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목례 애지시선 7
김수열 지음 / 애지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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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인 김수열의 시를 읽다 보면,
거긴 아직도 아물지 못한, 아니, 한 번도 이야기 되어보지 못한 4.3이 펄뜨덕거리면서 살아있다.

4.3을 뺀 제주도는 섬이 아니다. 삼다도라 여자가 많은 이유를 누구라 물어 보던가.
정뜨르 비행장 활주로 아래서 아우성치는 뼈들의 소리가 그의 귀엔 아직도 들린다.
사진 넉 장으로 남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과, 비명횡사한 죽음을 들려주는 제주도 방언이,
마치 알아듣지 못하는 그만큼의 거리감이 뭍 사람들과 섬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음을 역설하듯이.

그렇다고 그의 의식이 4.3의 60년 전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변에서 온 처네의 허벅지를 보면서, 진열장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여자를 보면서, 가래떡을 건네주던 정선역의 그 할마시와 그가 후원하는 트르옹을 통해서 없이 사는 사람들, 그렇지만 결코 없이 여겨서는 안 되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는 잊지 않고 시로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이 따스하고 때론 귓불을 화끈하게 달아 오르게 하는 죽비소리같은 시들 사이에서,
차라리 시를 던져 버리고 싶던 순간들을 눈물로 그리기도 한다.

오른쪽 손목 아래가 없는 우리반 이윤이의 손을 덥석 잡고 뭉툭한 손목에 스스럼없이 입맞춤하기 전에는, 나는 선생이 아니다.고 할 때만 해도 그는 애정 가득한 시인의 눈이었지만, 김선일의 죽음 앞에서 더 많은 젊음을 이라크 땅으로 조공하려는 '조국' 앞에, 그는 <시여, 차라리 죽어 버려라!>하고 좌절하며 비통해 한다.

낡은 것들 가버린 자리에 새로운 것들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아, 전혀 보이지 않을 때 편두통은 온다...고 해서 전망 부재를 안타까워하지만, 정말로 낡은 것들이 지배하고 있으면서, 앞으로도 낡은 것들은 점차 칼날의 예각을 세워 덤벼들려는 세상임을 직시할 때, 아득한 섬나라 제주에서도 그는 편두통을 느낀다.

꽃나무란 합성어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나무 앞에서, 그 꽃나무보다도 더 아름다운 젊은 아이들 앞에서, 마냥 웃고만 싶은 것이 선생일진대, 감옥에 가고, 가난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 앞에서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는 그는 또다시 선생이기를 부정한다.

산다는 일은 이렇게 고개 숙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목례가 되었든, 반성이 되었든, 아니면 회한의 고개 숙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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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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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책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거 같던 차에 읽게 되었다.

1억원인가 하는 세계문학상에 당선된 작품이란다.

이 책의 미덕은 인생의 다양한 면을 축구에 빗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지나치게 억지로 이끌린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책의 한계는 작가의 의식이 뒤떨어진다는 데 있다.
어디 가서 세미나 한 번 들으면, 가족과 결혼에 대하여 이 정도는 문제 의식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보기엔 그는 지독한 마초인지도 모르겠고, 결혼을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이 소설을 썼다면, 결코 이렇게는 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여자랑 알게 되었는데, 그 여자가 축구를 졸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여자가 좋아하는 팀은 바르셀로나 팀인데, 스페인으로 치자면 '한국의 광주'같은 아우라를 가진 도시다.
그 남자가 좋아하는 팀은 마드리드 팀인데, 여긴 서울이나 마찬가지다.

아무튼 그 여자는 커피 한 잔을 미끼로 그 남자를 침대로 유인한다.
그 남자는 침대에서 흡착판같고 부드러운 섹스를 경험한다.(이런 것은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인 그의 시각을 감출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나서 그 여자와 결혼하지만, 그 여자는 일부일처에 만족하지 않는다...

문제 의식이 참신하다고 볼 수 있고,
축구에 빗대는 그 표현 기법이 제법 매력적이라 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결혼과 육아에 대하여...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축구만 못하다.

축구는 어쨌든 경기의 <종료>가 있으며, 게임은 일회성에 머물고, 축구의 승패는 관객이나 선수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혼은 종료될 수 없으며(헤어진 후에도 이혼이란 형태로 남는...) 일회적 행위가 아니고, 결혼과 육아는 인간에게(특히 아동에게) 전부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인데,
멍청하게도 두 남자가 갈등을 일으키고, 아기까지 낳아서 딴나라로 튀어버리는 후반부는 도대체 이 소설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놈현스런 우려까지 낳게 했다.

앞부분에서 흥미진진한 축구 이야기들을 곁들인 것은 좋았는데, 이야기가 축 처지면서는 축구 이야기도 시들해졌다.

그리고 축구 선수들의 멋진 말들, 멋진 일화들로 소개한 것들도 그 말을 했을 때, 그 상황에서 빛나는 것들이었지, 불멸의 격언이 될 순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축구 이야기처럼, 운동장 하나에 몇 반이 뛰어 다니는 곳에서는, 학년 구분도 점수가 몇 점인지도, 오프 사이드나 각종 파울도 없다. 그저 종칠 때까지 뛰는 것이 재미고, 그저 종이 한 5분 늦게 치면 좋겠다... 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한 축구라는 그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결혼의 질곡, 결혼은 미친 짓일까? 여성 중심의 결혼 생활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작가가 이끌고 가기엔 그 이야기가 좀 버거웠단 느낌 지울 수 없다.

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꼬이고, 여러 집에서 아이를 낳고, 그러다 죽은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숱하게 보았다. 그 꼬라지를 겪은 여성들의 속은 얼마나 뒤집어졌을 것인가...
역으로 한 여성이 여러 남성을 꾀어 가족의 틀을 뒤집어 버리고, 그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이라는 역설적 이야기의 발상은 상을 받아도 마땅하게 여겨지지만, 역시 좀더 멋진 소설로 승화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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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 - 운영전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
조현설 지음, 김은정 그림 / 나라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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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와 연관 지어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 고전이란 면면을 보면 정말 웃기는 짬뽕과 자장이 천지로 들어앉았다. 성인들도 읽기 어려운 책들도 수두룩하고, 과연 이런 것들이 <상식>차원의 글인지도 의문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쉽게 고전을 읽힐 방법은, 그 고전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전공한 자가) 원전에 충실하면서 낯선 낱말을 흔히 쓰는 낱말로 바꾸어 내는 길이다. 거기에 적절한 시대적 배경을 담은 삽화까지 가미된다면 더 좋을 수 없겠다.

우리 고전은 거의 독해가 불가능한 책들에 낱말 주석을 붙여 내던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해두고 아이들에게 읽기를 강요하는 일은 읽지 마란 말보다 심하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만화로 그려져 나왔을 때, 아이들은 쉽게 고전을 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떤 만화들은 지나치게 장난기가 많이 들어 있어 개그 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가나 출판사의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멋진 책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전국 국어교사모임에서 그 첫번째 책으로 운영전을 풀어 내었다.

운영전은 한국 고전에는 드문 <비극>이며, 그 수준이 우아하다. 춘향전 같은 이야기가 평민의 이야기이면서 진솔하지만 지나치게 음탕한 측면을 가지고 있어 아이들에게 읽히기엔 적합하지 않기도 하고, 홍길동전의 앞부분(용꿈을 꾸었다고 대낮에 차를 가지고 온 춘섬이에게 임신을 시킨 일 등)은 성폭행의 제도화이기도 하다. 운영전이 그닥 쉽진 않지만 고졸한 조선 선비와 궁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담백하게 담은 이야기여서 충분히 교육적 효과도 높다고 하겠다.

이 책은 안평대군의 비극적 삶(세종의 셋째 아들로, 수양대군의 제물이 됨)도 잘 설명하고 있고, 궁녀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있다.

시를 쓰는데, 옆에서 먹을 갈고 초서를 휘갈기다가 그만 그 필세에 밀려 먹물 한 방울이 손가락에 튀었다.
이 먹물과 함께 운영의 가슴에 남은 진한 한 점의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그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도 한국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가?

한국의 미, 한국 문학의 품격을 어려서부터 읽게 되는 이런 일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중고생들 기말고사 끝나면 권해주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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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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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란 시트콤이 있다. '도시 여성들의 이야기'라고만 알고 있고, 리모컨을 돌리다가 만난 적은 있지만,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그 제목의 강렬함으로 제목은 알고 있다. 발칙하게도, 섹스란 말을 제목으로 쓰는 드라마라니...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오래 본 듯 하다.

처음 책의 표지를 떡하니 넘기니, 정이현이란 작가의 새침한 얼굴이 뺀질거리며 날 쳐다본다. 갑자기 뭔가가 들킨 것 같아서 얼른 페이지를 넘기고 말았다. 난 그런 눈빛이 늘 불편하다.

이 작가, 조금 잘 쓴다... 싶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줄거리가 너무 지겨웠다. 오은수가 십년 어린 태오를 만나는 일은 순정 만화를 많이 본 탓이지 싶었고, 우거지상을 하고 나타난 친구들은 사랑과 전쟁을 많이 본 탓일 듯하며, 가정에서 의미를 잃은 엄마는 박완서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 것 같고, 편집자 오은수는 그미의 이력을, 신발 끌며 걸어온 역사를 보여주는 인물인 듯 하고, 태오 말고 김영수는 그미의 주변에서 늘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는 숱한 '선보기용 남자'의 더도 덜도 아닌 익명성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간혹, 김광석의 또 하루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를 흥얼거리는 부분에서 제법이다가도,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는 '피터팬'의 독백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스무살, 그런 나이가 나를 지나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목구멍이 괜히 칼칼해진다...고 했는데, 나는 어제 저녁, 문득 길거리에서, 비내리는 도로 한 복판에서 이십 년도 더 된 <지랄탄> 냄새를 맡고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칼칼해지는 이유와 내가 칼칼해지는 이유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지랄같은 칼칼함은 같다. 그미라면 같이 마주앉아 쐬주 한 잔, 나눌 만 하겠다.

압구정까지 동행하기엔 거추장스런 반찬싼 보따리 짐같은, 그래서 가족 사진에서 자신을 오려내고 싶은, 가족이란 이름의 굴레와,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착취인 <결혼>에 대하여 저항하지만... 결국 중력은 모든 존재를 지구 가까이로 끌어 당기지 않는가.

"남들처럼"을 캐치프레이즈로 사는, 이름도 밋밋한 김영수, 한자로 써도 밋밋한 金永洙. 아, 그가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삶이, 다만 "남들처럼" 살고 싶었을 것이란 대목에선 목울대가 먹먹해진다.

서울 여자, 2006년의 서울을 사는 오은수가 그토록 멸시하던 <남들처럼>이 김영수 아닌 김영수는 그토록 살고 싶은 모토가 아니었는가.
그래, 모든 기준은 <헛것>이다.
아, 정이현이 좀더 쓰면 무시무시한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

마라톤이 인생을 닮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란 구절을 쓰는 30대는 가엾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거 아닐까? 마라톤에는 예정된 결승점이 있지만, 인생엔 없다. 마라톤은 뛰다 말 수도 있지만, 인생은 그게 안 된다. 다음 경기는... 없다.

여기든 저기든, 누구든 똑 같다. 인간은 제 누추한 육체가 머무는 바로 그 곳에 환멸을 느끼도록 세팅된 존재임은. 그래서 언제나 인생을 한 템포 지울 수 있는 <--- Backspace 버튼, 다른 키보다 자주 눌러야 하기 때문에, 두배쯤은 큰 그 버튼 위에 한 발을 올리고 살고 싶은 존재들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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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11-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제 누추한 육체가 머무는 바로 그 곳에 환멸을 느끼도록 세팅된 존재임은"
우와.....너무도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예요.

excel을 처음 배웠을 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1. 엄청난, 그 파워풀한 기능에 놀랐고,
2. "undo"에 반했어요. 인생에도 updo가 있다면!

글샘 2006-11-3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이런 점에서 정이현이란 작가는 왠지 호감이 가더군요.
잘난 체하지 않고, 몸으로 느낀 것들을 쓰는 것 같애서... 그래도 아직 만화같은 이야기들이 많긴 했지만요. undo... backspace... 하느님께서 이런 것을 우리에게 주셨더라면, 세상이 더 엉망이었지 않을까요?ㅋㅋ

22zero 2006-12-13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달님 말에 전적으로 공감입니다 ^^ 리뷰 읽으면서 마치 청량음료 한 잔을 들이킨 것 같아요 ^^

글샘 2006-12-1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은 감사합니다.^^ 근데 청량음료는 몸에 안 좋대요. ㅋ
닉네임이 쥑입니다. 된장마님.
 
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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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삼미 슈퍼스타즈에 열광했지만, 카스테라에 좀 물렸더랬는데, 핑퐁에서 다시 그의 힘을 느끼다.

핑,과 퐁,의 간격이 불러일으키는 소외와 배제의 간격을 느낄 수 있는 그는 소설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인에 가깝다.

왕따인 두 아이가 등장한다. 망치로 못을 박는듯이 얻어맞는 '못'과 모아이 섬의 석상처럼 얼굴이 독특한 '모아이' 두 아이는 얻어맏기도 하지만, 탁구를 만난다.

맑시즘 이후로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다는 인간 '소외'에 저항하는 박민규의 언어는 <배제>다.

나도 난쏘공을 가르치면서 그 사람들을 '소외'받는 사람들이라는 따스한 말로 설명하지만, 징글징글, 징그럽게도 박민규란 괴물은 그 난쟁이들이 배제되었다는 말로 현실에 차갑게 '얼음'을 부른다. 누구도 땡!을 외치지 않는 세상에서 계속 난쟁이들은 <배제>당한다.

나머지 비난쟁이들은 오로지 <누구나 다수인 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갈 뿐이다.>

조세희의 난쟁이는 공장 굴뚝에서 쇠공을 날리면서 허공으로 뛰어내리지만, 현대는 수시로 스피커에 대고 외친다. "내리실 분은, 버튼을 눌러 주세요..." 마리도 뛰어 내리고, 본의 아니게 9볼트도 미끄러져 내려가는 내리실 문.

요즘 마빡이라는 개그가 인기다. 마빡이가 성공할 수 있는 요소는 <자기 학대>가 아니다. 개그맨이 촌철살인의 개그를 순간적인 한 마디로 한 순간에 생각하기엔 세상에 재미난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그렇지만, 마빡이는 늘 몸을 괴롭히는 만큼, 시간을 번다. 내가, 헥헥, 누구게, 헥헥, 마빡이, 헥헥... 그 헥헥의 사이에 마빡이는 마빡을 때리면서 짱구를 굴릴 시간을 번다. 머리 좋은 놈들이다.

세상에서 늘 이기는 놈들은 한 타임을 번다. 허덕이며 협상에 딸려가는 팀은 늘 지게 마련인 법.

핑, 퐁, 핑---, 퐁---의 리듬은 마빡이를 떠올린다. 벌판의 탁구대는 바로 우리 삶의 단절된 대화인 듯 하여.

누구도 틀리지 않았지만, 언제나 틀린 곳으로 가는 세상.
독재자도 전범도 내가 그토록 미워하는 두환이도 따져보면 9볼트 전지에 불과하다.
다만, 그 9볼트를 직렬로 배치하는 것이 이기적인 인간들의 파시즘이다.

세계는 언제나 듀스 포인트라는 관조는 박민규, 그가 괴물에 가까운 소설가임을 보여준다.
독재자를 물리치고, 문민 정권이 들어선들, 어드밴티지를 딴 것에 불과하다.
다시 한나라당은 듀스를 만들고, 노무현 정권이 어드밴티지를 따 본들, 딴나라당은 끈질긴 듀스를 만든다.

독재시대에는 그놈의 듀스 만들기가 그토록 어려워보였건만...
노태우의 6.29라는 듀스 만들기에 온 국민이 얼마나 한판 승부를 이긴 것처럼 환호했던가 말이다.
탁구의 듀스와 세상의 징그런 뒷걸음질을 핑, 퐁, 핑, 퐁으로 몇 페이지 징하게 그릴 만치, 박민규는 배짱이 센 작가다.

사실은 모두가 공범이고,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조건 반사만으로, 우리는 삶을 사는 것 아닐까... 하는 반성을 날릴 줄 아는 작가. 조건 반사적으로 손이 나가는 핑, 퐁, 게임처럼, 우리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하여, 또 하루 멀어져 간다... 하면서 살고 있는 거나 아닌지...

인간은 진보하고, 진화하고, 발전해왔다고 착각하지만, 박민규는 비웃고 냉소를 날린다. uninstall! one shot!

<신은 80킬로밖에 못 달리는 오토바이를 만들어야 했다.>고...
인간은 조또, 너무 오바하면서 죽으라고 달리고 있다고... 박민규, 너는, 어디까지 갈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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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만루홈런 2006-11-29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삼미슈퍼스타즈를 보고선 읽는 내내 킥킥거렸고,
카스테라, 은하영웅전설, 그리고 핑퐁까지 쭉 읽어왔는데,
이번 핑퐁은 좀 이해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여러 사람들의 리뷰를 보니 다시 한번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민규를 괴물이라고 표현하셨군요..
어떤 사람들은 문학계의 '서태지' 한명 등장했다! 라고 하기도 하던데요..ㅎㅎ

아무튼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서 기분좋게 리뷰 읽고 갑니다..

글샘 2006-11-2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미슈퍼스타즈가 최고의 걸작이었던 것 같애요.
그렇지만 핑퐁도 꽤나 재밌습니다. 학교 이야기니깐요.
작가가 잘 아는 것을 썼을 때, 재미난 법이지요. 멋지지 않나요? 박민규...

역전만루홈런 2006-11-3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삼미슈퍼스타즈를 최고로 칩니다..
시간을 치약에 비유한 구절은 정말이지..ㅋㅋㅋ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라는 문장도 참 좋았습니다..
참, 그거 아세요? 어디 글에서 나온건데, '왕입니다요~' 카피문구 박민규씨가 만들었다는 것..^^; <은하영웅전설>후기였나..자세히 기억은 안 나네요..

글샘 2006-11-3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어느 하루 휴가 내거 자기 것으로 온전하게 만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병가를 한번 써먹어 볼까나?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