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주의자다 1 평화 발자국 4
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0년 5월
품절


자꾸 6월 25일만 강조해서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묻는데, 그러면 내가 말해요.
"전쟁의 처음은 당신도 나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누가 평화정책을 추진했는지 누가 도발정책을 추진했는지 그것을 먼저 물어봐야 한다."라고요.-267쪽

감옥에서도 비슷한 말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꼭 묻지요.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중 어느 것이 좋냐고. 지치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요.
"공산주의는 우리가 이상으로 삼고 지향하는 사회다. 그러나 아직까지 건설되지 못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실시해 온 경험은 모두 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다."라고요. 또 자유 민주주의라고 할 때 과연 그 자유가 뭘까요? 자유를 위해 한없이 경쟁해야 하는데 결국 자기가 살아남으려고 다른 사람을 눌러야 하는 거 아닌가요?-276쪽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한 집단에 딱 한 사람만 일등이 될 수 있어요. 그러려면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이겨야 하지요. 하지만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집단에 속한 모두가 최우등생이 될 수 있어요.-277쪽

-선생님께서 당을 비난할 때도 있으시군요.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도 당원의 책임이니까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사업을 조직한 중앙당보다 실천을 담당했던 지방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지도부 잘못으로 민중들이 고통을 겪은 것은 사실이겠지요. 게다가 민중들이 그렇게 지지했는데도 결국 투쟁은 실패했거든요. 그 까닭은 무엇으로 보시나요?

-군중을 동원하면서 바로 그 군중을 속였다는 게 문제예요.-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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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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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유일한
동시대인은 '시간'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지금으로선 가물가물한데,
그가 진실로 고독하고 고독하다는
의미였다면 저 단호한 선언에 담긴
절실한 그 무엇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고독은 빙하와 같다.
빙하처럼 혹독하고 소스라치게 차가운
그것은 아무 때나 소리 없이 녹아내려
연약한 하루를 난감하게 적셔버린다.
고독은 일상의 재해이다.-22쪽

여행자는 행동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담아
집중한다. 세상에서 제일 사소한 일을
최고로 진지하게 해낸다.
나를 둘러싼 시공간에 대한 극진한 예의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여행이 아니라면,
삶은 언제나 나에게 부당한 업신여김을
당해왔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 지긋지긋하던 삶이 나를 도발한다.
더 이상 지루하지 않은 척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나는 졸린 고양이처럼
솔직해진다.-25쪽

카프카의 글은 행간마다 슬픔이 비비적대는 문장들이 마음을 할퀴어서 좋다.
슬픔의 끈질긴 점성은 도리 없이 매혹적이다.
웃음도 뛰어난 미학이지만 안타깝게도 찰나적이다. 오래 가는 것은 슬픔이다.
슬픔에 흠씬 젖었을 때 나는 인생 앞에 고분고분해진다.-34쪽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연기를 한다. 잘 지내는 척, 바쁜 척, 부끄럽지 않은 척, 무관심한 척. 그중의 제일은 뭐니뭐니해도 쿨한 척이다. 먹어치운 밥그릇 개수만큼 노련해진 우리는 있는 그대로 감정을 노출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참혹한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너무 성급하게 표시한 관심 때문에 망쳐버린 연애. 딱 한 번 진짜 속마음을 이야기했다가 깨져버린 우정 따위. 진심이란 녀석은 땀을 잘 흘린다. 그래서 여차하면 들키기 십상이다.-40쪽

카프카는 "몇 년 동안의 두서없는 생활과 수면 부족이 야기한 질병"인 폐결핵에 걸리게 되고, 끝내 애증의 대상이었던 프라하를 떠나지 못하고 죽었다. 그에게는 삶이 "감탄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삶에 감탄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둔하고, 삶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사람은 우울하다. 카프카의 삶은 짧고 국지적이었지만 그 어느 인생보다 강렬했다. 나는 그런 삶을 흠모한다.-80쪽

아는 만큼 더 보인다는 것은 명징한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 순간을 살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무지의 소치로 눈부신 건축과 역사를 상한 우유처럼 미련 없이 포기해야 했지만,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오직 시간을 앞으로 밀어내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그 시간도 좋았다. 어차피 여행은 각진 다면체 세상을 내맘에 맞게 이리저리 둥글리는 작업이 아닐까. 너무 낯설어서 날카로웠던 세상의 한구석을 내 두 발로 조금 닳게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공부 잘하는 법, 연애 잘하는 법은 있어도 여행 잘하는 법은 정의상 성립되지 않는다. 여행에서는 치사한 합리화도 허용된다. 그래서 가장 초라한 여행조차 눈부시게 찬란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86쪽

베네쇼프 역에 내려 2.5km 정도 한적한 오솔길을 걸어가면 코노피쉬테 성이 나온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암살되기 전까지 아내 소피와 아이들을 데리고 살았던 성이다. 그는 사라예보에 가기 직전에도 이 성에서 독일의 빌헬름 황제를 만나 보스니아 문제를 의논했다고 한다. 페르디난트 대공은 정략결혼이 판쳤던 역사 속에서 보기 드물게 뜨거운 연애질을 결혼으로 성공시킨 인물이다. 이 성은 에드워드 노튼과 폴 지아매티가 주연한 영화 '일루셔니스트'의 배경으로도 등장하는데, 영화 속 황태자는 페르디난트 대공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여자 주인공 이름은 소피다. -92쪽

페르디난트 대공은 프라하의 한 무도회에서 하급 귀족 집안의 딸인 소피 초텍을 만난다. 말이 좋아 귀족이지 평민이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소피는 이사벨라 황녀의 시녀 노릇을 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드러내 놓고 연애를 할 수는 없었다. 한번은 대공이 이사벨라 황녀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실수로 테니스 코트에 시계를 떨어뜨리고 갔다. 황녀는 대공이 자기 딸들 중 하나와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터라 당연히 시계 안에 딸의 사진이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 안에는 시녀의 사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황녀가 야생마처럼 길길이 날뛰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지만, 황실 사람들은 아무도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93쪽

아시다시피 두 사람은 백년해로하지 못하고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출신 민족주의자의 총알에 유명을 달리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고 이 전쟁은 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된다. 사실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은 구실에 불과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할 때 불만을 품었던 세르비아를 내내 벼르던 중이었고 응징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고 싶어했던 세르비아의 노력을 묵살한 것을 보면 제국이 얼마나 전쟁을 원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코노피쉬테 성 박물관에는 문제의 그 총알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93쪽

페르디난트 대공은 정신세계가 독특한 사냥광이었다. 그가 생전에 죽인 사슴만 해도 5천 마리가 넘는다. 원래 왕위 계승자도 아니었던 사람이 얼떨결에 황태자가 되어 비명횡사한 것을 보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사이비 삼장법사스러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무분별한 제국주의 야욕으로 인해 자극된 민족주의 감정이 폭발해서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킨 것도 일으킨 거겠지만, 혹시 살생을 많이 한 업보로 팔자가 사나워진 건 아닐까. 스코틀랜드 출신 록 밴드 프란츠 퍼디난드의 는 페르디난트 대공의 아내 소피를 위한 노래이다.-94쪽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는 시멘트가 없다. 모든 길에 유서 깊은 돌이 깔려 있다. 목격한 세월을 뻐기지 않는 과묵한 역전 노장들. 따끈따끈한 돌 위를 맨발로 걷는 기분은 자지러지도록 황홀하다. 이미 色을 초월했을 연배의 노인네들이건만, 그들은 점잖게 발바닥을 간질이기도 하고 따끔따끔 찌르기도 하면서 온갖 기교를 다 부린다. 아, 죽어도 좋아. 저절로 그런 말이 새어나온다.-133쪽

나는 강원도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골살이의 몇몇 기쁨 중 하나는 그런 것이다. 우리 집에는 전용 풀장도 없고 멋들어진 정원도 없지만 조금만 걸어 나가면 저절로 순환하여 정화되는 저수지와 자연이 알아서 가꾸는 아름다운 산이 지척에 있다. 꼭 소유해야 맛이 아니다. 언제든 아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움켜쥐지 않아도 인감도장 찍어놓지 않아도 그건 내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풍수지리에서 배산임수 지형을 길지라고 하는 이유도 뭐 별 거 있겠는가. 등 뒤에는 빛깔 고운 조각보를 두르고 눈앞에는 거울처럼 맑은 세숫물을 받아 놓고 사니, 번잡스러운 마음도 자꾸만 산과 물을 닮으려고 용을 쓴다. 그러다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어찌 어찌 되겠지, 언젠가는 순리대로 돌아가겠지, 하는 속 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144쪽

그러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유머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유머는 지우개처럼, 아프지 않을 만큼만 상처를 문질러서 조금씩 희미해지게 만들어주니까.-169쪽

자코메티는 자신을 이해하려면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할 테지만 보스니아의 경우에는 특히나 더 그렇다. 진정한 존중은 '이해'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해는 '관심'에서 나온다.-170쪽

내가 생각하는 느리게 살기란 결국 덜 생산하는 삶이다. 재화와 용역을 덜 생산하면 필연적으로 폐기물과 스트레스도 덜 생산된다. 조금 덜 생산하고 덜 성장한다고 세상에 어떻게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번 시간을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일들에 사용한다면, 그것이 '슬로우 라이프'의 진심이 아닐까.-184쪽

나무의 여신이 초록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속곳을 오래오래 담갔다가 건져낸 듯 한없이 투명하면서도 푸른 물 빛깔. 슬로베니아는 '동유럽의 스위스'라고도 불린다. 나라의 절반 이상이 숲인 나라이다. 유럽에서 핀란드, 스웨덴에 이어 세 번째로 숲이 많은 나라라고 하니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199쪽

블레드 호수는 보힌 빙하의 후퇴 작용으로 형성되었는데 환경보호 차원에서 엔진으로 구동되는 배의 운행을 금지하고 있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이 정도 까탈은 부려야 한다.-221쪽

혹시라도 살다 살다 이제는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서 아이 키우는 재미라도 있어야겠다 싶어진다면, 늙어감에 대한 공포와 권태를 잊게 해줄 뭔가가 절실해진다면, 그때는 태어나버렸지만 갈 곳 없는 아이를 데려다 키우고 싶다.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이모 혹은 고모가 되고 싶다. 끈끈한 건 됐고, 말이나 통하면 좋겠다. 의무로 묶이기보다 우정으로 엮일 수 있는 사이면 더 바랄 게 없겠다.-225쪽

그래도 나는 9시 이후에 알코올을 팔지 않는 이 깐깐한 동네가 맘에 든다. 그 시간 이후로는 묽은 위로를 팔지 않으니 책을 읽든 정사를 나누든 다른 길을 알아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태도가 미더운 것이다. 허튼 기대를 버리면 인생은 조금 더 수월해진다.-232쪽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불을 가장 중요시하지만 공기, 흙, 물도 더럽히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화장, 토장, 수장 대신 새가 사체를 쪼아 먹도록 내버려두는 조장을 행한다. 조로아스터교 신자, 즉 '파시'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 마지막으로 쌓는 공덕이 바로 새에게 시신을 내주는 것이라고 한다.-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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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4-1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넘 읽고 픈 책이었는데 이렇게 멋진^^ 밑줄긋기로 맛보기를 해주셨네요

마노아 2010-04-13 00:32   좋아요 0 | URL
하핫, 맛깔스런 책이었어요. 기회되면 꼭 보셔요.^^

세실 2010-04-1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예뻐서 더 눈길이 갑니다. 읽어야지요....휴..(읽을 책은 늘어나고 진도는 나가지 않고. ㅎㅎ)

마노아 2010-04-13 19:37   좋아요 0 | URL
눈길을 확 사로잡는 제목이었어요. 표지도 그렇구요.^^
 
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품절


다른 이의 재능을 이렇게 사리사욕 없이 축복해주는 넓은 마음, 사람 좋은 성향은 러시아인 특유의 국민성이 아닐까 하고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4반세기나 지나서다. 러시아어 통역으로 많은 망명 음악가와 무용가를 접했는데 그들은 내게 이런 얘기로 망향의 한을 풀어놓았다.
"서구로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이것만큼은 러시아가 뛰어났다고 절실하게 느낀 게 있어요. 그건 재능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죠. 서구에선 재능이 자기 개인에 속하는 것이지만, 러시아에선 모든 이의 재산이랍니다. 그러니 이곳에선 재능 있는 자를 시기해서 어떻게 하면 끌어내릴까 안달이죠. 러시아에선 재능 있는 자는 무조건 사랑받고 모두가 받쳐주는데......"-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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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25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도서관에서 요걸 빼들고 10초 생각하다가 도로 꽂았어요.
읽어야 할 책이 밀려 있는데 도서관 가면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고르고 있으니...ㅠㅠ

마노아 2010-03-25 21:08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서 읽고 올 책과 빌려올 책을 잔뜩 골라놨는데 오늘 일이 있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예약 도서 한 권만 빌려왔어요. 지금 생각하니 차라리 다행이에요.^^;;;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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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사업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 'philanthropy'는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hilo'와 인류라는 뜻의 그리스어 'anthro'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자선사업가는 결국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19쪽

"아이 아빠가 누구니?"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애를 사랑하니?" 어머니가 물었다.
"아뇨."
"그애는 너를 사랑하니?"
"아뇨. 같이 잔 남자는 그애뿐이었고, 그것도 딱 한 번뿐이었어요."
"세 사람의 인생을 망칠 필요가 뭐 있겠니? 우리 집안에 아주 예쁜 아기가 태어나겠구나."-31쪽

천박한 문화를 묵인하면 무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우리의 미래가 흔들리고 무너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용감하게 직면할 수 있는 현명한 머리와 용기가 있다.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시대, 이 공간에 대해 책임을 지자.-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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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 역사의 발자국 헤아리기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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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폐지운동은 18세기 초 인간 존중, 인류 평등 사상과 함께 고개를 들었고, 19세기 들어 본격화했다. 영국에서는 퀘이커 교단을 중심으로 노예제 폐지 운동이 활발히 벌어져, 자유주의적인 휘그당의 그레이 내각이 성립된 직후인 1833년 노예해방령이 의회를 통과했다. 프랑스에서는 그 이듬해인 1834년에 노예폐지협회가 만들어졌고, 1848년 2월 혁명 뒤에 노예의 완전한 해방이 이뤄졌다.-11쪽

1962년 1월 3일, 가톨릭 성직자들을 탄압했다는 이유로 바티칸 교황청이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파문했다. 이로써 카스트로는 11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15세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에 이어 가톨릭 파문 리스트에 오른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프랑스혁명 때도 그랬듯, 쿠바혁명의 가장 커다란 적도 외세나 기득권층과 결탁한 가톨릭교회라는 것이 카스트로의 판단이었다. 그는 혁명 이후 교회의 여러 특권들을 폐지했고, 파문을 당한 뒤에도 크리스마스를 평일로 만드는 등반교회 정책을 계속 펼쳤다. 쿠바에서 크리스마스가 다시 휴일이 된 것은 교황 바오로 2세가 아바나를 방문한 1998년 이후다.-13쪽

카뮈는 젊은 시절 잠깐 공산당에 적을 두기도 했지만 결국 우파로 선회했는데, 기실 그의 우파적 세계관은 초기 에세이나 소설의 섬세함과 머뭇거림 속에 이미 배태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알제리 독립 전쟁에 대한 카뮈의 침묵은, 비록 그가 고향 알제리와 그곳의 친지들을 저 자신과 프랑스의 본질적 구성 부분으로 여겼다고 하더라도, 지식인의 책임을 피한 것으로 비판받을 만하다.-14쪽

1989년 1월 7일 일왕 히로히토가 89세로 죽었다. 요시히토 왕의 장자인 히로히토는 26년에 즉위한 뒤, 중일전쟁/태평양전쟁 등을 주도하며 군국주의 일본 현대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천황(텐노)은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군주를 이르는 칭호다. 중세 봉건시대 일본의 천황은 흔히 쇼군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천황은 오래도록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 그들 말로 아라히토가미였다. 히로히토도 마찬가지였으니,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 가운데 최고 전범이라 할 그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인간 선언' 하나로 일본국의 상징적 국가원수로 물러난 것은 종전 한 해 뒤인 1946년이다.

전쟁 시기 히로히토는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였다. 그런데도 전범자 처벌을 위한 도쿄 재판의 피소인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일본은 난숙한 자본주의와 최첨단의 학문, 기술이 원시사회의 유치한 신화와 어우러져 있는 야릇한 나라다. 다수의 일본인들이 믿고 있는 바에 따르면,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의 후손인 진무 헌황이 즉위한 것이 기원전 660이고, 히로히토는 진무의 124대 직계손이다. 이른바 만세일계다.-17쪽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에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됐다. 패링던스트리트와 비숍스 로드의 패딩턴을 잇는 6km 구간의 이 첫 지하철은 증기기관차로 운행됐다. 전기 철도 방식이 도입된 것은 189년에 들어서다.
유럽 대륙에서 처음 지하철이 들어선 도시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1896)다. 뒤이어 1898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1900년에는 프랑스의 파리에 그리고 1902년과 1906년에는 독일의 베를린과 함부르크에 차례로 지하철이 들어섰다. 미국에서는 1901년 보슨턴에 첫 지하철이 생겼고, 뉴욕의 지하철은 1904년에 개통됐다.
한국의 첫 지하철은 서울시 1호선 서울역-청량리 7.8km 구간으로, 1971년에 착공해 1974년 8월 15일 개통했다. 광복적 기념식이 열리던 서울 국립극장 단상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가 재일동포 문세광에게 저격당한 날이었다.

"그는 이 사막에서 너무 외로워/이따금 뒤로 걸었다/자기 앞에서 발자국을 보기 위해서"
이 시는 파리 지하철 공사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시들 가운데 뽑힌 것이다. -20쪽

1665년 1월 12일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가 64세로 작고했다. 그의 생업은 변호사였고, 툴르즈 지방의회가 그의 활동무대였다. 수학은 그에게 일이 아니라 취미였을 뿐이다.

페르마는 이 정리를 평소 지니고 다니던 책 귀퉁이에 적고는 이어 "나는 이 정리를 증명했지만, 여백이 너무 좁아 생략한다"고 덧붙여놓았다. 이 정리는 '페르마의 문제'라는 이름으로 그 뒤 수많은 수학자들을 괴롭혀오다가, 1995년에 와서야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와 리처드 테일러에 의해 완전히 증명됐다.-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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