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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용기 -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서툰 삶 직면하기’
이승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인으로 살기
남자로 살기
쉽지 않다.
어린 시절, 가난이라는 트라우마에 노출되어 자랐고,
대학 시절, 광주의 폭력이라는 트라우마에 노출되어 자란 덕에,
본능적으로 '궁상'을 벗어나려고 꿈틀거리는 삶에는 익숙해졌지만,
날마다 벌어지는 부조리에 열받으며 욕지기가 치미는 삶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한국은 치열한 전쟁터다.
그 전쟁은 각개전투로 치루어진다. 팀전이 아니란 이야기다.
오로지 잘 되면 내 힘이고, 못 되면 내 탓이다.
그래서 되도 않은 '실력자론'이 등장한다.
어려서부터 실력으로 남을 이겨야 하고,
직장도 실력으로 남을 앞서야 한다. 노후도 '보험'을 실력껏 들어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그 전쟁터는 동등한 무기를 주고 싸우도록 시키지도 않는다.
남자가 여자보다 좀 무기가 우수하고, 집안에 따라 무기 종류가 다르다.
아직도 과도 들고 전쟁터 뛰어드는 개천의 미꾸라지도 있고,
미꾸라지 중에서 승천을 꿈꾸는 포부큰 이무기라도 되고 싶어하는 이도 있다.
마음의 상처가 없을 수 없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론'으로 들먹여지는 것에 불만을 느낀 융이 '집단 무의식'을 생각해 냈듯,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극단적으로 심각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에 산다는 것 자체로 이미 '평범'한 삶을 살 수는 없도록 되어있다면... 이 책은 위대한 한국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존재는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29)
나를 움직이는 것은 타자의 욕망이다.(46)
한국에 태어나면서부터 '민족 중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지껄이던 시절도 있었다마는,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는 응시에 따라 아직도 존재는 상처받는다.
아이들도 흔히 '성공'해서 만나자...는 말들을 한다.
아이들은, 지금은 성공을 위한 발판, 과도기, 수단...으로 살아갈 뿐이라며 자위할 따름인 것 같다.
아이들은 이미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계속 '최고보다는 최선을...' 이런 박차를 가한다.
목적이 없는 '갈망'이 '타자의 욕망'에 의해 각인되었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인간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최고'임을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 다 아는 비밀 한 가지.
타인은 내가 요구하는 것을 결코 쉽게 주지 않는다.
그래야 요구하는 그 사람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통제란 달라고 하는 그것을 주지 않을 때 손쉽게 가능한 일.(81)
그 사람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그 사람은 원했던 것을 주려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래. 쉬운 비밀이다.
그리고, 이런 책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작가처럼 공부하는 세계에서는 비교적 가능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이론들이 먹혀들지 않는 블랙홀이 세상에는 많다.
노숙자들은 어떻게도 통제할 수 없다.
분노에 가득찬 군중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99%를 분노에 차 광장에 만드는 사회라면, 이미 통제권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다들 '분노하라'를 읽지 않아도 가슴 속 분노로 가득 차서 광장으로 나오기 전에,
물이 임계점 100도까지 도달하기 전에,
세상이 차분하게 사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협력이야말로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127)
이런 이론은 쫓겨난 길거리의 노동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할 뿐이다.
같은 일 완전 딴판 월급을 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협력'이란 '불평등'의 법적 용어로 치를 떨게 만들 뿐이다.
이 책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피해입는 상처받은 사람들이나,
세상의 힘든 짐을 모두 자가기 떠안은 것처럼 피곤한 사람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출퇴근에 지친 사람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거시적 관점에서 상처받는 구조 속의 불평등 관계에서 받는 상처들까지 어루만지기에는,
예를 드는 것들이 겉돌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쉽다.
좀더 낮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 사회가 병들어 있는 곳의 상처를,
돌볼 수 있는 심리학이라면... 하고 바란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성복, 그날)...는 말은 참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