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365 - 주제별로 매일 한 권씩 2000년대 좋은 그림책 그림책 365 1
학교도서관저널 <그림책 365> 선정위원회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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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펜이 쓴 <마이크로 트렌드>라는 책에는 '왼손잡이들이 늘고 있다'는 재미난 글이 있다. 1960년보다 1993년에 왼손잡이가 무려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부모들이 더 이상 아이가 왼손 쓰는 걸 막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의 개성을 억누르기보다는 북돋아주겠다는 요즘 부모들의 교육관이 왼손잡이 숫자를 늘렸다. 생각해보면 왼손잡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전세계적으로 터부시되었다. 1979년 이슬람혁명이 있기 직전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란 국왕이 저주를 받았다는 증거로 그의 첫째아들이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정도다.
(...)
픽사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이 그처럼 발전할 수 있는 건 미국에서 그만큼 어린이의 문화가 존중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독립적 세계로 보고 그걸 표현하는 장르가 바로 그림책이다.-25쪽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한 상태인 '휴전협정' 중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평화'가 절실한 나라인 것이다. 하지만 평화의 상대적 개념은 과연 전쟁뿐일까? 유네스코 헌장은 서문에서 "전쟁은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평화의 보호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구축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전쟁의 근본적 원인 중의 하나는 인종적 편견과 무지에 따른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평화가 단순히 전쟁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라는 생각에서 나아갈 필요가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평화에 대한 염원은 특정한 나라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세계 시민으로서 평화에 대해 알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과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170쪽

그림책 읽는 방법을 독서 전문가가 아닌 그림책을 읽고 즐기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간략하게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글과 그림 고유의 기능을 염두에 두며 글과 그림의 관계에 주목하여 읽는다. (...)
둘째, 읽고 있는 그림책이 번역본이라면 원서의 제목은 무엇이며, 번역의 과정에서 바뀐 제목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러한 차이는 그림책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며 읽는다.(...)
셋째, 그림책 판형에서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그림책을 구성하는 각 부분은 전체의 미학적 효과를 위해 정교하게 고안된 것임을 염두에 두며 읽는다.
넷째, 모든 텍스트가 그렇듯, 결코 한 번의 읽기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급적 천천히 여러 번 읽는다. (...)
다섯째, 그림책의 특성이 독자인 자신의 읽기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의식하며 읽는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관계가 읽기에도 영향을 미친다.-290-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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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감동 휴먼 다큐 '울지마 톤즈' 주인공 이태석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증보판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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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 선호 사상, 예쁘게 잘 치장한 여자들의 모습, 여자를 보물처럼 아끼고 잘 키우려는 것 등등 외형적인 것들만 보면 이곳은 분명히 '여자들의 천국'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면 이곳은 외려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한 곳임을 알게 된다.
여자 아이들을 아름답게 꾸미고 치장하며 될 수 있는 한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은 받을 '소'의 수를 늘리기 위한 것, 즉 값이 더 많이 나가도록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결코 여자를 한 인간으로서, 남자보다 더 귀중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더욱 서글픈 것은 결혼 때 팔려 온 여인네들은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줄줄이 아이들을 낳고 소처럼 일해야 한다. 말 그대로 '소 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25쪽

집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해보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나병에 걸렸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던 그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 보니 가슴이 저려왔다.
'원수 같은 가난이 사람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화가 치밀어 올라온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게 하는, 나눔의 정신이 부족한 이기주의적인 사회 구조가 그 '화'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貧만 있고 富가 없는 이곳은 말 그대로 빈부의 차가 없는 곳이다.-72쪽

보통 이곳 주민들은 약, 주사, 음식 등 모든 것을 무료로 베풀어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들고 와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경우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문화의 벽을 깨고 직접 농사지은 호박이나 날씬한 아프리카 토종닭을 들고 와 고맙다는 인사를 한 사람이 8년 동안 딱 세 사람 있었는데, 그중에 두 명이 놀랍게도 나환자였다. 과부의 헌금처럼 닭 한 마리는 그들에게 엄청난 재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육체적으론 문드러지고 사회적으론 버림받았지만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도 부유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감각 신경이 마비되어 뜨거운 것,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해 손과 발에는 화상이나 상처가 가득하지만 감각 신경의 마비를 보완이라도 하듯 보통 사람보다 수십 배나 민감한 영혼들을 지니고 있다. 자그마한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 감사를 기어코 무언가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영혼 말이다.-74쪽

병원에 성모 상도 십자고 상도 없고 환자들에게 성당 나오라고, 예수 믿으라고 권유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들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너무나도 열심이다. 이들이 말없이 변화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멋진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순 있어도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영혼의 진실한 만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상대방의 영혼이 우리의 진실한 삶을 통해서, 우리의 진실한 눈빛을 통해서 예수님을 느끼거나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영혼에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96쪽

하느님께서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는 왕복 10차로 고속도로 같은 탄탄대로의 뻥 뚫린 인생의 길을 쉽게 주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웅덩이가 있고 고개가 있어 쉽게 빨리 달리지 못하는 길, 때로는 진흙탕에 빠져 한참을 한곳에 머물러야 하는 길, 먼지가 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험한 흙 길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는, 좋은 길만 보면 탄탄대로라고 마음껏 달리고마는 인간의 교만에 제동을 걸고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주는 상처도 줄이며, 때론 함께 손잡고 때론 누군가를 부축해 주거나 등에 업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는 길, 교육적으로 좋은 길, 미래를 위해서 좋은 길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달릴 수 있는 길, 평탄한 길에만 집착하는 고집스러운 인간들을 가르치기 위해 하느님 스스로도 골고타로 향하는 길,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157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선 물가가 엄청 싼 것으로 상상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모든 것이 두세 배의 가격이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것의 가격이 그 정도이고 구할 수 없는 것은 가격의 몇 배를 지불한다 해도 구하기 어렵다.-159쪽

물론 도로 사정이 나쁜 것과 기후나 토질이 나빠 농작물의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것이 주원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주원인은 이 두 가지 원인의 배후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무관심'이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올리는 것만이 모든 사람들의 목표인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정당화되어 버린 무관심' 말이다. 어떠한 말이나 인권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자국의 이권이 없는 곳엔 등을 돌리고마는 국제 사회의 무관심도 그렇고, '나 하나 또는 내 가족 하나도 돌보기 빠듯한데.'하는 개인적 무관심도 그렇다. 선의의 경쟁을 하나의 덕으로 여기는 경쟁 사회에서 상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무관심'은 하나의 덕으로 여겨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무관심'은 엄연한 죄악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바로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168쪽

다르푸르의 아이들은 정말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임이 틀림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사랑을 잃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데에 그들이 가톨릭이나 개신교면 어떻고 이슬람교면 어떤가?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꼭 우리가 믿는 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내 안에 잠재된 강박적인 사고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에 대한 특별한 알레르기가 있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가 있다. 이는 종교의 틀에 인간들을 끼워 구속시키려는 바리사이들의 사고와 행동에 맞서 '종교는 인간을 구속하는 정신적인 틀이 절대 아니다.'고, '오히려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 정신적인 해방의 틀이다.'는 것을 외치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194쪽

이슬람 지역에서 그 사람들을 개종시킬 수 없다고 해서 우리의 선교 기능이 정말 마비된 것일까? 그건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지금 북 수단에 계신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들을 개종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안아 주며 위로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결과나 수치, 틀에 박히지 않는 예수님의 깊고 넓은 사랑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선교가 아닐까.-194쪽

이곳에는 생년월일을 신고할 기관이 없다. 게다가 가족들도 기록해 놓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이 자신의 생일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나이를 물어보면 태어난 해에 일어났던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생년의 기준으로 삼는다. 자신이 태어날 때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였는지, 추수할 때였는지 아니면 건기였는지가 태어난 달을 대충 추측하는 기준이 될 뿐이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나이를 병력지에 기록하기 위해 나이를 물어보게 되는데, 적어도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손가락 일곱 개를 펴 보이며 '일곱 살'이라고 대답했던 사 년 전쯤의 사건 이후 나는 절대로 이곳 사람들의 나이를 물어보지 않는다. 물어보는 사람이 잘못이다. 얼굴의 주름이나 피부의 탄력 등을 보고 추측하여 적는 것이 훨씬 정확하고 마음도 편하다.-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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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7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7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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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주사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크게 떴다. 그 놀라는 반응은 첫 번째 노린 효과였다. 아, 당신이 미국 박사님! 한국 사람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공무원 같은 보수 집단에게 미국이란 그 얼마나 거룩하고 눈부신 대상인가.
-164쪽

억(億)이란 뜻을 아는가? 그 글자는 사람 인 변에 뜻 의 자가 합해진 거지.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건 실재하는 수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는 큰 수라는 뜻이야. 그 글자가 만들어졌던 그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경제 규모가 작았으니까 억 단위의 금전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거야.
-234쪽

우리는 흔히 분노와 증오를 감정적인 것, 또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값싸게 취급하거나, 경멸적으로 비웃는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비인간적인 불의와 반사회적인 부정이 끝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그런 그른 것들을 보고도 아무런 분노나 증오도 안 느낀다면 그것이 옳은 것인가. 더구나 지식인들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마땅히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분노와 증오를 느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처절하게 살아온 민족일수록 그 지식인들은 가해자들을 향해 식을 줄 모르는 분노와 증오를 품어야 한다. 그 시간과 세월을 초월하는 분노와 증오는 이성적 판단과 논리적 분석이 없이는 생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분노와 증오는 일시적 감정이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인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현실의 부당함과 역사의 처절함에 대해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지 않다면 그건 지식인일 수 없다. 더구나 작가로서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가슴에 담겨 있지 않다면 그는 작가일 수 없다.
80년대 그때에 큰 자극을 받았던 어떤 작가의 글-234쪽

전인욱은 늦은 밤길을 혼자 걸었다. 처자식 있는 몸!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보다 훨씬 더 호소력이 강한 자기변명의 수단이고 무기였다. 그리고 비겁자, 보신주의자들이 가장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였다.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 그 한마디는 그 어떤 난처한 입장, 그 어떤 궁지에서도 단숨에 탈출할 수 있는 만사형통의 묘수요, 만병통치특효약이었다. 그 말의 밑뿌리는 우리의 골수에 박혀 있는 인정주의였다.
-248쪽

좀도둑은 포승 받아도 큰도둑은 상 받는다. 우리의 속담이다.
재벌들이 저지르는 그 불법 행위는 분명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범죄이고,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씌워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재벌들의 경제 범죄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다. 왜 그랬을까. 기업들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325쪽

긴 인류의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으로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의 우리들 자신이었다.
-325쪽

투표가 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계속 신장시켜 나갈 수 있는 ‘정치혁명’이듯이, 우리가 단결한 불매운동은 기업들과 우리들이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경제 혁명’이다. 우리가 그 어리석은 환상과 몽상과 망상에 사로잡혀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기업들은 더욱 신바람 나게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 우리는 점점 더 비참한 노예가 되어 간다.
감기 고뿔도 남 안 준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왜 재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주겠는가.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 내고, 거미줄도 수만 겹이면 호랑이를 묶는다. 조상들의 일깨움이다.
국민, 당신들은 지금 노예다.
-326쪽

사흘이면 남의 일은 다 잊어버린다는 그 말을 다시금 입증해 주듯이 한동안 끓는 물 넘치듯 시끌벅적 왁자지껄해 대던 사람들의 입도 잠잠해지고 있다. 속이 터지는 경제민주화실천연대에서만 어서 빨리 수사를 진행하라는 시위를 검찰청 앞에서 날마다 벌였다. 그러나 그건 법에 저촉되는 것을 피한 1인 시위였다. 그 침묵의 외로운 시위는 저마다 바쁘고 지친 도시인들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했다.
-347쪽

정치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도덕적인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그런 존재들에게 국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 권력을 송두리째 넘겨주고 말았으니 그 결과야 뻔한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돈과 결탁하는 ‘정경유착’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배신과 불의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들은 또 다른 감시와 감독 조직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시민단체다.
-373쪽

"충고란 그동안 있어 왔던 우정에 대한 배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배신을 무릅쓰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388쪽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고루 나누어 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부자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3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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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0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일부 대기업의 형태를 보면 천민 자본주의란 말이 딱 맞습니다요ㅜ.ㅜ

마노아 2010-11-03 16:21   좋아요 0 | URL
'일부'가 아닌 것 같아서 더 큰일이에요.ㅜ.ㅜ

같은하늘 2010-11-0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넘들~~~

마노아 2010-11-03 17:30   좋아요 0 | URL
이런 넘들은 욕도 많이 먹어서 오래 살 거예요.ㅜ.ㅜ
 
창선감의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0
이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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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감의록은 명나라 가정 연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설이면서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현대의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명나라는 타국이 아닌 문화의 중심이자 문명국이었다. 이는 정치적인 예속관계와는 다른 차원으로, 중국과 동일한 학문과 문학, 역사를 공유하는 것은 서양의 여러 나라가 라틴어 문학을 이탈리아 문학으로만 한정해 인식하지 않았던 것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 중국 명나라를 배경으로 한 것은 '타국'보다는 '역사'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명나라 가정 연간은 타국의 역사가 아닌 역사 그 자체였던 것이다. -4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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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10-25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나중에 구매할까 말까 생각중인 책이에요.^^

마노아 2010-10-25 21:43   좋아요 0 | URL
공이 많이 들어간 시리즈 같아요. 다른 책도 더 봐야지 싶어요.^^
 
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 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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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도서 수집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항구에 정박하는 선박뿐 아니라 심지어 지중해를 항해하는 선박을 검색해 서적을 압수하여 도서관으로 보냈다. 원본에는 원주인의 이름을 적어놓고, 대신 원주인에게는 사본을 만들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일종의 지적 강도라고나 할까. 바다 건너 그리스 등에 귀중본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거액의 예치금을 맡기고 빌린 후 예치금을 포기하고 귀중본을 차지하는 등 도서 수집에 열을 올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인 70만 장서를 보유했는데, 지금의 인쇄본으로 환산하면 10만 권 정도라고 한다.

-24쪽

로마의 카이사르도 이 도서관을 불태운 사람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기원전 48년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곳에 상륙하여 이 왕국의 마지막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를 만나 결혼하고, 왕국의 복잡한 권력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이자 남편이고 정적이 되어버린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의 전투에서 항구에 정박한 수십 척의 배에 불을 질렀는데, 이것이 도서관에 옮겨 붙어 수만 권의 두루마리가 소실되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클레오프타르>에 이 장면이 나온다. (...)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 사후 안토니우스와 결혼할 때 지상 최고의 결혼 선물을 받았다. 안토니우스는 이 절세미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로마의 정복지인 시리아 지역에 있던 페르가몬도서관의 20만 장서를 통째로 배에 싣고 와 바쳤다. 화재로 도서관 장서가 손실되어 상심하던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27쪽

국가 도서관이라면 으레 정부 기관이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대영도서관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비정부공공기관인 점이 특징이다.

-44쪽

로마 시내에 있는 안젤리카도서관은 수도원도서관의 하나다. 17세기 초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열람을 허용했던, 이탈리아 최초의 공공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보와 지식은 공유할 때 가치가 배가 된다. (...) 양 한 마리의 가죽에서 전지 한 장이 나왔다고 하니 성서 한 질을 만드는 데는 ‘희생양’ 수천 마리가 필요했던 셈이다.

-57쪽

수도원에 도서관이 있었던 이유는 지식이 기반이 될 때 믿음도 더 깊어지고 전도도 용이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 없는 수도원은 무기고 없는 성채에 비유되기도 한다. 수도원도서관은 중세 암흑기에 교육과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고대 문화의 보존과 전승이라는 빛나는 공을 세웠다. 과거와의 문화적 연결이 완전히 끊어질 위기에 직면했을 때도 고대 문화를 간직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로 진전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세 천년 동안 모든 이성적인 것들이 숨을 멈추었을 때 수도원도서관 내 ‘지옥’으로 불린 금서 구역에는 그리스, 로마, 알렉산드리아의 자유분방한 서적들이 ‘냉동 보관’되어 훗날의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금서 구역이 왜 ‘지옥’일까? 그곳에 접근하면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58쪽

동서고금을 통해 금서는 존재해왔다. 주로 신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통치에 방해가 되는 책, 새로운 이론, 자유분방한 표현들이 대상이 되었다. 지동설, 지구원형설, 진화론 등이 그것이다. 루소, 홉스, 보들레르, 랭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다윈 등의 위대한 이론과 시대를 앞서 간 표현들이 상당수 ‘죄 지은 책’ 신세로 ‘책 감옥’에 갇혀 지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도 금서였다. 프랑스 바스티유감옥에는 실제로 사람 감옥뿐 아니라 책 감옥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혁명은 통치자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그러나 민중의 베스트셀러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혁명이었다"라는 로버트 단턴의 말은 통치자의 금서 지정 이유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금서들이 훗날 햇빛을 보아 르네상스의 찬란한 꽃을 피웠다. 비록 금서라는 반문화적 형태였지만, 사형(분서)에 처하지 않고 무기징역(금서)으로 생명을 유지시켰던 것은 큰 공로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63쪽

카사노바는 화려한 여성 편력의 대명사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이 잘생긴 남자는 외교관, 종교철학자, 성직자, 탐험가, 스파이, 바이올리니스트 등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특히 만년에는 방황 끝에 어느 백작의 성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집필에 몰두하여 유명한 회상록 《내 생의 역사》를 비롯한 4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보통의 여자뿐 아니라 귀족의 부인네들, 심지어 수녀까지도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수려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요한 요인은 그의 타고난 재치와 폭넓은 교양에서 나오는 유려한 화술 때문이었으며, 그 원천은 닥치는 대로 독파한 서적들이었다. 이성 교제에 독서가 필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면모를 부각시킨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무려 천 명이 넘는 여성들과 사귀었던 그는 "나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라는 그럴싸한 말을 했다. 허나 이 매혹적인 천재는 젊음을 소진한 뒤에야 비로소 더욱 멋진 말을 남겼다. "내 생의 마지막에 행복을 찾을 수 있었던 곳은 오직 도서관뿐이었다."-64쪽

(독일)베벨 광장 중앙에는 텅 빈 지하 서가를 만들어 투명 유리를 통해 안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책이 사라진 공간은 문화와 지성, 이성의 결핍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이 지하 서고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는 시인 하이네가 1820년에 쓴 작품에서 가져온 문구가 동판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단지 전야제에 불과했다.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태우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은 1백여 년 뒤에 벌어질 사건을 예견하고 쓴 것이나 다름없다. 시인의 놀라운 예지력에 소름이 끼친다. 유태계의 이 천재 시인은 지금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공동묘지에 누워 있다.

-72쪽

안토니우스가 20만 장서를 싣고 가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오파트라에게 결혼 선물로 바친 역사가 있는 페르가몬 도서관. 이 왕국은 기원전 3세기에 소아시아, 즉 오늘날 터키의 북서쪽 해안 부근에 세워졌는데, 기원전 2세기에 왕의 후사가 없자 내전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헬레니즘 문화가 발달한 가운데 특히 도서관이 수준급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도서관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페르가몬왕국의 역대 왕들은 도서 수집광이 많아서 닥치는 대로 책을 모아 도서관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질투를 불러왔다. 마침내 알렉산드리아는 왕명으로 파피루스의 수출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페르가몬이 책을 만들 수 없게 하였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 페르가몬은 당시 소규모로 이용되던 양피지의 대량 생산 방법을 고안하여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양피지의 영어 이름(parchment)이 ‘페르가몬(pergamon)의 종이’에서 유래할 정도로 페르가몬은 양피지의 대중화가 이뤄진 곳이다.

-88쪽

1993년 미테랑대통령은 고속열차인 TGV를 팔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 외규장각 의궤 297책의 반환을 약속하고 그중 맛보기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라는 책 한 권을 가져왔는데, 국립도서관의 여성 사서 2명이 책을 가지고 따라왔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청와대에서 두 나라의 대통령이 직접 반환식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사서들이 책을 못 내놓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프랑스 측에 초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주한 대사가 설득에 나섰으나 실패했고 외무장관이 장시간 면담을 한 끝에 전달식 몇 분 전에야 사서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타나 책을 내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103쪽

3백 년이 다 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도서관은 세 차례나 화재를 당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가까이는 1988년 큰불이 나서 네바 강 물을 끌어다 겨우 껐지만, 불에 타서 40만여 점이 피해를 입고, 물에 젖어 350만여 점이 피해를 입었다. 이후 곰팡이로 인해 더 많은 장서가 위험에 처했다. 이때 장서를 온풍기와 고주파전류로 건조시켰고, 일부 장서는 식료품 냉장창고에 임시로 보관하기도 했다는데, 곰팡이와의 전쟁은 지금까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유서 깊은 도서관을 살리기 위해 유네스코와 국제도서관협회연맹, 미국 의회도서관 등 세계가 나섰다고 한다. 결국 독일의 한 연구소에서 가져다준 특수 재료를 이용하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는데, 책을 통조림의 원리로 보호하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또 독일은 상당한 액수의 복구비를 지원했다. 타다 남은 책들이 역사관에 그대로 전시되어 아픔을 상기시키고 있다.

-118쪽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도서관은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9백 일간이나 봉쇄했던 때의 일을 전설처럼, 신화처럼 이야기한다. 나치는 50만 대군을 동원하여 소련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관문인 이 도시를 1941년부터 1943년까지 봉쇄하여 식량과 연료의 공급을 차단했다. 이때 67만여 명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포탄에 맞아 죽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견뎌낸 이 도시는 ‘영웅 도시’ 칭호를 받았다. 놀라운 것은 이 기간에 도서관은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겨울 혹한이 유달리 극심하여 영하 30~40도까지 수은주가 내려갔지만 유리창도 깨져 없고 난방도 못한 상태에서 도서관을 운영했다는 설명이 믿기지 않는다. 심지어 군대와 병원을 위해 이동도서관까지 운영했다. 살인적 추위와 배고픔, 날아오는 포탄 속에서 도서관의 자료와 열람자를 보호하기 위해 죽음과의 사투를 벌인 결과 당시 직원의 절반 정도가 사망했다고 한다.

-120쪽

러시아 북쪽 끝 백해 연안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로모노소프는 19세 때 가출하여 수백km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걸어와서 어렵게 공부를 한 끝에 명문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의 교수까지 된 인물인데, 훗날 모스크바대학을 창설했다. 오늘날 러시아의 양대 라이벌 명문 대학인 두 대학이 모두 그의 동상을 세워놓고 자부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물리학을 최초로 러시아어로 강의했고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했으며 널리 이용된 백과사전을 편집하는 등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보다는 명품 러시아 황실 도자기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얇으면서 견고하고, 순수하면서도 화려하고, 러시아 특유의 차가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로모노소프 도자기의 제조 기법을 개발한 사람이 바로 로모노소프이다.

-123쪽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멘델레예프. 화학 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사람. 그는 시베리아에서 1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이 대학 의대에 진학했으니 시체 해부하는 모습을 보고 기절하는 바람에 쫓겨나서 화학으로 방향을 틀어 화학을 현대 과학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한 표 차이로 아깝게 노벨 화학상을 놓친 지 두 달 만에 숨졌다. 그는 또 러시아의 국민주인 보드카의 도수를 40도로 정한 논문으로 유명하다. 보드카의 도수가 40도일 때 최상의 맛이 난다는 것은 공인받은 이론이다.
이 대학은 생물학의 대가인 메치니코프와 파블로프를 위시해 모두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을 큰 자랑으로 내세운다. 2009년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거부하여 유명해진 페렐만도 여기 출신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백 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푸앵카레추측’을 풀어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상금 백만 달러와 함께 명예까지 차버린 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우리 돈으로 5만 원쯤의 연금을 받으면서 노모와 함께 칩거 중이라고 한다.
-127쪽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은 1897년 세계 최초로 한국어 강좌를 개설했다. 1888년 이 대학은 학교의 명예와 학문 발전을 위해 한국어 강좌 개설의 필요성을 느꼈고 교육부장관도 관심을 나타냈다. 그 후 10년 뒤 장관은 서울 주재 베베르 공사에게 서한을 보내 교수 추천을 의뢰했다. 그리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민영환 특사 일행의 일원인 윤치호를 초빙했는데 그가 일행과의 불화로 떠나는 바람에 공관 개설을 준비하기 위해 함께 왔던 김병옥이 강의를 대신 맡았다. 독립된 학과는 되지 못하고 1917년까지 중국․만주어학과 내에서 강좌가 계속되었고 한때 중단되었다가 1930년에 다시 이어졌다. 이후 1947년 한국어학과와 한국역사학과가 개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9쪽

1990년대 중반 러시아민족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희귀 고문서 10여 점을 도난당했는데, 3년여의 끈질긴 추적 끝에 범인을 체포하고 도난품은 이스라엘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소장 도서들에 대한 러시아의 대단한 집념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한편으론 부러운 국민성이기도 하다.

-147쪽

볼테르의 장서를 금하던 시절, 유일하게 열람을 허락받은 시인 푸슈킨. "푸슈킨은 우리의 모든 것이다." 이는 러시아인들의 그에 대한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세계적 문호와 예술가들이 즐비한 러시아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숭배 받는 푸슈킨은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보다 한 세대 위의 작가다. 절세미인인 아내 나탈리아를 짝사랑하는 프랑스 망명 귀족 단테스와의 결투로 부상당해 38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 결투는 그의 진보사상을 미워하는 권력자들이 파놓은 함정이었다고 한다. 1880년 러시아 최초로 세워진 그의 동상 제막식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연설을 통해 "그의 문학세계의 본질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보편성에 있다"며 최고의 찬사를 바쳤다. 러시아 전역에 가장 많은 동상이 있으며, 초․중․고 교과서에 가장 많은 작품이 실린 국민시인이다. 그는 자유를 노래하는 시를 써서 유배를 당했고, 황제에게 반기를 든 데카브리스트들과 교유하여 니콜라이 1세와 갈등을 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에게만 볼테르 장서의 열람을 허용했다.
-149쪽

도스토예프스키는 대문호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평생을 도박과 낭비벽으로 돈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 시베리아 유형을 갔다 와서도 도박에 빠진 그는 형이 죽으면서 남긴 부채와 가족까지 떠맡아 고리대금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1866년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맺고, 이 때문에 시급히 신작을 출간하지 않으면 출판사에 위약금을 물고 모든 작품의 저작권까지 빼앗기게 될 처지에 빠졌다. 궁지에 몰린 그는 친구의 소개로 여성 속기사를 고용하여 구술한 것을 받아쓰게 하는 방법으로 중편 《도박꾼》을 한 달 만에 완성하는데, 그 속기사와 이듬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46세, 안나는 21세. 안나는 애초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 부인은 병으로 죽었다.

-170쪽

톨스토이는 명문 백작가의 아들로 태어난 귀족이지만 귀족의 특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농노를 해방시키고 고향에서 농민학교를 세워 가난한 농민의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그는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소설을 통해 귀족들의 과다한 재산 소유로 대다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사는 현실을 비판하여 귀족들의 미움을 샀다. 그 유명한 《참회록》도 귀족들의 압력으로 출판이 금지되어 러시아 민중들은 필사본으로 읽었고, 해외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는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하여 파문을 당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던 그는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저작권까지 포기했다. 부인과의 충돌은 당연한 수순. 82세에 방랑길에 오른 지 20여 일 만에 객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177쪽

스탈린은 ‘강철의 사나이’라는 뜻이다. 1924년부터 30년간 소련을 통치하면서 비밀경찰을 이용한 공포정치, 피의 숙청으로 많은 사람을 처형했다. 반면 나치에 맞선 조국전쟁(2차대전)의 승리와 영토 확장, 공업화와 핵강대국 실현 등의 업적을 남겼다. 미국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러시아 역사상 가장 강한 제국을 건설하여 표트르 대제와도 비견된다.(...)그는 무뚝뚝한 외모와 달리 촌철살인의 유머 감각의 소유자였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수치에 불과하다."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188쪽

러시아정교는 기독교의 동방정교회 가운데 최대 교파로 10세기 말 러시아에 퍼졌고 15세기에 비잔틴교회에서 독립했다. 모스크바는 비잔틴의 계승자임을 자처하여 콘스탄티노플에 이어 ‘제3의 로마’라고 주장한다. 러시아정교는 교리와 설교보다는 의식과 기도를 중시한다. 불교로 치면 이심전심을 종지로 삼는 선종과 비슷하다. 성당 내부도 대단히 화려한데, 의자가 없는 점이 특징이다. 예배는 서서 드린다는 말이다.

-193쪽

러시아 도서관은 어디를 가나 ‘할머니 사서’들이 많이 있는데, 이곳은 특히 그랬다. 러시아는 노인 복지 차원에서 정년퇴직 이후에도 보직을 부여하기 때문에 70세가 다 되도록 일한다고 한다. 이들은 수십 년의 경험이 뒷받침되는, ‘북은 장맛’과 같은 봉사로 이용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200쪽

그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보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 의회도서관과 뉴욕공공도서관, 그 밖에도 미국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보스턴공공도서관, 한국의 어지간한 도서관보다 한국 자료가 더 많은 하버드 예친도서관과 로스쿨도서관, 케네디대통령도서관 등을 둘러보면서, 미국은 과거는 빈약하지만 미래는 탄탄하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과거가 없음을 한탄하는 대신에 그만큼 더 미래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 미국은 도시를 조성할 때 학교, 경찰서, 소방서와 함께 도서관을 우선 짓는다고 한다.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도서관 입지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215쪽

미국 도서관 시스템의 최대 특징은 행정부의 도서관이 없고 의회도서관이 모두 관장하는 것인데, 이는 제퍼슨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권력자들은 사실과 정보, 지식을 독점하고서 필요할 때 은폐하고 왜곡하고 조작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도서관을 권력자의 품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 안에 두는 것이 좋다고 그(3대 제퍼슨 대통령)는 판단했다.

-222쪽

2001년 9․11 테러 당시 뉴욕공공도서관의 활동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동시에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미증유의 재난으로 온 세계가 충격에 빠졌으니 뉴욕 시민들의 충격, 아니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이때 도서관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즉각 테러 대응 체제로 바꿔서 무너진 건물의 입주자 명단, 실종자 확인 방법, 당장의 대처 요령 등을 게시했다. 사태 수습 뒤에는 시민들이 겪는 집단적 우울증, 비탄, 공포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강좌를 개설했으며,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을 연결시켜 모임을 주선하는 등 시민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하여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도서관이 뉴욕 시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 가운데 10년 넘게 1위를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29쪽

우리나라 사람들은 ‘케나기’ 하면 ‘강철 왕’이라고 알고 있는데, 미국인들은 ‘도서관의 수호성인’이라는 영광스런 별칭으로 부른다. 그는 미국과 영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피지 등에 도서관을 무려 2,509개나 지어주었다. 미국에 지어준 1,600여 개는 그 당시 미국 전체 도서관 숫자보다도 많은 것이었다. 빈곤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그는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서 지적 욕구를 채울 수 있었으며, 그때 도서관의 가치를 알았다고 한다. 그는 기업인으로서는 상당히 냉혹한 면모를 보인 인물이다. 그다 도서관에 기부를 하겠다고 하자 "노동 착취로 번 더러운 돈으로 신성한 도서관을 지을 수 없다"라며 거부한 곳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카네기는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 탁월한 선택으로 자신의 명예를 드높였을 뿐 아니라 오늘날 미국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34쪽

공공도서관이 ‘시민대학’이라면 보스턴공공도서관은 세계 최초의 시민대학이다. 이 도서관은 1848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대형 무료 공공도서관으로서 이용자 대출을 최초로 실시하였는데 당시에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1895년 어린이 전용실을 설치하고, 1902년 최초로 어린이를 위해 ‘책 읽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당시 보스턴은 미국의 역사적․사회적․지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공공도서관 설립과 새로운 서비스 도입은 다른 미국 도시들에 모델이 되었다.

-235쪽

중국인보다도 중국을 사랑했던 미국 출신의 기자 에드거 스노. 1934년 10월부터 1년간 18개의 사막을 넘고 24개의 강을 건너 1만km를 쫓겨 간 마오쩌둥과 홍군의 대장정을 종군한 그는 서방 기자로는 최초로 마오쩌둥을 인터뷰했다. 그가 쓴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대장정에 관한 르포는 마오쩌둥을 처음으로 외부 세계에 알렸다. 그는 죽기 전 "내가 살아서 그랬던 것처럼 나의 일부는 사랑하는 중국에 머물고 싶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대로 유골의 반은 미국에, 나머지 반은 북경대의 미명호 근처(그의 연구실 자리)에 묻혀 있다. ‘중국 인민의 미국인 친구를 기념하여’라는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그의 부인 님 웨일스는 항일투사 김산의 일대기를 다룬 《아리랑》의 저자이다.

-273쪽

2차 대전 직후 미국은 일본으로 하여금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세 가지를 만들어주었다. 군대를 두지 못하도록 규정한 평화헌법, 내각책임제의 민주주의 제도, 그리고 도서관. 그만큼 도서관을 중히 여겼다는 의미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킬 때 ‘서양 제국주의의 동양 압제로부터 동양을 해방시키는 성전’으로 국민을 세뇌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권력자에 의한 사실과 정보의 독점 때문이라고 보고, 이 구조를 해체시켜 자신들과 똑같은 도서관 체제로 재편시킨 것이다.

-283쪽

2006년 일본 내 조선서지학의 권위자인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가 작성한 불법 반출된 우리의 고서적 목록만 해도 5만여 권에 이른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약탈된 것이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후지모토의 목록은 궁내청 도서관과 국회도서관, 동양문고 등 일본 내 대형 도서관 1백여 곳에서 직접 확인하여 작성한 것이니 신빙성이 높다. 김종직의 문집, 안평대군의 문집, 김인후의 문집 등 한국에 없는 일본 유일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이토 히로부미가 1백 년 이상 ‘대출 중’인 규장각 서적도 66종 938책이나 일본에 있다. 최치원의 《계원필경》, 이수광의 《지봉유설》, 《퇴계언행록》, 《우암집》등 귀중서들이다. 말이 대출이지 사실상 약탈해가서 반환하지 않은 것이다. 히로부미(博文)라는 이름은 그가 성인이 되어 개명한 것으로 논어의 ‘君子博學於文’에서 따온 것이다. 그 정도로 그는 학문을 숭상한 인물이다.

-288쪽

정조 때 건립한 규장각 건물은 지금 우리가 비원이라고 부르고 있는 곳, 즉 창덕궁 후원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금원이라고 하여 임금과 가족들만 출입할 수 있는 왕실 전용공간이었는데, 임금의 휴식처인 그 자리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언덕에 규장각 건물이 서 있었다. 자신의 전용공간을, 더욱이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명당자리를 학자들에게 내준 임금은 보통 임금이 아닐 것이다.

-311쪽

병인양요 때 리델신부는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록하여 형에게 보냈는데, 이 기록문이 1993년 <한국일보>에 연재된 바 있다. 내용 중에는 조선군의 대포가 10여 미터밖에 나가지 않아서 너무 쉽게 점령한 반면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 해도 서적은 있었다는 사실이 나온다. 또한 비단에 싸인 왕실 서적에 경탄했다는 것과 금박 인쇄와 구리 경첩 등 제본술이 뛰어난 데 놀랐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어람용 의궤를 지칭하는 것이다.

-314쪽

느티나무 도서관은 기존 관념을 뛰어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도난 방지 시스템이 없다. 책을 가져가면 누가 읽어도 읽을 테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잘 버리는 도서관, 책 잘 잃어버리는 도서관’을 지향한다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책을 구입할 때도 10만 원 넘는 비싼 책부터 우선 구입한다고 한다. "비싼 책은 일반 이용자들이 사서 보기 힘드니까"라고 설명한다.

-326쪽

국회도서관은 2009년 11월 20일 우리나라 영토 주권의 상징인 독도에 분관을 설치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도서관이 되었다. 독도경비대 건물 3층 회의실을 도서관으로 개조한 것으로 컴퓨터 2대를 인공위성을 통해 국회 디지털도서관과 연결해서 독도 경비대원들이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 국회도서관의 정보를 원문 DB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381쪽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확고부동하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부식되지 않고, 비밀스런 모습으로."보르헤스<바벨의 도서관>의 이 명구는 스페인어 원문에서 한 단어를 빼고 번역한 것. 그 단어는 영어의 ‘useless’. 왜 우리나라에선 이 단어를 빼고 번역하는 걸까? 도서관이 돌연 ‘쓸모없는’것이 되어버리기 때문. 장자는 <외물>편에서 "땅이 아무리 넓어도 사람이 서 있기 위해서는 발이 닿는 부분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남기고 둘레의 땅을 파버린다면 어찌 걸을 수 있겠는가. 무용하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언뜻 보기에 당장은 쓸모없는 것 같지만 크게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용지용. 동양사상에도 조예가 깊었고 역설의 대가였던 보르헤스가 도서관에 대해 쓸모없다고 한 것은 장자의 무용지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나는 감히 해석한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도서관이 쓸모없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없어도 당장 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깊게 되뇌면 도서관은 언뜻 쓸모없는 것 같지만 큰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 된다.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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