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혼자 남으면 바로 들켜버리는 넘처럼...

류시화가 예전에 예전에 그랬다. 나는 네가 옆에 있어도 그립다고... 그게 그의 첫 사랑이었고,
그의 두번째 사랑이 이거다. 비목이란 물고기처럼, 둘이 붙어서 눈깔 두개로 살았다던 그런 사랑.

이 책을 읽은 건, 10년 전이었다. 오늘 우연히 본가에 갔다가 읽게 된 시집.

10년 전, 이 책을 읽을 때 친하던 선배가 있었다. 만난 지 얼마 아니된 선배는 유난히도 나와 죽이 맞았고, 유난히도 서로 마음을 통했다. 늘 바라보면서도 늘 아쉬웠다. 그러던 그 선배는 나와 만난 지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김정현의 아버지>에서 그 애비가 죽어간 그 병으로, 아버지가 베스트 셀러던 그 해에 죽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 난 그 해가 떠오르고, 그 선배와 취해서 어깨 겯고 다니며 - 그는 나보다 10센치는 컸지만 - 새벽 두 시에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마시며 종례를 하던 그 서늘한 시절이 떠오른다.

그 때, 겟투란 담배가 나왔는데, 나눠피우면서 너죽고 나죽자고 농담한 말이 아직도 씹히고, 선배가 술마시러 가자고 했을 때, 나는 아이 유치원에 데리러 가기로 한 날이어서 도망가버리면, 화를 내는 체하면서 '너 혼자 좋은 아빠 해라!'하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여 미안하다.

그와 함께 했을때, 나는 비목처럼 두 눈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가고 나서는 나는 외눈박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선배가 투병하고 있을때, 박신양 최진실의 편지를 비디오로 보면서 한 두어 시간은 울었던 것 같다. 외눈박이 물고기는 내게 쓰라린 추억을 남긴 책이다.

그의 딸이 이제 중3이고, 아들은 초딩 졸업반이다. 2년 전에 만났는데 올 여름쯤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이제는 꿈에도 잘 나오지 않는 선배지만, 10년만에 이 시집을 읽어도, 아직도 나는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눈박이로 살고 있는 느낌은 여전하다. 이 시에 나온 <소금>처럼, 선배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아린 상처 그대로인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6-05-1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의 책 다 좋아요. 정말 다.
외눈박이 물고기같은 사이 참 애절합니다

글샘 2006-05-1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책만 봐도 떠오르는 일. 어떤 이미지에서 유추되는 사건들... 이 책이 제게 불러온 슬픈 이미지랍니다.
 
공연예술신서 48
김태웅 지음 / 평민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나리오를 써서 먹고 살기는 참 힘들다. 그 팍팍함이 이 희곡집에선 느껴진다.
그러다가, 이(爾)라는 희곡이 <왕의 남자>란 영화의 대본으로 쓰였고, 천만명을 넘긴 한국 최대의 영화가 되었다. 자, 이제 이 희곡집의 작가 김태웅은 어떻게 살고 있을는지...

불티나 라이타처럼 어디서나 주을 수 있는, 싸구려 인생처럼 묘사되던 그의 삶이 이젠 사법 고시 합격한 사람마냥 돈방석 위에 올라 앉아 나타샤를 끌어안고 있는 거나 아닐는지...

희곡집 안에 묘사된 인물들의 공통점은, 한번 왔다 가는 삶에 대한 고뇌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마치 불티나 라이타처럼... 소중할 것도, 값비쌀 것도 없는 일회용 인생들...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공길이와 장생의 시각에서 세상사의 허탈함을 그리고 있는 반면, 원작 희곡에서는 <연산>의 고뇌하는 심사가 더욱 깊이있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스펙터클한 장면의 구사에 제약이 심한 연극에서는 연산군의 페이소스가 짙게 느껴지는 장면을 부각시키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었을게다.

이 희곡집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 외에도, <불티나>는 우리 시대의 고뇌를 잘 담고 있다.

6월 항쟁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비추이기도 하고, <뜨거운 함성>이 일렁거리기도 하고, <페레스트로이카>를 타고 날아온 백마 나타샤도 등장하여 백석의 나타샤와 오버랩된다.

김태웅은 개그에 집착하는 대사를 제법 많이 구사한다. 하긴 연극에서 재미가 없어서야 연극보러 오라거 하기 험한 세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구차해도 남는 자에겐 힘이 생기고, 불안해도 뜨는 자에겐 거칠 게 없는 법>이란 장생의 대사나, <여자들의 비밀 하나를 알려 줄까하는데 들어 보려오? 여자는 말이요, 현실 앞에서는 지독할 정도로 냉혹하다오. 앞뒤 따져서 이득이 없으면 가차없이 쳐낸다오. 그게 수태하는 암컷의 힘이고 미덕이라오.>하는 녹수의 대사는 곱씹어볼 만한 멋진 대사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건 정말 칭찬이다.

전에 읽었던 공지영은 왠지 제 안에 콕 쳐박혀 좁은 창틈으로 세상을 내어다 보는 작가란 느낌이 강했다.
남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르려고 여린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목소리.

그래서 공지영 소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도, 별로 손이 안 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유난히 이 책이 여기 저기서 눈에 띄어 가볍게 읽었는데...
내용이 전혀 가볍지 않았다.

제목부터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뭐냐.
'우리'라니... 그리고 '행복'이라니...
공지영은 '우리'란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작가고, '행복'같은 건 더더군다나 관계찮던 작가 아닌가?(내가 그의 소설을 몇 편 안 읽기도 했지만, 암튼 내 감으론 그렇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우리와 행복과 <시간>을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삶'과 '삶의 의미'와 '의미를 위한 시간'의 삼각형을.

그도, 나도... 누구나 다 형편없는 주제에, 잰체하며 살고있단 것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주제가 무거운 반면, 이야기는 무겁지 않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데도, 그는 행복에 이을 수 있는 스토리를 전개한다.
양 어깨를 짓누른 혁수정과도 같은 내용을, 윤수와 이주임과 나의 꼴통같은 농담을 통해 공중부양 시키는 힘이 공지영에게 생겼다.

아이들에게 문학에 대해 강의를 하는 나지만, 솔직히 문학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그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나를 잠시나마 공감하게 하고, 그래서 나를 움직이는 힘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문학은 성공한 문학일 수 있으리라... 추측할 따름이다.

이 소설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모아모아모아서, <힘>을 획득한 그의 수작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서 '사형수'는 '기결수'가 아닌 '미결수'여서 교도소로 못가고 구치소에 머문다는 사실을 알았다. 징역살이는 갇히는 순간 실형을 사는 것이지만, 사형은 집행되는 순간까지는 실형이 유예된 것이란 무서운 사실을... 소름끼치는 노릇이다.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는 일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2006-04-1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고등어에서 (읽기를)멈추었었는데 다시 시작할까요?^^

글샘 2006-04-1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괴물처럼 대하면 그 사람은 진짜 괴물이 된다.'는 말이 무서웠습니다.

혜덕화 2006-04-1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지영에 대해 님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예전에 수도원 기행을 읽으면서 축복받은 작가라는 생각을, 이젠 좀 달라진 글쓰기를 만날 수 있겠구나, 스치듯 생각했었습니다. 성장하는 거겠죠. 끊임없이. 그녀도 우리도......

해콩 2006-04-13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군요. --
그런데...역명제도 가능일까요?
"괴물을 사람답게 대하면 그 괴물은 진짜 사람이 된다."

소설이 영화화되면 감동이 반감되던데 이 영화는 봐볼까 생각 중이예요. 개인적으로 이나영을 좋아하기도 하고.. 강동원도 조금 궁금?하고.. 소설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슬픈 소설이 좋으니.. 나이를 먹었나..

글샘 2006-04-1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도 좋은 글이었지요. 이 책은 재미도 있고, 생각할 문제를 많이 던져주더라고요. 삶과 죽음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콩님, 괴물을 사람답게 대하면 그 괴물은 사람이 된다...가 이 소설의 주제 아닐까 합니다. 글쎄요... 영화는...어떨는지 몰겠네요.

블루 2006-06-2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선생님 서재에 들릅니다.저도 이 책을 오늘 다 읽고 책꽂이에 꽂았어요.얼마나 울었던지... 저도 공지영 소설을 열심히 읽었었죠.사람에 대한 예의,고등어,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등등.난 이렇게 아팠다,이렇게 고민했다 얘기하는거같은 작가가 읽기 편치 않았습니다.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제가 읽었던 공지영하곤 좀 달랐어요.책을 덥고도 눈물을 멈출수가 없어서 티슈통을 붙들고 엉엉 울었답니다.참 생각할게 많은 소설이었어요...
 
흰소가 끄는 수레 - 창비소설집
박범신 지음 / 창비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불난 집과 같은 사바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흰 소가 끄는 수레에 오르는 길이다.

박범신은 80년대, 신문 소설로 유명한 작가다.
90년대 이후, 소설의 퇴조와 포스트 모던의 범람에 따른 기존 작가들의 방향 상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소설가들은 많은 방황을 했다.

그나마 운동권에서 가까이 있고, 민중 문학을 지향하던 작가들은 후일담 문학도 내놓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들은 이문열과 같은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추락하는 것들은 날개가 없었고, 이문열의 선택은 졸렬했다.

박범신의 이 소설은 쉽지만은 않다.

제목부터 상징하는 바가 상당히 종교적이고, 번뇌의 세상에서 해탈하는 것이 주제임을 암시하고 있지만,
글쓰는 일에 끄달린 그의 심리가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소설로 읽을 수밖에 없다.

자, 포스트 모던한 이 시대에... 꿈과 환상이 지배하는 판타지 소설과, 꼬마들이 내놓은 인터넷 소설들의 잡스런 연애담이 주를 이룬 이상한 소설의 시대에, 기존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그의 소설은 그의 내면을 떠돌아다니는 나비를 잡으려 허둥대는 모습으로 가득하고,
제목과는 달리 작가는 그 수레에 올라타지 못하고 아직도 불난 집에서 허둥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데도, 그가 살고 있는 '나이'를 나도 살고 있어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

... 눈은 하루가 다르게 침침해지고, 머리칼은 수북이 빠져 베갯머리에 쌓이고, 모든 내장들이 시시때때 이퉁을 부리고, 먹어도 속은 언제나 허당이고, 발은 자주 접질려 넘어질 뻔 넘어질 뻔 하고, 좀전에 산 차표 온 주머니 뒤져 찾고, 라이터 우산 가방 심지어 겉저고리도 아무데나 두고 오고, 글을 써도 행갈이 자주 하고, 쓴 말 또 쓰고, 읽던 책 두고 새 책 들고, 겨우 머리말 읽고 나서 끝을 아는 듯해 그만 버리고, 거리에서 듣는 뱃노래로 눈시울 붉히고, 죽은 어머니한테 자꾸 미안하고, 자식이 안쓰럽고, 낡은 의자가 좋고, 암  심장병 폐결핵 간장병에 걸린 것 같고, 나날이 홀로이고, 잠은 깊지 못하고, 쑤욱, 소리도 없이, 걸림쇠도 없이 쑤욱쑤욱, 뭔가 빠져나가지만 아랫배엔 죽은 살들이 차오르고...

아,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뜨끔뜨끔하다. 나이를 먹는단 게 이런 건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leinsusun 2006-04-1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었죠. 모든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는 것 같아요, 지지선도 없고....

"나날이 홀로이고, 잠은 깊지 못하고, 쑤욱, 소리도 없이, 걸림쇠도 없이 쑤욱쑤욱, 뭔가 빠져나가지만 아랫배엔 죽은 살들이 차오르고..."
섬칫해요. "늙음"을 느낄 때 더 외로워 지나요?
 
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닭살 커플이다.

백석 시인과 자야 여사의 사랑 이야기는 30년대 사회상도 읽을 수 있고,
당시의 신식 사랑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야 여사의 옛날식 말투는 너무나도 재미지다.
멋쟁이 백석 시인의 깍아지른 얼굴과,
시인의 더도 덜도 없는 정삼각형같은 시들의 뒤에는,
자야 여사와의 뽀송뽀송하다 못해 영원히 신혼같은 풋풋한 내음의 사랑이 쉬고 있었다.

백석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애절한 노스탤지어(향수)와,
막막한 절망감의 이면에 너무도 알려진 바가 없어 그 절절함을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백석의 시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보인다.

자야 여사의 글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순애보,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 언어가 지나치게 통속적인 것 같다.
역시 시의 뒤안길엔 눈물의 순애보가 가득하다.
3년 여에 얽은 사랑과 이별의 눈물이 이 책에 넘쳐 흐른다.
이제 백석의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를 품을 법하다.

자야 여사의 북관 체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적어 둔다.

처음 딸아이를 낳으니 '얼라'라고 합데.
크니 '체네'라고 하지 않슴메?
시집가니 '집난이'라고 하지비.
얼라를 낳으니 날더러 '아어미'라고 합데.
이렇게 늙으니 '아마이'라고 하지 않습메?

이 모습을 보고 웃자, "무스거 그리 웃붐메?"했다던 튼튼하고 아름다운 북관의 아낙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3-31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에요.
절판된 줄 알았는데 있네요... ㅡㅡ;(어떤 근거로 그리 생각했던지...)
백석 시인이 좋아서 시집-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시와사회) 오랫동안 끼고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진정으로 끼고만 ㅡㅡ;;) 얼른 사야지!

글샘 2006-03-3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백석 시인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 시 세계 이해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해되는 점이 많습니다. 얼른 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