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기타
박정대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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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 서원에서 '주제와 변주'를 하는데 거기 박정대 시인을 모신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읽고 언제 한번 읽어 봐야지... 했는데, 청춘의 격렬비열도...는 아직 못 읽었고, 아무르 기타를 먼저 읽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같은 눈이 내리지>란 시 제목만 봐도, 그는 상당히 낭만적이고, 몽환적이고 상상의 나래가 폭넓은 사람이며, 훌쩍 시공간을 뛰어넘어 버릴듯한 느낌을 준다.

책날개에 인쇄된 그의 흑백 사진을 보면, '도우너'가 생각난다. 귀여운 인상이 닮았다. 근데, 도우너는 성질이 더럽다. 그도 성질이 더러울까? 근거없는 유비추리...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도우너, 바가지 머릴 하고 어느 날 갑자기 고길동네 마당으로 하늘에서 추락한다.
그 도우너가 타고 온 것은 놀랍게도 '바이얼린'처럼 생긴 현악기였고, 도우너가 현악기를 뚝딱거리며 조작하다가 외치는 주문은 부처님 장엄 세계를 꽃으로 장식하는 화엄경에 나오는 '깐따삐야'였다.

생김새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박정대는 시집 제목에서도 기타를 들먹였지만, 많은 현악기를 끄집어낸다.
그는 스스로 도우너임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기 공룡 둘리란 시가 없는 걸로 보면, 그가 아직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은델레, 이낭가, 마두금, 망기타, 비파등의 이미지는 충분히 깐따삐야별로 항해하는 꿈의 비행선으로 화할는지도 모르겠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타를 타고 그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은 짬뽕이 되고 부대찌개가 된다.
그의 시와 분위기가 잘 통하는 옥타비아 빠스를 읽으면서 옥탑방 위의 빤쓰를 떠올리는 장난기도 영락없는 도우너다. ㅋ

첫번째 시에서부터 그는 우리를 꾀인다. <같이 갈래?> 얼떨결에 둘리네 일행에 휩싸이는 고길동처럼 어물쩡하는 사이에 그의 여행의 좌충우돌 종횡무진 여정에 독자는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은 고독하기도 하고 명상적이기도 하며 열정적이기도 하다. 마치 격렬비열도엘 간 것처럼. 이름은 격렬한 섬에서 세상을 뒤덮는 흰 눈을 만나는 것처럼.

푸른 노트 한 권을 들고 하노이로 훌쩍 떠나는 깐따삐야 별의 도우너 박정대. 그는 보도 블록을 하나 들어내도 바다가 보이는 섬세한 촉수를 가슴에 달고 사는 이다. 그가 보는 영화들과 읽는 책들은 모두 그 촉수에 특정한 호르몬으로 저장되어 필요에 의해 독자들에게 페로몬으로 발산되기도 한다. 그의 글은 이유모를 중독성을 가진 듯 하다. 보이지 않는 페로몬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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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저고리 검정 치마 - 황명걸 시집
황명걸 지음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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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아이

배가 고파 우는 아이야
울다 지쳐 잠든 아이야
장난감이 없어 보채는 아이야
네 어미는 젖이 모자랐단다
네 아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단다
네가 철나기 전 두 분은 가시면서
어미는 눈물과 한숨을
아비는 매질과 술주정을
벼 몇 섬의 빛과 함께 남겼단다.
뼈골이 부서지게 일은 했으나
워낙 못 사는 나라의 백성이라서
허지만 그럴수록 아이야
사채기만 가리지 않으면
성별을 알 수 없는 아이야
누더기 옷의 아이야
계집아이는 어미를 닮지 말고
사내 아이는 아비를 닮지 말고
못 사는 나라에 태어난 죄만으로
보다 더 뼈골이 부숴지게 일을 해서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멀지 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야
너무 외롭다고 해서
숙부라는 사람 믿지 말고
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가지고 노는 돌멩이로
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
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고
하나의 성을 쌓아 올리도록 하여라
맑은 눈빛의 아이야
빛나는 눈빛의 아이야
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1965.6>

이 시가 황명걸 시인의 대표작 '한국의 아이'다. 1965년이면 정말 가난하던 나랏적 이야기다.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 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 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아라...하고 그가 가르친 것이 어언 40년 전. 이 시집이 그의 작품 15년을 정리한 것이라 하니 그가 시를 쓴 지 50년이 되었다 한다.

외모부터 좀 예술가스럽게 생긴 황명걸은 그림과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면서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젊어지는 듯한 그의 삶을 보면, 뭔가를 깨닫게 하는 무엇이 있다.

나이는 시간이 흘러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하듯이, 그는 나이를 먹었으면서도 아는 것 없고 새로이 보이는 것 투성이임을 고백한다. 다행이다. 40이면 혹하지 않고, 50이면 하늘의 뜻을 알고, 60이면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70이면 맘내킨대로 해도 가로막힘이 없다는 공모씨의 말처럼 사람들이 철들지 않음을 보여 줘서.

나는 이미 40을 훌쩍 넘었으면서도 늘 어린애처럼 단순하고, 어리석다. 호기심 많고, 아직도 내 젊은 날이 새털처럼 많을 줄 안다. 내 나이 스무 살엔 마흔 쯤 된 사람들은 벌써 인생의 뭔가를 깨달았을 거라고 착각했는데도 말이다.

황명걸은 북녁 평양이 고향이다. 대동강을 못잊어 양수리에 집을 얻었다는 그.
2000년 6월에 희망찬 시들을 썼건만, 움직이지 않는 기차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 진다.
그래서 흰 저고리 검정 치마가 늘상 눈앞에 어리는 것인가도 모른다.

그는 '속초행'에서 <눈이 오려면 함박눈으로 내리고, 비가 오려면 장대비로 쏟아지지, 안개비에 설치는 바람은 웬 성화냐>라고 했지만, 그도 알 것이다. 세상은 멋지게 함박눈 또는 장대비만 내리지 않는단 것을. 오히려 속되게 잔바람과 안개비가 눈앞을 가리워 추적거리게 하는 것임을...

'슬픈 지뢰밭'에서는 <사람이 살아야 할 터전 들과 숲에>  <무서운 지뢰를 묻은 장본인>도 사람이고, <이제와 뒤늦게 몹쓸 지뢰를 뽑는다고 법석떠는 것도 사람>임을 증오한다. 제네바에서 본 다리잘린 의자가 떠오른다.

흰 저고리 검정 치마
너무 아름다워 흠갈라
운을 떼지 못하다가
생 꽁지머리에 엷은 화장
둥근 어깨에 초승달 눈썹
이밥 눈에 박꽃 미소가
조선 미인의 전형이라서
매끈한 몸매 타고 흐르는
긴 고름끝이 춤추는 듯
걸음새마저 날렵하니
아, 내 사랑하고픈 여자여라

시집 제목을 이룬 표제작이라 역시 그의 생각을 잘 함축하고 있다. 남남 북녀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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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한국 시나리오 선집 - 제19권 2001년도 선정 작품
영화진흥위원회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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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99년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어서 지난 토욜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왔다.

일요일, 가족들이 모두 감기에 걸려 비몽사몽 잠을 자는 와중에 비디오를 빌려다 보듯이 시나리오를 끼고 앉았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다 읽었다.

2001년 시나리오 선집에는 고양이를 부탁해, 고추말리기, 꽃섬, 라이방, 번지점프를 하다, 봄날은 간다, 소름, 수취인불명, 와이키키브라더스, 킬러들의 수다, 파이란의 11편이 실려 있다.

내가 본 영화는 번지점프와 봄날, 수취인 불명, 파이란의 네 편인데, 읽었더라도 정말 실감났다.

영화를 봤으면 본 대로 장면들이 떠올라서 재미있었고, 안 본 것은 안 본 대로 상상력을 동원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평범한 아니 중간 이하의 처녀들의 심심한 나날들을 예민하게 캐치한 영화, 그야말로 고양이같은 감각을 지닌 글이었다.

고추말리기는 부득부득 옥상에서 고추를 말리는 할머니의 모습과 퉁퉁한 영화인의 솔직한 일상 이야기.

꽃섬은 아기낳은 여고생, 설암에 걸린 가수, 피아노를 사려 매춘을 하려는 여자들을 통해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한다.

라이방은 택시 기사들의 요모양 요꼴로 사는 인생들을 앵글에 담지만, 그늘을 찾아 베트남으로 떠나는 영화.

번지 점프는 이은주의 죽음을 예견한듯한 영화로 유명하다. 러브스토리와 환생을 재미있는 입담과 장치들로 떠받치는 시나리오.

봄날은 간다...는 이혼녀 은수를 향한 상우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영화다. 은수가 피곤하면 자고, 집 정리 안 하고 대충 사는 모습은 여느 남자들의 그것과 같다. 여성들이라고 집 정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난 그 시선이 좋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는 순수함과 버스와 여자는 잡는 게 아니란 할머니의 말은 그렇게 삶을 관통하는 각각의 진실이다.

소름은 미스터리물.

수취인 불명은 김기덕스런 시나리오. 미군기지 옆의 평택에서 벌어지는 혼혈과 총을 갖고 놀다 애꾸가 된 은옥, 개 백정인 개눈, 제임스의 등장까지, 이 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어주는 끔찍한 영화다. 나는 가방끈 긴 인간들의 눈보다 가방끈 짧은 김기덕의 시선이 열라 좋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한때 음악에 빠졌던 청춘들이 나이트 밴드로 겨우 입에 풀칠하는 궁상맞은 삶들이 펼쳐진다. 그 중에 인희랑 이름의 여인과 성우의 애틋한 사랑은 친구에 나오는 레인보우를 떠올리게 한다.

킬러들의 수다... 이 글, 꽤 재밌다. 정말 수다스런 킬러들. 이런 글을 애들이 읽으면 정말 킬러란 직업 재밌고 세상에 죽일놈 많은데 꼭 필요하고, 돈도 많이 번다고 착각할는지도 모르겠다.

파이란은 양아치 강재를 위장결혼한 파이란을 통해 인간으로 만든다는 영화다. 파이란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것일까...

상상력이 필요한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시대에 덜떨어진 희곡보다는 시나리오를 읽히는 일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 이번 겨울 방학은 시나리오에 중독돼서 다른 빌려다 놓은 책을 못 읽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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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의 속살 -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시인 50인이 보여주는 풍경들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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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거리는 모국어들을 마냥 부려쓰고 싶어하는 시인들의 시를 좋아하는 고종석의 편견이 가득한 책.

한국일보에 실은 글이라는데, 상당히 어렵다. 한국일보를 읽는 사람들은 죄다 문학가인 것인지...

고종석은 한 마디로 자유주의자다.

민족을 앞세우거나, 패거리 문화를 들썩거리는 걸 몹시도 싫어한다.

그리고 고종석은 개인주의자다.

민중문화 같은 걸 증오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신동엽이나 김수영, 고은 같은 사람들을 쓸 때 항상 비판의 칼날을 벼려서 꼬나 보지만, 그래서 아예 박노해 따위는 관심도 없지만... 모국어의 속살을 들여다보려는 시인이 왜 김선우같은 사람의 시는 또 말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뇌구조 분석을 하려 든다면...

고종석의 뇌 안에는 '레드 콤플렉스'라는 커다란 덩어리가 대뇌 피질을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양이나 부르주아들의 취향에 경도되어있는 덩어리가 하나씩 레드콤플렉스 좌우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고.

시를 쓰기도 어렵지만, 시를 읽어내기도 어렵다.

물론 고종석을 통해서 새로이 만난 좋은 시인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고종석을 싫어하기로 완전히 마음먹었다.

시를 통해 우리말의 속살을 들여다 보기에는 그의 편견이 너무도 그악스러운 수구꼴통들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에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책에서 주워모은 몇 조각의 비늘들을 부정할 순 없다.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 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 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 반성 100 전문/ 김영승

슬픔보다다 노여움보다도 먼저 지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네 그리움이다. - 그대가 나를 문문히 보는구나. 이성부

세컨드는,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 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 나는야 세컨드 1, 김경미

백석이 북쪽에 남음으로써, 한국사는 '정치적으로도 올발랐던 미당'을 가질 기회를 잃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푸른 밤, 나희덕

화자들은 왜 아플까?... 화자의 (영혼의) 살갗에 통점이 너무 많아서... 이게 제일 그럴 듯하다.
왜 고통이 몸 밖으로 나가면/ 한낱 고물 집하장이 되어버리는 걸까? -김혜순

인간의 몸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겨우겨우 견뎌내거나 버텨낸다. 슬프게도. - 이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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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나리오 선집 제17권
영화진흥위원회 엮음 / 집문당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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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할 때 영화를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조금만 지루해도 눈꺼풀의 무게가 실감나니 말이다.
내가 제일 졸면서 본 영화는 JFK(전날 밤샜다.)와 r-point(전날 술마셨다.) 같은 영화들인데, 거의 슬라이드 보듯 줄거리 없이 몇 화면만 기억이 나곤 했다.
그런 경우 외에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리와인드> 기능을 활용하고 싶어 근질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영화를 몇 번 반복해서 보다 보면, 앞에서 못봤던 팁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는 일은 영화를 보는 일에 비해 훨씬 쉽다. 좀 이해가 안 되거나 딴 생각하면서 읽은 부분은 다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시나리오 선집이 좌르륵- 시리즈로 꽂혀 있어서 옳다꾸나 하고 한 권 빌려온 것이다. 읽다 보니 영화보다 재미있단 생각도 든다.

1999년의 시나리오라는데 간첩 리철진, 거짓말, 내 마음의 풍금, 박하사탕, 쉬리, 이재수의 난, 정, 텔미썸딩, 안단테 칸타빌레, 클럽버터플라이 등이 실려 있다.

간첩 리철진, 내 마음의 풍금, 박하사탕, 쉬리, 텔미썸딩은 이미 본 작품들이었지만, 내가 보거나 읽은 것들을 얼마나 많이 잊고 사는지를 실감하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큰 줄거리만 남았을 뿐, 섬세한 장면들은 놓치고 말았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비디오로 본 내 마음의 풍금이나 텔미 썸딩 들은 완전히 새로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박하사탕도 영화로 봤지만, 글로 읽으면서 더 아련한 아픔이 강하게 전해진다.

이재수의 난은 현기영의 소설로 읽은 적  있는 이야기인데도, 이정재를 떠올리며 제주도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읽었다.

국어 샘들은 문학을 <시, 소설, 수필, 희곡> 등으로 나눈다고 하는데... 한국에 제대로 된 수필이나 희곡이 없다. 수필은 잡문이 너무도 많고, 희곡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오죽하면 교과서에 실을 희곡이 없어 봉산 탈춤을 실어 놨을까.
그리고 또 실을 것이 없자, 학교라는 유명한 드라마 대본을 싣고 말았고.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들판에서>는 사이코드라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시나리오에 이런 풍부한 밭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 마음의 풍금 같은 것은 교과서에 실어도 충분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 영화의 발전이 기형적 구조라고 비판들을 하지만, 좋은 영화는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것이 기본 아니겠는가. 한국 영화의 유행이 한 때의 흐름인 <한류>에 머물지 않으려면, 아이들에게 시나리오를 가르쳐야 한다.

마이크가 없던 시절 웅변을 가르쳤지만, 마이크의 등장으로 소리지르기 보다는 유머와 위트가 중요시 되듯이, 종합 공연 시설이 없던 시절엔 소리 지르는 발성의 연극이 필요했고 희곡이 중시되었지만, 빛과 소리의 예술인 영화의 시대엔 시나리오를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시나리오를 읽는 일은 전문 용어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을 북돋우는 데는 희곡보단 시나리오가 우위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이 선집 시리즈를 독파하게 될 듯한 예감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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