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냄새 가득한 함민복의 산문집이다.
함민복의 글들을 읽노라면, 이 땅의 가운뎃벌판, 중원에서 태어나서, 주변의 사람들이라고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무지랭이들 뿐인 사람들의 정겨운 체온이 느껴진다.

10만원 수표를 피자값으로 내주며 '잔돈은 됐어요!'하는 여고생도 있다지만,
이 땅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는 하지만 구사할 줄 모르는 한국어'인 잔돈은 됐어요!를 낯설어한다.

그렇지만, 또한 그 낯설지 않은 가난을 뼛속깊이 혐오하며, 그 가난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 달리고,
특히 자식에게만은 그 친숙한 가난의 길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힘써왔다.
그 결과 가난은 조금 멀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은 구만리나 남았고, 길은 갈수록 뻘창으로 변해간다.

시를 쓰는 그는 강화도의 한 바닷가 폐가에 산다.
그의 이웃들은 "망둥이는 볼따구니 살이 제일 맛있단다.
살아있는 한 호흡을 해야 하니까 계속 움직여야 하는 아가미 근육 살이 제일 쫄깃하고 맛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내 영혼의 어느 부위가 제일 맛있을까?(바다쪽으로 한뼘 더)"하며
물고기로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벽 밖에서 못박을 위치를 잡기 위해 망치를 두드린다. 아니, 그쪽말고 바다쪽으로 한뼘 더... 기준을 바다로 삼는 이곳 사내들처럼, 나도 바다 쪽으로 한뼘 더 나아가 시를 좀더 짧게 쓸 수 있었으면..."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바닷가 사람들이다.

물론 그는 섬아닌 섬에서 외로웠으리라.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그의 글에서 읽히는 선천성 외로움이 느껴진다.

"소리에 어른이신 저 큰 말씀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그래 살아 있네(천둥소리)"

자연 옆에 살면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을 닮은 시인, 함민복.
동네 약사가 아는 시인과 이름이 같다며 바라보는 시인같아뵈지 않는 시인, 함민복.

어쩌면 그의 가장 유명한 글은 시 아닌 다음 수필일 게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운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며 눈물을 땀인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우리가 늘상 부려 쓰는 모국어건만, 그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우리 생활 속에서 언제나 툭툭 부딪치는 말들이다. 그래서 더욱 푸지게만 느껴지는데 그의 삶에 대한 관조는 자못 깊숙하여 때로 서늘하다.

'샐러리맨 예찬'에서 처럼...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삼십 분 육십 분 구십 분 -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짜릿하다. 마치 돼지 자궁에 발톱이 미끈거리는 새끼 잡으려 집어 넣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어미 돼지의 산통마냥...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9-18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샘님, 이런 글을 왜 아직 안 읽었던가요. 당장 담아갑니다.
눈물은 왜 짠가?, 제목만 들어본 글인데 저렇게 툭배기 부딪는 말로...
!! 짠합니다. 님의 리뷰 또한..

글샘 2007-09-19 08:53   좋아요 0 | URL
이제 읽으셨죠? ㅋㅋ
눈물에는 0.09%의 염화나트륨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짜다는 설명보다, 정말 짠하죠.

순오기 2007-09-1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복~~~~'눈물은 왜 짠가?'
아~~~~ 찜합니다!

글샘 2007-09-19 08:54   좋아요 0 | URL
딴 글들은 별로인 것들도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가난하게 사는 한 사람의 삶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가난하게 구질구질 사는 거, 읽기엔 별로 유쾌하지 않잖아요.^^

비로그인 2007-09-1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짜다던 눈물이 핑- 했습니다. 좋군요.
덕분에 좋은 시인, 수필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밀양의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

알암이의 실종과 사체 발견, 범인의 자백, 아기 엄마의 고뇌와 이웃집 김집사의 전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기록한다.

범인의 '회개'에 충격받은 아내는 하나님의 나라로, 그 당신들의 천국으로 살인범이 떠나던 날 자살하고 만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만으로는 영화를 만들기엔 슬프고 밋밋한 스토리다.

이창동 감독은 거기다가 한국 개신교의 집요한 전도와 주객이 전도된 용서와 회개의 모순에 대해, 송강호란 멋진 배우와 함께 살아있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

원작을 읽고 나니 새삼 이 감독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이 다 미쳐돌아가는 것 같애도,
간혹 고맙게도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큰물과 수마 사이...
지구는 스스로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돌고 도는 것인데,
그 순환의 아름다운 원리에 기생하는 인간 주제에,
큰물을 수마라고 부른다.
온도가 조금 높거나 낮다고 이상 기온이라 부르고,
비나 눈이 조금 더 내리면 폭설이네, 폭우네 난리 부르스다.

스스로 컴퓨터 데스크 탑(塔) 속에 갇혀서,
지식의 극한을 자랑하는 어린석은 인간들은,
높다란 건물들을 자랑스레 지어 두지만,
결국 높다란 건물에서 자라는 것을 먹진 못한다.
쌀이나 밀도, 소고기나 닭고기도, 온갖가지 생선들도
낮고 낮은 땅에서,
아니 그보다 더 낮은 뻘밭에서
그리고 2차원과 3차원의 나눔이 없는 바닷 속에TJ
자연스레 살아간다.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시인 함민복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을 생각한다.

그는 물구나무 선 나무 그림자를 보면서
물 속의 생선 뼛가지를 느낄 줄 알고,
물가둔 논빼미에 비친 앞산을 보면서

멀리 출장나와준 산의 넉넉함에 감사할 줄 안다.

그에게 천성산이 아프지 않을 리 없고,
새만금이 저리지 않을 리 없다.
날마다 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는 아이들 소식이 슬플 수밖에 없고,
지디피를 높이는 폭탄과 전투기 만드는 이야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인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인간들은
글을 통해서나마 시인의 마음을 나눠 가져야 하리라.

그래서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일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리라.

이 책엔 시답잖은 ‘해설’ 따위 없어서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9-1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리 출장 나와준 산의 넉넉함. 우리를 보고 놀랄 뱀과 나무와 하늘과 바위...
참 좋은 마음이 보여요. 해설 없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담아갑니다.^^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나의 추억에 남한산성은 '안대'다.
십오 년 쯤 전, 칠판 위에 올려둔 분필지우개를 내리다 눈에 '톡'하고 맞은 것이 '각막'을 긁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안대를 한 다음날, 하필이면 소풍지로 간 곳이 남한산성이었다.
한쪽 눈으로 내려다본 세상은 그저 멀게만 느껴졌다.
수어장대고 남문이고 모두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또 하나의 추억은 '식당'이다.
시험기간에 일찍 마치는 날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집이 으리으리했다.
말을 들어보니 박통이 거기서 작은 잔치를 벌이기 좋아했다는 집이란다.
나라를 가진 장군이 남한산성에 올라가 씨바스리갈인지 로열살루튼지를 마시면서 어떤 감회에 잠겼을까? 그 역사를 알기나 했을까? 그저 허리 가는 여자와의 요분질로 권좌의 쓸쓸함을 달래고 만 걸까?

내 기억에 남을 소설 남한산성은 무척이나 재미없다. 애초에 김훈의 소설을 재미로 읽을 생각도 없었지만, 도대체 그는 이 소설을 왜 썼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먼젓번에 읽은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이란 장수의 고독한 마음 속으로 들어간 작가의 심사가 낙엽 냄새를 풍기면서도 비릿한 삶의 내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소설도 역사 소설보담은 심리 소설에 가깝지만, 역사 소설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번엔 더 심하다. 남한산성에 올라 비루한 삶을 구하는 왕을 떠올린 김훈은 '권좌'와 '백성'에 대한 상념들을 이렇게 풀어본 것은 아닐까 싶다.

임금은 그야말로 '상징'에 불과한 사람일 수도 있다. 특히 나라가 위기에 닥치면...
아무 힘도 없는 임금 아래서 '관료'들은 온갖 '쑈'를 한다. 누가 충절인지는 역사가 알 일이기도 하고, 역사도 모르기도 한다. 승자가 충신이 되기 때문이다. 평범한 무지랭이들은 싸움보다는 '살고 먹는 일'에 급급하다.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김훈은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올라가서, 정신나간 넘이 수어장대에 불지르는 꼬라지를 보면서, 삼백 여년 전, 수어장대에서 꼬장질하던 관료넘들을 향한 화살눈 백성들을 떠올린 것이나 아닐까?

온 나라가 '양극화'의 벼락을 맞아 양 전극으로 분화되게 생겼는데, 그래서 마이너스 전극으로 쏠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비루하게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고 있는데, 최고 권좌에 앉은 자는 '손들고 나가서 살 길'을 구하려 하고, 그 아래의 신료들은 횡설수설, 우왕좌왕, 갑론을박, 좌충우돌, 지랄발광을 다 떤다. 쌩 쑈도 이런 쑈가 없다.

올바른 건 아니지만, 백성들은 '나라'의 앞날 같은 것에 관심을 갖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태극기 목에 걸고 미문화원을 점거하던 용기있는 양심보다는 토익점수와 공무원 시험에 목숨을 바친다.

임금의 외롭고 막막하고 쓸쓸함,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길을 얼핏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도드라져 읽히는 구절들은 이 땅에 살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더더욱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도 하고, 또한 역설적으로도 동시에 삶의 가벼움을 체감하기도 하는 사람들에게 찍힌 액센트가 아닐는지...

- 강한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339)
- 나라가 없고 품계가 없는 세상에서 홀로 살고 싶다.(284)
-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먹고 살고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다'는 무서운 대답.
- 나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먹고 사는 일이 중하니, 청병들도 같은 얼음길로 인도하고 곡식을 구하겠다고 하다가 칼을 맞는 뱃사공... 나라가 무엇인가?

글은 멀고 몸은 가까운 현실을 일하는 서날쇠를 보면서 느끼는 지식인의 모습은 서늘하다.
일과 사물이 깃든 살아있는 사람.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하는 정처없는 말과, 사물에서 비롯하는 정처있는 말이 겹치고 비벼지면서, 정처있는 말이 정처없는 말 속에 녹아서 정처를 잃어버리고, 정처없는 말이 정처있는 말 속에 스며서 정처에 자리잡는 말의 신기루... 그 본말 전도의 모습이 문화고, 역사고, 사회라는 이른바 학문의 진흙탕이 아니냐...

그 속에서 오로지 먹고 살려고 말을 삶의 길로 선택한 정명수같은 녀석을 생각한다면, 어학 연수로 들끓는다는 중국과 호주, 필리핀까지 버글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한미 FTA 협상단 대표인 김현종이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생각이 나는 건 뭐냐?

가진자들은 아이들을 바다 건너 다 보내는 세상에서, 이 땅 안의 교육 개혁은 요원하기만하고, 복잡한 마음에 '밥이 우선'인 민초들로 빽빽한 세상을 내려다보는 남한산성의 과거와 오늘은 여전히 갑갑하고 답답하고 막막하기만하다.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과거지사를 모티프로 잡았을 뿐, 역사 소설을 쓴 것은 아닌 것 같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14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소나무집 2007-09-06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남한산성을 별로 재미없게 읽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평이 너무 좋다 보니 몰매 맞을까 봐 리뷰도 안 썼지요.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저도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서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데요.
남편은 재미있다 하길래 남자들은 다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님은 아니셨군요.

글샘 2007-09-11 09:34   좋아요 0 | URL
동감이군요.
김훈을 읽다 보면, 남자들의 시선이 참 쿨하고 멋지게, 마치 만화나 영화의 가장 멋진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가는 구수한 담배냄새의 추억처럼 실루엣을 드리울 때가 있긴 합니다만...
뭐, 소설의 긴박감이나 내달리는 이야기가 없고 해서,
건조한 날 남한산성에 올라 뙤약볕에 주저앉은 피로감이 들어 투덜대본 글입니다.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비? 아빠나 아버지도 아니고?

이런 단어를 찾아 썼을 땐,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인간의 언어는 ‘어휘 목록’과 ‘문법’을 추상화할 수 있다.
이 양자는 뚝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내용이 목록이라면 형식이 문법인 것이다.
어휘들이 쓰이는 양태를 연구하면, 그것이 문법의 범주에 들어와 의미론을 이루기도 하지만, 어휘는 필요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지만 문법을 그닥 잘 변하지 않는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 일은 ‘결핍’의 문법 구조를 재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아프고 외롭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의 쓸쓸함을 감지하게 한다.

그는 결핍의 문법구조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삶의 목록’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그는 날마다 편의점에서 갖가지 사물들을 삶을 확인하듯 사가지고 나오는 사람이고, 옆방의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들을 시시콜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또 그는 편의점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고, 똑같은 방의 ‘목록’을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래서 그는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온 방을 물고기 비늘처럼 소설의 어휘들로 가득 메운다.

모든 부드러움에는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잔인함이 있다.

이 말만큼 결핍의 문법을 강하게 표출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까?
‘결핍’의 눈으로 보면, ‘가진자’들의 부드러움은 ‘잔인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의 결핍의 근원은 ‘아비’로 보인다. 차마 아버지로 부르기도 싫은 ‘아비’
어느 날 문득 나타나 텔레비전 앞을 차지하고 앉은 ‘아비’

그러나 그 사라진 자리는 무엇으로도 치환할 수 없는 ‘아비’

그래서 그에게 아무리 많은 목록의 인생이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쳐 나가다 자동차에 부딪치고 마는 인생처럼 ‘결핍’은 목마름은 충족되기 힘든 근원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김애란의 소설은 '가슴아림'으로 기다려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