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지금 날씨와 전혀 다른 제목을 가진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읽으면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

 

 

 

 

 

 

 

온 몸을 감고 눈 부분만 망사로 된 '부르카'를 입는 기분은 어떨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이도 있고, 중간 길이 치마를 입는 이도 있고, 남자 상인에게 발을 내밀며 신발 치수를 재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닫힌 공간에 있었다.

 

이제 겨우 2부를 읽는데, 1부를 읽는 동안 마리암이 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태어날 때부터 가여웠던 아이. 엄마를 좋아하고 아빠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였을 뿐인데, 사생아이기 때문에 마리암이 겪어야 하는 삶은 아팠다.

 

부인이 셋 이나 있는데 가정부를 임신시키고, 비겁하게 그저 가정부와 딸을 집에서 제법 먼 곳에서 살게 하고, 미안했는지 선물과 먹을 것들을 보내주지만 결국 모든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였던 나쁜 남자 잘릴.

 

열 다섯 살짜리 애를 마흔이 넘은 남자와 결혼시킬 때도 그랬다. 마리암이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잘릴에게 이러지 말라고 그랬더니 잘릴은 세상 고통 혼자 다 받은 사람처럼 마리암에게 이러지 말라고 한다. 잘릴은 그저 착하고 좋은 아빠로 남고 싶을 뿐이었고, 작은 선물 따위나 던져 주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나쁜 놈이었다.

 

아빠를 찾아 온 애를 문 밖에 세워두고 절대 들여보내주지 않던 나쁜 놈. 자신은 한없이 좋은 사람인 척 다정한 말로 마리암의 마음을 갖고 논 나쁜 놈.

 

결혼 장면도 충격이었다. 율법학자는 말한다. "이 남자가 당신을 원합니다. 반대의 경우는 아닙니다."라고. 미친, 어쩌면 남은 삶 전체를 함께 할 사람인데 여자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정말 물건 사러 온 것 같아서 기분이 싸했다.

 

게다가 아이를 유산하자(마리암은 열 아홉까지 임신과 유산을 5번이나 한다. 겨우 열 아홉에 말이다.),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는 마리암을 괴롭힌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고 남편의 시중을 드는 존재 그 이상은 아니었던 거다.

 

2부는 1부만큼 아프지 않아서 약간은 안심하면서 읽는데, 여전히 삶은 버거웠다. 이념이니 신앙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힘들고 아프게 하는 지 안타까웠다.

 

이건 아프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직 읽어야 할 페이지가 아주 많이 남아있지만 뭐라도 뱉어내지 않으면 너무 갑갑해서 힘들 것 같았다.

 

일단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시 책을 집어들어야겠다. 뭐라도 이야기하고 나니 좀 후련하다.

 

 

‘하라미(사생아를 비하하여 일컫는 말)‘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리암은 다섯 살이었다. - P9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 마리암." - P15

"나는 네가 아직 어리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제가 지금 이걸 이해하고 알았으면 싶다. 결혼은 늦출 수 있지만 교육은 그럴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정말로 그렇지. 라일라, 너는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알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쟁이 끝나면 아프가니스탄은 남자들만큼이나 너를 필요로 할 거라는 사실도 알지. 어쩌면 더 필요로 할지도 모르지. 여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는 성공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럴 수가 없지."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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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06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 페이지와 155 페이지의 인용문이 좋네요, 꼬마요정님.

꼬마요정 2019-09-06 14:43   좋아요 0 | URL
아프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죠? ㅎㅎ 초반부터 화가 났는데 갈수록 눈물이 났어요ㅠㅠ 남녀를 떠나서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해주고 존중해주고 더불어 살 수는 없을까요? 이런 우정과 희생이 참담한 현실 속에서 피어났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어요.

이제 허랜드 읽으려구요. 다락방님 글보고 샀어요 ㅎㅎㅎ
 

어릴 때 본 만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틱스 강'에 죽은 이가 빠지면 존재 자체가 소멸한다고.

 

살아있던 아킬레우스는 스틱스 강에 몸을 담가 아킬레스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불멸이 되었는데, 죽은 이는 존재 자체가 소멸된다니... 그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찾아 온 의문. 존재 자체가 소멸된다는 건 어떤걸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 경험한 일, 내가 맺어온 관계들...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라는 인식 자체도 사라진다는 걸까? 아무리 의심하고 의심해도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는,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말조차도 허공 중에 재가 되어버리고 말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존재 자체가 없다... 이건 또 '공(空)'과는 다른데 '무(無)'랑은 같은 걸까? 있던 존재가 없어진다는 건, 존재했다는 기억조차 사라진다는 걸까? 사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에서 잊혀지지만 영혼은 남아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도리천이든 어디든 있다고 생각했다. 귀신이 되어 이승을 떠 돌수도 있고, 천국에 갈 수도 있고, 극락에 갈 수도 있고... 이렇게 말이다. 주로 우리가 무서워하는 귀신들은 바로 이렇게 죽어 혼만 남은 존재니까, 잘은 모르지만 죽는게 끝은 아니라는 걸테다.

 

하지만... 소멸된다는 건, 무(無)가 된다는 건 어떤 걸까? 그 존재가 존재했다는 자체가 사라지는 건.. 그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억, 의식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걸까? 그게 가능한 걸까? 분자, 원자 등 우리가 물질의 크기를 나타내는 용어를 총동원해서 가장 작은 입자를 말한다 한들, 그조차 사라진다는 건데, 그럴 수 있는걸까?

 

나는 내 존재가 없어지길 바라는걸까? '아무것도 아니다'와 '없음(無)'은 다른걸까?

 

그렇게 생각을 하던 와중에 웃었다. 이런 게 집착인 걸까. 아 모르겠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또 웃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데, 나는 그냥 내가 정말 모르는구나..를 알 뿐이다. 다행이네, 모른다는 걸 알아서.

 

그리고 이렇게 웃고 있는 나도, 모르는 나도, 알고 싶은 나도 모두 나이지만 또한 지나가는 나라는 걸. 그래서 이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적어본다는 걸. 하지만 글로 적은 이 느낌은 또한 내가 방금 느꼈던 그 느낌과는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어 씁쓸해졌다.

 

나는 여전히 '나'라는 인간에 얽매여 있다. 내가 세운 기준에 미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그런 인간이 되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인간이 되면 뭐가 좋은걸까? 내가 기분이 좋아지나? 떡이라도 생기나? 아니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그런 인간이 될 수는 있는건가?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걸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은 한낱 먼지인걸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생각, 저 생각 떠다니다가 익숙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놀라 펄쩍 뛰었다. 아, 정말 놀랐다...

 

통화를 하고, 다시 생각하고 싶었는데 딱 저기까지만 생각나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갑자기 배가 고프고, 뭔가 먹고 싶고, 목이 마르고... 몸이 온 몸을 내던지며 나에게 원하는 바를 외쳤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위(胃)'를 다스려야 하나.. 였다. 무가 되든, 공이 되든 이 육신이 나를 부르는데 결국 난 존재가 없어진다거나, 공이 된다거나 하는 문제에 앞서 배고픔부터 달래기로 했다. 그게 사는 건가 보다. 이런 생리적인 현상들을 뛰어넘기엔 난 너무나 부족하니까.

 

시작은 참 커다랬는데... 마무리는 좁쌀만하네. 그래도 웃으며 끝내고 싶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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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는데,

 

오늘 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일이 있었다.

 

내가 그 일 전문가도 아니고, 큰 일이 난 것도 아니지만

 

혹시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서 예방하는 차원에서 거래처랑 통화하는데

 

상대방이 다짜고짜 큰 일 난 줄 알고 화를 내는 거다.

 

니가 잘못했니, 왜 일을 그렇게 하느니, 자신 없으면 딴 데 맡기라느니...

 

그러더니 병원 치료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끊기까지.

 

설명하면 말 끊고 화를 내서 일단 그냥 끊었는데.

 

자기가 화가 난다고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내용 아주 짧게, 나 기분 나빴다는 식의 말을 돌려서 짧게,

 

그리고 나를 못 믿겠다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최대한 짧게 보냈다.

 

답이 없다.

 

 

나 또한 그렇지만,

 

사람은 왜 자신이 걸려 있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것일까.

 

나도 다른 문제들에는 아주 관대한데

 

몇 가지 문제에서는 좀 심하게 예민해서 센 말들을 뱉어내고 후회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러지 않을 수 있을까...

 

 

남이 그러는거야, 내가 상대방 마음까지 돌봐줄 건 아니니까 흘려버리고

 

나한테 부당하게 한 건 그러지 말라 하면 되는데

 

내가 나한테, 남한테 그러는 건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이렇게 또 내 단점 한가득 본 느낌이다.

 

나한테 너무 가혹한 건 아닌가 싶다가도

 

순간 순간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에라도

 

 깨달음을 얻거나 고칠 점을 발견한다거나 대견한 점을 발견한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인 것 같아서 다시 즐거워졌다.

 

단순하게, 즐겁게, 편안하게.

 

요렇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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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엑스칼리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더 왕 전설은 많이 이야기 되지만, 또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다. 켈트 신화에 기원을 둔 이 이야기는 기독교와 만나 많은 부분들이 고쳐지고 덧입혀지고 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신비롭고 재미있고 새롭다.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원탁의 기사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모험담에 울고 웃다가 결국 모든 것이 바래져 먼지가 된다 할지라도, 아발론에 머물고 있는 아더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은 여전히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도 아니고 북유럽 신화도 아닌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남아 있는 켈트 신화가 어째서 지금도 영향력 있게 이야기 되는 것일까. 모계 사회, 궁정식 사랑, 성배를 찾는 모험... 그 옛날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그 운명 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EMK에서 야심차게 내 놓은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 역시 그런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아더의 이야기이고, 조금 더 길게 이야기하면 아더가 진정한 왕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더 길게 이야기하자면, 브리튼의 패권을 둘러싼 켈트족과 색슨족의 전쟁과 드루이드교가 새로운 신앙인 그리스도교에 편입되는 과정을, 각각의 인물들이 사랑, 우정, 복수라는 방식으로 엮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더 왕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데다 아더 왕 전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랜슬럿인 까닭에,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그 랜슬럿 역을 맡았기에, 내가 이 극을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고약한 스케쥴을 소화해가며 <엑스칼리버>를 보러 다니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케르눈노스를 상징하는 듯한 멀린이 갓 태어난 아더를 치켜들며 시작한다. 켈트 신화에서 숫사슴의 뿔은 죽음과 재생을 뜻하는데, 어찌 보면 '탄생' 혹은 '부활'을 나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열된 켈트 족을 통일하고 그들이 누린 영광을 부활시킬 왕의 탄생을 관객들에게 알리며 시간은 18년 후로 넘어간다.

(출처:이지훈인스타그램)

 

 

이제 18세가 되는 욱하는 성격을 지닌 아더는 마을 청년들과 검술 훈련을 하다가 급작스럽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런 아더를 랜슬럿과 엑터 경이 달랜다. 자연스럽게 마을의 리더 역할을 하는 랜슬럿은 귀여운 동생 같은 아더를 돌보는데, 사실 가슴 아픈 과거를 지닌 인물로 모두의 중심에 있지만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고독한 늑대, 외로운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다. 

 

열 여덟이라는 숫자는 이제 운명을 받아들일 때라는 뜻이기도 한 모양인지, 멀린이 나타난다. 멀린은 아더에게 그가 왕이었던 우더 펜드라곤의 아들이며, 이제 침략해 온 색슨족에 대항할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슴 속 분노의 정체를 알 길 없었던 아더는 그제야 자신이 왜 그런 분노를 갖고 있는지, 자신이 왜 이렇게 자랐는지 알게 되었다. 멀린은 분열된 영국을 통일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한 의도로 '검 뽑기'를 기획한다. 커다란 바위 위에 천 년 동안 꽂혀있던 엑스칼리버. 진짜 천 년동안 꽂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검에 전해져 오는 전설과 그 검을 뽑는 사람만이 중요할 뿐. 아더를 위한 검이었으니, 아더는 그 검을 뽑고 사람들은 그가 신이 정해 준 왕이라 믿고 환호한다. 랜슬럿은 그저 어린 동생으로 여기던 아더가 검을 뽑자 묘한 시기심과 질투, 당혹감에 굳어버리지만 왕의 아들, 엑스칼리버를 뽑았다는 명분에 기꺼이 아더 앞에 무릎 꿇고 그가 왕임을 인정해준다. 랜슬럿의 인정은 정말 중요했는데, 그가 무릎을 꿇자 모두가 아더를 왕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천 년동안 꽂혀 있던 검을 뽑았다는 소식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사는 기네비어가 자신들의 왕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한다. 그녀를 먼저 본 건 랜슬럿이지만, 기네비어는 랜슬럿을 지나친다. 기네비어는 운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영웅보다는 함께 나라를 풍요롭게 만들 왕을 기다리며 검을 뽑은 사람이 분명 잘 해낼 거라고 말하고, 아더는 그런 그녀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멀린은 마치 아버지처럼 웃으며 그녀가 너의 신부가 될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는 사이, 동쪽 해안에 상륙한 색슨족 대장인 울프스탄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학살하며 모르가나가 있는 수녀원을 파괴한다. '나는 왕의 딸이야!'라고 외치는 모르가나(여기서 모르가나는 우더 펜드라곤의 딸로 나온다)에게 수녀원장은 '니 아버지는 죽었어. 넌 누구의 딸도 아니야!'라고 한다.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모르가나는 순식간에 아비 없는 자식이... 좀 씁쓸했다. 극 내내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이 맞붙는데, 드루이드교든 오딘이든 다들 좀 미개하게 그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여튼 모르가나는 왕의 딸임을 밝히고, 왕의 성으로 색슨족을 안내하는 조건으로 포로가 되어 수녀원을 빠져나온다. 드디어 사랑하는 연인 멀린을 찾으러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더와 랜슬럿은 기네비어와 마을 여자들이 전투 훈련하는 곳을 훔쳐보다 딱 걸리는데, 랜슬럿이 능글맞게 여자들이 과연 남자들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까라고 하다가 기네비어한테 된통 혼난다. 난 이 때가 참 좋았다. 기네비어와 랜슬럿이 봉술 대련하는 장면 말이다. 마치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랜슬럿은 여자한테 졌다고 화내지도 않고, 바닥이 미끄럽다고 능청을 떨지만 기네비어를 인정해준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를 보고 싶어하는 여자들 데리고 칼 빌려서 우루루 맥주 마시러 가 버리는데, 일부러 자리 피해주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혼자 책임 지는 것도.

 

둘만 남은 아더와 기네비어는 분위기 좋았는데, 정찰 나온 색슨족 병사들이 이 둘을 덮치고, 검이 없는 아더는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고, 뒤늦게 달려 온 랜슬럿과 기네비어와 함께 색슨족을 물리치지만 아더는 의식을 잃고 만다. 칼을 기꺼이 빌려준 것은 아더인데, 랜슬럿은 아더가 다치는 바람에 혼자 욕 먹고, 좋아하는 술도 끊고, 오로지 기사로서의 삶만을 살기로 맹세한다.

 

아더의 전언을 들고 색슨족에게 돌아 간 울프스탄의 아들은 아더 펜드라곤이라는 이름을 던져 준다. 울프스탄 옆에 있던 모르가나 펜드라곤은 큰 충격에 빠진다. 자신이 어째서 수녀원에 버려졌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분노에 사로잡힌 모르가나는 아비의 죄를 부르는데, 그 분노와 원망, 차마 버리지 못한 사랑, 슬픔, 배신감 등이 뒤섞여 온 무대를 덮치는 듯 했다. 멀린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누던 행복한 때, 아버지를 원망하며 수도원에 갇힌 채 멀린의 생사도, 바깥 세상의 어떤 소식도 알지 못한 채 괴로워하던 때, 지독한 절망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 때를 떠올리며 용을 깨우는 주술을 행한다. 아비가 지은 죄 때문에 모르가나의 인생이 무너진 것이다. 심지어 믿고 사랑하는 멀린이 이 일을 주도했으니 그 배신감이란...

 

이제 캐멀롯은 색슨족을 막기 위해 진지를 구축한다고 바쁜 와중에, 의식을 되찾고 기네비어와 연인이 된 아더가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아더를 둘러싸고 그의 회복을 기뻐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모르가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용을 놓아주며 그 혼란을 틈타 도망친 모르가나는 캐멀롯에 나타나고, 잠재적 왕위 계승자이자 아더의 대척점에 있는 모르가나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감췄던 멀린은 그녀가 나타나자 어떻게든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 애쓴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누나를 보는 아더는 누나의 존재가 너무나 반가웠다. 일단 자신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을테고, 같은 아픔을 공유한 누나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르가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는데, 옆에 있는 랜슬럿은 진짜 관찰자였다.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칼에 손을 얹고 유심히 보며 모르가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치러지는 대관식... 아더는 저 높은 곳에서 드루이드교 사제한테서 관을 받고, 원탁의 기사들은 아래에서 검으로 맹세하고. 아니, 대관식을 꼭 해야했을까. 엑스칼리버 뽑고, 왕 되고, 원탁에 모여 기사들과 맹세하면 되는 것을 굳이 대관식을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관을 씌워주는 건 드루이드교 사제인 멀린이다. 모두를 위한 왕이 되겠는가. 하지만 이 극에서 왕이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옆에서 함께 하는 자가 아니던가. 원탁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아니던가. 물론 원탁이 예수 그리스도가 열 두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눴던 식탁이고, 열 두명의 기사가 열 두제자를 상징하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군림하는 분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마치 십자군을 보는 듯한 옷도 그닥 와 닿지 않았다. 아더는 마치 나폴레옹 같았고. 여튼 아더는 그렇게 왕이 되었다.

(출처:텐아시아)

 

2막은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결혼식 무대는 정말 화려하고 예뻤다. 하얀색에 금빛이 뿌려진 옷은 아더와 기네비어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가면을 쓴 듯, 둘을 보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짓는 랜슬럿이 짠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술을 권해도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아더를 지키던 그는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기네비어에게 혼자가 편하다며 미소를 보낸다. 원하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와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니까. 아더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면서 자연스레 기네비어에 대한 마음도 깊어졌을테고, 그런 마음은 품어선 안 되기에 랜슬럿은 더 깊은 침묵으로 마음을 숨기고자 한다. 진실한 사랑은 원한 적도 없다는 그 체념과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갈망하는 마음... 하지만 모르가나는 그 마음을 눈치채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운명은 원하는 걸 주지 않는다고.

 

엑터 경이 죽고, 색슨족 짓이라고 여긴 아더는 잠재된 용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흑화한 아더는 모르가나를 제외한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분노를 뿜으며 용의 불길이 커져가도록 내버려두고, 멀린은 그런 아더의 분노를 잠재우려 애쓴다.

 

색슨족은 쳐들어오고 자연스럽게 랜슬럿이 중심이 되지만, 역시 왕은 아더니까 그 명분은 어쩔 수 없었다. 중앙에 있던 그를 밀쳐내고 중앙에 서는 아더와 밀려나'주'는 랜슬럿, 그리고 어릴 때처럼 싸워보지만 결국 '져야만'했다. 1막 처음 아더와 랜슬럿이 대결할 때는 랜슬럿이 검을 쳐 냈는데, 여기서는 같은 초식(?)인데 일부러 쳐 내지 않고 왼쪽팔을 내줬다. 랜슬럿... 너무 짠하다.

 

솔직히 아더가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건 맞는데, 그런 폭력적인 아버지가 아닌 엑터 경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지 않았는가. 그 옆에는 엑터 경의 아들 케이도 있고, 엑터 경이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구해준 랜슬럿도 있었다. 모두가 아더를 지켰는데, 그리고 엑터 경은 모두의 아버지였는데 어째서 그렇게 혼자 괴로워하는걸까. 엑터 경이 죽자 랜슬럿은 크게 슬퍼하지만 바로 분노조절 실패한 아더 때문에 제대로 슬퍼하지조차 못했다. 아마 뒤에서 혼자 슬퍼했겠지...

 

아더가 모두를 멀리하는 사이, 급격하게 가까워진 기네비어와 랜슬럿. 사실 기네비어가 랜슬럿에게 반하는 장면 하나쯤 혹은 둘이 같이 부르는 넘버 하나쯤은 넣었으면 했다. 랜슬럿은 기네비어를 미친듯이 사랑하는데, 기네비어가 그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장치가 좀 부족하다고나 할까. 계속 아더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쓰는데, 어차피 먼저 맹세를 깨버린 건 아더야... 여기서 가장 행복하게 자란 사람은 어쩌면 아더 너 혼자일지도 몰라.

 

모르가나는 계속해서 복수의 덫을 놓고 아더의 파멸을 기대하는 한편, 멀린에 대한 미련도 놓지 못한 채 멀린의 사랑과 지식을 갈구한다. 그러고보면 켈트 신화가 모계 신화라 그런지, 이 극에서도 운명을 만들어가는 건 기네비어와 모르가나이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건 아더와 멀린이다. 특별히 랜슬럿은 가부장제와 기독교 때문에 튕겨나간 캐릭터라 그런지 좀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색슨족은 코 앞까지 왔고, 랜슬럿은 사라졌다. 기네비어에 대한 사랑을 감출 수도, 말할 수도, 단념할 수도, 가질 수도 없어 혼자 헤매고 헤매다 그녀와의 추억이 있는 곳까지 와 버린다. 혼자 외로워하고, 혼자 슬퍼하고, 혼자 아파하고, 혼자... 절규한다. 살아있다면 맹세를 저 버리게 될 것 같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데, 마침 기네비어가 구해준다. 랜슬럿! 그녀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은 이성을 날아가게 하고,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렸다. 그것은 칠흑같은 어둠 속 작은 불꽃이며,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애절하게 바라보다 격하게 끌어안는데 내 가슴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저 뒤에서 모르가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아더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버림받게 되었다. 자신이 멀린을 잃은 것처럼, 자신의 전부였던. 이게 바로 끝은 정말 클라이막스였다. 점점 고조되는 감정들이 뒤엉켜 선택을 요구했다. 벨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랜슬럿은 신께 용서를 구하고, 여전히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려고 한다. 죽음의 칼날이 내리치더라도 달게. 너의 분노가 그것으로 사라진다면... 하지만 아더는 분노 조절에 성공한다. 무릎 꿇은 랜슬럿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을까.

 

모르가나는 결국 절반의 승리만을 얻었다. 하지만 멀린의 사랑을 온전히 가졌으니 그것만큼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실, 좀 허무하긴 했다. 멀린의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으면, 차라리 모르가나가 아더를 죽이려고 하고, 그런 모르가나에게 기네비어가 활을 쏘고, 그 활을 멀린이 대신 맞으면 되지 않을까. 생 갈랑 버전을 이렇게 비틀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더 희생적이고, 더 극적인 결말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여튼 모르가나와 멀린은 서로를 품에 안고 안개 뒤 그들만의 세계로 가 버렸다. 물론 원래 멀린은 비비안의 성에 갇혀 있고, 모르가나는 아발론의 군주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 울프스탄의 공격은 실로 막강했고 아더는 고군분투하는데, 저기 나타난 랜슬럿. 맹세를 지키기 위해 달려 온 그는 비록 아더의 군대는 아니지만 아더를 지키는 형이었다. 아더를 베기 위한 검을 쳐 내고, 울프스탄의 검에 베인 그는 두 번째 날아든 검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것이 내겐 끝이었다. 수치 속에 사느니 여기서 죽을게란 말은 랜슬럿의 삶을 너무 아프게 말한 거라 눈물이 났다.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여 결국 죽음이 반가웠던 삶. 그 삶 속에 잠깐씩 머물렀던 행복이 그에게 위안이 되었기를.

 

랜슬럿이 나가면서 기네비어가 등장한다. 둘은 끝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녀라니. 전투 훈련은 왜 했냐고. 그러니까 결말을 바꿔야 한다고.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 알겠다고. 기네비어가 나중에 신에게 귀의해서 구원받는 것도 안다고. 하지만, 여기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라고 믿는 기네비어가 종교에 귀의하다니... 차라리 떠나지. 랜슬럿은 울프스탄으로부터 아더를 구하고, 기네비어는 모르가나로부터 아더를 구하고 떠나면 되지 않냐고. 왜 죽이고 수녀 만들고 그러냐고. 아더의 비극성에 희생당한 캐릭터가 되어 버려 안타까웠다.

 

결국 아더는 처음 칼을 뽑은 그 곳으로 되돌아간다. 처음보다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에, 우리네 삶이 담긴 듯해 울컥 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지치고 힘들고,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면 다 잃어버리고... 그래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 끝이 어떻든 끝까지 살아내었으니 훌륭한 것이라고.

 

 

전체적으로 무대가 정말 좋았다. 숲을 구현한 것이나 스크린 영상 등은 멋있었고, 전투씬에 많은 수의 앙상블이 나오니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정말 켈트 신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안개 낀 푸르름도 좋았다. 고대 영국은 이런 신비로운 분위기였을 것 같았다. 게다가 두 개의 층으로 대비하여 연출한 것도 괜찮았고, 무대를 깊고 넓게 쓰는 것도 좋았다. 물론 세종문화회관이 워낙 넓어 급하게 뛰어다녀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넘버들도 뭔가 켈틱하고 좋은데 좀 강해서 귀가 피로하기도 했다. 그래도 배우님들 연기랑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 재연 때는 조금 고쳐서 올라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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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2019-07-3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엑스칼리버도 꼬마요정 님 리뷰 글도 정말 방대하네요. ^^ 장엄한 장면에서 많이 감동하신 것 같아요. 대리체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꼬마요정 2019-07-30 10:46   좋아요 0 | URL
아더 왕 전설 좋아하고, 랜슬럿 좋아해서 객관적이지 못합니다^^;; 재미있는데, 서사적으로 조금 보충하고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낡은 느낌의 대사들도 바꾸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끔 돌이켜보면,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을만큼 놀라거나 웃기거나 한 일들이 왕창 일어나는 날이 있다. 난 자주 일어나는 편인데.. 아직도 잊지 못할 일들이 한가득이다.

 

비 오는 날 우산대만 남고 비닐이 날아간다거나, 입간판에 바지가 찢어진다거나, 덜 친한 사람들과 어색하게 이야기할 때 축구공이 날아와 정수리를 가격한다거나, 가파른 돌계단에서 구르는 데 낯선 남자가 구르는 날 발로 받쳐 준다거나, 하수구에 한 쪽 발이 빠져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든다거나, 사무실에서 나가려고 문을 여는데 갑자기 안 열려서 감금 상태가 되어 열쇠 수리공을 부른다거나...

 

적다 보니 너무 많아서 놀랍다. 더 있는데, 뭔가 계속 적으면 웃긴데 서글플 것 같다.

 

지난 21일도 그랬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뮤지컬 공연 예매해두고 당일치기로 다녀 오려고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하는데 띵~ 문자가 온 거다.

 

태풍 다나스 때문에 예약한 항공편이 결항되었으니... 어쩌고 저쩌고..

 

뭐? 결항? 나 어떻게 서울 가라고? 아니, 나 그거 스탬프 모아둔 거 쓴 건데? 스탬프 유효기간 다 되어 가는데? 아니, 일단 서울 가야하는데? 기차는? 버스는 늦을거고..

 

다행히 비슷한 시각에 출발하는 기차를 겨우 잡아타고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어플이 강요한 자리는 복도 쪽이었고, 난 부산에서 서울로 쭈욱 가는데 그 기차는 ktx지만 참 많은 곳을 들렀고, 서는 역마다 사람들은 바뀌고, 난 거의 모든 역을 지날 때마다 탁자를 접었다가 폈다가, 짐을 들었다가 놨다가, 다리를 접었다가 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해야 했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으나 역방향 외에는 없다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냥 주저앉을 수 밖에...

 

그렇게 힘들게 겨우 서울에 도착했는데,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밀려드는 그 습함이라니... 부산은 비가 미친듯이 퍼붓는 중이라 추웠는데, 여기는 더운거다. 엄청 습하게. 그래도 나는 더위에 강하니까. 아주 강한 자신감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5호선으로 갈아타고, 광화문 역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올라가는 순간, 읭? 비가 막 오는거다. 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서울은 비 안 온다고 했는데? 날 속인거야? 강수확률 7%에 비가 와도 되는거야? 순간 탈출한 영혼을 부여잡을 생각도 안 하고 멍 하니 있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 가 우산을 살 만한 곳을 찾았는데 없는거다. 

 

공연 시간은 다가오고, 사람들은 우산을 촥 촥 펴며 자신 있게 계단을 올라간다. 혹시 우산 얻어쓸 수 없을까 살펴보다가 결국 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뛰었다. 최단 거리는 여기서 여기야. 난 10센티미터짜리 힐을 신은 채 도도도도도 뛰어서 세종문화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비는 굵지 않았고, 거리는 짧아서 그렇게 젖지 않아도 되어 나름 행복했다.

 

 

마치 공연 보는 게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거 보려고 아침부터 이 난리를 치며 온 건가... 하는 기분도 들고. 하지만 표를 받고 극장 안에 앉자 행복해졌다. 그래. 이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난 온 거야. 우리 삶이란 다 그런거지.

 

무사히 공연을 다 보고 나오는데, 세상엔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맹목적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고, 나한테도 그런 면이 있고, 그게 발현되는 건 각자가 가진 상황에 따라 다른 거니까...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차여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다 내가 이해한다고...

 

허허허 또 비가 방울방울 내린다. 이쯤되면 비가 나를 쫓아다닌다고 생각해도 될라나...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또 깜짝 놀란다. 와, 진짜 인기가 많구나. 실물 보니 아이돌은 아이돌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공항철도를 타고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남아 비행기 시간을 땡겨볼까 알아보니, 내가 산 표가 실속이라 취소하고 재예매를 해야 한다고... 하아... 차라리 취수료 내고 집에 일찍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기존에 예매한 표를 취소하려니 폰으로는 안 된다네... 하아아아... 긴 한숨을 내뱉고 늘어선 줄 뒤에 선다. 그나마 내가 타려는 뱅기값은 취소하려는 표 값이랑 같아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겨우 겨우 표를 바꾸고, 한 끼도 안 먹은 탓에 고픈 배를 채워볼까 싶었더니 음식이 나오는 데 오래 걸린단다... 또 뱅기 시간을 너무 당겼는지, 여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혹시나 지연되나 싶어 살펴 보니 왠 걸... 지연이 없다. 다른 비행기는 대부분 지연인데 내가 탈 비행기는 정시에 떠날 준비를 마쳤다. 세상에, 1분 일찍 탑승이 뜨기까지.. 이야, 지연이 일상이었는데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이 태풍 때문에 난리 난 다음 날인데...

 

따뜻한 까페모카나 한 잔 마시고 허기를 달랠까 했는데, 얼음 동동 차가운 까페모카를 준다. 주문을 따뜻한 걸로 했는데요... 죄송해요. 다시 드릴게요.

 

까페모카... 너 마저도...

 

갖은 우여곡절 끝에 난 무사히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

 

공연은 만족스러웠는데, 있었던 일이 너무나 웃겨서 공연 후기를 쓰려다보니 공연을 보러 다녀 온 내가 마치 공연한 느낌이 들어 21일 후기가 되어 버렸다.

 

결국 저녁은 밤 9시 반에 돈까스 떡볶이를 먹었다. 아, 내 첫 끼... 너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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