하늘을 쪼갠다. 천둥소리가 하늘의 먹지를 북북 찢는다.
산으로 가는 길은 자신을 비우는 길이다.
그리고 화를 삭이는 길이다.
화는 상대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때문에 불같이 일어난다.
빈 배의 비유가 그걸 돕는다.
빈 배와 부딪치면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타고 있으면 소리를 치고 욕을 한다.
정호승의 '바닥'을 생각하면서,
그는 삶이 늘 바닥을 기어다니는 2차원적 허무임을 생각는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정호승, 바닥에 대하여)
기쁨만이 기쁨이 아님도 배운다.
험하고 궂은 것이 오히려 삶의 자양분임을...
항상 날씨가 좋아서 햇볕만 내려쬐면 그 땅은 사막이 되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깨닫는 일.
어디까지가 집착이자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극한 상황의 극복일까요?
백두대간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이지요. 호흠에 맞춰 걸음을 걸으면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보면 육체의 아픔도 잊을 수 있어요. 극한 상황을 극복해 가는 수행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의 산행에 패자는 없습니다. 모드를 승자로 만드는 일이지요.
그렇게 자기에 대한 관조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길러준다.
자신감이 변하는 조건에 대한 것이라면,
자존감은 변치 않는 존재에 대한 것이다.(65)
고난을 이겨내면 더 강해진다.
짐을 힘들어하는 건 인지상정.
그러나, 짐을 이겨내면 더 강해진다. 다 힘이 된다.
짐.
짐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나는 더 강해진다.
상처도 힘, 고통도 힘, 슬픔과 불안까지도 힘.
진리는 하나가 아닌 법.
누구에게나 가장 힘든 시기가 있지만, 힘든 시기는 다 다르다.
누구에게는 30분만에 데드포인트가 오지만, 누군가는 1시간 뒤에 느낄 수도 있다.
다 다르다.
산도 그렇다.
가장 힘든 산.
험산은 따로 없다.
자기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오르는 산이 가장 험하고 어려운 법.
그리고 삶에서 늘 도망치려하고 감추려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드러내라는 조언도 있다.
방안에 코끼리가 있다면 먼저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하라.
코끼리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을 믿으면 그는 스스로 충분히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알고 믿는 사람은 아무런 불행의 암흑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명문장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그의 글을 읽기를 방해한다.
땀에 흠뻑 젖어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시간을 반추하기보다는,
삶에 대한 상념에 젖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화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던져버릴 요량으로 뜨거운 석탄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화상을 입는 것은 당신.
빈배를 저어가는 당신.
마주오는 빈배더러 화를 내지도,
그에게 던질 뜨거운 석탄을 안고 있지도 말자.
그리고 '참을 인'자 세 번 쓰는 마음으로 60초를 바라본다면,
삶이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삶의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삶의 주인공인가?
나인가?
남인가?
어른이 아이만도 못할 때도 많다.
등산이 어려우냐 공부가 어려우냐를 물으니 우문현답이 돌아온다.
공부는 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지만,
산을 오르는 일은 하는 척할 수 없다.
삶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