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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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란 꽃을 처음 들은 것이 남도 답사 일번지를 적은 유홍준의 글에서다. 담장을 넘은 능소화의 매력을 유홍준이 적었을 때, 그 꽃이 몹시도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엔 흔히 보는 꽃이지만, 능소화 줄기 따라 조두진이 이야기 하나를 엮어 냈다.

[도모유키]에서도 조선인의 눈이 아닌 일본인의 눈으로 임진왜란을 지켜보는 신선함을 보여 주더니,
[능소화]에서는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이 재미있으면서도 순애보를 읽는 맛을 보여 준다.

이야기가 어렵지 않고, 평범한 스토리여서 읽기 편하다.

멋을 한껏 낸, 꽃줄기 처럼 축축 늘어진 서체와 붉은 꽃잎들로 짓이긴 듯한 표지와 매혹적인 광고 글들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 아닐까 싶다.

조두진은 아직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작가기에, 별을 하나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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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스민 2006-11-2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뷰를 보고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도입 부분에서는 그다지 호기심을 자극 하지 않았는데 편지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 거짓일까?
저는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고요....
그 무덤의 주인이 주인공인지 너무 궁금합니다.

글샘 2006-11-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뚝 떨어져버린 능소화처럼 선연한 느낌의 소설이었죠.
반갑습니다. 쟈스민님. 무덤의 주인이 누구든, 그렇게 믿고 싶죠...ㅋㅋ
 
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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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태백 산맥의 해방 공간과 아리랑의 근대사, 한강의 현대사로 1세기를 아우르는 굴곡의 한국사를 정리한 분이다. 그의 이념 지향이 어떠한지는 알 바 없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태백 산맥에서 아리랑, 한강으로 갈수록 긴장감은 낮아지지만, 욕심은 커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소련이 무너지고도 십 년이 넘은 이제... 조정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한다.

그가 다루지 않은 <분단>이란 시공간적 억압 구조 속에서,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할 수밖에 없는 한 남파공작원의 감옥 생활과 전향 후의 삶이 없는 삶을 소재로 인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시작하든 <인간에 대한 탐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시간 수순으로 쓰여지든, 심리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든 말이다.

그 인간이 문제적 상황에 빠져있을수록 소설의 긴장감을 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긴장감도 애초에 부정당할 만큼 무서운 상황일 때에는 거리감과 이물감이 감동 사이에 끼어들어 감상을 방해하기 십상인 것도 있는데, 바로 분단 이후 간첩이란 이름으로 감옥에 갇혔던 장기수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분들의 삶은 <인간의 조건>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한 그것이었다.

사선을 넘어 다다른 인간들의 땅, 남조선에는 그들이 발디뎌 재길 곳 한 점도 없었다. 철저한 신고 정신에 의해 감옥으로 가고, 무기수로 언도되어 갇혀 있다가, 폭력배들에 의해 사상 전향을 강요받아왔던 날들... 그 날들을 인간의 삶이라고 차마 이름부를 수 없었다. 김하기의 소설이 그랬고,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이 그랬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남북 화해 모드는 그분들을 인간의 세상으로 내뱉게 만들었다.

본인의 뜻이든 아니든 내뱉어진 인간 세상은 그분들이 보기에 인간이 살만한 세상이 전혀 아니었다.

그곳 역시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시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호관찰이 지속되고, 온갖 협박과 회유, 생활의 불편이 앞을 가로막았다.
소련의 몰락과 북조선의 가난은 그들의 이념과 희망을 단칼에 싹을 잘라버릴만큼 냉혹했다.

그분들이 다시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 과연 작가가 의도한 대로 시민 단체와 아이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인가?

아이들을 끊임없는 경쟁의 컨베이어 벨트로 내몰고 있는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풍토에서, 국가와 자본이 권력과 금력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인간은 희망인 것일까?

그래서 작가는 제목에 연습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해답은 없지만, 인간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모색하는 <연습>이 인간의 삶인지도 모르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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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시선 229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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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보다 이 두 번째 시집이 내게 짝 달라 붙은 이유는 이 두 번째 시집이 훨씬 더 사물의 형상화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언어 유희에 지나는, 자기만의 경험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시를 싫어한다.

그런 시들을 읽다보면 내가 무식해 보여서 싫다.

김선우 시를 읽으면 거기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물들과, 직접 우리 몸을 훑어가며 그것들을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김정환 류의 시에서 몸이 등장하고 몸섞기가 시도될 때, 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여서 그랬는지, 그때가 더 순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선우가 땡그란 눈을 하고 바라다 본 세상 속의 몸들은 어차피 한 번 태어나고, 사그라드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이 '몸'에다가 온갖 추악스런 이미지들을 결부시켜 버렸다.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욕이 되고, 그 몸에서 나온 것들치고 아름답게 승화되는 것은 없었다.
그 몸이 늙어가고 죽는 것도 두려움의 하나였다. 어차피 태어나자 마자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이 생의 원리인 것을...

김선우는 이 '몸'을 새로이 감싸 안는다.

어머니의 폐경을 마지막, 죽음으로 인식하지 않고, <완경>이란 말로 삶의 사그라듦은 결국 인생의 완성이 아닌가 하는 새로운 시선을 보여 준다.

그의 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그래서 추악스럽지 않게, 그렇다고 그악스런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지도 않으면서, 그미는 자위를 함으로써 자연인이 되고, 자연에서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짐으로써 우주인이 되기도 한다.

이상이 69라는 다방을 운영했다지만, 69는 남녀의 신체가 거꾸로 엉겨붙은 껄쩍지근한 숫자의 조합이련만, 김선우가 노래하는 69는 신비롭고 오묘하고 신화 속의 할망들이 떠오르는 것은 역시 그미의 언어에 대한 통찰이 갖는 힘이 아닐까? 추하지 않은 인간의 몸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선을 배울 일이다.

송장 자세로 삶을 건너는 고즈넉한 휴식을 <내 죽음의 형식>으로 바라는 그미.
나무에게서 삶과 자연의 원리를 자연스레 도출하는 탁월한 시선을 거두는 농부.

69- 삼신할미가 노는 방, 이런 말투가 김선우를 읽게 만드는 힘일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고향집 안방에서 한낮을 백년처럼 뒹구는데 까츨하고 굽실한 희끗한 터럭 하나, 집어들고 햇살 속에 이윽히 뜯어보니 이것은 분명 그곳의 터억 어머니의 것일까 아버지의 것일까 오래 전 돌아간 조부모의 그것이 장롱 밑에 숨었다가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햇볕 쪼이러 시남시남 나와본 걸까 희끗한 터럭 집어들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사이에 마음이 뜨끈하게 여울져 오고 별안간 이 오래된 삼신할미 같은 방이 쌔근쌔근 더운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는 거라.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방이 무덤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르더니만 사방이 69 천지인거라 방구들과 천장의 69, 전등과 전등갓의 69, 문틀과 문의 69, 한 시와 두 시의 69, 이불과 요의 69, 자음과 모음의 69, 두 시와 세 시의 69, 얼룩들의 69, 얼룩이 얼룩을 낳고 얼룩 속에 제 몸을 비벼넣으면서, 쥐오줌과 곰팡이꽃의 69, 숟가락과 국그릇의 69, 주춧돌과 두꺼비집의 69, 옛날 옛적 산이었던 이 터와 지붕 얹힌 것들의 69, 죽은 것과 산 것들의 69, 어머니 태 속의 나와 어머니의 69

  그러고는 이 삼신할미 같은 방이 맨 나중으로 펼쳐 보여준 것은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69였는데, 흰머리 성성한 어머니가 외할머니 젖을 빨듯, 시든 아버지가 할머니의 젖을 빨듯, 이상하게도 자분자분 애틋한 소리가 온 방에 가득해져오는 거라 방구들이 천장에게, 모서리가 벽에게, 한 시가 두 시에게, 삶이 죽음에게 젖을 물리며 늙은 방이 쌔근쌔근 숨을 쉬고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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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비시선 194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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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사물들로부터 그미에게 매혹되어, 급기야는 그미의 시집까지 배달시켜 읽고 있다.

예전에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가득 빌려다 놓고는 아랫목에 배를 밀며 좁은 창틀에서 들어오는 사각형 네개짜리 햇살을 가득 받으며 읽어대둔 기억이 나는데, 요즘엔 택배로 내 자리까지 배달되어 오는 맛은 좀 꺼칠허다.

이 책은 오래 전 것이라, 내 손에 들어오는 데 오래 걸렸다.

김선우가 처음 쓴 시집이라 그런지, 요즘 쓴 글들에 비해서는 글들이 왠지 깃털에 양수도 덜 마른 새끼새들처럼 보이지만, 그미의 말 부려 쓰는 솜씨가 그대로 살아 있다.

서러워서 서른 살, 서른이 되는 해 이 책을 묶어 내면서 혼자서는 나름대로 서정에 겨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내 시집이 나온다면, 그 날 혼자서 이불 뒤집어 쓰고, 한참을 엉엉 흐느껴 울게 될지도 모르겠고.

서른이다. 공중에서얼어붙곤하던꽃들이부빙을이루며흘러갔다.나의혁명이몽환임을깨닫게되기까지,나의몽환을사랑하게되기까지오랜시간이걸렸다.그리고생각건대내가진실로사랑한것은모든생명이품고있는독기였으니,부디이시들이세상의소란에독이되기를...

이것은 그미의 후기다.

아, 태어나서 처음 쓴 시집에 후기를 쓰는 마음은 얼마나 떨릴 것인가?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모락마락 똥 한무더기 밭둑에 누곤 하였는데 어머니 부드러운 애기호박잎으로 밑끔을 닦아주곤 하셨는데 똥무더기 옆에 엉겅퀴꽃 곱다랗게 흔들릴 때면 나는 좀 부끄러웠을라나 따끈하고 몰랑한 그것 한나절 햇살 아래 시남히 식어갈 때쯤 어머니 머릿수건에서도 노릿노릿한 냄새가 풍겼을라나 야아 --- 망좀 보그라 호박넌출 아래 슬며시 보이던 어머니 엉덩이는 차암 기분을 은근하게도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알맞게 마른 내 똥 한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모락모락 김나던 그 똥 한무더기 생각하는 저녁,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도질 않고(양변기 위에서, 11쪽)

그의 시를 하나 베끼는 것으로 우리말을 푸지게 잘도 쓰는 그미의 능력을 찬양한다.

그의 시들을 읽노라면, 세상의 순환이 내 몸을 타고 돈다. 칠판에 콕 찍힌 한 점처럼 작은 우리 별에서, 나는 먹고, 싸고, 자는 사소한 존재이며, 내 어머니의 몸을 타고 난 내 몸은 다시 이 땅으로 들어갈 것인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할 따름임을, 그렇게 순환하는 <circle of life>을 세포 하나하나 느낄 수 있다. 고마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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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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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에, 김선우 글을 조금만, 정말 조금만 읽고 자려고 침대에 누운 채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책을 들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가, 혼자서 서성거리다가, 급기야는 맥주를 한 캔 들고 다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다 털고 말았다.

그의 글에서 나를 사로잡는 힘을 어떤 것일까?

그의 글은 깊은 사유의 결과로 나온 것이지만, 나에게 그 사유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글이 가진 힘은 사유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이가 엮어내는 글이기 때문에 우러나는 것일 것이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하여 사고하고, 삶의 존재 양태에 대하여 생각하고... 산다는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속세와 출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그의 빛은 아무래도 햇빛 보다는 달빛에 가깝다. 불에 비해 물에 가깝다.

같은 문제를 맞닥뜨릴 때, 나는 혼자서 길을 떠나고 혼자서 물음의 밑바닥까지 훑은 습관이 들어있지 못하다. 문제를 회피하고, 술기운을 빌려 우회하거나 건너 뛰어버리는 것이 내 존재 양식이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으면 부끄럽고, 한켠 그가 안쓰럽다. 내가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내 아픔까지 앓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없다. 그는 그것을 매 순간 깨어서 느끼고 나는 문득 느끼다가도 거기 천착하지 못하고 생활의 종이 되어 바쁜 체를 하며 살아갈 따름이다.

나 대신 생각해 주는 그가 고마워서, 그의 글을 읽으면 그를 놓지 못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칠판에 콕 찍은 것처럼 작은 이 별에서, 다시 작고도 작은 한반도의 남반부, 그 땅위에 꼬물거리며 기생하는 존재들이, 대통령을 뽑는다고, 내년에 뽑을 대통령이 못미더워서 벌써 간첩단 사건을 만들고 난리다. 미국은 그 큰 나라가 그 작은 나라에서 뭔가를 더 뺏어가려고 난리다. 작고도 작은 것이 서로 존재를 확인하려고 부딪히는 꼴을 보면 가소롭고도 가증스럽고 가공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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