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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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하루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녀는 빛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느끼듯이, 어둠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어둠이 있기에 어떤 존재에게 가호를 부탁할 수도 있다. 어둠이 있기에 어떤 존재에게 가호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신뢰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신뢰가 바로 믿음이었다. 아무도 믿음이라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믿음은 지금 그녀가 경험하고 있는 것,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렇게 어두운 밤 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믿음은 오로지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존재한다. 기적이, 설명이 불가능함에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처럼.-41쪽

"마법이 무엇인지 알아요?" 그가 물었다.
"다리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51쪽

"믿지 못하겠지만 이건 사실이야. 모든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지.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해도.
나도 네가 한 이야기를 믿지 못해.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건 알아."-131쪽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설명이 아니야. 더 멀리 가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지.-132쪽

'인생은 너무 복잡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어떤 길들은 계속 따라가고, 다른 길들은 포기해야 했다. 위카가 말했던, 옳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최악은 그것이 아니었다. 제일 나쁜 것은 자신이 그 길을 제대로 선택했는지 평생 의심하며 그 길을 가는 것이었다. 선택에는 늘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이었다.-135쪽

"얘야, 이 세상에 완전히 잘못된 건 없단다." 아버지는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멈춰서 있는 시계조차 하루에 두 번은 시간이 맞잖니."-137쪽

이따금 신의 축복은 모든 유리창을 산산조각 내며 찾아들기도 한다.-143쪽

'그녀를 위해서라면 마법을 포기할 수도 있어.' 한순간이나마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는지 이내 깨달았다. 사랑은 이런 식의 포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에게 자신의 길을 가도록 허락한다. 그 때문에 서로가 갈라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207쪽

명심하게. 신께 이르는 으뜸가는 길은 기도이고, 그다음은 즐거움이라는 것을.-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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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구판절판


내 인생의 실패는 노무현이 것일 뿐, 다른 누구의 실패도 아니다. 진보의 실패는 더더욱 아니다. 내 인생의 좌절도 노무현의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좌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진보의 모든 것을 망쳤다고 덮어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옳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노무현은 정의나 진보와 같은 아름다운 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나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정의와 진보를 추구하는 분들은 노무현을 버려야 한다. 나의 실패가 모두의 실패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실패는 뼈아픈 고통을 준다. 회복할 수 없는 실패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 나는 이 고통이 다른 누구에겐가 약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쓴다.-36쪽

버림받은 사람은 도덕적 성숙을 이루기 어렵다. 자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자부심이 있어야 모범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시켜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기화, 참여, 책임...... 대통령을 하면서도 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했다.-58쪽

5공청문회는 1989년 들어 민정당의 거부로 중단되었다. 그러다 연말이 다가온 시점에서 마지막 절차로 광주특위와 5공빌특위 합동회의를 열어 전두환 씨를 증인으로 부르기로 여야 지도부가 합의했다. 그런데 합의의 핵심이 모든 질문을 서면으로 내고 전두환 씨가 일괄 답변하는데, 추가 질의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988년 12월 31일 합동청문회에 나온 전두환 씨는 증언이 아니라 일장연설을 했다. 광주학살 대목에서 그가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라고 하자 평민당 정상용 의원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평민당 이철용 의원은 증언대로 뛰어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민정당 의원들이 삿대질을 하고 맞고함을 지르면서 청문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통일민주당 지도부에서 "평민당이 과격 이미지를 다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얌전히 구경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민정당 의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전두환이 아직도 너희들 상전이야!" 소란한 가운데 전두환 씨가 퇴장했다. 나는 통일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욕을 퍼부으면서 내 명패를 바닥에 팽개쳤다.-106쪽

3당합당은 두 가지 충격을 주었다. 첫째,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영남은 보수 정치세력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가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정치사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지역구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되었다. 둘째, 우리 정치를 통째로 기회주의 문화에 빠뜨렸다. 철새 정치의 수준이 달라진 것이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려고 당을 옮겨 다니는 일은 그 전에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정치 지도자가 그런 일을 한 적은 없었다. 3당합당으로 인해 한국 정치는 적나라한 기회주의 문화에 휩쓸려 들어갔다. 소신도 원칙도 없이 국회의원 당선이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떼를 지어 보따리를 싸들고 이 당 저 당 돌아다니는 것이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116쪽

이때부터 20년 동안 나는 쉼 없이 싸웠다. 지역 분열주의에 맞섰고 기회주의에 대항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내세웠던 구호 '원칙과 통합'은 이 기나긴 싸움의 핵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3당합당은 국갖거 분열이자 민주 세력의 분열이었기에, 분열에 가담할 수 없어서 통일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116쪽

87년 대통령 선거 때 두 지도자가 민주 세력을 분열시킨 이후, 그 분열을 치유하고 민주 세력을 통합하는 것이 모두의 과제가 되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그 반쪽을 들고 민정당과 합쳐 버리는 바람에 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때 나의 영웅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은 '일그러진 영웅'이 되고 말았다. 나는 20년 동안 그가 만든 지역 분열의 정치구도와 싸워야 했다. 그가 만든 기회주의문화와 대결해야만 했다.-126쪽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씨는 원래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관계였다. 이회창 씨는 대쪽이라는 이미지로 김영삼 대통령의 초법적 국정운영에 반기를 들어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다. 그 두 사람으로 하여금 손을 잡게 만들었던 것은 대구와 충청도의 이반이었다. 그때까지 조선 건국 이래 6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정권교체가 없었다. 권력의 편에 서야만 비로소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역사였다. 권력에 맞섰던 사람 가운데 패가망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손들의 앞길까지도 막아 버렸다. 적어도 무사하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권력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시비를 가리지 말고 납작 엎드려 살아야 했던 기회주의 역사가 무려 600년이었다. 결국 이회창 씨도 조순 씨도 권력에 줄을 서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쪽으로 간 것이 아닌가.-140쪽

여당 소속이 되면서 예전에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재야와 야당 시절 정치는 주로 투쟁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권력과 싸웠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위해 정부와 싸웠다. 야권통합과 정당 민주화를 위해 분열주의, 기회주의와 투쟁했다. 그런데 여당이 되고 보니 전혀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국가와 국민을 위험에서 보호하는 일,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이었다. 특히 법률과 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 처음 겪는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합리적으로 풀어 나감으로써 새로운 모범을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 경험이 축적되어야 합리적 갈등 조정 시스템과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153쪽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해 온 역사라는 말인가? 정의가 패배하는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나는 남북전쟁 종식을 눈앞에 두고 했던 링컨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사람'을 발견했다. 링컨슨 선거에서 숱하게 떨어졌다. 대통령 재임중에는 누구보다도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노예제 폐지론자와 노예 소유자들이 모두 그를 공격했다. 인기도 없었다. 그러나 링컨은 내전에서 패한 남부를 적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갈라치지도 않았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도 쓰지 않았다. 정의와 평화, 연방의 통합을 위해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자고,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노예제 폐지와 연방의 통합, 둘 모두를 이루었다.-160쪽

인터넷 세상에서 나는 '바보 노무현'이 되었다.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또 부산으로 가서 떨어진 미련한 사람. '바보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 이래 사람들이 붙여 주었던 여러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볼 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당장은 손해가 되는 일이 멀리 보면 이익이 될 수가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다.-161쪽

나는 변호사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늘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노사모는 30대 회사원이 많았고 학력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었으며 사는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 자기네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거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를 지지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원칙, 진실, 정의, 그런 보편적 가치를 지지한 것이다.-165쪽

나는 이회창 씨를 분열주의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맹목적인 반김대중 정서와 영남 지역주의 선동을 핵심으로 삼은 그의 선거 전략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더욱 회복하기 어려운 동서분열의 덫에 걸려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또한 이인제 씨를 기회주의의 화신으로 간주했다. 그는 3당합당을 적극 지지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을 따라 민자당에 가서 노동부 장관을 하고 경기도지사도 했다. 1997년에는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해 이회창씨에게 지고서도,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 문제 등으로 인기가 떨어지자 '경선 불복'을 하고 '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해 3위를 했다. 그런 다음에는 야당을 하지 않고 여당인 민주당에 들어와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했다.-180쪽

선거캠프 안에서는 미국 방문 문제가 쟁점이었다. 모두들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가라고 했다. 명을 내리기만 하면 미국 조야의 지도자들과 월가의 큰손들을 만나도록 주선하겠다고 했다. 한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미국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고 비자조차 없다는 사실이 무슨 결격사유나 되는 것처럼 걱정했다.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미국에 가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누구도 딱 떨어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해도 한국 대선에 개입할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으니, 공해상에서 북한 화물선을 붙잡아 분쟁지역 불법 무기 수출 선박으로 몰아 안보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북풍공작'이다. 나는 미국 정부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고, 그런다고 해서 꼭 내가 손해를 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186쪽

기나긴 논란 끝에 미국 방문 문제를 정리했다. "갈 일이 있으면 간다. 일이 없어도 한가하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바쁜데 일도 없으면서 사진 찍으러 가지는 않겠다." 갈 일도 없고 바쁘기도 해서 결국 미국을 가지 않은 채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 나라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미국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일수록 더 그랬다.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가 미국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것을 불안하게 여긴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이런 것에 휘둘려 일도 없이 사진 찍으려고 미국에 가는 것은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 방문을 대통령 선거 후로 미루었다.-187쪽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였다. 우리 역사에 그런 지도자는 없었다. 정말 오랜 기간 동안 독재와 싸웠다. 암살 위기도 겪었다. 구속당하고 연금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래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면 그런 사람은 보통 투표를 할 필요도 없는 수준의 지도자가 된다. 건국의 아버지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 바츨라프 하벨, 레흐 바웬사 대통령이 모두 그랬다. 그것이 정상이다. -188쪽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6.10민주항쟁 이후 민주세력이 분열되었고, 냉전 시대 독재정권이 그가 마치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이미지에 덧칠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민주주의 지도자가 아니라 친북인사 또는 용공분자인 것처럼 잘못 보았다. 게다가 호남인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지역감정까지 작용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국민의 지도자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에서 그런 것처럼 나라 안에서도 국보급 지도자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190쪽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치 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보수 세력은 조직이 매우 크고 강하다. 이념적으로 튼튼하게 결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결속력도 매우 강하다. 공동의 이익에 근거를 둔 네트워크를 감성적 네트워크로 재조직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어느 지역 어느 집단에서나 돈 많고 권력 있고 지위 높은 사람은 거의 다 보수의 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다. 게다가 보수 세력은 인구가 많은 영남을 장악하고 있다. 큰 신문사, 큰 기업의 소유자, 큰 연구소를 모두 보수가 장악하고 있다. 법원, 검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은 그 본질적 속성상 보수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라이온스클럽, 로터리클럽, JC(청년회의소) 등 경제적 여유가 있는 민간자생 단체와 지역사회의 소위 관변 단체들도 모두 보수가 우세하다. -204쪽

학술원과 각종 학회, 지식인 사회도 보수가 압도적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보수의 나라인 것이다.
반면 진보 세력은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이념으로 분화되어 있다. 돈 있는 사람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단체가 별로 없다. 진보적 시민단체조차도 기업의 지원을 얻지 못하고 언론이 외면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 튼튼한 정책연구소도 거의 없다. 그런데 보수의 나라에서 진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얕게 뿌리 내린 작은 나무에 너무 많은 과일이 매달린 형국이다. 두 차례의 대선 승리와 10년의 집권도 보수와 진보의 불균형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보수와 진보의 격차는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자산 규모 차이만큼이나 크다. 진보적인 대통령이라도 보수의 네트워크에 포위되어 고립당하면 힘을 쓰기 어렵다. 변명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는 그런 조건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낮은 것도 같은 원인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4-205쪽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하는 대통령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보내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해 효과적인 외교를 했다. 애초 미국의 요구는 1만 명 이상의 전투병력 파견이었다. 청와대 안보팀과 국방부는 최소 7,000명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참모들이 파병 자체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론은 전투병 3,000명을 보내되 비전투 임무를 주는 것이었다. 이런 절충적 해법을 찾고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서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파병 반대운동이 큰 의지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운동과 매우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도 이런 수준의 파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245쪽

북한이나 미국보다 더 버거운 상대가 국내 여론이었다. 한국의 보수신문들은 미국 네오콘보다 더 강경했다. 한나라당은 한술 더 떴다. 야당이 국회에서 더 강한 압박과 실질적인 제재를 요구하면서 대통령을 비판하면 보수언론들은 그것을 머리기사로 다루어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했다. 그렇게 만들어 낸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면서 또 대통령과 정부를 흔들었다.
만약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북한에 대한 증오와 대결주의를 조장하는 정치인과 언론인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무 대책도 없이 정서적 반감과 증오만 생산하는 그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북한과 미국 행정부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253쪽

20년 정치를 하는 동안 언론과는 늘 불편한 관계였다. 정치인과 언론은 어느 정도 관계가 불편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신문들은 ‘특별하게’ 불편한 관계였다. 그들은 임기 내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했다. 나는 그 신문들과 끝없이 싸웠다. 그들은 몇 백만 부의 발행부수로 표현되는 막강한 미디어의 힘으로 나를 공격했다. 논리의 힘, 사실의 힘, 진실의 힘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싸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무기로 쓰지 않았다. 국민이 언론과 싸우는 데 쓰라고 그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의 권리, 시민의 권리만 가지고 싸웠다.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패배했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독재 시대 그 신문들은 국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정부가 준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고, 그 대가로 여러 가지 특권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한 기자들이 그 시대 언론의 역사를 빛나게 했지만, 이 신문사들은 부당한 기득권의 성벽 안에서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치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보수신문들은 시장 권력과 유착되었고 그 자신이 새로운 사회적 권력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언론 자유의 과실을 먹으면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276쪽

언론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책임의식 부족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사회적 공론의 장을 열고 공정한 토론의 장을 여는 책임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언론 정책을 비판할 때에도 최소한 사실에 관한 정부의 주장은 함께 보도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에 대해서까지 정부의 주장을 봉쇄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했더니, 그 말은 아예 소개도 해 주지 않았다.
언론은 시민의 권력이어야 한다. 시민을 대신해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함으로써, 권력이 시민의 권리와 가치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그리고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차지하기 윟나 경쟁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공론의 장을 관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보수신문들은 과거에는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거기에서 풀려난 다음에는 이 권력 저 권력과 유착하고 제휴했다.
-279쪽

나는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정치 권력입니까? 시장권력입니까? 시민권력입니까?"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소망을 가졌을 뿐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 시민 권력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그렇지 못한 언론은 시장 권력의 대리인이나 정치 권력의 대리인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도록 투명하게 만들어 가는 것, 이런 정도를 바랐을 뿐이다. 이것이 잘못인가. 이것이 지나친 욕심인가. (...)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복잡한 인과관계를 가진 것인데, 언론이 효과가 없다고 하면 정말로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 대통령과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당과 시민단체의 주장도 언론이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외면해 버리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게 된다.
-280쪽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가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예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이다.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는 모두 최종적으로는 정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289쪽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독일식 권역별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대도시에서 한 선거구에 여러 명을 뽑고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지금처럼 하나만 뽑는 도농복합선거구제라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90쪽

지난 시기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권교체와 같은 민주주의 가치, 역사의 정통성, 권위주의 해체, 법치주의의 실현,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런 것들이 주제가 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반듯한 사회’를 주장했고 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떳떳한 국민, 당당한 나라’와 같은 가치를 선거구호로 내걸고 선거전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무엇을 바로잡고 발전시키겠다", "무엇을 개혁하겠다", 이런 것이 없었다. 국가의 주요 과제, 예컨대 남북관계나 평화 정책과 같은 문제들이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다. 토론회에서도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고, 그렇게 진행은 되었지만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 없이 다 그냥 넘어갔다. "경제 잘하는 솜씨 좋은 대통령이다." 이런 주장만 들렸다. 지도자의 도덕성 검증도 흐지부지 지나갔다.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와 역사의 중요 과제가 제출되고 국민과 함께 토론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새 정부가 그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 과정이 아예 생략되고 말았다.
-292쪽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검찰,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라고 조롱했다. 노무현의 인생만이 아니라 부림사건 변론을 맡았던 이래 내가 했던 모든 것을 모욕하고 저주했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대통령직 5년을 포함한 정치 20년, 그 모든 것에 침을 뱉었다. 재판이 다 끝날 때까지 그런 일이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들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로 만들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했던 분들을 향해 말했다. 노무현의 실패가 진보의 실패는 아니라고, 노무현은 이미 정의니 진보니 하는 아름다운 이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고. 노무현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으니 노무현을 버리라고.

-330쪽

(에필로그-유시민)
그는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다. 화려한 학력도 없었다. 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 반칙을 자행하는 자에 대한 분노,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열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연민과 분노와 열정의 힘만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처음에 혼자였던 그는 마지막에도 혼자였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그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끝없이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높은 곳에서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만 기쁨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럴 때조차도, 함께 고통 받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346쪽

그는 언론의 부당한 특권, 언론의 ‘조폭적’ 권력 행사, 언론인들의 오만에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도전했던, 단 하나뿐인 정치인이었다. 그가 비참하게 눌려 죽어 버린 이 나라에서, 앞으로 또 그런 도전을 감행하는 정치인이 나올 수 있을까?

-349쪽

2009년 5월 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1987년 6월항쟁은 우리 민주주의의 청춘이었다. 양김 분열과 3당합당,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으로 노년으로 늙어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꿈과 기억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
-350쪽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이를 지니고 살았던 그는, 반칙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대한민국을 그런 믿음 위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 믿음이 국민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한, 노무현이 대통령일지라도 그 시대는 ‘노무현 시대’일 수 없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마저 이루기 위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시민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그 꿈을 모욕하고 짓밟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는 생명을 버렸다. 그가 생명을 던진 그 자리에,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의 꿈만 혼자 남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그렇게 살아 있는 한, 그를 영영 떠나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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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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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니?" "이것은 소설이고, 더구나 장르문학입니다." "난 장르문학이란 말 안 받아들이네. 문학 앞에 붙는 어떤 관형사도, 알고보면 층위를 나눠 세우고 패를 가르려는 수작이야. 우리 문학판 너무 협소하고 못돼먹었어. 양반 상놈을 아직도 가르려는 패거리가 많은 게 이 동네거든. 자네는 양반을 사고 난 필요한 돈을 얻으면 되지." 우리 한 번, 문학판을 갖고 놀아보세, 라고 마음속으로 나는 덧붙였다. 재미있는 놀이판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쓴다는 것이 장르문학이기 때문에만, 그가 놀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필명이 적요寂寥이다.

평생 시 이외의 잡문을 쓴 바도 없고 탤런트처럼 이리저리 얼굴을 내밀지도 않았다. 천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일수록 천박한 짓과 천박하지 않은 짓을 악착같이 나누려고 한다는 것은 내가 혁명을 꿈꾸던 젊은 날 배운 것이었다.-66쪽

평생 오로지 시만 썼다는 게 무슨 자랑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혼자 살았다는 게, 필명이 적요寂寥라는 게 무슨 카리스마인가. 프러나, 우리 풍토에서는 그런 것들이, 나의 시작詩作에 붙어 놀라운 성과를 확대 재생산해낼 수 있었다. 시인으로 살아남기를 꿈꾸었기 때문에, 내 시의 가치를 전략적으로 높은 곳에 올려놓고자 하는 나의 욕망은 부도덕하지 않다고 믿었으며, 그것이 편견으로 가득 찬 지식인 사회에 대한 통렬한 야유의 한 가지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시인으로서의 내 성공에 대해, 그 무렵 자학적인 묘한 감정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내 시가 그만한 존경과 흠모를 받아서 마땅한가. 내 시에 대한 대중의 존경과 흠모는 우리 사회의 미묘한 관습들을 재빨리 간파해서 반어적으로 부응함으로써 얻은 과도한 전리품은 아닌가.(...)내가 평생 구도하듯이 혼자 살았다는 것도, 잡문 한 번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물론 회자됐다. 나의 입장에서, 그런 평가들은 나의 전략에 머리 좋은 자들이 놀아난 결과에 불과했다. 나는 그래서 혼자 앉아 속으로 말하곤 했다.

"엿 먹어라!"-142쪽

"젊은데 매니큐어도 좀 밝고 화려한 색깔로 하지 않고?" "어른들은...... 문제예요. 왜, '젊은데, 화려한 색깔'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훗, 멜로드라마 많이 봐서 그런가요? 젊은 색깔이라고, 다 화려한 게 아닌데...... 난 회색일 때가 많던데......"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회색은 무채색이잖아? 나는 반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아는 이적요 시인은 무채색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217쪽

조금만 더 귀를 열면 바람에 솔잎 하나가 떨어져내리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고요였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유리창과 얇은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그애와 마주보고 있었다. 그것은 우주적인 거리였다. 내게는 그애보다 죽음이 훨씬 가까웠다. -232쪽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라고, 소리 없이 소리쳐, 나는 말했다. -250쪽

시인으로서 나의 가증스런 전략은 일찍부터 죽음 뒤에 맞춰져 있었다. 모름지기 뛰어난 시인은,

죽은 다음에도 살아남는 자이며,

그러므로 죽은 다음에도 살아남도록 나는 살아왔다. 가짜 시들을 사람들이 진짜로 믿도록 하기 위해, 지금보다 젊었을 때, 나는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사코 산문은 발표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계획하고 전략을 수립한 대로 죽음으로써, 그 과실을 딸 때가 왔다. 선정적인 일부 언론과, '전략'을 재능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일부 문인들과, 모든 문화예술 작품들에게 급수를 매겨놔야 안심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죽은 나의 '불멸'을 도울 것이다. 대중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덩달아 박수를 칠 터이고. 박수 소리에 현혹되어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시인 이적요가 사실은 용의주도하게 설계돼 얻어진 '가짜'라는 걸 끝내 알지 못할지 모른다. 그 모든 '소음'을 상상하면 두렵기 한정 없다. 살아서 그랬듯, 죽어서도 하나의 전략적인 '소음'에 내 삶이 다 편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차리기는커녕, 죽은 자에게 후한 상을 내리는 그들의 습성대로, -396쪽

나를 더욱 '우상화'하려고 애쓸 가능성이 많다. -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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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0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장르문학이란 말 안 받아들이네. 문학 앞에 붙는 어떤 관형사도, 알고보면 층위를 나눠 세우고 패를 가르려는 수작이야.

전 장르문학을 완전 애정해서...문학 앞에 붙는 관형사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근데,다시 생각해보니...이 책 이쯤까지 읽다가 이 부분에서 집어던졌던 것 같아요~^^

마노아 2010-12-08 01:17   좋아요 0 | URL
장르문학을 잘 모르고 별로 접해보지도 못했지만, 아무튼 이 책이 꽤 괜찮았어요.
기대치가 무척 낮아던 터라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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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할 일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허무함, 길고, 시들고, 말라가는 시간의 악취...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가는 직장인들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진심에 나는 좌절했다.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그 삶이,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니. 언젠가 퇴직을 하면, 하는 상상으로 삼십삼년의 직장 생활을 견뎌내지 않았던가. 내 삶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삶이란... 무엇일까. -11쪽

아내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쯤이었다. 아들 내외와 딸 내외가 함께 병원을 찾아왔다.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딸이었다. 요는, 재산을 미리 정리해두자는 것이었다. 세금 문제라든지 갖가지 이유를 토로 달았지만 내가 느낀 요는, 미리 재산을 물려달라는 것이었다. 오빠랑 언니랑 우린 다 의견이 일치했어요, 솔직히... 이제 아빠도 준비를 하셔야 되구요. 준비 없이, 그런 얘길 들어야 했다. 고개를 돌린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자궁에서 뻗어나온 세상도 이미 커다란 암이 되어 있었다. -12쪽

노성진의 왼편, 두 자리 건너에 앉은 놈이 정동필이다. 키가 큰 윤동필이란 친구가 있어 작은 동필이라 불리던 녀석이다. 백육십이 될까 싶은... 정말이지 작은 키다. 참견하길 좋아하고 촐싹대는 면이 있어 '똥피리'란 별명을 따로 갖고 있었다. 왜소한 체구지만 요양원을 통틀어 가장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드러난 병이 없다. 동필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오직 가난 때문이다. 요양원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이곳은 정부의 보조를 받는 실비 시설이다. 일반 노인에겐 요양비의 절반을, 생활보호 대상자에겐 전액을 지원해준다. 말하고 보니, 동필이야말로 이곳에서 가장 아픈 노인이란 생각이 든다. 가난보다 큰 빌병은 세상에 없다. 내가 알기론, 그렇다.-21쪽

옆자리의 총에 비해 구원은 멀리... 정말이지 뉴욕쯤에나... 저 자유의 여신상 아래에나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글귀를 새겨 놓았나?

고단한 자들이여
가난한 자들이여
자유로이 숨쉬고자 하는 군중들이여
내게로 오라

엠마 라자루스의 시를 나는 떠올렸다. 왜 구원은 고난에 빠진 이를 찾아와주지 않는 것인가. 왜 모두에게 직접, 제발로 걸어오기만을 요구하는 것인가...-59쪽

그때 그 어둠속에서 권왕은 문득 외로웠었다. 악한에게도 명분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싸울 만한 나쁜 놈이 없다는 외로움, 더는 그림자를 만들 수 없는 빛의 외로움을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93쪽

아무도 듣지 않는 신청곡처럼, 맥연히 그 리듬이 애잔하고 서글펐다. 영웅의 시대는 끝이 났다. 바야흐로, 소녀들의 시대였다.-94쪽

대형... 대의를 가져선 살 수 없는 세상이고, 대인은 어느 한 곳 설 자리가 없는 세상입니다. 대의가 없다니, 일국이 섰고 남아와 기개가 이리 들끓거늘 어찌 대의가 없을 수 있겠느냐? 아아... 한숨을 쉬며 천마가 말했다. 대의가 있다면... 서른 두 평 아파트입지요, 혹 기개를 품은 남아라면 쉰 평 정도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대형, 지금은

돈이 최곱니다-100쪽

천마는 참가를 결심했다. 이게 아니란 생각이 든 것은 종잇장 같은 글러브를 끼고서 링 위에 올라간 직후였다. 장풍을 방사하거나, 행여 무공을 썼다가는 죽거나 불구가 될 만큼 허약한 상대였다. 아아, 절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인간이 개미를 다치지 않게 때릴 수 없듯, 영종도를 이륙한 비행기가 인천 간석동 34번지에 내릴 수 없듯 발경의 조절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달려든 상대를 끌어안은 채, 천마가 해야 할 일은 한사코 얼른 탭을 치는 것이었다. 시합 종료가 선언되었다. 그 순간 탭의 장력에 의해 링이 무너졌지만, 누구도 그것이 내공에 의한 것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104쪽

오로지 눈뿐인 세상이었다. 정치꾼이 된 동지도, 귀족노조가 된 후배도, 재벌의 뒤를 닦는 변호사 선배도, 고문후유증으로 여즉 노모가 대소변을 받아야 하는 친구도, 실은 독재가 그리웠던 이웃도, 잘살면 그만인 민족도, 여전히 건재한 친일 후손도, 그보다 더 건재한 발포 책임자도, 어쩌지 않고 어쩔 생각도 없는 대다수도, 실은 있지도 않았던 이념도, 있어도 소용없는 법도, 아빠도 2번 찍지그래? 하던 달도, 있지도 않았던 민주와 민중도, 그래서 모두가 이미테이션처럼 느껴지는 골짜기였다.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은... 무림은 실제로... 존재했던 겁니까? 쏟아지는 폭설을 바라보며 천마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109쪽

기천아! 하고 수저를 내려놓은 천수가 소릴 질렀다. 부르셨습니까? 뜨악하니 도제 하나가 방문을 연 것은 제법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였다. 들때밀 같은 표정으로 마당의 눈을 쓸던 바로 그 도제였다. 아까 내 전음을 들었느냐 못 들었느냐? 어떤 전음 말이옵니까? 깻잎 말고 방앗잎을, 후추 말고 산초를 치라 일렀지 않았느냐. 머리를 긁적인 도제가 불콰해진 얼굴로 목소릴 울먹였다. 사부님... 그리 긴 전음을 도대체 언제쯤 들을 수 있다는 겁니까? 오년 수련에 오라 가라 간단한 전음도 들릴까 말까인데... 그리고 그런 말은요... 휴대폰으로 하시면 되는 겁니다, 예 어허, 고얀지고. 어느 안전이라고 네놈이... 내 오늘 세 분 무신께서 모이신다 그리도 일렀거늘! 울먹이던 도제가 결국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四룡께서 모이면 뭘요... 뭘... 정부라도 엎을 겁니까? 네 분이 힘 합치면 뭐... 삼성한테 이길 수 있습니까?-112쪽

눈 내린 마당으로 뛰쳐나간 도제가 흐느끼며 숲속으로 사라졌다. 수저를 집지 못한 채 천수는 말이 없었고, 나머지 무신들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천수의 미간이 세인처럼 잔뜩 일그러졌다. 동란을 피해 내려온 부산에서 겨우 반 평 얼음집을 열었을 때도, 지구온난화로 십갑자의 내공을 고스란히 잃고서도 이토록 처참한 기분은 아니었다. 두평 반 천장의 격자무늬를 올려보며 천마가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물지 않아도 담배를 문 것처럼, 이장록은 또다시 개체 참조가 개체의 인스턴스로 설정되지 않은 기분이었다.-112쪽

뜨고 싶은 세상이기도 했고, 할 일이 더 많아진 세상인 듯도 했다. 부패를 못 막으면 발효라도 시켜야 할 것 아닌가. -115쪽

민주니?
오... 뭐야 아빠, 이 시간에.
미안하구나... 급히 좀 할 말이 있어서 말이다.
글세 뭐냐니깐?
민주야... 만일 말이다... 아빠가 사라지면 너 어떻게 살래?
나 원, 별 걱정을 다 하네... 언제 아빠가 경제 책임진 적 있어?
그래, 할 말이 없구나...
그래도 민주야... 경제가 전부는 아니잖니.
몰라, 어려운 얘기 하지도 마. 난 돈이 전부야. 또 이상한 사람들하고 같이 있지?
그게 무슨 말이냐.
아, 몰라 끊어. 그리고 아빠... 제발 개량한복 좀 입지 마! 나 쪽팔려 죽겠어.-115쪽

정말 간절히 원한다고 하니까 그래? 하는 분위기였어. 샤워를 할 때까지도 잔뜩 흥분해 있었는데, 글쎄 걔가 전에 사귀던 선배 얘길 하는 거야. 그래서 그 선배는 미국 국적을 가졌는데 군대 안 가도 된다더라, 라고 말이야. 제길 그 얘길 들으니 갑자기 자지가 죽지 뭐냐?

그 느낌을

알 것도 같았다. 어렸을 때 이웃 단지의 47평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단짝의 생일파티였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을 찾았다. 볼일을 잘 보고 물을 내리는데 아주 기분이 묘했다. 물, 소리가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우리집에선 콰, 하는 소음과 함께 맹렬한 소용돌이가 변기를 훑어내리는데 스와, 하는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잔잔히 맴을 돈 물이 변기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 묘해 나는 몇번이고 스와, 를 반복했다. 우와, 탄복을 하며 화장실을 나와서도 그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더는 파티를 즐길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125쪽

바다는 처음이었다. 처음엔 그럴 리가, 싶었지만-곧 그럴 수밖에,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온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을 떠올리면 언제나 함께 학원을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수영이라면 함께 일년 정도 배운 적이 있지만, 바다는 모두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을 떠올리면

그럭저럭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나도 그래, 재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월리가 백명 정도는 숨어 있을 것처럼 사람이 많았지만-높은 하늘과 바닐라스러운 구름, 또 원경의 풍부한 마린블루를 쳐다보며 나는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었다. 오길, 잘했다.-129쪽

망할 놈의 여편네... 이러니 내가... 니미럴, 말이 나왔으니 말이다. 엄마 같은 여자랑 결혼하려면 차라리 강원도에 들어가 곰을 데리고 사는 편이 나을 게다. 곰은 입장료라도 벌지. 알까 모르겠다. 아버지가 잘나갈 때... 그때 뭐라도 해서 엄마가 조금만 보탰다면 아파트 살 수 있었다. 집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지.
엄마를 원망하는 건가요?
원망은 아니고... 그렇다는 얘기다.
엄마도 열심히 사셨어요.
안다. 내 얘기는...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화가 난다는 거지.
곰 얘기 엄마한테 해도 되나요?
안되지.

그나저나 남들 사는 만큼은 살아야 하는데.
희망을 가져요 아빠.
미안하다. 면목이 없구나.
아빠도 열심히 사셨잖아요.
알아주니 고맙긴 하구나, 그런데 병태야.
네?
우리 혹시 서민도 아니고 빈민... 그런 거 아닐까?
아무렴 어때서요.
몰라서 하는 소리, 용산이 그리 먼 산이 아니란다.-187쪽

누군가의 곁에 신이 없다면... 누군가의 곁에 인간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겠지.-243쪽

아치에 오르는 인간의 목적은 죽음이 아니다. 대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알아주길 바라는 거다. 그래서 말려주길 바라고, 또 외로워서다. 들어주고 달래주고 말려주고 함께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안 것도 경험을 통해서다. 관할을 옮기고 그간 숱한 인간들의 손을 잡고 아치를 내려왔다. 표창을 받은 적도 있다. 처음엔 목숨을 구한 거라 스스로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 그들이 아치에 올랐다는 사실을. 사업에 실패하고, 연인에게 버림받고, 빚더미에 올라선 인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이곳에서 찾는 것이다. 확 담배를 비벼 끈다. 사는 게 힘든 만큼 죽는 것도 힘든 일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가 제기랄, 피식 불꽃을 잃은 장초가 자살자의 시신처럼 싸늘하게 식어간다.-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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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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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연두와 초록, 노랑의 저 색채를 음미하고 기억하려 한다. 모든 물감을 섞으면 검정이 되듯 소소한 삶의 순간들도 결국 죽음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물이 흐른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폭이 넓고 깊은 삶이 흐르고 있다. 나는 기쁘고, 기쁘지도 않다. 나는 슬픈데 슬픈 것만도 아니다. 나는 화가 나지만 어째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는 즐겁고, 실은 즐거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르겠다. 느끼는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섞으면 결국 체념이 된다. 그것은 캄캄하고, 끝없이 깊고, 풍부하다. 인간이 이를 곳은

결국 체념이다.-26쪽

여섯 개 정도... 개인 파일이 담긴 폴더를 휴지통에 삭제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삶의 대부분이라 믿었던 직장생활이 그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저기...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말일세... 하고 부장은 부탁했었다. 일주일 정도라도... 어떻게 인수인계를... 살아온 삶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그래서 들었다. 천수를 누린다 해도 어쩌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딸칵 이곳의 문을 여는 순간 그때도 아버지의 말이 새삼스레 떠올랐었다. 넌 저방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어쩌면 그 말은 아버지의 마지막 인수인계가 아니었을까, 인간은 결국 각자의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견디고 견뎌온 존재들이 아니었을까. 그 방에 짐을 풀고서 나는 청소를 시작했었다. 그때의 젖은 물기가 아직 손에 그대로 남은 느낌이다. 처연한 달이

스스로를 깎고 있는 깊은 밤이다. -28쪽

마련된 자리에 착석을 하며 나도 모르게 실례합니다... 라는 말이 새나왔다. 실례해라! 하고 고함을 친 것은... 동구였다, 자세히 보니 동구임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든지 나도

실례를 하고픈 밤이다. 친구들은 변하지 않았고, 변해 있었다.-29쪽

나 많이 늙었지? 문득 얼굴을 숙인 순임이 물었다. 글쎄, 하고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나이 든 소녀를 위한 마땅한 표현이 나는 떠오르지 않았다. 늙었다, 와는 다른, 그러나 늙었다 근처의 그 어떤.

늙었다기보다는, 지친 느낌이었다. -32쪽

차차 대소변도 못 가릴 아내가 무거운 짐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내에겐 그래서 감사한 심정이다. 젊었을 때의 잘못을 보상할 기회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더는 살고 싶지 않다.

더는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고통이나 불편함이 아니다. 자식에게서 받는 소외감이나 배신감도 아니다. 이제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삼십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실은 누구라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65쪽

아시겠죠? 어린이 여러분.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꿈과 희망을 잃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우린 여러분의 친구니까. 자자, 가면라이더 파이즈와 사진을 찍을 어린이들은 이쪽으로 줄을 서주세요. 어머님들은 사진을 받을 수 있는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구요. 하아, 그래서 찍었다. 서른아홉 명의 코찔찔이들 옆에서 서른아홉 번 승리포즈를 잡아준 것이다. 아저씨 가짜죠? 마지막 코찔찔이가 당돌하게 물었다. 움찔, 하기보다는 화가 났다. 진짜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니? 말은 못하고 하하 웃었다. 허벅지가 따끔거렸다. 진짜 파이즈의 허벅지에도 땀띠가 있을까?-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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