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또 다른 꿈 속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악몽..(사느냐 죽느냐 중에서)

 

끝이 어떻게 될 지 알면서도 움직여야만 하는 한 인간의 삶.

 

이제껏 햄릿은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자신의 비탄 속에 갇혀 주위를 둘러보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뮤지컬 속 햄릿은 달랐다.

 

누구도 없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숙부의 반지를 받았다. 아들인 자신의 의견 따윈 상관없었다.

사랑하는 오필리어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스승인 호레이쇼만이 곁을 지킬 뿐. 그러나 그 역시 그저 지켜보는 자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는 오직 자신 뿐이라 여긴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세상을 저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름 아닌 먼저 죽어버린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자신의 슬픔을 보듬어주지 않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꼭 그 유령을 봐야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아들의 아픔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아들의 한(恨)이 그 유령을 쫓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아버지의 망령은 복수를 요구한다.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호레이쇼에게는 자신만만하게 아버지의 유령이라고 큰소리 치고 따라왔지만, 사실 의심이 들었을테지. 처음에는 주저하는 듯하다가 점점 흥분하여 열에 들 뜬 듯한 목소리와 상기된 얼굴,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곧이어 분노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외친다, 복수를. 결연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유령과 햄릿이 만들어내는 이 야릇하고 이상한 제의(祭儀)가 이제 햄릿의 운명이 비극으로 치닫는 주춧돌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햄릿은 미치광이 노릇을 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 클로디어스. 그리고 공모자는 누구일까. 어머니인 거투르드 왕비도 이 일에 가담했을까. 폴로니어스는? 어머니가 로젠크렌츠와 길든스턴을 불렀다. 광대 같은 놈들... 그들이 노리는 건 무언가.

그리고... 오필리어는...?

 

오필리어를 만나지 못하는 순간에도 햄릿은 그녀를 믿는다. 적어도 그녀는 순수하리라.

 

물론 그녀를 만나러가기까지 햄릿은 음란(?)한 말들을 내뱉는다. 오필리어의 임신과 관련한 암시일테지. 햄릿의 편지는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를 우습게 넘어뜨리고 구멍을 통해 오필리어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여전히 미친 척하며 기회를 엿보는 햄릿은 그녀에게만은 진실을 말하고자 하지만...

 

드디어 햄릿과 오필리어, 둘 만의 공간이다.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그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그녀. 그러나 둘만 있는 줄 알았던 그 곳에도 눈과 귀가 있었다.

 

책장에서 떨어진 책을 돌아보는 햄릿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난 1막에서 이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처음에 찾아든 놀라움에 뒤이어 재빠르게 배신감이 달려왔다. 그리고 분노. 순간 오필리어에게 어머니인 거투르드 왕비가 겹쳐진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원수인 숙부의 손을 잡은 어머니. 자신이 아닌 아버지의 손을 잡은 오필리어. 이제 오필리어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 줄 순간은 없다. 그러다 마지막은 체념... 이렇게 오필리어를 놓아버렸다. 이제 사랑을 죽였다. 복수를 방해하는 하나의 걸림돌이 사라졌다.

 

또 다시 세상을 저주하게 된 그 앞에 연극이 펼쳐진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그 배우들은 햄릿을 이리저리 뒤흔든다. 그리고 보여주는 극이 '리어 왕'. 자식을 배신한 아버지와 자식에게 배신당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막내 딸, 복수에 실패하고 죽어버리는 막내 딸... 햄릿의 운명이다. 이렇게 죽을 것이라면, 복수라도 완성해야지.

 

아버지의 죽음을 재연하는 연극이 왕과 왕비 앞에 펼쳐진다. 이제 복수의 명분이 세워졌다. 주저하며 미친 척하던 햄릿에게 복수를 실행해야 하는 때가 왔다. 허나, 정말 중요한 일이 남았다. 바로 어머니. 어머니는 공모자인가, 피해자인가.

 

어머니를 만나러 간 햄릿은 자신의 속마음을 쏟아내고, 어쩌면 복수를 멈출 수 있는 순간에 아버지의 유령이 다시 나타나 그를 미치게 한다. 어쩌면 아버지의 유령은 죄책감이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운명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사실, 여기서 난 햄릿이 그 커튼 뒤에 클로디어스가 있을거라 짐작하고 총을 쏜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그를 죽이겠다는 몸짓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폴로니어스가 쓰러지자 클로디어스가 아니라 놀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서 놀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극은 흘러간다. 자신의 아버지와 아이의 아버지 모두를 잃은 오필리어는 미치고, 레어티즈는 분노하고, 햄릿은 오열한다. 이를 기회로 삼아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제거할 또 다른 계략을 세운다. 치밀하고 비열한 행위 위에 쌓은 권력은 부질없다.

 

거투르드 왕비의 속마음은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아 역할 구상이 상당히 어려웠을텐데, 짧게 짧게 나오지만 그 순간 순간 속에서도 왕비의 마음이 잘 느껴져서 좋았다. 오로지 아들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움직인 그녀. 갑자기 왕이 죽고, 후계자인 햄릿이 즉위하기에는 세력이 없다. 이럴 때 손을 내민 건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 그는 햄릿을 아들처럼 여기고, 그의 즉위를 돕겠다 한다. 왕위 계승권을 넘겨줄 권한을 가진 거투르드는 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의 죽음이 자신을 아무리 힘들고 외롭고 슬프게 해도... 자신에겐 지켜야 할 아들이 있으니.

 

그러나 아들은, 한없이 이상적이고 순하던 아들은 돌변했다. 아버지를 잃어서? 사랑을 잃어서?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선왕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하는 그녀는 답답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같이 공부했던 로젠크렌츠와 길든스턴을 불렀다. 친구들을 보면 아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해서... 오필리어에게도 손을 뻗었다. 이 아이가 햄릿을 돌아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점점 클로디어스가 이상하다. 무언가 햄릿을 향한 적대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숨기는 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알 길은 없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알았다. 모든 진실을. 아들을 대신해 독배를 드는 그녀는 끝까지 우아했다.

 

원작에는 없던 '미안해 아들'에서 마음이 아팠다. 아들에게 힘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거기다 또 다시 아들을 혼자이게 할 수 밖에 없어 얼마나 미안하고 가슴 아팠을까.

 

보라색 혹은 자주색은 왕의 색깔. 왕비인 거투르드가 자연스럽게 보랏빛 옷을 걸칠 때, 클로디어스는 입어만 보고 걸어만 뒀다가 드디어 권력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입었으나,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2018년 첫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정말 재미있게 봤고, 많은 생각을 했다.

 

1/7 18시30분.

햄릿 - 홍광호

클로디어스 - 양준모

거투르드 - 김선영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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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메일에 요게 할인한다고 왔더랬다.

 

  애들이 좋아할 거 같아서, 냉큼 사서 동생네로 보냈다.

 

  울 조카는 와...한 달만 지나면 벌써 4년차가 되는구나.

 

 태어났을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4년차라니... 너도 이제 삶의 경력이 쌓여가는구나. 좋을 때다.

 

 

책과 시디와 뭐 여러가지들이 도착했나 싶더니, 까똑 하길래 폰을 봤다.

 

동영상에 조카가 커다랗게 자리하고서는

 

"이모~ 따랑해요~" 란다. 엄지랑 검지로 손가락 하트까지 양 손에 만들어서.

 

어찌나 귀엽던지...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이모 따랑해요~

 

그래~ 조카야~ 나도 너를 참 많이 따랑한단다...

 

자주 보고 잘 해줘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조카가 갓 태어났을 때는 동생이 걱정되어서 계속 찾아가고 자주 만나고 했는데, 조카가 좀 크고 동생도 다시 일하러 가고 하니, 각자가 바빠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보니 2017년이 새삼스럽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행복했고, 힘들었고, 우울했다가도 기뻤다.

 

아직 남은 2017년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1월에 했던 다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이 많은 책들을 다 읽겠다 다짐했다니... 하아... 한숨만 가득...

 

그러나!! 다짐이야 다시 하면 되는거고. 즐거워야 하는거고!!

 

진짜 남은 기간 동안 요건 다 읽어야지~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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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2018 : 아주 멋진 가짜 Classy Fake
김용섭 지음 / 부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자신의 개성을 지키며 다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세상. 멋진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혼자 살 수 없고, 자기 없이 전체로 살 수 없다. 그리고 인간만 살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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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공간을 울릴 만한 요란스러움이 없는

낮은 목소리라고 해서 가슴이 빈 것은 아닙니다." (p.19)

 - 리어왕 (펭귄출판사)

 

 

 

 

 

나는 정말 아부 못하는 것 같다. 분명 장점을 찾아내서 칭찬하는 말은 잘 하는데, 왜 아부는 못하는지... 예전에 어떤 선배가 "니가 하는 말은 다 진심 같아. 니가 말하면 다 진짜로 들려."라고 한 적이 있다. 처음에 그 말을 듣고 그게 무슨 말이지? 생각했다. 왜냐면 난 진짜 내 생각대로 말을 한 거니까, 당연히 진짜지. 뭐 가짜로 무슨 말을 해?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빈 말도 진심으로 들리면 진짜 아부왕이 될텐데.

 

 

 "뭘 해놓은 게 있어야지 행운도 따른다는 걸

저런 바보 녀석들이 알 턱이 없지.

저런 녀석들한테 현자의 돌이 주어진들,

현자는 가고 돌만 남을 거야." (p.36)

- 파우스트 2 (펭귄출판사)

 

 

 

언제나 내가 모자라다고 생각해서 뭔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해도 언제나 어렵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면 좋겠는데.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하는 순간마다 박살이 난다. 있는 자신감마저 쭈그러들 지경. 잘 한 것도 참 많은데, 잘못한 것 한 두개가 내 자신감을 눌러대는지. 그래도 계속 뭐든 쌓다보면 현자의 돌을 알아볼 수 있을까.

 

 

"산초, 시간을 넘어서는 기억이란 없으며, 죽음을 이겨내는 고통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기억을 잊기 위해 시간이 흘러가길 바라고, 고통을 끝내기 위해 죽음을 기다린다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를 연고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욕 따위는 제게 중요하지 않죠. 지금 같아서는 병원에 있는 모든 약을 써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을 듯하지만요."

 - 돈키호테 1 (열린책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시간이 지나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고통이든 다 흐릿해진다고.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겠지. 특히 마음이 아플 때 시간이 주는 약이란 건... 이런 게 아닐까. 처음 그 일이 있고나면 계속 떠오르고 떠올라서 마음이 아프고 힘든데, 시간이 지나면 가끔씩 떠올라서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 그나마 빈도가 줄어서 덜 고통받는다는 것. 치유되지 않은 고통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나마 강도도 약해진다는 것. 그래도... 죽을 때까지 아플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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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꿈 보는데...

이거는 완전 김유신과 김춘추의 사랑 이야기 같다.

아 웃겨.

둘이 너무 애틋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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