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너무 바빠서 통 책을 읽지 못했다.

 

숫자랑 씨름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일이 버거웠나보다. 책을 펼쳐 읽는데 같은 쪽을 계속 읽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한 달에 두 권 달랑 읽었다. 뭐, 그것도 장하다. 잘했어.

 

3월이 지나고 뒤치닥거리하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4월도 끝나간다. 이게 무슨...

 

책도 안 사고 한 달 반이 넘게 지나다니... (읭?)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장바구니에 있는 책들을 훑었다. 그 동안 사고 싶었지만 못 사고 담아두었던 책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머리가 정말 좋아서 읽는 것도 빠르고 이해하는 것도 빠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헛생각도 했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백 배는 빠른 거 같다. 슬퍼지려는 찰나, 그럼 뭐 어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이것도 병이려나.

 

솔직히 굿즈가 탐이 났다. 임시정부 컵과 컵받침. 너무 갖고 싶어서 이 책들을 샀다.

 

고려 열전이야 궁금하기도 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샀지만, 무도 한국사 열전은 순전히 굿즈 받기 위해 끼워맞춘 책이다. 재미있겠지만 갑신정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사는 솔직히 너무 우울하다. 순간 순간 승리의 순간들이 있어도, 그 안에 너무 많은 희생들이 울고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가해자들은 처 웃고 있는데 말이다.

 

마크 트웨인의 짧은 글들이라길래 <최면술사>를 읽었더랬다. 너무 재미있었다. 이게 뭐야, 대박.

이렇게 웃긴 사람이었던가. 물론 '붙일 수 없는 제목'은 좀 마음이 아팠지만.

일 때문에 짜증나고, 다 던지고 도망가고 싶었던 때 집어들었다. 아, 읽고 나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뭔가 치유된 듯한 느낌.

이럴 때 이 책을 집어든 난 역시 대단해.라고 생각하게 해 준 멋진 책이었다.

 

 

몰랐는데, 논란이 되고 있는 책인 듯하다. 이런 책은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책이라 출판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원만하게 해결되면 좋겠다.

솔직히 '한정판'이라는 건 엄청난 유혹이다. 갖고 있는 책도 표지나 출판사가 바뀌어서 '한정판' 뭐 이렇게 나오면 나도 모르게 또 사고 있는데, 이런 책은 오죽할까.

나도 어릴 때부터 신화, 전설 이런 이야기들 좋아해서 즐겨 읽고 보고 찾고 그러는데, 확실히 서양이나 일본 괴물, 귀신들에 비해 우리나라 요물들은 딱히 제대로 정리된 곳이 없는 것 같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전래동화집, 야담집들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최면술사>가 좋아서 이 책도 샀다. 얇고 가볍고 책표지도 좋고 버지니아 울프도 좋다.

흰 표지라서 그런지 백석 시인이 생각난다. 쌓인 눈을 푹 푹 밟으며 시를 읽어야만 할 거 같다. 하지만 추워서 시인지 주문인지 알 수 없을테지. 그저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 따뜻한 방 안에서 고구마나 귤을 먹으며 만화책 보는 게 젤 행복한데... 다행히 난 부산에 살고, 부산에는 눈이 잘 오지 않는다. 쌓일 일은 거의 없다. 쌓여도 곧 녹는다. 흔적도 없이.

 

 

조셉 캠벨, 조지프 캠벨... 뭐가 맞는지 예전에 읽었는데 다 잊어버렸다. 요즘 들어 자주 잊어버린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단어가 생각이 잘 안나서 그.. 그.. 이러다가 풀어버리거나 던져버린다.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건지, 나이가 들면서 내 시냅스들이 끊어진 건지... 소중한 시냅스들아... 제발 계속 딴딴하게 연결되어 있어다오.

여튼, 난 신화가 좋다. 신화가 지배계급 이야기라든지, 이데올로기라든지, 그냥 옛날 이야기라든지 다 상관없다. 난 어릴 때부터 신화를 읽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모두 각자의 모험을 하고, 각자의 벽을 넘고, 각자의 틀을 부수고, 각자의 뿔, 솥, 성배 등을 찾는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는 이카로스처럼 바다에 떨어질 수도 있고, 헤라클레스처럼 미치광이가 될 수도 있다. 곰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알에서 태어난 이가 왕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에게는 어머니, 여신들이 있다.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2권짜리를 살 것인가, 한길사에서 나온 10권짜리를 살 것인가. 다음날 받을 수 있다길래 한길사 책을 샀다. 원두도 같이 구매해서 빨리 받고 싶었...

쓰다보니 말을 잇지 못하겠다. 저것이 내 진짜 속내였구나. 사실 2권짜리보다는 10권짜리가 더 알차겠지라고 막 합리화했는데, 생각해보니 동서문화사 책 정말 두꺼울 것 같다. 일단 1권부터 읽고 생각해야겠다. 드디어 <겐지 이야기>를 읽게 되는구나.

 

책이란 참 오묘하다. 읽어도 좋고 보고 있기만 해도 좋다. 밥 안 먹어도 배 부른 느낌. 그냥 책 냄새도 좋고 편안한 기분이다. 내용을 이해하든 못하든 그 안에서 내 마음이 위로 받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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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19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이 좀 들겠지만, 한길사 판본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두 판본의 만듦새를 비교하면 한길사 판본이 더 좋죠. 10권짜리 한길사 판본을 모으면 책등에 그려진 그림이 완성된 형태로 나오는데, 직접 보면 소장 욕구가 생깁니다. ^^

꼬마요정 2019-04-19 17:3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좀 전에 1권 받았는데 정말 소장각입니다. 진짜 이뻐요 ㅎㅎ 근데 10권이면 가격이...(ㅜㅜ) cyrus님께서 추천해주시니 더 더욱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ㅎㅎ

북프리쿠키 2019-04-20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겐지이야기를 시작하시다니 결딴이 부럽습니다 ㅠ

꼬마요정 2019-04-20 17:58   좋아요 1 | URL
음.. 시작은 하지만 끝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ㅎㅎ 뭐 어때요, 삶의 끝자락에 이를 때까지 못 읽을 수도, 다 읽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못 읽는 책이 훠얼씬 많을텐데요 ㅎㅎ 맛이라도 보려면 한 장이라도 시작해보려구요 ㅎㅎ 북프리쿠키님도 같이 읽어요 ㅎㅎㅎ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제우스는 어머니 가이아가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돌을 먹이고 간신히 살려냈다. 후에 포세이돈, 하데스와 더불어 크로노스 및 티탄 족들을 제거하고 올림포스의 최고신 자리에 오르게 된다.

‘시간’을 자신의 발 아래에 놓고, 최고의 상징인 번개를 휘두르며 대지모신이었던 헤라를 자신의 아내로 둔 신, 제우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영국 브리튼 족장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용맹했던  왕이 있었다. 제우스처럼 숨겨졌다 신검 엑스칼리버를 뽑아 왕이 된 남자, 아더. 그는 드래곤을 무찌른 일족이자 왕이었던 우서 펜드라곤의 아들이지만 잘못된 욕망 속에 잉태된 씨앗이었다. 그리하여 그 죄 때문에 엑터 경의 집안에서 아주 평범하게 자라게 된다.

형인 케이의 시종으로 엑스칼리버를 뽑기 위한 대회에 가게 된 아더는 속죄의 길을 걸어야 하는 멀린의 도움으로 왕의 검인 엑스칼리버를 뽑게 된다. 브리튼 최고의 기사인 고르 왕국의 멜레아강조차 뽑지 못한 검을 아무렇지 않게 뽑아 든 아더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 명분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궁정에서 자라지 못한 아더는 오히려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감히 상상도 못한 채, 그 운명이 시키는대로 왕이 되었지만 진정한 왕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켈트 신화에서 사후세계로도 읽힐 수 있는 고르 왕국. 그 왕국의 왕 혹은 왕자인 멜레아강은 일종의 하데스이다. (극 중 모르간이 낳는 모드레드 역시 죽음, 하데스로 볼 수 있다.) 하늘이 내린 왕 아더와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멜레아강. 지상은 아더의 지배 하에 있으니 멜레아강은 당연히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흰 손의 귀네비어. 아더는 엑스칼리버를 뽑기도 했지만, 반드시 그녀와 결혼해야만 브리튼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원탁을 가진 그녀는 켈트 족 전설에 따라 왕을 정하는 여신의 대열에 있다. 귀네비어는 스스로 아더를 왕으로 선택하고 캐멀롯은 아더왕의 근거지가 된다. 그러나 귀네비어는 왕을 정하는 여신이라 필연적으로 아더의 후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캐멀롯과 원탁이 파멸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멀린은 정해진 운명 앞에 고개 숙인다.

 

그리고 아더와 귀네비어 앞에 나타난 모르간. 그녀는 멀린과 같은 예언자이자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다. 아더 왕 궁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가 귀네비어라면, 가장 매혹적이고 멋진 이는 모르간이었다. 정해진 운명에 이끌려가지 않고 그 수레바퀴를 부수려고 했던 여자. 그 끝이 파멸이든 실패든 상관없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돌진하는 카리스마 가득한 마법사.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 이그레인이 아버지의 모습을 한 우서와 동침한 사실을 알고 고통스러워한다.(원전에서 이그레인은 우서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 그리하여 복수를 꿈꾸며 계략으로 아더를 파멸시킬 모드레드를 잉태한다. (물론 원래는 아더가 모르간이 아닌 다른 이복누이 모고즈 혹은 안나와의 사이에서 모드레드를 얻지만. 게다가 말로리는 틴테절 공작이 죽은 후 우서가 이그레인과 관계를 가져 아더를 잉태했다고 변명한다.)

 

멀린이 운명을 따르며 순종하는 편이라면, 모르간은 그 운명을 거스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운명이 정한 왕 아더가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걸고 한 선택들이 쌓여 브리튼의 진정한 왕이 되기까지를 그린 이야기인 것이다.

 

모르간은 복수를 위해 멜레아강을 이용하고, 첩자를 귀네비어에게 붙여 랜슬롯과의 사랑을 부추기며 아더와의 사이를 이간질한다.

 

진짜 부모의 사랑은 받아보지 못하고, 언제나 모자란 듯한 형 케이를 보살피며 살아 온 아더는 얼떨결에 운명에 떠밀려 왕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오른다. 때는 색슨족이 쳐들어 와 각종 전투가 난무하고, 로마의 횡포로 백성들은 곤궁했으며 브리튼인들은 여러 갈래로 찢어져 서로와 다투던 때였다. 그저 검을 뽑고 원탁을 얻어 그냥 왕으로 안주할 수도 있었을텐데, 아더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진정한 왕이 되고자 노력한다. 갑자기 짊어지게 됐음에도 막중한 왕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하며,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게 됐을 땐 깊이 절망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귀네비어는 자신이 아닌 랜슬롯을 선택하게 되고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 아더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모르간과 멜레아강의 계략으로 납치 된 귀네비어를 구하기 위해 랜슬롯은 성배를 버리고, 아더는 배신당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안고 멜레아강이 귀네비어를 감금한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보게 된 잔인한 진실. 운명 따위 벗어던지고 자신의 충동대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더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귀네비어, 랜슬롯 둘 다를 너무나 아꼈으니까.

 

그리하여 멜레아강의 성에서 있었던 일은 없던 일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귀네비어의 부정을 알게 되고 만다. 귀네비어조차 부정하지 않는 현실 앞에 아더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지만 그는 누구도 하기 힘든 선택을 한다. 그녀를 용서하는 것.

 

그리고 복수를 원하는 모르간 역시 용서한다.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았던 그녀를, 자신이 알지 못하는 추억을 간직한 그녀를, 자신을 파멸시킬 아이를 가진 그녀를.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성배를 가져야 할 이는 바로 아더가 아닐까. 누구보다 순수하고 누구보다 선하며 누구보다 아량이 넓고 누구보다 훌륭한 기사.

 

 

아더는 실제로 색슨 족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엄청난 무공을 자랑하는 기사들이 따를만큼 카리스마 있는 족장이었다. 그런데 색슨 족과의 전투를 보여주지 않고 대사로만 이겼다고 처리해서 너무 당황했다. 아더의 고뇌가 이어지다 1막 마지막에서 왕으로 거듭나며 2막에서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줘야, 후반부로 가면서 운명을 극복한 영웅을 넘어선 한 인간 아더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끊임없이 절망이 주어지고 그로 인해 고뇌하는 아더만 보여서 너무 안타까웠다.

 

이제껏 아더왕 이야기에서 가장 불쌍한 이는 멀린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아더가 제일 불쌍했다. 원한 적 없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었던 그는 주어진 운명을 온 힘을 다해 만들어 간다. 힘든 선택을 해야할 때마다 자신의 의지로, 양심으로, 영혼으로 최선을 선택한 그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준 것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을지는 몰라도 그 운명을 이끄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을. 거대한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방향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아더, 모르간, 멜레아강 정말 소름 돋았다.

 

아더 한지상

모르간 박혜나

멜레아강 김찬호

귀네비어 이지수

랜슬롯 장지후

멀린 지혜근

(2019.04.06 7시 충무아트센터)

 

* 오늘 전화를 받았는데, 색슨족과의 전투씬이 장비 문제로 날아갔다고... 어쩐지 대사로만 처리하는 게 어이없다 생각했는데 사고였구나. 다시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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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로맨티스트는 드라큘라였다. 오직 사랑하는 여자의 구원 때문에 신을 버리고 홀로 그 시간의 대양을 건너 온 남자. 그 여자를 위해 자신의 영혼마저 버린 그 남자.

 

드라큘라가 자신의 사랑이 구원받지 못하자 순리를 거스르고 신을 버렸다면,

 

여기 이 남자 토드, 죽음은 오직 한 여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순리를 거스르고 인간 세상에 개입한다.

 

천사에겐 행복, 악마에겐 고통, 인간에겐 사랑...

그렇다면 완전한 소멸만이 목적인 죽음에게 '그건' 어떤 것일까.

 

그렇다.

 

이 이야기는 엘리자벳이 진정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의 삶에 발을 들이며 상처 받으면서도 끝까지 그녀를 기다린 토드와 자신의 삶을 진정 사랑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발버둥치지만 결국 의무라는 굴레를 끝내 벗어던지지 못해 괴로워하던 엘리자벳이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장대한 드라마인 것이다.

 

이야기는 루케니의 재판으로 시작한다. 루케니는 왜 엘리자벳을 죽였는가.

 

광기에 휩싸인 채 루케니는 항변한다. 죽음이 배후라고. 엘리자벳은 죽음을 사랑해서 스스로 죽음을 향한 것이라고.

 

자유로운 아버지 밑에서 자유롭게 자란 엘리자벳은 말을 타고 개구리를 잡고 외줄 타기를 즐기는 말괄량이이자 바이에른의 어린 공주였다. 외줄을 타며 놀던 그녀는 그 아슬아슬함을 즐기다 땅에 떨어지게 되고, 오로지 존재의 소멸이라는 목적을 위해 그녀를 찾아 온 토드를, 그 존재 자체를 알아보고 동경한다. 토드는 자신의 의무이자 목적을 잊어버린 채 자신을 알아보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이름을 불러줘서 꽃이 되었다는 시처럼, 어린왕자를 기다리던 여우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에겐 공포이자 존재 자체가 허무였던 죽음에게 의미가 생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 어쩌면 그것은 삶의 의지, 어쩌면 그것은... 자유!!

 

그토록 삶을 사랑하고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만든 건 그 아름다운 외모가 아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엘리자벳 역시 죽음이라는 존재를, 다른 세상을 알았으니 이제 이 세상에 완전히 속하기는 어려웠을테다. 다른 세상에 한쪽 발을 내디딘 채 언제나 가슴 한 쪽에 채울 수 없는 갈증을 안고 살아야했다. 사랑한다고 생각한 요제프가 건넨 목걸이는 너무나 무거웠고, 결혼 서약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신 앞에서 다른 남자와의 사랑을 맹세하는 엘리자벳의 대답을 듣는 토드는 상처 입은 야수마냥 웃는다.

 

마지막 춤은 살아있는 엘리자벳과의 마지막 춤이었다. 엘리자벳이 원하는 것을 엘리자벳 자신보다 더 잘 아는 토드는 상처 받았음에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만, 삶을 사랑하는 그녀는 선뜻 죽음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겠다는 의지는 그녀의 삶의 근원이자 불행의 시작이었다.

 

황실의 삶은 힘들었고, 제국을 상징하는 대공비의 힘은 너무나 강했다. 황제조차 마음대로 하는 권력을 가진 소피에게 엘리자벳은 단지 황실의 꽃이자 후계자를 생산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믿었던 요제프가 자신이 아닌 어머니를 선택하자 엘리는 요제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한다. '난 나만의 것'은 믿었던 사랑이 자신의 편이 아니었음을,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가야 함을 알게 된 그녀가 희망이 없는 곳에서 간절하게 부르는 주문이다. 그리고 그 주문은 토드를 움직인다.  

 

하지만 여전히 소피의 힘은 강했다. 아이들을 빼앗기고, 꼭두각시마냥 보이는 삶을 살던 엘리자벳은 이런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님을 깨닫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고, 소피에게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처지 같은 헝가리를 지원하고, 요제프를 소피에게서 떼어놓는다.

 

그녀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 내가 춤추고 싶을 때를 정하겠다는 그 의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너무나 강렬했으며 너무나 멋졌다. 죽음이 아무리 삶의 의지를 꺾으려 할지라도 그녀는 당당히 말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고. 엘리자벳을 향한 토드의 노래와 몸짓은 마치 구애 같았고,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 엘리자벳은 그 구애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녀가 원한 것은 '진정한' 자유. 소피의 함정은 엘리자벳이 떠날 수 있는 구실이 되었다. 이미 비어버린 마음을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녀는 이제 평생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다닌다. 모든 것을 버리면 얻을 수 있는 그것. 토드는 끊임없이 손을 내밀지만 엘리자벳은 번번이 그 손을 뿌리친다. 

 

모든 것을 버리지도, 제대로 된 자유를 얻지도 못한 그녀가 위로를 받는 곳은 정신병원이었다. 자신의 이익과 목적만을 쫓아다니는 인간들에게 진저리가 난 그녀가 미친 사람들 속에서 안식을 얻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계속되는 근친혼으로 비텔스바흐 가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미쳐 죽거나 미친 채였고, 멀쩡한 정신으로 비어버린 가슴 한 쪽의 갈증을 오랜 시간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으니까.

 

인간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 시인 하이네의 시를 벗삼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었지만 자신은 실패했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던 그 때, 아들인 루돌프가 아버지인 요제프와의 반목으로 그녀를 찾아와서 절규한다. 한 번만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아들의 울부짖음에,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던 그녀는 다시 그 속박 속으로 갈 수 없다고 읊조린다. 그건 루돌프에게 말한 것일까, 자신에게 다짐한 것일까. 사실 7년 넘게 소피가 키웠고, 20년 넘게 아들을 떠났던 엘리자벳이 루돌프에게 자신을 내어 줄 수는 없었겠지.

 

요제프에게 외면당했을 때 엘리가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면, 루돌프는 어머니가 자신을 외면하자 죽음을 선택했다. 의지할 데 없이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루돌프는 삶을 살아갈 의지가 없었고, 죽음은 기꺼이 그를 데려갔다. 죽음이 손을 뻗어 데려가지 못한 이는 여전히 단 한 명.

 

아들의 죽음은 모든 것을 가지지도, 버리지도 못한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다. 삶의 의지를 내던질만큼. 생이 다하는 그 때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던 그녀가 자포자기로 죽음을 부르자, 토드는 답한다. 이것은 진실로 너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 이런 너는 아니라고. 누구보다 그녀를 이해했던 오직 단 하나의 존재. 그렇게 토드는 또 다시 엘리자벳을 기다린다. 온전히 자신에게 오기를...

 

아들의 죽음으로 이제 삶을 정리할 수 있게 된 엘리자벳은 자신을 옭아매던 이 세상의 사랑을 끊어낸다. 삶의 미련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요제프에겐 악몽, 엘리자벳에겐 축복...

 

때가 왔다. 그녀는 진정 삶을 사랑했고,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을 채우려고 노력했고, 이제 그 답을 찾았다. 진정 그녀가 원하는 자유, 사랑, 삶... 평생 그녀를 덮었던 베일은 벗어던지고 자신보다 더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에게 입맞춤을 허락한다. 기억은 지우고 자신은 무(無)로 돌아간다....

 

얼마나 사랑하면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것조차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이 죽음의 존재 목적이라 하더라도 이전에는 모르던 감정을 알았는데, 이제 영원토록 비어버린 가슴 한 켠 끌어안아야 할텐데. 마지막 떨리던 그 손은 그래서였을까.

 

죽음은 허무, 존재하지 않음. 어쩌면 그렇게 둘은 온전히 하나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너와 나가 하나인 상태.

 

엘리자벳과 토드가 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둘은 언제나 함께였고,

이제 사랑은... 혹은 자유는 그렇게 완성됐다.

 

엘리자벳이 루케니의 손에 죽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루케니는 루돌프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융통성 없는 군인이자 제국의 주인이었던 요제프는 엘리자벳을 너무나 사랑해서  제국마저 그녀에게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원한 것은 단 하나였고, 그것은 요제프가 줄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

 

극 내내 흐르는 루케니의 광기는 너무 슬퍼 울지 못한 자의 비웃음이었다. 너무 힘들고 슬퍼 우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민중들... 전쟁, 권력다툼, 급변하는 경제 상황들 속에서 살고자 발버둥치던 그들 모두가 루케니이고, 죽음이 데려간 사람들이자 죽음을 숭배한 이들일 것이다.

 

신엘리는 완벽했고, 식토드는 강렬했으며, 민제프는 가여웠고, 훈케니는 울부짖었다.

 

 

엘리자벳 : 신영숙

토드 : 박형식

루케니 : 이지훈

요제프 : 민영기

소피 : 이소유

루돌프 : 최우혁

(2019.03.24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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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알라딘은 나에게 한 해의 기록을 보여준다.

 

아아,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보고 싶기도 하다.

 

제일 먼저 이만큼의 책을 '만났다'고.. 어쩐지 책장을 더 샀는데 꽂을 데가 없더라니...

 

내가 사랑한 작가가 '윌리엄 세익스피어'라고. 아직 못 읽은 세익스피어 작품이 많은데, 반성하게 된다. 하긴 반성할 게 한 두개도 아닌데 뭐.

 

이렇게 반성을 시작해본다.

 

매일 뭔가를 쓰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해, 읽은 책들 리뷰 적는 것도 못 해, 매일 읽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해... 아, 못하는 것 투성이 투성이 투성이.

 

읽고 싶은 책을 찾다보면 번역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덕분에 원서를 사긴 했는데, 한 장 읽는데만 어마무시한 시간이 걸리는거다. 다시 한숨만 내뱉으며 나의 무지를 탓하며 책을 덮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순간이랄까. 그래도 그녀는 사전을 갖다 놓고 끊임없이 읽고 쓰고 했지만, 난 한국어를 사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라 영어 사전을 갖다 놓고 끊임없이 읽고 쓰고가 안 된다. 쓰는 건 당연히 생각도 안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예전에 한창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그의 말을 독일어로 이해하고 싶었는데... 좋아하는 작가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같은 언어로 쓴 글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다른 언어로 쓴 글은 얼마나 어려울까. 낯선 언어로 쓰여진 책이 번역도 안 되어 있다면... 거기다 그 언어가 적당히 낯설다면, 그 낯선 언어가 주는 낯선 느낌은 '절망'에 가까운 비참함이 되어 돌아온다. 영어 공부를 참 많이 했는데 아직도 난 영어가 낯설다. 츠바이크는 독일어로 글을 썼는데 난 왜 영어를 이야기하는가. 역시 내 나라 말로 글을 쓰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내가 받은 굿즈도 나온다. 아, 그러고보니 '낯선 땅 이방인' 유리컵을 얼마 전에 깨먹었지. 다시 눈물이 고인다. 굿즈 때문에 산 책도 제법 되는데, 마음에 드는 굿즈는 그냥 팔아주면 좋겠다. 다시금 '낯선 땅 이방인' 유리컵에 애도를 표한다. 

 

리뷰를 쫙 쓰고 싶었는데, 이것 저것 핑계를 대면서 미뤘더랬다. 그래서 정리해보니.. 그냥 포기할까... 아니, 무슨 이렇게 좌절과 후회가 많단 말인가. 그래도 내가 열심히 읽은 책들과 열심히 쓴 리뷰가 있는데.. 게으른 자여.. 이렇게 항변하는 나를 밀어버렸다. 밤에 혼자 잘 논다...

 

 푸시킨과 플로베르라니. 단편과 장편의 차이만큼이나 다를 것 같았는데,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알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탐욕, 허영... 내가 가진 수많은 단점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꼭 리뷰를 써야겠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자꾸 떠올랐다. 축축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트리니다드의 쨍한 날씨 같은 환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지프 콘래드가 그린 콩고 같다고나 할까. 식민지가 가진 무기력감이 깔려 있고, 그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 말 많은 사람들... 거기서도 여자들은 참 억척스럽게 살았는데, 로라는 자신의 딸이 죽자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나도 무기력해지는 느낌이다.

 

 

 

 

 

파우스트는 읽을 때마다 인간이 가진 호기심과 갈망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괴테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도.

 

결국 파우스트는 구원 받았으나, 누가 구원한 것일까. 공동체적 삶과 세계 시민을 위한 삶은 어떤 것일까. 온갖 부와 명예를 다 누려보았으나 결국 선택한 것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었다. 파우스트도 성진도 팔선녀도. 사회가 정해놓은 질서에서 최고 우두머리는 아니더라도 그런 이들을 가볍게 여길 수 있던, 오히려 그런 지위가 필요하지 않던 삶이었는데 다 던졌다. 이 생의 안락함보다 영혼의 안락함을 선택한 이들. 다른 세상을 경험한 이들은 결코 이 세상에 완전히 속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동화나 삶이나... 동화가 삶이고 삶이 동화인 것일까. 삶이란 이야기가 주는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아무리 꾸며대도 삶의 어두운 그림자는 가려지지 않는다. 하긴, 그림자를 가리려면 더 큰 그림자가 혹은 어둠이 필요할테니. 그림자가 있다는 건,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건 '희망'이란 이름일지도 모르겠고.

유령 이야기가 빠지면 어쩐지 찰스 디킨스가 아닌 것 같다. <닥터 후>의 닥터도 찰스 디킨스 만나고 왔는데. 테닥이었나 맷닥이었나.. 그 에피소드 다시 찾아봐야겠다. 여튼 내가 좋아하는 디킨스. 도덕적인 삶이 사회를 구원할 수 있을까. 모두가 도덕적일 수는 없겠지만, 한 사람의 도덕적 행위가 가진 파급력은 크니까. 누구나 칼턴이나 핍처럼 실수하고, 막 살고, 헛된 꿈을 꿀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칼턴처럼 희생할 수도 없고, 핍처럼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고 감사해하며 남을 위해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환멸을 느낄 때, 이 세상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을 때 그들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그리고 행한 대로 받게 될 거라는 믿음을 준다. 계속해서 탐욕을 부리면 잘 살 것만 같아도 불레만 씨처럼 될 거라고. 아무도 없는 빈 방, 거대한 탐욕이 또 다른 실체가 되어 자신을 짓눌러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난 이 책이 너무 좋다.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좋다. 책이 나에게 구애하는 것 같다. '난 너에게 환희를 줄 수 있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아주 열심히, 아주 행복하게, 가끔은 쓸쓸하게.

 

 

 

 

 사람들은 쓸 데 없는 일을 하고, 쓸 데 없이 참견하고, 쓸 데 없이 걱정하고, 쓸 데 없이 돈을 벌고, 쓸 떼 없이 돈을 쓰고... 참 쓸 데 없이 살면서 행복하길 바란다. 도대체, 어떻게 2천년이 넘는 그 긴 시간 동안 인간은 참 한결같을 수 있는가.

 

세네카를 읽은 나도 참 한결같이 쓸 데 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가. 그래서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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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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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이 다른 모든 가르침보다 더 강력한 교훈을 주어서, 그 시련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네 심정이 한 때 어떠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야.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대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동정심과 너그러움을 베풀어 줘.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친구라고 나에게 말해줘"
"그래, 우린 친구야."
"그리고 서로 헤어져도 계속 친구로 남아 있을 거야."
(pp.426-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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